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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연행로(燕行路)에 대한 보고서이다. 연행로란 무엇인가? 연행에 이용했던 길이다. 연행은 뭘까? 연경행(燕京行)의 줄임말로, 연경에 간다는 뜻이다. 연경은 어디인가?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수도, 즉 오늘날의 북경 지역이다. 연경엔 누가 언제 왜 갔을까? 근대 이전 외교는 사행으로 실천되었고, 원명청 시기 그들의 수도가 지금의 북경이었기에 정기적으로 사신이 파견되었다. 하여 연경에 사신으로 파견된 사람을 연행사(燕行使), 그들이 남긴 기록을 연행록(燕行錄)이라 한다. 연행로는 오랜 세월 사행로이자 교역로였으며 문명로였다. 군사로였고 망명로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이 오랜 길을 찾아 나서고, 그 길을 걷고, 거기 서서 옛 사연을 떠올린 사연들이 담겨 있다.
연행의 역사는, 원나라의 북경 도읍 시점인 1267년부터 1894년까지 셈하면 627년이 된다. 여기서 그 사이 남경 사행이 이루어진 53년을 빼면 574년이 남는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지 않은 그 이전의 국제관계, 그리고 기록만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그 이후의 한중관계 속 북경과의 교류를 고려하면, 연행의 역사는 단순 수치를 훨씬 넘어선다. 우리가 이 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저들이 그 땅을 떠나지 않는 한, 이 관계는 일종의 운명이다. 그 길들은 어떻게 이어지고, 무슨 사연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모양을 지니고 있는가? 이 책은 이런 몇몇 질문에 대한 소소한 답변이다. 이 답변은 나아가, 앞으로 연행로를 어떻게 닦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순전히 옛길에 대한 고증이다. 이 책의 언어는 시종 ‘길’을 넘지 않는다. 정치와 문명을 말하기엔 식견이 모자랐고, 길만 얘기하기에도 겨를이 없었다. 내 앞에 길이 멀리 이어지다가 사라졌고, 그 위에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홀린 듯이 그 흔적들을 따라나섰다. 현대화 가운데 끊어진 옛길을 이어 붙여도 보았고, 세월 속에서 사라진 길을 끝내 찾지 못해 아쉬움 가득 돌아서기도 했다. 이 책은 그 ‘길’을 다닌 보고서일 뿐이다.
연행의 역사는, 원나라의 북경 도읍 시점인 1267년부터 1894년까지 셈하면 627년이 된다. 여기서 그 사이 남경 사행이 이루어진 53년을 빼면 574년이 남는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지 않은 그 이전의 국제관계, 그리고 기록만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그 이후의 한중관계 속 북경과의 교류를 고려하면, 연행의 역사는 단순 수치를 훨씬 넘어선다. 우리가 이 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저들이 그 땅을 떠나지 않는 한, 이 관계는 일종의 운명이다. 그 길들은 어떻게 이어지고, 무슨 사연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모양을 지니고 있는가? 이 책은 이런 몇몇 질문에 대한 소소한 답변이다. 이 답변은 나아가, 앞으로 연행로를 어떻게 닦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순전히 옛길에 대한 고증이다. 이 책의 언어는 시종 ‘길’을 넘지 않는다. 정치와 문명을 말하기엔 식견이 모자랐고, 길만 얘기하기에도 겨를이 없었다. 내 앞에 길이 멀리 이어지다가 사라졌고, 그 위에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홀린 듯이 그 흔적들을 따라나섰다. 현대화 가운데 끊어진 옛길을 이어 붙여도 보았고, 세월 속에서 사라진 길을 끝내 찾지 못해 아쉬움 가득 돌아서기도 했다. 이 책은 그 ‘길’을 다닌 보고서일 뿐이다.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수록된 글의 원 제목과 출전
