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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전 전문가가 10년간 집필에 매달려 완성한
그리스 로마 신화와 로맨스의 현대적 결합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미국 작가 매들린 밀러의 첫 소설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파트로클로스를 화자로 하여 영웅 아킬레우스와의 사랑과 그들이 참전한 트로이아 전쟁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는 브라운대학교에서 고전학 학사·석사학위를 받고 예일연극영화대학원에서 고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수업을 받았다. 그녀가 10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그리스 로마 신화와 로맨스를 결합한 이 작품은 과연 “근래 호메로스의 작품을 각색한 소설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서는 이례적일 만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출간 당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무엇보다 멜로드라마의 요소가 담긴 것이 뜨거운 호평과 인기의 이유로 꼽히는데, 열광적인 팬덤에 의해 오늘날까지 SNS에서 활발하게 회자될 정도로 그 인기가 이어져오고 있다. 동시에 작품성도 크게 인정받아 2012년에는 영국에서 가장 유수한 문학상 중 하나인 ‘여성 문학상(Women’s Prize for Fiction, 당시 오랜지상, 2014~2017년 베일리스 여성 문학상)’을 수상했다. 여성 문학상은 한 해 동안 영국에서 영어로 출판된 여성 작가의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상으로, 1996년에 제정되었는데, 앤 패칫, 라이오넬 슈라이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바버라 킹솔버, 알리 스미스 등의 걸출한 작가들이 수상한 바 있다.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당시 심사위원장이 스스로 고백하듯 “여러 면에서 다소 놀라운” 일이었는데, 신인작가의 데뷔작이자 대중적인, 조금은 통속적인 면도 함께 지닌 소설이 앤 엔라이트, 앤 패칫, 신시아 오지크 등의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과 경쟁하여 거둔 뜻밖의 수상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세계 약 25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2017년 9월에는 영국 블룸스버리 출판사가 현대의 고전 중에서도 특히 사랑받는 책들을 모아 만든 ‘블룸스버리 모던 클래식’ 시리즈 10종에도 포함되었다. |
저자 소개
책 속으로
그의 아버지 펠레우스가 자랑스러워하며 웃는 얼굴로 아들을 데리러 온다. 펠레우스의 왕국은 우리 왕국보다 작지만 일설에 따르면 아내가 여신이라 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나의 아버지는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지켜본다. 그의 아내는 백치이고 그의 아들은 너무 느려서 가장 어린 조에서도 뛰지 못한다. 그가 나를 돌아본다.
“아들은 저래야 하는 거다.” --- p.12
신의 자식들은 신성한 혈통이 발현되는 부분이 저마다 달랐다. 오르페우스는 나무조차 울게 만드는 목소리를 타고났고 헤라클레스는 손으로 등을 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경이로운 능력은 속도였다. --- p.64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뭘 할 생각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몸을 기울이자 우리의 입술이 어색하게 맞닿는다. 부드럽고 둥글고 꽃가루가 잔뜩 묻은 꿀벌의 통통한 몸통 같은 느낌이다. 그의 입술 맛이 느껴진다. 뜨겁고 후식으로 먹은 꿀 때문에 달짝지근하다. 내 뱃속이 떨리고 따뜻한 희열 한 방울이 살갗 아래로 번진다. 한번 더. --- p.87
“내가 경고했을 텐데.”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까만 눈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서 숨을 쉬지 못하도록 목구멍을 채워버리는 듯했다. 나는 감히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가 없었다.
내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케이론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정적을 갈랐다. “오셨군요, 테티스.” --- p.115
“더이상 가르칠 게 없구나. 너는 헤라클레스의 모든 기술과 그 이상을 알고 있다. 너는 네 세대, 그 이전의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전사다.”--- p.120
내 안에서 부풀어오른 확신에 목이 메었다. 절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다. 그가 날 내치지 않는 한 영원히 이렇게 있을 테다. --- p.134
“그럴 줄 알았어. 명예를 얻는 동시에 행복해질 수는 없거든.” 그는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뭔데?” 나는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좋았다.
