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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재 서구와 남미 곳곳에서 파시즘과 극우가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파시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온갖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우익·극우 세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시즘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독자들이 적잖을 것이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1930~1933년 독일 정세에 관해 논평한 소책자와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즉 파시즘이 성장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터키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도 마치 “독일 현지에 살고 있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상황을 분석한다. 파시즘의 실체를 낱낱이, 그것도 역사유물론의 방법을 적용해 설명한다. 게다가 분석과 설명에 그치지 않고 노동계급의 행동 방침(전략·전술)까지 제시한다.
독자들은 파시즘이 그저 개인의 광기나 “독일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하층 중간계급 기반의 대중운동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파시즘이 일상에 만연해 있다거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같은 우익조차 죄다 파시즘이라는 부적절한 시각에 대해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귀중한” 마르크스주의 고전이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당시 독일의 역사가 낯선 독자들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지도자였던 크리스 하먼의 배경 설명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1930~1933년 독일 정세에 관해 논평한 소책자와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즉 파시즘이 성장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터키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도 마치 “독일 현지에 살고 있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상황을 분석한다. 파시즘의 실체를 낱낱이, 그것도 역사유물론의 방법을 적용해 설명한다. 게다가 분석과 설명에 그치지 않고 노동계급의 행동 방침(전략·전술)까지 제시한다.
독자들은 파시즘이 그저 개인의 광기나 “독일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하층 중간계급 기반의 대중운동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파시즘이 일상에 만연해 있다거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같은 우익조차 죄다 파시즘이라는 부적절한 시각에 대해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귀중한” 마르크스주의 고전이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당시 독일의 역사가 낯선 독자들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지도자였던 크리스 하먼의 배경 설명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목차
머리말 _ 스티브 라이트
1부 ─ 1930년
배경 _ 크리스 하먼
코민테른의 전술 전환과 독일 상황 _ 레온 트로츠키
2부 ─ 1931년
배경 _ 크리스 하먼
독일: 국제 정세의 열쇠 _ 레온 트로츠키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 _ 레온 트로츠키
3부 ─ 1932년
배경 _ 크리스 하먼
유일한 길 _ 레온 트로츠키
4부 ─ 1933년
배경 _ 크리스 하먼
국가사회주의란 무엇인가? _ 레온 트로츠키
후주
인물·용어 설명
1부 ─ 1930년
배경 _ 크리스 하먼
코민테른의 전술 전환과 독일 상황 _ 레온 트로츠키
2부 ─ 1931년
배경 _ 크리스 하먼
독일: 국제 정세의 열쇠 _ 레온 트로츠키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사활이 걸린 문제들 _ 레온 트로츠키
3부 ─ 1932년
배경 _ 크리스 하먼
유일한 길 _ 레온 트로츠키
4부 ─ 1933년
배경 _ 크리스 하먼
국가사회주의란 무엇인가? _ 레온 트로츠키
후주
인물·용어 설명
책 속으로
· 파시즘이란 반혁명적 절망의 정당이다(1930년 _ 레온 트로츠키)
국가사회주의[나치의 사상·운동]의 엄청난 성장은 두 요인의 표현이다. 하나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 때문에 프티부르주아 대중이 휘청거리게 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공인된 혁명적 지도자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혁명적 정당이 없다는 것이다. 공산당이 혁명적 희망의 정당이라면, 대중운동으로서 파시즘은 반혁명적 절망의 정당이다. 혁명적 희망이 모든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사로잡을 때,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는 프티부르주아지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이끌고 혁명의 길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정반대 모습을 보여 줬다. 반혁명적 절망이 프티부르주아 대중을 강하게 사로잡았고, 오히려 이들이 프롤레타리아의 많은 부분을 이끌고 간 것이다.
