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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약학 연구자들의 필독서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견실한 입문서
“바울 신학 연구사의 이정표”라 불리고, “우리 시대 신약 학계가 내놓은 위대한 걸작 중 하나”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간추린판이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200년에 이르는 기간에 나온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거의 모든 텍스트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유대교 신학이 공유하는 전제들과 기둥들을 밝혀내고, 이를 바울의 그것과 비교한 뒤, 양자를 이해할 수 있는 새 테제들을 제시한 기념비적 책이다. 하지만 내용이 방대하며, 인용하는 일차 자료가 너무 많고, 세부적인 논의도 복잡하여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게 단점이었다. 이것이 ‘간추린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간추린판’은 긴 호흡의 논증을 읽다가 놓치기 쉬운 주제 단락을 돋보이게 할 것, 샌더스가 인용하는 일차 자료를 최소한의 양이라도 포함시켜 독자가 유대 문헌을 직접 읽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것, 샌더스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과 그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남겨놓을 것, 그리고 가급적 샌더스의 바울 해석 부분을 많이 남길 것 등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간추렸다.
‘간추린판’에 추가된 내용도 있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핵심 논지와 이 책의 의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김선용 박사의 “간추린이의 말”과, 더 깊이 연구하려는 독자를 위해 설명을 곁들인 참고문헌 목록(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rther study)이 추가되었다. 샌더스가 몇몇 책을 저술할 때의 상황을 설명한 글이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그가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요약한 자서전 성격의 글인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내가 걸어온 학자의 길”은 ‘부록 1’로 추가되었다.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표현을 다른 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오해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몇몇 중요한 학계의 비판에 대해 묵직하고도 적확한 응답을 담은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는 ‘부록 2’로 실렸다.
이해하기 위한 가장 견실한 입문서
“바울 신학 연구사의 이정표”라 불리고, “우리 시대 신약 학계가 내놓은 위대한 걸작 중 하나”라고도 평가받고 있는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간추린판이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200년에 이르는 기간에 나온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거의 모든 텍스트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유대교 신학이 공유하는 전제들과 기둥들을 밝혀내고, 이를 바울의 그것과 비교한 뒤, 양자를 이해할 수 있는 새 테제들을 제시한 기념비적 책이다. 하지만 내용이 방대하며, 인용하는 일차 자료가 너무 많고, 세부적인 논의도 복잡하여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게 단점이었다. 이것이 ‘간추린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간추린판’은 긴 호흡의 논증을 읽다가 놓치기 쉬운 주제 단락을 돋보이게 할 것, 샌더스가 인용하는 일차 자료를 최소한의 양이라도 포함시켜 독자가 유대 문헌을 직접 읽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것, 샌더스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과 그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남겨놓을 것, 그리고 가급적 샌더스의 바울 해석 부분을 많이 남길 것 등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간추렸다.
‘간추린판’에 추가된 내용도 있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핵심 논지와 이 책의 의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김선용 박사의 “간추린이의 말”과, 더 깊이 연구하려는 독자를 위해 설명을 곁들인 참고문헌 목록(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rther study)이 추가되었다. 샌더스가 몇몇 책을 저술할 때의 상황을 설명한 글이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그가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요약한 자서전 성격의 글인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내가 걸어온 학자의 길”은 ‘부록 1’로 추가되었다.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표현을 다른 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오해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몇몇 중요한 학계의 비판에 대해 묵직하고도 적확한 응답을 담은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는 ‘부록 2’로 실렸다.
