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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이 낳은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첫 에세이
“인생의 열정은 수백 번의 좌절 속에서 피어난다.”
좌절 앞에서 주저앉을 것인가, 좌절을 다른 무언가로 승화할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을 들려줄 수 있는 한 명의 음악가가 여기 있다. 한때 처참한 탈락으로 피아노를 포기하고 전화회사의 영업사원이 되기까지 하였으나 꿈의 무대에 오르기 위하여 다시 건반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 동양인 여성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보고 실소하던 관객들에게 감동의 연주를 들려주어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치게 만든, 그리하여 한국 국적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상위에 입상해 세계에 이름을 알린 연주자. 서울대 음대 사상 최연소의 나이에 교수가 되었지만 더 활발한 연주 활동을 위하여 10년 만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홀로 광야로 떠난 단독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에서 홀로 갓난아이들을 키우는 생계형 피아니스트였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명문 음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두 아들딸을 모두 하버드 대학교에 보낸 교육자.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백혜선의 이야기이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은 의 그가 피아노 앞에 앉은 50여 년의 세월 동안 얻은 인생 내공을 이 한 권의 에세이에 담아냈다. 오늘을 열심히 사느라 좌절할 일도 잦은 젊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삶의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좌절 앞에서 주저앉을 것인가, 좌절을 다른 무언가로 승화할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을 들려줄 수 있는 한 명의 음악가가 여기 있다. 한때 처참한 탈락으로 피아노를 포기하고 전화회사의 영업사원이 되기까지 하였으나 꿈의 무대에 오르기 위하여 다시 건반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 동양인 여성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보고 실소하던 관객들에게 감동의 연주를 들려주어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치게 만든, 그리하여 한국 국적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상위에 입상해 세계에 이름을 알린 연주자. 서울대 음대 사상 최연소의 나이에 교수가 되었지만 더 활발한 연주 활동을 위하여 10년 만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홀로 광야로 떠난 단독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에서 홀로 갓난아이들을 키우는 생계형 피아니스트였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명문 음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두 아들딸을 모두 하버드 대학교에 보낸 교육자.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백혜선의 이야기이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은 의 그가 피아노 앞에 앉은 50여 년의 세월 동안 얻은 인생 내공을 이 한 권의 에세이에 담아냈다. 오늘을 열심히 사느라 좌절할 일도 잦은 젊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삶의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가장 못생긴 발을 내밀다
1악장 좌절의 기쁨
쌀알만큼이나 작은 기쁨으로
하얀 양복을 입은 신사
때로는 듣고만 싶은 곡도 있다
자유로움의 조건
좌절의 스페셜리스트
2악장 다시, 연습이다
이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
언어가 표현을 허락한다
한 발짝만 떨어져서
배움이 끊기는 날이 인생이 끊기는 날
3악장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어느 축축한 날의 광시곡
아무런 성취 없는 하루에도
한 번은 오고야 마는 결정적 순간
순수한 마음은 순수한 마음을 움직인다
4악장 종착역 없는 행진
무대를 마친 연주자의 행보
이 열차는 종착역이 없습니다
저렇게 되고 싶은 사람
엄마에겐 엄마의 연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악장 좌절의 기쁨
쌀알만큼이나 작은 기쁨으로
하얀 양복을 입은 신사
때로는 듣고만 싶은 곡도 있다
자유로움의 조건
좌절의 스페셜리스트
2악장 다시, 연습이다
이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
언어가 표현을 허락한다
한 발짝만 떨어져서
배움이 끊기는 날이 인생이 끊기는 날
3악장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가
어느 축축한 날의 광시곡
아무런 성취 없는 하루에도
한 번은 오고야 마는 결정적 순간
순수한 마음은 순수한 마음을 움직인다
4악장 종착역 없는 행진
무대를 마친 연주자의 행보
이 열차는 종착역이 없습니다
저렇게 되고 싶은 사람
엄마에겐 엄마의 연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게 문제야. 자네의 가장 못생긴 발부터 앞으로 내밀어야 하네. 매끈한 발을 내미는 걸로는 모든 사람과 똑같을 수밖에 없어. 그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니까. 자네의 가장 못생긴 발이야말로 자네가 가진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구석을 드러내는 것이라네.”
