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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 번에 되는 인생은 없다.
열다섯 살, 내 인생의 한 장이 끝난 듯 했지만
나를 자극하고 변화시킬 강력한 셀프 교육법을 찾아냈고
이후 내 삶은 재배열되었다!”
이 시대 대한민국의 엄마와 아이들의 현실을 가장 리얼하게 그려 낸, 진짜 공부 이야기가 마침내 출간되었다.《프랑스 교육처럼》이 책은 한국에서 예술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저자가 열다섯 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좌충우돌 부서지고 깨지며 터득해 낸 현실 학습법이다.
간절하게 원했던 예술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했다는 충격도 잠시, 프랑스어라고는 달랑 ‘봉주르Bonjour(아침 인사)’와 ‘앙팡Enfant(어린이)’ 두 단어밖에 모른 채 혼자서 프랑스로 유학길에 오른 저자는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날마다 전쟁 같은 나날을 보냈다. 언어와의 전쟁이었으며, 문화와의 전쟁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고등학교 내내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루하루를 절박한 심정을 안고 열정적으로 뛰어다녔지만 꼴찌라는 타이틀을 비켜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마침내 프랑스의 수능인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 문제가 나오는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 합격해 법대에 입학한다. 생모르 국립 음악원 플루트 클래스를 수석으로도 졸업했다. 현재는 한국 프랑스 대사관 상무관실에서 IT분야의 한-불 기업 간 교류 증진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사랑스러운 한 아이의 ‘엄마’로서 우리의 현실 속 아이들과 엄마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목차
여는 글
프롤로그: 왜 프랑스 교육인가
1장 없음: 무無에 대한 취향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다 · 027
‘너 이름이 뭐니?’ · 033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교과서 · 035
교무실이 없는 이유 · 039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시간 · 043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049
2장 몰입: 생각을 기르는 수업
학생들은 토론자, 선생님은 진행자 · 053
숫자보다 글이 많은 수학 문제 답안지 · 059
숙제가 제일 어려웠어요 · 066
책 한 번 펼치지 않고 2시간 수업하는 법 · 070
무조건 일주일에 시詩 한 편을 · 079
대놓고 시험 성적을 공개하다니 · 085
느리게, 느리게 · 095
연필을 쓰지 않는 프랑스 초등학교 · 099
토론은 배틀이 아니다 · 104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111
3장 각성: 바칼로레아의 마법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치르는 ‘바칼로레아’ · 115
200년 동안 바뀐 적이 없는 입시 제도 · 120
바칼로레아 불문학 시험 · 123
족집게 과외나 유명 학원이 필요 없는 논술형 시험 · 133
프랑스 국민들에게 바칼로레아란? · 137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141
4장 실전: 바칼로레아 논술 작성법과 예시 답안
서론, 본론, 결론 쓰는 법 · 145
철학 시험 예시 답안: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152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161
5장 인성: 학생 권리 vs 교사 권리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vs 좋은 수업을 제공할 권리 · 165
맞담배를 피우는 교실 밖 vs 권위를 존중하는 교실 안 · 170
존중으로부터 나오는 교사의 권위 · 178
교사의 의무, 중립성 · 184
독특한 방학 시스템 · 187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189
6장 일상화: 삶을 바꾸는 클리셰Cliche, 프랑스 예체능 교육
클래식 음악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 193
나도 1등 졸업, 너도 1등으로 졸업 · 201
체력이 곧 국력 · 204
불문학 박사 공부를 하면서 플루트를 전공하고,
법대를 다니며 올림픽을 준비하는 친구들 · 207
불편한 건 참아도 뚱뚱한 건 못 참는 프랑스인들 · 210
전역에서 펼쳐지는 예술 축제 · 213
음악 축제에서 만난 어느 아마추어 플루티스트 할머니 · 221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229
7장 전문성: 학문은 대학에서, 전문 기술은 직업 전문학교에서
아무나 들어오지만, 아무나 졸업할 수 없는 · 233
학문은 대학에서, 전문 기술은 직업 전문학교에서· 239
보이지 않는 유리벽 그들만의 세상, 그랑제콜 · 242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249
에필로그: 교육의 목적은 공부를 잘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계발에 있다 · 252
닫는 글 · 254
프롤로그: 왜 프랑스 교육인가
1장 없음: 무無에 대한 취향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다 · 027
‘너 이름이 뭐니?’ · 033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교과서 · 035
교무실이 없는 이유 · 039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시간 · 043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049
