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남북정상회담의 대통령 특사이자 피스메이커의 상징적인 인물 임동원이 자신의 90년 인생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기록했다. 임동원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북도 위원에서 태어나 북녘 땅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한국전쟁 때 혈혈단신 월남하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대한민국 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동서냉전 시기인 1950~1970년대에는 군복을 입고 안보 분야에서 피스키퍼로, 1980년대는 외교 분야에서 외교관으로, 동서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는 통일 분야에서 피스 메이커로 그리고 공직생활을 마친 뒤에는 시민사회의 평화·통일 운동가로 봉사해 온 임동원의 인생 역정이 최근 100년간의 한국 현대사와 어우러져 생생하게 펼쳐진다. 남북 대화와 협력이 경색된 위기의 한반도 상황에서 남북 화합과 평화의 여정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우리가 나아가야 할 평화의 길을 모색하게 한다.
목차
머리말
1부 · 시련 속에서 단련되다
1장 일제 강점기와 해방-분단-전쟁을 겪으며
범사에 감사하라 / 일제 치하의 소년 시절 / 북에서 맞은 8 · 15 해방 / 국토 분단의 비극 속에서 / 월남과 국민방위군 생활 / 행운의 미군부대 종업원 /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 육사 4년 / 대한민국 육군소위
2장 연구하며 실력을 배양하다
서울대에서 맞은 4.19혁명 / 5.16과 육사생의 지지 시가행진 / ROTC제도 폐지가 아니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 미국 군사유학 : 게릴라전 연구 / 첫 책 〈혁명전쟁과 대공전략〉 출간과 결혼
2부 · 안보 일선에서: 자주국방의 길
3장 이스라엘에서 배우다
이스라엘 군사제도 연구 시찰 / 최초의 키브츠 '데가니아' / 이스라엘의 군사전략 / 이스라엘 힘의 원천
4장 자주국방과 율곡계획
이병형 합참 본부장과의 만남/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 / 율곡계획이 태어나기까지 / 방위세와 율곡사업 / DMZ에서 육군80위원회로 / 신 군부의 집권과 퇴역
3부 · 외교 일선에서
5장 나이지리 4년
군인에서 외교관으로: 나이지리아 연구 / 라고스에서의 험난한 외교관 생활 / 대통령 국빈방문 / 부하리 장군의 쿠데타
6장 오스트레일리아 3년
험지에서 파라다이스로 /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이룩한 복지국가 / 캔버라와 시드니를 오가며 / 6개 주와 북부 특구 공식 방문 / 한반도 분단의 증인 플림솔 경과 나눈 대화 / 아름다운 캔버라의 추억
7장 한반도냉전 종식의 길을 찾아서
외교안보연구원의 연구 교육제도 개혁 / 군비통제 정책 입안 / 페레스트로이카의 현장 모스크바 방문 / 베를린에서 본 독일 통일
4부 · 평화와 통일의 길에서
8장 남북 화해 협력 모색 5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 서울과 평양의 만남 / 이산가족 상봉과 강영훈 총리의 사임 / 적도 친구도 아닌 문제 해결사들 /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채택 / 김일성과 김우중 그리고 김달현 / 남남갈등과 지연전술 / 노태우 대통령과의 독대 / 마지막이 된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와 남북대화 파탄
9장 김대중과의 만남
민통과 세종연구소 2년 / 김대중과의 첫 만남 /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 /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추진 / 연평해전과 통일부장관의 어려운 결단
10장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4.13총선 계기로 거듭난 국정원 / 남북정상회담 준비 / 김정일과의 첫 만남 / 역사적인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 화해협력시대의 개막 / 6 · 15와 북-미 관계 진전
11장 역풍을 만난 남북관계
부시의 ABC와 대북 적대정책 / 다시 통일부로 / 8 · 15평양축전과 세 번째의 장관 해임안 /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 / 다시 대통령특사가 되어 평양으로 / 제네바 미-북합의 파기와 북핵 개발
5부 · 공직을 마치고 평화 통일운동 참여
12장 세종재단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시기
현대의 대북송금문제와 특검 / 남북관계 개선을 선도한 금강산 관광사업 / 유럽3국과 중국 방문
