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4.일본사회사

주저않는 일본, 부활하는 일본 (2022)

동방박사님 2022. 8. 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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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고정되고 단면적인 일본이 아니라 소장학자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대의 흐름과 함께 다양성과 다이내믹스가 존재하는 현재의 일본을 재조명한 책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에 대해 일반 독자들도 현재 일본의 자국 및 국제적인 상황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집필된 책이다.

목차

머리말 일본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자 | 진창수

제Ⅰ부 안에서 바라본 일본

가난한 나라, 부자 국민의 딜레마 | 이창민
한·일 역전에 대한 단상
성숙한 채권국 일본
밸런스시트 불황
밖으로, 밖으로!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
가난한 나라가 돼버린 일본
부자 국민의 속내

일본은 군사대국으로 나아가는가? | 이기태
일본은 군사대국인가?
일본의 국가 노선과 보통국가화 진행
평화헌법 개정 문제
방위비 예산 증가
미·일동맹의 역할 변화
일본 국내 여론 변화
일본의 군사대국화 진행의 한계

일본의 원자력 회귀, 무엇 때문일까? | 임은정
수수께끼의 나라
세 개의 E
겐시료쿠무라
핵연료주기 트릴레마
일본만 이런 걸까?

일본의 역사 인식은 우경화하고 있는가? | 윤석정
일본 우경화 담론과 아베 신조
역사 수정주의: 아베의 원점
아시아 화해 사관
국제 질서 사관
무라야마 담화의 탄생과 한·일의 역사 화해
무라야마 담화와 한·일 역사 화해에 대한 아베의 저항
전후 70년 아베 담화의 탄생: 한국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역사 수정주의자 아베와 국제 질서 사관 간의 결탁

섬나라 일본의 국경은 어디인가? | 석주희
섬 밖의 섬, 국경낙도
‘섬나라론’ 일본: 폐쇄성과 고립성
국경낙도 정책과 지자체의 대응
소외된 섬에서 ‘관리하는 영토’로

제Ⅱ부 밖에서 바라본 일본

바이든 행정부 시기 한·미·일 3자 협력: 경과와 전망 | 이수훈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전략 기조
한·미·일 3자 협력 경과
한·미·일 3자 협력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메시지 변화
미국의 한·미·일 3자 협력 추진과 한국의 정책 방향

힘의 변화에 따른 중국의 대일본관 변화 | 이창주
중국의 대일본관을 움직이는 원리
중국과 일본의 지정학적 관계
전후 특수 관계기(1972~95): 가르침 구한 중국, 손을 내민 일본
탈전후적 보통관계기(1996~2010): 굴기하는 중국, 견제하는 일본
갈등적 세력전이기(2010~현재): 소리 내는 중국, 딜레마에 빠진 일본
중국이 바라보는 일본관

유럽의 전략적인 규범 파트너, 일본 | 황인정
유럽이 바라보는 일본, 어떻게 변해 왔을까?
냉전 시기의 일본-유럽 관계: 안보 이슈 부재 속 무역 갈등의 시대
1990~2000년대: 전략적 관계의 시작
2010년대~현재: 더욱 긴밀한 협력 동반자로
동반자 관계로의 전환: SPA
경제적 관계의 발전: EPA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럽-일본 관계

멈춰 있는 북·일의 시계, ‘조건 없는 대화’에 응하지 않는 북한 | 박형준
‘과거사 청산’ VS ‘납치자 문제’
북한의 대일(對日) 인식
‘납치자 문제’의 태동(胎動)과 전개 과정
‘납치자 문제’ 해결 노력: 북·일 정상회담과 스톡홀름 합의
수령의 ‘무오류성’과 납치 문제의 ‘완전한 해결’ 주장
북·일 관계의 특징: 관계 개선 요인의 부재
북·일 관계 전망과 과제
 

저자 소개

저 : 진창수
 
일본 도쿄대학교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일본연구센터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의 경제와 정치이며, 저서로는 『일본의 정치경제: 연속과 단절』, 『한국 일본학의 현황과 과제』, 『일본 정치경제의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 『1990년대 구조불황과 일본 정치경제시스템의 변화』, 『일본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붕괴: 대내외정책 분석을 중심으로(공저)』...