--- p.9
누군가 나에게 연주자의 직업윤리를 물을 때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직업인으로서의 연주자는 변명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어깨가 좀 결리니 이해해주세요” 하는 말을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사람이 연주자다. 어떤 불상사가 닥치든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 안에서 최선의 것을 가져와야 한다. 아니, 애초에 변명 따위를 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 p.59
연습할 때는 스스로를 꽉 쪼아서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어떤 조그만 위험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이 새까맣게 될 정도로 연마하되,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새하얗게 잊어버려야 한다. 걱정할 필요 없다, 실제로는 잊지 않았으니까. 타성에 젖은 음악은 완벽할 수는 있어도 관객에게 감흥을 전하지 못한다. 완벽을 넘어선 즉흥성을 담아야 감동을 주는 음악이 된다.
--- p.68
“그렇게 많이 치면 손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아요?”
그 말에 나는 무심코 내 엄지손가락으로 손끝을 문질러본다. 짧게 자른 손톱 아래로 말랑말랑하고 만질만질한 살이 느껴진다.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쳐온 뒤로 거의 항상 느껴온 촉감이다. 그럼 그렇지, 당연하고 다행인 일이다. 연주를 많이 하면 굳은살이 박인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들 가진 오해다. 굳은살이란 오히려 피아노를 한동안 치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쳤을 때야 박이는 것이다. 고로 굳은살이 박였다는 것은 곧, 그 연주자가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뜻이 된다.
--- p.71
“너 책은 읽니?”
“네…… 조금요.”
대답이 신통치 못했는지 선생님이 한번 더 캐물었다.
“지금은 뭐 읽고 있고?”
“지금 읽고 있는 건 없어요.”
적절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이면 지금 당장에도 읽고 있는 책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 p.107
그 무대는 완벽한 연주의 반복이었고,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연주에서 ‘완벽’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반복’은 문제가 된다. 피아니스트는 같은 곡을 치더라도 매번 전혀 다른 곡을 치는 것처럼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 p.130
그날 나는 내 경력을 통틀어 최악에 해당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최대한의 집중력을 동원해서 연주를 해나갔지만 중간중간에 감정선이 끊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수많은 연습으로 쌓아올린 실력도 준비되지 않는 자세 위에서는 모래 위의 성처럼 무너져내렸다. 최악에서 최선을 다해본들 최악이긴 매한가지였다. 흐려지는 집중력을 총동원해서 붙잡았지만 거센 비가 들이닥치는 인력거 의자 위처럼 지금 이 의자 위에서도 눈앞이 뿌옇게 흐려 보일 뿐이었다. 그 최악의 연주 중에서도 최악은, 곡을 끝내야 하는 지점에서 다시 곡 중간으로 돌아가버린 것이었다.
--- pp.176~177
피아니스트를 비롯하여 연주자라는 직업이 원래 그렇다. 보통의 직업은 인정, 성공, 성취, 보람, 지위, 유명세 등을 통하여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마련이다.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늦더라도 언젠가 마땅한 진전과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연주자에게는 노력과 성취의 등가교환이 주어지는 법이 결코 없다. 가끔씩 보상이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꼭 알아두어야 한다. 잔인하고 잔혹하지만, 정말 아무런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 p.190
그 기분 좋은 박수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진짜 이것이 나를 향한 박수란 말인가. 내가 다시 무대로 나갈 때까지 이 박수가 정녕 이어질까. 결국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그만 나가자고 권하여 다시 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에어컨도 없이 수천 명이 들어찬 공연장의 열기와 함께 여전히 이어지고 있던 박수 소리가 크게 전해졌다.
--- pp.214~215
잘 풀리지 않는 듯한 오랜 날들을 살다보면 그것을 비정상이라 여기고, 겨우 뭔가 매끄럽게 잘 굴러가고 있구나 싶은 날들이 찾아왔을 때 마침내 나도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전의 생활로는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반드시 이 생활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온함이 반드시 정상일 필요는 없다. 정상과 비정상을 벗어나서 연주자가(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삶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삶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성장이 있는 삶에는 좌절과 불안과 걱정이 필연적으로 함께한다.
