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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실 정치에 기반을 두며 평화를 모색하다
안보의 논리와 평화의 논리는 서로 상충하는 것인가? 대립하는 세력들 관계의 핵심을, 안보를 도외시하지 않으면서, 평화로 이동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에서 모은 여섯 편의 글은 한반도와 독일의 사례를 통해 안보와 평화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며 그 한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현실 정치 분석에 기반을 두며 평화를 모색해 온 노력의 산물이다. 서로 전공과 접근법이 다른 여섯 명의 필자들이 ‘한반도에서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다양한 주장과 제언을 펼친다.
안보의 논리와 평화의 논리는 서로 상충하는 것인가? 대립하는 세력들 관계의 핵심을, 안보를 도외시하지 않으면서, 평화로 이동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에서 모은 여섯 편의 글은 한반도와 독일의 사례를 통해 안보와 평화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며 그 한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현실 정치 분석에 기반을 두며 평화를 모색해 온 노력의 산물이다. 서로 전공과 접근법이 다른 여섯 명의 필자들이 ‘한반도에서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다양한 주장과 제언을 펼친다.
목차
엮은이의 말
제1부 안보의 논리와 상호주의
- 한반도 평화체제의 역사적, 이론적 쟁점 - 구갑우
- 위태로운 상호주의: 미국의 대북정책 - 이혜정
- 동서독 관계에서 상호주의의 의미와 실천 그리고 시사점 - 김학성
제2부 한반도에서 평화의 논리와 실천
- 6.15공동선언 20년: 역사적 함의와 공과 - 최완규
- 남북 교류와 협력의 평화론적 해석 - 이찬수
- 비동맹 미학, 그리고 한반도 평화 - 샤인 최
제1부 안보의 논리와 상호주의
- 한반도 평화체제의 역사적, 이론적 쟁점 - 구갑우
- 위태로운 상호주의: 미국의 대북정책 - 이혜정
- 동서독 관계에서 상호주의의 의미와 실천 그리고 시사점 - 김학성
제2부 한반도에서 평화의 논리와 실천
- 6.15공동선언 20년: 역사적 함의와 공과 - 최완규
- 남북 교류와 협력의 평화론적 해석 - 이찬수
- 비동맹 미학, 그리고 한반도 평화 - 샤인 최
탈냉전시대 한반도 안보딜레마의 본질은 북한 핵무기 대 한미동맹의 대립구도처럼 보인다. 북한의 내적 세력 균형 정책 대 한국의 외적 세력 균형 정책, 북한 핵 억제 대 한미 확장 억제 혹은 한국 자주국방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이 안보 딜레마는, 중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면서 패권 경쟁과 연계되는 또 다른 특이성을 띠게 되었다.
---pp.32,33
미국의 대북 정책을 크게 강압과 관여로 나누는 것은 물론 이념형의 차원에서다. 현실에서는 강압이 우세한 경우에도 외교적 소통 채널을 완전히 차단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반대로 관여가 우세할 때에도 봉쇄와 억지, 방어 등 군사적 대비를 병행했다. 하지만 강압-관여의 스펙트럼에서 각각의 정책담론은 북한의 위협과 능력, 한미동맹의 역할, 미국의 이익과 능력에 대한 상이한 평가에 기초하여 상이한 우선순위의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p.49
독일 분단과 한반도 분단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특히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상호주의 적용 방식의 변화를 이끌었던 요인들 가운데 서독 사회의 분단인식이 변화가 있었다. 과거 서독이나 현재 한국이 스스로 지역 질서나 분단 구조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 서독이 관계 개선에 수반하는 서독의 영향력 침투를 두려워했던 동독을 변화시키기 매우 어려워했듯 지금 북한을 대하는 남한의 입장도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서독이 분단으로 인한 고통을 어떻게 스스로 해결하려 했는지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98
남북 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어느 정책이 더 적실성을 갖는가? 이근이 적절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그 해답은 어느 정책이 좀 더 평화적이고 북한과 남한 모두 최소한의 부작용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인가를 고르는 데 있다. 즉 갈등과 대결, 전쟁 위험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미사일 개발보다 북한의 체제 안전 담보와 경제발전을 할 수 있는 대안을 경험적으로 보여주면서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그 수단은 강제보다는 평화적인 방식의 설득과 보상을 중시하는 정책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p.154
평화다원주의라는 말은 그저 평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거나, 모든 입장들이 다 옳다는 뜻이 아니다. 가치론적 차원에서 누군가의 평화론이 더 옳거나 도덕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객관적 기준을 단박에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현실에서는 한결같이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가 옳다고 여기며 자신에게 유리한 어떤 상태를 기대한다. 평화조차 자기중심적 해석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경험하는 평화는 사실상 ‘평화들’이라는 사실을 일단 긍정하고서, 이 다양성을 충돌이나 갈등이 아니라 공평과 조화라는 상위의 가치를 지향해 나가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pp.168,169
