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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의 근대교육은 메이지 신정부가 주도한 유신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전근대적 봉건사회에서 근대 국민국가로의 이행이 교육의 개혁에 따른 보통교육의 보급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할 때, 일본의 근대교육이 갖는 문명사적 의미 또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메이지 신정부가 목표로 했던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식산흥업(殖産興業)이라는 국가적 어젠다(Agenda)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추진해 나갈 인재의 양성이 시급했으며, 인재의 양성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선진 교육제도를 갖추고, 공리주의(功利主義)적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내용의 확립이 절실했다. 본서는 20세기에 들어 일본이 선진 일류국가로서 우뚝 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근대 일본의 교육개혁, 그중에서도 특히 초등교육에 관한 의무교육 실현을 위한 노력과 이른 시기에 이뤄낸 목표 달성에 두고 그것에 대해 면밀히 파헤치고 있다.
목차
서장
제1장
메이지[明治] 전기 국민국가 형성과 교육-학제(學制)의 제정과 지육(智育)
메이지유신[明治維新]/메이지유신 약사/메이지유신의 교육사적 의의/유신 초기 관학(官學)의 흐름/서구의 교육사정 소개/이와쿠라사절단[岩倉使節·]/보통교육(普通敎育)의 도입/동양의 도덕과 서양의 예술/1872년 학제(學制) 제정/학제 서문-피앙출서(被仰出書)/학제의 공리주의(功利主義) 교육관
제2장
메이지[明治] 중·후기 국민국가 형성과 교육-지육(智育)에서 덕육(德育)으로
1879년 교육령(敎育令)/1879년 교학성지(敎學聖旨)/자유민권운동(自由民權運動)/1880년 교육령(敎育令) 개정/1886년 모리 아리노리[森有禮]의 종별 학교령(種別學校令)/1890년의 교육칙어(敎育勅語)/종별(種別) 전문화·특성화 교육/전문학교령(專門學校令)
제3장
국민국가 형성과 창가(唱歌) Ⅰ-메이지 전기 창가 교육을 중심으로
일본의 음악/일본 전통음악의 특징/창가(唱歌)의 도입/일본 근대음악의 창시자 이자와 슈지[伊·修二]/창가유희(唱歌遊戱)/음악조사계[音樂取調掛] 설치/음악조사계[音樂取調掛]의 활동/음악교육 전문가 메이슨의 초빙/일본 최초의 창가집 『소학창가집(小學唱歌集)』/창가를 통한 도덕교육/『소학창가집』의 노래 분석/『소학창가집』의 완성까지/『유치원창가집(幼稚園唱歌集)』/이자와 슈지[·修二]는 변절자인가
제4장
국민국가 형성과 창가(唱歌) Ⅱ-메이지 후기 창가 교육을 중심으로
문부성창가(文部省唱歌)/『심상소학독본창가(尋常小··本唱歌)』/준(準) 국정창가집(國定唱歌集)/『심상소학창가(尋常小學唱歌)』/『심상소학창가』의 노래 분류/『심상소학창가』의 노래 분석/전쟁영웅(戰爭英雄)과 창가/교육을 통한 천황제이데올로기 창출
종장
음악교육을 통한 국민국가 만들기
부록
에도[江戶] 시대의 교육
참고문헌(參考文獻)
초출일람(初出一覽)
찾아보기
제1장
메이지[明治] 전기 국민국가 형성과 교육-학제(學制)의 제정과 지육(智育)
메이지유신[明治維新]/메이지유신 약사/메이지유신의 교육사적 의의/유신 초기 관학(官學)의 흐름/서구의 교육사정 소개/이와쿠라사절단[岩倉使節·]/보통교육(普通敎育)의 도입/동양의 도덕과 서양의 예술/1872년 학제(學制) 제정/학제 서문-피앙출서(被仰出書)/학제의 공리주의(功利主義) 교육관
제2장
메이지[明治] 중·후기 국민국가 형성과 교육-지육(智育)에서 덕육(德育)으로
1879년 교육령(敎育令)/1879년 교학성지(敎學聖旨)/자유민권운동(自由民權運動)/1880년 교육령(敎育令) 개정/1886년 모리 아리노리[森有禮]의 종별 학교령(種別學校令)/1890년의 교육칙어(敎育勅語)/종별(種別) 전문화·특성화 교육/전문학교령(專門學校令)
제3장
국민국가 형성과 창가(唱歌) Ⅰ-메이지 전기 창가 교육을 중심으로
일본의 음악/일본 전통음악의 특징/창가(唱歌)의 도입/일본 근대음악의 창시자 이자와 슈지[伊·修二]/창가유희(唱歌遊戱)/음악조사계[音樂取調掛] 설치/음악조사계[音樂取調掛]의 활동/음악교육 전문가 메이슨의 초빙/일본 최초의 창가집 『소학창가집(小學唱歌集)』/창가를 통한 도덕교육/『소학창가집』의 노래 분석/『소학창가집』의 완성까지/『유치원창가집(幼稚園唱歌集)』/이자와 슈지[·修二]는 변절자인가
제4장
국민국가 형성과 창가(唱歌) Ⅱ-메이지 후기 창가 교육을 중심으로
문부성창가(文部省唱歌)/『심상소학독본창가(尋常小··本唱歌)』/준(準) 국정창가집(國定唱歌集)/『심상소학창가(尋常小學唱歌)』/『심상소학창가』의 노래 분류/『심상소학창가』의 노래 분석/전쟁영웅(戰爭英雄)과 창가/교육을 통한 천황제이데올로기 창출
종장
음악교육을 통한 국민국가 만들기
부록
에도[江戶] 시대의 교육
참고문헌(參考文獻)
초출일람(初出一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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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국민국가 형성,