2장 몰입: 생각을 기르는 수업
학생들은 토론자, 선생님은 진행자 · 053
숫자보다 글이 많은 수학 문제 답안지 · 059
숙제가 제일 어려웠어요 · 066
책 한 번 펼치지 않고 2시간 수업하는 법 · 070
무조건 일주일에 시詩 한 편을 · 079
대놓고 시험 성적을 공개하다니 · 085
느리게, 느리게 · 095
연필을 쓰지 않는 프랑스 초등학교 · 099
토론은 배틀이 아니다 · 104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111
3장 각성: 바칼로레아의 마법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치르는 ‘바칼로레아’ · 115
200년 동안 바뀐 적이 없는 입시 제도 · 120
바칼로레아 불문학 시험 · 123
족집게 과외나 유명 학원이 필요 없는 논술형 시험 · 133
프랑스 국민들에게 바칼로레아란? · 137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141
4장 실전: 바칼로레아 논술 작성법과 예시 답안
서론, 본론, 결론 쓰는 법 · 145
철학 시험 예시 답안: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152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161
5장 인성: 학생 권리 vs 교사 권리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vs 좋은 수업을 제공할 권리 · 165
맞담배를 피우는 교실 밖 vs 권위를 존중하는 교실 안 · 170
존중으로부터 나오는 교사의 권위 · 178
교사의 의무, 중립성 · 184
독특한 방학 시스템 · 187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189
6장 일상화: 삶을 바꾸는 클리셰Cliche, 프랑스 예체능 교육
클래식 음악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 · 193
나도 1등 졸업, 너도 1등으로 졸업 · 201
체력이 곧 국력 · 204
불문학 박사 공부를 하면서 플루트를 전공하고,
법대를 다니며 올림픽을 준비하는 친구들 · 207
불편한 건 참아도 뚱뚱한 건 못 참는 프랑스인들 · 210
전역에서 펼쳐지는 예술 축제 · 213
음악 축제에서 만난 어느 아마추어 플루티스트 할머니 · 221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229
7장 전문성: 학문은 대학에서, 전문 기술은 직업 전문학교에서
아무나 들어오지만, 아무나 졸업할 수 없는 · 233
학문은 대학에서, 전문 기술은 직업 전문학교에서· 239
보이지 않는 유리벽 그들만의 세상, 그랑제콜 · 242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 · 249
에필로그: 교육의 목적은 공부를 잘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계발에 있다 · 252
닫는 글 · 254
책 속으로
“왜 하필 프랑스 교육인가!”
주어진 교육 현실과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프랑스 교육처럼 아이들의 자기 계발을 돕고 자아실현의 길로 이끌 것인가
프랑스는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부분 학교에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다. 그래서일까, 만난 적도 없는 어느 프랑스 유명인을 ‘우리 학교 선배’라 부르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어라, 졸업식도?」중에서
고3이 되면 학기 초에 구기 종목, 육상 종목, 체조 종목 가운데 하고 싶은 운동 하나씩을 선택한다. 그렇게 선택한 세 가지 종목을 수업 시간에 훈련하고 평가를 받는데 그 점수 그대로를 바칼로레아에 반영한다. 그러니 체육 수업의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체육 평가 시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체육 평가」중에서
학생들이 수업의 논제에 따라 각자가 알아서 정보를 찾고 사전에 공부한 후 토론을 하기에 수업의 주인공main player은 단연코 학생들이다. 선생님은 그저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정보가 언급되면 수정해 주고, 토론이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 주며,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는 선생님의 그런 역할이 미약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내공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지를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토론 과정에서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않았다. 모든 학생들의 의견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며 적절하게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토론자, 선생님은 진행자」중에서
수업 시간에 토론만 하지 않았는가.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했다. 어려운 논제와 맞닥뜨렸을 때 의지할 학원이나 과외도 없는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토론을 하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한 다음 다른 의견을 제시한 학생을 설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공부법」중에서
고등학교 1학년 첫 학기에는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꼴찌를 맡아놓다시피 해서 같은 반 친구들은 당연히 내가 역사 시험지도 꼴찌로 받은 걸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내 점수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수학을 잘한다는 것만 기억했다.