제1장 서설, 연행을 떠나며
역사를 밟아 가며 풍속을 살피다 - 홍경모의 행인 의식과 중국 인식
제2장 압록강의 증언, 봉황산의 대관
압록강 명칭의 기원과 갈래
압록강 국경 표상의 형성
원나라의 등장과 교통로의 생성, 동팔참
봉황산성과 고대사에 대한 관심 - 안시성설의 제기와 반론
제3장 요동벌의 횡단, 자아의 발견
광야의 답보, 한 점 자아의 성찰 - 요양~우가장~광녕
호곡장, 지리 감각의 갱신과 신흥 왕조의 체험 - 석문령~요양~심양
대청 사행과 형가의 형상 - 태자하의 심상지리
하사의 통찰과 허자의 각성 - 심양~요하~의무려산
제4장 북경, 근대 이전 세계 문명의 심장
백전 벌판의 횡단과 역사 변동의 목격 - 광녕~영원성~산해관
문명 중심으로의 근접, 그 흥분과 기대 - 산해관~영평~통주
연경 입성, 조양문의 어제와 오늘 - 통주~조양문~옥하관
18세기 후반 북경 우정의 허실 - 박제가의 마음속 출로, 연경의 우정
제5장 오래전 떠나온 곳, 북방의 기운과 풍물
1345년 이곡의 상도 행로 - 북경~거용관~토목참~난경
잠결의 진경, 꿈결의 웅변 - 1780년 연암 박지원의 열하 행로
「야출고북구기」의 산문미
심세, 변방에서 천하 형세를 보다 - 연암 박지원의 열하 행보와 문심
구외의 풍물과 조양 관제묘의 밤 - 1790년 유득공 일행의 열하 행로
제6장 결어, 발길을 거두며
문명의 통로 연행로, 그 개방성과 폐쇄성 - 17세기 초 유몽인의 산문 읽기
참고문헌
일러두기
수록된 글의 원 제목과 출전
제1장 서설, 연행을 떠나며
역사를 밟아 가며 풍속을 살피다 - 홍경모의 행인 의식과 중국 인식
제2장 압록강의 증언, 봉황산의 대관
압록강 명칭의 기원과 갈래
압록강 국경 표상의 형성
원나라의 등장과 교통로의 생성, 동팔참
봉황산성과 고대사에 대한 관심 - 안시성설의 제기와 반론
제3장 요동벌의 횡단, 자아의 발견
광야의 답보, 한 점 자아의 성찰 - 요양~우가장~광녕
호곡장, 지리 감각의 갱신과 신흥 왕조의 체험 - 석문령~요양~심양
대청 사행과 형가의 형상 - 태자하의 심상지리
하사의 통찰과 허자의 각성 - 심양~요하~의무려산
제4장 북경, 근대 이전 세계 문명의 심장
백전 벌판의 횡단과 역사 변동의 목격 - 광녕~영원성~산해관
문명 중심으로의 근접, 그 흥분과 기대 - 산해관~영평~통주
연경 입성, 조양문의 어제와 오늘 - 통주~조양문~옥하관
18세기 후반 북경 우정의 허실 - 박제가의 마음속 출로, 연경의 우정
제5장 오래전 떠나온 곳, 북방의 기운과 풍물
1345년 이곡의 상도 행로 - 북경~거용관~토목참~난경
잠결의 진경, 꿈결의 웅변 - 1780년 연암 박지원의 열하 행로
「야출고북구기」의 산문미
심세, 변방에서 천하 형세를 보다 - 연암 박지원의 열하 행보와 문심
구외의 풍물과 조양 관제묘의 밤 - 1790년 유득공 일행의 열하 행로
제6장 결어, 발길을 거두며
문명의 통로 연행로, 그 개방성과 폐쇄성 - 17세기 초 유몽인의 산문 읽기
참고문헌
출판사 리뷰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밀접 관계의 역사는 3천 년이 넘는다. 한국의 역사에서 중국이 주요 현안이 아니었던 적은 드물다. 한국의 분단과 세계의 냉전으로 그 불가분의 관계가 잠시 시야에서 멀어진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났을 뿐이다. 이 오래고 특별한 관계를 짚어보면서,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중국 내 옛 연행로(燕行路)에 대한 보고서이다. 연행로란 연행에 이용했던 길을 의미한다. 연행은 연경행(燕京行)의 줄임이다. 연경은 춘주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수도가 있던 곳, 오늘날의 북경 지역이다. 근대 이전 외교는 사신의 왕래로 실천되었다. 북경이 명실상부 중국의 수도로 자리 잡은 1270년 무렵부터 1895년 공식 사행이 폐지되기까지의 북경 외교 사행을 연행이라 통칭한다. 연행의 책임을 맡았던 사신들은 연행사(燕行使), 연행 체험을 담은 기록은 연행록(燕行錄)이라 한다. 연행로는 600년 한중 외교의 현장인 셈이다.