--- p.9
누군가 나에게 연주자의 직업윤리를 물을 때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직업인으로서의 연주자는 변명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어깨가 좀 결리니 이해해주세요” 하는 말을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사람이 연주자다. 어떤 불상사가 닥치든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 안에서 최선의 것을 가져와야 한다. 아니, 애초에 변명 따위를 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 p.59
연습할 때는 스스로를 꽉 쪼아서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어떤 조그만 위험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이 새까맣게 될 정도로 연마하되,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 새하얗게 잊어버려야 한다. 걱정할 필요 없다, 실제로는 잊지 않았으니까. 타성에 젖은 음악은 완벽할 수는 있어도 관객에게 감흥을 전하지 못한다. 완벽을 넘어선 즉흥성을 담아야 감동을 주는 음악이 된다.
--- p.68
“그렇게 많이 치면 손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아요?”
그 말에 나는 무심코 내 엄지손가락으로 손끝을 문질러본다. 짧게 자른 손톱 아래로 말랑말랑하고 만질만질한 살이 느껴진다.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쳐온 뒤로 거의 항상 느껴온 촉감이다. 그럼 그렇지, 당연하고 다행인 일이다. 연주를 많이 하면 굳은살이 박인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들 가진 오해다. 굳은살이란 오히려 피아노를 한동안 치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쳤을 때야 박이는 것이다. 고로 굳은살이 박였다는 것은 곧, 그 연주자가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뜻이 된다.
--- p.71
“너 책은 읽니?”
“네…… 조금요.”
대답이 신통치 못했는지 선생님이 한번 더 캐물었다.
“지금은 뭐 읽고 있고?”
“지금 읽고 있는 건 없어요.”
적절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책을 읽는 사람이면 지금 당장에도 읽고 있는 책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 p.107
그 무대는 완벽한 연주의 반복이었고,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연주에서 ‘완벽’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반복’은 문제가 된다. 피아니스트는 같은 곡을 치더라도 매번 전혀 다른 곡을 치는 것처럼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 p.130
그날 나는 내 경력을 통틀어 최악에 해당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최대한의 집중력을 동원해서 연주를 해나갔지만 중간중간에 감정선이 끊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수많은 연습으로 쌓아올린 실력도 준비되지 않는 자세 위에서는 모래 위의 성처럼 무너져내렸다. 최악에서 최선을 다해본들 최악이긴 매한가지였다. 흐려지는 집중력을 총동원해서 붙잡았지만 거센 비가 들이닥치는 인력거 의자 위처럼 지금 이 의자 위에서도 눈앞이 뿌옇게 흐려 보일 뿐이었다. 그 최악의 연주 중에서도 최악은, 곡을 끝내야 하는 지점에서 다시 곡 중간으로 돌아가버린 것이었다.
--- pp.176~177
피아니스트를 비롯하여 연주자라는 직업이 원래 그렇다. 보통의 직업은 인정, 성공, 성취, 보람, 지위, 유명세 등을 통하여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마련이다.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늦더라도 언젠가 마땅한 진전과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연주자에게는 노력과 성취의 등가교환이 주어지는 법이 결코 없다. 가끔씩 보상이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꼭 알아두어야 한다. 잔인하고 잔혹하지만, 정말 아무런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 p.190
그 기분 좋은 박수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다. 진짜 이것이 나를 향한 박수란 말인가. 내가 다시 무대로 나갈 때까지 이 박수가 정녕 이어질까. 결국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그만 나가자고 권하여 다시 무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에어컨도 없이 수천 명이 들어찬 공연장의 열기와 함께 여전히 이어지고 있던 박수 소리가 크게 전해졌다.
--- pp.214~215
잘 풀리지 않는 듯한 오랜 날들을 살다보면 그것을 비정상이라 여기고, 겨우 뭔가 매끄럽게 잘 굴러가고 있구나 싶은 날들이 찾아왔을 때 마침내 나도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전의 생활로는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반드시 이 생활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온함이 반드시 정상일 필요는 없다. 정상과 비정상을 벗어나서 연주자가(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삶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삶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성장이 있는 삶에는 좌절과 불안과 걱정이 필연적으로 함께한다.
