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문학의 이해 (독서>책소개)/2.전쟁문학

9.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동방박사님 2022. 1. 1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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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92년의 사라예보, 자욱한 전쟁의 포화 속에
「아다지오 G단조」의 아름답고 슬픈 추모곡이 22일간 울려퍼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우아한 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피니 월시』와 『상승』으로 주목받았던 캐나다 작가 스티븐 갤러웨이의 세번째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사라예보의 폐허에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해 전세계에 감동과 눈물을 안겨준 실존인물인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에 관한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기사와 사라예보의 여성 저격수에 관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두 이야기를 한 데 묶어 소설화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기나긴 인터뷰, 자료 조사를 토대로 한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일품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더욱 큰 감동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양장본으로 1992년에서 1995년에 걸친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과 전쟁의 의미, 그리고 휴머니티에 대해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격정적이면서도 따뜻한 소설이다. 2008년 출간되자마자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20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갔고, 영화화될 예정이다.

목차

첼리스트

1부
2부
3부
4부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 : 스티븐 갤러웨이 (Steven Galloway)
 
1975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나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자랐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오브 카리부와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했다. 2000년 첫소설 『피니 월시』로 캐나다 아마존의 ‘캐나다 첫소설 상’ 후보에 올랐고, 쌍둥이 빌딩에서 줄타기를 시도하는 집시 줄광대의 놀라운 이야기를 그린 두번째 소설 『상승』으로 이실 윌슨 소설상 후보에 올랐다. 세번째 장편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2008년 출간되자...
 
역 : 우달임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빵과 장미』,『사라예보의 첼리스트』,『체실 비치에서』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1992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실화를 그린 이 우아한 소설을 통해 스티븐 갤러웨이는 전쟁의 야만성과 이를 치유하는 음악의 힘을 그려냈다. 잊을 수 없는 이미지, 가슴을 치는 간명함으로 직조된 이 작은 책은 거대한 절망에 맞선 인간 정신의 승리를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_워싱턴 포스트

기억하십니까? 1992년의 사라예보를, 그 비극과 슬픔을…

1992년의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던 사라예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사라예보는 몇 달째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의 위협 아래에 있었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언덕에 자리 잡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사살하던 세르비아계 저격수들 때문에 사라예보 시민들은 언덕에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만을 찾아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식량과 물조차 구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1992년 5월 27일,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세르비아계 민병대의 총을 피해 건물 사이로 움직이며 하루하루를 연명할 빵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한 빵가게에서 빵을 만들어 판다는 소식이 들렸고,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그 가게 앞에 줄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민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 왔습니다.

빵을 사서 그 동안 굶주리던 가족들과 나눌 생각으로 줄 서 있던 사람들에게 날아온 포탄은 그 자리에서 22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100여명의 부상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멀리 언덕 위에서 날아온 이 포탄은 총을 든 군인들과 그저 하루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에 서 있던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빵을 생각하며 또 하루를 넘길 희망에 부푼 사람들이 서 있던 거리는 순식간에 끊어진 팔다리와 흘러내린 피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가득한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러한 참상이 사라예보의 시민들에게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죽고 다치는 사람들의 수에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는 일이었지요. 천만다행으로 오늘은 그 와중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지만 내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내일은 다른 거리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 이번에는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 있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요.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로 나선 첼리스트

그런데 5월 27일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완전히 부서진 그 거리에 그 다음날 한 사람의 첼리스트가 찾아왔습니다. 비록 남루했지만 무대에 선 사람처럼 검은 연주복을 입고 큰 첼로 케이스와 연주용 의자를 들고 그 자리에 나타난 이 사람은 의자를 내려놓고 첼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어제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듯 느리고 장엄한, 그러면서도 애절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였지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lovic라는 이 첼리스트는 전쟁 전까지 사라예보 필하모닉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쟁과 함께 음악 활동을 못 하게 된 스마일로비치는 사라예보의 다른 시민들처럼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빵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목숨을 잃은 그 사건을 접한 그는 전쟁의 비극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생각한 것은 22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그 자리에서 그들을 기억하며 22일 동안 첼로를 연주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언제 포탄이 또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표적을 찾아 헤매는 저격수들의 총구 앞에서 그는 매일 같이 22일 동안 그 자리에 나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했습니다.