---「내가 경쟁해야 할 사람은」중에서
공부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대학 입학’에서 ‘자아 발전’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과열 경쟁에 의한 선행 학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수능 바칼로레아는 대학 입학을 위한 자격증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학문을 성취했다는 지표로써의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바칼로레아는 따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당하게 프랑스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지식과 소양을 쌓는 것이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인 것이다.
---「현실의 무게를 이겨 내려면」중에서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천천히 그러나 깊게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 프랑스 교육의 기본이자 전부다.
---「천천히, 그러나 깊게」중에서
바칼로레아는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실력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시험일뿐이다.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바칼로레아를 치르면서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하고 쌓아 왔던 내 실력을 진지하게 평가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치르는 시험 ‘바칼로레아'」중에서
1808년 나폴레옹 1세 때 만들어졌다고 하는 바칼로레아는 지금까지 프랑스의 유일한 대학 입학 시스템으로 유지되고 있다. 말하자면 대학 입학 제도를 200년이 넘도록 바꾼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200년 동안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입시 제도」중에서
프랑스인들에게 바칼로레아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권리다. 그래서 이들은 바칼로레아 철학 문제가 공개되면 전 국민이 답을 함께 고민하며 생각할 자유와 표현할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바칼로레아란?」중에서
프랑스 현대사에는 고등학생이 주도했던 시위가 여러 번 있었다. 그중 1998년 10월의 시위는 한 반에 학생 수가 너무 많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너무나 분명하고 합리적인 명분으로 행해진 대규모 시위로 기록돼 있다. 나는 그 역사의 현장을 고등학생 신분으로 경험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반에 학생 수가 많다고 그렇게 큰 규모로, 그것도 고등학생이 시위를? 더구나 학생들이 시위에 나가느라 수업을 빼먹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하는 선생님들의 반응은 더더욱 이해불가였다. 내가 시위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거나 나를 왕따 시키는 친구들도 없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있었음에도 그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온 학생들이었다. 다시 콩나물 교실로 돌아와 자리를 지켰다. 어제는 학생으로서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하더니 오늘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잊지 않는 그들이었다.
---「1998년 고등학생 시위의 의미」중에서
프랑스인들에게는 한 아이가 음악 영재로 키워지는 것보다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과 지식을 배워가는 학교를 중시했다.
---「영재는 키우지 않는다」중에서
프랑스인들에게 예체능은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일상의 하나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과 체육을 꾸준하게 교육시킴으로써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 준다.
---「불편한 건 참아도 뚱뚱한 건 못 참는 프랑스인들」중에서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에서 초엘리트를 양성하고 그들만의 상류층 세상을 구축해 가는 그랑제콜이 존재한다는 것만큼 모순적인 현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프랑스 교육의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바칼로레아만 따면 누구나 원하는 일반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와 평등을 제공하지만, 대학을 가는 대신 직업 전문학교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선택도 존중해 주고, 상류층에 진입하여 프랑스 사회를 이끌겠다는 야망을 지닌 우등생들에게는 혹독하지만 그 길 또한 열어 주는 것이다.