어린 학생들은 사물(事物)을 스스로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누구로부터 어떤 교육프로그램에 의해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과 능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정통성이 결여된 권력집단이 체제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반공(反共)이라는 절대적 통치이데올로기와, 이를 무비판?무사고적으로 주입?세뇌시키기 위해 자행된 반 교육적 행태가 오랜 세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선량한 어린아이들의 자율적 사고와 판단력을 마비시켜왔다. 1970년대 교육환경에서 자란 필자는 어린 시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제되었던 다양한 이념 교육, 예를 들면 각종 반공 글짓기, 반공 포스터 그리기, 국기에 대한 맹세[盟誓] 및 국민교육헌장의 암송, 각종 단체 행동 시에 강제되었던 이념 색이 짙은 동요나 군가의 합창, 군무(群舞) 유희, 호국의 달에 있었던 단체 영화 관람, 교련(敎鍊)을 위시로 한 각종 군사교육 등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왜곡된 사상(事象)의 세뇌를 받았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의 북한군의 극악무도함과 이따금 들려오던 무장공비와 간첩들의 잔악상에 대한 교육 현장에서의 반복된 학습을 통해 우리는 38선 이북에는 금수만도 못한 괴뢰정권이 호시탐탐 적화통일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았으며, 시시때때로 광장이나 운동장에 모여 괴뢰집단의 수괴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아끼지 않고 활약했던 전쟁영웅들의 구국미담(救國美談)은 학교 교육을 위시로 다양한 미디어채널을 통해 확대?재생산을 반복하며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충성과 헌신이야말로 시대의 최고의 가치임을 강요받았었다. 심지어 유신헌법(維新憲法) 체제하에서는 군사 독재정권에 반대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던 이들이 모두 종북세력, 즉 ‘빨갱이’라 매도당해 목숨을 잃거나 모진 고초를 겪어야만 했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21세기도 10여 년이 지난 현재도 유학?무학을 막론하고, 지난 시절 학교 교육을 위시로 한 각종 매체를 통해 자행되었던 세뇌의 메커니즘을 자각하지 못한 일부 노인들이 자칭 우익단체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원색적인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반대 세력을 향해 막무가내로 ‘빨갱이’를 입에 담는 광경을 볼 때마다 세뇌, 특히 교육에 의한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불과 반세기 전의 우리네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이와 같은 행태가 대략 100여 년 전에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자행되었던 방법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교육이라는 기제,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통합이라는 절대적 조건 위에 성립하며, 국민통합은 공통된 이데올로기의 공유를 전제로 한다. 일본의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 있어 국민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는 다름 아닌 문명개화를 통한 근대화였으며, 그 선두에서 이를 이끌 강력한 전제군주, 즉 만세일계의 황통보(皇統譜)를 자랑하는 천황 그 자체였다. 이에 메이지 신정부는 문부성(文部省)을 통해 국민교육을 철저히 통제?관리하면서 일본제국(日本帝國)의 신민(臣民)으로서 갖춰야 할 사상적 통일을 꾀하였다. 국어?수신(修身)?역사 과목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특히 창가(唱歌)라는 음악교육을 통해 청각과 발성의 이중작용을 도야(陶冶)함은 물론, 합창을 통해 대동단결의 정신을 강화시켜 나갔다. 충군애국(忠君愛國) 사상과 유교적 교양을 담은 가사를 소리 높이 부르게 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을 강하게 의식하게 했으며, 신민으로서의 바른 사고와 행동규범을 반복해서 학습시켰다. 