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조선시대사 이해 (독서>책소개)/4.조선역사문화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2006)

동방박사님 2024. 6. 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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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대의 이방인들은 정감록을 손에 넣었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역사는 이들을 역모자로 처단했고 예언서는 불태워졌다. 불경스러운 그들의 존재는 역사에 지워졌다. 찬란했던 영정조 시대에 왜 그들은 역모를 꾸몄는가. 그들은 왜 예언서에 희망을 걸었는가. 미시사가의 섬세한 손길을 따라 역모사건의 진실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잘 몰랐던 영정조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목차

프롤로그: 조선의 역적들, 내게 말을 걸어오다
1장 김원팔 일가의 〈남사고비결〉 역모 사건
사라진 역사의 한 대목 | 1733년 남원, 괘서로 들썩이다 | ‘무신란’의 잔당이 틀림없다 | 사건의 단서, 괘서 초안 | 김원팔 집안의 비밀 | 한국사에서 사라진 역모 사건 | 첫 번째 의문, 예언서 〈남사고비결〉에 담긴 뜻 | 남원 부자가 예언서에 빠진 이유 | 두 번째 의문, 김원팔의 단독 범행인가 | 김원팔, 몰락 양반 최봉희와 만나다 | 세 번째 의문, 최봉희의 생존 전략 | 배후 인물, 몰락 양반 최봉희 | 네 번째 의문, 예언서 제공자 승려 태진의 정체 | 태진, <남사고비결>을 퍼뜨리다 | 난쟁이(예언서)와 거인(성리학)의 대결 | 남원 이방 최정도, 사건을 재구성하다 | 사료: 《조선왕조실록》은 김원팔 일가 괘서 사건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2장 문인방의 정감록 역모 사건
‘임꺽정 도당’과 비교된 일대 사건 | 주범 문인방과의 대담 1 | 사회운동을 담당한 새로운 계층의 탄생 | 왜 《정감록》인가 | 대선생 송덕상을 받든 이유 | 역모 사건 가담자 1-서북의 선비들, 신형하와 박서집 | 역모 사건 가담자 2-명문가 이경래와 이택징 | 역모 사건 가담자 3-송덕상 일가 | 동상이몽의 주범들 | 정조가 거둔 승리 | 주범 문인방과의 대담 2 | 사료: 《조선왕조실록》은 문인방의 역모 사건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3장 문양해의 정감록 사건
나는 ‘정조 9년의 정감록 역모 사건’이라고 부르고 싶다 | 밀고자 김이용 | 김이용에 대한 내 생각 | 북도 원수 주형채 | 주형채에 대한 내 생각 | 서울총책 중인 양형 | 양형에 대한 내 생각 | 정감록 도꾼 문양해 | 문양해에 대한 내 생각 | 양반 이율 | 이율에 대한 내 생각 | 명문가 홍복영 | 홍복영에 대한 내 생각 | 삼각산 백운대에 모인 정감록 역모 사건 5인방 | 사료: 《조선왕조실록》은 문양해의 역모 사건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저자 소개 

저 : 백승종
정치, 사회, 문화, 사상을 아우르는 전방위 역사가, 역사 저술가. 독일 튀빙겐대학교, 보훔대학교, 막스플랑크 역사연구소, 서강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등 국내외 여러 대학교 및 연구기관에서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쳤다. 저서로 한국사와 서양사를 비교분석한 『상속의 역사』 『신사와 선비』, 한국의 전통사상을 재해석한 『조선, 아내 열전』 『세종의 선택』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등이 ...
줄거리
영정조 시대에 발생한 역모 사건 중에서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가 개입된 사건들의 전말을 파헤친 것으로, 역모 사건에 예언서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주동자들이 각기 어떤 이상향을 설정했는지 등을 저자의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첫 번째 역모 사건은 역모가 조직적으로 계획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에 머무른 사건이다. 두 번째 역모 사건은 서북 출신의 평민지식인들이 비밀 결사를 주도해 벌인 것이고, 마지막 역모는 역적들이 흡사 신종교 단체를 결성한 듯 보이는 사건이다.
첫 번째 역모 사건에는 남사고비결이라는 예언서가 등장한다. 당시 이 예언서는 정감록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는데 급기야 전라도 남원에서는 이 예언서의 내용을 빌려 조선 왕조를 비방하는 괴문서가 남원성에 세 차례나 내걸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영조의 심문 기록을 토대로 저자는 당시 역모 사건의 실체를 마치 추리 소설과도 같은 문체로 전개해간다. 특히 피의자들이 펼치는 진실게임은 이 사건이 사회 지배 체제에 불만을 품은 일개 양반이 벌인 사건을 넘어 배후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비밀결사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영조 시대에는 이미 예언서가 사회에 성행했고 왕은 예언서와의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영조 시대에 이미 성리학 중심의 지배체제가 많이 와해되었음을 반증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아울러 남원에서 벌어진 이 역모 사건은 난쟁이(예언서)가 거인(성리학)에게 달려든 대결구도에 그쳤지만 영조 이후 역사에는 난쟁이의 힘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다음 역모 사건에서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서북 출신의 평민지식인 문인방이 일으킨 역모 사건을 다룬 2장에서는 역모가 전국적 규모로 조직되었다는 점, 그리고 기껏해야 조직의 하부 구조를 담당했던 평민 가담자들이 사건의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 부각된다. 무엇보다 정감록이 사건 기록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정감록이 역모 사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주범인 문인방과의 가상 대담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서북 출신의 평민지식인들이 정감록에 빠져 역모를 꾸미게 된 이유와 그들이 양반 출신의 역모자들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무엇보다 서북 지방에 대한 중앙 권력의 차별이 불만지식인을 양산해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출신 지역과 신분 제약으로 번번이 벼슬길에서 멀어졌고 급기야 문인방과 같은 급진적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18세기 후반 평민지식인들이 반역 사건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한국 역사상 새로운 변화라고 규정한다. 아울러 이들이 양반 지식인들과 서로 교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시기가 신분 간 소통이 비교적 원활했다는 증거라고 제시한다.
정조 9년에 발생한 문양해 역모 사건에서는 정감록의 실체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역모의 주모자들은 정감록의 예언을 행동 지침으로 삼아 그대로 실천하려 했다. 저자는 복잡하게 얽힌 사건의 전말을 분석하고, 역모자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역모자가 되어 1인칭 시점에서 사건을 묘사해간다. 저자는 특히 이 사건이 국가 전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졌지만 조직 운용은 다분히 종교적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이미 18세기 후반에 종교적인 성격을 띤 전국 규모의 민중운동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런 운동 경험은 18~19세기 내내 지속적으로 축적되었고 그 결과 19세기 말 동학이 대두했다는 추론에까지 이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동학은 최제우라는 종교적 천재가 일궈낸 결실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경험이 빚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출판사 리뷰

