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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김학철 평전』은‘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으로 격렬했던 호가장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뒤에도 문학이라는 또 다른 수단으로 잊혀진 민족사를 묘파하고 복원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김학철이라는 인물을 복원해내고 있는 책이다.
1938년 10월 중국 무한에서 결성된 조선의용군은 광복의 그날까지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고 투쟁했으나, 해방 이후 정치적, 사상적 이유로 남과 북 양쪽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이역의 중국 땅에서 항일투쟁으로 청년기를 보낸 김학철은 군인으로 다시 작가로 투쟁해왔다. 그의 투쟁의 칼날은 일본제국주의뿐만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는 모든 정치 기제와 독재를 향해 겨누어졌기에 더더욱 의미심장했다.
두 저자는 김학철이라는 인물의 영웅적 면모뿐만 아니라 문학세계, 지인들과의 관계, 가족, 일상생활 등을 세세히 드러내 그를 실감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꿈을 품은 소년 김학철이 상해임시정부를 찾아 중국에 와 조선민족혁명당의 일원으로 화로강, 황포군관학교 등에서 생활하며 훈련 받고 테러 활동에 가담하는 에피소드들은, 상당 부분 김학철의 자전적인 소설과 글을 참조해 생생하고 극적인 재미를 주고 있다.
남과 북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절반의 조국인 연길에서 잊혀진 무명 영웅으로, 조선족작가로서 눈 감은 김학철을 재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1938년 10월 중국 무한에서 결성된 조선의용군은 광복의 그날까지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고 투쟁했으나, 해방 이후 정치적, 사상적 이유로 남과 북 양쪽에서 철저히 외면당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이역의 중국 땅에서 항일투쟁으로 청년기를 보낸 김학철은 군인으로 다시 작가로 투쟁해왔다. 그의 투쟁의 칼날은 일본제국주의뿐만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는 모든 정치 기제와 독재를 향해 겨누어졌기에 더더욱 의미심장했다.
두 저자는 김학철이라는 인물의 영웅적 면모뿐만 아니라 문학세계, 지인들과의 관계, 가족, 일상생활 등을 세세히 드러내 그를 실감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꿈을 품은 소년 김학철이 상해임시정부를 찾아 중국에 와 조선민족혁명당의 일원으로 화로강, 황포군관학교 등에서 생활하며 훈련 받고 테러 활동에 가담하는 에피소드들은, 상당 부분 김학철의 자전적인 소설과 글을 참조해 생생하고 극적인 재미를 주고 있다.
남과 북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절반의 조국인 연길에서 잊혀진 무명 영웅으로, 조선족작가로서 눈 감은 김학철을 재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목차
1부. 항일 독립운동에의 투신
2부.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3부. 좌우의 대립 속에서
4부. 다시 옥중으로
5부. 작품세계와 최후
부록
2부.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
3부. 좌우의 대립 속에서
4부. 다시 옥중으로
5부. 작품세계와 최후
부록
출판사 리뷰
민족과 국경의 경계를 넘는 김학철 문학, 잃어버린 항일 투쟁사를 되찾는 첫걸음
항일 투쟁 당시에도 문재를 보인 김학철은 친구인 류신이 쓴 곡에 가사를 붙여 함께 ‘조선의용군 추도가’를 만들기도 했다. 해방 이후 김학철은 총칼 대신 붓을 잡고 진보 문학인들의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 창간호와 신문학, 서울문학 등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김학철은 이태준, 김남천, 안회남, 박계주, 윤세중, 그리고 임화의 부인 지하련 등 문인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는다. 해방공간의 김학철 작품에서는 격렬한 전투 장면이나 큰 사건보다는, 생활미 넘치는 일화와 순수하고 열정적인 조선의용군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데 특히 의용군 시절에 겪은 체험은 경험에 바탕을 둔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통해 성격을 창조하는 김학철 문학의 특성을 낳는다. 사상적 이유로 월북한 뒤 한국전쟁 때 북경의 중앙문화연구소로 피난을 가 중국의 문호 정령, 하기방 등과 우정을 쌓고, 이후 연변에 조선족자치주가 선포되자 이주해 마지막까지 정착하게 된다.
『20세기의 신화』는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 소련 해빙문학과 맥을 같이하는 정치소설로 중국 국내의 정풍, 반우파투쟁, 대약진 등 일련의 정치 운동과 당시 처참한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이 문제가 되어 중국 추리구감옥에서 10년 동안 다시 옥살이를 겪어야 했다. 65세로 출옥한 뒤에 그는 단편소설 20여 편, 산문 100편을 쓰며 대부분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가 남긴 소설과 산문 등의 문학작품들은 대부분 잊혀진 우리 항일 투쟁사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작가 특유의 유머와 긴박감 넘치는 구성, 구체적이고 흥미진진한 내용 전개와 몰입도 높은 문장 등, 문학적인 면에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쾌거를 거둔다. 김학철은 소설과 산문 등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정령과 노신의 문학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평생 노신의 꿋꿋한 정신과 문학 세계를 동경해온 김학철은 ‘철인의 예지와 문학가의 열정이 융합된 참된 에세이, 수필’을 개발한 노신의 작가 정신을 본받아 항상 백성을 위해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본분임을 죽는 날까지 잊지 않았다.
