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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없는 아이들 (2021)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동방박사님 2023. 7. 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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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나는 이들에게서 운명을 마주하는 힘을 배웠다.”
    『쓰기의 말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신작!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돌보지 않는 아이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법을 어긴 존재가 되어 사람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아이들, 바로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의 체류자격 부여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만들어내고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은유 작가가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국내에 2만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 배제와 좌절은 일상이다. 대학 진학이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물론, 보험 가입이 필요한 수학여행을 가거나 QR 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평범한 일상도 고난이 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교육받을 권리는 갖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아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나고 배우고 생활하며 ‘한국인’으로 자라지만, 만 18세가 넘으면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부모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은 ‘불법체류자’라는 말로 이들의 존재를 일축하지만 은유 작가의 눈을 통해 본 이들은 그저 ‘소외된 아이들’이 아닌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단단한 존재이자 ‘왜 한국에 살고 싶냐’는 질문에 명민하고도 용감하게 ‘그럼 당신은 왜 한국에 살고 있는가’ 하고 되물을 줄 아는 동료 시민이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전하는 목소리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 문제, 더 나아가 이주민과 함께 나아가야 할 한국사회의 성원권에 대해서 묵직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목차

프롤로그 먼 타인의 아이를 사랑하라

열아홉, 내년이면 쫓겨난다는 불안감
마리나(이주아동)

당신은 왜 한국에 살고 있나요?
페버(이주아동)

한국도 이들이 필요해요
이탁건(변호사)

오늘이 마지막이겠다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김민혁(이주아동)

정직한 한 사람이 중요해요
석원정(이주인권활동가)

태어난 건 죄가 아니잖아요
카림(이주아동)

사람은 그냥 사람이죠
달리아(이주아동)

이건 사는 것도 안 사는 것도 아니에요
인화(이주아동 부모)

말하는 소리가 작으면 듣는 귀라도 커야 해요
이란주(이주인권활동가)

에필로그 슬픔이 보시가 될 때
  •  

저자 소개 

저 : 은유 (김지영)
 
글 쓰는 사람. 누구나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글을 쓸 수 있을 때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과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 내는 일을 돕고 있다. 여럿이 함께 읽고, 느끼고, 말하며 쓰는 일의 기쁨과 가치를 전하려 『글쓰기의 최전선』을,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해 『쓰기의 말들』을 썼다. ...

책 속으로

언제부턴가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기를 쓰고 사는 작은 인간에게 눈길이 가곤 했다.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생의 초기 세팅이 이뤄지는 시기에 사막 같은 곳에 내던져진 아이를 뉴스에서 보고 나면 오래도록 심란했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게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라는 일본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水無田 氣流)의 말을 다이어리 첫장에 적어두고 틈틈이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무얼 해야 하지? --- p.7

국민국가에서 신분증 없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기 명의의 통장 없이 과연 살 수 있을까. 코로나19 사태 초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사는 일부터 QR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까지, ‘비국민’ 아이들에게 배제와 좌절은 일상이다. --- p.8

미등록 이주아동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애기회를 설계하고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시혜나 휴머니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권리다. --- p.32

보다 먼 이웃, 작은 이웃, 미래의 이웃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상상한다. 우리 사회에는 잘 보고 잘 듣는 어른들에 의해서만 세상에 드러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보호자가 없어도, 안전한 집이 없어도, 적법한 체류자격이 없어도, 대단한 매력 자본이나 스펙이 없어도 아이들은 충분히 존중받으며 자라고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사회적 토대를 다지는 일에 이주아동들의 목소리가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 p.35~36

결국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것. 내가 나임을 인정받는 것. 제가 원하는 건 그런 최소한의 것들이에요.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 p.58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요.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사는 거죠. 만약에 제가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자랐으면 아마도 거기 살지 않았을까요?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 p.82
 

출판사 리뷰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이 책에는 마리나, 페버, 김민혁, 카림, 달리아 등 이주아동 다섯명,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어른들인 이주아동의 어머니 인화, 이주인권활동가 석원정, 이주민 이야기를 꾸준히 써온 작가이자 이주인권활동가 이란주, 이주아동을 지원하는 변호사 이탁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 각각은 서로 다른 이유로 미등록자가 되었다.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로 태어났거나, 문제없이 살다가 아버지가 출국 후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가 되었거나, 한국에 거주하며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탓에 귀국이 어려워졌지만 난민 신청에 실패했거나 등 사연은 다양하다. 세상은 짓궂은 장난처럼 이들의 등에 합법과 불법 딱지를 떼었다 붙였다 한다. 이들 중 몇은 강제추방 위기에 놓였다가 행정소송을 해 체류자격을 얻었고, 몇은 여전히 체류자격이 없는 채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이자 미등록 이주아동의 부모인 인화는 ‘코리안 드림’을 품고 1990년대 초 다섯살짜리 아이와 한국에 왔다. 한국인 브로커한테 사기를 당해 미등록 노동자가 되었고, 힘든 생활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아이를 키워냈다. 다섯살이었던 미등록 이주아동 호준은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인화는 묻는다. “한국인과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비자를 주는데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 사람은 왜 안 되죠? 저는 여기 한국에서 25년을 일했어요. 여기서 제 월급도 다 썼고요. 먹고 살고, 월세 내고, 세금 내고요. 제가 번 돈 나쁜 돈 아니잖아요. 제가 땀 흘리고 피 흘리고 눈물 흘려서 번 돈이잖아요. 제가 한국에 와서 사는 동안 대통령이 여섯번 바뀌었어요. 한국은 선진국이고 몽골보다 잘살잖아요. 그런데 왜 아무도 외국인 체류 문제를 해결하지 않죠?”

