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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망국에 이르기까지 45년 복기
일본 제국주의와 대한제국이 맺은 병합조약(1910)은 뼈아픈 식민 통치 35년의 출발점이자, 우리 역사의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망국에 이르기까지, 곧 조선이 세계(제국주의 열강들)와 만나는 순간부터 일제에 병합될 때까지 45년의 기간은 여전히 논쟁적이며, 우리가 어떤 지점에서 실패했는지 복기할 대목들이 많다.
한국 근대 국제관계사의 전문가인 최덕수 명예교수(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의 신간 『근대 조선과 세계』는 19세기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와 열강의 한국 인식〉을 바탕으로 조선-대한제국의 사건들을 재조명한 역사교양서이다.
평양 대동강에 이양선이 출현한 1866년부터 일본에 의해 병합조약이 맺어진 1910년까지 45년의 기간을 다룬다.
척화비, 임오군란, 동학농민전쟁, 헤이그 특사 등 〈열강이 이끌어 나가던 세계 질서와 만난 조선〉이 어떻게 외부의 힘에 맞섰고,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9가지 주요 사건과 핵심 질문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당시의 해외 외교 문서와 언론 보도 등 1차 사료를 적극 제시하면서,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독자들을 위해 그 시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목차
머리말 지금 같은 세계의 시작
1부 조선, 세계와 만나다 1866~1882
1장 〈척화비〉의 시대: 조선은 왜 〈척화비〉를 세웠나(1871)
2장 강화도조약과 동상이몽: 조선은 왜 〈개방〉을 했나(1876)
3장 서양과 체결한 최초의 조약: 조선은 왜 〈미국〉을 선택했나(1882)
2부 한반도, 열강의 분쟁지가 되다 1882~1895
4장 임오군란은 최초의 〈해외 반일 운동〉이었나(1882)
5장 거문도 점령 사건과 〈한반도 4강 체제〉: 열강은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았나(1885)
6장 동학농민전쟁과 열강: 영국은 왜 〈조선 분할 점령〉을 제안했나(1894) 164
3부 대한제국, 내부와 외부의 시선 1896~1910
7장 제1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와 대한제국: 고종은 왜 40주년 칭경 기념비를 세웠나
8장 러일전쟁, 한반도에서 벌어진 열강의 전쟁: 미국은 왜 조선을 버렸나(1905)
9장 1910년, 〈병합〉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1910)
[근대 조선과 세계] 이양선의 출현부터 한일병합까지, 1866 ~ 1910
저자 소개
저 : 최덕수 (崔德壽)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근대 정치사와 한일 관계사를 전공했다.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1982-1994),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1994-2017)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다.
저서로 『개항과 朝日 관계』(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와 『대한제국과 국제 환경』(선인, 2005), 공저로 『조약으로 본 한국 근대사』(열린책들, 2010), 『근대 ...
책 속으로
일본의 군사적, 무력적 성장에는 언제나 조선이라는 발판이 있었다.
--- p.10
과거 이 땅에서 벌어졌던 전쟁은 언제나 〈조선의 자주독립〉과 〈동양 평화〉를 명분으로 앞세웠지만, 그 전쟁으로 인하여 조선인들의 삶과 터전이 파괴당했다. 조선은 소위 제국주의 시대 최대의 희생물이었다.
--- pp.11~12
한반도가 국제 세계에 편입되고 식민 체제를 겪으며, 해방과 전쟁,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과정. 세계와 처음 대면했던 시기에 조선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원초적 관계와 구조는 세기를 넘어 오늘날에도 모습을 바꾸어 이어지고 있다.
120년 전의 G7이 2021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G7인 것처럼.
--- p.12
정족산성 패배를 끝으로 프랑스가 원정을 포기하고 돌아가기는 했지만, 초기 대응의 모습을 볼 때 전혀 효과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조선 정부는 1차 양화진 침투와 2차 원정으로 강화부가 점령당하고 철저히 약탈당할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다. 그럼에도 조선 정부는 오직 오랑캐를 퇴각시켰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며 자축했다.
--- p.34
대원군은 원래 천주교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부인 민씨 역시 천주교도였다.
대원군은 프랑스를 이용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 보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원군이 주교들과 면담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 빨리 시중에 알려지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대원군 정권이 들어서면서 밀려났던 안동 김씨 세력이 정치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대원군은 이러한 정치적 공세를 빠져나오기 위해, 거꾸로 자신과 서학 세력 사이에 연관이 없음을 보여야만 했다. 결과는 가혹한 천주교 탄압으로 나타났다.
--- p. 43
당시의 기록에 나타난 고종의 〈조일수호조규〉 인식은 전통적인 교린 관계의 연장이었다.
조약이라는 새로운 체제 속의 일본이 아닌, 중국 중심의 중화 질서 속에서 과거부터 교류를 해왔던 일본이었다.
--- p.73
〈조미수호통상조약〉 내용 가운데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와 개설서 등에서 상대적으로 잘 언급하지 않았던 조항이 제11조다.
제11조는 유학생 파견 시 우호적으로 지원한다는 조항이었다.
상대국에서 각종 영역에 대한 학습을 위해 유학생을 파견할 경우, 해당국에서는 이에 따른 편의를 도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정부가 서구 국가와는 처음으로 맺은 이 조약에서 양국 간에 어학 등 전 분야에 걸쳐 유학을 장려하고 지원한다는 조항을 설정한 것이었다.