“내가 최초가 될 거야.” --- p.138
내가 그를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나는 살짝 스치는 감촉만으로도, 체취만으로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눈이 멀어도 그가 숨을 쉬는 소리와 땅을 밟는 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죽더라도 땅끝에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 p.175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쪽으로 얼른 시선을 돌려보니 경악스럽게도 그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아킬레우스 왕자.” 오디세우스가 말했다. “자네를 찾고 있었다네.” --- p.209
어디에선가 느닷없이 아킬레우스가 등장했다. 피를 뒤집어쓰고서 숨을 헐떡이는데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창은 손잡이 부분까지 붉게 물들었다. 그는 나를 보고 씩 웃더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트로이아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시신과 갑옷 조각과 창자루와 전차 바퀴들이 땅바닥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발이 걸려 휘청거리지 않았다. 이 전장에서, 소금기로 반질반질한 갑판처럼 멀미가 날 때까지 미친듯이 요동치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그였다. --- p.304
“이 나라에서는 간청을 그런 식으로 하시나?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시오. 나는 이 군의 총사령관이오.” 그는 쏘아붙였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 병사들 앞에서 연설을 늘어놓는 거요? 내 대답은 이거요. 싫소. 몸값은 필요 없소. 그녀는 내 전리품이고 나는 그녀를 포기할 생각이 없소이다. 이런 쓰레기들은 물론이고 뭘 가지고 오든 마찬가지요.”
“아들은 저래야 하는 거다.” --- p.12
신의 자식들은 신성한 혈통이 발현되는 부분이 저마다 달랐다. 오르페우스는 나무조차 울게 만드는 목소리를 타고났고 헤라클레스는 손으로 등을 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경이로운 능력은 속도였다. --- p.64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뭘 할 생각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몸을 기울이자 우리의 입술이 어색하게 맞닿는다. 부드럽고 둥글고 꽃가루가 잔뜩 묻은 꿀벌의 통통한 몸통 같은 느낌이다. 그의 입술 맛이 느껴진다. 뜨겁고 후식으로 먹은 꿀 때문에 달짝지근하다. 내 뱃속이 떨리고 따뜻한 희열 한 방울이 살갗 아래로 번진다. 한번 더. --- p.87
“내가 경고했을 텐데.”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까만 눈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서 숨을 쉬지 못하도록 목구멍을 채워버리는 듯했다. 나는 감히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가 없었다.
내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케이론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정적을 갈랐다. “오셨군요, 테티스.” --- p.115
“더이상 가르칠 게 없구나. 너는 헤라클레스의 모든 기술과 그 이상을 알고 있다. 너는 네 세대, 그 이전의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전사다.”--- p.120
내 안에서 부풀어오른 확신에 목이 메었다. 절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다. 그가 날 내치지 않는 한 영원히 이렇게 있을 테다. --- p.134
“그럴 줄 알았어. 명예를 얻는 동시에 행복해질 수는 없거든.” 그는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뭔데?” 나는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좋았다.
“내가 최초가 될 거야.” --- p.138
내가 그를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나는 살짝 스치는 감촉만으로도, 체취만으로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눈이 멀어도 그가 숨을 쉬는 소리와 땅을 밟는 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죽더라도 땅끝에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 p.175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쪽으로 얼른 시선을 돌려보니 경악스럽게도 그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아킬레우스 왕자.” 오디세우스가 말했다. “자네를 찾고 있었다네.” --- p.209
어디에선가 느닷없이 아킬레우스가 등장했다. 피를 뒤집어쓰고서 숨을 헐떡이는데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창은 손잡이 부분까지 붉게 물들었다. 그는 나를 보고 씩 웃더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트로이아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시신과 갑옷 조각과 창자루와 전차 바퀴들이 땅바닥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발이 걸려 휘청거리지 않았다. 이 전장에서, 소금기로 반질반질한 갑판처럼 멀미가 날 때까지 미친듯이 요동치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그였다. --- p.304
“이 나라에서는 간청을 그런 식으로 하시나? 이 자리에서 죽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시오. 나는 이 군의 총사령관이오.” 그는 쏘아붙였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 병사들 앞에서 연설을 늘어놓는 거요? 내 대답은 이거요. 싫소. 몸값은 필요 없소. 그녀는 내 전리품이고 나는 그녀를 포기할 생각이 없소이다. 이런 쓰레기들은 물론이고 뭘 가지고 오든 마찬가지요.”
