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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을 붙들고, 사유를 담금질하고, 치열하게 써 내려간 최전선의 책 읽기
재난의 시대,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바야흐로 ‘재난의 시대’이다. 기후위기, 팬데믹, 지정학적 충돌, 불평등의 심화, 정치적 불안 등 위기와 위협의 목록을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위기의식은 날로 선명해지고 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환경 전 분야에 걸쳐 재난이 일상화되고, 해결은 난망하다. 우리는 이 재난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해답을 책에서 찾기 위해 치열하게 읽고 써왔다. 브뤼노 라투르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통해 생태적 전환의 가능성을, 드라마 〈체르노빌〉을 통해 인류세의 감각을, 『클라라와 태양』을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를 고민해왔다. ‘읽기의 최전선’에서 재난의 시대를 헤쳐나갈 최량의 지혜를 모색하기 위해 책을 붙들고, 사유를 담금질하고, 치열하게 써 내려간 지난 3년의 결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재난의 시대,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바야흐로 ‘재난의 시대’이다. 기후위기, 팬데믹, 지정학적 충돌, 불평등의 심화, 정치적 불안 등 위기와 위협의 목록을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위기의식은 날로 선명해지고 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환경 전 분야에 걸쳐 재난이 일상화되고, 해결은 난망하다. 우리는 이 재난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해답을 책에서 찾기 위해 치열하게 읽고 써왔다. 브뤼노 라투르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통해 생태적 전환의 가능성을, 드라마 〈체르노빌〉을 통해 인류세의 감각을, 『클라라와 태양』을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를 고민해왔다. ‘읽기의 최전선’에서 재난의 시대를 헤쳐나갈 최량의 지혜를 모색하기 위해 책을 붙들고, 사유를 담금질하고, 치열하게 써 내려간 지난 3년의 결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목차
책을 펴내며│홍성욱
1부 인류세를 읽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 _『녹색 계급의 출현』│홍성욱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 _『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이두갑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 _『플루리버스』│조문영
김홍중 방사능 폐기물에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_〈체르노빌〉│김홍중
2부 과학기술을 읽다
인간의 조건 _『클라라와 태양』│권보드래 · 송지우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 _『2029 기계가 멈추는 날』│박진호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 _『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비욘드』 『호모 스페이스쿠스』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심채경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 _『웃음이 닮았다』│정우현
3부 위험을 읽다
무해의 시대: 21세기 안전 패러다임의 계보와 전망│김홍중
밤길을 걷는 법: 강화길과 정세랑을 따라 길을 잃다│권보드래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 21세기의 빈곤 통치 _『자동화된 불평등』 『커밍 업 쇼트』│조문영
4부 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
실리콘밸리가 만든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 _『감시 자본주의 시대』│박상현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 _『21세기 자본』│김두얼
밀실에서 나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는가 _『정크스페이스│미래 도시』 『짓기와 거주하기』│강예린
5부 전쟁을 읽다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 _『인도주의(Humane)』│송지우
가족, 서로 죽이고 구원하는: 전쟁 사회의 양극적 대립을 넘어서 _『전쟁과 가족』│권보드래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 _『러일전쟁』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박훈
6부 차별과 연대를 읽다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 _『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조문영
‘진짜’ 자폐인과 자폐인 캐릭터 사이에서 _『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장하원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에 대한 한 신학자의 비판 _『성서, 퀴어를 옹호하다』│홍성욱
‘문란한 돌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_『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서경
1부 인류세를 읽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 _『녹색 계급의 출현』│홍성욱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 _『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이두갑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 _『플루리버스』│조문영
김홍중 방사능 폐기물에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_〈체르노빌〉│김홍중
2부 과학기술을 읽다
인간의 조건 _『클라라와 태양』│권보드래 · 송지우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 _『2029 기계가 멈추는 날』│박진호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 _『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비욘드』 『호모 스페이스쿠스』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심채경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 _『웃음이 닮았다』│정우현
3부 위험을 읽다
무해의 시대: 21세기 안전 패러다임의 계보와 전망│김홍중
밤길을 걷는 법: 강화길과 정세랑을 따라 길을 잃다│권보드래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 21세기의 빈곤 통치 _『자동화된 불평등』 『커밍 업 쇼트』│조문영
4부 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
실리콘밸리가 만든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 _『감시 자본주의 시대』│박상현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 _『21세기 자본』│김두얼
밀실에서 나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는가 _『정크스페이스│미래 도시』 『짓기와 거주하기』│강예린
5부 전쟁을 읽다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 _『인도주의(Humane)』│송지우
가족, 서로 죽이고 구원하는: 전쟁 사회의 양극적 대립을 넘어서 _『전쟁과 가족』│권보드래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 _『러일전쟁』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박훈
6부 차별과 연대를 읽다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 _『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조문영
‘진짜’ 자폐인과 자폐인 캐릭터 사이에서 _『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장하원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에 대한 한 신학자의 비판 _『성서, 퀴어를 옹호하다』│홍성욱
‘문란한 돌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_『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서경
저자 소개
책 속으로
이 시점에서 『읽기의 최전선』을 기획한 것은 가히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앞만 보고 뛰어왔는데, 이제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좋은 서평을 주제별로 묶어서 세상에 한번 내놓을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뒤도 잠깐 돌아보면서 숨을 한번 가다듬고,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 보겠다는 약속이다. 여기 실린 서평들은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21세기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라는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해 주고 싶은 글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으며, 서평의 묘미와 깊이를 감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홍성욱 │ 책을 펴내며」중에서
지금의 위기, 모순, 갈등은 생산의 속도를 줄이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진보 대신 퇴보, 성장 대신 탈성장, 발전(development) 대신 감싸기(envelopment)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성장을 멈추고 후퇴해야 함을 외치는 지금의 투쟁은 19세기에 자본주의가 등장했을 때의 계급 투쟁보다 더 급진적이다. 19세기의 투쟁이 생산을 그 본래 의미로 이어 가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지금의 투쟁은 생산을 쇠퇴시키고 우리 존재의 생성(engendering)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19세기 노동 계급이 생산수단을 탈취해서 제대로 된 생산 체계를 확보하기 위해 싸웠다면, 지금의 투쟁을 주도하는 녹색 계급은 생성 체계를 지탱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홍성욱 │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중에서
클라인과 닉슨의 책은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며 그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책을 읽은 후에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두 책은 무엇보다 극단적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무분별한 자원 채취와 오염을 통해 지구와 우리 몸에 느린, 그렇지만 거대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다.
---「이두갑 │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중에서
이 책의 독특함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복원하기 위한 도구, 전환을 위한 행위 방식과 존재 형태를 만드는 기술로서 디자인에 주목하고, 디자인의 관점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만개한 전환의 움직임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에스코바르는 묻는다. “시장에 종속된 디자인이 형태와 개념, 영토와 물질을 지닌 창조적 실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특히 지구와 함께 호흡하는 삶을 기획하기 위해 투쟁하는 서발턴 공동체에 적합한 디자인을 설계할 수 있을까?”
---「조문영 │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중에서
[체르노빌]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적어도 1945년 지구상에 핵문명이 시작된 이후 지구의 생명체들은 모두 피폭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이다. 즉, 참사에서 죽어간 희생자들만이 피폭자인 것이 아니라, 지구적 중생(衆生) 모두가 잠재적 피폭자라는 사실에 대한 각성이다. 지구 시스템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돌아 내 코앞에 도착한 공기를 우리는 마신다.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흘러 내 손에 쥐어진 한 컵의 물을 나는 마신다. 이 광대한 물질적 순환의 흐름은 지구 위의 어떤 존재에게도 특권적 은신처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인류세의 참된 의미는 바로 이 은신처의 불가능, 피난의 불가능성이다.