역사적으로 비동맹이 결코 중립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는 강대국 정치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반식민주의 국가의 협정에 의한 거부이자 물질적 대가를 수반하는 정치적 평등에 대한 요구였던 것처럼, 더 넓은 정치 미학적 자리매김으로서의 비동맹은 편들기에 대한 거부임과 동시에 국제관계에서 종종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지식과 권력의 공간과 원천과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pp.32,33
미국의 대북 정책을 크게 강압과 관여로 나누는 것은 물론 이념형의 차원에서다. 현실에서는 강압이 우세한 경우에도 외교적 소통 채널을 완전히 차단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반대로 관여가 우세할 때에도 봉쇄와 억지, 방어 등 군사적 대비를 병행했다. 하지만 강압-관여의 스펙트럼에서 각각의 정책담론은 북한의 위협과 능력, 한미동맹의 역할, 미국의 이익과 능력에 대한 상이한 평가에 기초하여 상이한 우선순위의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p.49
독일 분단과 한반도 분단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특히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상호주의 적용 방식의 변화를 이끌었던 요인들 가운데 서독 사회의 분단인식이 변화가 있었다. 과거 서독이나 현재 한국이 스스로 지역 질서나 분단 구조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 서독이 관계 개선에 수반하는 서독의 영향력 침투를 두려워했던 동독을 변화시키기 매우 어려워했듯 지금 북한을 대하는 남한의 입장도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서독이 분단으로 인한 고통을 어떻게 스스로 해결하려 했는지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p.98
남북 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어느 정책이 더 적실성을 갖는가? 이근이 적절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그 해답은 어느 정책이 좀 더 평화적이고 북한과 남한 모두 최소한의 부작용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인가를 고르는 데 있다. 즉 갈등과 대결, 전쟁 위험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미사일 개발보다 북한의 체제 안전 담보와 경제발전을 할 수 있는 대안을 경험적으로 보여주면서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그 수단은 강제보다는 평화적인 방식의 설득과 보상을 중시하는 정책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p.154
평화다원주의라는 말은 그저 평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거나, 모든 입장들이 다 옳다는 뜻이 아니다. 가치론적 차원에서 누군가의 평화론이 더 옳거나 도덕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객관적 기준을 단박에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현실에서는 한결같이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가 옳다고 여기며 자신에게 유리한 어떤 상태를 기대한다. 평화조차 자기중심적 해석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경험하는 평화는 사실상 ‘평화들’이라는 사실을 일단 긍정하고서, 이 다양성을 충돌이나 갈등이 아니라 공평과 조화라는 상위의 가치를 지향해 나가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pp.168,169
역사적으로 비동맹이 결코 중립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는 강대국 정치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반식민주의 국가의 협정에 의한 거부이자 물질적 대가를 수반하는 정치적 평등에 대한 요구였던 것처럼, 더 넓은 정치 미학적 자리매김으로서의 비동맹은 편들기에 대한 거부임과 동시에 국제관계에서 종종 주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지식과 권력의 공간과 원천과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p.217
출판사 리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실제 정치과정에서 안보의 논리와 평화에 대한 다른 차원의 개념이 중층적으로 존재함을 보여준다. 제1부에 실린 구갑우의 글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다루지만, 남한의 ‘평화체제’ 또는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이 안보딜레마에 막혀 진전하지 못한 역사적 과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 제언을 담고 있다. 이 글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한미동맹의 지속이라는 세 가지 목표는 동시에 달성될 수 없고, 이 가운데 두 가지만을 이뤄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혜정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일관성을 지녔거나, 미국의 대북정책 관련 인사들이 하나의 목소리만 내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한편으로는, 같은 가치를 지니는 행위를 거의 동시에 교환하는 ‘구체적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이의 한계를 보완하는 ‘느슨한 상호주의’를 추구하는 흐름이 미국 내에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절대적으로 선하다는 미국 예외주의를 기반으로 북한은 합리적 행위자가 아니기에 대화상대로 아예 인정하지 않는 북한 예외주의의 흐름도 존재했다고 분석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던 트럼프는 부시 대통령의 미국 예외주의와 북한 예외주의를 부정하기는 했지만, 기존의 미국 대북정책의 선 비핵화 요구와 제재 유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상호주의도 평화로 나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결론 내린다.