--- p.347
출판사 리뷰
영웅 아킬레우스, 그의 친구이자 연인인 파트로클로스
핏빛 전쟁터 속에서 빛나는 두 연인의 사랑과 비극
이 소설의 화자이자 첫번째 주인공인 파트로클로스는 『일리아스』에 등장하나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약한 인물이다. 그러나 비중과 별개로 『일리아스』 전체의 경과를 놓고 볼 때 파트로클로스의 역할은 극중에서 지대하다 할 수 있다. 영웅 아킬레우스가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하고 전투에서 물러난 뒤, 그리스군이 참혹한 인명 손실을 겪는 와중에도 아랑곳 않던 그를 다시 전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바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분노였다. 매들린 밀러는 이 이야기와, 이 비중 없는 인물에게 사로잡혔다고 한다. “아킬레우스에게 이토록 소중했던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아킬레우스는 그를 잃고 왜 그렇게까지 무너졌을까?”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이 질문에 대한 그녀 나름의 답이다.
이야기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작되기 한참 전, 두 주인공이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는 바야흐로 영웅의 시대. 왕자로 태어났으나 ‘작고 가냘프고, 빠르지 않고, 튼튼하지 않은’ 파트로클로스는 어린 나이에 이미 아버지의 기대를 무너뜨린 한심한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한 소년을 실수로 죽이면서 열 살의 나이에 외국으로 쫓겨난다. 그리고 도착한 프티아에는 펠레우스 왕의 아들인 반신반인 아킬레우스가 있다.
허약하고 초라한 파트로클로스와 모든 것을 지닌 여신의 아들 아킬레우스.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소년은 끈끈한 친구가 되며,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를 향한 애정을 몰래 키워간다. 하나 이 감정은 곧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이자 여신인 테티스에 의해 좌절된다. 아들을 애지중지 사랑하며 나머지 모든 인간을 혐오하고, 또 그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든지 전부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테티스는, 애정을 갈구하는 파트로클로스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최악의 상대이다. 그리고 두 소년이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수업을 듣기 위해 펠리온 산으로 향했을 때, 테티스의 시야에 그곳이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킬레우스 역시 파트로클로스에게 그 못지않은 애정을 느끼고 있음이 밝혀진다. 두 소년의 열렬한 사랑이 비로소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연인의 눈앞에는 임박한 비극이 늘 도사리고 있다. 아킬레우스는 영광스럽게 단명하는 삶과 무명인 채로 장수하는 삶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영광의 유혹에 넘어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 공격에 참전하고, 파트로클로스도 그를 따라나선다. 여기에 작가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극적인 아이러니를 배가시킨다. 두 연인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에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걸, 거기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 사후에 찾아올 자신의 삶을 두려워한다. “나는 일어나서 사지를 주무르고 때려서 깨우며 점점 고조되는 히스테리를 잠재우려 했다. 그가 없으면 날마다 이럴 거야. 비명이라도 터질 것처럼 가슴이 미칠 듯이 조여왔다. 그가 없으면 날마다.”(219쪽) 하지만 이를 읽는 독자는 아킬레우스보다도 먼저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밀러는 파트로클로스라는 인물에게 강렬한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파트로클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온화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온화함은 강함만이 숭상받고 최고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 시대 그리스에서 영웅의 면모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우수성의 문화 속에서, 파트로클로스는 단지 아킬레우스가 최고인 것으로 충분했다. 자신은 그의 동무가 되고 그의 그림자가 되는 것으로 족했다. 바로 이 성격이 『일리아스』에서 비중이 약했던 그를 독특한 인물로 만들어주는 지점이다. 작가는 말한다. “저는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이 놀라운 인간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다고.” 밀러는 자신의 바람을 넘어 파트로클로스뿐 아니라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케이론, 테티스 등에게도 새로운 목소리를 주는 데 성공했고, 그들을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일리아스』에 바치는 어느 학자의 존경의 표현이자
아주 걸출한 신예 작가의 놀라우리만치 독창적인 작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매들린 밀러는 브라운대학교에서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로 학사학위를 받기 전 마지막 해에, 셰익스피어가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연극인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의 제작을 함께 진행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녀는 제작한 무대 장면을 보면서 자신이 “고전 텍스트를 읽는 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말해보기를 원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연극이 끝나자마자 거의 무아지경이 되어 파트로클로스의 이야기를 써나갔다고 한다.
