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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리쩌허우에게 듣는 동서양 철학의 근본적 차이와
중국 철학이 새롭게 재등장하는 이유
상하이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류쉬위안이 2010년 10월 베이징의 리쩌허우를 찾아가 세 차례에 걸쳐 그의 학문역정과 철학체계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좌담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사상사를 관통하여 철학체계를 세운 리쩌허우가 자신이 생각하는 “중국 철학”의 존재와 본질을 제시하고 그것이 서양의 철학적 사고방식과 갖는 근본적 차이점을 사유하게 한다.
또한 리쩌허우가 어떻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창시절 어떤 식으로 공부했으며, 격동하는 현대사 속에서 어떻게 시대를 내면에 갈무리했고, 주변의 학자와 출판사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극좌와 극우의 양면 공격 속에서 어떻게 중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밝혀 ‘자서전적’ 아우라도 빛낸다.
중국 철학이 새롭게 재등장하는 이유
상하이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류쉬위안이 2010년 10월 베이징의 리쩌허우를 찾아가 세 차례에 걸쳐 그의 학문역정과 철학체계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좌담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사상사를 관통하여 철학체계를 세운 리쩌허우가 자신이 생각하는 “중국 철학”의 존재와 본질을 제시하고 그것이 서양의 철학적 사고방식과 갖는 근본적 차이점을 사유하게 한다.
또한 리쩌허우가 어떻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창시절 어떤 식으로 공부했으며, 격동하는 현대사 속에서 어떻게 시대를 내면에 갈무리했고, 주변의 학자와 출판사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극좌와 극우의 양면 공격 속에서 어떻게 중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밝혀 ‘자서전적’ 아우라도 빛낸다.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새로운 철학 시대의 개막
1장 현대철학에 아직 무엇이 남아 있는가?
광의의 형이상학과 협의의 형이상학 | 이념에서 생활로, 해체로 | 중국의 하이데거 전문가 두 명의 말이 마음에 든다 | 무사 전통과 ‘위왕선구’ | ‘정 본체’와 철학
2장 나의 학술 사상의 세 단계
혼자서 학습하려면 판단에 능해야 한다 | 책 읽기는 좋아하지만 책을 쓰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 그 당시에 겨우 이십대였는데 어떻게 감히 일파를 자처했겠는가? | 칸트에 대해 쓰면서 사실은 자신의 철학을 나타냈다 | 문체로 보자면 『기묘오설』이 가장 훌륭하다 | 운명·정감·인성·우연
3장 몇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비판철학의 비판』 제6판에는 ‘독일 사상사의 엄중한 교훈’을 보충했다 | 그 당시 문예비평에 있어서 영혼과 같았던 인물 | ‘철학 연구’와 ‘철학 창작’ | 구망이 계몽을 압도했다는 주장이 처음 출현한 건 『중국근대사상사론』에서다 | 천인커가 역사 연구에 사용한 자료 역시 많지 않다 | 『미의 역정』의 모든 장과 절에 새로운 내용이 담겼다 | 문예비평을 하려면 주로 감각에 의지해야 한다 | 학문을 하려면, 누구든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 | 「만술장선」을 발표한 이후 첸쉐썬이 특별히 방문하다 | 당시 ‘문화열’은 모두 반전통이었다 | 첸무와 량수밍은 중국 문화의 급소를 파악했다 | 짧은 굶주림은 참을 수 있으나 오랜 굶주림은 견딜 수 없다 | 역사의 ‘누적-침전’은 내 모든 연구를 둘러싸고 있는 ‘동심원’의 중심이다
4장 ‘정 본체’에 관하여
철학은 무엇을 연구하는가? | ‘외계인’에 관한 삼단논법 | 1960년대의 철학은 이미 개체를 주목했다 | ‘정 본체’는 수천 년의 전통 철학을 전복시켰다 | ‘정 본체’는 중국 전통을 기초로 삼지만 세계의 시각이다
5장 한자와 역사 경험
‘매듭 기록’은 최초의 역사 기록이다 | 명명: 역사 경험을 향해 나아가다 | ‘도’는 경험적인 것으로, 인류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 칸트 연구의 새로운 동향
6장 『홍루몽』과 ‘낙감문화’
두 종류의 『홍루몽』이 있을 수 있다 | 소설 읽기 속의 문화-심리 구조 | 소소한 일상의 디테일과 ‘낙감문화’
7장 ‘정 본체’가 기독교 정신과 대면하다
‘인간중심설’은 서양의 전통이다 | 중국은 어떤 현대성을 필요로 하는가? | 인간은 신앙을 찾아야 한다
8장 인성능력·인성정감·선악 관념
정치·군사·문화는 우연으로 가득하지만 경제에는 모종의 ‘필연’이 있다 | 도덕의 이분: 사회적 도덕과 종교적 도덕 | 도덕 행위는 인성능력·인성정감·선악 관념으로 구성된다 | 칸트가 흄보다 낫다 | 칸트의 이성의 명령과 기독교의 하느님의 사랑 | 심리 본체: 이성의 내적 구조(인식), 이성의 응집(도덕), 이성의 융화(심미)
9장 문장에서 추구하는 것과 그 밖의 것들
뜻을 표현해서 남이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 새로운 견해가 없다면 글을 쓰지 마라 | 교육의 최종 목적은 인간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 여기에는 독특한 잠재능력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 생물과학이 발전하지 않으면 미감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없다 | 자기가 한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2부
팔순의 리쩌허우: 적막한 선지자
1장 시대와 그 시대의 리쩌허우 · 『남방인물주간』 편집부
2장 적막한 사상가 · 웨이이
먹고살 만하게 지내다가 생계 곤란에 빠지고, 사범학교를 나와 베이징 대학에 들어가다 | 지진 대비용 임시 천막에서 칸트에 대한 서술과 평론을 탈고하다 | 이상한 시험 문제, 호쾌한 스승 | 『혁명과 고별하다』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려는 게 아니다 | 나는 상상했던 것보다 이미 훨씬 오래 살았다
3장 나는 지금 조용히 살고 있고, 또 조용히 죽어가려 한다 · 웨이이·스위화
어떤 사람은 ‘계몽을 뒤집으면서’ 계몽했던 것을 다시 몽매로 만들려고 한다 | ‘반동 학술 권위’라고 하기엔 임금이 무척 낮았다 | 입당 신청서를 썼다가 되찾아오다 | 정치 민주화는 당장 실현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 뇌과학이 신비 체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미국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 | 나는 장래에 뇌를 냉동시킬 작정이다