그랑제콜은 프랑스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주어진 교육 현실과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프랑스 교육처럼 아이들의 자기 계발을 돕고 자아실현의 길로 이끌 것인가
프랑스는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부분 학교에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다. 그래서일까, 만난 적도 없는 어느 프랑스 유명인을 ‘우리 학교 선배’라 부르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어라, 졸업식도?」중에서
고3이 되면 학기 초에 구기 종목, 육상 종목, 체조 종목 가운데 하고 싶은 운동 하나씩을 선택한다. 그렇게 선택한 세 가지 종목을 수업 시간에 훈련하고 평가를 받는데 그 점수 그대로를 바칼로레아에 반영한다. 그러니 체육 수업의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체육 평가 시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체육 평가」중에서
학생들이 수업의 논제에 따라 각자가 알아서 정보를 찾고 사전에 공부한 후 토론을 하기에 수업의 주인공main player은 단연코 학생들이다. 선생님은 그저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정보가 언급되면 수정해 주고, 토론이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 주며,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는 선생님의 그런 역할이 미약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내공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지를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토론 과정에서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않았다. 모든 학생들의 의견을 진심을 다해 들어주며 적절하게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토론자, 선생님은 진행자」중에서
수업 시간에 토론만 하지 않았는가.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논리적으로 표현해야 했다. 어려운 논제와 맞닥뜨렸을 때 의지할 학원이나 과외도 없는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토론을 하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한 다음 다른 의견을 제시한 학생을 설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공부법」중에서
고등학교 1학년 첫 학기에는 수학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꼴찌를 맡아놓다시피 해서 같은 반 친구들은 당연히 내가 역사 시험지도 꼴찌로 받은 걸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내 점수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수학을 잘한다는 것만 기억했다.
---「내가 경쟁해야 할 사람은」중에서
공부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대학 입학’에서 ‘자아 발전’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과열 경쟁에 의한 선행 학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수능 바칼로레아는 대학 입학을 위한 자격증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학문을 성취했다는 지표로써의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바칼로레아는 따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당하게 프랑스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지식과 소양을 쌓는 것이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와 목적인 것이다.
---「현실의 무게를 이겨 내려면」중에서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천천히 그러나 깊게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 프랑스 교육의 기본이자 전부다.
---「천천히, 그러나 깊게」중에서
바칼로레아는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실력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시험일뿐이다.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바칼로레아를 치르면서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하고 쌓아 왔던 내 실력을 진지하게 평가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치르는 시험 ‘바칼로레아'」중에서
1808년 나폴레옹 1세 때 만들어졌다고 하는 바칼로레아는 지금까지 프랑스의 유일한 대학 입학 시스템으로 유지되고 있다. 말하자면 대학 입학 제도를 200년이 넘도록 바꾼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200년 동안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입시 제도」중에서
프랑스인들에게 바칼로레아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권리다. 그래서 이들은 바칼로레아 철학 문제가 공개되면 전 국민이 답을 함께 고민하며 생각할 자유와 표현할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바칼로레아란?」중에서
프랑스 현대사에는 고등학생이 주도했던 시위가 여러 번 있었다. 그중 1998년 10월의 시위는 한 반에 학생 수가 너무 많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너무나 분명하고 합리적인 명분으로 행해진 대규모 시위로 기록돼 있다. 나는 그 역사의 현장을 고등학생 신분으로 경험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그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반에 학생 수가 많다고 그렇게 큰 규모로, 그것도 고등학생이 시위를? 더구나 학생들이 시위에 나가느라 수업을 빼먹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하는 선생님들의 반응은 더더욱 이해불가였다. 내가 시위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거나 나를 왕따 시키는 친구들도 없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있었음에도 그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돌아온 학생들이었다. 다시 콩나물 교실로 돌아와 자리를 지켰다. 어제는 학생으로서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하더니 오늘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잊지 않는 그들이었다.
---「1998년 고등학생 시위의 의미」중에서
프랑스인들에게는 한 아이가 음악 영재로 키워지는 것보다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과 지식을 배워가는 학교를 중시했다.
---「영재는 키우지 않는다」중에서
프랑스인들에게 예체능은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일상의 하나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과 체육을 꾸준하게 교육시킴으로써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 준다.
---「불편한 건 참아도 뚱뚱한 건 못 참는 프랑스인들」중에서
자유와 평등의 나라 프랑스에서 초엘리트를 양성하고 그들만의 상류층 세상을 구축해 가는 그랑제콜이 존재한다는 것만큼 모순적인 현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프랑스 교육의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바칼로레아만 따면 누구나 원하는 일반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와 평등을 제공하지만, 대학을 가는 대신 직업 전문학교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선택도 존중해 주고, 상류층에 진입하여 프랑스 사회를 이끌겠다는 야망을 지닌 우등생들에게는 혹독하지만 그 길 또한 열어 주는 것이다.