집필을 시작하던 당시에도 이미 『일리아스』나 트로이아 전쟁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작가는 그때부터 고대 원전에서 파트로클로스가 등장하는 모든 구절을 찾아 헤맸다. 고전학도로서 가능한 한 신화 원전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고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모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다. 물론 파트로클로스를 쫓겨난 ‘왕자’로 상정하거나, 그가 아킬레우스와 함께 케이론에게 수업을 듣거나 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지점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원전들을 크게 왜곡하지 않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동성애 관계라는 소설의 기본 설정도 이미 여러 고전학자들이 오랫동안 시사해온 지점이다. 덕분에 이 책은 신화가 처음인 독자들에게는 훌륭한 신화 입문서로 기능하면서, 신화 지식을 제법 갖춘 독자들에게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 이는 재미나 편의를 위해 여러 신화적 사실을 왜곡한 2004년 영화 [트로이]와 크게 다른 부분이다.
이 책의 표지에 사용된 조각은 이탈리아 조각가 인노첸초 프라카롤리의 1842년경 작품 [화살에 맞은 아킬레우스]이다. 이 조각은 테티스가 아킬레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그를 스틱스 강에 담가 발꿈치 말고는 전부 불사의 몸이 되었다는 후세의 설정을 따랐기에, 화살이 그의 발꿈치에 꽂혀 있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천하무적이 아니라 그저 전투에 유난히 뛰어난 능력을 타고났을 뿐이었다. 밀러는 『일리아스』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 해석이 더 현실성 있게 느껴졌기에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오래된 고전을 따랐다고 말한다. 작가 앤 패칫이 이 소설을 두고 한 “『일리아스』에 바치는 어느 학자의 존경의 표현”이라는 평은 과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핏빛 전쟁터 속에서 빛나는 두 연인의 사랑과 비극
이 소설의 화자이자 첫번째 주인공인 파트로클로스는 『일리아스』에 등장하나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약한 인물이다. 그러나 비중과 별개로 『일리아스』 전체의 경과를 놓고 볼 때 파트로클로스의 역할은 극중에서 지대하다 할 수 있다. 영웅 아킬레우스가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하고 전투에서 물러난 뒤, 그리스군이 참혹한 인명 손실을 겪는 와중에도 아랑곳 않던 그를 다시 전장으로 불러들인 것은 바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분노였다. 매들린 밀러는 이 이야기와, 이 비중 없는 인물에게 사로잡혔다고 한다. “아킬레우스에게 이토록 소중했던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아킬레우스는 그를 잃고 왜 그렇게까지 무너졌을까?”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이 질문에 대한 그녀 나름의 답이다.
이야기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작되기 한참 전, 두 주인공이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는 바야흐로 영웅의 시대. 왕자로 태어났으나 ‘작고 가냘프고, 빠르지 않고, 튼튼하지 않은’ 파트로클로스는 어린 나이에 이미 아버지의 기대를 무너뜨린 한심한 아들이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한 소년을 실수로 죽이면서 열 살의 나이에 외국으로 쫓겨난다. 그리고 도착한 프티아에는 펠레우스 왕의 아들인 반신반인 아킬레우스가 있다.
