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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계 정치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그리면서 직조해낸 19세기 이른 세계화 시대의 자화상!
19세기 후반, 세계 정치의 큰 흐름이었던 아나키즘의 프리즘을 통해 민족주의를 분석한 이 책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논의되었던 '민족주의' 문제를 19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아나키즘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파헤친 것이다. 필리핀의 대표적 민족주의자 호세 리살(Jose Rizal)과 스페인의 이사벨로 데 로스 레예스(Isabelo de los Reyes), 그리고 쿠바의 혁명과정을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적 사례를 통해 규명해 내고 있다.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이 아나키즘을 비롯한 유럽의 급진적 운동 및 쿠바를 비롯한 변두리에서 진행되던 저항적 민족주의의 흐름과 발맞추어 진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또한 민족주의 문제를 '아나키즘'이라는 프리즘으로 다시 비춰봄으로써, 이미 그 시대에 '세계화'의 맹아가 엿보인다는 이른바 '이른 세계화'(early globalization)라 부를 만한 것을 제시한다. 세계 곳곳을 살펴보며 19세기 후반의 세계가 왜 '이른 세계화'의 시대였는지를 설명한다.
19세기 후반, 세계 정치의 큰 흐름이었던 아나키즘의 프리즘을 통해 민족주의를 분석한 이 책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논의되었던 '민족주의' 문제를 19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아나키즘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파헤친 것이다. 필리핀의 대표적 민족주의자 호세 리살(Jose Rizal)과 스페인의 이사벨로 데 로스 레예스(Isabelo de los Reyes), 그리고 쿠바의 혁명과정을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적 사례를 통해 규명해 내고 있다.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이 아나키즘을 비롯한 유럽의 급진적 운동 및 쿠바를 비롯한 변두리에서 진행되던 저항적 민족주의의 흐름과 발맞추어 진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또한 민족주의 문제를 '아나키즘'이라는 프리즘으로 다시 비춰봄으로써, 이미 그 시대에 '세계화'의 맹아가 엿보인다는 이른바 '이른 세계화'(early globalization)라 부를 만한 것을 제시한다. 세계 곳곳을 살펴보며 19세기 후반의 세계가 왜 '이른 세계화'의 시대였는지를 설명한다.
목차
옮긴이 해제
옮긴이의 말
감사의 말
서론
제1장 프롤로그 : 수탉의 달걀
새로운 과학 / 현지 지식의 풍요로움 / 숲의 형제들 / 기묘한 아름다움들 /
비교를 통한 숙고
제2장 알라… 라-바
초국적 서재들 / 석류 속의 니트로글리세린 / 볼티모어로부터의 유산? / 동종요법의 학생 / 라-바(La-bas) / 플로베르와 예비 살인자 / 시도해 보지 않은 쾌락 /
프랑스어의 사치 / 복수를 쓰다 / 로돌프의 아이들 / 웃음과 자살 / 협동과 경쟁
제3장 비스마르크와 노벨의 세계적 그늘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 / 비스마르크와 제국주의의 새로운 지리 / 검은 깃발 / 카시케 스페인(CACIQUE SPAIN) / 교단: 빼앗긴 그리고 열중한 / 검은 날개 / 막역한 친구 / 최초의 귀향 / 이주자 민족주의 내부의 분열 / 사라진 서재? / 『엘 필리부스테리스모』 해석: 초대륙주의와 예시 / 전위 / 라바숄 춤곡 / 수수께끼의 미소
제4장 소설가의 발자취
체르니셰프스키의 질문 / 콘래드의 나라 / 라 리가 필리피나 / 두 번째 귀향 / 열대의 시베리아 / 마르티의 반란 / 쿠바로 가는 리살? / 새로운 국면들 / 다피탄을 떠나다 / 마지막 여정 / 마닐라의 웨일레르 체제 / 세 가지 숙고
제5장 몬주익