국가 제창이나 교가, 응원가, 아니면 애창곡을 함께 부르며 공유한다는 것이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식을 높이기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을 우리는 19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합창운동이나 플라톤의 선법론(旋法論)을 운운할 필요도 없이 유소년시절부터의 일상생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데, 메이지의 교육 수뇌들은 바로 노래가 갖는 이러한 효능에 착목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근대교육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로 교육사적 관점에 입각하여, 일본의 교육제도의 한국에의 영향이라는 비교 프레임 속에서 양국 제도의 영향관계를 비교하거나, 식민지 조선의 굴절된 신교육이라는 점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필자는 종래의 교육사적 비교 프레임이 아닌 문화사적 관점에서 일본의 근대교육을 해부해 보려 한다. 오늘날 일본이 세계 유수의 선진 대국 대열에서 고도의 문화적 성숙을 자랑하는 초일류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는 각각의 연구 분야에서 심도 높은 논의가 가능하겠으나, 필자는 그 계기가 다름 아닌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있었고, 유신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절대적 원동력이 바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통교육의 실시와 그것을 통한 전체주의적 국가사상의 확립, 게다가 그러한 교육환경에서 배출된, 국가와 민족을 강하게 인식하는 우수한 인재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본서를 통해 메이지기 일본 국민교육의 실태에 대해서 주로 교육이념의 설정과 변화를 중심으로 이를 개관하며, 시의(時宜)에 따른 제도와 이념의 변화가 창가 교육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가, 아니면 교육이념의 변화는 창가 교육의 내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메이지기[明治期] 국민교육의 실태를 창가 교육의 실례를 통해 통시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이는 제국주의, 군국주의로 치닫는 20세기 초 이른바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의 제국 일본의 사상적 정체성 확립에 학교 교육이 어떻게 관여하고 진행되었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선행 작업이 되기도 하고, 근대 국민국가 일본의 규범 형성과 교육이라는 문제를 규명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도 있어 기대되는 바가 매우 크다.
어린 학생들은 사물(事物)을 스스로 생각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누구로부터 어떤 교육프로그램에 의해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과 능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정통성이 결여된 권력집단이 체제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반공(反共)이라는 절대적 통치이데올로기와, 이를 무비판?무사고적으로 주입?세뇌시키기 위해 자행된 반 교육적 행태가 오랜 세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선량한 어린아이들의 자율적 사고와 판단력을 마비시켜왔다. 1970년대 교육환경에서 자란 필자는 어린 시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제되었던 다양한 이념 교육, 예를 들면 각종 반공 글짓기, 반공 포스터 그리기, 국기에 대한 맹세[盟誓] 및 국민교육헌장의 암송, 각종 단체 행동 시에 강제되었던 이념 색이 짙은 동요나 군가의 합창, 군무(群舞) 유희, 호국의 달에 있었던 단체 영화 관람, 교련(敎鍊)을 위시로 한 각종 군사교육 등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왜곡된 사상(事象)의 세뇌를 받았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의 북한군의 극악무도함과 이따금 들려오던 무장공비와 간첩들의 잔악상에 대한 교육 현장에서의 반복된 학습을 통해 우리는 38선 이북에는 금수만도 못한 괴뢰정권이 호시탐탐 적화통일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았으며, 시시때때로 광장이나 운동장에 모여 괴뢰집단의 수괴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아끼지 않고 활약했던 전쟁영웅들의 구국미담(救國美談)은 학교 교육을 위시로 다양한 미디어채널을 통해 확대?재생산을 반복하며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충성과 헌신이야말로 시대의 최고의 가치임을 강요받았었다. 심지어 유신헌법(維新憲法) 체제하에서는 군사 독재정권에 반대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던 이들이 모두 종북세력, 즉 ‘빨갱이’라 매도당해 목숨을 잃거나 모진 고초를 겪어야만 했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21세기도 10여 년이 지난 현재도 유학?무학을 막론하고, 지난 시절 학교 교육을 위시로 한 각종 매체를 통해 자행되었던 세뇌의 메커니즘을 자각하지 못한 일부 노인들이 자칭 우익단체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원색적인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반대 세력을 향해 막무가내로 ‘빨갱이’를 입에 담는 광경을 볼 때마다 세뇌, 특히 교육에 의한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불과 반세기 전의 우리네 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이와 같은 행태가 대략 100여 년 전에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자행되었던 방법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교육이라는 기제,
