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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섬, 오끼나와 (2014) - 미국과 일본에 맞선 70년간의 기록

동방박사님 2023. 4. 1.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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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끼나와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읽는다!

이 책은 15세기부터 번성하는 해상왕국이었던 류우뀨우(流球)왕국의 역사에서 시작해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점령을 겪고 일본에 ‘반환’되었지만 여전히 일본과 미국의 전략적 군사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현재까지의 오끼나와 역사를 총정리한다.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본 현대사 교양서인 셈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운동과도 비견하여 주목할 만한 오끼나와 기지 건설 반대운동은 지역주민의 자치와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전세계적 패권국가에 맞서 동아시아 평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미일동맹의 패권주의적 팽창과 오끼나와 저항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이 책은, 동북아시아의 지역질서를 알고자 하는 이들과 평화운동에 관심이 있는 독자 모두에게 주요한 참고서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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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류우뀨우/오끼나와 : 처분에서 저항으로
2장 전쟁, 기억, 그리고 기념
3장 미국과 일본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파트너십 '
4장 오끼나와 : 분리와 복귀
5장 헤노꼬 : 불필요한 기지
6장 하또야마의 난
7장 선거와 민주주의
8장 환경영향(비)평가
9장 동맹의 '심화' : 칸 어젠다
10장 동맹의 '심화' : 워싱턴 어젠다
11장 센까꾸/댜오위 : 동중국해의 폭풍
12장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들
13장 오끼나와의 미래

저자 소개

저자 : 개번 매코맥 Gavan McCormack
호주국립대학 태평양·아시아사학과 명예교수. 호주 호놀룰루대학을 졸업하고 런던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사회문제를 역사적 지평에서 고찰하는 연구로 정평이 나 있다.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의 책임편집자로 있으며, 『종속국가 일본』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일본, 허울뿐인 풍요』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관한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하...
저자 : 노리마쯔 사또꼬 乘松聰子
케이오오기주꾸대학(慶應義塾大學) 문학부를 졸업하고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에 평화철학센터(Peace Philosophy Centre)를 설립하고 대표를 맡고 있다. 평화철학센터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의 평화교육단체이며, 오끼나와 군사점령,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와 기억,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폐지 같은 문제들에 관한 정보와 논문을 제공하고 있다.
역자 : 정영신 鄭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동아시아 안보분업구조와 반기지운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로 있다. 평화학과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평화운동과 환경운동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운동을 연구하고 있다. 『기지의 섬, 오키나와』(공저) 「동아시아 분단체제와 안보분업구조의 형성」 「오키나와 복귀운동의 역사적 동학」 등을 썼으며, 『오키나와 현대사』를 공역했다.
 
 

출판사 리뷰

2014년 7월, 일본이 각의에서 집단자위권 행사를 결의했다. 평화헌법 아래 무력 사용을 금지받았던 일본이 70년 만에 ‘전쟁국가’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오(安倍晋三)와 자민당이 평화헌법을 재해석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만만치 않은 여론의 반발에 입법 처리는 갑작스레 내년으로 미루어졌다. 일본 정권의 ‘전쟁국가’ 선언에 일본 내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일본 평화운동의 구심점이 바로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다.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원제 Resistant Islands: Okinawa Confronts Japan and the United States)는 호주국립대학 명예교수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과 평화운동가 노리마쯔 사또꼬(乘松聰子)가 오끼나와 저항운동 70년사를 집대성한 저서다. 개번 매코맥은 『종속국가 일본』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일본, 허울뿐인 풍요』 등을 저술한 바 있으며 일본과 동아시아의 정치·사회문제를 역사적 지평에서 고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책은 15세기부터 번성하는 해상왕국이었던 류우뀨우(流球)왕국의 역사에서 시작해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점령을 겪고 일본에 ‘반환’되었지만 여전히 일본과 미국의 전략적 군사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현재까지의 오끼나와 역사를 총정리한다.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본 현대사 교양서인 셈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운동과도 비견하여 주목할 만한 오끼나와 기지 건설 반대운동은 지역주민의 자치와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전세계적 패권국가에 맞서 동아시아 평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미일동맹의 패권주의적 팽창과 오끼나와 저항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이 책은, 동북아시아의 지역질서를 알고자 하는 이들과 평화운동에 관심이 있는 독자 모두에게 주요한 참고서적이 될 것이다.

