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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말하지 않는 전쟁들 - 우크라이나 전쟁의 뒷면, 흑백논리로 재단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 관하여 (2023)

동방박사님 2024. 1. 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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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뉴스는 전쟁의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생략했는가?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성실한 응답


JTBC 기자인 저자는 약 50일간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를 위해 현장에 다녀왔다. 그곳에 머무르고 있던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고 총 25건의 뉴스를 내보냈다. 뉴스 보도 한 건의 분량은 2분 남짓. 한정된 분량에 맞게 내용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함부로 잘려 나갔다. 커튼을 치고 숨죽인 채 아침을 기다리는 밤, 그 밤을 짓누르는 무거운 정적, 조각상 대신 바리케이드를 만들던 조각가의 망치질 소리, 함께 어울려 지내던 동네 사람들 수백 명을 묻어야만 했던 장의사의 두 손, 파편의 흔적이 가득한 놀이터에서 홀로 그네를 타던 아이의 뒷모습, 인터뷰 중간중간 찾아오던 침묵과 머뭇거림…. 전쟁의 진실은 임팩트가 부족하게 여겨져 뉴스거리는 될 수 없었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매 순간에 남아 있는 듯했다.

이 책은 전쟁의 하이라이트가 아닌 비하인드에 주목한다. 몇 명이 죽었는지 피해 규모는 얼마인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전쟁, 젤렌스키와 푸틴의 국가적 대의명분이나 세계정세를 논하는 관점들에 쉽게 가려지는 가장 낱낱의 전쟁을 담았다. 전쟁이란 선악이나 승패 같은 이분법으로 정리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늘 다수의 고통임을 환기하고, 그 숫자 하나하나를 이루는 사람들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목차

들어가며

3월
제슈프로 가다
인터뷰 요청이 취조로
메디카 국경검문소, 처음 마주한 전쟁의 소리
인간은 얼마나 잔인하며 숭고한가
함께 싸우는 폴란드 사람들
갑작스럽게 허가된 우크라이나 입국
즉시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철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장 난 체르니우치
교실에선 소총 소리가 들리고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조각가
밤 10시, 모든 가로등이 꺼질 때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그 이전의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7월
털어내지 못한 우크라이나의 기억
다시 우크라이나로
키이우에 들어가다
찢겨진 도시 이르핀
너무 많은 구덩이들
떠난 이의 말을 듣는 사람
저는 언제나 이 아이를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발 곡물 위기의 현장을 가다
어느 무명용사의 장례식
전쟁에 관찰자는 없다
키이우에 떨어진 미사일, 러시아인 예카테리나는 가족을 잃었다
시와 사진에 담긴 마음
오토바이 소음 하나에 모든 게 멈추는 도시
우크라이나에서의 마지막 날
무기가 되어가는 사람들

나가며
감사의 말
추천사
 

저자 소개

저 : 김민관
 
대전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교에서 안보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7년부터 JTBC에서 외교 안보 분야를 취재해 왔다. 이렇다 할 좌우명은 없지만 인생을 늘 낙관하려 노력한다.

책 속으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전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고백건대 우크라이나를 가기 전 스스로 전쟁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고 자부했다. 2년간 군 생활을 했고 3년간 국방부 취재를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장을 다녀온 뒤로는 도무지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을 떠올리면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 뒤엉킨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가 있다. 누구든 전쟁을 경험하면 그 이전의 자신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 p.11, 「들어가며」 중에서

가만히 피란민들의 행렬을 바라보자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듣기만 해도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기분이었다. 경찰들이 질서 유지를 위해 외치는 소리, 자원봉사자들이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소리, 피란민들이 짐을 끄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쟁 하면 으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리들 역시 분명 전쟁의 소리였다.
--- p.29~30, 「메디카 국경검문소, 처음 마주한 전쟁의 소리」 중에서