근대 국민국가는 국민통합이라는 절대적 조건 위에 성립하며, 국민통합은 공통된 이데올로기의 공유를 전제로 한다. 일본의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에 있어 국민통합을 위한 이데올로기는 다름 아닌 문명개화를 통한 근대화였으며, 그 선두에서 이를 이끌 강력한 전제군주, 즉 만세일계의 황통보(皇統譜)를 자랑하는 천황 그 자체였다. 이에 메이지 신정부는 문부성(文部省)을 통해 국민교육을 철저히 통제?관리하면서 일본제국(日本帝國)의 신민(臣民)으로서 갖춰야 할 사상적 통일을 꾀하였다. 국어?수신(修身)?역사 과목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특히 창가(唱歌)라는 음악교육을 통해 청각과 발성의 이중작용을 도야(陶冶)함은 물론, 합창을 통해 대동단결의 정신을 강화시켜 나갔다. 충군애국(忠君愛國) 사상과 유교적 교양을 담은 가사를 소리 높이 부르게 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을 강하게 의식하게 했으며, 신민으로서의 바른 사고와 행동규범을 반복해서 학습시켰다. 국가 제창이나 교가, 응원가, 아니면 애창곡을 함께 부르며 공유한다는 것이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식을 높이기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을 우리는 19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합창운동이나 플라톤의 선법론(旋法論)을 운운할 필요도 없이 유소년시절부터의 일상생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데, 메이지의 교육 수뇌들은 바로 노래가 갖는 이러한 효능에 착목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의 근대교육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로 교육사적 관점에 입각하여, 일본의 교육제도의 한국에의 영향이라는 비교 프레임 속에서 양국 제도의 영향관계를 비교하거나, 식민지 조선의 굴절된 신교육이라는 점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필자는 종래의 교육사적 비교 프레임이 아닌 문화사적 관점에서 일본의 근대교육을 해부해 보려 한다. 오늘날 일본이 세계 유수의 선진 대국 대열에서 고도의 문화적 성숙을 자랑하는 초일류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서는 각각의 연구 분야에서 심도 높은 논의가 가능하겠으나, 필자는 그 계기가 다름 아닌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있었고, 유신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절대적 원동력이 바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통교육의 실시와 그것을 통한 전체주의적 국가사상의 확립, 게다가 그러한 교육환경에서 배출된, 국가와 민족을 강하게 인식하는 우수한 인재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본서를 통해 메이지기 일본 국민교육의 실태에 대해서 주로 교육이념의 설정과 변화를 중심으로 이를 개관하며, 시의(時宜)에 따른 제도와 이념의 변화가 창가 교육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가, 아니면 교육이념의 변화는 창가 교육의 내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하는 메이지기[明治期] 국민교육의 실태를 창가 교육의 실례를 통해 통시적으로 고찰해 보았다. 이는 제국주의, 군국주의로 치닫는 20세기 초 이른바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의 제국 일본의 사상적 정체성 확립에 학교 교육이 어떻게 관여하고 진행되었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선행 작업이 되기도 하고, 근대 국민국가 일본의 규범 형성과 교육이라는 문제를 규명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도 있어 기대되는 바가 매우 크다.
'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 > 3.일본근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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