허약하고 초라한 파트로클로스와 모든 것을 지닌 여신의 아들 아킬레우스.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소년은 끈끈한 친구가 되며,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를 향한 애정을 몰래 키워간다. 하나 이 감정은 곧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이자 여신인 테티스에 의해 좌절된다. 아들을 애지중지 사랑하며 나머지 모든 인간을 혐오하고, 또 그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든지 전부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테티스는, 애정을 갈구하는 파트로클로스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최악의 상대이다. 그리고 두 소년이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수업을 듣기 위해 펠리온 산으로 향했을 때, 테티스의 시야에 그곳이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킬레우스 역시 파트로클로스에게 그 못지않은 애정을 느끼고 있음이 밝혀진다. 두 소년의 열렬한 사랑이 비로소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연인의 눈앞에는 임박한 비극이 늘 도사리고 있다. 아킬레우스는 영광스럽게 단명하는 삶과 무명인 채로 장수하는 삶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영광의 유혹에 넘어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 공격에 참전하고, 파트로클로스도 그를 따라나선다. 여기에 작가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극적인 아이러니를 배가시킨다. 두 연인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에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걸, 거기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 사후에 찾아올 자신의 삶을 두려워한다. “나는 일어나서 사지를 주무르고 때려서 깨우며 점점 고조되는 히스테리를 잠재우려 했다. 그가 없으면 날마다 이럴 거야. 비명이라도 터질 것처럼 가슴이 미칠 듯이 조여왔다. 그가 없으면 날마다.”(219쪽) 하지만 이를 읽는 독자는 아킬레우스보다도 먼저 그가 죽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밀러는 파트로클로스라는 인물에게 강렬한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파트로클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온화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온화함은 강함만이 숭상받고 최고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 시대 그리스에서 영웅의 면모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우수성의 문화 속에서, 파트로클로스는 단지 아킬레우스가 최고인 것으로 충분했다. 자신은 그의 동무가 되고 그의 그림자가 되는 것으로 족했다. 바로 이 성격이 『일리아스』에서 비중이 약했던 그를 독특한 인물로 만들어주는 지점이다. 작가는 말한다. “저는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이 놀라운 인간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다고.” 밀러는 자신의 바람을 넘어 파트로클로스뿐 아니라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케이론, 테티스 등에게도 새로운 목소리를 주는 데 성공했고, 그들을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일리아스』에 바치는 어느 학자의 존경의 표현이자
아주 걸출한 신예 작가의 놀라우리만치 독창적인 작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매들린 밀러는 브라운대학교에서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로 학사학위를 받기 전 마지막 해에, 셰익스피어가 트로이아 전쟁을 다룬 연극인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의 제작을 함께 진행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녀는 제작한 무대 장면을 보면서 자신이 “고전 텍스트를 읽는 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말해보기를 원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연극이 끝나자마자 거의 무아지경이 되어 파트로클로스의 이야기를 써나갔다고 한다.
집필을 시작하던 당시에도 이미 『일리아스』나 트로이아 전쟁에 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작가는 그때부터 고대 원전에서 파트로클로스가 등장하는 모든 구절을 찾아 헤맸다. 고전학도로서 가능한 한 신화 원전의 내용에서 벗어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고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모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다. 물론 파트로클로스를 쫓겨난 ‘왕자’로 상정하거나, 그가 아킬레우스와 함께 케이론에게 수업을 듣거나 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지점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원전들을 크게 왜곡하지 않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동성애 관계라는 소설의 기본 설정도 이미 여러 고전학자들이 오랫동안 시사해온 지점이다. 덕분에 이 책은 신화가 처음인 독자들에게는 훌륭한 신화 입문서로 기능하면서, 신화 지식을 제법 갖춘 독자들에게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 이는 재미나 편의를 위해 여러 신화적 사실을 왜곡한 2004년 영화 [트로이]와 크게 다른 부분이다.