전쟁이 가장 극단적으로 바꿔놓은 곳 중 하나는 바로 학교였다.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은 21세기이니 전쟁 중이어도 학교만큼은 제 기능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악한 상황이나마 칠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교문에서부터 그 상상은 어긋나고 말았다. 범상치 않은 체격의 한 남성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군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시작되고 이곳은 군사시설 겸 피란민 대피소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때마침 교실에서 소총 교육이 진행 중이라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 p.77, 「교실에선 소총 소리가 들리고」 중에서

밤 10시가 되자 정말 거리의 가로등을 비롯해 시내의 모든 불빛이 한 번에 꺼졌다. 완벽한 어둠이 도시에 찾아왔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은 오롯한 침묵 또한 따라왔다. 내가 모르던 전쟁의 소리 중 한 부분은 완벽한 정적이었다. 정적 속에서 눈을 감자 바쁜 일정으로 잊고 있었던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 p.98, 「밤 10시, 모든 가로등이 꺼질 때」 중에서

“세계를 보는 관점이 완벽하게 변했습니다. 모두가 변했겠죠. 나에게는 러시아인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그는 나의 오랜 친구입니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그의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크림반도에 관한 뉴스를 보여주면서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신은 러시아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로부터 며칠 뒤 그의 집 바로 옆이 폭격을 당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나 물어보았습니다. 여전히 러시아를 기다리느냐고.”
--- p.155, 「떠난 이의 말을 듣는 사람」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군인들이 관찰자 시점으로 전쟁에 임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쟁에서 무엇을 봤는지 물어보곤 하죠. 하지만 저희도 사실 참상의 일부였습니다. 매일 두려움에 떨었어요. 포격 소리가 들리면 한두 번이야 그냥 용감하다고 생각하고 버텨낼 수 있겠지만 그게 하루 이틀 지나 한 달, 두 달, 세 달이 되다 보면 거기 왜 갔는지조차 점차 까먹게 돼요. 일단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런 생각 자체를 하기가 힘들어져요.
--- p.191, 「전쟁에 관찰자는 없다」 중에서

“우리 딸 카챠와 제냐는 서로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나는 딸과 함께 예카테리나와 제냐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병문안을 갔습니다. 제냐는 생각보다 일찍 기운을 차렸죠. 아이들 앞에서 울어선 안 됐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흘렀습니다. 카챠가 나에게 물었죠. ‘엄마, 왜 자꾸 우는 거야?’라고 말이죠. 나는 우리가 더 이상 올렉시를 만날 수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카챠는 해맑은 표정으로 ‘그럼 올렉시 아저씨에게 전화를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비극을 설명하는 건 정말 너무나도 어렵고 끔찍한 일입니다. 정말 너무나도 어려워서 그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 p.204~205, 「키이우에 떨어진 미사일, 러시아인 예카테리나는 가족을 잃었다」 중에서

죽은 자의 다른 편엔 언제나 살아남은 자가 있다. 전쟁으로 만들어진 무한한 슬픔과 절망이 이야기의 끝이 아닌 시작이 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슬픔으로 무너지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 애를 쓴다. 누군가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들의 절망을 이용하려 든다. 이 모든 뒤엉킴이 보통의 사람들이 마주하는 전쟁의 얼굴일 것이다.
날카로운 공습경보와 기관총을 장전하는 소리만으로는 그런 뒤엉킴을 충분히 전할 수 없다고 느꼈다. 모두가 커튼을 치고 숨죽인 채 아침을 기다리는 밤, 그 밤을 짓누르는 무거운 정적, 병사의 관 위로 흙이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건조한 울림, 국경 앞에서 딸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애써 짓는 엄마의 웃음, 그리고 바리케이드를 만들기 위해 뜨거운 철을 내리치는 조각가의 망치질과 칼바람을 맞으며 난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의 외침까지. 어쩌면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을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명징한 대답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의 표정 하나하나,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 인터뷰 중간중간 찾아오는 침묵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던 이유다.
--- p.249~250, 「나가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언론인 손석희 추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3 중소출판사 콘텐츠창작 지원사업 선정도서★