사람들은 저격수들과 포탄의 위협을 피해 근처 건물 아래에 몸을 숨긴 채 그가 연주하는 「아다지오」를 들으며 슬픔을 달래고 또 평화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스마일로비치는 1993년 사라예보를 떠나 북아일랜드로 옮겨갈 때까지 사라예보의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또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광기에 직면한 인간 정신에 바치는 애도와 진혼의 찬가 「아다지오」

베트남전을 반대한 가수로 유명한 존 바에즈는 스마일로비치의 행동에 용기를 얻어 1993년 사라예보를 방문하고 시민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스마일로비치를 직접 만나기도 했지요. 그녀뿐만 아니라 영국의 작곡가인 데이비드 와일드는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무반주 첼로곡을 작곡해 전쟁과 비극 그리고 평화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습니다. 1994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국제 첼로 페스티벌에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첼리스트라 할 수 있는 요요마가 그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당시 연주 현장에 있었던 폴 설리반이라는 피아니스트는 아래와 같이 전합니다.

“조용히,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 음악은 시작되었고, 웅성거리던 연주장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음악은 죽음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길한 메아리로 가득한 어둡고 텅 빈 우주를 만들어냈다. 음악은 서서히, 그러나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함치며 격렬한 열정으로 우리 모두는 사로잡았고, 마침내 죽음 직전의 공허한 마지막 한숨으로 변해갔다. 그러고는 다시 시작했던 그 순간처럼 고요함으로 돌아갔다.

연주를 끝내고도 요요마는 여전히 첼로에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고, 활을 든 그의 손도 여전히 첼로에 놓여 있었다. 연주장에 있던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고, 오랫동안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소름끼치는 학살을 직접 목격한 듯 그렇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는 연주장에서 요요마가 마침내 의자에서 일어나 관객석을 바라보면서 손을 뻗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 요요마의 손길을 따라 모든 눈길이 모였고, 그 손길이 부르는 사람이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바로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청중들은 표현할 길 없는 충격을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마일로비치는 요요마가 있던 무대 쪽으로 걸어갔고 무대에서 내려온 요요마는 통로로 내려가 두 팔 벌려 스마일로비치를 껴안았다.

공연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모두 일어났고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치며 귀가 먹먹할 정도로 환호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러한 감동의 한가운데에는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부드럽고 세련된 클래식 음악의 왕자로서 빈틈없는 연주와 외모를 보여주었던 요요마가 있었고, 그의 앞에는 사라예보에서 금방 빠져나와 여전히 얼룩투성이의 낡고 주름 진 가죽 점퍼를 입은 스마일로비치가 있었다. 그토록 많은 눈물에 젖고 고통과 상처에 지쳐 실제 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빗지 않은 긴 머리와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1993년에 사라예보를 떠난 스마일로비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국제적인 관심은 뒤로한 채 북 아일랜드의 조용한 시골에 묻혀 음악을 작곡하고 첼로를 연주하는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일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한 젊은 작가가 스마일로비치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아 한 편의 소설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_이글루스 블로거 cliomedia


당신의 심장을 꿰뚫는 탄환 같은 소설!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고 되찾으려는 사람들과 한 도시의 위대한 이야기!