그랑제콜은 프랑스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그들만의 세상 그리고 다양성」중에서
출판사 리뷰
교육의 목적은 공부를 잘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 계발에 있다
열정으로 지성으로 내 아이 마음을 사로잡을
엄마들의 대반란 교육 프로젝트
기회와 희망은 셀프로
삶은 얄궂게도 늘 그런 식이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떨어져 돌아가는 듯하다가도, 한순간 돌변한다. 그때는 종작없이 크레셴도로 치닫는 음악처럼 점점 고조되는 삶의 속도를 멈추거나 조절할 수 없다. 병에 걸리고, 시험에 떨어지고, 이별을 하고, 사고를 당하고, 감정의 면역력이 떨어져 자존감을 크게 상실하고······. 그런 급작스러운 수많은 삶의 변화들을 마주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감정은 절망에 가깝다. 그런데 열다섯 살의 저자는 그 절망 대신, 삶이 최악이 될 수 있는 그 절망의 순간 기회와 희망을 붙잡았다.
열다섯 살, 일찌감치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 없이 사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25년 남짓 지난 지금도 저자는 그 기회와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결국 삶에 있어서 기회와 희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매뉴얼대로 작동하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랬다. 열다섯 살에 저자는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현실에 떠밀리다시피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간절하게 원했던 예술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떨어졌다는 충격도 잠시, 저자는 정든 친구들과 가족들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이별의 통증을 감내해야만 했다. 낯선 나라, 낯선 곳. 낯선 학교와 낯선 친구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저자는 그 낯선 공간과 시간 사이를 흔들리며 흘러 다녔다. 마음을 추스르고 의욕을 북돋워 적응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막막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런 막막함마저 마음이 누리는 사치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봉주르Bonjour’ (아침 인사)
‘앙팡Enfant’ (어린이)
프랑스어라고는 달랑 두 단어밖에 모른 채 혼자서 드골 공항행 비행기를 탔다. 그 후 6개월 어학연수를 마치고 파리 16구에 위치한 국립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클래스에서 1년간 프랑스어로 모든 과목을 접해본 후 다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편입해 일반 프랑스 학생들과 똑같은 수업을 듣는다.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생기는 잦은 일들이 많았다. 날마다 전쟁이었다. 언어와의 전쟁이었으며, 문화와의 전쟁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고등학교 내내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루하루를 절박하고 열정적으로 뛰어다녔지만 저자는 꼴찌라는 타이틀을 비켜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마침내 프랑스의 수능인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 문제가 나오는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 합격해 법대에 입학한다. 생모르 국립 음악원 플루트 클래스를 수석으로도 졸업했다.
엄마라는 그 위대한 이름으로
저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시쳇말로 잘나가는 방송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클래식 전공을 살려 조성진이나 임윤찬처럼 음악가로 활동하지도 않는다. 유튜버도 아니다. 글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도 물론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프랑스 교육처럼》이란 교육서를 썼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 때문이란다. 엄마라는 이름이 저자로 하여금 펜을 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저자는 틈만 나면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들(3세)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이나 운동장을 찾는다. 축구를 하기 위해서다. 남자아이라 그런지 뛰는 것을 무진장 좋아했다. 처음엔 아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해소하여 일찍 재울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아들은 엄마인 저자와는 목적이 달랐다. 일단 엄마와 함께 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다음으로는 아들 스스로가 몸을 움직이며 나름의 룰을 만들어 자존감을 키웠다. 그게 저자 눈에 잡혔던 것이다.
“하나 둘 셋 하면 뛰어!”
“여기에 서서 공 받아 엄마!”
“이쪽으로 공을 차!”
“빨리 뛰어!”
“천천히 걸어!”