‘전쟁’은 없다 ‘전쟁들’이 있을 뿐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을 얼굴들로 낯설게 비춰 보는 전쟁의 진실


오랜 기간, 우리에게 전쟁은 다 지나간 일로 여겨져 왔다. 종교적, 인종적 갈등이 심한 몇몇 지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극도로 예외적인 사건이거나 영화나 역사서에 나오는 관념에 불과했다. 2020년대에 탱크와 장갑차가 동원된 대규모 재래식 전쟁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은 특종이었다. 2022년 3월, JTBC 기자인 저자는 현장 출장을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경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설렘은 곧 머뭇거림으로 바뀌었다. 군 생활과 국방부 취재 이력으로 전쟁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에 자리하던 전쟁과 실제로 마주한 전쟁은 전혀 달랐다.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땅 이곳저곳에서 전쟁은 젤렌스키와 푸틴의 대의명분에, 뉴스에 보도되는 피해 규모나 사상자의 수에, 이기고 지는 데에 있지 않았다. 전쟁은 오히려 “모두가 커튼을 치고 숨죽인 채 아침을 기다리는 밤, 그 밤을 짓누르는 무거운 정적, 병사의 관 위로 흙이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건조한 울림, 국경 앞에서 딸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애써 짓는 엄마의 웃음, 그리고 바리케이드를 만들기 위해 뜨거운 철을 내리치는 조각가의 망치질과 칼바람을 맞으며 난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의 외침까지”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매 순간에 있는 듯했다.

저자는 취재를 다녀온 후 전쟁이 무엇이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도무지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간단한 몇 마디로는 형용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그때는 답할 수 없었던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아주 성실한 응답이다. 결론을 내리는 대신 펼쳐서 보여주고자 한다. 때로는 두서없고 이상하며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도 했던 여러 인터뷰이의 말들, 그 목소리들의 떨림과 울먹임, 종종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던 인터뷰 사이사이의 침묵을 담았다. 이를 통해 전쟁이란 선악이나 승패 같은 흑백논리로 정리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늘 다수의 형태라는 것을, 만일 전쟁에 휘말린 사람이 백 명이라면 그들 각자가 겪은 바가 서로 다르기에 거기에는 백 개의 전쟁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그리고 그 각각의 전쟁을 전부 헤아렸을 때 전쟁이 품고 있는 슬픔과 절망의 크기를 간접적으로나마 겨우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임을 이야기한다.

뉴스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생략하는가?
기성 언론의 문법에 맞지 않는다고 간주되던 자투리 기록들,
뉴스가 잘라낸 목소리들로 다시 마주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 보도 한 건의 분량은 2분 내외이다. 기자의 일은 하루 종일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취재한 내용을 한정된 보도 분량에 맞게 편집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긴 내용을 최소한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많은 장면들이 잘려 나가고 만다. 이때 선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상황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핵심”인지 여부이다. 소위 “얘기가 되는” 뉴스가 되기 위해서는 팩트 중심이되, 임팩트 또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약 50일간의 취재 기간 동안 저자는 손에 익은 기성 언론의 문법대로 취재 내용을 자르고 붙여 총 25건의 뉴스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곳에서 자신이 마주한 좌절과 분노, 슬픔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폴란드의 메디카 국경검문소에서 모녀의 가슴 절절한 이별 장면을 40초 분량으로 편집해 성공적으로 보도했지만 그런 후에도 “목구멍 어딘가에서 무언가 탁 하고 걸린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생방송을 준비하며 정신없이 원고를 쓰던 중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마주한 장면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딸이 탄 차가 사라지는 걸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전쟁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처럼 카메라가 꺼진 후 남겨진 표정들, 임팩트가 덜하다고 여겨져 보도되지 못하고 잘려 나간 수많은 장면들이 전쟁이라는 현상의 진실을 오히려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복원을 결심한다. 취재 당시의 기록을 다시 살피고 카메라에 녹화된 원영상을 여러 번 돌려 보면서 스스로의 기억과 비교·대조해 최대한 세밀하게 보고 들은 것들을 되살려냈다. 여기에 더해 기성 언론의 문법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취재 내용에서 무엇이 보여지고 무엇이 생략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도록 당시 실제로 보도된 뉴스 내용을 부록으로 첨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도 500일이 넘었다. 전쟁의 장기화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로 우크라이나에 관한 관심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일어나는 폭격에 대한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고, 보도가 되더라도 사망자 00명, 부상자 00명이라고 간단하게 수치화돼 언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단순히 숫자로만 전달되는 전쟁 보도를 넘어 그 숫자 하나하나를 이루는 사람들을 다시금 마주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또한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드는 그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환기한다. “죽은 자의 다른 편엔 언제나 살아남은 자가 있다. 전쟁으로 만들어진 무한한 슬픔과 절망이 이야기의 끝이 아닌 시작이 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슬픔으로 무너지고,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 애를 쓴다. 누군가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들의 절망을 이용하려 든다. 이 모든 뒤엉킴이 보통의 사람들이 마주하는 전쟁의 얼굴일 것이다.” 몇 명이 죽었는지 피해 규모는 얼마인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전쟁, 젤렌스키와 푸틴의 국가적 대의명분이나 세계정세를 논하는 관점들에 쉽게 가려지는 가장 낱낱의 전쟁을 담았다.