4장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합류를 경계한다 · 이중톈
리쩌허우와의 세 번째 만남 | 고독을 말하다-무리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철학을 말하다-학자에게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 사상을 말하다-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 법치를 말하다-천부인권은 이론적으로 틀렸다 | 대학을 말하다-상아탑을 다시 세워야만 한다 | 개혁을 말하다-한결같은 ‘신중한 낙관’ | 국학을 말하다-‘문화상대주의’는 착오다
5장 개량은 투항이 아니다, 계몽의 완성은 아직 한참 멀었다 · 샤오싼짜
유가: 정치는 정치이고 윤리는 윤리다 |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나는 자유주의와 다르다 | 지금은 주로 봉건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 계몽이 참된 건설로 나아가려면 법치가 먼저다 | 자유주의와 신좌파는 함께 가기 어렵다 | 중산층은 관료에게 종속된 채 독립성이 전혀 없다 | 개량은 투항이 아니다 | 절대 권위는 일시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뿐 마구 부르짖어서는 안 된다 | 역사는 비극 속에서 전진하지만 비극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 | 나의 새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안 읽은 것과 마찬가지다 | 학술계는 지금 죄다 남을 따라하고 있다 | 고통을 다시 회상하고 싶진 않다
주註
리쩌허우 저서 목록
옮긴이의 말 파재破災를 꿈꾸는 파재波齋에서의 철학
찾아보기
제1부
새로운 철학 시대의 개막
1장 현대철학에 아직 무엇이 남아 있는가?
광의의 형이상학과 협의의 형이상학 | 이념에서 생활로, 해체로 | 중국의 하이데거 전문가 두 명의 말이 마음에 든다 | 무사 전통과 ‘위왕선구’ | ‘정 본체’와 철학
2장 나의 학술 사상의 세 단계
혼자서 학습하려면 판단에 능해야 한다 | 책 읽기는 좋아하지만 책을 쓰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 그 당시에 겨우 이십대였는데 어떻게 감히 일파를 자처했겠는가? | 칸트에 대해 쓰면서 사실은 자신의 철학을 나타냈다 | 문체로 보자면 『기묘오설』이 가장 훌륭하다 | 운명·정감·인성·우연
3장 몇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비판철학의 비판』 제6판에는 ‘독일 사상사의 엄중한 교훈’을 보충했다 | 그 당시 문예비평에 있어서 영혼과 같았던 인물 | ‘철학 연구’와 ‘철학 창작’ | 구망이 계몽을 압도했다는 주장이 처음 출현한 건 『중국근대사상사론』에서다 | 천인커가 역사 연구에 사용한 자료 역시 많지 않다 | 『미의 역정』의 모든 장과 절에 새로운 내용이 담겼다 | 문예비평을 하려면 주로 감각에 의지해야 한다 | 학문을 하려면, 누구든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 | 「만술장선」을 발표한 이후 첸쉐썬이 특별히 방문하다 | 당시 ‘문화열’은 모두 반전통이었다 | 첸무와 량수밍은 중국 문화의 급소를 파악했다 | 짧은 굶주림은 참을 수 있으나 오랜 굶주림은 견딜 수 없다 | 역사의 ‘누적-침전’은 내 모든 연구를 둘러싸고 있는 ‘동심원’의 중심이다
4장 ‘정 본체’에 관하여
철학은 무엇을 연구하는가? | ‘외계인’에 관한 삼단논법 | 1960년대의 철학은 이미 개체를 주목했다 | ‘정 본체’는 수천 년의 전통 철학을 전복시켰다 | ‘정 본체’는 중국 전통을 기초로 삼지만 세계의 시각이다
5장 한자와 역사 경험
‘매듭 기록’은 최초의 역사 기록이다 | 명명: 역사 경험을 향해 나아가다 | ‘도’는 경험적인 것으로, 인류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 칸트 연구의 새로운 동향
6장 『홍루몽』과 ‘낙감문화’
두 종류의 『홍루몽』이 있을 수 있다 | 소설 읽기 속의 문화-심리 구조 | 소소한 일상의 디테일과 ‘낙감문화’
7장 ‘정 본체’가 기독교 정신과 대면하다
‘인간중심설’은 서양의 전통이다 | 중국은 어떤 현대성을 필요로 하는가? | 인간은 신앙을 찾아야 한다
8장 인성능력·인성정감·선악 관념
정치·군사·문화는 우연으로 가득하지만 경제에는 모종의 ‘필연’이 있다 | 도덕의 이분: 사회적 도덕과 종교적 도덕 | 도덕 행위는 인성능력·인성정감·선악 관념으로 구성된다 | 칸트가 흄보다 낫다 | 칸트의 이성의 명령과 기독교의 하느님의 사랑 | 심리 본체: 이성의 내적 구조(인식), 이성의 응집(도덕), 이성의 융화(심미)
9장 문장에서 추구하는 것과 그 밖의 것들
뜻을 표현해서 남이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 새로운 견해가 없다면 글을 쓰지 마라 | 교육의 최종 목적은 인간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 여기에는 독특한 잠재능력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 생물과학이 발전하지 않으면 미감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없다 | 자기가 한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2부
팔순의 리쩌허우: 적막한 선지자
1장 시대와 그 시대의 리쩌허우 · 『남방인물주간』 편집부
2장 적막한 사상가 · 웨이이
먹고살 만하게 지내다가 생계 곤란에 빠지고, 사범학교를 나와 베이징 대학에 들어가다 | 지진 대비용 임시 천막에서 칸트에 대한 서술과 평론을 탈고하다 | 이상한 시험 문제, 호쾌한 스승 | 『혁명과 고별하다』는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려는 게 아니다 | 나는 상상했던 것보다 이미 훨씬 오래 살았다
3장 나는 지금 조용히 살고 있고, 또 조용히 죽어가려 한다 · 웨이이·스위화
어떤 사람은 ‘계몽을 뒤집으면서’ 계몽했던 것을 다시 몽매로 만들려고 한다 | ‘반동 학술 권위’라고 하기엔 임금이 무척 낮았다 | 입당 신청서를 썼다가 되찾아오다 | 정치 민주화는 당장 실현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 뇌과학이 신비 체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미국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 | 나는 장래에 뇌를 냉동시킬 작정이다
4장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합류를 경계한다 · 이중톈
리쩌허우와의 세 번째 만남 | 고독을 말하다-무리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철학을 말하다-학자에게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 사상을 말하다-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 법치를 말하다-천부인권은 이론적으로 틀렸다 | 대학을 말하다-상아탑을 다시 세워야만 한다 | 개혁을 말하다-한결같은 ‘신중한 낙관’ | 국학을 말하다-‘문화상대주의’는 착오다