이 책의 표지에 사용된 조각은 이탈리아 조각가 인노첸초 프라카롤리의 1842년경 작품 [화살에 맞은 아킬레우스]이다. 이 조각은 테티스가 아킬레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그를 스틱스 강에 담가 발꿈치 말고는 전부 불사의 몸이 되었다는 후세의 설정을 따랐기에, 화살이 그의 발꿈치에 꽂혀 있다. 하지만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천하무적이 아니라 그저 전투에 유난히 뛰어난 능력을 타고났을 뿐이었다. 밀러는 『일리아스』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 해석이 더 현실성 있게 느껴졌기에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오래된 고전을 따랐다고 말한다. 작가 앤 패칫이 이 소설을 두고 한 “『일리아스』에 바치는 어느 학자의 존경의 표현”이라는 평은 과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추천평
트로이아 전쟁의 미친 듯이 로맨틱한 각색. _『타임』
액션이 난무하는 대중적인 줄거리와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의 조화가 어찌나 환상적인지 가끔 읽던 것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게 된다. _『인디펜던트』
근래에 호메로스의 작품을 각색한 소설 중 최고. _『월스트리트저널』
기존에 번역된 대다수의 호메로스 작품보다 밀러의 문장이 더욱 시적이다. _『가디언』
“『일리아스』에 바치는 어느 학자의 존경의 표현이자 아주 걸출한 신예 작가의 놀라우리만치 독창적인 작품.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 탄생했다. _앤 패칫(『경이의 땅』 작가)
매혹적인 작품. 한번 잡으면 내려놓을 수가 없다. 고전 애호가라면 잔혹하고 냉랭한 고대 여신을 제대로 구현한 그녀의 테티스에 매료될 것이다. _도나 타트(『황금방울새』 작가)
시대를 초월하는 표현과 역사적인 사실들이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
_헬렌 사이먼슨(『페티그루 소령의 마지막 사랑』 작가)
책장 넘기기 바쁜 작품… 흥미진진하고 생생하다. _찰스 팰리저(작가)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읊던 음유시인의 고전적인 기법을 현대에 재현한다. 주인공은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는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인데 어찌나 선명하게 재현이 되었는지, 그들과 함께 걷는 느낌이 들 정도다. _캐서린 코니베어(브린마대학교 고전학 교수)
호메로스는 개인적인 이야기에 인색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그들의 사랑을 세간에 공개했다. 멋진 작품이다. _재커리 메이슨(작가)
좋은 책이란,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입구이거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내게 둘 다를 안겨주었다.
_테일러 젠킨스 리드(작가)
이토록 오래된 서사시를 이토록 아름답고 새롭게 만들다니 진정 뛰어난 작가다.
_『USA 투데이』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물론 그 자체로 읽고 즐겨야 할 소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자를 호메로스와 그의 계승자들에게까지 되돌려 보낸다는 점에서 실로 고마운 작품이다.”
_『워싱턴 인디펜던트 리뷰 오브 북스』
살면서 어떤 책을 읽었을 때보다 격하게 울었다. _『버즈피드』
액션이 난무하는 대중적인 줄거리와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의 조화가 어찌나 환상적인지 가끔 읽던 것을 멈추고 빤히 쳐다보게 된다. _『인디펜던트』
근래에 호메로스의 작품을 각색한 소설 중 최고. _『월스트리트저널』
기존에 번역된 대다수의 호메로스 작품보다 밀러의 문장이 더욱 시적이다. _『가디언』
“『일리아스』에 바치는 어느 학자의 존경의 표현이자 아주 걸출한 신예 작가의 놀라우리만치 독창적인 작품.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 탄생했다. _앤 패칫(『경이의 땅』 작가)
매혹적인 작품. 한번 잡으면 내려놓을 수가 없다. 고전 애호가라면 잔혹하고 냉랭한 고대 여신을 제대로 구현한 그녀의 테티스에 매료될 것이다. _도나 타트(『황금방울새』 작가)
시대를 초월하는 표현과 역사적인 사실들이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
_헬렌 사이먼슨(『페티그루 소령의 마지막 사랑』 작가)
책장 넘기기 바쁜 작품… 흥미진진하고 생생하다. _찰스 팰리저(작가)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읊던 음유시인의 고전적인 기법을 현대에 재현한다. 주인공은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는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인데 어찌나 선명하게 재현이 되었는지, 그들과 함께 걷는 느낌이 들 정도다. _캐서린 코니베어(브린마대학교 고전학 교수)
호메로스는 개인적인 이야기에 인색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우정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그들의 사랑을 세간에 공개했다. 멋진 작품이다. _재커리 메이슨(작가)
좋은 책이란,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입구이거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내게 둘 다를 안겨주었다.
_테일러 젠킨스 리드(작가)
이토록 오래된 서사시를 이토록 아름답고 새롭게 만들다니 진정 뛰어난 작가다.
_『USA 투데이』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물론 그 자체로 읽고 즐겨야 할 소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독자를 호메로스와 그의 계승자들에게까지 되돌려 보낸다는 점에서 실로 고마운 작품이다.”
_『워싱턴 인디펜던트 리뷰 오브 북스』
살면서 어떤 책을 읽었을 때보다 격하게 울었다. _『버즈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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