· 인간쓰레기 파시스트들은 노동계급을 파괴할 것이다(1931년 _ 레온 트로츠키)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하면 무엇보다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꽃은 뿌리째 뽑힐 것이고 그 조직들은 파괴될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자신의 힘과 미래에 대한 믿음도 끝장날 것이다. 독일의 사회적 모순이 [이탈리아보다] 훨씬 심각하고 첨예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저지를 끔찍한 짓과 비교하면 이탈리아 파시즘의 흉악한 소행조차 십중팔구 빛이 바랠 것이고 거의 인도주의적인 실험처럼 보일 것이다. … 한편, 파시스트들의 주된 강점은 그들의 머릿수다. 그렇다, 그들은 많은 표를 얻었다. 그러나 사회적 투쟁에서 득표수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파시즘의 주요 부대는 여전히 프티부르주아지와 신중간계급으로 이뤄져 있다. 도시의 소규모 수공업자와 상점 주인, 하급 관리, 종업원, 기술자, 지식인, 가난한 농민 등이다. 선거 통계라는 저울에서는 파시스트들의 1000표와 공산당원들의 1000표는 무게가 똑같다. 그러나 혁명적 투쟁의 저울에서는 한 대공장의 노동자 1000명이 하급 관리, 점원, 그들의 부인과 장모 등을 합친 1000명보다 100배나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파시스트들의 대다수는 인간쓰레기다.
· 노동계급 조직들의 공동전선[공동 행동]이 필요하다(1931년 _ 레온 트로츠키)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과정, 즉 프롤레타리아를 지도하는 혁명적 정당을 건설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모순된 과정이다. 계급 자체는 결코 동질적이지 않다. 계급의 다양한 부문들은 서로 다른 경로와 속도로 계급의식에 도달한다. 또, 부르주아지가 이 과정에 적극 개입한다.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들을 이간질하기 위해 노동계급 안에 부르주아 기구들을 만들거나 이미 존재하는 기구들을 활용한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는 그 역사적 여정의 대부분 동안 정치적으로 분열해 있다. (특정 시기에 매우 날카롭게 제기되는) 공동전선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의식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학년이 높아지면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계급투쟁을 통해서다. 투쟁하려면 프롤레타리아 대열이 단결해야 한다. 이 점은 파시즘을 물리치는 일 같은 ‘국가적’ 정치투쟁뿐 아니라, 한 공장의 담벼락 안에서 벌어지는 부분적 경제투쟁에서도 진실이다. 따라서 공동전선 전술은 우연적이고 인위적인 어떤 것, 즉 교활한 책략이 결코 아니다.
· 나치의 득표가 증가했지만 히틀러의 집권을 막을 수 있었다(1932년 _ 크리스 하먼)
1932년에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 800만 명이 실업자였다. 도시인구의 3분의 1이 실업급여를 받았다. 취업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1928년 이후 3분의 1이 감소했다. 독일 사회의 모든 부문이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나치의 득표는 너무 빨리 증가해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듯했다. … 그러나 히틀러는 결코 독일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브뤼닝은 늙은 반동적 육군 원수 힌덴부르크를 설득해서 대통령 선거에 재출마하게 했다. 힌덴부르크는 사민당과 자유노조가 지지하는 것을 죄다 반대하는 사람이었는데도 사민당과 자유노조는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보다 차악”이라며 지지했다. [1932년 3~4월 대통령 선거에서] 나치는 역대 최다 득표를 했지만(36.8퍼센트), 힌덴부르크의 53퍼센트에는 훨씬 못 미쳤다(텔만의 득표율은 10.2퍼센트였다).
1932년 7월 선거 몇 주 뒤에 쓴 글 “유일한 길”[이 책 3부에 수록]에서 트로츠키는 당시 독일 상황의 전반적 세력 관계를 분석한다. 한편으로 그는 노동계급이 단결해서 행동하면 여전히 히틀러의 집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민당의 착각(‘차악’이 최악을 막아 줄 것이라는 생각)과 공산당의 착각(사민당의 득표가 감소하고 공산당의 득표가 증가한 선거 결과를 볼 때 공산당이 어쨌든 히틀러를 저지할 것이라거나 머지않아 히틀러는 몰락하고 공산당이 득세할 것이라는 생각)이 모두 틀렸다고 지적한다.