저 : 이창민 (Lee, Chang-Min,李昌玟)

 
일본 도쿄대학교 경제학 박사. 도쿄공업대학 조교수와 후쿠오카현립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일본지역학부 및 국제지역대학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현대일본경제론’, ‘근현대일본경제사’, ‘한일경제관계의 이해’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 경제와 경영,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경제사, 한일경제관계 등이다. 저서로는 『아베노믹스와 저온호황』, 『대전환 시...

저 : 이기태 (Lee, Kitae,李奇泰)

 
일본 게이오대학교 정치학박사. 현재 통일연구원 평화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의 외교안보정책, 한일관계, 북일관계 등이며, 저서로는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공저)』, 『‘일본회의’와 아베 정권의 우경화(공저)』, 『아베 시대 일본의 국가전략(공저)』, 『전후 일본 패러다임의 연속과 단절(공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일본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자 진창수(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1. 문제 제기
이 연구는 한국의 소장학자들이 일본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됐다. 일본 연구는 시대적인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부정적인 특수성을 강조하는 연구방법에서 보편성을 강조하는 연구 방법으로 점차 변화돼 왔다. 일본 연구가 그 시대적인 흐름에 부합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 것은 당연하다.

일본 연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전후부터 1980년까지의 일본 연구는 인문학적인 지식에 의거한 특수론적이고 인상론적인 분석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일본에 대한 관심과 탐구는 대학 이외의 저널리즘이나 재야 학자, 작가 등에 의해서도 수행돼 왔지만, 한국의 역사적인 특성으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 비판이나 순수한 일본어, 일본문학을 제외하고는 일본 자체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는 기피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 청산 문제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에 일본 자체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현실적인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등장함에 따라 학계와 매스컴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인식이 변화했다. 즉, 민간의 활발한 교류, 기업 간의 협력, 그리고 일본의 경제 성장에 따른 한국 내 일본 수요의 증가 등으로 실무적인 관심에서 일본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에는 한국 특유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일본의 경제 성장 성공 사례를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처럼 1980년대에는 일본에 대한 상호 모순된 인식이 표출되면서 일본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다. 1980년대 일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일본 연구가 양적인 성장
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 일반적인 일본에 대한 논의는 저널리즘에서 나타난 ‘일본은 있다’, ‘일본의 없다’의 논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1980년대는 이전의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탈피해 일본을 긍정적으로 이해할 만큼 인식의 폭이 넓어진 시기였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남아 있었다.

1990년대에는 일본에서 유학을 한 연구자들이 일본 학계에 대거 유입됨으로써 일본 연구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시기였다. 1990년대는 이전보다 다양한 학문의 조류가 형성돼 일본 연구가 본격적으로 전문화 단계로 들어가는 시기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한국의 일본 연구는 이전의 거대 담론을 중심으로 한 특수론적인 일본 연구에서 벗어나 다양화되고 전문화된 영역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 학계에서도 일본이나 세계에서 인정받는 논문이나 연구 성과물이 나타나면서 한국의 일본연구는 초창기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다. 이처럼 한국의 일본 연구는 취미와 배척의 단계에서 이해의 단계를 거쳐 전문화의 단계로 발전했다.