--- p.246
출판사 리뷰
한국이 낳은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가 전하는 거장의 인생 수업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일본 사이타마현 문화예술재단이 선정한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에 이름을 올린 음악가 백혜선의 첫 책이 다산북스에서 출간되었다. 1989년 뉴욕 링컨센터 앨리스 툴리 홀에서 프로로서 첫 독주회를 치르며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어언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역 연주자이다. 또한 스승인 러셀 셔먼의 뒤를 이어 모교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교수로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스승으로서의 일을 결코 놓치지 않으며, 연주자와 교육자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왕성한 에너지의 소유자이다. 이 책은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네 살 때 건반 앞에 앉은 뒤로 50년이 넘도록 연습과 연마를 거듭해오며 깨달은 인생 내공을 무겁지 않은 문체로 담은 에세이이다.
흔히 사람들은 연주자를 보며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화려한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연주자가 지닌 극히 일부의 측면에 불과하다. 실제로 연주자의 인생은 당장이라도 음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좌절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혜선이 이 책에서 주로 보여주려는 것도 연주자의 영광이 아닌 좌절의 순간들이다. 그는 여기서 누구나 갖고 있는 아름답고 정제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가장 못생긴 발’을 내밀기로 했다. 30여 년의 국제무대 경력 동안 꼽은 최악의 연주, 콩쿠르 탈락 후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낸 슬럼프 시기, 사람도 잃고 돈도 잃은 채 미국에서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지낸 불우한 시간마저 고백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런 어둡고 부족한 면모들이 자신의 내면을 훨씬 더 정확히 표현해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고단했던 순간을 서술하는 중에도 그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생을 향한 의지이자 음악적으로 자신을 거듭 계발하려는 집념이다. 유머러스하고 가볍고 편한 문체로 글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힘주어 말한다. 좌절이란 곧 특권이라고. 즉, 좌절과 불안과 걱정은 성장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라고 말이다. 어디가 되었건 ‘여기가 종착역’이라며 눌러앉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하고, 앞으로 찾아올 좌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며 백혜선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이다.”
한국 클래식이 이제 막 세계로 뻗어나가기 전,
그 어두운 길목에 백혜선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모스크바의 차이콥스키 콘서트홀, 러시아 음악인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음악인이라면 인생에 한 번쯤은 서고 싶어하는 이 꿈의 무대에 젊은 동양인 여성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등도 꺼지지 않아 환히 보이는 객석에서 관객들은 ‘네가 얼마나 하는지 보자’ 하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회 마지막 순서였으니 비웃는 얼굴로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듬성듬성한 객석을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당시는 동양인 남성 연주자가 콩쿠르 무대에 오르면 객석의 반이 남고, 동양인 여성 연주자가 나오면 반의반이 남는 시대였다.
동양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은 청중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였다. 연주를 하기 전에 가볍게 목례하며 마주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은 한 시간 전의 리허설 때와 마찬가지로 피로하고 무관심했다. 무대 위에서 최고의 아군이어야 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자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이야기다. 백혜선은 무표정한 오케스트라와 비웃음을 띤 객석을 양옆에 두고 스승인 변화경의 말을 떠올린다. “오늘 무대 위에서 네가 할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거야. 음악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 이 순간만큼은 그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기로 한 그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연주를 시작한다.
시베리아의 칼바람과 추위에 꽁꽁 언 몸을 난로 앞에서 천천히 녹이는 기분. 음악은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언어이기에, 한쪽에서 높은 호소력을 실어 대화하다보면 다른 한쪽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악장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관객에게 인사를 하며 그가 마주한 것은 끊이지 않는 뜨거운 박수갈채였다. 눈에 보이는 표정마다 다들 미소를 띠고 있었고 가끔은 눈시울을 닦는 청중도 있었다. 백혜선은 이 대회에서 1위 없는 3위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최초로 상위에 입상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임윤찬 등 지금은 한국의 연주자들이 세계 클래식계를 휩쓸고 있으나 한국 연주자에게 놓인 길이 늘 밝고 매끈했던 것은 아니었다. K클래식의 부흥은 그동안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길을 닦아왔던 선배 연주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특히 여성 연주자로서 백혜선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최고의 스타로 꼽을 만큼 백혜선은 성공한 여성 피아니스트가 극히 드물었던 시대에 한국의 여성 연주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닦으며 그 길을 자신도 직접 걸어간 인물이다. 이 책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에는 그 험난한 과정에서 백혜선이 부딪힌 벽과 좌절, 극복의 경험, 그러면서 배운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