5장 개량은 투항이 아니다, 계몽의 완성은 아직 한참 멀었다 · 샤오싼짜
유가: 정치는 정치이고 윤리는 윤리다 |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나는 자유주의와 다르다 | 지금은 주로 봉건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 계몽이 참된 건설로 나아가려면 법치가 먼저다 | 자유주의와 신좌파는 함께 가기 어렵다 | 중산층은 관료에게 종속된 채 독립성이 전혀 없다 | 개량은 투항이 아니다 | 절대 권위는 일시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뿐 마구 부르짖어서는 안 된다 | 역사는 비극 속에서 전진하지만 비극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 | 나의 새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안 읽은 것과 마찬가지다 | 학술계는 지금 죄다 남을 따라하고 있다 | 고통을 다시 회상하고 싶진 않다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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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파재破災를 꿈꾸는 파재波齋에서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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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중국이 배출한 진정한 ‘씽커thinker’ 리쩌허우
‘왕따’당했던 중국 철학이 왜 ‘오래된 미래’일 수밖에 없는가
은둔자·고독자가 거장이 되기까지, 흥미로운 에피소드 풍부히 진술
“세계가 이런 중국의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건 쉽지 않아요. 다른 이가 받아들이도록 급급해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저는 세계가 그것을 받아들일 필요를 조만한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4장 「‘정 본체’에 관하여」
“하이데거 역시 정을 말했지요. 하지만 하이데거한테서 정은 맹목적인 충동이에요. 하이데거의 정은
공空적인 것이지요. 그는 정을 본래적인 것과 비본래적인 것으로 나누었는데, 이건 틀렸어요. 중국철학에서는 본래적인 것이 비본래적인 것 가운데 있어요. 무한은 유한 속에 있지요. 하이데거는 기어코 양분하고자 했는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겨요. 그는 자아의 선택과 결정과 결단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라고만 강조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아가지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나치에 이용되기 쉬웠던 겁니다. 저는 하이데거의 정치적 문제는 부차적인 거라고 봐요. 중요한 건, 그의 철학 자체가 사악한 힘에 이용되기가 아주 쉽다는 겁니다.”
- 4장 「‘정 본체’에 관하여」
리쩌허우 세계 철학을 재구축하다
살아 있는 중국 사상계의 거목 리쩌허우의 신작이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該中國哲學登場了?』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상하이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류쉬위안이 2010년 10월 베이징의 리쩌허우를 찾아가 세 차례에 걸쳐 그의 학문역정과 철학체계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좌담을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책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글 쓰는 것은 싫어하는” 그러면서도 방대한 저작을 남긴 팔순의 씽커(thinker)를 발언의 무대로 끌어내기 위한 기획으로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사상사를 관통하여 철학체계를 세운 리쩌허우가 자신이 생각하는 “중국 철학”의 존재와 본질을 제시하고 그것이 서양의 철학적 사고방식과 갖는 근본적 차이점을 사유하게 한다. 또한 리쩌허우가 어떻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창시절 어떤 식으로 공부했으며, 격동하는 현대사 속에서 어떻게 시대를 내면에 갈무리했고, 주변의 학자와 출판사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극좌와 극우의 양면 공격 속에서 어떻게 중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밝혀 ‘자서전적’ 아우라도 빛낸다.
물론 그러한 회고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틀은 회고와 전망이다. 회고의 무게는 전망으로 옮겨가 묵직하면서도 직설적인 책의 제목을 만들어냈다.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상당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현대화가 미국화라고 여기는 자유파와도 어긋나고, 전통 만세를 부르짖는 국학파와도 어긋나고, 신유가 및 신국학과 동맹을 맺어서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신좌파와도 어긋났던 그가, “저는 그 무엇과도 접속하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여전히 제 방식대로 하는 거죠. 전통에 반대하면서도 전통을 옹호하고, 서양을 배우면서도 서양을 비판합니다. 나이가 벌써 팔순이에요. 앞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남들이 비웃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어쩌겠어요?”라고 말하는 그가 전세계적으로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중국 철학”을 들고 나온 것이다. 과연 무엇이 “중국 철학”인가?
인류는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밖에 없다
리쩌허우가 중국 철학을 정의하는 방식은 지극히 대자적이다. 바로 서양 전통과의 비교를 통해 중국 철학을 드러내는 대목이 많이 등장한다.
“중국 전통은 서양과는 달리 현대철학처럼 파편화된 자아를 강조하지 않아요. 인류는 오로지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중국 철학은 바로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것을 강조하지요.”