---「김홍중 │ 방사능 폐기물에도 불성(佛性)이 있는가?」중에서
인간의 마음이란 방 안에 방이 있는 것 같아서 그 복잡성을 다 파악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때 클라라가 “아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나요? 인간의 마음,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개별성이나 고유성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권보드래) 인간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어떤 면에서는 인공지능의 등장 이전에 이미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가령 노동 시장에서 일부 직군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가능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요. ‘인간이 이렇듯 여러 의미로 대체 가능한데도 불가침성을 지니는 이유가 무엇인가’가 더 정확한 질문이지 않나 싶네요.(송지우)
---「권보드래 · 송지우 │ 인간의 조건」중에서
기계 학습, 그중에서도 딥러닝이 몇몇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인간에 필적하는, 또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은 바로 이 점을 힘주어 설파하고 있다. 딥러닝을 포함한 기계 학습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신중한 성찰보다는 섣부른 과장 광고가 성행하고 있는 요즘 이 책의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고 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진호 │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중에서
탐험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기도 하다. 생존하기에는 너무나 불리한 우주 공간으로 뛰쳐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주 작은 소행성의 흙을 퍼오려다가 너무 큰 충격을 가해 소행성을 지구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려놓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지구에서 숱하게 경험했던 무분별한 개척과 수탈의 역사가 우주에서까지 반복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은 우주 상업화의 달콤한 열매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두려움이 덮어 버리는 모양새다. 우리는 겪어 봐서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겪어 봐야 알더라는 것을.
---「심채경 │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중에서
유전적 결함은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다. 유전적 한계는 도리어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꾸고 운명을 새로 개척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유전자만 전해 줄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게 될 새로운 환경 또한 정성껏 물려주어야 한다.
---「정우현 │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중에서
비인간의 얼굴들, 도처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 죽이지 말라’고 외치는 이 얼굴들도 이제 외면할 수 없다. 고통의 자리는 역동적으로 분열되어 간다. 거기에는 절대적 경계도 없고, 특권적 위치도 없다. 더 괴로워하는 존재는 언제나 어딘가에 있으며, 반드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무해의 시대는 고통이 회피되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껏 인정되지 못했던 새로운 고통을 기왕의 것들과 연결하는, 강인하고 질긴 망(網)이 엮어지는 그런 시대다.
---「김홍중 │ 무해의 시대」중에서
이토록 흔한 ‘안전’과 ‘안심’이란 구호는 역설적으로 그 갈망이 충족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안전’은 어떻게 달성될 수 있을까. 가령 ‘안전’의 주체로 호명되는 ‘여성’을 위해서는 치안과 성평등이, ‘청년’을 위해서는 직업과 주거 공간이 갖춰지면 되는 것일까. 함께 ‘안전’해야 할 다른 주체들의 자리는 어디 있는가. ‘안전’을 우선시하는 한 정부와 국가의 개입을, 감시와 통제와 증명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것일까.
---「권보드래 │ 밤길을 걷는 법」중에서
불안한 삶들이 표류하는 세계다. 불안이 다른 불안을 마주하지 못할 때, 구조적 배제로든 자동화 기술로든 멀리하고 밀어낼 때, ‘안전’은 ‘위험’과 동의어가 된다. 자기 구원에 매몰된 인간들의 헛된 노력을 탓할 것이 아니라, 한국어판 서문에서 실바가 던진 질문을 모두의 화두로 곱씹는 편이 낫겠다. “전 지구적 불안과 정치적 격변으로 흔들리는 시대에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집단적 동원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자기 단절이나 방어적인 고립에 맞설 제도들을 건설할 수 있을까?”
---「조문영 │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중에서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 자체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라고 주장한다. (……) 온라인,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일어나는 여론의 분극화(polarization)를 보면 “순한 양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알고리즘이
해낸 일이다. 사회를 분열시키지만 소셜미디어 기업에게는 이익이 되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사용자들은 이미 말을 잘 듣는 양 떼일 뿐이다.
---「박상현 │ 실리콘밸리가 만든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중에서
과연 피케티는 어떻게 이런 접근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불평등에 대한 역사 자료 분석을 기초로 어떤 주장을 했을까? 그의 주장은 자신이 제시한 논리적·실증적 증거와 잘 부합할까? 이 질문들을 따져 보며 『21세기 자본』을 읽는 것이야말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을 대하는 제대로 된 자세일 것이다.
---「김두얼 │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중에서
정크푸드가 영양가가 부실한 인스턴트 혹은 패스트푸드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정크스페이스는 도시나 건축의 역사적인 맥락과 무관하게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 공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정크스페이스는 건축가의 의도와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계산이 디자인을 대신하여, 더 많은 물건의 노출과 거래와 면적을 생성한다. 외부 형태나 건물의 형식은 없고, 마치 번식하듯이 공간은 쉽게 만들어진다. (……) 쇼핑의 논리만으로 존재하는 내부 공간 혹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추상화한 것이다.
---「강예린 │ 밀실에서 나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는가」중에서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적국의 모든 것을 정당한 군사 표적으로 간주하는 ‘총력전(total war)’이 난무하는 세상보다는 국제인도법이 관철되는 세상이 낫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인도주의』는 이런 상식적 판단에 어두운 이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참혹함을 최소화한 인도적 전쟁의 시대는 또한 조용하고 정밀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종착점도 없는, 영구 전쟁(forever wars)의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더 나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모인에게 국제인도법이 내세우는 인도주의(humanitarianism)의 대척점은 총력전이 아니라 평화주의(pacism)이다.
---「송지우 │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중에서
동아시아의, 한반도의, 한국 내의 문제는 (탈)식민과 (탈)냉전이 얽힌 양상으로 나날이 어지럽다. 냉전이 끝났는데 정치·경제적 격변 속 갈등만 기승스러워지다니. ‘너도 빨갱이(의 가족)인가?’라는 겁박에 모두가 시달렸던 세월을 겨우 벗어났는데, ‘좌빨’이나 ‘수구꼴통’이란 적대(敵對)의 레테르가 횡행하는 세태라니. ‘가족’은 무력하고 ‘애도’도 무기력하다. ‘진실’은 어디까지 추구돼야 하고 ‘화해’는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어지간한 지혜는 충돌의 불쏘시개감이 되고 마는 시절이다.
---「권보드래 │ 가족, 서로 죽이고 구원하는」중에서
한국 시민들은 나라가, 특히 국제 정세가 어려울 때면 곧잘 구한말을 입에 올린다. “구한말 때도 이랬다”든가 “정신 못 차리면 구한말 때처럼 나라 망한다”든가 하는 말들 말이다. 70년가량 버텨 온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동요하고 있는 요즘, ‘구한말’ 소리가 부쩍 자주 들린다. 그런데 구한말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인가. 무슨 일을 떠올리며 구한말을 말하는가.
---「박훈 │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중에서
가난과 싸워 온 사람들이 가난한 개인을 전면에 등장시켰을 때, 이 개인의 몸이 다른 사람, 사물, 법, 정책과 연결되면서 펼쳐지는 세계를 서사화·역사화할 때, 우리는 은막의 구조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배치(assemblage)를 들여다보고, 숙고의 시간을 갖는다. 거대한 불평등의 시대, 선진국 진입을 자축하는 나라에서 이 배치가 정말 최선인지, 우리가 이 배치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어떤 연결이 생명에 대한 동료 인간의 예의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조문영 │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중에서
이제는 우영우 실험이 남긴 잔상과 질문들에 집중할 시간이다. 좋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직업 세계에서 비장애인이 성장하듯 장애인도 성장하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우영우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영우와는 다른 자폐인, 다른 장애인이라면 어떨까? 현실의 자폐인과 장애인이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
---「장하원 │ ‘진짜’ 자폐인과 자폐인 캐릭터 사이에서」중에서
신학자 박경미는 신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의 진화 과정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가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본다. 동성애에 대한 최근의 과학 연구들은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가 선천적인 유전적 요소, 태아 시기의 호르몬의 영향, 출산 초기와 영유아 시절의 환경의 복합적 영향 때문에 생기며, 개인이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보여 주고 있다. (……)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적 지향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고 강요한다면 이것은 폭력이자 반인권적 처사이다. 아마 예수가 살아 있다면 가장 먼저 호통치고 야단칠 대상이 지금의 한국 교회일 것이다.