타리다의 성전 / 급진화된 파리 / 벨기에노동당과 『제르미날』 / 드레퓌스 사건 / 앤틸리스의 애국자: 의사 베탄세스 / 안졸릴로: 포자에서 산타아게다까지 / 소용돌이 속으로 / 젊은이여, 동쪽으로 가라 / 적은 누구인가 / 세계화된 신사 / 블루멘트리트 / 앤틸리스인들 / 일본인들 / 중국인들과의 인맥 / 파와: 전쟁의 국제화 / 마닐라로 가는 말라테스타 / 서쪽의 저녁놀: 이사벨로 데 로스 례예스 / 동쪽의 저녁놀: 마리아노 폰세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감사의 말
서론
제1장 프롤로그 : 수탉의 달걀
새로운 과학 / 현지 지식의 풍요로움 / 숲의 형제들 / 기묘한 아름다움들 /
비교를 통한 숙고
제2장 알라… 라-바
초국적 서재들 / 석류 속의 니트로글리세린 / 볼티모어로부터의 유산? / 동종요법의 학생 / 라-바(La-bas) / 플로베르와 예비 살인자 / 시도해 보지 않은 쾌락 /
프랑스어의 사치 / 복수를 쓰다 / 로돌프의 아이들 / 웃음과 자살 / 협동과 경쟁
제3장 비스마르크와 노벨의 세계적 그늘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 / 비스마르크와 제국주의의 새로운 지리 / 검은 깃발 / 카시케 스페인(CACIQUE SPAIN) / 교단: 빼앗긴 그리고 열중한 / 검은 날개 / 막역한 친구 / 최초의 귀향 / 이주자 민족주의 내부의 분열 / 사라진 서재? / 『엘 필리부스테리스모』 해석: 초대륙주의와 예시 / 전위 / 라바숄 춤곡 / 수수께끼의 미소
제4장 소설가의 발자취
체르니셰프스키의 질문 / 콘래드의 나라 / 라 리가 필리피나 / 두 번째 귀향 / 열대의 시베리아 / 마르티의 반란 / 쿠바로 가는 리살? / 새로운 국면들 / 다피탄을 떠나다 / 마지막 여정 / 마닐라의 웨일레르 체제 / 세 가지 숙고
제5장 몬주익
타리다의 성전 / 급진화된 파리 / 벨기에노동당과 『제르미날』 / 드레퓌스 사건 / 앤틸리스의 애국자: 의사 베탄세스 / 안졸릴로: 포자에서 산타아게다까지 / 소용돌이 속으로 / 젊은이여, 동쪽으로 가라 / 적은 누구인가 / 세계화된 신사 / 블루멘트리트 / 앤틸리스인들 / 일본인들 / 중국인들과의 인맥 / 파와: 전쟁의 국제화 / 마닐라로 가는 말라테스타 / 서쪽의 저녁놀: 이사벨로 데 로스 례예스 / 동쪽의 저녁놀: 마리아노 폰세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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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출판사 리뷰
9세기 후반, 세계 정치의 큰 흐름이었던 아나키즘의 프리즘을 통해 민족주의 분석
1983년 첫 출간 이래 수십 개 나라에서 번역ㆍ출간, 지금까지 약 25만 부가 판매되어 학술서로서는 드물게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 1936 ~ ). ‘민족’을 근대 이후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구성된 '상상의 공동체‘라고 규정한 앤더슨의 이 책은 ‘민족주의’ 연구에 관한 한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특히나 ‘민족주의’ 문제에 예민한 우리에게도 열띤 학문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펴낸 이 책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논의되었던 ‘민족주의’ 문제를 19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아나키즘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파헤친 것으로 필리핀의 대표적 민족주의자 호세 리살(Jose Rizal)과 이사벨로 데 로스 레예스(Isabelo de los Reyes)를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적 사례를 통해 규명해내고 있다.
10여 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 실력, 그리고 인도네시아ㆍ태국ㆍ필리핀 등 동남아시아학에 정통한 학문적 역량, 20세기 동남아시아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앤더슨 스스로도 인도네시아에서 강제 출국과 비자 취소를 당하는 등 그에게서 ‘동남아’는 삶과 학문이 한데 어우러진 격동의 장(場)임에 틀림없다. 거기서 그는 민족주의 문제를 ‘아나키즘’이라는 프리즘으로 다시 비춰봄으로써, 이미 그 시대에 ‘세계화’의 맹아가 엿보인다는이른바 ‘이른 세계화’(early globalization)라 부를 만한 것을 제시한다.