상대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공동의 규범을 마련하기 힘든 국제정치의 현실에서는 ‘구체적 상호주의’, 즉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의 엄격한 교환과, 배신에 대한 배신으로의 응답이 협력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입장이 존재하지만, 김학성은 동서독 관계의 사례를 통해 이를 반박한다. 현실에서는 행위의 교환이 항상 등가적일 수 없거나 가치를 측정하기 힘든 경우도 있으며, 또 동시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행위도 자주 등장한다. 정치범 석방 거래의 형식을 빌린 인도주의적 교류와 이주, 동독에 더 이득이 되는 방식의 경제 협력과 비상업적인 교류는 특히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더욱 활성화되었다.
이 책의 제2부에서 최완규는 남북 분단 이후 최초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여러 차원의 교류협력이 활성화되었으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립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김대중 정부 시기 햇볕정책의 공과를 되짚어본다. 이 시기 남북 관계의 진전은 남한이 느슨한 상호주의를 채택했고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이를 지원한 것이 원동력이었으며, 북한도 남북 대화에 나설 만한 상황이었던 배경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물론 김대중 정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북한체제의 변화 유도인지, 북한체제의 생존 보장인지 모호한 점이 있었고, 상호주의의 적용에서도 남북 사이 인식의 차이로 협상이 결렬된 적이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군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화해협력 정책을 견지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아내지 못해 종종 비판에 직면했으며,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며 대북정책이 바뀌자 온전한 결실을 맺는 데에는 실패했다.
종교학자 이찬수는 평화를 공평과 조화가 충만한 상태로 정의한 요한 갈퉁을 인용하면서도, 이 정의처럼 평화를 ‘일체의 폭력이 없는 상태’로 보는 것에 그치면 현실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인류는 상처와 갈등으로 항상 고통 받아 왔기에, 현실에서 평화는 폭력이 전혀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폭력을 줄이는 동적 과정, 즉 ‘감폭력’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평화와 폭력의 현실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자신의 평화와 상대의 평화가 개념, 의도, 목적, 방법의 측면에서 다를 수 있다는 전제에서 복수의 ‘평화들’을 긍정하는 평화다원주의로 이어진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갈퉁의 정의에서 또 종교의 세계에서 제시하는 절대적 차원의 평화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이상을 향해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는 제안이다.
샤인 최의 글은 전개와 서술에서도 독자들에게 편안한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미학이란 불평등한 국제질서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펼쳐나가기 위해 기존의 역사 서술이나 국제정치의 현실 논리 대신, 감각지각에 기초해 더 많은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많은 학자들은 설령 제3세계의 반식민주의를 지지하는 주장을 펼칠 때조차도 베스트팔렌 조약 이래 형성된 유럽 중심주의의 논리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대안적 세계를 계획하고 탐구하는 공유의 방식으로서 미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샤인 최의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가들에게 냉전 시대 성과 없이 끝난 움직임으로 폄훼 받는 비동맹운동은 다시 조명 받아야 하며, 북한의 “주체” 개념이 비동맹운동과 공명하면서도 결국은 실패로 귀결된 과정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 필자들의 전공과 접근법은 상이하고 동일한 결론을 내리지도 않지만, 이들이 가진 같은 문제의식, ‘한반도에서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좇는 것은 고답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 엮은이의 말 중에서
이혜정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일관성을 지녔거나, 미국의 대북정책 관련 인사들이 하나의 목소리만 내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한편으로는, 같은 가치를 지니는 행위를 거의 동시에 교환하는 ‘구체적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이의 한계를 보완하는 ‘느슨한 상호주의’를 추구하는 흐름이 미국 내에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절대적으로 선하다는 미국 예외주의를 기반으로 북한은 합리적 행위자가 아니기에 대화상대로 아예 인정하지 않는 북한 예외주의의 흐름도 존재했다고 분석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던 트럼프는 부시 대통령의 미국 예외주의와 북한 예외주의를 부정하기는 했지만, 기존의 미국 대북정책의 선 비핵화 요구와 제재 유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상호주의도 평화로 나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결론 내린다.