오랜 세월 연행로의 기능은 외교 사행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행에는 30명 내외 공식 사절의 숫자보다 10배 이상 많은 상단(商團)이 따라붙는 게 상례였으니, 이들에 의해 국제교역이 이루어졌다. 연행로는 교역로였다. 수많은 서책이 이 길로 수입되었고, 주자의 학문과 서학도 같은 길로 들어왔다. 연행로는 문명로였다. 큰 전란이 있을 때마다 대규모 군사가 이 길을 오갔으며, 그 결과로 포로와 유이민과 망명객들이 그 위를 가기도 했다. 연행로는 군사로였으며 유이민 길 또는 망명로이기도 했다. 역사는 길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길이 곧 역사이다.
저자의 어조는 시종 차분하고 시선은 끝까지 냉담하다. 이 책에는 과장이나 흥분이 없다. 저자에게 연행로는 매우 영광스러운 길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끄러워 감춰야 할 길도 아니다. 숱한 사연을 안고 있는 역사의 길일 뿐이다. 저자는 집요하고 정밀하게 옛길을 짚어 간다. 지명의 변천을 살피고, 끊어진 길을 잇고, 거기 남은 마음의 자취를 더듬고, 오랜 흔적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길이 앞에 펼쳐져 있어 그 길을 갔고, 관련 기록이 있어 읽었으며, 지금도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인용된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과 허버트 레인홀드 야콥슨(Herbert Reinhold Jacobson)의 아래 문장에 저자가 생각하는 길의 의미가 잘 담겨 있다.
사회가 정체되어 있는지, 종교가 죽은 형식에 갇혀 있는지 알고 싶으면 대학이나 도서관에 가서 배울 수 있다. 성당과 교회에서 수행하는 작업으로도 어떤 것들을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만큼이나 길을 관찰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회에 모종의 움직임이 있으면, 길이 그 사실을 지시할 것이다. 길은 움직임의 상징이다. 변동이나 확장, 또는 해방 정신이 있다면, 그에 따른 상호 작용과 여행이 있게 마련이고, 이런 행동은 길을 필요로 한다. 어떤 진보가 진행되거나, 새로운 사상이 확장되고 새 희망이 일어나고 있다면, 닦이고 있는 길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길이 없이는 어떤 침략도 일어날 수 없다. 정부든 기업이든, 사상이든 종교에서든, 모든 창조 행위는 길을 만든다.