그렇다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일본 연구자의 연령층이 50대와 60대가 60%를 차지할 정도로 학계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자들의 분포 또한 어문학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불균등한 발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일본 연구가 다양성과 전문화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은 한·일 관계의 갈등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여전히 한국 여론의 일본 비판 영향이 강해 안이하게 일본을 비판하는 상황이 일상화돼 있다. 그리고 일본의 관심 또한 줄어들면서 일본 연구에서도 새로운 문제 제기와 방법론을 통한 활발한 논의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실증주의적인 연구 결과를 축적해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한국 일본 학계가 지향해야 할 점이다. 전후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학자이자 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일본에 대한 초현실주의 분석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천재의 우연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 사회과학 연구가 축적된 결과였다. 또한 일본의 사회과학에서 1980년대 이후 일본형 다원주의론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단지 미국의 이론을 수입한 결과라고 치부할 수 는 없다. 일본형 다원주의자들이 행한 실증적인 연구의 기반은 일본 내에 광범위하게 축적돼 온 정치사의 전통과 역사학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실증주의적인 태도에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양면성이 존재한다. 1980년대의 일본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사례 축적에 매몰된 나머지 이론 개발이나 전체적인 정치상을 그려내지 못한 한계는 동전의 어두운 면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경험적인 사례의 축적이 없다면 이론의 개발도 어렵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하나는 한국에서의 일본 연구는 개인의 창조성과 집단적인 노력이 합치되는 부분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일본 연구가 자신만의 폐쇄적인 공간에 머물지 않고 다른 학문과 경쟁하고 공존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일본 연구는 일본 특유의 논리와 방법에 매몰된 채 일본적인 학문의 이론이나 논리로 발전시키지를 못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유학한 연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특수성의 분석에 치우친 분석틀을 지양하면서 일본을 보편성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집단적인 노력이야말로 일본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머리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책의 구성

이 책은 이러한 문제 의식하에서 소장학자들이 1년간의 연구회를 통해 만든 성과물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한국 학계의 일본 연구를 재평가할 수 있는 작업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필자들은 일본 연구자가 생각하는 현실 인식과 문제 의식을 공유하면서 다른 각도에서 일본을 재조명하고자 노력했다. 일본 연구에서 객관성을 가지고자 보편과 특수 그리고 부정과 긍정이라는 다차원의 측면에서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고자 노력했다. 제Ⅰ부에서는 주로 일본 연구자들이 일본 내의 정치, 경제, 안보, 역사 인식에 대해 논의했고, 제Ⅱ부에서는 다른 전공자들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일본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이창민 교수는 ‘부자 나라, 가난한 국민의 딜레마’에서 일본이 최근 20년 동안 ‘가난한 나라, 부자 국민’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이전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세계 3위의 GDP를 자랑하는 일본이지만, 정작 일본 정부는 GDP의 256%가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그야말로 세계 제일의 빚쟁이 정부가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은 엄청난 규모의 금융자산을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은 매년 엄청난 이자와 배당소득을 통해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고 있다. 일본은 명실공히 ‘무역대국’이 아닌 ‘투자대국’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30년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해외 금융자산의 주인은 국민(가계)이다.