해상왕국 류우뀨우가 일본의 속국이 되기까지
15세기, 지금의 오끼나와는 ‘류우뀨우왕국’으로 불리며 명나라와 긴밀한 조공관계를 맺고 아시아태평양의 경계에서 번성했다. 17세기 초, 일본 사쯔마번의 침략을 받고 실질적으로는 일본 본토의 지배하에 놓이지만 겉으로는 청나라와 긴밀한 조공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양속(兩屬)체제에 속박된다. 결국 19세기 후반 류우뀨우왕국과 슈리(首里)왕조는 메이지국가의 새로운 질서에 적극적으로 복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번치현(廢藩置縣)을 통해 근대 일본국가에 병합되며 ‘처분’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오끼나와인들에게 자신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버리고 본토의 언어, 신화와 의례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다. 본토의 폐번치현은 동일한 민족·언어·문화를 기초로 근대적 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실시되었지만 오끼나와에서는 오로지 군사적·정치적 의도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일련의 황민화 정책이 시작된 지 7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은 오끼나와를 전장으로 삼았다.

“천황을 위해 죽어라!” ― 오끼나와전의 참화
‘철의 폭풍’이라고 불리는 3개월간의 무차별적 폭격으로 오끼나와전은 총 21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다. 당시 오끼나와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2만명의 오끼나와인이 사망했다. 이중 약 80%가 민간인 희생자였다. 일본군으로 징용당하거나 성노예로 징집당한 조선인 사망자도 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기록된다.
오끼나와인을 학살한 것은 미군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국 군대인 일본군은 오끼나와인을 자국민으로 신뢰하지 않았고, 연합군의 스파이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지 주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공격물로 내세우거나 자살하도록 강요했으며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산간지역으로 강제이주를 시키고 때로는 직접 살해하기까지 했다. 오끼나와인들은 전쟁의 참화를 통해 일본 본토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내재화했다. 민간인 살해와 집단적인 자살은 일본군이 있는 곳에서만 발생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현재 오끼나와의 반(反) 일본 정서의 가장 뿌리 깊은 이유가 되는 것은 ‘강제집단사’다(58면). 일본군은 군사기밀 유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오끼나와 주민들에게 ‘옥쇄(玉碎)’, 즉 천황을 위해 자살할 것을 강요했다. 일본군의 강제 아래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고, 형이 동생을 죽이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참혹한 강제집단사에 대한 기록과 용어는 지금도 일본 역사논쟁의 뜨거운 화두다. 일본의 새역모를 비롯한 극우단체들은 역사교과서에서 오끼나와에서 벌어진 학살과 차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교과서 문제는 73면).

‘분리’되고 ‘반환’되어도, 여전히 기지를 떠안은 오끼나와
일본 군국주의와 파시즘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안도감은 찰나에 불과했다. 망연자실한 오끼나와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미군의 토지수탈과 생활파괴였다. 종전 이후 27년간 오끼나와는 미군의 직접적인 군사지배를 받았다. 1952년 4월 28일, 대일강화조약이 발효되어 본토는 미군정에서 벗어났지만 오끼나와는 일본에서 ‘분리’되어 그대로 군사식민지로 남았다. 오끼나와인들은 이 날을 ‘굴욕의 날’로 기억한다. 매코맥은 대일강화조약 이후 일본은 명목상으로는 평화헌법을 가진 ‘평화국가’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속국으로 남았다고 주장한다. 1960년 본토의 미군기지는 1952년에 비해 4분의 1로 축소되었지만 오끼나와의 기지는 오히려 두배로 증가했다. 본토의 부담을 오끼나와로 떠넘기는 이러한 관행은 이때부터 정착되었다. 일본은 오끼나와를 국가의 일부가 아닌 군사적 거점으로 보았고, 본토 일본은 헌법상으로 ‘평화국가’였던 반면 오끼나와는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추진하고 세계대전을 대비하는 위헌적인 기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1972년 미국은 일본에 오끼나와를 ‘반환’했지만 여전히 오끼나와는 기지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함에도 현재 주일미군 기지의 75%를 떠안고 있는 것이다. 본토에 비해 500배 높은 기지 밀도는 오끼나와에 극심한 기지피해를 미치고 있다. 환경파괴에 더해 기지는 범죄의 온상이기도 하다. 한국의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연상시키는 세명의 미군이 12세 소녀를 강간한 1995년의 소녀 성폭행 사건은 기지범죄의 대표적인 예다.
오끼나와 사람들은 1972년의 복귀를 통해 전쟁과 점령으로 얼룩진 군사주의의 섬을 일본 헌법 제9조에 입각한 ‘평화의 섬’으로 변화시키길 기대했다. 1995년 소녀 성폭행 사건을 기점으로 끓어오른 반기지 여론은 오끼나와에서 이를 이룰 수 있는 기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일정부는 ‘후뗀마기지를 반환한다’라고 말하고는 뒤로는 더 크고 강력한 대체기지의 건설 계획을 꾸몄다.