■ 한국사의 새로운 분석 코드, 예언서!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 그리고 무수히 많은 별들의 비밀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 사람들은 해를 숭배했고, 달에 복을 빌었으며 별의 움직임으로 앞날을 점쳤다. 달이 해를 가리면 망국의 징조요, 동편의 밝은 별이 추락하면 위인의 수명이 다한 것이라고 예언가는 하늘의 뜻을 전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문자가 보급되고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유명한 예언가가 지었다는 이른바 비기秘記가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절도 있었다. 정감록은 예언서 중의 최고 예언서였다. 정감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새 세상을 꿈꾸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예언은 전혀 근거 없는 미신이고, 예언의 시대는 이성에 눈을 뜨지 못한 암흑기다. 역사학에서도 이런 소재는 지하 영역에 속했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수면 위로 감히 떠오르지 못했다.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거나 역류할 만한 물줄기로 인식되지 못했다. 실상 누구도 그런 과감한 역사인식을 대놓고 표출하지 못했다.
그러던 참에 한국 역사학계에 미시사를 본격 소개한 저자 백승종이 한국의 예언문화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사회사 연구의 한 방편으로 시작된 연구였지만 역사의 중요한 길목에서마다 예언의 세계와 맞닥뜨렸고 결국 한국사를 예언문화라는 새로운 코드로 다시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 하나의 주제, 두 권의 책

저자는 이례적으로 두 권의 책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두 책 모두 정치적 예언서를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접근 방식은 사뭇 다르다. 첫 번째 책인 《한국의 예언문화사》는 한국에서 유행한 정치적 예언서의 내용과 사상적 특징을 살폈다. 특히 18세기에 역사의 표면 위로 떠올랐던 정감록이 기존의 예언서를 어떤 식으로 계승, 발전시켰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두 번째 책인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은 영정조 시대에 발생한 세 건의 역모 사건을 다룬 것으로 역모 사건을 다각도로 파헤친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발랄하고 재기 넘친다. 책의 모티브가 된 역모 사건은 《한국의 예언문화사》에도 학술적으로 분석되어 있다. 정리하자면, 점잖은 첫 번째 책에서 일부 사건이 떨어져 나와 끼가 넘치는 두 번째 책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물론 두 책은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주제면에서는 일치한다. 사료를 진지하게 대해야 할 역사학자가 왜 이런 변신 게임을 펼친 것일까. 이 책의 기획의도는 바로 이 변신술에 있다.