“중국에는 서양과 같은 종교와 신이 없어요. 중국에는 하나의 세계만 존재하지요. 바로 우리 자신의 세속세계에요. 그건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뚜렷이 양분되어 있는 두 개의 세계가 아니랍니다. 중국에서 믿는 것은, 명령을 내리고 전지전능하고 인간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매우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것이지요. 천도와 천명天命에서부터 민간의 온갖 귀신 신앙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답니다. 이건 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천天(하늘)·지地(땅)·국國(국가)·친親(어버이)·사師(스승)’에 대한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그 당시의 철학 조류는 이미 개체를 주목했답니다. 근대 이후로 주로 개체를 연구했지요. 중국 전통은 이 방면에 있어서 확실히 상대적으로 빈약해요. 이건 반드시 고쳐야 해요. 그래서 항상 저는 중국 전통이 완전무결하고 외래의 관념을 배척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전통을 위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전통이야말로 외래의 것을 진지하게 흡수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온 것이니까요. 송대 유학의 예를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당시 상황은 오늘날과 비슷한 데가 있어요.”
“중국 철학에서는 본래적인 것이 비본래적인 것 가운데 있어요. 무한은 유한 속에 있지요. 하이데거는 기어코 양분하고자 했는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겨요. 그는 자아의 선택과 결정과 결단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라고만 강조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아가지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나치에 이용되기 쉬웠던 겁니다.”
“그래서 중국 전통으로 마르크스와 칸트를 녹여내고 하이데거의 것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중국 전통으로 그것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해요. 이건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언어에서 벗어나 심리를 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서양의 어법, 즉 존재Being를 추구하는 서양 철학의 언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견해에서 벗어나야 해요. “존재가 사고하는” 언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의 언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심리주의의 중국 전통을 계승할 것을 강조하는데요. 이것이야말로 유학의 정수에요. 삼강三綱·오상五常·심성·이기理氣 등의 표층적 형태가 아니지요. 유학의 정수를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인류학 기초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이건 오늘날 실험실의 과학적 경험심리학과는 달라요.”
“중국의 전통 철학은 포스트모던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중국 전통에는 본질주의가 없고, 이원二元 분리가 없고, 본체론(존재론)이 없고, 포스트모던이 반대하는 온갖 협의의 형이상학의 특징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광의의 형이상학이 있기 때문에 포스트모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정情 본체’와 ‘도度’의 철학
위에 열거한 문장들만 보더라도 리쩌허우의 철학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의 전망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는 “역대 왕조의 왕을 순서대로 외울 정도로” 중국 전통에 대한 해박하면서도 확고한 지식을 기반으로 마르크스·칸트·헤겔·하이데거 등을 자신만의 중국식 조합으로 만들어 온 사람이다. 세계의 주류 철학이 무엇이 부족하고, 중국의 사상전통이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잘 파악하여 그 둘의 빈자리를 메우는 방식으로 양자의 사유전통을 결합한 것이 바로 그의 ‘정 본체’ 사상이기도 하다. ‘정 본체’는 중국 사상이 정감적인 것을 중시한 데서 착안한 정감철학이다. 그것은 근원적인 것이며 정감과 신앙의 측면을 철학이 포괄한 광의의 형이상학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동물이기 때문이다. 리쩌허우는 포스트모던 철학이 지금 인류생활의 곤경을 표현한 거라고 본다. 모든 게 찢기고 모든 규칙이 타파되었다. 니체는 신이 죽음을, 푸코는 인간의 죽음을 선언했고 총체로서의 인류나 총체로서의 개체는 없고, 자아조차 없어졌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개체뿐만 아니라 인류와 민족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대해야 하는가? 이들 모두가 대답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며 이것은 바로 리쩌허우가 ‘정 본체’를 제기하게 된 전제이자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쩌허우는 정 본체, 즉 인류학 역사 본체론이 세계의 시각이고 인류의 시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한 민족인 중국만의 시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을 기초로 세계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인류의 시각, 중국의 관점”으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 적도 있다.
리쩌허우는 철학자이지만 역사를 중요시한다. 그가 말하는 “중국 철학” 역시 역사와 깊은 관련을 지닌다. 심지어 리쩌허우에게는 언어 자체도 역사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서양 전통과는 달리 리쩌허우는 중국 전통에서는 “태초에 행동動이 있었다”라고 강조한다. 중국의 문자는 음성언어를 그대로 옮긴 게 아니며 그런 점에서 마젠충馬建忠에서부터 왕리王力에 이르는 중국의 언어학자들이 모두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한다. 그는 중국 문자의 기원은 ‘매듭 기록結繩記事(매듭을 지어 일을 기록하다)’이라고 본다. 최초의 문자는 발생한 일(역사 경험)을 기록하기 위한 부호였고 이게 점차 변해서 문자가 되고 마지막에 음성언어와 결합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양 문자는 언어를 뒤따라갔지만 중국은 반대다. 중국 문자는 늘 음성언어를 지배했으며 그래서 광둥·베이징·상하이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말은 못 알아들어도 글로 쓰면 다들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중국 문화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다. 조선과 중국 지식인의 필담문화도 바로 이런 영역에 속할 것이다.
리쩌허우에게 중국 문자란 대체 어떤 개념일까? 그건 바로 역사다. 문자는 역사와 경험을 대표하며 문자는 역사 경험을 총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인도에는 역사가 없다. 그가 보기에 인도 역사는 공상으로 얽어 만든 것이다. 경험을 보존하기 위해서 기록한 역사를 가장 강조하는 곳은 오직 중국뿐이다. 그의 ‘도度’의 철학은 바로 이러한 정의 위에서 성립한다.
