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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신도의 형성 (2017) - 식민지 조선과 국가신도의 논리

동방박사님 2023. 9. 2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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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국신도의 형성』일본학계 최초로 다민족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신도’를 조망하여 국가신도를 입체적으로 제시하다!

일본 국가종교 ‘신도神道’, 단일국 신도가 아닌 제국의 신도였다


일본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신사’의 모습에 종종 놀라곤 한다. 그리고 거기서 ‘일본적’인 어떤 것을 찾고자 열심히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다. 일본의 정신과 내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신도神道’를 바라보는 이러한 태도는 비단 외국인 관광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일본사람들도, 그리고 신도를 연구하는 일본(및 세계)의 학자들도 신도를 일본의 고유한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일본사람들에게 “신도神道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머뭇거리며 잘 대답하지 못하기 일쑤다. “신도는 그냥 신도”라고도 한다. 일본 학자들 역시, 고대부터 이어지는 복잡다단한 계보를 전해주기도 하겠지만 명확한 정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제국신도의 형성 : 식민지 조선과 국가신도의 논리??는 흥미롭게도 신도의 정의를 일본의 외부에서 찾는다. 그 외부란 바로 ‘식민지조선’을 가리킨다. 일본만을 들여다보아서는 신도에 대해서 알 수 없으며, 식민지조선을 포함한 ‘제국사’의 관점을 가져와야만 그 전말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본학계에서 처음으로 저자는 ‘국가신도’를 대신해서 ‘제국신도’의 개념을 제시한다. 근대일본의 사상과 제도가 실은 식민지지배 및 대륙침략과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언급되었지만, 이른 시기부터 식민지에 건너갔던 신도의 문제는 어째서인지 단순한 확장과 변질로만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단일민족주의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다민족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신도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신도가 식민지에 끼친 영향은 물론, 반대로 식민지가 신도에 가져온 변용의 양상을 입체적으로 포착 제시된다.

신도神道, 일본인들의 도덕이자 의무가 되다

19세기 중반 근대국민국가로의 전환을 꾀하던 일본은 서구의 기독교에 대응하여 새롭게 창출할 ‘국민’의 정신적 통합을 위해 신도를 ‘발명’했다. 이에 공동체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던 샤머니즘, 혹은 신체적 실천(practice)의 양식은 교리(belief)를 중심으로 한 신앙체계로의 전환을 강요받았고, 여기에 발맞추어 서구식 정교분리의 이념도 수입되었다. 일상의 관습은 신도의 이름 아래 천황, 그리고 아마테라스 같은 조상신들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 포섭되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신도가 ‘종교’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자 문제가 매우 복잡해졌다. 서구식 정교분리에서 종교는 개인의 내면에 속하게 되는바, 신도는 이제 개인의 자유선택의 대상으로서 기독교 및 불교와도 신자획득을 위한 경합을 벌여야만 했다.
메이지정부는 신기관이나 교도직 같은 다양한 제도를 통해 신도를 뒷받침하고자 했으나, 처음부터 기독교나 불교에 버금갈만한 교의나 경전을 갖추지 못했던 신도가 이 경쟁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것이 이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신사비종교론’이다. 즉 신도는 종교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도덕 혹은 의무라는 것이다. 종교가 아닌 도덕이 됨으로써 신도는 개인적 선택의 대상에서 복종과 규율의 기표로 변모했고, 이 텅 빈 기표는 국가제사 등을 통해 국민을 천황과 그 조상신에 연결시켰다. 그리고 이 도덕을 침범하지 않는 한에서만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다.
패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최고사령부(GHQ)는 이 기묘한 시스템을 (아시아적 정교일치라는 멸시의 뜻도 담아서) ‘국가신도’라 명명했다. 이후 ‘국가신도’는 일본의 국민교화를 담당했던 파시즘적 이데올로기 체계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인식되었지만, 목숨을 부지한 천황이 ‘상징천황’으로 변모하는 바람에 ‘국가신도’에 관한 사유 또한 애매하게 남겨졌다.