· 히틀러의 집권에서 독일 사민당과 공산당이 한 구실(머리말 _ 스티브 라이트)
힐퍼딩이 히틀러의 몰락 운운한 바로 그달 말에[1933년 1월 30일] 히틀러는 총리가 됐다. 그것은 오직 노동계급 조직들, 특히 그중에서도 정치적으로 우세했던 사민당의 수동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사민당을 지지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형편없이 나약한 지도자들을 끝까지 믿었는가? … 이제 코민테른이 채택한 새로운 입장에 따라, 파시즘과 사회민주주의는 서로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스탈린의 해석인즉 “사회민주주의는 사실상 파시즘의 온건파다”라는 것이었다. 이 ‘분석’을 반복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공산당 지도자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코민테른 전체가, 가장 중요하게는 독일 공산당이 그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이른바 ‘사회파시즘’론은, 기존의 노동자 조직들과 그들이 쟁취한 성과가 반동 세력들에게 위협받을 때 [혁명가들이] 개혁주의자들과 함께 노동자 조직과 투쟁 성과를 방어했던 경험을 모두 망각한 것이었다. … ‘사회파시즘’론은 단지 기억상실증만은 아니었다.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이론인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민주주의와 파시즘의 매우 다른 사회적·정치적 내용을 계급의 측면에서 분석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사회파시즘’론은 단지 전술적 오류가 아니었다.
국가사회주의[나치의 사상·운동]의 엄청난 성장은 두 요인의 표현이다. 하나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 때문에 프티부르주아 대중이 휘청거리게 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공인된 혁명적 지도자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혁명적 정당이 없다는 것이다. 공산당이 혁명적 희망의 정당이라면, 대중운동으로서 파시즘은 반혁명적 절망의 정당이다. 혁명적 희망이 모든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사로잡을 때,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는 프티부르주아지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이끌고 혁명의 길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정반대 모습을 보여 줬다. 반혁명적 절망이 프티부르주아 대중을 강하게 사로잡았고, 오히려 이들이 프롤레타리아의 많은 부분을 이끌고 간 것이다.
· 인간쓰레기 파시스트들은 노동계급을 파괴할 것이다(1931년 _ 레온 트로츠키)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집권하면 무엇보다 독일 프롤레타리아의 꽃은 뿌리째 뽑힐 것이고 그 조직들은 파괴될 것이고 프롤레타리아 자신의 힘과 미래에 대한 믿음도 끝장날 것이다. 독일의 사회적 모순이 [이탈리아보다] 훨씬 심각하고 첨예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저지를 끔찍한 짓과 비교하면 이탈리아 파시즘의 흉악한 소행조차 십중팔구 빛이 바랠 것이고 거의 인도주의적인 실험처럼 보일 것이다. … 한편, 파시스트들의 주된 강점은 그들의 머릿수다. 그렇다, 그들은 많은 표를 얻었다. 그러나 사회적 투쟁에서 득표수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파시즘의 주요 부대는 여전히 프티부르주아지와 신중간계급으로 이뤄져 있다. 도시의 소규모 수공업자와 상점 주인, 하급 관리, 종업원, 기술자, 지식인, 가난한 농민 등이다. 선거 통계라는 저울에서는 파시스트들의 1000표와 공산당원들의 1000표는 무게가 똑같다. 그러나 혁명적 투쟁의 저울에서는 한 대공장의 노동자 1000명이 하급 관리, 점원, 그들의 부인과 장모 등을 합친 1000명보다 100배나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파시스트들의 대다수는 인간쓰레기다.