“역사는 경험을 대표합니다. 인류는 경험에 의지해서 생존하지요. 그래서 저는 『역사본체론』에서 ‘도度’를 제1범주로 삼았어요.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요. ‘도’는 바로 딱 알맞음이에요.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말이죠. 인류는 ‘도’에 의지해서 생존해왔답니다. 원고시대에 사냥하면서 창을 던질 때, 멀리 던져도 안 되고 가까이 던져도 안 되지요. 반드시 딱 알맞게 던져야만 맞힐 수가 있어요. 이것이 인류 생존의 기본 조건이 되었지요. 이 조건은 생산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조직하고 협상하고 협조하는 데 있어서도 나타나고 인생의 각 방면에서 모두 나타납니다. 조금이라도 늘이면 지나치게 길어지고 조금이라도 줄이면 지나치게 짧아지니까 딱 알맞음이 필요한 거죠. ‘도’는 지극히 커다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답니다. 저는 헤겔의 ‘유有’나 ‘질質’을 제1위에 놓지 않고, ‘도’를 제 철학 인식론의 제1범주에다 놓았어요. ‘도’가 바로 역사 본체론의 제1조條랍니다. ‘도’는 인류의 생존과 관계가 있지요. 제가 ‘도’를 제1조로 삼은 까닭은, 이성·정신·신·자연물질 등의 그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인류의 생존과 연속을 제 철학의 최대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에요. ‘도’는 사실 ‘미美’이기도 하답니다. ‘도’가 각종 형식감을 창조하거든요. 이런 ‘감感’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활동 자체가 외재하는 천지자연과 하나로 일치되는 느낌·체험·파악·인식이랍니다. 그 뒤에야 그것이 비로소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외부세계를 규범에 맞도록 만드는, 인간의 물질적 힘과 기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생활의 각 방면으로 확장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리쩌허우는 왜 “중국 철학”을 주장하는가. 단순히 서양철학의 맹점을 보완하는 측면 때문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중국 철학은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하버드대 최고 인기가 중국철학 강의라는 것은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마이클 푸엣(Michael Puett·49)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의 수업은 지난 학기 530명이 수강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수강생을 넘어 화제를 모았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푸엣 교수는 “학생들이 맹자나 논어와 같이 오래된 책에서 현대에도 통용되는 혜안이 나오는 데 대해 흥미로워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발전시키고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지 배워간다”라고 강조한다. 이런 현상은 중국 철학이 “세속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리쩌허우의 인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철학을 통한 자신의 ‘구원’은 아래와 같은 세계인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는 냉병기冷兵器 시대와 화기火器 시대를 막론하고 이런 적이 없었어요. 이건 현대 첨단과학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결과에요. 서양에서는 과학기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왜 그토록 강할까요? 하이데거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왜 그토록 큰 목소리로 과학기술에 대한 반대를 부르짖었을까요? 현대 과학기술이 인류 자체의 생존을 명백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죠. 핵전쟁에 대한 우려가 한 예에요. 이 문제에 대해 철학이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20하는 것이지요. 인류가 장차 자신을 소멸시킨다면, 그건 우연일까요 아니면 필연일까요? 당연히 그건 우연이지, 바꿀 수 없는 ‘필연’이 결코 아닙니다.”
“한 글자라도 고치면 출판하지 않겠다”
사상계의 거목이 무려 반세기가 넘는 동안의 자신의 학술 역정을 들려주고 있는 이 책에는 당연히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에피소드들도 많이 등장한다. 리쩌허우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들도 많고 20세기 중국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이 함께 펼쳐진다. 아래는 그 중 몇 가지 대목들이다.
“저는 1950년에 대학에 응시했어요. 1948년에 후난湖南 제1사범학교를 졸업했지요. 그 당시 규정에 의하면, 2년 동안 소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해야만 졸업증서를 받을 수 있고 대학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답니다. 저는 두 군데에 응시했는데, 베이징北京 대학 철학과와 우한武漢 대학 철학과였어요. 두 곳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지요. 당시에는 학생들 전부가 1학년 국문, 1학년 영문을 수강해야 했는데 저는 두 과목 모두 수강을 면제받았답니다.”
“당시 저는 혼자서 책을 많이 읽었지요. 서양 철학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제 가장 큰 단점 중 하나가 질문하는 걸 싫어하는 거랍니다. 늘 혼자서 모색하면서 수많은 길을 빙 둘러갔지요. 선생님한테 질문하지 않았어요. 학문이란 건 배우고 묻는 것이니, 잘 물어야 해요! 그런데 저는 지금껏 묻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쭉 그랬답니다. 선생님한테 가르침을 청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늘 혼자서 책을 찾아서 봤답니다. 사실 이건 큰 잘못이에요.”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혈액형이 A형이에요. 글의 윤곽을 잡는 건 굉장히 신속해요. 그건 저만의 ‘새로운 구상’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문장으로 풀어쓰고 자료를 대조하고 논증하는 건 그다지 즐거운 작업이 아니에요. 특히 많은 말을 늘어놓는 건 정말 내키지 않아요. 그래서 늘 변변치 못한 대로 간신히 써낸답니다.”
“이 시기의 글은 6권으로 된 『리쩌허우 십년집李澤厚十年集(1979~1989)』에 수록되어 있어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출판사에서는 제목을 ‘십년집’에서 ‘문집’으로 바꾸자고 했답니다. 당시 ‘문집’이 들어간 책 제목이 유행했거든요. 저는 ‘십년집’이라는 세 글자를 바꾼다면 출간하지 않겠다는 답신을 보냈답니다. 결국 출판사가 양보했지요.”
“제 첫 번째 저서는 『문외집門外集』입니다. 미학에 관한 글이 수록되었는데, 1957년에 장강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되었죠. 그런데 표지 인쇄가 아주 엉망인 데다 ‘감사의 글’은 글 자체가 무척 커서 꼴불견이라 단 한 권도 다른 사람한테 주지 않았답니다.”
“『비판철학의 비판』은 1976년에 탈고했답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쓴 거죠. ‘사인방四人幇’이 와해되었을 때, 저는 지진 대비용 임시 천막1에서 마지막 장章의 수정을 끝냈답니다. 저한테는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만약 ‘사인방’이 조금 더 늦게 와해되었다면 책이 더 두꺼워졌을 겁니다.”