---「홍성욱 │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중에서
나는 일생을 함께할 파트너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을 부양하거나 대리할 가족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대표로 등장하는 운동에 함께하고 싶다. 각각 혼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 혼자서도 살 만한 사회를 상상하고 요구하고 싶다. 그 ‘혼자’가 알아서 스스로 일하고 돌보는, 신용과 능력이 있는 1인 가구 모델이 아니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나눠야 할 말들이 있다고 느낀다.
---「홍성욱 │ 책을 펴내며」중에서
지금의 위기, 모순, 갈등은 생산의 속도를 줄이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진보 대신 퇴보, 성장 대신 탈성장, 발전(development) 대신 감싸기(envelopment)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성장을 멈추고 후퇴해야 함을 외치는 지금의 투쟁은 19세기에 자본주의가 등장했을 때의 계급 투쟁보다 더 급진적이다. 19세기의 투쟁이 생산을 그 본래 의미로 이어 가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지금의 투쟁은 생산을 쇠퇴시키고 우리 존재의 생성(engendering)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19세기 노동 계급이 생산수단을 탈취해서 제대로 된 생산 체계를 확보하기 위해 싸웠다면, 지금의 투쟁을 주도하는 녹색 계급은 생성 체계를 지탱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홍성욱 │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중에서
클라인과 닉슨의 책은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키며 그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책을 읽은 후에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기후위기와 환경 오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두 책은 무엇보다 극단적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무분별한 자원 채취와 오염을 통해 지구와 우리 몸에 느린, 그렇지만 거대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다.
---「이두갑 │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중에서
이 책의 독특함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복원하기 위한 도구, 전환을 위한 행위 방식과 존재 형태를 만드는 기술로서 디자인에 주목하고, 디자인의 관점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만개한 전환의 움직임을 탐구한다는 점이다. 에스코바르는 묻는다. “시장에 종속된 디자인이 형태와 개념, 영토와 물질을 지닌 창조적 실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특히 지구와 함께 호흡하는 삶을 기획하기 위해 투쟁하는 서발턴 공동체에 적합한 디자인을 설계할 수 있을까?”
---「조문영 │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중에서
[체르노빌]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적어도 1945년 지구상에 핵문명이 시작된 이후 지구의 생명체들은 모두 피폭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이다. 즉, 참사에서 죽어간 희생자들만이 피폭자인 것이 아니라, 지구적 중생(衆生) 모두가 잠재적 피폭자라는 사실에 대한 각성이다. 지구 시스템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돌아 내 코앞에 도착한 공기를 우리는 마신다. 어느 한 곳 빠지지 않고 흘러 내 손에 쥐어진 한 컵의 물을 나는 마신다. 이 광대한 물질적 순환의 흐름은 지구 위의 어떤 존재에게도 특권적 은신처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 인류세의 참된 의미는 바로 이 은신처의 불가능, 피난의 불가능성이다.
---「김홍중 │ 방사능 폐기물에도 불성(佛性)이 있는가?」중에서
인간의 마음이란 방 안에 방이 있는 것 같아서 그 복잡성을 다 파악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때 클라라가 “아마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나요? 인간의 마음,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개별성이나 고유성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권보드래) 인간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어떤 면에서는 인공지능의 등장 이전에 이미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가령 노동 시장에서 일부 직군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 가능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요. ‘인간이 이렇듯 여러 의미로 대체 가능한데도 불가침성을 지니는 이유가 무엇인가’가 더 정확한 질문이지 않나 싶네요.(송지우)
---「권보드래 · 송지우 │ 인간의 조건」중에서
기계 학습, 그중에서도 딥러닝이 몇몇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방식으로 인간에 필적하는, 또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은 바로 이 점을 힘주어 설파하고 있다. 딥러닝을 포함한 기계 학습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신중한 성찰보다는 섣부른 과장 광고가 성행하고 있는 요즘 이 책의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고 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진호 │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중에서
탐험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기도 하다. 생존하기에는 너무나 불리한 우주 공간으로 뛰쳐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주 작은 소행성의 흙을 퍼오려다가 너무 큰 충격을 가해 소행성을 지구로 가는 고속도로에 올려놓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지구에서 숱하게 경험했던 무분별한 개척과 수탈의 역사가 우주에서까지 반복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은 우주 상업화의 달콤한 열매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두려움이 덮어 버리는 모양새다. 우리는 겪어 봐서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겪어 봐야 알더라는 것을.
---「심채경 │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중에서
유전적 결함은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다. 유전적 한계는 도리어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꾸고 운명을 새로 개척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유전자만 전해 줄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게 될 새로운 환경 또한 정성껏 물려주어야 한다.
---「정우현 │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중에서
비인간의 얼굴들, 도처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 죽이지 말라’고 외치는 이 얼굴들도 이제 외면할 수 없다. 고통의 자리는 역동적으로 분열되어 간다. 거기에는 절대적 경계도 없고, 특권적 위치도 없다. 더 괴로워하는 존재는 언제나 어딘가에 있으며, 반드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무해의 시대는 고통이 회피되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껏 인정되지 못했던 새로운 고통을 기왕의 것들과 연결하는, 강인하고 질긴 망(網)이 엮어지는 그런 시대다.
---「김홍중 │ 무해의 시대」중에서
이토록 흔한 ‘안전’과 ‘안심’이란 구호는 역설적으로 그 갈망이 충족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안전’은 어떻게 달성될 수 있을까. 가령 ‘안전’의 주체로 호명되는 ‘여성’을 위해서는 치안과 성평등이, ‘청년’을 위해서는 직업과 주거 공간이 갖춰지면 되는 것일까. 함께 ‘안전’해야 할 다른 주체들의 자리는 어디 있는가. ‘안전’을 우선시하는 한 정부와 국가의 개입을, 감시와 통제와 증명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것일까.
---「권보드래 │ 밤길을 걷는 법」중에서
불안한 삶들이 표류하는 세계다. 불안이 다른 불안을 마주하지 못할 때, 구조적 배제로든 자동화 기술로든 멀리하고 밀어낼 때, ‘안전’은 ‘위험’과 동의어가 된다. 자기 구원에 매몰된 인간들의 헛된 노력을 탓할 것이 아니라, 한국어판 서문에서 실바가 던진 질문을 모두의 화두로 곱씹는 편이 낫겠다. “전 지구적 불안과 정치적 격변으로 흔들리는 시대에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집단적 동원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자기 단절이나 방어적인 고립에 맞설 제도들을 건설할 수 있을까?”
---「조문영 │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중에서
주보프는 감시 자본주의 자체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라고 주장한다. (……) 온라인,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일어나는 여론의 분극화(polarization)를 보면 “순한 양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알고리즘이
해낸 일이다. 사회를 분열시키지만 소셜미디어 기업에게는 이익이 되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사용자들은 이미 말을 잘 듣는 양 떼일 뿐이다.
---「박상현 │ 실리콘밸리가 만든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중에서
과연 피케티는 어떻게 이런 접근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불평등에 대한 역사 자료 분석을 기초로 어떤 주장을 했을까? 그의 주장은 자신이 제시한 논리적·실증적 증거와 잘 부합할까? 이 질문들을 따져 보며 『21세기 자본』을 읽는 것이야말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을 대하는 제대로 된 자세일 것이다.