식민지에 가해진 제국의 정치, 사회, 문화적 폭력 속에서 혼종적인 ‘제국신도’가 형성되다

제국일본은 식민지에 수많은 신사를 세웠다. 식민지에서는 일본내지와는 다른 그 나름의 논리가 필요했고, 이는 다시 ‘국가신도’ 논리의 확립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 ‘국가신도’ 연구는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단지 ‘국가신도’ 논리의 일탈이나 확대 같은 표현만을 거듭해왔는데, 저자는 ‘제국신도’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기존연구들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일본고유의 ‘국가신도’가 식민지로 건너가서 변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제국과 식민지의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폭력 속에서 혼종적인 ‘제국신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제국신도’ 형성의 주요한 세 가지 장면, 첫 번째로 한일병합 전후 일본인 이주자들이 신사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다종다양한 신들이 천황가의 최고신인 아마테라스로 추상화하는 장면, 두 번째로 1920년대 조선신궁의 제신논쟁을 통해 신사비종교론과 황조신 숭배가 재해석되는 장면, 마지막으로 1930년대 이후 심전개발운동과 동제의 창출을 통해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표면적인 담론해석에 그치지 않고, 직접 행한 현지조사 및 총독부 자료 등에 근거한 심도 있는 분석에서는 한국의 민족종교 연구에 일찍부터 종사해온 저자의 차분하면서도 깊은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혹 일본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신사에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일본고유의 특성을 넘어서는 제국과 식민지의 모순 및 굴절, 그리고 패전 후의 망각의 흔적을 새로이 카메라에 담게 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_ 국가신도는 제국신도였다

서장_ 제국사와 국가신도

제1부 국가신도 논리의 형성-1930년대 전반
1장_ 농촌진흥운동기의 신사정책-‘동제洞祭’에 대한 관심
1. 조선신궁 제신의 논리
2. 농촌진흥운동과 야마자키 노부요시의 농본주의
3. ‘동제’ 이용의 움직임
4. ‘동아민족’론
2장_ 국체명징과 심전개발운동-국민통합을 기획하는 신사정책
1. 심전개발운동의 개시
2. ‘종교부흥’ 구상 중심의 단계
3. 국체명징성명 이후의 신사정책
4. ‘구니타마노 오카미’에 관한 논의
3장_ ‘경신숭조’와 국가신도 논리의 확립-황조신에게 ‘귀일’하는 시조신
1. ‘경신숭조’의 배경
2. ‘경신숭조’ 논리의 형성-‘중견인물’ 양성시설
3. ‘경신숭조’ 논리의 확립-심전개발운동의 ‘목표’를 중심으로
4. 국폐소사의 ‘구니타마노 오카미’ 합사
5. ‘구니타마노 오카미’ 봉재가 지닌 문제

제2부 국가신도 논리의 실체화-1930년대 후반
4장_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신사·신사神祠의 통제-조선판 신사정리
1. 촌락 제사의 장
2. 신사·신사神祠의 통제라는 문제
3. 제신의 이중성
4. 심전개발운동기의 일면 일신사·신사神祠 설치방침
5. 황민화 정책기의 일면 일신사·신사神祠 설치방침
6. ‘일면 일신사神祠’ 설치의 결정과 그 행방
5장_ ‘동제’에 관한 신사정책-증설을 위한 ‘동제’ 이용 담론
1. 전통적인 ‘동제’의 신사·신사神祠화
2. 전통적인 ‘동제’와 관제 ‘동제’에 대한 대응
3. 전통적인 ‘동제’〓‘부락제’의 조사
4. 강원도에서의 신사·신사神祠 증설방침
5. 강원도의 ‘이동사의 복고 개신’ 시책
부론_ 식민지조선의 ‘유사종교’ 개념-국가신도 논리에 의해 배제되는 신앙자들
1. ‘내지’와 조선의 결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
2. ‘유사종교’ 개념의 형성
3. ‘유사종교’ 단속의 추이
4. 국체명징과 종말사상
5. 종말사상에 대한 단속

종장_ 민족종교의 틀을 넘는 제국신도론

참고문헌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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