세 살짜리 꼬마 대장은 규칙을 만들어 엄마인 저자에게 명령했고, 저자는 그 순간만큼은 아들에게 절대 복종했다. 그러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을 차는 아들이 스스로가 정한 룰에 맞춰 절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명령이란 것이 엄마에게 내린 명령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본인도 함께 지켜야 할 룰이었던 것이다. 하나 둘 셋에 뛰어야 했고, 엄마가 서 있는 곳으로 공을 차고 받아야 했으며, 뛰는 속도를 조절해야 했던 것이다. 엄마와 함께하며 속도를 맞춘다는 것에 자존감이 높아진 아들의 모습은 당당했다.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몸이 시킨 걸 마음이 반응했는지 아니면 마음이 시킨 걸 몸이 반응했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공을 차고 운동을 즐기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워갔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던 저자에게 섬광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학창 시절이었다. 고등학교에 첫 등교하던 날, 교문 앞 수십 명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들 중에 선생님들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또 한 번 놀란다. 학생과 선생님이 담배 불을 댕겨주며 맞담배를 피울 줄이야! 더 놀라운 것은 학생들의 태도였단다. 맞담배를 필 정도로 스스럼없이 대하던 선생님을 교실에서는 너무나 진지하게 존중했던 것이다. 공公과 사私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태도에 저자는 문화적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고3이 끝나는 날까지 올림픽 출전 종목의 종목이란 죄다 운동을 해본 것 같은 체육 시간,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운동 경기 맞장을 뜨는가 하면 책 한 번 펼쳐보지 않고 수업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토론만 했던 철학 시간, 수업 중 욕설을 뱉은 학생을 징계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는 학교와 선생님의 방식, 20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대입제도, ‘언어 없이도 사고가 가능한가?’ 또는 ‘인간은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가?’와 같은 희한한 문제를 내는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그런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있는 날이면 출제된 철학 시험 문제를 두고 온 국민이 함께 고민하는 문화,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하게 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으로 하는 클래식 음악 등.
아, 현실 교육!
물론 모든 것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갖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좋은 면밖에 없는 제도는 신의 솜씨로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하필이면 아들과 함께 온몸으로 운동을 할 때 프랑스에서의 학창 시절이 오버랩된 것은 현재의 저자 가슴에 옹이처럼 박혀 있는 그 무언가 때문이었다. 아들의 현실 육아, 현실 교육! 실제로 저자는 아들의 교육 문제로 혼란스러웠다. 지하 동굴에 갇혀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한 처지였다. 빠져나올 통로를 찾으며 온몸의 촉수를 바짝 긴장했을 즈음, 저자는 공차기를 하며 신나게 뛰노는 아들에게서 실낱같이 가느다란 빛을 발견했던 것이고, 드디어 동굴을 빠져나왔다. 입시 제도를 떠나 미래 우리 아이들이 받을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성까지 고민한 끝에 저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히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탈고했다.
상처를 입고 나서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는 것이 삶이고 보면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체화한 부분이 많다. 자신의 아들에게 해 주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저자와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지금은 저자처럼 엄마가 돼 있는 분들과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준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들이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바로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학습법을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로 요약해 놓았다. 간혹, 그 ‘실천 노트’라는 것이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프랑스 교육처럼》을 모두 읽고 나면 큰 틀에서 맥락이 잡힐 것이다. 책을 덮는 순간, 저자가 말로 표현하지 않은 은밀하고 내밀한 마음까지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프랑스 교육인가
프랑스 교육에도 분명 우리와 또 다른 고민거리와 문제가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완벽한 교육을 제공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어느 나라든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교육을 위한 연구를 하고 개선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역할이다. 오랜 기간 축적되고 세팅된 한 나라의 교육 시스템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많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 변화가 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면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바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교육의 목적을 ‘대학 입시’에서 ‘자기 계발’로 변화해 우리의 아이들이 배움의 기쁨을 느끼며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
프랑스 교육처럼
친구들과의 경쟁은 서로의 성적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경쟁의 목적이 오로지 대학 입시로 전락해 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는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사회에 나아가 자신들의 길을 찾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예체능도 깊이 있게 배워서 세상의 정답이 좋은 성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의 교육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랑스 교육처럼.