민간 싱크탱크 세종재단 / 2005년의 6 · 15와 8 · 15 남북공동행사 / 남북경제공동체를 지향한 개성공단 / 국정원 불법감청사건 / 회고록 〈피스메이커〉 출판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 G2로 부상하는 중국 방문 / 하와이, 애틀랜타와 로스앤젤레스
13장 한반도 평화의 길
김대중 대통령 서거 / 한반도평화포럼 / 동방정책과 햇볕정책의 만남 / 압록강 두만강 따라 3,300리 길 / 다시 찾은 평양과 백두산
1부 · 시련 속에서 단련되다
1장 일제 강점기와 해방-분단-전쟁을 겪으며
범사에 감사하라 / 일제 치하의 소년 시절 / 북에서 맞은 8 · 15 해방 / 국토 분단의 비극 속에서 / 월남과 국민방위군 생활 / 행운의 미군부대 종업원 /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 육사 4년 / 대한민국 육군소위
2장 연구하며 실력을 배양하다
서울대에서 맞은 4.19혁명 / 5.16과 육사생의 지지 시가행진 / ROTC제도 폐지가 아니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 미국 군사유학 : 게릴라전 연구 / 첫 책 〈혁명전쟁과 대공전략〉 출간과 결혼
2부 · 안보 일선에서: 자주국방의 길
3장 이스라엘에서 배우다
이스라엘 군사제도 연구 시찰 / 최초의 키브츠 '데가니아' / 이스라엘의 군사전략 / 이스라엘 힘의 원천
4장 자주국방과 율곡계획
이병형 합참 본부장과의 만남/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 / 율곡계획이 태어나기까지 / 방위세와 율곡사업 / DMZ에서 육군80위원회로 / 신 군부의 집권과 퇴역
3부 · 외교 일선에서
5장 나이지리 4년
군인에서 외교관으로: 나이지리아 연구 / 라고스에서의 험난한 외교관 생활 / 대통령 국빈방문 / 부하리 장군의 쿠데타
6장 오스트레일리아 3년
험지에서 파라다이스로 /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이룩한 복지국가 / 캔버라와 시드니를 오가며 / 6개 주와 북부 특구 공식 방문 / 한반도 분단의 증인 플림솔 경과 나눈 대화 / 아름다운 캔버라의 추억
7장 한반도냉전 종식의 길을 찾아서
외교안보연구원의 연구 교육제도 개혁 / 군비통제 정책 입안 / 페레스트로이카의 현장 모스크바 방문 / 베를린에서 본 독일 통일
4부 · 평화와 통일의 길에서
8장 남북 화해 협력 모색 5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 서울과 평양의 만남 / 이산가족 상봉과 강영훈 총리의 사임 / 적도 친구도 아닌 문제 해결사들 /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채택 / 김일성과 김우중 그리고 김달현 / 남남갈등과 지연전술 / 노태우 대통령과의 독대 / 마지막이 된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와 남북대화 파탄
9장 김대중과의 만남
민통과 세종연구소 2년 / 김대중과의 첫 만남 / 〈김대중의 3단계 통일론〉 /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추진 / 연평해전과 통일부장관의 어려운 결단
10장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4.13총선 계기로 거듭난 국정원 / 남북정상회담 준비 / 김정일과의 첫 만남 / 역사적인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 화해협력시대의 개막 / 6 · 15와 북-미 관계 진전
11장 역풍을 만난 남북관계
부시의 ABC와 대북 적대정책 / 다시 통일부로 / 8 · 15평양축전과 세 번째의 장관 해임안 /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 / 다시 대통령특사가 되어 평양으로 / 제네바 미-북합의 파기와 북핵 개발
5부 · 공직을 마치고 평화 통일운동 참여
12장 세종재단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시기
현대의 대북송금문제와 특검 / 남북관계 개선을 선도한 금강산 관광사업 / 유럽3국과 중국 방문
민간 싱크탱크 세종재단 / 2005년의 6 · 15와 8 · 15 남북공동행사 / 남북경제공동체를 지향한 개성공단 / 국정원 불법감청사건 / 회고록 〈피스메이커〉 출판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 G2로 부상하는 중국 방문 / 하와이, 애틀랜타와 로스앤젤레스
13장 한반도 평화의 길
김대중 대통령 서거 / 한반도평화포럼 / 동방정책과 햇볕정책의 만남 / 압록강 두만강 따라 3,300리 길 / 다시 찾은 평양과 백두산
책 속으로
이제 제 나이 90을 앞두고 이 자서전을 펴냅니다. 이 자서전에서는 제가 살아온 인생 역정을 기술하였습니다. 저는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해방 후에는 중?고교 시절을 분단된 북녘 땅에서 보내고, 전쟁 시기에 월남하여 제 인생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동서냉전 시기인 1950~1970년대에는 군복을 입고 피스키퍼로서 안보 분야에서, 1980년대에는 외교관으로 외교 분야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리고 동서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는 통일 분야에서 피스메이커로서 제 소명을 다했습니다.