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가 스티븐 갤러웨이는 우연히, 사라예보의 폐허에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연주해 전세계에 감동과 눈물을 안겨준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에 관한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기사를 읽는다.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그 이야기를 지우지 못하던 그는 어느 날 '라디오 덴마크'라는 프로그램에서 사라예보의 여성 저격수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의 이름은 ‘스트리옐라’. 슬라브어로 ‘애로’ 즉 ‘화살’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그녀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그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창조해냈다. 스물두 살의 전 국가대표 사격선수이자 포탄이 터지는 사라예보의 거리를 누비는 앳된 처녀 저격수 ‘애로’로. 그리고 그녀의 반대편에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로부터 영감을 얻은 캐릭터 ‘첼리스트’를 놓았다. 갤러웨이는 보스니아 내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과 기나긴 인터뷰, 자료 조사를 통해 네 사람의 운명과 한 도시의 이야기를 엮어갔다. 세계인의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던, 16년 전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비극이 그의 펜 끝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단 한 발의 총탄, 22일의 약속,
그리고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


“내 이름은 이제부터 애로야.
그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지.
당신이 알던 그 여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어.”

첼리스트
그는 사라예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였다.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그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하면서 그 곡으로부터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친구들과 이웃들의 머리 위로 박격포탄이 떨어져 22명이 죽는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죽은 이들의 숫자인 22일 동안 그 자리에서 그는 「아다지오」를 연주하기로 자신과 약속한다. 낡은 연주복을 차려입고, 씻지 못해 떡진 머리칼을 이마에 내려뜨린 채.
포탄이 떨어졌던 오후 4시. 그는 매일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 약속대로 첼로를 연주한다. 매일같이 ?탄이 날아와 터지고 저격수들의 총탄이 날아와 사람들을 죽이는 거리에서. 서서히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거리로 모이고, 이제 전쟁을 수행하는 양측에게 그의 연주는 일촉즉발의 문젯거리가 된다.

저격수 애로Arrow
내전이 일어나기 전, 사격 국가대표선수였던 스물두 살의 애로. 한창 꿈에 부풀어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할 그녀는 적들을 향해 증오의 총탄을 날리며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이 되어간다. 그녀는 자신이 언덕 위의 적들과는 다르며, 그들이 자신을 공격해오기 때문에 그들을 죽일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애써 자신을 설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첼리스트가 연주를 시작한다. 세르비아 측에서는 상징성이 강한 그 연주를 막기 위해 저격수를 보내고, 보스니아 측에서는 애로에게 그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긴다. 그녀는 적군 저격수가 자리 잡은 위치를 직관적으로 탐색해내고, 덫을 놓은 뒤, 조용히 기다린다. 이제 그를 잡기 위해 필요한 건 오로지 단 한 발의 총탄뿐이라고 그녀는 믿었다. 적군 저격수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첼리스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는…

케난
가족들이 일용할 물을 길어오기 위해 사선을 넘는 남자 케난, 그에겐 젊은 아내와 아직 어린 세 자녀가 있다. 물을 극도로 아껴 써도 나흘에 한번씩은 물통을 메고 거리에 나서야 하는 그는 아내와 자녀들 앞에서는 밝은 척 용감한 척하지만 아파트 문을 나서자마자 매번 무릎을 꺾고 문에 기대어 앉아 운다. 도시의 언덕을 점령한 저들의 저격과 죽음이 두려워서다. 그런 그에게 아래층의 이기적인 노파는 손잡이가 없어 들고 갈 수도 없는 물병을 떠안긴다.
파괴된 도시와 다리를 가로질러 언덕 기슭에 있는 양조장에서 물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여행을 떠난 그는 포격과 저격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식료품과 물을 암거래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무거운 물통을, 그리고 그보다 더 무거운 절망을 어깨에 짊어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드라간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아내와 아들을 이탈리아로 대피시키고 누이의 집에 얹혀사는 늙은 남자 드라간. 그는 매제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빵공장에 다니는 덕분에 그 집에서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된다. 그날도 집에 남아 있을 수 없어서 바람을 쐬러 나왔던 그는 교차로에서 아내의 친구인 에미나를 만난다.
드라간은 얼굴도 모르는 병든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약병을 전하러 가는 에미나의 삶에 대한 희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전세계의 누구도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며, 이제 남은 것은 이번에 길을 건너다 총을 맞을 것인가 피할 것인가 하는 하루하루의 운과, 오늘 살아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절망뿐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교차로를 건너려던 에미나가 총에 맞고, 그녀를 외면한 한 남자까지 총탄에 쓰러지면서, 드라간은 삶과 죽음의 순간이 그 순간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목도한다. 과연 그는 절망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끝내 잃었던 희망을 되찾을 것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거대한 절망에 맞선 인간 정신의 승리!