---「김두얼 │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중에서
정크푸드가 영양가가 부실한 인스턴트 혹은 패스트푸드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정크스페이스는 도시나 건축의 역사적인 맥락과 무관하게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 공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정크스페이스는 건축가의 의도와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계산이 디자인을 대신하여, 더 많은 물건의 노출과 거래와 면적을 생성한다. 외부 형태나 건물의 형식은 없고, 마치 번식하듯이 공간은 쉽게 만들어진다. (……) 쇼핑의 논리만으로 존재하는 내부 공간 혹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추상화한 것이다.
---「강예린 │ 밀실에서 나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는가」중에서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적국의 모든 것을 정당한 군사 표적으로 간주하는 ‘총력전(total war)’이 난무하는 세상보다는 국제인도법이 관철되는 세상이 낫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인도주의』는 이런 상식적 판단에 어두운 이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참혹함을 최소화한 인도적 전쟁의 시대는 또한 조용하고 정밀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종착점도 없는, 영구 전쟁(forever wars)의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더 나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모인에게 국제인도법이 내세우는 인도주의(humanitarianism)의 대척점은 총력전이 아니라 평화주의(pacism)이다.
---「송지우 │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중에서
동아시아의, 한반도의, 한국 내의 문제는 (탈)식민과 (탈)냉전이 얽힌 양상으로 나날이 어지럽다. 냉전이 끝났는데 정치·경제적 격변 속 갈등만 기승스러워지다니. ‘너도 빨갱이(의 가족)인가?’라는 겁박에 모두가 시달렸던 세월을 겨우 벗어났는데, ‘좌빨’이나 ‘수구꼴통’이란 적대(敵對)의 레테르가 횡행하는 세태라니. ‘가족’은 무력하고 ‘애도’도 무기력하다. ‘진실’은 어디까지 추구돼야 하고 ‘화해’는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어지간한 지혜는 충돌의 불쏘시개감이 되고 마는 시절이다.
---「권보드래 │ 가족, 서로 죽이고 구원하는」중에서
한국 시민들은 나라가, 특히 국제 정세가 어려울 때면 곧잘 구한말을 입에 올린다. “구한말 때도 이랬다”든가 “정신 못 차리면 구한말 때처럼 나라 망한다”든가 하는 말들 말이다. 70년가량 버텨 온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동요하고 있는 요즘, ‘구한말’ 소리가 부쩍 자주 들린다. 그런데 구한말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인가. 무슨 일을 떠올리며 구한말을 말하는가.
---「박훈 │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중에서
가난과 싸워 온 사람들이 가난한 개인을 전면에 등장시켰을 때, 이 개인의 몸이 다른 사람, 사물, 법, 정책과 연결되면서 펼쳐지는 세계를 서사화·역사화할 때, 우리는 은막의 구조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배치(assemblage)를 들여다보고, 숙고의 시간을 갖는다. 거대한 불평등의 시대, 선진국 진입을 자축하는 나라에서 이 배치가 정말 최선인지, 우리가 이 배치에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어떤 연결이 생명에 대한 동료 인간의 예의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조문영 │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중에서
이제는 우영우 실험이 남긴 잔상과 질문들에 집중할 시간이다. 좋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직업 세계에서 비장애인이 성장하듯 장애인도 성장하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우영우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영우와는 다른 자폐인, 다른 장애인이라면 어떨까? 현실의 자폐인과 장애인이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
---「장하원 │ ‘진짜’ 자폐인과 자폐인 캐릭터 사이에서」중에서
신학자 박경미는 신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의 진화 과정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가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본다. 동성애에 대한 최근의 과학 연구들은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가 선천적인 유전적 요소, 태아 시기의 호르몬의 영향, 출산 초기와 영유아 시절의 환경의 복합적 영향 때문에 생기며, 개인이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보여 주고 있다. (……)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성적 지향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고 강요한다면 이것은 폭력이자 반인권적 처사이다. 아마 예수가 살아 있다면 가장 먼저 호통치고 야단칠 대상이 지금의 한국 교회일 것이다.
---「홍성욱 │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중에서
나는 일생을 함께할 파트너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을 부양하거나 대리할 가족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대표로 등장하는 운동에 함께하고 싶다. 각각 혼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 혼자서도 살 만한 사회를 상상하고 요구하고 싶다. 그 ‘혼자’가 알아서 스스로 일하고 돌보는, 신용과 능력이 있는 1인 가구 모델이 아니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나눠야 할 말들이 있다고 느낀다.
---「서경 │ ‘문란한 돌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울리뷰오브북스』창간 3주년 특별판, 『읽기의 최전선』
77인의 필자, 198권의 리뷰 도서, 156편의 서평.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바람을 담아 창간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지난 3년간 더 나은 지식 공론장을 위해 뿌린 씨앗이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3주년 특별판 『읽기의 최전선』은 그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혹은 오늘날 더욱더 긴박한 사유와 성찰을 요하는 이슈들인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를 주제로 한 열다섯 명의 필자들의 서평 스물한 편을 한 권으로 다시 엮어냈다.
1부 ‘인류세를 읽다’는 홍성욱·조문영·김홍중 편집위원과 이두갑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가 기후위기와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현실로 닥친 생태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2부 ‘과학기술을 읽다’에서는 권보드래·송지우·박진호·심채경·정우현 편집위원이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 유전학 분야의 현주소를 고찰한다. 3부 ‘위험을 읽다’는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호의 특집 ‘안전의 역습’을 재구성한 것으로, 김홍중·권보드래·조문영 편집위원이 우리 시대 위험과 안전의 지형을 살핀다. 4부 ‘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에서는 칼럼니스트 박상현과 김두얼·강예린 편집위원의 리뷰를 통해 21세기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자본, 도시, 감시 체계를 들여다본다. 5부 ‘전쟁을 읽다’는 ‘전쟁의 해’를 지나오며 구한말과 한국 전쟁이라는 과거와 인도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전쟁을 송지우·권보드래·박훈 편집위원이 톺아본다. 마지막 6부에서는 ‘차별과 연대를 읽다’라는 제목 아래 조문영·홍성욱 편집위원과 과학기술학 연구자 장하원, 편집자 서경이 빈자, 자폐인, 성소수자의 삶과 연대를 읽는다.
오늘의 이슈를 책으로 읽고, 서평으로 사유한다!
“이 시점에서 『읽기의 최전선』을 기획한 것은 가히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앞만 보고 뛰어왔는데, 이제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좋은 서평을 주제별로 묶어서 세상에 한번 내놓을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뒤도 잠깐 돌아보면서 숨을 한번 가다듬고,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 보겠다는 약속이다. 여기 실린 서평들은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21세기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라는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해 주고 싶은 글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으며, 서평의 묘미와 깊이를 감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첫 편집장 홍성욱, 「책을 펴내며」
서평 전문지로 알려진 『뉴욕리뷰오브북스』와 『런던리뷰오브북스』가 창간된 지 각각 61년, 45년이 지났다. 누군가에게는 세계를 보는 창(窓)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손꼽아 기다리는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던 서평은 지성사의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평 덕분에 생명력을 얻은 책들은 때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바람을 담아 2020년 12월 창간준비호(0호)를 거쳐 2021년 3월 창간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어느덧 창간 3주년을 맞았다. 창간 3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3년간 책을 붙들고 치열하게 담금질한 사유와 성찰을 한 권으로 엮었다. 우리 시대의 숱한 위기들을 헤쳐 나가는 데 작은 밀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기의 최전선’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부터 원자력 발전소 사고까지,
인류세를 읽다
첫 번째 최전선은 ‘인류세’다. 기후위기의 현실 속에 ‘녹색 계급’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주목하는 홍성욱, 자본주의에 의한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을 직시하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조문영,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참사 속에서 인류세라는 현실을 인식하는 김홍중의 리뷰를 한데 모았다.