이 자서전에서 저는 제가 살아온 당시의 시대 상황과 한반도 정세를 요약하여 기술하는 한편 《피스메이커》에 담지 못한 개인적인 견해와 뒷이야기 등을 추가하여 서술했습니다. 또한 공직생활을 마치고 시민사회의 평화?통일 운동에 참여한 20년의 삶을 기록했습니다.
---「머리말」중에서
1952년 초겨울의 어느 일요일,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육군사관학교 제3기 사관생도 모집'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모집 요강을 읽어보니 4년간 전액 국비로 군사학과 이공계 대학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이학사 학위를 수여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장교로 임관된다니 이거야말로 안성맞춤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차피 군 복무는 해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응시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구비 서류 중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였다. 평안북도 도민회를 찾아갔더니 고졸을 보증하는 교사의 확인서가 있으면 도지사가 졸업확인서를 발급해 준다는 것이다. 월남한 선생님이 계시겠지만 어디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했다. 도민회에서 들려준 바에 의하면, 전쟁 전에 월남하신 음악 교사 이성삼 선생님이 서울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라는 것이다. 며칠 후 송도 피란민 천막촌에서 이 선생님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성삼 선생님은 선천고급중학교 선생님들에 관해 질문하며 확인하고 난 후 흔쾌히 고졸 보증서를 써주며 육사 합격을 기원해 주셨다.
육사 응시 계획을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않은 채 응시 준비에 전력을 다했다. 부대에서는 미군들이 나를 “정직한 소년”, “부지런히 일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소년”, “품행이 바르고 성실한 모범 종업원”이라며 1952년 크리스마스를 기해 푸짐한 선물을 주었다. 장병들이 돈을 모아, 그 당시 최고급품으로 명성을 날린 큼직한 진공관 '제니스' 라디오를 선물로 준 것이다. 나는 이날의 기쁨과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1부 1장 〈일제 강점기와 해방-분단-전쟁을 겪으며〉」중에서
한신 합참의장은 다양하게 나온 토론 결과를 요약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육군 건의안'을 철회하고 '합참이 마련한 육군계획(안)'을 육군계획으로 채택한다. 둘째, 팬텀기 9개 대대 증강을 검토한다. 셋째, 해군의 항공기 보유 시기는 1980년대로 이월할 것을 검토한다.
이 계획은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이 계획의 보안을 위해 위장 명칭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과원들과 함께 좋은 명칭을 제안하기 위한 토론을 전개했으나 마음에 드는 명칭이 나오지 않았다. 가능하면 뜻이 깊고 역사적이며 부를 때 어감도 좋은 명칭이기를 희망했다. 며칠 후 나는 '율곡계획'과 '아사달계획'이라는 두 가지 안을 제시하고 토론에 붙였다. 모두들 '율곡계획'이 좋겠다며 이 명칭에 찬성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10여 년 앞두고 율곡 이이(1536~1584)는 '10만 양병론'을 주창하며 유비무환(有備無患)을 호소했다. 그는 국방의 의지를 힘(군사력)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창한 위대한 선각자였다. 국방력 건설계획은 바로 유비무환의 정신에 토대를 둔 것이다. 나는 율곡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율곡계획'이라 명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 제안은 이병형 본부장과 한신 의장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채택되었다. 서종철 국방부장관은 합동참모회의가 의결한 이 계획을 그대로 승인했고 대통령께 보고드릴 날짜도 잡혔다. 1974년 2월 25일, 박정희 대통령이 율곡계획을 재가하였다.