“아, 『비판철학의 비판』과 관련해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말씀드린 적이 없군요. 원래는 원고를 상무인서관에 넘겼어요. 1976년의 일이었는데, 상무인서관에서는 시간을 오래 끌면서 출간할 기미조차 없었지요. 큰 출판사라서 멋대로 하는 것 같아 화난 김에 원고를 돌려받았어요. 그리고 인민출판사에 넘겼지요. 그때 상무인서관 측에서는 깜짝 놀랐지요. 여태 그렇게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인민출판사에서 책이 빨리 나오게 되었어요. 상무인서관에서 제 책을 책임지고 있던 담당자가 나중에 집으로 찾아와서는 제 책을 내지 않았던 걸 아주 후회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다른 책을 한 권 써달라고 했어요. 헤겔에 관한 책을요. 결국 쓰진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이긴 했어요. 정말 제가 헤겔에 관한 책을 쓴다면 형편없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더 쓰고 싶었던 건 하이데거였답니다. 그런데 저는 독일어를 몰라요. 하이데거에 대해 쓰면서 독일어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칸트랑은 달라요. 독일 학생이 칸트를 읽는데도 차라리 영문본으로 보는 게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고들 하지요.”
‘왕따’당했던 중국 철학이 왜 ‘오래된 미래’일 수밖에 없는가
은둔자·고독자가 거장이 되기까지, 흥미로운 에피소드 풍부히 진술
“세계가 이런 중국의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는 건 쉽지 않아요. 다른 이가 받아들이도록 급급해할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저는 세계가 그것을 받아들일 필요를 조만한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4장 「‘정 본체’에 관하여」
“하이데거 역시 정을 말했지요. 하지만 하이데거한테서 정은 맹목적인 충동이에요. 하이데거의 정은
공空적인 것이지요. 그는 정을 본래적인 것과 비본래적인 것으로 나누었는데, 이건 틀렸어요. 중국철학에서는 본래적인 것이 비본래적인 것 가운데 있어요. 무한은 유한 속에 있지요. 하이데거는 기어코 양분하고자 했는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겨요. 그는 자아의 선택과 결정과 결단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라고만 강조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아가지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나치에 이용되기 쉬웠던 겁니다. 저는 하이데거의 정치적 문제는 부차적인 거라고 봐요. 중요한 건, 그의 철학 자체가 사악한 힘에 이용되기가 아주 쉽다는 겁니다.”
- 4장 「‘정 본체’에 관하여」
리쩌허우 세계 철학을 재구축하다
살아 있는 중국 사상계의 거목 리쩌허우의 신작이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該中國哲學登場了?』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상하이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류쉬위안이 2010년 10월 베이징의 리쩌허우를 찾아가 세 차례에 걸쳐 그의 학문역정과 철학체계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하는 좌담을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책 읽는 것은 좋아하지만 글 쓰는 것은 싫어하는” 그러면서도 방대한 저작을 남긴 팔순의 씽커(thinker)를 발언의 무대로 끌어내기 위한 기획으로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사상사를 관통하여 철학체계를 세운 리쩌허우가 자신이 생각하는 “중국 철학”의 존재와 본질을 제시하고 그것이 서양의 철학적 사고방식과 갖는 근본적 차이점을 사유하게 한다. 또한 리쩌허우가 어떻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학창시절 어떤 식으로 공부했으며, 격동하는 현대사 속에서 어떻게 시대를 내면에 갈무리했고, 주변의 학자와 출판사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으며, 극좌와 극우의 양면 공격 속에서 어떻게 중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밝혀 ‘자서전적’ 아우라도 빛낸다.
물론 그러한 회고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틀은 회고와 전망이다. 회고의 무게는 전망으로 옮겨가 묵직하면서도 직설적인 책의 제목을 만들어냈다.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상당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현대화가 미국화라고 여기는 자유파와도 어긋나고, 전통 만세를 부르짖는 국학파와도 어긋나고, 신유가 및 신국학과 동맹을 맺어서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신좌파와도 어긋났던 그가, “저는 그 무엇과도 접속하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여전히 제 방식대로 하는 거죠. 전통에 반대하면서도 전통을 옹호하고, 서양을 배우면서도 서양을 비판합니다. 나이가 벌써 팔순이에요. 앞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남들이 비웃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어쩌겠어요?”라고 말하는 그가 전세계적으로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중국 철학”을 들고 나온 것이다. 과연 무엇이 “중국 철학”인가?
인류는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밖에 없다
리쩌허우가 중국 철학을 정의하는 방식은 지극히 대자적이다. 바로 서양 전통과의 비교를 통해 중국 철학을 드러내는 대목이 많이 등장한다.
“중국 전통은 서양과는 달리 현대철학처럼 파편화된 자아를 강조하지 않아요. 인류는 오로지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중국 철학은 바로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것을 강조하지요.”
“중국에는 서양과 같은 종교와 신이 없어요. 중국에는 하나의 세계만 존재하지요. 바로 우리 자신의 세속세계에요. 그건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뚜렷이 양분되어 있는 두 개의 세계가 아니랍니다. 중국에서 믿는 것은, 명령을 내리고 전지전능하고 인간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매우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것이지요. 천도와 천명天命에서부터 민간의 온갖 귀신 신앙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답니다. 이건 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천天(하늘)·지地(땅)·국國(국가)·친親(어버이)·사師(스승)’에 대한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그 당시의 철학 조류는 이미 개체를 주목했답니다. 근대 이후로 주로 개체를 연구했지요. 중국 전통은 이 방면에 있어서 확실히 상대적으로 빈약해요. 이건 반드시 고쳐야 해요. 그래서 항상 저는 중국 전통이 완전무결하고 외래의 관념을 배척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전통을 위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전통이야말로 외래의 것을 진지하게 흡수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온 것이니까요. 송대 유학의 예를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당시 상황은 오늘날과 비슷한 데가 있어요.”
“중국 철학에서는 본래적인 것이 비본래적인 것 가운데 있어요. 무한은 유한 속에 있지요. 하이데거는 기어코 양분하고자 했는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겨요. 그는 자아의 선택과 결정과 결단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라고만 강조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아가지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나치에 이용되기 쉬웠던 겁니다.”