왜 19세기 후반 필리핀에 주목하는가 ― 세계체제의 주변부 가장자리에 있었으나 가장 세계적이었던 때
이 책은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이 아나키즘을 비롯한 유럽의 급진적 운동 및 쿠바를 비롯한 변두리에서 진행되던 저항적 민족주의의 흐름과 발맞추어 진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필리핀 민족주의의 거름이 된 호세 리살의 독창적인 소설들은 다년간 유럽에서 생활한 리살이 여러 언어로 읽어댄 유럽의 소설들에 그 형식 및 아이템을 어느 정도 빚지고 있으며, 두 번째 소설인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에 등장하는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는 배고픈 농민들의 폭동이 빈발했던 스페인의 사회상을 반영했음 직하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어느 한쪽(선진적 유럽)이 다른 한쪽(변두리인 필리핀)에 영향을 주는 관계가 아니다. 스페인 감옥에서 자행되는 잔인한 고문을 폭로하는 범대륙적인 운동은 아나키스트 저술가들 및 급진파 언론에 의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으며, 이는 필리핀과 쿠바에서 동시에 터진 독립전쟁과 더불어 스페인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당시 유럽에서는 러시아에서 건너온 암살이라는 움직임이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한창 시작되는 중이었는데, 스페인 총리였던 카노바스도 아나키스트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암살자가 대의명분의 하나로 리살의 처형을 내세웠다는 신문 보도가 실리기도 했다. 폭탄이 발명되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번진 암살이라는 레퍼토리는 유럽 대륙에서는 잦아들었지만 이후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각국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반복되었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사벨로 데 로스 레예스 역시 스페인의 감옥에서 풀려나온 뒤 유럽에서 잡지를 창간하여 ‘미 제국주의’의 실상을 폭로하는 한편, 세계 각지의 반제국주의 운동을 소개하기도 한다. 필리핀에 돌아온 이후 마닐라에서 최초의 근대적 노동조합을 조직한 그의 후기 경력은 몬주익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부터 교류했던 아나키스트 등 스페인 급진파로부터 감화를 받은 데서 비롯되었다.
호세 리살과 이사벨로 레예스 ― 필리핀 민족주의의 원형, 그리고 아나키즘의 영향
이렇듯 필리핀 민족주의는 아나키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관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인 앤더슨의 말처럼, 이 책은 전투적인 민족주의들 사이에서 아나키즘이 발휘했던 중력의 힘을 지도로 그려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아나키즘은 민족주의 운동에 빨리 스며들어 갈 수 있었을까.
앤더슨의 말대로라면, 아나키즘 운동은 산업 프롤레타리아라 할 만한 계층이 주로 북부 유럽에만 국한되어 있던 시대에 농민들과 농업노동자들을 경멸하지 않았다. 또한 아나키즘은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르주아’ 작가와 예술가들에게도 열려 있었으며, 이는 당시 제도적 마르크스주의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었다. 제국주의에 적대적인 만큼, ‘하찮고’ ‘몰역사적인’ 민족주의에 대한 어떠한 이론적 편견도 품지 않았으며, 그것은 식민지 세계의 민족주의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것이 앤더슨의 주장이다. 더욱이 아나키스트들은 대양을 가로지르는 이주의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이용하는 데에도 빨랐다는 것이다.
즉 신세계의 마지막 민족주의 항쟁이었던 1895년 쿠바에서의 그것과 아시아의 첫 번째 민족주의 항쟁이었던 1896년 필리핀의 그것은 어쩌다가 동시에 일어나 역사적 사건이 아닌 것이다. 전설적인 스페인 세계 제국의 마지막 중요한 잔재에 남은 토착민으로서, 쿠바인들과 필리핀인들은 단지 서로에 대해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개인적 연계도 맺고 있었고,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서로 조율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지구를 가로지르는 공동행동(transglobal coodination)이 가능해진 것은 세계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로 정도는 달랐지만, 필리핀인들과 쿠바인들이 찾아낸 가장 믿을 만한 동맹은 프랑스ㆍ스페인ㆍ이탈리아ㆍ벨기에ㆍ영국의 아나키스트들이었다. 그 이유는, 이유도 각자 다르기는 했지만, 종종 민족주의가 아니기도 했다. 이러한 조율은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앤더슨은 그것을 19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이른 세계화’(early globalization)라고 부를 만한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상상의 공동체』에서 이미 인쇄자본주의(print-capitalism)를 통해 인쇄 기술이라는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민족주의 사상 발전의 배후에 있었음을 주장했지만, 이 책에서는 그 논의를 더욱 발전시켜 ‘철사’(wire, 전보의 발명과 해저 케이블 등)에 의한 통신수단의 발달과 1876년 만국우편연합의 출범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호세 리살이 유창한 독일어로 가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상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살고 있는 필리핀 연구자 블루멘트리트로서, 두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서신에 의해 이어지는 ‘이른 세계화’의 네트워크는 대면해 본 적이 없는 여러 사람들이 공공 영역의 인쇄물들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낀다는 ‘상상’의 민족 공동체와는 성격이 무척 다르다.