---「2부 4장 〈자주국방과 율곡계획〉」중에서
플림솔 경은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되어 전승 4개국 점령하에 있던 오스트리아에 대해서도 미국과 소련 등 전승국은 모스크바 3상회담에서 제시한 한반도 처리 방안과 비슷한 방식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의 좌우익 양측 지도자들은 많은 논쟁 끝에 이를 받아들여 좌우익 연립정부를 수립했고, 연합국의 감독과 지원을 받으며 10년 후에는 중립화 통일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반도의 사정은 달랐다. 조선의 지도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반도 분단 고착화와 전쟁의 비극을 잉태한 단독선거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코리안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그의 조선반도 문제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코리안에 대한 애정에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매우 소중한 만남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모스크바 3상회담 결정이 공식 발표되기도 전에 우익 진영의 한 신문이 “미국은 조선을 즉시 독립시키자고 한 데 반해 소련의 주장으로 5년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라고 잘못된 보도를 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좌우익을 막론하고 모두 신탁통치에 반대했으며 즉각 독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오보는 반탁뿐만 아니라 반소·반공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조선인 통일 민주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여 임시정부 구성을 지원하기 위해 제 정당 사회단체와 협의한다. 민주적 자치 및 독립 달성을 협력·지원하기 위해 5년 기한으로 4개국 신탁통치를 한다”는 모스크바 3상회의의 정확한 결정 내용이 알려진다.
조선인 임시정부 구성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 좌익세력은 신탁통치 찬성으로 돌아섰고, 반면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우익세력은 반탁을 고수하였다. 우익진영은 찬탁을 '매국이요, 독립 반대'로 몰아세우며, 단독선거를 주장했다. 이렇게 좌우익 대립이 격화되면서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고, 미국은 유엔결의를 통해 단독선거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 자서전에서 저는 제가 살아온 당시의 시대 상황과 한반도 정세를 요약하여 기술하는 한편 《피스메이커》에 담지 못한 개인적인 견해와 뒷이야기 등을 추가하여 서술했습니다. 또한 공직생활을 마치고 시민사회의 평화?통일 운동에 참여한 20년의 삶을 기록했습니다.
---「머리말」중에서
1952년 초겨울의 어느 일요일,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육군사관학교 제3기 사관생도 모집'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모집 요강을 읽어보니 4년간 전액 국비로 군사학과 이공계 대학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이학사 학위를 수여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장교로 임관된다니 이거야말로 안성맞춤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차피 군 복무는 해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응시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구비 서류 중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문제였다. 평안북도 도민회를 찾아갔더니 고졸을 보증하는 교사의 확인서가 있으면 도지사가 졸업확인서를 발급해 준다는 것이다. 월남한 선생님이 계시겠지만 어디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했다. 도민회에서 들려준 바에 의하면, 전쟁 전에 월남하신 음악 교사 이성삼 선생님이 서울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라는 것이다. 며칠 후 송도 피란민 천막촌에서 이 선생님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성삼 선생님은 선천고급중학교 선생님들에 관해 질문하며 확인하고 난 후 흔쾌히 고졸 보증서를 써주며 육사 합격을 기원해 주셨다.
육사 응시 계획을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않은 채 응시 준비에 전력을 다했다. 부대에서는 미군들이 나를 “정직한 소년”, “부지런히 일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소년”, “품행이 바르고 성실한 모범 종업원”이라며 1952년 크리스마스를 기해 푸짐한 선물을 주었다. 장병들이 돈을 모아, 그 당시 최고급품으로 명성을 날린 큼직한 진공관 '제니스' 라디오를 선물로 준 것이다. 나는 이날의 기쁨과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1부 1장 〈일제 강점기와 해방-분단-전쟁을 겪으며〉」중에서
한신 합참의장은 다양하게 나온 토론 결과를 요약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육군 건의안'을 철회하고 '합참이 마련한 육군계획(안)'을 육군계획으로 채택한다. 둘째, 팬텀기 9개 대대 증강을 검토한다. 셋째, 해군의 항공기 보유 시기는 1980년대로 이월할 것을 검토한다.