1993년 8월,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수전 손택은 세르비아계 무장 세력이 점령한 바로 그 사라예보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렸다. 위험천만한 남의 나라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가, 사라예보 시민들과 함께 언제 올지 모르는 희망 ‘고도’가 찾아올 것을 애타게 기다리며 기원했던 것이다. 이 같은 손택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보스니아 내전에 대한 클린턴 정부의 즉각적인 개입을 요청하고 촉구하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또한 이 공연은 또한 세르비아 민족주의니 발칸 패권이니 하는 공허한 정치 구호에 별 관심도 없는데도 억울하게도 삶의 터전을 잃은 보스니아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남의 나라에 들어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린 수전 손택과 죽음이 도사리는 길 한복판에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이들의 행동들은 일견 이해하기 힘들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극한의 운명에 처한 한 도시와 네 인물의 엇갈린 삶을 직조하며 젊은 작가 스티븐 갤러웨이가 그려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

저격수 애로는 처음에는 적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현실에 저항하지만, 적에 대한 분노가 그것을 정당화해주리라 믿으며 기계처럼 무감각해져간다. 하지만 첼리스트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으면서부터 그녀의 그런 믿음에 균열이 간다. 그녀는 첼리스트의 연주에 귀 기울이느라 그에게 총을 쏘지 않는 세르비아의 저격수를 보면서, 그 역시 자신과 다름없는 인간임을 불현듯 깨닫는다.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온 애로는 지휘체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자신을 지지해주던 친구 같은 상관 네르민을 잃고, 자신이 표적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이것마저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이 지니고 있던 마지막 인간다움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 반기를 들고, 어제의 아군을 적으로 돌린다.

작가는 처음에는 이런 그녀의 이름을 독자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애로는 전쟁이 시작되고, 진짜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총을 잡은 그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을 버린다. “내 이름은 이제부터 애로야. 그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지. 당신이 알던 그 여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어.”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총을 잡기를 거부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된 그 마지막 순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되뇐다. “내 이름은 알리사야”라고.‘무기’인 애로, 이름이 없는 애로는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에 죽이지만,‘알리사’는 그렇지 않다.‘아무도 그녀에게 누군가를 미워하라고 명령할 수 없다.’앞으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문학적 캐릭터의 탄생이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간다움을 잊었던 또 하나의 인물 드라간은 그저 피난 간 가족의 안위만을 걱정할 뿐,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서 눈을 돌린다. 그와 우연히 교차로에서 마주친 에미나는 홀로 사는 노파를 돕고, 모르는 환자에게 약을 전해주러 가면서 말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예전의 우리는 늘 그랬잖아요.”
그런 에미나가 총에 맞고, 그녀를 돕지 않고 도망치려 했던 남자가 총에 맞은 뒤, 드라간은 반대편에서 이 상황을 찍으려 하는 카메라를 본다. 그가 기억하는 도시 사라예보는 죽은 자를 땅바닥에 버려두고 도망가는 곳이 아니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은 저격수가 그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드라간은 선택한다. ‘나는 죽은 시체들이 길바닥에 버려져 있는 도시에서 살지 않겠다’고. 그리고 총알이 날아오는 가운데, 죽은 이의 시체를 교차로 한가운데서 끌고 와,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이는 극히 사소한 행위이지만, 그전과 그후의 드라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이제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되찾는다.

