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전쟁교훈여행 (2010~) <여행지>/5.일본다크투어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국인위령비

동방박사님 2011. 2. 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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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평화기념관 : 원폭돔

[ Hiroshima Peace Memorial-Genbaku Dome ]

1915년 당시 체코 건축가 얀 렛트르에 의해 지어진 히로시마 상업전시관이었으나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남은 원폭 피해 유적이다. 현재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라고 부른다. 인류역사상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상징물로 인정되어 1996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원폭 돔

 広島平和記念公園:原爆ドーム

지정일 -1996년

 

 

Hiroshima Prefecture(히로시마현)

 

 

 

8시 15분에 영원히 멈춘 시계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시로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원자폭탄의 폭발로 7만 여명의 목숨을 사라져갔다. 원자폭탄은 폭탄이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580미터 거리에 있던 현재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 있던 30여 명도 모두 사망했다. 그러나 수직으로 충격을 받은 탓에 지붕이 날아갔지만, 외벽을 중심으로 건물의 뼈대는 남게 되었다. 일대의 원자폭탄 잔재들은 모두 사라졌으나, 이 건물만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날의 충격을 상징하는 듯 건물 안 시계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8시 15분을 가리키며 멈춰 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은 흔히 원폭돔으로 불리며 일본인들은 겐바쿠돔이라 부른다. 이 건물은 1915년 체코 건축가 얀 렛트르(Jan Letzel)가 1915년 4월 지은 것으로, 그 해 8월 히로시마 상업전시관으로 문을 열었으나 1921년 이름이 히로시마 상품전시장으로 바뀌었다. 다시 1933년 히로시마 산업증진관으로 바뀌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질 당시에는 행정기관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과거를 상징

이 건물을 보존할 것이냐 철거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있어 왔으나 1996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면서 보존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일본은 원자폭탄 투하의 역사적 사실과 참화를 세계인에게 알리고, 핵무기 폐기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장소로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것을 주장했다. 유네스코는 독일 나치스에 의해 수백만 유대인이 학살됐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상징물로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가 만들어낸 참상이 역설적으로 평화의 상징물이 되었다.

 

그러나 선정 과정에서 중국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반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미국은 원폭 투하가 전쟁의 지속으로 인한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불가결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피해자 일본만을 부각시킬 우려 있어

건물 주변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평화기념관에는 피폭자들의 사진과 녹아 내린 인골, 원폭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그 밖에 무명 희생자들의 무덤인 원폭 공양탑, 평화의 종,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등이 있다. 매일 8시 15분이면 당시를 기념하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매년 8월 6일에 희생자 추모제가 열린다.

   

 

히로시마평화 공원 입구에는 ‘더 이상 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죄인가? 히로시마에서 무고하게 죽은 일본인은 분명 피해자다. 그러나 피해자 이기 이전에 일본은 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비롯 수없이 많은 아시아인들을 학대하고 학살한 가해자다. 그런데도 일본이 이처럼 피해자로서의 일면만을 내세우는 것은 이곳을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유네스코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공원 입구에 위치한 평화의 시계탑은 원폭을 상징하듯 뒤틀린 모습으로 세워 있다. 원폭이 투하된 시각인 08:14에 맞춘 시계탑에서 매일 종이 울린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도로 북쪽에는 원폭 어린이상이 있다. 이 상의 모델인 사다코는 원폭 부작용으로 두 살에 백혈병에 걸린 소녀인데, 학을 1,000마리 접으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에 학을 접었으나 1,000마리가 완성되기 전인 열 살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 일본에는 종이학접기 붐이 일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학을 보내온다고 한다. 사다코에게 보내온 학은 기념비 둘레에 전시되어 있다. 평화의 종은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오타강이 모토야스강과 혼가와강으로 나뉘는 삼각주 지역 북쪽에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 히로시마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조성한 평화기념공원이 있다. 공원 곳곳에는 갖가지 위령비가 눈에 띄며, 신원이 확인된 원폭 희생자들을 모두 담은 원폭위령비 주위에는 지구 상에서 마지막 핵무기가 사라질 때까지 꺼지지 않을 평화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평화의 불꽃은 1964년 8월 1일 처음 점등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꺼지지 않았으며, 반핵의 상징이다. 위령비 중에는 최근 위치를 옮긴 한국인 피폭자위령비도 있다.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와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역시 원폭의 피해를 입었으며, 그 규모가 원폭 피해자의 약 10%에 이르는 2,527명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인 피폭자위령비는 1970년 처음 세웠으나 명칭 등의 문제로 말썽을 부리다가, 1999년에 공원으로 다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