더 크고 강력한 대체기지, 헤노꼬
1996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후뗀마 대체기지 건설지는 헤노꼬 앞바다로 압축되었다. ‘헬리포트’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크고 사고 위험이 높은 ‘오스프레이’(osprey) 이착륙대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주민들은 단합하여 대체기지 건설에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그럴수록 양국의 정부는 오히려 점점 더 강력한 건설 의지를 보였다. 정부는 계획의 겉껍데기만 바꿔 씌워 헤노꼬 기지 건설 계획을 계속 진행했다(5장 참조). 외교·정치·군사상의 여러 문제를 제쳐놓고 환경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듀공 등 희귀생물이 서식하는 헤노꼬에 제대로 된 환경평가도 하지 않고 거대한 군사시설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정부는 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면서 연좌농성과 해상 카누로 반대운동을 하는 시민들을 무차별하게 기소했으며, 미국은 기지 건설을 관철시키기 위해 오끼나와의 선거에 은밀하게 개입했다(7, 8장).
오끼나와 주민들은 이와 같은 기만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하또야마 유끼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는 “최소한 현외 이전”이라는 문구를 내걸면서 미국과 기지 이전지를 재협상하려고 미약하게나마 애썼다. 하지만 긴밀하고도 유서 깊은 미일동맹을 뒷받침하던 양국의 엘리뜨들은 하또야마 총리에게 모욕과 협박으로 일관했다. 결국 강고한 벽에 부딪힌 하또야마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이어진 자민당 정권에서는 반대운동에 대한 탄압과 동맹의 ‘심화’가 계속되었다(6, 9, 10장).

오끼나와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읽는다!
오끼나와와 한반도의 현대사는 여러가지 점에서 비슷하다. 과거에는 일본에 점령당하고, 2차대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으며,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정책구도 속에서 불평등한 지위를 감내해야 했다. 또한 미국이 ‘아시아 회귀’(Pivot Back to Asia)를 선언하며 태평양의 두번째 ‘요석’으로 낙점한 제주도의 미래 역시 오끼나와에서 미리 엿볼 수 있다.
미일동맹의 강고한 사슬과 일본 정권의 ‘전쟁국가’를 향한 끊이지 않는 야욕은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를 압제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이 책은 변경지역의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강대국의 권력관계를 주시하며 거시적인 시야를 잃지 않는다. 저항운동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면서도 국제 정세를 다각도로 파악하며, 더불어 오끼나와 현지에서 저항운동에 헌신해온 오끼나와 사람들과의 인터뷰(12장)도 실려 있어 오끼나와 주민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끼나와 저항운동은 “세계적인 군사기지제국인 미국의 전략적 계획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자 비폭력 시민운동의 요체를 보여준다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망과 미국의 패권질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오끼나와는 민주적이며 협력적인 전후 및 패권 이후의 질서가 이 지역 전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보여준다”라는 저자들의 희망적인 메시지처럼, 한국에서 오끼나와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연대를 넘어서 한반도 문제에도 직결되는 것이다. 오끼나와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을 이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