길은 우리의 실제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우리는 신체의 여러 부위를 사용하는 것처럼 길을 생각한다. 이러한 동맥들은 인간의 상업, 지식, 종교 등 모든 영역에 작동한다. 이러한 동맥들이 작동을 멈추면, 문명의 혈액은 흐르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신체 기관들이 동맥에서 피를 공급받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길이 없다면, 소금이든 고기든 옷감이든 모든 물자는 한쪽에서는 넘치고 다른 쪽에서는 없는 끔찍한 고통이 발생할 것이다. 원료를 가져오고 완성품을 내보내는 길이 없다면 산업은 너무 황량해져서 죽음의 노래를 힘겹게 내며 마지막 숨을 거둘 것이다. 전파되지 않는 지식은 멍청해진다. 즉 길이 없으면 지식이란 금박 조롱 안에서 우아한 깃털을 자랑하며, 저 혼자 부르고 저 혼자 들으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불러대는 예쁜 새와 똑같아질 것이다. 어떤 것도 길 만큼이나 다양한 진보의 단계를 거친 인간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모든 성취 중 가장 오래되고 미묘한 길은,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지식과 신앙을 날랐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했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세계의 길들 위에 커다랗게 씌어 있지만, 파괴자인 시간은 그 비밀을 여는 열쇠를 우리에게 남기지 않았다.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압록강 - 요양 - 심양 - 산해관 - 북경 - 열하(상도)로 이어지는 노정의 순서를 따랐다. 연경 사행의 가감 없는 실상을 밝히고 사신의 책무를 강조한 홍경모(洪敬謨, 1774~1851)에 대한 글을 서설의 자리에 두었고,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연행 체험을 대상으로 연행로의 개방성과 폐쇄성(의의와 한계)을 거론하는 것으로 결어를 삼았다.
그 사이에 봉황산, 태자하, 박제가의 연경 우정, 고북구 관련 논문을 배치하여 입체적 조형 효과를 만들었다. 술논문이면서도 문장의 기세가 경쾌하여 잘 읽히고, 여행의 즐거움을 주되 연행로 사전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고증이 정밀하고 정확한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장자는 말했다. “길은 사람들이 다녀 만들어진다. 道, 行之而成.” 루쉰은 이 말을 받아 소설 「고향」(1921)에서 말했다. “본디 땅 위에 길이란 없으니,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절로 생기는 것이다. 其實地上本沒有路, 走的人多了, 也便成了路.” 우리가 이 땅을 버리지 않는 한, 저들이 그 땅을 떠나지 않는 한, 한중관계는 필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 사이에 우린 앞으로 어떤 길을 닦을 것인가? 옛일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의심스러우면 옛일을 살피고, 미래를 알 수 없겠거든 지난 일을 돌아봐라.
疑今者, 察之古, 不知來者, 視之往.
_『관자』, 「형세」
이 책은 중국 내 옛 연행로(燕行路)에 대한 보고서이다. 연행로란 연행에 이용했던 길을 의미한다. 연행은 연경행(燕京行)의 줄임이다. 연경은 춘주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수도가 있던 곳, 오늘날의 북경 지역이다. 근대 이전 외교는 사신의 왕래로 실천되었다. 북경이 명실상부 중국의 수도로 자리 잡은 1270년 무렵부터 1895년 공식 사행이 폐지되기까지의 북경 외교 사행을 연행이라 통칭한다. 연행의 책임을 맡았던 사신들은 연행사(燕行使), 연행 체험을 담은 기록은 연행록(燕行錄)이라 한다. 연행로는 600년 한중 외교의 현장인 셈이다.
오랜 세월 연행로의 기능은 외교 사행에 국한되지 않았다. 사행에는 30명 내외 공식 사절의 숫자보다 10배 이상 많은 상단(商團)이 따라붙는 게 상례였으니, 이들에 의해 국제교역이 이루어졌다. 연행로는 교역로였다. 수많은 서책이 이 길로 수입되었고, 주자의 학문과 서학도 같은 길로 들어왔다. 연행로는 문명로였다. 큰 전란이 있을 때마다 대규모 군사가 이 길을 오갔으며, 그 결과로 포로와 유이민과 망명객들이 그 위를 가기도 했다. 연행로는 군사로였으며 유이민 길 또는 망명로이기도 했다. 역사는 길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길이 곧 역사이다.
저자의 어조는 시종 차분하고 시선은 끝까지 냉담하다. 이 책에는 과장이나 흥분이 없다. 저자에게 연행로는 매우 영광스러운 길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끄러워 감춰야 할 길도 아니다. 숱한 사연을 안고 있는 역사의 길일 뿐이다. 저자는 집요하고 정밀하게 옛길을 짚어 간다. 지명의 변천을 살피고, 끊어진 길을 잇고, 거기 남은 마음의 자취를 더듬고, 오랜 흔적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길이 앞에 펼쳐져 있어 그 길을 갔고, 관련 기록이 있어 읽었으며, 지금도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인용된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과 허버트 레인홀드 야콥슨(Herbert Reinhold Jacobson)의 아래 문장에 저자가 생각하는 길의 의미가 잘 담겨 있다.
