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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비상
제1장_기도 다카요시의 눈에 띄다-쓰카리·하기에서 교토·에도·영국으로
제2장_‘외교’교섭과 막부타도의 싸움-기도 다카요시를 지지하다
제3장_이와쿠라 사절단의 특명전권부사-폐번치현과 정한론 정변
제4장_이토 참의 겸 공부경의 실력-서남(西南)전쟁
제2부 원숙기
제5장_이토 체제 형성의 시작-오오쿠보 도시미치의 후계자
제6장_오오쿠마 시게노부에 대한 분노-명치 14년 정변
제7장_헌법조사에 대한 의욕-일본의 전통과 서구화
제8장_국내정치 우선과 청일 협조-초대 수상
제9장_일본의 형태를 만들다-대일본제국헌법과 명치 천황
제10장_어긋난 전망과 망설임-오오쿠마 조약개정문제와 제1회 의회
제11장_명치헌법을 지키다-제2대 총선거
제12장_민당과의 제휴와 조약개정-제2차 이토 내각
제13장_이토 체제의 전성기-문관 수상의 청일전쟁
제3부 노후
제14장_원로로서의 강한 자부심-제3차 이토 내각·요양과 충전
제15장_건강 악화와 ‘헌법’정치를 향한 이상-입헌정우회 창립 및 제4차 이토 내각
제16장_극동의 평화를 못 지키고-영일동맹·러일전쟁
제17장_한국 통치에 대한 포부-이토 한국통감
제18장_암살
제1장_기도 다카요시의 눈에 띄다-쓰카리·하기에서 교토·에도·영국으로
제2장_‘외교’교섭과 막부타도의 싸움-기도 다카요시를 지지하다
제3장_이와쿠라 사절단의 특명전권부사-폐번치현과 정한론 정변
제4장_이토 참의 겸 공부경의 실력-서남(西南)전쟁
제2부 원숙기
제5장_이토 체제 형성의 시작-오오쿠보 도시미치의 후계자
제6장_오오쿠마 시게노부에 대한 분노-명치 14년 정변
제7장_헌법조사에 대한 의욕-일본의 전통과 서구화
제8장_국내정치 우선과 청일 협조-초대 수상
제9장_일본의 형태를 만들다-대일본제국헌법과 명치 천황
제10장_어긋난 전망과 망설임-오오쿠마 조약개정문제와 제1회 의회
제11장_명치헌법을 지키다-제2대 총선거
제12장_민당과의 제휴와 조약개정-제2차 이토 내각
제13장_이토 체제의 전성기-문관 수상의 청일전쟁
제3부 노후
제14장_원로로서의 강한 자부심-제3차 이토 내각·요양과 충전
제15장_건강 악화와 ‘헌법’정치를 향한 이상-입헌정우회 창립 및 제4차 이토 내각
제16장_극동의 평화를 못 지키고-영일동맹·러일전쟁
제17장_한국 통치에 대한 포부-이토 한국통감
제18장_암살
출판사 리뷰
이토 히로부미만큼 한국과 일본에서 서로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근대 일본의 정치가는 없다.
한국과 일본, 일본의 식민지 연구자와 정치외교사 연구자 사이에서조차 이토를 둘러싼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 원인은 한국의 일본 연구자와 일본의 식민지 연구자는 이토가 한국(조선)에 관여하지 않았던 시기의 이토에 관한 사료를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토라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통감 시기의 이토를 평가하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 그 결과 한국인의 이토에 대한 이미지도 충분히 균형 잡힌 것이 아니다.
한국통감기의 이토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일본 연구자와 일본의 식민지 연구자는 병합이라는 큰 틀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이토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有朋) 원수 및 가쓰라 다로(桂太?) 대장, 데라우치 마사타케(寺?正毅) 대장 등 유력 정치가에 관련된 미간행 1차 사료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토와 야마가타, 가쓰라, 데라우치 등이 펼친 한국 통치를 포함한 내정과 외교에서의 그들의 정책적 차이와 인간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본서는 이토 자신과 이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치가, 가족들의 편지, 일기, 서류 등 1차 사료를 중시하고, 또한 그들의 회상록과 당시 신문, 잡지 보도 등도 두루 살펴, 한국통치 시기도 포함하여 이토의 실상을 탐색하고자 한다. (들어가며 中)
한국과 일본, 일본의 식민지 연구자와 정치외교사 연구자 사이에서조차 이토를 둘러싼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그 원인은 한국의 일본 연구자와 일본의 식민지 연구자는 이토가 한국(조선)에 관여하지 않았던 시기의 이토에 관한 사료를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토라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통감 시기의 이토를 평가하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 그 결과 한국인의 이토에 대한 이미지도 충분히 균형 잡힌 것이 아니다.
한국통감기의 이토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일본 연구자와 일본의 식민지 연구자는 병합이라는 큰 틀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이토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有朋) 원수 및 가쓰라 다로(桂太?) 대장, 데라우치 마사타케(寺?正毅) 대장 등 유력 정치가에 관련된 미간행 1차 사료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토와 야마가타, 가쓰라, 데라우치 등이 펼친 한국 통치를 포함한 내정과 외교에서의 그들의 정책적 차이와 인간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본서는 이토 자신과 이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치가, 가족들의 편지, 일기, 서류 등 1차 사료를 중시하고, 또한 그들의 회상록과 당시 신문, 잡지 보도 등도 두루 살펴, 한국통치 시기도 포함하여 이토의 실상을 탐색하고자 한다. (들어가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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