해방 직후 김학철이 남한에서 발표한 몇몇 단편들(김희민 엮음, 『해방 3년의 소설문학』, 세계, 1987. 수록)과 태항산 항일무장투쟁을 전기문학적 방식으로 쓴 「항전별곡」(이정식ㆍ한홍구 엮음, 『항전별곡』, 거름, 1986. 수록), 그리고 1930년대 북간도를 중심으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을 서사적 화폭 속에 담아낸 장편 3부작 『해란강아 말하라』(1954년 출간) 등은 그가 스스로도 참여했던 항일무장투쟁을 문학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김학철이 『격정시대』에서 보이는 국제주의자로서의 세계인식은 일본에 대한 맹목적 반일감정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를 부정하는 양심적 지성인들을 포함하여 민족과 국경의 경계를 넘는 민중적 국제 연대를 통해 반식민주의를 모색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김학철 문학은 우리 ‘민족문학’에서 동아시아를 무대로 삼아 세계적 사상을 담아내어,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능성을 획득하고 있다.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인간 승리를 일구며 고귀한 정신을 지켜낸 김학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는 삭발하고 녹색 중산복을 입어 조선의용군 분대원으로서 눈을 감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다. 남과 북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절반의 조국인 연길에서 잊혀진 무명 영웅으로, 조선족작가로서 눈 감은 것은, 우리 현대사가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인 동시에 남은 과제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해방 60주년을 맞은 2006년에서야, 중국 당국과 연변작가협회, 한국의 실천문학사가 주축이 되어 중국 하북성 원씨현 호가장 마을 입구에 김학철과 김사량의 항일문학비가 세워졌다. 두 사람 모두 조선의용군의 일원이었으며 항일전선의 최전방에서 투쟁하고 문학적 성과도 컸으나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비운의 작가들이었다.
항일 투쟁 당시에도 문재를 보인 김학철은 친구인 류신이 쓴 곡에 가사를 붙여 함께 ‘조선의용군 추도가’를 만들기도 했다. 해방 이후 김학철은 총칼 대신 붓을 잡고 진보 문학인들의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 창간호와 신문학, 서울문학 등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이를 계기로 김학철은 이태준, 김남천, 안회남, 박계주, 윤세중, 그리고 임화의 부인 지하련 등 문인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는다. 해방공간의 김학철 작품에서는 격렬한 전투 장면이나 큰 사건보다는, 생활미 넘치는 일화와 순수하고 열정적인 조선의용군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데 특히 의용군 시절에 겪은 체험은 경험에 바탕을 둔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통해 성격을 창조하는 김학철 문학의 특성을 낳는다. 사상적 이유로 월북한 뒤 한국전쟁 때 북경의 중앙문화연구소로 피난을 가 중국의 문호 정령, 하기방 등과 우정을 쌓고, 이후 연변에 조선족자치주가 선포되자 이주해 마지막까지 정착하게 된다.
『20세기의 신화』는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 소련 해빙문학과 맥을 같이하는 정치소설로 중국 국내의 정풍, 반우파투쟁, 대약진 등 일련의 정치 운동과 당시 처참한 사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이 문제가 되어 중국 추리구감옥에서 10년 동안 다시 옥살이를 겪어야 했다. 65세로 출옥한 뒤에 그는 단편소설 20여 편, 산문 100편을 쓰며 대부분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가 남긴 소설과 산문 등의 문학작품들은 대부분 잊혀진 우리 항일 투쟁사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작가 특유의 유머와 긴박감 넘치는 구성, 구체적이고 흥미진진한 내용 전개와 몰입도 높은 문장 등, 문학적인 면에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쾌거를 거둔다. 김학철은 소설과 산문 등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정령과 노신의 문학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평생 노신의 꿋꿋한 정신과 문학 세계를 동경해온 김학철은 ‘철인의 예지와 문학가의 열정이 융합된 참된 에세이, 수필’을 개발한 노신의 작가 정신을 본받아 항상 백성을 위해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본분임을 죽는 날까지 잊지 않았다.
해방 직후 김학철이 남한에서 발표한 몇몇 단편들(김희민 엮음, 『해방 3년의 소설문학』, 세계, 1987. 수록)과 태항산 항일무장투쟁을 전기문학적 방식으로 쓴 「항전별곡」(이정식ㆍ한홍구 엮음, 『항전별곡』, 거름, 1986. 수록), 그리고 1930년대 북간도를 중심으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을 서사적 화폭 속에 담아낸 장편 3부작 『해란강아 말하라』(1954년 출간) 등은 그가 스스로도 참여했던 항일무장투쟁을 문학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김학철이 『격정시대』에서 보이는 국제주의자로서의 세계인식은 일본에 대한 맹목적 반일감정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를 부정하는 양심적 지성인들을 포함하여 민족과 국경의 경계를 넘는 민중적 국제 연대를 통해 반식민주의를 모색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김학철 문학은 우리 ‘민족문학’에서 동아시아를 무대로 삼아 세계적 사상을 담아내어,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능성을 획득하고 있다. 극한 상황을 극복하고 인간 승리를 일구며 고귀한 정신을 지켜낸 김학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는 삭발하고 녹색 중산복을 입어 조선의용군 분대원으로서 눈을 감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다. 남과 북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절반의 조국인 연길에서 잊혀진 무명 영웅으로, 조선족작가로서 눈 감은 것은, 우리 현대사가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인 동시에 남은 과제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해방 60주년을 맞은 2006년에서야, 중국 당국과 연변작가협회, 한국의 실천문학사가 주축이 되어 중국 하북성 원씨현 호가장 마을 입구에 김학철과 김사량의 항일문학비가 세워졌다. 두 사람 모두 조선의용군의 일원이었으며 항일전선의 최전방에서 투쟁하고 문학적 성과도 컸으나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비운의 작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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