“지금 당장 녹색 계급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리뷰오브북스』 첫 편집장인 과학기술학자 홍성욱은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들여다본다. 라투르가 평생 치열하게 연구?고민하며 형성해 간 그의 사상을 책 속 ‘녹색 계급’을 통해 살펴보고, 더 이상 “지구공동체가 직면한” 큰 위기를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되기 전에 막아보자고 책의 목소리를 빌려 외친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생존을 위해 채취와 오염 생산에 동원되는 빈자들을 위해 어떻게 정의를 구현할 것인가?” 이두갑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는 「기후 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에서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롭 닉슨의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를 리뷰한다. “기후 위기의 구조적 배경과 재난의 일상성”의 극복을 아프리카의 빈자와 작가-활동가들의 실천적·대안적 활동에서 찾는다.
“새로운 위기는 새로운 대안을 요구한다.” 인류학자 조문영은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에서 『플루리버스』의 서평을 실었다. 조문영은 콜롬비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가 책에서 주장한 “자본주의?제국주의”를 넘어선 “다중의 우주와 세계인” 플루리버스가 가리키는 방향성에 십분 동의함을 피력한다. 또한,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존재론-디자인-정치의 관계를 둘러싸고 더 풍성한 질문, 비판, 논쟁, 제안을 촉구한다.
“인류세의 참된 의미는 바로 이 은신처의 불가능, 피난의 불가능성이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체르노빌』을 통해 인류에게 닥친 참사의 흔적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환기하며 다층적 질문을 길어 올린다. “방사능에 오염된 산천초목에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사유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거쳐 인류세에 이른다.
인공지능, 우주 탐사, 유전학까지,
과학기술을 읽다
두 번째 최전선은 ‘과학기술’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조건을 질문하는 권보드래와 송지우,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와 현주소를 톺아보는 박진호,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심채경, 유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정우현의 리뷰를 모았다.
“인간이 이렇듯 여러 의미로 대체 가능한데도 불가침성을 지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학연구자 권보드래와 정치철학 연구자 송지우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대담 형식의 서평을 시도했다. 권보드래와 송지우는 각각의 자리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따로 또 같이 리뷰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인공지능의 미래 시대의 면면을 ‘클라라’라는 AF(Artificial Friend)의 시선으로 조망하는 『클라라와 태양』은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다. ‘클라라의 눈으로 본 세계’에서 인간다움의 조건은 어떻게 설명되는지, 인공지능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클라라가 어떤 인간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지, 그로 인해 독자가 느끼는 불안과 긴장의 원천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또 분열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능력주의화된 세상 속에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소외, 차별하는지 설명한다. 두 편집위원은 오늘의 세계를 반영하는 이러한 모습을 훑고 경제, 교육, 인간관계 등의 주제 등을 건드리며 교차, 대화의 가능성과 서평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인간에 필적하는, 또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언어학자 박진호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에서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의 서평을 실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에 대한 세간의 과도한 관심과 기대 속에, 독자로 하여금 현재 인공지능 기술로 “할 수 있는 일과 한계”를 신중하게 돌아보게 하는 데 이 책의 효용이 있다고 말한다.
“탐험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기도 하다.” 천문학자·행성과학자 심채경은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에서 2020년에 출판된 ‘우주 탐사’ 관련 서적 4권을 리뷰한다.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호모 스페이스쿠스』, 『비욘드』,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에 대한 서평을 통해, 심채경은 인류의 DNA에 새겨진 탐험 유전자를 읽어내며, 우주 탐사를 위한 인류의 기나긴 탐험의 여정을 개관한다.
“유전만큼이나 우리 존재에 중대하게 기여하는 환경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분자생물학자 정우현은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에서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칼 짐머는 유전이 수평적으로도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전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칼 짐머를 따라 유전만큼이나 환경이 우리 존재에 중대하게 기여함을 지적한다. 이와 같이, 저자는 유전의 역사를 돌아보며 통념을 벗어나 유전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음을 보인다.
우리 시대 위험과 안전의 지형도
위험을 읽다
세 번째 최전선은 ‘위험’이다. ‘지금, 여기’의 안전을 수시로 묻고 위험과 안전이 범용어처럼 회자되는 오늘날, 불안에 맞선 시도는 또 다른 위험을 낳고 있다. 불안에 쫓긴 존재들은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기보다 절연, 감시, 고발, 응징으로 폭력에 맞선다. 3부 ‘위험을 읽다’는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호의 ‘안전의 역습’ 특집을 재구성한 것으로, 사회학자 김홍중, 문학연구자 권보드래, 인류학자 조문영이 함께 그리는 우리 시대 위험과 안전의 지형도를 담고 있다.
“무해의 시대는 이제껏 인정되지 못했던 새로운 고통을 기왕의 것들과 연결하는, 강인하고 질긴 망이 엮어지는 그런 시대다!” 김홍중은 「무해의 시대」라는 글에서 21세기 안전 패러다임의 계보와 전망을 다룬다. ‘무해한 사회’를 지향하는 안전의 욕망이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정치적 힘을 행사했는지 살피고 있다. 무해의 욕망을 과도한 안전주의나 허위의식으로 비판하기보다, 유사한 위험을 공유하는 존재들의 새로운 연결 가능성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여학생드을! 알아서 살아남는 거야!” 권보드래의 「밤길을 걷는 법」에서 이 시대 여성이 느끼는 공포를 다룬다. 권보드래는 강화길과 정세랑의 소설을 따라 비틀걸음을 걸으며 21세기 대한민국 여성의 공포와 대면한다. 강화길의 소설은 심야의 뒷골목 같다. 반면에 휴식 같고 위안 같고 오랜만에 보는 웃음 같은 정세랑 월드도 있다. 완벽한 안전에 대한 열망에 공감했다 반발했다 끝내 입장을 정하지 못하면서도, 여기에 “갇히지” 말 것을 그들에게 바라고, 자신에게 다짐한다.
“안전할 권리를 외치는 우리 바깥에 머무는 한, 그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언제나 출몰할 수 있다.” 조문영은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라는 글을 통해, 21세기의 빈곤 통치를 다룬다.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빈곤 통치에 대한 경고장으로 『자동화된 불평등』을, ‘디지털 구빈원’에 갇힌 사람들의 침묵을 이해하기 위한 통로로 『커밍 업 쇼트』를 읽는다. ‘안전이 권리’라는 구호가 안전의 위협으로 내몰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지 묻는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어떻게 변모했는가
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
네 번째 최전선은 ‘21세기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안경을 통해 보면, 21세기의 자본주의는 19세기, 20세기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외피를 띄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테크 기업들이 지배하는 감시 자본주의를 살펴본 박상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리뷰한 김두얼, 쇼핑으로 점철된 도시 공간을 성찰하는 강예린이 21세기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자본, 감시 체계, 도시를 살펴본다.
“순한 양들로 이루어진 전체주의 사회가 인류의 미래가 될까?” 칼럼니스트 박상현은 쇼샤나 주보프의 저서 『감시 자본주의 시대』를 통해 감시 자본주의 개념과 그 함의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테크 기업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박상현은 감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라는 주보프의 견해를 강조하며,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경고한다.
“세상에 완벽한 연구는 없다.” 경제학자 김두얼은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에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통해 ‘한국 경제 위기 담론’을 자세히 다룬다. 피케티의 학계에서의 “입지와 학문적 배경을 충실히 살피면서” “대가”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길 권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어떻게 밀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건축가 강예린은 렘 콜하스와 프레드릭 제임슨의 저서 『정크스페이스 | 미래 도시』와 리처드 세넷의 저서 『짓기와 거주하기』를 통해 팬데믹과 공간의 문제를 다루며 ‘열린 공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정크스페이스」가 쇼핑 공간이 광장과 거리와 모퉁이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한국의 밀실에 어떻게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저자는 질문한다.