사회가 정체되어 있는지, 종교가 죽은 형식에 갇혀 있는지 알고 싶으면 대학이나 도서관에 가서 배울 수 있다. 성당과 교회에서 수행하는 작업으로도 어떤 것들을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만큼이나 길을 관찰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회에 모종의 움직임이 있으면, 길이 그 사실을 지시할 것이다. 길은 움직임의 상징이다. 변동이나 확장, 또는 해방 정신이 있다면, 그에 따른 상호 작용과 여행이 있게 마련이고, 이런 행동은 길을 필요로 한다. 어떤 진보가 진행되거나, 새로운 사상이 확장되고 새 희망이 일어나고 있다면, 닦이고 있는 길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길이 없이는 어떤 침략도 일어날 수 없다. 정부든 기업이든, 사상이든 종교에서든, 모든 창조 행위는 길을 만든다.
길은 우리의 실제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우리는 신체의 여러 부위를 사용하는 것처럼 길을 생각한다. 이러한 동맥들은 인간의 상업, 지식, 종교 등 모든 영역에 작동한다. 이러한 동맥들이 작동을 멈추면, 문명의 혈액은 흐르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신체 기관들이 동맥에서 피를 공급받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길이 없다면, 소금이든 고기든 옷감이든 모든 물자는 한쪽에서는 넘치고 다른 쪽에서는 없는 끔찍한 고통이 발생할 것이다. 원료를 가져오고 완성품을 내보내는 길이 없다면 산업은 너무 황량해져서 죽음의 노래를 힘겹게 내며 마지막 숨을 거둘 것이다. 전파되지 않는 지식은 멍청해진다. 즉 길이 없으면 지식이란 금박 조롱 안에서 우아한 깃털을 자랑하며, 저 혼자 부르고 저 혼자 들으며 매일 똑같은 노래를 불러대는 예쁜 새와 똑같아질 것이다. 어떤 것도 길 만큼이나 다양한 진보의 단계를 거친 인간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모든 성취 중 가장 오래되고 미묘한 길은,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지식과 신앙을 날랐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했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세계의 길들 위에 커다랗게 씌어 있지만, 파괴자인 시간은 그 비밀을 여는 열쇠를 우리에게 남기지 않았다.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압록강 - 요양 - 심양 - 산해관 - 북경 - 열하(상도)로 이어지는 노정의 순서를 따랐다. 연경 사행의 가감 없는 실상을 밝히고 사신의 책무를 강조한 홍경모(洪敬謨, 1774~1851)에 대한 글을 서설의 자리에 두었고,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연행 체험을 대상으로 연행로의 개방성과 폐쇄성(의의와 한계)을 거론하는 것으로 결어를 삼았다.
그 사이에 봉황산, 태자하, 박제가의 연경 우정, 고북구 관련 논문을 배치하여 입체적 조형 효과를 만들었다. 술논문이면서도 문장의 기세가 경쾌하여 잘 읽히고, 여행의 즐거움을 주되 연행로 사전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고증이 정밀하고 정확한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장자는 말했다. “길은 사람들이 다녀 만들어진다. 道, 行之而成.” 루쉰은 이 말을 받아 소설 「고향」(1921)에서 말했다. “본디 땅 위에 길이란 없으니,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절로 생기는 것이다. 其實地上本沒有路, 走的人多了, 也便成了路.” 우리가 이 땅을 버리지 않는 한, 저들이 그 땅을 떠나지 않는 한, 한중관계는 필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 사이에 우린 앞으로 어떤 길을 닦을 것인가? 옛일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의심스러우면 옛일을 살피고, 미래를 알 수 없겠거든 지난 일을 돌아봐라.
疑今者, 察之古, 不知來者, 視之往.
_『관자』, 「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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