· 노동계급 조직들의 공동전선[공동 행동]이 필요하다(1931년 _ 레온 트로츠키)
노동계급이 계급의식을 획득하는 과정, 즉 프롤레타리아를 지도하는 혁명적 정당을 건설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모순된 과정이다. 계급 자체는 결코 동질적이지 않다. 계급의 다양한 부문들은 서로 다른 경로와 속도로 계급의식에 도달한다. 또, 부르주아지가 이 과정에 적극 개입한다. 부르주아지는 노동자들을 이간질하기 위해 노동계급 안에 부르주아 기구들을 만들거나 이미 존재하는 기구들을 활용한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는 그 역사적 여정의 대부분 동안 정치적으로 분열해 있다. (특정 시기에 매우 날카롭게 제기되는) 공동전선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의식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학년이 높아지면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계급투쟁을 통해서다. 투쟁하려면 프롤레타리아 대열이 단결해야 한다. 이 점은 파시즘을 물리치는 일 같은 ‘국가적’ 정치투쟁뿐 아니라, 한 공장의 담벼락 안에서 벌어지는 부분적 경제투쟁에서도 진실이다. 따라서 공동전선 전술은 우연적이고 인위적인 어떤 것, 즉 교활한 책략이 결코 아니다.
· 나치의 득표가 증가했지만 히틀러의 집권을 막을 수 있었다(1932년 _ 크리스 하먼)
1932년에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 800만 명이 실업자였다. 도시인구의 3분의 1이 실업급여를 받았다. 취업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1928년 이후 3분의 1이 감소했다. 독일 사회의 모든 부문이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나치의 득표는 너무 빨리 증가해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듯했다. … 그러나 히틀러는 결코 독일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브뤼닝은 늙은 반동적 육군 원수 힌덴부르크를 설득해서 대통령 선거에 재출마하게 했다. 힌덴부르크는 사민당과 자유노조가 지지하는 것을 죄다 반대하는 사람이었는데도 사민당과 자유노조는 힌덴부르크가 “히틀러보다 차악”이라며 지지했다. [1932년 3~4월 대통령 선거에서] 나치는 역대 최다 득표를 했지만(36.8퍼센트), 힌덴부르크의 53퍼센트에는 훨씬 못 미쳤다(텔만의 득표율은 10.2퍼센트였다).
1932년 7월 선거 몇 주 뒤에 쓴 글 “유일한 길”[이 책 3부에 수록]에서 트로츠키는 당시 독일 상황의 전반적 세력 관계를 분석한다. 한편으로 그는 노동계급이 단결해서 행동하면 여전히 히틀러의 집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민당의 착각(‘차악’이 최악을 막아 줄 것이라는 생각)과 공산당의 착각(사민당의 득표가 감소하고 공산당의 득표가 증가한 선거 결과를 볼 때 공산당이 어쨌든 히틀러를 저지할 것이라거나 머지않아 히틀러는 몰락하고 공산당이 득세할 것이라는 생각)이 모두 틀렸다고 지적한다.