■ 역사는 상상게임이다

“고대 중국의 역사가들은 걸핏하면 술이부작(사실을 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 않는다)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공부해보니 그런 역사는 과거에도 있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차라리 역사란 술이작(기록하되 제 생각대로 쓰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바로 그런 뜻에 충실한 역사를 써보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역적의 입장에 서보기도 하고 때로 왕도 흉내냈다. 나에게 역사란 엄숙하되 자유로운 것, 살아 있는 생명체다.”
-본문 14쪽
저자의 이러한 역사관이 잘 묻어난 책이 바로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이다. 첫 번째 책 《한국의 예언문화사》는 체계적이다. 실증적이다. 사료를 꼼꼼히 분석하고 때로 거시적인 입장에서 예언서가 갖는 정치, 사회, 문화적 의미를 분석했다. 예언서에 의지한 역모 사건의 전말도 각종 사료를 통해서 복구해냈다.
여기에 저자의 역사적 상상력이 가미된다면? 조선왕조실록은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 역사적 진실은 사료 안에서만 찾아질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고고학자도 깨져서 흩어진 청자 조각만으로 본래의 모습을 완벽하게 조립해내지 못한다. 이가 빠진 조각 사이에는 보형물을 추가해야 한다. 그 보형물이 바로 상상력이다. 《한국의 예언문화사》가 청자의 형태를 어느 정도 복구한 것이라면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은 청자를 그대로 되살려낸 것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문양을 담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저자는 마치 게임을 즐기듯 정감록 역모 사건을 바라본다. 형사들의 추리 기법을 빌리고 있지만 누가 범인인지 왜 역모를 저질렀는지 한 가지 진실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중층적인 진실 찾기다. 하나의 진실 찾기는 근대 역사학의 산물이자 이제는 이미 진부한 방식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역사적 사건과 행위에 담긴 중층성이 제대로 밝혀질 때 역사 속 인물들이 선택했던 다양한 생존 전략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역사적 상상력이 동원된 게임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상상게임’이라 불릴 만하다.” - 본문 366쪽

■ 팩션과 새로운 글쓰기

저자의 상상게임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새로운 그릇이 필요했다. 기존의 역사책으로는 상상게임을 즐길 수 없다. 팩션(faction) 기법이 동원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기존의 팩션과는 차원을 달리 접근했다. 저자가 생각하는 팩션은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허구라 해도 역사적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여야만 했다.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에는 저자의 역사적 상상력이 발휘된 부분이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역모 사건 연루자 중 한 사람이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상승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저자는 경상도 단성현의 호적에 나오는 어느 노비 형제의 삶을 추적한 적이 있었고 그들의 신분 상승 과정을 참조해 이 책에 적용했다(본문 46쪽). 흥미와 극적인 반전을 위해 역사 전개상 전혀 불가능한 에피소드를 첨가하는 요즘의 팩션 장치와 선을 긋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예언문화사》가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의 튼튼한 뿌리가 되고 있다는 점도 여느 팩션 역사책과는 사뭇 다르다.
역사의 중층적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선 새로운 서술 방식도 필요했다. 역사가는 사료를 눈앞에 두고 흔히 ‘전지적 작가 시점’을 견지하기 마련이다. 사료를 손에 쥔 역사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이 된다.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사가의 명령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따름이다. 이는 결국 정해진 진실을 따라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역사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버려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조의 시각에 불과하다. 거기엔 능지처참당한 역적들의 불경스러움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영조와 정조는 패륜왕이다. 조선은 뒤엎어야 할 왕조다.’ 이것이 역적들의 시각이다. 저자는 1인칭 시점으로 돌아가 온전히 역적들이 되기도 하고 다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빠져나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충실히 묘사한다. 왕조의 입장에서 역모 사건을 재점검하는 과정도 빠뜨리지 않는다. 소설과도 같은 서사적 묘사가 펼쳐져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다가도 법정의 진실공방에서나 나올 법한 추궁과 반대 심문이 계속돼 독자의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저자는 “역사적 상상과 추리와 판단이 어우러진 이 책의 서술 방식을 역사가의 상상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고 피력하면서 “역모 사건 하나하나를 단선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사건의 이면을 속속들이 검토해, 사건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의 마음을 느끼고 싶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 내외적 환경이 무엇이었는지를 다각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싶은 바람에서 이런 서술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본문 14쪽)고 강조한다. 아울러 이러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서술방식에 적합한 편집방식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만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인 박시백 화백의 도움을 빌렸다. 박시백 화백은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이 스케치에는 각 인물들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독자들은 마치 역모 사건의 주인공들이 책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 왜 예언서인가

“조선은 끝내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회였는가. 성리학적 지배질서에 대한 저항은 그저 일회적이고 우연한 폭동으로 나타났을 뿐인가. 서구의 진보적인 역사가들은 ‘근대’는 서구 역사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조선의 근대는 어떠한 특징을 가졌을까.”
저자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부합되는 주제가 바로 조선의 예언문화였다. 성리학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각종 예언서에 탐닉했다. 조선 왕조의 멸망을 고하고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 구절이 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벼슬길에 오를 수 없고, 상놈은 영원한 상놈으로 남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타개할 해법이 예언서에 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언서는 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의 출현을 예고했다. 결국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가 중심이 된 역모 사건은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저자는 이런 사실을 통해 정감록을 비롯한 예언서들은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는 일종의 대안 이데올로기로 작용했음을 포착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예언문화를 주도한 이들은 조선 후기에 성장한 평민지식인들이었고 그들의 저항운동은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성숙되어 갔으며 마침내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한 신종교 운동으로 결실을 맺는다. 결국 조선 후기에 성리학 체제를 와해시키고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의 하나가 바로 예언문화였다는 게 저자가 두 권의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