--- p.104
일본은 조선의 임오군란을 조선과는 강화도조약 체결 이래 외교적인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이용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도 메이지 유신 이후 이른바 체제 구축기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이용했다.
--- p.127
근대 일본은 이후 외교 분야에서 〈아시아〉와 〈서구〉라는 두 가지 목표 중 어떤 것을 중시할지에 따라 그 기조가 변해 왔다. 그리고 일본이 스스로를 〈아시아 국가의 일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서양 문명국의 일원〉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대외 정책의 방향이 달라졌다.
--- p.154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이후 한반도는 2021년 현재까지 대륙과 해양 세력이 부딪치는 최전선이 되고 있다. 대륙과 해양 세력의 갈등이 전쟁으로 분출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양대 세력이 가장 먼저, 그
리고 손쉽게 내미는 것은 대립하는 두 세력이 해양으로 돌출한 반도를 중간에서 나누어 점령하는 것이었다.
한국 분단의 기원은 70여 년 전의 한국전쟁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pp.186~187
전체 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제2차 한일협약〉은 1904년 2월 〈한일의정서〉 체결 이래 점차 제약해 오던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함과 동시에 청일전쟁 이래 자신들이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던 〈조선의 독립 보장〉이라는 약속을 완전히 깨뜨리는 것이었다.
--- p.243
영국의 능력은, 본토인들의 지배하에서보다 영국의 지배하에서가 훨씬 만족스럽다는 것이 오래전에 입증되었다.
만약 일본의 지배가 한국을 만족시킨다면, 일본은 마찬가지로 정당성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천만의 한국인들은 일본에게 강점보다는 약점의 공급원임을 드러낼 것이다(『뉴욕 타임스』, 1905년 11월 22일 자 기사).
--- p. 47
특사 가운데 이준의 자살설이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에 7월 18일 보도된 이후 특사들의 활동에 대해 애국적인 행동으로 적극 평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준에 대한 애도의 글이나 그의 〈순국〉을 찬양하는 등의 논설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 국내 언론의 입장에서는 그보다는 눈앞에 있는 황제의 양위가 더 다급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준 등을 애도하는 보도는 허용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이 고종의 특사임을 부인하려는 경향조차 있었다.
--- p.257
〈대동단결 선언〉은 1919년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 곧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함〉이라는 내용으로 부활했다. 비록 〈황제의 국가(제국)〉는 망했지만 〈백성의 국가(민국)〉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냉정하게 역사적으로 평가하자면, 〈병합조약〉은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었다.
--- p.274
출판사 리뷰
국제 관계사로 읽는 근대 조선
이 책은 국제 관계사의 측면에서 한국 근대사를 연구해 온 저자의 40년 내공이 집약되어 있다.
이 시기를 다루는 기존의 역사책은 대개 국내 사료에 집중하며 외부 열강(미국, 영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의 입장과 의도를 부수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거꾸로 국내 사건에 대한 설명은 최소화하고 국제 관계사의 측면에서 사건의 영향과 관계성을 해명하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이 책에 다루는 주요 물음들, 예를 들어 〈조선은 왜 최초의 서양 조약 상대국으로 미국을 선택했나?〉 〈왜 일본 정부는 임오군란을 해외 반일 운동으로 선전했나?〉,
〈영국은 왜 중국과 일본에 조선 분할 점령을 제안했나?〉 등에 대해서도, 열강들 간의 경제적?군사적 득실이나 각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설명이 불가능하다.
또한 이 책은 1980년대부터 연구해 온 성과들을 다수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오리지널리티를 갖는다.
예를 들어
3장에서 이리 사태(1871년 러시아군이 중국 신장 지역의 중심 도시이자 이리 지역을 점령한 사건)와 『조선책략』(러시아의 남진에 대비한 외교방책을 제시한 책으로, 미국과 손잡을 것을 제안한 연미론이 특징적이다)을 연결하여 설명한 부분,
4장의 일본 국내 정치적 움직임과 임오군란에 대한 일본의 대외 정책 수립 과정을 설명한 대목,
5장의 후쿠자와의 〈탈아론〉과 야마카타의 〈이익선론〉,
6장의 동학농민전쟁 시기 열강의 〈한반도 분할론〉,
7장의 제1차 헤이그평화회의와 그에 대한 조선 내부의 인식(『독립신문』)은 저자가 1980년대부터 학계에 거의 최초로 발표한 내용들이다.
지금과 같은 세계의 시작
〈지금과 같은 세계〉가 시작됐던 150여 년 전, 조선은 〈제국주의 시대 최대의 희생물〉이었다. 수교를 거부하며 결사 항전했던 병인양요(1866), 일본이 군사력으로 도발했던 운요호 사건(1875), 러시아의 남진 견제하려는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1887),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 조선은 10년 단위로 세계열강의 무력 충돌에 직면했다.
물론 무력 충돌과 전쟁의 당사국은 조선이 아니었지만, 〈그 전쟁으로 인해 조선인들의 삶과 터전이 파괴당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를 훌쩍 넘어 한국은 이제 놀라운 경제적 성취를 바탕으로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전히 분단국가이고,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9세기 미국, 프랑스, 일본 등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이 여전히 G7인 것처럼, 〈세계와 처음 대면했던 시기에 조선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원초적 관계와 구조는 세기를 넘어 오늘날에도 모습을 바꾸어 이어지고 있다.〉
〈역사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의 현재 위치를,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의 기원을 이야기해 준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리고 한 세기 전의 불행한 역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현재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인식해야 한다는 진실을 알려 준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03526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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