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본학 연구 (독서)/8.일본기독교

우치무라 간조 회심기 (2019) - 내 영혼의 항해 일지

동방박사님 2023. 6. 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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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의 양심을 깨운 시대의 선구자
청년 우치무라 간조의 대학 생활, 신앙의 여정
―120년 전 일본 청년이 보았던 기독교는 어떤 것이었나?

우치무라 간조는 누구인가

메이지 유신 시대, 전쟁을 일삼는 일본에 “불벼락”을 예견한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그는 역사적 격변기에 신앙과 양심을 지켜낸 인물로 유명하다.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로서,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애국주의와 평화주의를 주창하였다. 간조는 제도적 교회의 폐해에 맞서 성서에 근거한 신앙을 추구하였고, 그의 강연은 훗날 우리나라 민족기독교의 발판을 마련한 유영모와 그의 제자 함석헌, 김교신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본질 잃은 교회의 위험성을 일찍이 간파한 간조의 선지자적 면모는 ‘가나안 성도’ 현상을 비롯한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목차

서문
들어가는 말

1. 우상 숭배
2. 기독교를 소개받다
3. 우리들의 작은 교회 Ⅰ
4. 우리들의 작은 교회 Ⅱ
5. 새 교회를 세우다
6. 세상 밖으로
7. 기독교 국가의 첫인상
8. 박애주의자들 사이에서
9. 뉴잉글랜드에서의 대학 생활
10. 신학에 빠져들다
11. 귀향

우치무라 간조 연보
 

저자 소개

저 : 우치무라 간조 (Kanzo Uchimura,うちむら かんぞう,內村 鑑三)
 
일본의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이자 사회 사상가. 메이지유신 100주년을 맞아 ‘일본 근대화의 발전에 기여한 2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1877년 삿포로 농학교에 들어가 1881년 수석으로 졸업했고,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립 지적장애인 시설의 간호부로 근무하다 이듬해 애머스트 대학교와 하트퍼드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888년에 귀국하여 도쿄 제일고등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던 중 1891...

역 : 양혜원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수년간 기독교 서적 전문 번역가로 일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를 수료했으며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난잔종교문화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유진 피터슨 읽기』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공저, 이상 ...

책 속으로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육신만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조국을 그 무엇보다 공경하고, 오직 내 조국의 신들만을 예배하도록 배웠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조국의 신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나의 충성을 맹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외국에 기원(起源)을 두고 있는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나는 조국의 반역자가 될 것이며, 조국 신앙의 배교자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 p.32, 「기독교를 소개받다」 중에서

아버지는 더 이상 기독교를 비웃지 않으셨다. 이 책에 있는 무엇인가가 아버지의 마음을 어루만졌음이 틀림없다. … 아버지는 두 번째 책도 다 읽으셨을 뿐 아니라 기독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세 번째 책도 다 읽으셨다. 아버지의 삶과 태도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네 번째 책을 읽은 후 아버지의 마음이 드디어 무너져 내렸다! “아들아”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교만했다. 오늘부터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 내 말을 믿어도 된다.”
--- p.104, 「새 교회를 세우다」 중에서

히브리 문화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미국인의 일상적인 대화 형식이라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우선 모든 사람이 히브리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말에게도 세례명이 있었다. 우리가 극도의 경외감과 존경심 없이는 차마 발음도 하지 못했던 단어들이 일꾼, 마차꾼, 구두닦이, 그리고 그 외 좀 더 고상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 p.168, 「기독교 국가의 첫인상」 중에서

오, 하늘이여, 나는 망했도다! 내가 속았도다! 평화가 아닌 것을 위해 참된 평화를 포기했도다! 옛 신앙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고, 이제 새 신앙에 묵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내가 앞으로 결코 하지 않을 것 한 가지, 그것은 기독교를 유럽이나 미국의 종교라고 옹호하는 것이리라.
--- p.169, 「기독교 국가의 첫인상」 중에서

이교도를 회심시켰더니 이제 그 이교도가 당신을 재회심시킨다. 이것이 바로 인류다. 모든 종족은 이렇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교도를 동정하는가? 비참한 상태에 있는 당신의 형제들을 ‘동정’하는가? 그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된 것에 대해 당신 자신을 탓하는가? 나는 이것이 기독교 선교의 참된 철학이라 믿는다. 다른 기초에서 출발한 선교는 전부 쇼이며, 연극이며, 적에게 비판받아 마땅하며, 이교도들마저 무시할 것이다.
--- p.308, 「귀향」 중에서

바로 여기가, 내가 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땅과 이 지구에 나를 묶어 주는 곳이다. 이곳은 내 고향이자 내 전쟁터다. 나의 봉사와 기도와 생명을 무료로 얻게 될 땅이다.
--- p.309, 「귀향」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 일본 청년의 의심과 고뇌
이 책은 간조가 그의 나이 35세에 정리한 ‘항해 일지’이다. 본문 안에 수록된 그의 일기에는 청년 우치무라가 보낸 하루하루의 설렘과 권태, 열정과 고뇌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신앙과 사상의 항해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일본 기독교’였다. 이 책을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유교 전통을 지키는 집안에서 자란 간조가 서양의 기독교를 나름대로 평가하는 대목이다. 그는 “결코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274쪽). 특히 미국에 도착해서 목격한 것이 ‘기독교 국가의 신성모독 문화’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 간조가 보여 준 그리스도인의 곧은 양심과 독창적인 신학 사상은, 이러한 고뇌와 연단의 시간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낡지 않는 고전
1895년 일본의 케이세이샤(警醒社)에서 영문으로 처음 출간된 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개국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우치무라 간조 회심기』는 낡지 않는 고전이다. 120년 전 일본 청년이 보았던 기독교는 무엇이었나? 그의 매력은 이제 새로운 독자에게 새롭게 발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