‘전쟁의 해’를 지나오며, 어제와 오늘의
전쟁을 읽다
다섯 번째 최전선은 ‘전쟁’이다. 2023년은 끝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목도한, ‘전쟁의 해’였다. 5부 ‘전쟁을 읽다’에서는 평화에 이를 수 없는 인도주의의 한계를 짚는 송지우, 한국전쟁기 고발과 학살의 기록을 살피는 권보드래, 구한말 대한제국을 둘러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되돌아보는 박훈이 어제와 오늘의 전쟁을 화두로 다룬다.
“인도주의의 대척점은 총력전이 아니라 평화주의이다.” 송지우는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에서 새뮤얼 모인의 『인도주의(Humane)』를 리뷰했다. 이 책에서 모인은 『인권이란 무엇인가』, 『충분하지 않다』에서의 논쟁을 ‘국제인도법’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해서 가져온다. 그는 ‘인도주의의 확산이 평화주의의 성장을 막는다’는 모인의 주장에도 전쟁이 종속되지 않았다는 “슬픈 사실”을 지적하며, ‘인도적 전쟁’은 괜찮다며, 더 나아간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진보 진영의 “윤리적 안일함과 상상력의 빈곤”에 씁쓸함을 보낸다.
“친밀한 존재끼리 휘두른 폭력의 세계.” 권보드래는 권헌익의 저서 『전쟁과 가족』을 통해 전쟁이라는 재난을 겪었던 70년 전의 한국 사회를 지금 이곳에 불러낸다. 『전쟁과 가족』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을 추적하는 대신 부역, 고발, 학살 등 한반도 주민들이 생활 세계에서 겪은 전쟁을 추적한다. 권보드래는 권헌익의 시선을 따라 전쟁 중과 전쟁 이후의 화해와 치유의 노력을 톺아보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 진실과 화해, 애도와 존엄의 현주소를 성찰한다.
“설마 했던 전쟁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실제로 일어났다.” 역사학자 박훈은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에서 구한말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 역사학계의 도달점을 보여주는 책 두 책, 『러일전쟁』과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를 리뷰한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구한말의 경험을 다시금 읽는다.
차별을 넘어 연대로,
차별와 연대를 읽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최전선은 ‘차별과 연대’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오늘을, ‘대혐오의 시대’라 지칭하고는 한다. 6부 ‘차별과 연대를 읽다’에서는 쪽방촌 주민들의 고투를 이야기하는 조문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대본집을 리뷰하는 장하원,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를 바라보며 종교의 역할을 질문하는 홍성욱, 성소수자 주거 공동체를 통해 주거와 가족, 돌봄의 의미를 질문하는 서경이 홈리스, 자폐인과 장애인, 성소수자의 취약한 삶, 저항과 연대를 읽는다.
“가난은 쉽게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다.” 조문영은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에서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로, 자본주의 시대에 빈자들의 주거에 대한 문제 제기 앞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담담히 묻는다. “서울역 맞은편 양동 쪽방촌” 주민과 활동가 등이 함께 만들어 온 이 책을 빈자의 “섬세한 선언문”으로 고쳐 읽는다.
“이제는 우영우 실험이 남긴 잔상과 질문들에 집중할 시간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장하원은 「자폐인 변호사라는 실험」에서 올해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본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서평을 썼다. ‘자폐인도 직업인으로서 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대본을 써내려 간 저자의 질문에 드라마가 아닌,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답을 찾는다. 다소 엉뚱하고 귀엽지만, 무해한 ‘우영우’라는 캐릭터와 ‘변호사’라는 직업 세계가 드라마 속 판타지로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자폐인도 장애인도 현실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점이 무엇인지 묻고, 특히 개인보다 사회 구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마 예수가 살아 있다면 가장 먼저 호통치고 야단칠 대상이 지금의 한국 교회일 것이다.” 홍성욱의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는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에 대한 한 신학자의 비판을 담았다. 박경미의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의 서평을 통해, 동성애는 진정으로 기독교의 교리와 어긋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구해 본다. 필자는 이 책이 동성애를 배척하는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증거로 삼는 성경의 몇몇 구절들에 대해서 대안적인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과학기술학자로서 홍성욱은 동성애에 대한 최근의 과학 연구들을 보면서 신학자 박경미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며, 이를 토대로 한국 교회나 한국 보수 개신교계를 비판한다.
“무엇을 위해 가족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집을 어떻게 본래 목적으로 되돌릴 것인가라는 질문과 나란히 놓여 있다.” 서경은 「‘문란한 돌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를 투고하여, 성소수자 주거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은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를 소개했다. 서경은 무지개집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두고, 성소수자를 돌보지 않는 국가에 맞서, 국가의 역할을 민간에서 먼저 해 보이는 방식의 저항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서경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있어 제도적 변화가 지니는 한계를 지적하며 제도를 넘나드는 다양한 상상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집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성찰을 제기한다.
『서울리뷰오브북스』에 관한 리뷰/코멘트
단순히 도서의 요약이나 그럴싸한 문장들의 수사가 아니라, 연구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사유를 여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의미 있는 도서들을 중심으로 각 분야 연구자들의 관점이 있는 사유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서울리뷰오브북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 라** 알라딘 리뷰어
정말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관한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에게 다양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 d***s 예스24 리뷰어
서평은 그 대상이 되는 책으로부터 파생된 글이지만 독립적인 텍스트로서도 흥미롭다. … 서평은 독서 경험의 부수물이자 하나의 창작물로서 종종 책이 담고 있는 논지의 지평을 뛰어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작품이 되며 별개의 독서가 된다. … 1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20권이 넘는 책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 오* 네이버 리뷰어
77인의 필자, 198권의 리뷰 도서, 156편의 서평.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바람을 담아 창간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지난 3년간 더 나은 지식 공론장을 위해 뿌린 씨앗이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3주년 특별판 『읽기의 최전선』은 그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혹은 오늘날 더욱더 긴박한 사유와 성찰을 요하는 이슈들인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를 주제로 한 열다섯 명의 필자들의 서평 스물한 편을 한 권으로 다시 엮어냈다.
1부 ‘인류세를 읽다’는 홍성욱·조문영·김홍중 편집위원과 이두갑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가 기후위기와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현실로 닥친 생태 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2부 ‘과학기술을 읽다’에서는 권보드래·송지우·박진호·심채경·정우현 편집위원이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 유전학 분야의 현주소를 고찰한다. 3부 ‘위험을 읽다’는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호의 특집 ‘안전의 역습’을 재구성한 것으로, 김홍중·권보드래·조문영 편집위원이 우리 시대 위험과 안전의 지형을 살핀다. 4부 ‘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에서는 칼럼니스트 박상현과 김두얼·강예린 편집위원의 리뷰를 통해 21세기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자본, 도시, 감시 체계를 들여다본다. 5부 ‘전쟁을 읽다’는 ‘전쟁의 해’를 지나오며 구한말과 한국 전쟁이라는 과거와 인도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전쟁을 송지우·권보드래·박훈 편집위원이 톺아본다. 마지막 6부에서는 ‘차별과 연대를 읽다’라는 제목 아래 조문영·홍성욱 편집위원과 과학기술학 연구자 장하원, 편집자 서경이 빈자, 자폐인, 성소수자의 삶과 연대를 읽는다.
오늘의 이슈를 책으로 읽고, 서평으로 사유한다!