이 계획은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대통령 보고를 앞두고 이 계획의 보안을 위해 위장 명칭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과원들과 함께 좋은 명칭을 제안하기 위한 토론을 전개했으나 마음에 드는 명칭이 나오지 않았다. 가능하면 뜻이 깊고 역사적이며 부를 때 어감도 좋은 명칭이기를 희망했다. 며칠 후 나는 '율곡계획'과 '아사달계획'이라는 두 가지 안을 제시하고 토론에 붙였다. 모두들 '율곡계획'이 좋겠다며 이 명칭에 찬성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10여 년 앞두고 율곡 이이(1536~1584)는 '10만 양병론'을 주창하며 유비무환(有備無患)을 호소했다. 그는 국방의 의지를 힘(군사력)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창한 위대한 선각자였다. 국방력 건설계획은 바로 유비무환의 정신에 토대를 둔 것이다. 나는 율곡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율곡계획'이라 명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 제안은 이병형 본부장과 한신 의장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채택되었다. 서종철 국방부장관은 합동참모회의가 의결한 이 계획을 그대로 승인했고 대통령께 보고드릴 날짜도 잡혔다. 1974년 2월 25일, 박정희 대통령이 율곡계획을 재가하였다.
---「2부 4장 〈자주국방과 율곡계획〉」중에서
플림솔 경은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되어 전승 4개국 점령하에 있던 오스트리아에 대해서도 미국과 소련 등 전승국은 모스크바 3상회담에서 제시한 한반도 처리 방안과 비슷한 방식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의 좌우익 양측 지도자들은 많은 논쟁 끝에 이를 받아들여 좌우익 연립정부를 수립했고, 연합국의 감독과 지원을 받으며 10년 후에는 중립화 통일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반도의 사정은 달랐다. 조선의 지도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반도 분단 고착화와 전쟁의 비극을 잉태한 단독선거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코리안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그의 조선반도 문제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코리안에 대한 애정에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매우 소중한 만남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모스크바 3상회담 결정이 공식 발표되기도 전에 우익 진영의 한 신문이 “미국은 조선을 즉시 독립시키자고 한 데 반해 소련의 주장으로 5년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라고 잘못된 보도를 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좌우익을 막론하고 모두 신탁통치에 반대했으며 즉각 독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오보는 반탁뿐만 아니라 반소·반공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조선인 통일 민주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여 임시정부 구성을 지원하기 위해 제 정당 사회단체와 협의한다. 민주적 자치 및 독립 달성을 협력·지원하기 위해 5년 기한으로 4개국 신탁통치를 한다”는 모스크바 3상회의의 정확한 결정 내용이 알려진다.
조선인 임시정부 구성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 좌익세력은 신탁통치 찬성으로 돌아섰고, 반면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우익세력은 반탁을 고수하였다. 우익진영은 찬탁을 '매국이요, 독립 반대'로 몰아세우며, 단독선거를 주장했다. 이렇게 좌우익 대립이 격화되면서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고, 미국은 유엔결의를 통해 단독선거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3부 6장 〈오스트리아 3년〉」중에서
출판사 리뷰
내일을 향해 다시, 평화
위기의 한반도에서 화합과 평화의 여정을 돌아보다
1990년에 동서 냉전이 종식되면서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끝내고,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여 평화를 만들며, 분단을 넘어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 대통령은 동서 냉전 종식의 흐름을 타고 남북 고위급 회담을 추진했고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파견했다. 남과 북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를 계속한 성과로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 회담이 이루어졌다. 분단 이후 남북정상이 최초로 만난 이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는 고위급 회담의 대표자이자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였던 피스메이커 임동원이 있었다.
이 책 《다시, 평화》는 피스메이커로 불리는 저자 임동원이 구순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돌아본 자서전이다. 저자 임동원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북도 위원에서 태어나 북녘 땅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전쟁 시기에 홀로 월남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동서냉전 시기인 1950~1970년대에는 군복을 입고 피스키퍼로서 안보 분야에서, 1980년대에는 외교관으로 외교 분야에서 그리고 동서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는 통일 분야에서, 또한 공직생활을 마친 뒤 시민사회의 평화?통일 운동 분야에서 봉사해 온 90년의 삶이 한반도의 현대사와 어우러져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자서전에서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당시의 시대 상황과 한반도 정세를 요약하여 기술하는 한편 남북정상 회담 이후 출간한 《피스메이커》에 담지 못한 개인적인 견해와 뒷이야기 등을 추가하여 서술했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전략을 짜는 군인이자 전략가로서 자주국방의 토대가 된 율곡 계획을 구상하여 실행하고, 국립외교원장으로서 유럽의 냉전 종식 과정을 연구하여 군비통제와 외교안보정책 등을 수립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담긴 철학을 받아들여 북한을 오가는 특사로서 남북회담을 성공시키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구상하고 개성공단사업을 이끌어낸 이야기들이 당시 현장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의 핵심 주역과 숨겨진 뒷이야기를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에 빠져들게 된다. 상당히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책장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하다.