상대에 대한 불신이 강하고 공동의 규범을 마련하기 힘든 국제정치의 현실에서는 ‘구체적 상호주의’, 즉 행동 대 행동, 말 대 말의 엄격한 교환과, 배신에 대한 배신으로의 응답이 협력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입장이 존재하지만, 김학성은 동서독 관계의 사례를 통해 이를 반박한다. 현실에서는 행위의 교환이 항상 등가적일 수 없거나 가치를 측정하기 힘든 경우도 있으며, 또 동시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행위도 자주 등장한다. 정치범 석방 거래의 형식을 빌린 인도주의적 교류와 이주, 동독에 더 이득이 되는 방식의 경제 협력과 비상업적인 교류는 특히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더욱 활성화되었다.
이 책의 제2부에서 최완규는 남북 분단 이후 최초의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여러 차원의 교류협력이 활성화되었으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립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김대중 정부 시기 햇볕정책의 공과를 되짚어본다. 이 시기 남북 관계의 진전은 남한이 느슨한 상호주의를 채택했고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이를 지원한 것이 원동력이었으며, 북한도 남북 대화에 나설 만한 상황이었던 배경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물론 김대중 정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북한체제의 변화 유도인지, 북한체제의 생존 보장인지 모호한 점이 있었고, 상호주의의 적용에서도 남북 사이 인식의 차이로 협상이 결렬된 적이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는 군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화해협력 정책을 견지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아내지 못해 종종 비판에 직면했으며,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며 대북정책이 바뀌자 온전한 결실을 맺는 데에는 실패했다.
종교학자 이찬수는 평화를 공평과 조화가 충만한 상태로 정의한 요한 갈퉁을 인용하면서도, 이 정의처럼 평화를 ‘일체의 폭력이 없는 상태’로 보는 것에 그치면 현실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인류는 상처와 갈등으로 항상 고통 받아 왔기에, 현실에서 평화는 폭력이 전혀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폭력을 줄이는 동적 과정, 즉 ‘감폭력’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평화와 폭력의 현실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자신의 평화와 상대의 평화가 개념, 의도, 목적, 방법의 측면에서 다를 수 있다는 전제에서 복수의 ‘평화들’을 긍정하는 평화다원주의로 이어진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갈퉁의 정의에서 또 종교의 세계에서 제시하는 절대적 차원의 평화를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이상을 향해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는 제안이다.
샤인 최의 글은 전개와 서술에서도 독자들에게 편안한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미학이란 불평등한 국제질서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펼쳐나가기 위해 기존의 역사 서술이나 국제정치의 현실 논리 대신, 감각지각에 기초해 더 많은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많은 학자들은 설령 제3세계의 반식민주의를 지지하는 주장을 펼칠 때조차도 베스트팔렌 조약 이래 형성된 유럽 중심주의의 논리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대안적 세계를 계획하고 탐구하는 공유의 방식으로서 미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샤인 최의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가들에게 냉전 시대 성과 없이 끝난 움직임으로 폄훼 받는 비동맹운동은 다시 조명 받아야 하며, 북한의 “주체” 개념이 비동맹운동과 공명하면서도 결국은 실패로 귀결된 과정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 필자들의 전공과 접근법은 상이하고 동일한 결론을 내리지도 않지만, 이들이 가진 같은 문제의식, ‘한반도에서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좇는 것은 고답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 엮은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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