· 히틀러의 집권에서 독일 사민당과 공산당이 한 구실(머리말 _ 스티브 라이트)
힐퍼딩이 히틀러의 몰락 운운한 바로 그달 말에[1933년 1월 30일] 히틀러는 총리가 됐다. 그것은 오직 노동계급 조직들, 특히 그중에서도 정치적으로 우세했던 사민당의 수동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사민당을 지지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형편없이 나약한 지도자들을 끝까지 믿었는가? … 이제 코민테른이 채택한 새로운 입장에 따라, 파시즘과 사회민주주의는 서로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스탈린의 해석인즉 “사회민주주의는 사실상 파시즘의 온건파다”라는 것이었다. 이 ‘분석’을 반복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공산당 지도자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코민테른 전체가, 가장 중요하게는 독일 공산당이 그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이른바 ‘사회파시즘’론은, 기존의 노동자 조직들과 그들이 쟁취한 성과가 반동 세력들에게 위협받을 때 [혁명가들이] 개혁주의자들과 함께 노동자 조직과 투쟁 성과를 방어했던 경험을 모두 망각한 것이었다. … ‘사회파시즘’론은 단지 기억상실증만은 아니었다.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이론인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민주주의와 파시즘의 매우 다른 사회적·정치적 내용을 계급의 측면에서 분석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사회파시즘’론은 단지 전술적 오류가 아니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현재 서구와 남미 곳곳에서 파시즘과 극우가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파시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온갖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우익·극우 세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시즘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독자들이 적잖을 것이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1930~1933년 독일 정세에 관해 논평한 소책자와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즉 파시즘이 성장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터키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도 마치 “독일 현지에 살고 있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상황을 분석한다. 트로츠키 전기를 쓴 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트로츠키 1927~1940》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로츠키는 독일 상황을 다룬 가장 뛰어난 기사·논문·책을 썼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지은이가 사건 현장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나날의 우여곡절을 추적해서 글을 썼다는 점이다. 1930~1933년에 트로츠키가 쓴 저작들을 읽어 보면, 얼마나 구체적인지 마치 지은이가 독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터키의 프린키포섬이 아니라 독일 현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저작들은 역사유물론의 방법이 적용된 걸작일 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변화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고, 독일의 다양한 사회집단(프롤레타리아·프티부르주아지·룸펜프롤레타리아)의 대중심리나 히틀러 같은 개인의 구실 등을 묘사하는 데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저작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가장 뛰어난 역사 저작 -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나 《프랑스의 계급투쟁》 - 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트로츠키는 상황을 분석할 뿐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행동 방침을 분명히 제시하기도 한다. 전략과 전술의 측면에서 그 저작들은 극히 귀중한 혁명적 지침서로, 코민테른 첫 4년 동안 레닌과 트로츠키가 만들어 낸 최상의 작품들과 견줄 만하다.”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파시즘이 그저 개인의 광기나 “독일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하층 중간계급 기반의 대중운동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파시즘이 일상에 만연해 있다거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같은 우익조차 죄다 파시즘이라는 부적절한 시각에 대해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귀중한” 마르크스주의 고전이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당시 독일의 역사가 낯선 독자들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지도자였던 크리스 하먼의 배경 설명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1930~1933년 독일 정세에 관해 논평한 소책자와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즉 파시즘이 성장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터키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도 마치 “독일 현지에 살고 있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상황을 분석한다. 트로츠키 전기를 쓴 영국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트로츠키 1927~1940》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로츠키는 독일 상황을 다룬 가장 뛰어난 기사·논문·책을 썼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지은이가 사건 현장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나날의 우여곡절을 추적해서 글을 썼다는 점이다. 1930~1933년에 트로츠키가 쓴 저작들을 읽어 보면, 얼마나 구체적인지 마치 지은이가 독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터키의 프린키포섬이 아니라 독일 현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저작들은 역사유물론의 방법이 적용된 걸작일 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변화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고, 독일의 다양한 사회집단(프롤레타리아·프티부르주아지·룸펜프롤레타리아)의 대중심리나 히틀러 같은 개인의 구실 등을 묘사하는 데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저작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가장 뛰어난 역사 저작 -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나 《프랑스의 계급투쟁》 - 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트로츠키는 상황을 분석할 뿐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행동 방침을 분명히 제시하기도 한다. 전략과 전술의 측면에서 그 저작들은 극히 귀중한 혁명적 지침서로, 코민테른 첫 4년 동안 레닌과 트로츠키가 만들어 낸 최상의 작품들과 견줄 만하다.”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파시즘이 그저 개인의 광기나 “독일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하층 중간계급 기반의 대중운동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파시즘이 일상에 만연해 있다거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같은 우익조차 죄다 파시즘이라는 부적절한 시각에 대해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귀중한” 마르크스주의 고전이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당시 독일의 역사가 낯선 독자들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지도자였던 크리스 하먼의 배경 설명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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