“이게 정말 현실인가? 묻고 또 물었습니다…”
잊혀서는 안 될 전쟁범죄에 대한 기록


2022년 4월 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위성도시인 부차에서 45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가정집, 슈퍼마켓, 공원 등 도시 곳곳에 시신이 놓여 있었다. 대다수가 민간인이었고, 시신 곳곳에 고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이 모든 것은 우크라이나의 조작”이라며 민간인에 대한 학살 자체를 부인했지만, 저자가 그해 7월경 방문한 민간인 거주 지역 곳곳에는 공격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렇게 폐허가 된 장소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기록이 업인 사람으로서 저자는 남겨진 이들을 만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한다.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두는 일. “희생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힘이 약하다. 희생자는 말할 수가 없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이내 사라져버리거나 왜곡되기 쉽지만 가해자의 목소리는 끝까지 남아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역사로 기록되곤 한다. 그렇기에 학살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즉 전쟁범죄가 벌어진 바로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놓는 것이 중요했다.” 부차를 비롯해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이르핀과 모티즌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자 애쓴 이 책은 잊혀져서는 안 될 전쟁범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증언을 듣는 동안 저자는 기자의 기본인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그곳 사람들이 느꼈을 무력감과 분노, 슬픔 앞에 휘청거리며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관찰자의 입장으로 간 현장이었지만 “전쟁에선 그 누구도 관찰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솔직한 자기 고백은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마주한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기록자를 따라, 독자들의 마음에도 파문이 일기를 기대한다.

추천평

인류사를 통틀어 지구상에 완전히 전쟁이 없던 날이 단 3일이라고 했던가. 그 3일마저도 지금의 우리 세대와는 상관이 없으니, 우리는 늘 어디선가 전쟁이 계속되는 삶을 살아왔다. 전쟁의 일상성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전쟁을 잊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는 그 ‘일상성’에 의한 ‘역설’에 도전한다. 김민관의 책은 이를 위한 ‘감성’과 ‘디테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그가 다녀온 곳을 반년쯤 뒤에 다시 갈 기회가 있었다. 메디카 검문소, 르비우, 프셰미실 등의 이름들이 그래서 낯설지 않다. 물론 그에 비하면 나는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그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내가 감히 그의 ‘감성’과 ‘디테일’을 흉내 낼 수는 없다. 다만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날 메디카 검문소를 거쳐 폴란드에 들어섰을 때, 밤하늘에 불던 휑한 바람에 느꼈던 그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은 그가 느꼈을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
- 손석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