세계 정치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그리면서 직조해낸 19세기 이른 세계화 시대의 자화상!
이 책은 단지 필리핀과 쿠바, 스페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19세기 후반의 세계가 왜 ‘이른 세계화’의 시대였는지를 규명하려는 듯 앤더슨은 세계 곳곳을 누벼가며, 우리에게 친숙한 수많은 정치가와 예술인들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단지 파편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는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 누구누구는 또 다른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 즉 우리 세기의 세계화보다 훨씬 앞서 이룩한 세계였음을 보여준다.
1983년 첫 출간 이래 수십 개 나라에서 번역ㆍ출간, 지금까지 약 25만 부가 판매되어 학술서로서는 드물게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 1936 ~ ). ‘민족’을 근대 이후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구성된 '상상의 공동체‘라고 규정한 앤더슨의 이 책은 ‘민족주의’ 연구에 관한 한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특히나 ‘민족주의’ 문제에 예민한 우리에게도 열띤 학문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펴낸 이 책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논의되었던 ‘민족주의’ 문제를 19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아나키즘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파헤친 것으로 필리핀의 대표적 민족주의자 호세 리살(Jose Rizal)과 이사벨로 데 로스 레예스(Isabelo de los Reyes)를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적 사례를 통해 규명해내고 있다.
10여 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 실력, 그리고 인도네시아ㆍ태국ㆍ필리핀 등 동남아시아학에 정통한 학문적 역량, 20세기 동남아시아 현대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앤더슨 스스로도 인도네시아에서 강제 출국과 비자 취소를 당하는 등 그에게서 ‘동남아’는 삶과 학문이 한데 어우러진 격동의 장(場)임에 틀림없다. 거기서 그는 민족주의 문제를 ‘아나키즘’이라는 프리즘으로 다시 비춰봄으로써, 이미 그 시대에 ‘세계화’의 맹아가 엿보인다는이른바 ‘이른 세계화’(early globalization)라 부를 만한 것을 제시한다.
왜 19세기 후반 필리핀에 주목하는가 ― 세계체제의 주변부 가장자리에 있었으나 가장 세계적이었던 때
이 책은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이 아나키즘을 비롯한 유럽의 급진적 운동 및 쿠바를 비롯한 변두리에서 진행되던 저항적 민족주의의 흐름과 발맞추어 진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필리핀 민족주의의 거름이 된 호세 리살의 독창적인 소설들은 다년간 유럽에서 생활한 리살이 여러 언어로 읽어댄 유럽의 소설들에 그 형식 및 아이템을 어느 정도 빚지고 있으며, 두 번째 소설인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에 등장하는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는 배고픈 농민들의 폭동이 빈발했던 스페인의 사회상을 반영했음 직하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어느 한쪽(선진적 유럽)이 다른 한쪽(변두리인 필리핀)에 영향을 주는 관계가 아니다. 스페인 감옥에서 자행되는 잔인한 고문을 폭로하는 범대륙적인 운동은 아나키스트 저술가들 및 급진파 언론에 의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으며, 이는 필리핀과 쿠바에서 동시에 터진 독립전쟁과 더불어 스페인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당시 유럽에서는 러시아에서 건너온 암살이라는 움직임이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한창 시작되는 중이었는데, 스페인 총리였던 카노바스도 아나키스트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암살자가 대의명분의 하나로 리살의 처형을 내세웠다는 신문 보도가 실리기도 했다. 폭탄이 발명되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번진 암살이라는 레퍼토리는 유럽 대륙에서는 잦아들었지만 이후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각국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반복되었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사벨로 데 로스 레예스 역시 스페인의 감옥에서 풀려나온 뒤 유럽에서 잡지를 창간하여 ‘미 제국주의’의 실상을 폭로하는 한편, 세계 각지의 반제국주의 운동을 소개하기도 한다. 필리핀에 돌아온 이후 마닐라에서 최초의 근대적 노동조합을 조직한 그의 후기 경력은 몬주익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부터 교류했던 아나키스트 등 스페인 급진파로부터 감화를 받은 데서 비롯되었다.