“이 시점에서 『읽기의 최전선』을 기획한 것은 가히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앞만 보고 뛰어왔는데, 이제 『서울리뷰오브북스』에 실린 좋은 서평을 주제별로 묶어서 세상에 한번 내놓을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뒤도 잠깐 돌아보면서 숨을 한번 가다듬고,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 보겠다는 약속이다. 여기 실린 서평들은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21세기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라는 여섯 가지 주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해 주고 싶은 글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 글을 읽으며, 서평의 묘미와 깊이를 감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첫 편집장 홍성욱, 「책을 펴내며」
서평 전문지로 알려진 『뉴욕리뷰오브북스』와 『런던리뷰오브북스』가 창간된 지 각각 61년, 45년이 지났다. 누군가에게는 세계를 보는 창(窓)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손꼽아 기다리는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던 서평은 지성사의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서평 덕분에 생명력을 얻은 책들은 때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는 바람을 담아 2020년 12월 창간준비호(0호)를 거쳐 2021년 3월 창간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출발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어느덧 창간 3주년을 맞았다. 창간 3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3년간 책을 붙들고 치열하게 담금질한 사유와 성찰을 한 권으로 엮었다. 우리 시대의 숱한 위기들을 헤쳐 나가는 데 작은 밀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기의 최전선’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부터 원자력 발전소 사고까지,
인류세를 읽다
첫 번째 최전선은 ‘인류세’다. 기후위기의 현실 속에 ‘녹색 계급’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주목하는 홍성욱, 자본주의에 의한 기후위기와 환경 재난을 직시하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조문영,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참사 속에서 인류세라는 현실을 인식하는 김홍중의 리뷰를 한데 모았다.
“지금 당장 녹색 계급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리뷰오브북스』 첫 편집장인 과학기술학자 홍성욱은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들여다본다. 라투르가 평생 치열하게 연구?고민하며 형성해 간 그의 사상을 책 속 ‘녹색 계급’을 통해 살펴보고, 더 이상 “지구공동체가 직면한” 큰 위기를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되기 전에 막아보자고 책의 목소리를 빌려 외친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생존을 위해 채취와 오염 생산에 동원되는 빈자들을 위해 어떻게 정의를 구현할 것인가?” 이두갑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는 「기후 위기와 환경 재난의 자본주의」에서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롭 닉슨의 『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를 리뷰한다. “기후 위기의 구조적 배경과 재난의 일상성”의 극복을 아프리카의 빈자와 작가-활동가들의 실천적·대안적 활동에서 찾는다.
“새로운 위기는 새로운 대안을 요구한다.” 인류학자 조문영은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에서 『플루리버스』의 서평을 실었다. 조문영은 콜롬비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가 책에서 주장한 “자본주의?제국주의”를 넘어선 “다중의 우주와 세계인” 플루리버스가 가리키는 방향성에 십분 동의함을 피력한다. 또한,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존재론-디자인-정치의 관계를 둘러싸고 더 풍성한 질문, 비판, 논쟁, 제안을 촉구한다.
“인류세의 참된 의미는 바로 이 은신처의 불가능, 피난의 불가능성이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체르노빌』을 통해 인류에게 닥친 참사의 흔적에서 존재론적 의미를 환기하며 다층적 질문을 길어 올린다. “방사능에 오염된 산천초목에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사유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거쳐 인류세에 이른다.
인공지능, 우주 탐사, 유전학까지,
과학기술을 읽다
두 번째 최전선은 ‘과학기술’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조건을 질문하는 권보드래와 송지우,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와 현주소를 톺아보는 박진호,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심채경, 유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정우현의 리뷰를 모았다.
“인간이 이렇듯 여러 의미로 대체 가능한데도 불가침성을 지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학연구자 권보드래와 정치철학 연구자 송지우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대담 형식의 서평을 시도했다. 권보드래와 송지우는 각각의 자리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따로 또 같이 리뷰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인공지능의 미래 시대의 면면을 ‘클라라’라는 AF(Artificial Friend)의 시선으로 조망하는 『클라라와 태양』은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다. ‘클라라의 눈으로 본 세계’에서 인간다움의 조건은 어떻게 설명되는지, 인공지능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클라라가 어떤 인간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지, 그로 인해 독자가 느끼는 불안과 긴장의 원천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또 분열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능력주의화된 세상 속에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소외, 차별하는지 설명한다. 두 편집위원은 오늘의 세계를 반영하는 이러한 모습을 훑고 경제, 교육, 인간관계 등의 주제 등을 건드리며 교차, 대화의 가능성과 서평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인간에 필적하는, 또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르다.” 언어학자 박진호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닮으려면?」에서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의 서평을 실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에 대한 세간의 과도한 관심과 기대 속에, 독자로 하여금 현재 인공지능 기술로 “할 수 있는 일과 한계”를 신중하게 돌아보게 하는 데 이 책의 효용이 있다고 말한다.
“탐험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기도 하다.” 천문학자·행성과학자 심채경은 「우주를 보는 새로운 시선」에서 2020년에 출판된 ‘우주 탐사’ 관련 서적 4권을 리뷰한다.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호모 스페이스쿠스』, 『비욘드』, 『뉴호라이즌스, 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에 대한 서평을 통해, 심채경은 인류의 DNA에 새겨진 탐험 유전자를 읽어내며, 우주 탐사를 위한 인류의 기나긴 탐험의 여정을 개관한다.
“유전만큼이나 우리 존재에 중대하게 기여하는 환경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분자생물학자 정우현은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에서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칼 짐머는 유전이 수평적으로도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전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칼 짐머를 따라 유전만큼이나 환경이 우리 존재에 중대하게 기여함을 지적한다. 이와 같이, 저자는 유전의 역사를 돌아보며 통념을 벗어나 유전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음을 보인다.
우리 시대 위험과 안전의 지형도
위험을 읽다
세 번째 최전선은 ‘위험’이다. ‘지금, 여기’의 안전을 수시로 묻고 위험과 안전이 범용어처럼 회자되는 오늘날, 불안에 맞선 시도는 또 다른 위험을 낳고 있다. 불안에 쫓긴 존재들은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기보다 절연, 감시, 고발, 응징으로 폭력에 맞선다. 3부 ‘위험을 읽다’는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호의 ‘안전의 역습’ 특집을 재구성한 것으로, 사회학자 김홍중, 문학연구자 권보드래, 인류학자 조문영이 함께 그리는 우리 시대 위험과 안전의 지형도를 담고 있다.
“무해의 시대는 이제껏 인정되지 못했던 새로운 고통을 기왕의 것들과 연결하는, 강인하고 질긴 망이 엮어지는 그런 시대다!” 김홍중은 「무해의 시대」라는 글에서 21세기 안전 패러다임의 계보와 전망을 다룬다. ‘무해한 사회’를 지향하는 안전의 욕망이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정치적 힘을 행사했는지 살피고 있다. 무해의 욕망을 과도한 안전주의나 허위의식으로 비판하기보다, 유사한 위험을 공유하는 존재들의 새로운 연결 가능성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여학생드을! 알아서 살아남는 거야!” 권보드래의 「밤길을 걷는 법」에서 이 시대 여성이 느끼는 공포를 다룬다. 권보드래는 강화길과 정세랑의 소설을 따라 비틀걸음을 걸으며 21세기 대한민국 여성의 공포와 대면한다. 강화길의 소설은 심야의 뒷골목 같다. 반면에 휴식 같고 위안 같고 오랜만에 보는 웃음 같은 정세랑 월드도 있다. 완벽한 안전에 대한 열망에 공감했다 반발했다 끝내 입장을 정하지 못하면서도, 여기에 “갇히지” 말 것을 그들에게 바라고, 자신에게 다짐한다.
“안전할 권리를 외치는 우리 바깥에 머무는 한, 그들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언제나 출몰할 수 있다.” 조문영은 「불안한 빈자는 어쩌다 안전의 위협이 되었는가?」라는 글을 통해, 21세기의 빈곤 통치를 다룬다.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빈곤 통치에 대한 경고장으로 『자동화된 불평등』을, ‘디지털 구빈원’에 갇힌 사람들의 침묵을 이해하기 위한 통로로 『커밍 업 쇼트』를 읽는다. ‘안전이 권리’라는 구호가 안전의 위협으로 내몰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지 묻는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어떻게 변모했는가
21세기 자본주의를 읽다
네 번째 최전선은 ‘21세기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안경을 통해 보면, 21세기의 자본주의는 19세기, 20세기의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외피를 띄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테크 기업들이 지배하는 감시 자본주의를 살펴본 박상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리뷰한 김두얼, 쇼핑으로 점철된 도시 공간을 성찰하는 강예린이 21세기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자본, 감시 체계, 도시를 살펴본다.