“그래서 중국 전통으로 마르크스와 칸트를 녹여내고 하이데거의 것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중국 전통으로 그것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해요. 이건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언어에서 벗어나 심리를 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서양의 어법, 즉 존재Being를 추구하는 서양 철학의 언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견해에서 벗어나야 해요. “존재가 사고하는” 언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의 언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심리주의의 중국 전통을 계승할 것을 강조하는데요. 이것이야말로 유학의 정수에요. 삼강三綱·오상五常·심성·이기理氣 등의 표층적 형태가 아니지요. 유학의 정수를 생생불식生生不息의 인류학 기초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이건 오늘날 실험실의 과학적 경험심리학과는 달라요.”
“중국의 전통 철학은 포스트모던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중국 전통에는 본질주의가 없고, 이원二元 분리가 없고, 본체론(존재론)이 없고, 포스트모던이 반대하는 온갖 협의의 형이상학의 특징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광의의 형이상학이 있기 때문에 포스트모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정情 본체’와 ‘도度’의 철학
위에 열거한 문장들만 보더라도 리쩌허우의 철학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의 전망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는 “역대 왕조의 왕을 순서대로 외울 정도로” 중국 전통에 대한 해박하면서도 확고한 지식을 기반으로 마르크스·칸트·헤겔·하이데거 등을 자신만의 중국식 조합으로 만들어 온 사람이다. 세계의 주류 철학이 무엇이 부족하고, 중국의 사상전통이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잘 파악하여 그 둘의 빈자리를 메우는 방식으로 양자의 사유전통을 결합한 것이 바로 그의 ‘정 본체’ 사상이기도 하다. ‘정 본체’는 중국 사상이 정감적인 것을 중시한 데서 착안한 정감철학이다. 그것은 근원적인 것이며 정감과 신앙의 측면을 철학이 포괄한 광의의 형이상학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동시에 동물이기 때문이다. 리쩌허우는 포스트모던 철학이 지금 인류생활의 곤경을 표현한 거라고 본다. 모든 게 찢기고 모든 규칙이 타파되었다. 니체는 신이 죽음을, 푸코는 인간의 죽음을 선언했고 총체로서의 인류나 총체로서의 개체는 없고, 자아조차 없어졌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개체뿐만 아니라 인류와 민족은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대해야 하는가? 이들 모두가 대답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며 이것은 바로 리쩌허우가 ‘정 본체’를 제기하게 된 전제이자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쩌허우는 정 본체, 즉 인류학 역사 본체론이 세계의 시각이고 인류의 시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한 민족인 중국만의 시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을 기초로 세계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인류의 시각, 중국의 관점”으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 적도 있다.
리쩌허우는 철학자이지만 역사를 중요시한다. 그가 말하는 “중국 철학” 역시 역사와 깊은 관련을 지닌다. 심지어 리쩌허우에게는 언어 자체도 역사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서양 전통과는 달리 리쩌허우는 중국 전통에서는 “태초에 행동動이 있었다”라고 강조한다. 중국의 문자는 음성언어를 그대로 옮긴 게 아니며 그런 점에서 마젠충馬建忠에서부터 왕리王力에 이르는 중국의 언어학자들이 모두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한다. 그는 중국 문자의 기원은 ‘매듭 기록結繩記事(매듭을 지어 일을 기록하다)’이라고 본다. 최초의 문자는 발생한 일(역사 경험)을 기록하기 위한 부호였고 이게 점차 변해서 문자가 되고 마지막에 음성언어와 결합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양 문자는 언어를 뒤따라갔지만 중국은 반대다. 중국 문자는 늘 음성언어를 지배했으며 그래서 광둥·베이징·상하이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말은 못 알아들어도 글로 쓰면 다들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중국 문화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다. 조선과 중국 지식인의 필담문화도 바로 이런 영역에 속할 것이다.
리쩌허우에게 중국 문자란 대체 어떤 개념일까? 그건 바로 역사다. 문자는 역사와 경험을 대표하며 문자는 역사 경험을 총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인도에는 역사가 없다. 그가 보기에 인도 역사는 공상으로 얽어 만든 것이다. 경험을 보존하기 위해서 기록한 역사를 가장 강조하는 곳은 오직 중국뿐이다. 그의 ‘도度’의 철학은 바로 이러한 정의 위에서 성립한다.