호세 리살과 이사벨로 레예스 ― 필리핀 민족주의의 원형, 그리고 아나키즘의 영향
이렇듯 필리핀 민족주의는 아나키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관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인 앤더슨의 말처럼, 이 책은 전투적인 민족주의들 사이에서 아나키즘이 발휘했던 중력의 힘을 지도로 그려보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아나키즘은 민족주의 운동에 빨리 스며들어 갈 수 있었을까.
앤더슨의 말대로라면, 아나키즘 운동은 산업 프롤레타리아라 할 만한 계층이 주로 북부 유럽에만 국한되어 있던 시대에 농민들과 농업노동자들을 경멸하지 않았다. 또한 아나키즘은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르주아’ 작가와 예술가들에게도 열려 있었으며, 이는 당시 제도적 마르크스주의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었다. 제국주의에 적대적인 만큼, ‘하찮고’ ‘몰역사적인’ 민족주의에 대한 어떠한 이론적 편견도 품지 않았으며, 그것은 식민지 세계의 민족주의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것이 앤더슨의 주장이다. 더욱이 아나키스트들은 대양을 가로지르는 이주의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이용하는 데에도 빨랐다는 것이다.
즉 신세계의 마지막 민족주의 항쟁이었던 1895년 쿠바에서의 그것과 아시아의 첫 번째 민족주의 항쟁이었던 1896년 필리핀의 그것은 어쩌다가 동시에 일어나 역사적 사건이 아닌 것이다. 전설적인 스페인 세계 제국의 마지막 중요한 잔재에 남은 토착민으로서, 쿠바인들과 필리핀인들은 단지 서로에 대해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개인적 연계도 맺고 있었고, 어느 정도까지는 행동을 서로 조율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지구를 가로지르는 공동행동(transglobal coodination)이 가능해진 것은 세계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로 정도는 달랐지만, 필리핀인들과 쿠바인들이 찾아낸 가장 믿을 만한 동맹은 프랑스ㆍ스페인ㆍ이탈리아ㆍ벨기에ㆍ영국의 아나키스트들이었다. 그 이유는, 이유도 각자 다르기는 했지만, 종종 민족주의가 아니기도 했다. 이러한 조율은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앤더슨은 그것을 19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이른 세계화’(early globalization)라고 부를 만한 것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상상의 공동체』에서 이미 인쇄자본주의(print-capitalism)를 통해 인쇄 기술이라는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민족주의 사상 발전의 배후에 있었음을 주장했지만, 이 책에서는 그 논의를 더욱 발전시켜 ‘철사’(wire, 전보의 발명과 해저 케이블 등)에 의한 통신수단의 발달과 1876년 만국우편연합의 출범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호세 리살이 유창한 독일어로 가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상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살고 있는 필리핀 연구자 블루멘트리트로서, 두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은 서신에 의해 이어지는 ‘이른 세계화’의 네트워크는 대면해 본 적이 없는 여러 사람들이 공공 영역의 인쇄물들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낀다는 ‘상상’의 민족 공동체와는 성격이 무척 다르다.
세계 정치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그리면서 직조해낸 19세기 이른 세계화 시대의 자화상!
이 책은 단지 필리핀과 쿠바, 스페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19세기 후반의 세계가 왜 ‘이른 세계화’의 시대였는지를 규명하려는 듯 앤더슨은 세계 곳곳을 누벼가며, 우리에게 친숙한 수많은 정치가와 예술인들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단지 파편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는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 누구누구는 또 다른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 즉 우리 세기의 세계화보다 훨씬 앞서 이룩한 세계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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