일본 가계의 순자산은 1,630조 엔이 넘어 정부의 총부채 1,412조 엔을 훌쩍 넘기는 부(富)를 가지고 있다. 나라는 가난할지라도 국민은 부자인 나라가 지금의 일본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부자 국민들의 실상은 매우 비관적이다. 가계 금융자산의 보유 실태를 보면, 60대 이상 고령층이 전체 금융자산의 70%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일본이 이러한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일본 고령층의 저축이 정부의 국채 구입으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조금 더 생산적인 분야, 즉 투자나 고용 증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이기태 박사는 ‘일본은 군사대국으로 나아가는가?’라는 매우 도전적인 주제에 답하고자 했다. 한국 사람들은 최근 들어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사대국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일본이 현재 군사대국이라는 점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향을 알아보기 위해 일본의 안보 상황을 염두에 둔 네 가지 기준을 통한 군사대국 개념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시도했다. 네 가지 기준은 바로 ‘평화헌법 개정 문제’, ‘방위비(국방비) 예산 증가’, ‘미·일동맹의 역할 변화’, ‘일본 국내 여론의 변화’다. 필자가 제시한 일본의 안보 관련 네 가지 변화를 통해 결국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일본 보수 우익 세력의 평화헌법 개정 노력, 방위비 예산의 지속적 증가, 미·일동맹에서 일본의 적극적 역할 변화가 진행됐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한계 요인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일본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임은정 교수는 ‘일본의 원자력 회귀, 무엇 때문일까?’에서 일본의 원자력 회귀의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대형 사고를 겪고도 다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의 원자력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는 원자력 에너지를 통해 이익을 공유하는 ‘겐시료쿠무라’라는 이익집단이 정책결정 과정에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일본의 원자력 회귀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한다. 결국 일본의 에너지 정책이 원자력으로부터 쉽게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경로의존적인 배경과 구조적인 한계를 설명한 것이다. 또한 필자는 일본의 원자력 정책이 핵연료주기 트릴레마에 함몰돼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과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 한국이 일본의 과오를 답습하게 되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윤석정 박사는 ‘일본의 역사 인식은 우경화하고 있는가?’에서 일본 내의 다양한 역사 인식을 소개하고자 했다. 한국에서는 흔히들 ‘우경화하는 일본’,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그는 일본 내에서도 ‘우경화를 견제하는 일본’, ‘역사를 반성하는 일본’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우선 일본 내의 역사 인식으로는 역사 수정주의, 아시아 화해 사관, 국제 질서 사관이라는 다양한 인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전후 50주년에 표명된 무라야마 담화는 과거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과 사죄 의식을 갖는 아시아 화해 사관의 표명이었다.

무라야마 담화는 한·일 역사 화해의 토대가 됐다. 1996년부터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나타난 아시아 화해 사관에 대한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저항이 시작됐고, 그 선봉에는 아베 총리가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역사 수정주의에서 1930년대 이후의 일본 외교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국제 질서 사관으로 변화됐다. 분명 아베 담화를 통해 국제 질서 사관이 일본 정부 담화의 역사관을 차지하는 과정은 역사 수정주의의 패배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일본의 정부 담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역사 수정주의와 국제 질서 사관의 결합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사관의 타협이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의 가해 책임을 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주희 박사는 ‘섬나라 일본의 국경은 어디인가?’라고 질문하면서 일본인의 일본 국경에 대한 인식은 거의 희박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국경은 물리적인 거리는 접어 두더라도 역사·사회적으로 긴 맥락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해양법이 등장하면서 국제적인 변수까지 더해져 국경의 개념은 더욱 복잡해졌다. 흔히 일본은 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 네 개의 섬으로 이뤄진 국가로 설명하지만, ‘국경낙도’라는 다양한 지역도 존재한다. 이러한 지역은 일본 정부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좀처럼 국경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일본의 국민적 관심을 지속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제도와 정책의 마련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것이 국경낙도 법과 ‘국경에 가자’는 캠페인이다. 이행과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 같은 움직임은 일본 정부의 국경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국경을 둘러싼 일반 국민과 정부의 극명한 대비는 해양국가인 일본에서 국경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와 맞물려 있다.

이수훈 박사는 ‘바이든 행정부 시기 한·미·일 3자 협력: 경과와 전망’에서 바이 든 행정부 시기의 한·미·일 협력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한국·일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에서 거의 잊혀져 가고 있었던 한·미·일 협력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쿼드(Quad)와 같은 동맹 다자 협력과 한·미·일 3자 협력과 같은 동맹 네트워크를 강화해 역내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재건하고자 한다. 이러한 미국 구상에 대해 일본은 쿼드 협력을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명확한 인도-태평양 전략이 없다. 한·미정상회담에서도 강조됐듯이 한·미 동맹이 세계적이고 포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역적 시각과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이 국익과 안보의 극대화(maximization of national interest and security)를 위해서는 한·미·일 협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따라서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발생하는 국가적 손익을 구체적으로 추정해 봐야 하며,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창주 박사는 ‘힘의 변화에 따른 중국의 대일본관 변화’에서 중국이 일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역사 문제, 영토 분쟁 그리고 글로벌 구조에 따른 부침의 연속이다. 필자는 ‘해양을 꿈꾸는 대륙강국, 중국’, ‘대륙을 꿈꾸는 해양대국, 일본’이라는 인식의 틀을 중심으로 중·일 양국의 수교부터 현재까지 중·일 관계의 시기별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먼저, 전후 특수 관계기(1972~95)는 중국이 일본에 가르침을 구하던 상황에서 도광양회(韜光養晦)하던 중국의 상황을 정리했다.