가치 계발에 있다
열정으로 지성으로 내 아이 마음을 사로잡을
엄마들의 대반란 교육 프로젝트
기회와 희망은 셀프로
삶은 얄궂게도 늘 그런 식이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떨어져 돌아가는 듯하다가도, 한순간 돌변한다. 그때는 종작없이 크레셴도로 치닫는 음악처럼 점점 고조되는 삶의 속도를 멈추거나 조절할 수 없다. 병에 걸리고, 시험에 떨어지고, 이별을 하고, 사고를 당하고, 감정의 면역력이 떨어져 자존감을 크게 상실하고······. 그런 급작스러운 수많은 삶의 변화들을 마주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감정은 절망에 가깝다. 그런데 열다섯 살의 저자는 그 절망 대신, 삶이 최악이 될 수 있는 그 절망의 순간 기회와 희망을 붙잡았다.
열다섯 살, 일찌감치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회와 희망 없이 사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25년 남짓 지난 지금도 저자는 그 기회와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결국 삶에 있어서 기회와 희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매뉴얼대로 작동하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랬다. 열다섯 살에 저자는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현실에 떠밀리다시피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간절하게 원했던 예술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떨어졌다는 충격도 잠시, 저자는 정든 친구들과 가족들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이별의 통증을 감내해야만 했다. 낯선 나라, 낯선 곳. 낯선 학교와 낯선 친구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저자는 그 낯선 공간과 시간 사이를 흔들리며 흘러 다녔다. 마음을 추스르고 의욕을 북돋워 적응해야 하는 일은 참으로 막막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런 막막함마저 마음이 누리는 사치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절박했기 때문이다.
‘봉주르Bonjour’ (아침 인사)
‘앙팡Enfant’ (어린이)
프랑스어라고는 달랑 두 단어밖에 모른 채 혼자서 드골 공항행 비행기를 탔다. 그 후 6개월 어학연수를 마치고 파리 16구에 위치한 국립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외국인 학생을 위한 클래스에서 1년간 프랑스어로 모든 과목을 접해본 후 다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편입해 일반 프랑스 학생들과 똑같은 수업을 듣는다.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생기는 잦은 일들이 많았다. 날마다 전쟁이었다. 언어와의 전쟁이었으며, 문화와의 전쟁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고등학교 내내 끈질기게 이어졌다. 하루하루를 절박하고 열정적으로 뛰어다녔지만 저자는 꼴찌라는 타이틀을 비켜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마침내 프랑스의 수능인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 문제가 나오는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 합격해 법대에 입학한다. 생모르 국립 음악원 플루트 클래스를 수석으로도 졸업했다.
엄마라는 그 위대한 이름으로
저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시쳇말로 잘나가는 방송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클래식 전공을 살려 조성진이나 임윤찬처럼 음악가로 활동하지도 않는다. 유튜버도 아니다. 글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도 물론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프랑스 교육처럼》이란 교육서를 썼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 때문이란다. 엄마라는 이름이 저자로 하여금 펜을 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저자는 틈만 나면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들(3세)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이나 운동장을 찾는다. 축구를 하기 위해서다. 남자아이라 그런지 뛰는 것을 무진장 좋아했다. 처음엔 아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해소하여 일찍 재울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아들은 엄마인 저자와는 목적이 달랐다. 일단 엄마와 함께 몸으로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다음으로는 아들 스스로가 몸을 움직이며 나름의 룰을 만들어 자존감을 키웠다. 그게 저자 눈에 잡혔던 것이다.
“하나 둘 셋 하면 뛰어!”
“여기에 서서 공 받아 엄마!”
“이쪽으로 공을 차!”
“빨리 뛰어!”
“천천히 걸어!”