젊은 천재들이 쏟아지는 한국 클래식의 부흥기에
나이 들어가는 피아니스트가 스스로 건네는 당부
이 책은 자서전으로 쓰이지 않았다. 중견의, 어쩌면 이제 점차 노장이 되어갈 피아니스트가 과거를 회고하는 자세로 집필되지 않았다. 백혜선은 자신의 음악 인생을 크게 구분 짓는다면, 어릴 적 피아노를 접하고부터 미국에 건너간 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하기까지를 제1기, 최연소로 서울대 음대 교수에 임용되고 나서 겪은 부침부터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어렸던 아들딸이 성장하고 선생이자 연주자로 다시 선 지금까지를 제2기, 그리고 앞으로 맞닥뜨릴 시기를 제3기라고 칭한다. 이 책은 앞으로 있을 제3기의 활동에 앞서 던지는 출사표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백혜선은 나이 들어가는 연주자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한국 클래식계의 좋은 인프라와 환경에서는 점점 더 뛰어난 연주자들이 새롭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 음악계에서 화제인 천재들보다도 더 훌륭한 천재들이 거듭 나올 것이다. 그때 나이든 연주자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에 백혜선은 선생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못다 한 것은 후배나 제자들이 한다면 충분하다면서도, 이대로 자신의 음악적 성장을 끝낼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후배 연주자들의 길을 응원하는 동시에, 연주에 있어서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거장의 집념이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음악 외길을 걸어오며 수없이 좌절하고 극복해온 거장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이 책은, 같은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 음악인, 백혜선의 이름에 익숙한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뜨겁게 사느라 좌절한 일도 많은 젊은 독자 대중에게 큰 위로와 힘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일본 사이타마현 문화예술재단이 선정한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에 이름을 올린 음악가 백혜선의 첫 책이 다산북스에서 출간되었다. 1989년 뉴욕 링컨센터 앨리스 툴리 홀에서 프로로서 첫 독주회를 치르며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어언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역 연주자이다. 또한 스승인 러셀 셔먼의 뒤를 이어 모교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교수로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스승으로서의 일을 결코 놓치지 않으며, 연주자와 교육자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왕성한 에너지의 소유자이다. 이 책은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네 살 때 건반 앞에 앉은 뒤로 50년이 넘도록 연습과 연마를 거듭해오며 깨달은 인생 내공을 무겁지 않은 문체로 담은 에세이이다.
흔히 사람들은 연주자를 보며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화려한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연주자가 지닌 극히 일부의 측면에 불과하다. 실제로 연주자의 인생은 당장이라도 음악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좌절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혜선이 이 책에서 주로 보여주려는 것도 연주자의 영광이 아닌 좌절의 순간들이다. 그는 여기서 누구나 갖고 있는 아름답고 정제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가장 못생긴 발’을 내밀기로 했다. 30여 년의 국제무대 경력 동안 꼽은 최악의 연주, 콩쿠르 탈락 후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낸 슬럼프 시기, 사람도 잃고 돈도 잃은 채 미국에서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지낸 불우한 시간마저 고백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런 어둡고 부족한 면모들이 자신의 내면을 훨씬 더 정확히 표현해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고단했던 순간을 서술하는 중에도 그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생을 향한 의지이자 음악적으로 자신을 거듭 계발하려는 집념이다. 유머러스하고 가볍고 편한 문체로 글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힘주어 말한다. 좌절이란 곧 특권이라고. 즉, 좌절과 불안과 걱정은 성장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라고 말이다. 어디가 되었건 ‘여기가 종착역’이라며 눌러앉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하고, 앞으로 찾아올 좌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노라며 백혜선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이다.”
한국 클래식이 이제 막 세계로 뻗어나가기 전,
그 어두운 길목에 백혜선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모스크바의 차이콥스키 콘서트홀, 러시아 음악인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음악인이라면 인생에 한 번쯤은 서고 싶어하는 이 꿈의 무대에 젊은 동양인 여성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등도 꺼지지 않아 환히 보이는 객석에서 관객들은 ‘네가 얼마나 하는지 보자’ 하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회 마지막 순서였으니 비웃는 얼굴로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듬성듬성한 객석을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당시는 동양인 남성 연주자가 콩쿠르 무대에 오르면 객석의 반이 남고, 동양인 여성 연주자가 나오면 반의반이 남는 시대였다.