가까운 이웃이 아닌 먼 이웃을 사랑하라

이주민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 우리나라 사람부터 도우라는 비난이 SNS와 뉴스 댓글 등에서 날아들곤 한다. 그런데 사회문제의 우선순위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걸까?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우연히 타인의 고통을 목격했고, ‘무엇이 더 중한지’ 우선순위를 따지기보다는 그 고통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기 위하여’(석원정) ‘말하는 목소리가 작으면 듣는 귀라도 커야 한다는 마음으로’(이란주) ‘내가 아니면 도울 사람이 없어서’(이탁건) 같은 각기 다른 이유로 거들고 돌보고 싸웠다.
우리 사회에는 잘 보고 잘 듣는 어른들에 의해서만 세상에 드러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니체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도덕 법칙을 전복해 ‘보다 먼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자기 지인이나 지역, 국가, 민족, 가치관 같은 익숙한 세계의 틀을 깨고 먼 이웃, 먼 타인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먼 이웃, 작은 이웃, 미래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리하여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것이 더 좋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임을 삶으로 보여준다.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불법인 사람은 없다

은유 작가는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글을 쓰는 탁월한 에세이스트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가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직장내폭력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오랜 시간 성실하게 전해온 르포르타주 작가이기도 하다.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라는 소개는 들을수록 민망하다. (…)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기록한 건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며 그냥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34면)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는 이 작업을 시작할 당시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어온 분노와 감동의 연료가 바닥난 것 같아 ‘절대 안정’ 팻말을 붙여놓고 휴업 중이었다. 그 바닥난 연료를 다시 채우고,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 이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태어나자마자 죄인이 됐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경찰차만 봐도 가슴이 오그라든다. 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상황을 발설하지 않을까, 친구가 자신의 상황을 눈치챌까 미세한 불안감에 만성적으로 시달린다. 보험 가입이 안 되니까 수학여행도 못 가고, 공부를 잘해도 경진대회에 나갈 수 없다. 티켓 예매 사이트 회원 가입이 안 되니까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가지 못하고, 떡볶이를 먹고 친구들이 엔분의 일로 ‘계좌이체’를 할 때 주섬주섬 현금을 꺼내야 한다. 이들이 말하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삶’은 너무나 구체적으로 막막하고 낱낱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사람은 그냥 사람이지 태어난 것만으로 불법인 존재가 어디 있느냐고 담대하게 묻고,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 낫게 변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세상이 아무리 자신의 존재를 지워도 그저 살아감으로써 존재를 입증해내는 이 아이들은, 역으로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행동”임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보호받을 특권을 지닌다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보호자가 없어도, 안전한 집이 없어도, 적법한 체류자격이 없어도 아이들이 충분히 존중받으며 자라고 무사히 어른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다. 이곳에 사는 어린이·청소년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누구나 자신의 생애기회를 설계하고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혜나 휴머니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5월 권고에 응해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출생, 15년 이상 거주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아동에게는 체류자격 심사기회를 부여하기로 했지만, 이 대책은 아주 소수의 아동에게만 해당된다. 인터뷰 당시인 2020년 가을에 열아홉을 앞두고 있던 마리나는 올해부터 추방 대상이 되었지만 제도 변경으로 체류자격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자격은 1년간 유효할 뿐이고, 매년 갱신해야 한다. 마리나는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서 체류 사유가 마땅치 않기에 내년, 또 내후년에도 마리나가 한국에 계속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각각 네살, 두살에 한국에 온 카림과 달리아는 안타깝게도 이 제도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여전히 언제든 추방될 수 있다.
모든 장기체류 이주아동의 인권을 아우르는 실질적이고 항시적인 구제대책 마련은 우리 공동체에게 남겨진 숙제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 담긴 목소리들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을 위한 ‘존재의 합법화’ 경로가 제대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추천평

눈앞에 있는 사람을 서류에서는 없다고 한다. 그저 여기 태어나 살고 있을 뿐인데 있으면 안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청소년으로 자라고 교육받았는데 성인이 되자마자 가본 적 없고 언어도 모르는 나라로 ‘돌아가라’고 한다. 사회가, 법이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하는 말이다. 부모에게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세지 않는 아이들. 2만명이 있는데, 없다고 한다.
이들의 목소리로 듣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삶’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며 고통스럽고 또한 용감한 것이어서 도저히 ‘없다’고 할 수 없다. 은유 작가의 성실한 기록 덕분에 나는 그간 당연하게 여겨온 일상이 얼마나 성긴 그물 위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해하려는 노력과 적극적인 연대 없이 그물은 촘촘해지지 않는다. 아무도 빠지지 않는 그물이 완성될 때까지, ‘있는 사람’ 모두의 손이 바빠져야 한다. 여기 분명 ‘있는’ 이 목소리들에 다급하게 귀를 기울일 차례다.
- 김소영 (작가, 『어린이라는 세계』)
은유 작가는 오랫동안 ‘숨죽인 청취자’ 노릇만 해왔던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말을 기록했다.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도 가는 것도,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도, 대학을 꿈꾸는 것도 미등록 아동과 청소년에겐 신분증 한장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다. 가족에서 벗어나 더 큰 ‘삶의 첫 맛’을 보는 학교는 이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사회적 장소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가 절망과 무기력이 아닌 비판적 활력을 담고 있는 이유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교사, 그리고 어릴 때부터 뒤를 봐주던 이주활동가의 돌봄 덕분이다. 이 아이들의 목소리는 우리의 ‘인지적 공백’을 메우고, 결속과 공존의 방법론을 일깨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확장적 민주주의의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 더는 이들의 존재를 모른 척하지 말자. 아무것도 모르면서 ‘불법체류자’라며 이들을 추방하자고 외치지 말자. 우리는 이들의 경험을 듣고, 배우고, 사유해야 한다.
- 김현미 (문화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