세 살짜리 꼬마 대장은 규칙을 만들어 엄마인 저자에게 명령했고, 저자는 그 순간만큼은 아들에게 절대 복종했다. 그러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을 차는 아들이 스스로가 정한 룰에 맞춰 절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명령이란 것이 엄마에게 내린 명령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본인도 함께 지켜야 할 룰이었던 것이다. 하나 둘 셋에 뛰어야 했고, 엄마가 서 있는 곳으로 공을 차고 받아야 했으며, 뛰는 속도를 조절해야 했던 것이다. 엄마와 함께하며 속도를 맞춘다는 것에 자존감이 높아진 아들의 모습은 당당했다.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몸이 시킨 걸 마음이 반응했는지 아니면 마음이 시킨 걸 몸이 반응했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공을 차고 운동을 즐기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워갔다.
그런 아이를 지켜보던 저자에게 섬광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학창 시절이었다. 고등학교에 첫 등교하던 날, 교문 앞 수십 명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들 중에 선생님들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또 한 번 놀란다. 학생과 선생님이 담배 불을 댕겨주며 맞담배를 피울 줄이야! 더 놀라운 것은 학생들의 태도였단다. 맞담배를 필 정도로 스스럼없이 대하던 선생님을 교실에서는 너무나 진지하게 존중했던 것이다. 공公과 사私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태도에 저자는 문화적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고3이 끝나는 날까지 올림픽 출전 종목의 종목이란 죄다 운동을 해본 것 같은 체육 시간,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운동 경기 맞장을 뜨는가 하면 책 한 번 펼쳐보지 않고 수업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토론만 했던 철학 시간, 수업 중 욕설을 뱉은 학생을 징계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는 학교와 선생님의 방식, 20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대입제도, ‘언어 없이도 사고가 가능한가?’ 또는 ‘인간은 스스로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가?’와 같은 희한한 문제를 내는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 그런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있는 날이면 출제된 철학 시험 문제를 두고 온 국민이 함께 고민하는 문화,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하게 하는 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으로 하는 클래식 음악 등.
아, 현실 교육!
물론 모든 것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갖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좋은 면밖에 없는 제도는 신의 솜씨로도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하필이면 아들과 함께 온몸으로 운동을 할 때 프랑스에서의 학창 시절이 오버랩된 것은 현재의 저자 가슴에 옹이처럼 박혀 있는 그 무언가 때문이었다. 아들의 현실 육아, 현실 교육! 실제로 저자는 아들의 교육 문제로 혼란스러웠다. 지하 동굴에 갇혀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한 처지였다. 빠져나올 통로를 찾으며 온몸의 촉수를 바짝 긴장했을 즈음, 저자는 공차기를 하며 신나게 뛰노는 아들에게서 실낱같이 가느다란 빛을 발견했던 것이고, 드디어 동굴을 빠져나왔다. 입시 제도를 떠나 미래 우리 아이들이 받을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성까지 고민한 끝에 저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히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탈고했다.
상처를 입고 나서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는 것이 삶이고 보면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체화한 부분이 많다. 자신의 아들에게 해 주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저자와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지금은 저자처럼 엄마가 돼 있는 분들과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준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들이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바로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학습법을 ‘엄마와 아이가 함께하는 실천 노트’로 요약해 놓았다. 간혹, 그 ‘실천 노트’라는 것이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프랑스 교육처럼》을 모두 읽고 나면 큰 틀에서 맥락이 잡힐 것이다. 책을 덮는 순간, 저자가 말로 표현하지 않은 은밀하고 내밀한 마음까지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프랑스 교육인가
프랑스 교육에도 분명 우리와 또 다른 고민거리와 문제가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완벽한 교육을 제공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어느 나라든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교육을 위한 연구를 하고 개선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역할이다. 오랜 기간 축적되고 세팅된 한 나라의 교육 시스템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많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 변화가 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면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바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교육의 목적을 ‘대학 입시’에서 ‘자기 계발’로 변화해 우리의 아이들이 배움의 기쁨을 느끼며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
프랑스 교육처럼
친구들과의 경쟁은 서로의 성적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경쟁의 목적이 오로지 대학 입시로 전락해 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는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사회에 나아가 자신들의 길을 찾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예체능도 깊이 있게 배워서 세상의 정답이 좋은 성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의 교육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랑스 교육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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