“역사는 경험을 대표합니다. 인류는 경험에 의지해서 생존하지요. 그래서 저는 『역사본체론』에서 ‘도度’를 제1범주로 삼았어요.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요. ‘도’는 바로 딱 알맞음이에요.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말이죠. 인류는 ‘도’에 의지해서 생존해왔답니다. 원고시대에 사냥하면서 창을 던질 때, 멀리 던져도 안 되고 가까이 던져도 안 되지요. 반드시 딱 알맞게 던져야만 맞힐 수가 있어요. 이것이 인류 생존의 기본 조건이 되었지요. 이 조건은 생산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조직하고 협상하고 협조하는 데 있어서도 나타나고 인생의 각 방면에서 모두 나타납니다. 조금이라도 늘이면 지나치게 길어지고 조금이라도 줄이면 지나치게 짧아지니까 딱 알맞음이 필요한 거죠. ‘도’는 지극히 커다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답니다. 저는 헤겔의 ‘유有’나 ‘질質’을 제1위에 놓지 않고, ‘도’를 제 철학 인식론의 제1범주에다 놓았어요. ‘도’가 바로 역사 본체론의 제1조條랍니다. ‘도’는 인류의 생존과 관계가 있지요. 제가 ‘도’를 제1조로 삼은 까닭은, 이성·정신·신·자연물질 등의 그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인류의 생존과 연속을 제 철학의 최대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에요. ‘도’는 사실 ‘미美’이기도 하답니다. ‘도’가 각종 형식감을 창조하거든요. 이런 ‘감感’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활동 자체가 외재하는 천지자연과 하나로 일치되는 느낌·체험·파악·인식이랍니다. 그 뒤에야 그것이 비로소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외부세계를 규범에 맞도록 만드는, 인간의 물질적 힘과 기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생활의 각 방면으로 확장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리쩌허우는 왜 “중국 철학”을 주장하는가. 단순히 서양철학의 맹점을 보완하는 측면 때문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중국 철학은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하버드대 최고 인기가 중국철학 강의라는 것은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마이클 푸엣(Michael Puett·49)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의 수업은 지난 학기 530명이 수강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수강생을 넘어 화제를 모았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푸엣 교수는 “학생들이 맹자나 논어와 같이 오래된 책에서 현대에도 통용되는 혜안이 나오는 데 대해 흥미로워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발전시키고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지 배워간다”라고 강조한다. 이런 현상은 중국 철학이 “세속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리쩌허우의 인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철학을 통한 자신의 ‘구원’은 아래와 같은 세계인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는 냉병기冷兵器 시대와 화기火器 시대를 막론하고 이런 적이 없었어요. 이건 현대 첨단과학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결과에요. 서양에서는 과학기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왜 그토록 강할까요? 하이데거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왜 그토록 큰 목소리로 과학기술에 대한 반대를 부르짖었을까요? 현대 과학기술이 인류 자체의 생존을 명백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죠. 핵전쟁에 대한 우려가 한 예에요. 이 문제에 대해 철학이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20하는 것이지요. 인류가 장차 자신을 소멸시킨다면, 그건 우연일까요 아니면 필연일까요? 당연히 그건 우연이지, 바꿀 수 없는 ‘필연’이 결코 아닙니다.”
“한 글자라도 고치면 출판하지 않겠다”
사상계의 거목이 무려 반세기가 넘는 동안의 자신의 학술 역정을 들려주고 있는 이 책에는 당연히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에피소드들도 많이 등장한다. 리쩌허우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들도 많고 20세기 중국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이 함께 펼쳐진다. 아래는 그 중 몇 가지 대목들이다.
“저는 1950년에 대학에 응시했어요. 1948년에 후난湖南 제1사범학교를 졸업했지요. 그 당시 규정에 의하면, 2년 동안 소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해야만 졸업증서를 받을 수 있고 대학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답니다. 저는 두 군데에 응시했는데, 베이징北京 대학 철학과와 우한武漢 대학 철학과였어요. 두 곳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지요. 당시에는 학생들 전부가 1학년 국문, 1학년 영문을 수강해야 했는데 저는 두 과목 모두 수강을 면제받았답니다.”
“당시 저는 혼자서 책을 많이 읽었지요. 서양 철학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제 가장 큰 단점 중 하나가 질문하는 걸 싫어하는 거랍니다. 늘 혼자서 모색하면서 수많은 길을 빙 둘러갔지요. 선생님한테 질문하지 않았어요. 학문이란 건 배우고 묻는 것이니, 잘 물어야 해요! 그런데 저는 지금껏 묻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쭉 그랬답니다. 선생님한테 가르침을 청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늘 혼자서 책을 찾아서 봤답니다. 사실 이건 큰 잘못이에요.”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혈액형이 A형이에요. 글의 윤곽을 잡는 건 굉장히 신속해요. 그건 저만의 ‘새로운 구상’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문장으로 풀어쓰고 자료를 대조하고 논증하는 건 그다지 즐거운 작업이 아니에요. 특히 많은 말을 늘어놓는 건 정말 내키지 않아요. 그래서 늘 변변치 못한 대로 간신히 써낸답니다.”
“이 시기의 글은 6권으로 된 『리쩌허우 십년집李澤厚十年集(1979~1989)』에 수록되어 있어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출판사에서는 제목을 ‘십년집’에서 ‘문집’으로 바꾸자고 했답니다. 당시 ‘문집’이 들어간 책 제목이 유행했거든요. 저는 ‘십년집’이라는 세 글자를 바꾼다면 출간하지 않겠다는 답신을 보냈답니다. 결국 출판사가 양보했지요.”
“제 첫 번째 저서는 『문외집門外集』입니다. 미학에 관한 글이 수록되었는데, 1957년에 장강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되었죠. 그런데 표지 인쇄가 아주 엉망인 데다 ‘감사의 글’은 글 자체가 무척 커서 꼴불견이라 단 한 권도 다른 사람한테 주지 않았답니다.”
“『비판철학의 비판』은 1976년에 탈고했답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쓴 거죠. ‘사인방四人幇’이 와해되었을 때, 저는 지진 대비용 임시 천막1에서 마지막 장章의 수정을 끝냈답니다. 저한테는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만약 ‘사인방’이 조금 더 늦게 와해되었다면 책이 더 두꺼워졌을 겁니다.”
“아, 『비판철학의 비판』과 관련해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말씀드린 적이 없군요. 원래는 원고를 상무인서관에 넘겼어요. 1976년의 일이었는데, 상무인서관에서는 시간을 오래 끌면서 출간할 기미조차 없었지요. 큰 출판사라서 멋대로 하는 것 같아 화난 김에 원고를 돌려받았어요. 그리고 인민출판사에 넘겼지요. 그때 상무인서관 측에서는 깜짝 놀랐지요. 여태 그렇게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인민출판사에서 책이 빨리 나오게 되었어요. 상무인서관에서 제 책을 책임지고 있던 담당자가 나중에 집으로 찾아와서는 제 책을 내지 않았던 걸 아주 후회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다른 책을 한 권 써달라고 했어요. 헤겔에 관한 책을요. 결국 쓰진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이긴 했어요. 정말 제가 헤겔에 관한 책을 쓴다면 형편없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더 쓰고 싶었던 건 하이데거였답니다. 그런데 저는 독일어를 몰라요. 하이데거에 대해 쓰면서 독일어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칸트랑은 달라요. 독일 학생이 칸트를 읽는데도 차라리 영문본으로 보는 게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고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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