국가를 지키는 피스키퍼로 출발해 안보와 외교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피스키퍼로 헌신한 저자의 구십 평생을 담은 이 자서전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걸어온 위대한 삶의 기록이다. 4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친 뒤에도 저자는 세종재단이사장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을 거쳐 김대중 평화센터 고문,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을 맡아 20여 년간 평화·통일 운동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이 자서전이 지난 한 세기에 가까운 우리의 현대사를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다소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화해의 물꼬를 띄우며 남북정상회담을 이어갔던 한반도 평화의 분위기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경색되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인내심과 일관성, 신축성을 갖고 꾸준히 북한을 설득해야 하며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미국을 선도하여 중단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남북 대화와 협력이 경색된 위기의 한반도 상황에서 남북 화합과 평화의 여정을 돌아보며, 우리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한반도 평화의 염원을 되새겨 본다.
위기의 한반도에서 화합과 평화의 여정을 돌아보다
1990년에 동서 냉전이 종식되면서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끝내고,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여 평화를 만들며, 분단을 넘어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 대통령은 동서 냉전 종식의 흐름을 타고 남북 고위급 회담을 추진했고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파견했다. 남과 북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를 계속한 성과로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 회담이 이루어졌다. 분단 이후 남북정상이 최초로 만난 이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는 고위급 회담의 대표자이자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였던 피스메이커 임동원이 있었다.
이 책 《다시, 평화》는 피스메이커로 불리는 저자 임동원이 구순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돌아본 자서전이다. 저자 임동원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북도 위원에서 태어나 북녘 땅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전쟁 시기에 홀로 월남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동서냉전 시기인 1950~1970년대에는 군복을 입고 피스키퍼로서 안보 분야에서, 1980년대에는 외교관으로 외교 분야에서 그리고 동서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는 통일 분야에서, 또한 공직생활을 마친 뒤 시민사회의 평화?통일 운동 분야에서 봉사해 온 90년의 삶이 한반도의 현대사와 어우러져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자서전에서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당시의 시대 상황과 한반도 정세를 요약하여 기술하는 한편 남북정상 회담 이후 출간한 《피스메이커》에 담지 못한 개인적인 견해와 뒷이야기 등을 추가하여 서술했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고 전략을 짜는 군인이자 전략가로서 자주국방의 토대가 된 율곡 계획을 구상하여 실행하고, 국립외교원장으로서 유럽의 냉전 종식 과정을 연구하여 군비통제와 외교안보정책 등을 수립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담긴 철학을 받아들여 북한을 오가는 특사로서 남북회담을 성공시키고, 금강산 관광사업을 구상하고 개성공단사업을 이끌어낸 이야기들이 당시 현장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의 핵심 주역과 숨겨진 뒷이야기를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에 빠져들게 된다. 상당히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책장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하다.
국가를 지키는 피스키퍼로 출발해 안보와 외교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피스키퍼로 헌신한 저자의 구십 평생을 담은 이 자서전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걸어온 위대한 삶의 기록이다. 4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친 뒤에도 저자는 세종재단이사장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을 거쳐 김대중 평화센터 고문,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을 맡아 20여 년간 평화·통일 운동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이 자서전이 지난 한 세기에 가까운 우리의 현대사를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다소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화해의 물꼬를 띄우며 남북정상회담을 이어갔던 한반도 평화의 분위기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경색되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인내심과 일관성, 신축성을 갖고 꾸준히 북한을 설득해야 하며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미국을 선도하여 중단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남북 대화와 협력이 경색된 위기의 한반도 상황에서 남북 화합과 평화의 여정을 돌아보며, 우리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한반도 평화의 염원을 되새겨 본다.
'25.한반도평화 연구 (박사전공>책소개) > 1.한반도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방정책과 7.7선언 (0) | 2022.10.08 |
---|---|
남북한 UN 동시가입 (0) | 2022.10.08 |
신냉전에서 살아남기 (2022) (0) | 2022.10.03 |
냉전분잔시대 한반도의 역사읽기 (0) | 2022.09.26 |
미중 신냉전 과 한국 (2022) (0) | 2022.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