이러한 마음을 또다른 인물 케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유령이 아니다”라고. 상처받은, 그 상처 때문에 살아 있어도 살지 못하는 이들을 그는 ‘살아서 유령이 된 사람들’이라 부른다. 전쟁이, 상황이, 두려움이, 공포가 정당화해줄 수 없는 그 무엇. 인간으로서 이 땅 위에 태어난 자, 그 누구도 잃을 수 없고, 잃어선 안 되는 그것.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바로 그 마음을, 사라예보의 사람들은 이렇게 되찾아간다.

저자인 스티븐 갤러웨이는 인터뷰와 작중 인물 드라간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문명은 건축물처럼 한번 쌓아올렸다고 해서 계속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생되고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전쟁은 인간이 쌓아올린 것을 한순간에 빼앗아간다. 물질로서의 문명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들도 철저히 파괴한다. 작가는 문명을 지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투쟁하는 세 인물을 그리며, 그 구심점에 첼리스트를 놓았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숨 가쁘게 좇는 문장은 매순간 마음의 움직임과 그들이 내리는 선택을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중계한다. 영국 '가디언' 지의 지적대로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졌지만, 철학적이고 지적이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이 문학적 성취는 온전히 그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문 해외면 한 귀퉁이에 실렸던 머나먼 이야기를 지금 이곳의 것으로, 우리와 똑같이 숨 쉬고 존재하는 이들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소설, 이런 감동,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쌍둥이 빌딩에서 줄타기를 시도하는 집시 줄광대의 슬프고도 놀라운 이야기를 그린 그의 두번째 소설 『상승』역시 곧 우리나라에 소개될 예정이다.
 

추천평

1992년 사라예보라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읽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소설.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 앞에서도 삶의 의미와 품위, 그리고 인간애를 지키려 했던 이들의 투쟁의 증언이자 만인의 이야기.
칼레드 호세이니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작가)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고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위대하고 힘 있는 이야기.
얀 마텔 (부커 상 수상자, 『파이 이야기』)
영혼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통해 폭탄이 빗발치는 사라예보를 그려냈다.
존 쿳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놀라운 소설. 광기에 직면한 인간 정신에 바치는 애도의 찬가.
케빈 베이커 (소설가)
갤러웨이는 이 생동감 넘치는 열정적인 소설을 통해 우리를 포위된 도시의 바로 그 거리로 데려간다. 머리 위에는 저격수가, 주위엔 카메라가, 발밑에는 꿈의 잔해가 있고, 자칫 하면 바로 사망하거나, 인간 존엄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는 그곳으로.
드라간 토도로빅 (역사학자, 『복수의 책』)
전쟁의 슬픔을 이처럼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그려낸 소설은 본 적이 없다. 작가는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뛰어나고 깊은 인간애를 담은 노래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Z. Z. 패커 (소설가)
하나의 계시와도 같은 소설.
크리스토퍼 호프 (소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인물들의 감정과 동기는 완전히 작가의 것이다. 섬세한 장인의 정신으로 빚어진 전문가의 작품.
가디언(The Guardian)
눈을 뗄 수가 없다. 모든 행동이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갤러웨이는 현대 소설이 자아와 관계의 작은 세계에만 천착하지 않고 더욱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내셔널 포스트
힘이 넘치고 소름이 돋는 소설. 놀라울 정도로 잘 이끌어낸 인물과 내러티브를 통해, 먼 나라 남의 일을 바로 우리의 일로 여기도록 만든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인간의 내면에 깃든 선량함을 감동 깊게 증언하는 시적이고 힘 있는 소설.
스펙테이터
전쟁 속의 인간 본성을 그린 시기적절한 소설. 마음을 치유한다.
CBC 뉴스
작가는 감각적이고 정확한 문장을 통해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사이에 벌어지는 숨은 이야기들을 짚어낸다. 절망적인 현재를 살지만, 빼앗길 수 없는 지혜를 통해 세상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들의 초상화.
글로브 앤드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