“순한 양들로 이루어진 전체주의 사회가 인류의 미래가 될까?” 칼럼니스트 박상현은 쇼샤나 주보프의 저서 『감시 자본주의 시대』를 통해 감시 자본주의 개념과 그 함의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같은 테크 기업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박상현은 감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라는 주보프의 견해를 강조하며,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경고한다.
“세상에 완벽한 연구는 없다.” 경제학자 김두얼은 「역사로 보이고 싶은 것과 역사가 말하는 것」에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통해 ‘한국 경제 위기 담론’을 자세히 다룬다. 피케티의 학계에서의 “입지와 학문적 배경을 충실히 살피면서” “대가”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길 권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어떻게 밀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건축가 강예린은 렘 콜하스와 프레드릭 제임슨의 저서 『정크스페이스 | 미래 도시』와 리처드 세넷의 저서 『짓기와 거주하기』를 통해 팬데믹과 공간의 문제를 다루며 ‘열린 공간’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정크스페이스」가 쇼핑 공간이 광장과 거리와 모퉁이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한국의 밀실에 어떻게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저자는 질문한다.
‘전쟁의 해’를 지나오며, 어제와 오늘의
전쟁을 읽다
다섯 번째 최전선은 ‘전쟁’이다. 2023년은 끝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목도한, ‘전쟁의 해’였다. 5부 ‘전쟁을 읽다’에서는 평화에 이를 수 없는 인도주의의 한계를 짚는 송지우, 한국전쟁기 고발과 학살의 기록을 살피는 권보드래, 구한말 대한제국을 둘러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되돌아보는 박훈이 어제와 오늘의 전쟁을 화두로 다룬다.
“인도주의의 대척점은 총력전이 아니라 평화주의이다.” 송지우는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에서 새뮤얼 모인의 『인도주의(Humane)』를 리뷰했다. 이 책에서 모인은 『인권이란 무엇인가』, 『충분하지 않다』에서의 논쟁을 ‘국제인도법’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해서 가져온다. 그는 ‘인도주의의 확산이 평화주의의 성장을 막는다’는 모인의 주장에도 전쟁이 종속되지 않았다는 “슬픈 사실”을 지적하며, ‘인도적 전쟁’은 괜찮다며, 더 나아간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진보 진영의 “윤리적 안일함과 상상력의 빈곤”에 씁쓸함을 보낸다.
“친밀한 존재끼리 휘두른 폭력의 세계.” 권보드래는 권헌익의 저서 『전쟁과 가족』을 통해 전쟁이라는 재난을 겪었던 70년 전의 한국 사회를 지금 이곳에 불러낸다. 『전쟁과 가족』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을 추적하는 대신 부역, 고발, 학살 등 한반도 주민들이 생활 세계에서 겪은 전쟁을 추적한다. 권보드래는 권헌익의 시선을 따라 전쟁 중과 전쟁 이후의 화해와 치유의 노력을 톺아보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 진실과 화해, 애도와 존엄의 현주소를 성찰한다.
“설마 했던 전쟁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실제로 일어났다.” 역사학자 박훈은 「구한말, 21세기 벽두의 데자뷔?」에서 구한말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 역사학계의 도달점을 보여주는 책 두 책, 『러일전쟁』과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를 리뷰한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구한말의 경험을 다시금 읽는다.
차별을 넘어 연대로,
차별와 연대를 읽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최전선은 ‘차별과 연대’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오늘을, ‘대혐오의 시대’라 지칭하고는 한다. 6부 ‘차별과 연대를 읽다’에서는 쪽방촌 주민들의 고투를 이야기하는 조문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대본집을 리뷰하는 장하원,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를 바라보며 종교의 역할을 질문하는 홍성욱, 성소수자 주거 공동체를 통해 주거와 가족, 돌봄의 의미를 질문하는 서경이 홈리스, 자폐인과 장애인, 성소수자의 취약한 삶, 저항과 연대를 읽는다.
“가난은 쉽게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다.” 조문영은 「가난한 개인은 그 자체로 세계다」에서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로, 자본주의 시대에 빈자들의 주거에 대한 문제 제기 앞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담담히 묻는다. “서울역 맞은편 양동 쪽방촌” 주민과 활동가 등이 함께 만들어 온 이 책을 빈자의 “섬세한 선언문”으로 고쳐 읽는다.
“이제는 우영우 실험이 남긴 잔상과 질문들에 집중할 시간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장하원은 「자폐인 변호사라는 실험」에서 올해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본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서평을 썼다. ‘자폐인도 직업인으로서 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대본을 써내려 간 저자의 질문에 드라마가 아닌,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답을 찾는다. 다소 엉뚱하고 귀엽지만, 무해한 ‘우영우’라는 캐릭터와 ‘변호사’라는 직업 세계가 드라마 속 판타지로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자폐인도 장애인도 현실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점이 무엇인지 묻고, 특히 개인보다 사회 구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마 예수가 살아 있다면 가장 먼저 호통치고 야단칠 대상이 지금의 한국 교회일 것이다.” 홍성욱의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는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개신교에 대한 한 신학자의 비판을 담았다. 박경미의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의 서평을 통해, 동성애는 진정으로 기독교의 교리와 어긋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구해 본다. 필자는 이 책이 동성애를 배척하는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증거로 삼는 성경의 몇몇 구절들에 대해서 대안적인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과학기술학자로서 홍성욱은 동성애에 대한 최근의 과학 연구들을 보면서 신학자 박경미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며, 이를 토대로 한국 교회나 한국 보수 개신교계를 비판한다.
“무엇을 위해 가족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이, 집을 어떻게 본래 목적으로 되돌릴 것인가라는 질문과 나란히 놓여 있다.” 서경은 「‘문란한 돌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를 투고하여, 성소수자 주거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은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를 소개했다. 서경은 무지개집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두고, 성소수자를 돌보지 않는 국가에 맞서, 국가의 역할을 민간에서 먼저 해 보이는 방식의 저항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서경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있어 제도적 변화가 지니는 한계를 지적하며 제도를 넘나드는 다양한 상상과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집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성찰을 제기한다.
『서울리뷰오브북스』에 관한 리뷰/코멘트
단순히 도서의 요약이나 그럴싸한 문장들의 수사가 아니라, 연구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사유를 여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의미 있는 도서들을 중심으로 각 분야 연구자들의 관점이 있는 사유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서울리뷰오브북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 라** 알라딘 리뷰어
정말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관한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에게 다양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 d***s 예스24 리뷰어
서평은 그 대상이 되는 책으로부터 파생된 글이지만 독립적인 텍스트로서도 흥미롭다. … 서평은 독서 경험의 부수물이자 하나의 창작물로서 종종 책이 담고 있는 논지의 지평을 뛰어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작품이 되며 별개의 독서가 된다. … 1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20권이 넘는 책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 오* 네이버 리뷰어
추천평
우리나라에서는 서평지의 등불이 꺼진 지 오래다. … 오랜만에 나온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가 한국 출판의 힘찬 풀무이자 뼈아픈 죽비로서 오랫동안 함께했으면 좋겠다.
- 장은수 (출판평론가,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장은수 (출판평론가,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최근 10호를 발간한 건 하나의 사건이다. 책을 안 읽는 시대, 유서 깊은 잡지까지 폐간하는 척박한 출판 현실에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열 번째 잡지를 묶어냈다.
- 한국일보
- 한국일보
이 잡지는 후킹(hooking) 가득한 책 소개에 지친 사람들을 깊이로 초대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없이 철학, 문학, 역사, 정치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결과물을 빚어냈다. … 무엇보다도 값진 일은 책에 대한 새로운 공론장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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