둘째, 탈전후적 보통관계기(1996~2010)에는 중국이 가파르게 경제 성장하던 상황에서 일본을 견제하기 시작한 시점을 정리했다. 셋째, 갈등적 세력전이기(2010~현재)에는 중국이 일본의 GDP를 추월하고 동아시아 내 영향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민족주의 성향이 강화됐고, 이에 일본은 미·일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중국 시장 진출 및 진출 루트 확대라는 안보와 경제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내용을 정리했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일본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중국은 ‘죽(竹)의 장막’에서 벗어난 시기에는 일본이 필요했다. 따라서 중국은 역사 문제, 영토 분쟁 등에 목소리를 낮추고 일본으로부터 엔차관을 받으며 경제 발전의 동력을 마련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력이 일본의 수준을 추월하고 동아시아 내 영향력을 확장하면서부터 그동안 도광양회해 왔던 역사 이슈, 영토 분쟁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황인정 박사는 ‘유럽의 전략적인 규범 파트너, 일본’에서 유럽 국가들이 보는 일본은 어떤 나라인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유럽과 일본의 관계는 무역과 투자로 연결된 경제적인 관계가 주를 이루지만 민주주의, 인권, 환경, 개발 등의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전략적인 협력 관계 역시 발전해 왔다. 1970~80년대까지 유럽 주요국들에 일본은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자 무역과 투자를 위한 경제 파트너로만 인식됐다. 이 시기에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 외의 국가들과 크게 정치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성이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냉전의 종식과 함께 일본은 강력해진 유럽연합(EU)을 정치적 인 협력의 대상이자 국제 규범과 지역 협력의 전파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유럽과 일본의 정치적 관계를 전략적 파트너로 규정하는 ‘전략적 파트너십 협정(Strategic Partnership Agreement: SPA)’이 2011년에 맺어졌다. 이후 2016년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주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여러 큰 위기 상황을 잇따라 겪은 유럽연합은 ‘경제적 파트너십 협정(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EPA)’을 통해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 관계 확대도 꾀했다. 전략적 파트너십과 경제적 파트너십은 전후 유럽·일본 간 정치경제 관계의 점진적 발전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형준 교수는 ‘멈춰 있는 북·일의 시계, 조건 없는 대화에 응하지 않는 북한’에서 북한과 일본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그리고자 했다. 냉전과 탈냉전을 거치는 동안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 기억이 양국 관계의 한가운데 위치하며 매우 제한된 관계 설정의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북한의 대일 인식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국가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북한은 반제국주의 혁명 노선에 따라, 일본을 제국주의 국가, 군국주의 국가, 철천지원수이자 타도의 대상 등으로 규정한다. 그 배경에는 일제의 식민 지배로 핍박받았던 인민대중의 고통과 시련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에 따라 일본의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한편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을 경계한다. 따라서 북·일 관계 개선은 북한의 대일 적대 이미지와 상충되면서 우여곡절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고정되고 단면적인 일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함께 다양성과 다이내믹스가 존재하는 일본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 책은 이창민 교수의 적극적인 노력과 저자들의 열의에 힘입어 만들어진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집필해 준 이창민 교수와 소장학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 책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 준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와 윤성사 정재훈 대표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부디 이 책이 한국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지적인 오류를 바로잡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꼭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