동양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은 청중만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였다. 연주를 하기 전에 가볍게 목례하며 마주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은 한 시간 전의 리허설 때와 마찬가지로 피로하고 무관심했다. 무대 위에서 최고의 아군이어야 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자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이야기다. 백혜선은 무표정한 오케스트라와 비웃음을 띤 객석을 양옆에 두고 스승인 변화경의 말을 떠올린다. “오늘 무대 위에서 네가 할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거야. 음악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 이 순간만큼은 그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기로 한 그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연주를 시작한다.
시베리아의 칼바람과 추위에 꽁꽁 언 몸을 난로 앞에서 천천히 녹이는 기분. 음악은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언어이기에, 한쪽에서 높은 호소력을 실어 대화하다보면 다른 한쪽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악장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관객에게 인사를 하며 그가 마주한 것은 끊이지 않는 뜨거운 박수갈채였다. 눈에 보이는 표정마다 다들 미소를 띠고 있었고 가끔은 눈시울을 닦는 청중도 있었다. 백혜선은 이 대회에서 1위 없는 3위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최초로 상위에 입상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손열음, 김선욱, 조성진, 임윤찬 등 지금은 한국의 연주자들이 세계 클래식계를 휩쓸고 있으나 한국 연주자에게 놓인 길이 늘 밝고 매끈했던 것은 아니었다. K클래식의 부흥은 그동안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길을 닦아왔던 선배 연주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특히 여성 연주자로서 백혜선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최고의 스타로 꼽을 만큼 백혜선은 성공한 여성 피아니스트가 극히 드물었던 시대에 한국의 여성 연주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닦으며 그 길을 자신도 직접 걸어간 인물이다. 이 책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에는 그 험난한 과정에서 백혜선이 부딪힌 벽과 좌절, 극복의 경험, 그러면서 배운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
젊은 천재들이 쏟아지는 한국 클래식의 부흥기에
나이 들어가는 피아니스트가 스스로 건네는 당부
이 책은 자서전으로 쓰이지 않았다. 중견의, 어쩌면 이제 점차 노장이 되어갈 피아니스트가 과거를 회고하는 자세로 집필되지 않았다. 백혜선은 자신의 음악 인생을 크게 구분 짓는다면, 어릴 적 피아노를 접하고부터 미국에 건너간 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하기까지를 제1기, 최연소로 서울대 음대 교수에 임용되고 나서 겪은 부침부터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어렸던 아들딸이 성장하고 선생이자 연주자로 다시 선 지금까지를 제2기, 그리고 앞으로 맞닥뜨릴 시기를 제3기라고 칭한다. 이 책은 앞으로 있을 제3기의 활동에 앞서 던지는 출사표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백혜선은 나이 들어가는 연주자로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한국 클래식계의 좋은 인프라와 환경에서는 점점 더 뛰어난 연주자들이 새롭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 음악계에서 화제인 천재들보다도 더 훌륭한 천재들이 거듭 나올 것이다. 그때 나이든 연주자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에 백혜선은 선생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못다 한 것은 후배나 제자들이 한다면 충분하다면서도, 이대로 자신의 음악적 성장을 끝낼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후배 연주자들의 길을 응원하는 동시에, 연주에 있어서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거장의 집념이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음악 외길을 걸어오며 수없이 좌절하고 극복해온 거장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이 책은, 같은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 음악인, 백혜선의 이름에 익숙한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뜨겁게 사느라 좌절한 일도 많은 젊은 독자 대중에게 큰 위로와 힘을 선사할 것이다.
추천평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백혜선 선생님만큼 동경했던 피아니스트는 또 없었던 것 같다. 그의 피아노 소리를 참 많이 닮은 이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며, 다시 한번 그 이유를 곱씹을 수 있어 행복했다. 무대 위 선생님을 바라볼 때마다 설레어 어쩔 줄 모르던 수년 전 그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 손열음 (피아니스트)
- 손열음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묘사하는 한 단어는 ‘거인(巨人)’이다. 아주 오래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어다. 이 책을 읽으며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거인 뒤에 숨은 그 거인다운 노력을. 또 하나 발견한 것은 그의 놀라운 필재! 선생인 러셀 셔먼에게서 피아노뿐만 아니라 글 솜씨도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 신수정 (피아니스트, 서울대 명예교수)
- 신수정 (피아니스트,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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