목차
간추린이의 말 - 김선용
40주년 기념판 머리말
40주년 기념판 서문 - 마크 챈시
1977년 저자 머리말
약어표
들어가는 글
1절 신약 학계가 이야기하는 바울과 유대교
2절 종교 패턴들의 전체 모습을 비교함
3절 자료
1부 팔레스타인 유대교
I장 탄나임 문헌
1절 랍비 종교를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는 종교로 보는 끈질긴 견해
2절 랍비 자료 사용
3절 탄나임 문헌의 본질
4절 선택과 언약
5절 순종과 불순종: 보상과 벌
6절 보상과 벌 그리고 장차 올 세상
7절 언약과 속죄의 일원이 됨으로써 얻은 구원
8절 적절한 신앙 행위: zakah와 tsadaq
9절 이방인
10절 종교생활과 체험의 본질
11절 결론
II장 사해사본
1절 들어가는 글
2절 언약과 언약 백성
3절 선택과 예정
4절 계명
5절 성취와 범과(犯過); 죄의 본질; 보상과 벌
6절 속죄
7절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
8절 신앙생활
9절 결론
III장 외경과 위경
1절 집회서Ben Sirach
2절 에녹1서
3절 희년서
4절 솔로몬의 시편
5절 에스라4서
IV장 팔레스타인 유대교 (기원전 200년-기원후 200년)
결론
2부 바울
V장 바울
1절 들어가는 글
2절 문제를 앞질러가는 해결책
3절 바울의 구원론
4절 율법, 인간의 비참한 곤경, 그리고 그 비참한 곤경과 해결책의 관계
5절 바울이 제시하는 언약적 율법주의
6절 행위에 따른 심판과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
7절 일관성, 연관성 그리고 자료
결론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바울, 헬레니즘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 유대교
간추린판 부록 1: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내가 걸어온 학자의 길
간추린판 부록 2: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
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rther study
참고문헌과 색인에 대한 안내
발행인의 말
※ 본 간추린판에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내용이 없는 부분도 목차에는 포함시켰습니다.
40주년 기념판 머리말
40주년 기념판 서문 - 마크 챈시
1977년 저자 머리말
약어표
들어가는 글
1절 신약 학계가 이야기하는 바울과 유대교
2절 종교 패턴들의 전체 모습을 비교함
3절 자료
1부 팔레스타인 유대교
I장 탄나임 문헌
1절 랍비 종교를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는 종교로 보는 끈질긴 견해
2절 랍비 자료 사용
3절 탄나임 문헌의 본질
4절 선택과 언약
5절 순종과 불순종: 보상과 벌
6절 보상과 벌 그리고 장차 올 세상
7절 언약과 속죄의 일원이 됨으로써 얻은 구원
8절 적절한 신앙 행위: zakah와 tsadaq
9절 이방인
10절 종교생활과 체험의 본질
11절 결론
II장 사해사본
1절 들어가는 글
2절 언약과 언약 백성
3절 선택과 예정
4절 계명
5절 성취와 범과(犯過); 죄의 본질; 보상과 벌
6절 속죄
7절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
8절 신앙생활
9절 결론
III장 외경과 위경
1절 집회서Ben Sirach
2절 에녹1서
3절 희년서
4절 솔로몬의 시편
5절 에스라4서
IV장 팔레스타인 유대교 (기원전 200년-기원후 200년)
결론
2부 바울
V장 바울
1절 들어가는 글
2절 문제를 앞질러가는 해결책
3절 바울의 구원론
4절 율법, 인간의 비참한 곤경, 그리고 그 비참한 곤경과 해결책의 관계
5절 바울이 제시하는 언약적 율법주의
6절 행위에 따른 심판과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
7절 일관성, 연관성 그리고 자료
결론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바울, 헬레니즘 그리고 헬레니즘 시대 유대교
간추린판 부록 1: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내가 걸어온 학자의 길
간추린판 부록 2: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
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rther study
참고문헌과 색인에 대한 안내
발행인의 말
※ 본 간추린판에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내용이 없는 부분도 목차에는 포함시켰습니다.
책 속으로
신약학 연구자들에게 『바파유』가 끼친 심원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필독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이에게는 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합니다. 샌더스가 이 책에서 자신의 논지를 여러 번 반복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려는 바를 대략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가 상당한 분량의 일차 자료를 인용하며 논증을 전개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논의를 대할 때 독자는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번역본 출간은 무척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었는데, 아쉽게도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중요한 지점을 놓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전문가도 어렵다고 한 책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나온 이 책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 「간추린이의 말」 중에서
이 40주년 기념판의 하이라이트는 내 논지를 꿰뚫어보면서 명쾌하게 설명해준 마크 챈시〔Mark Chancey〕의 서문〔foreword〕이다. 챈시 교수는 내 저작이 나온 정황과 학계의 내 저작 수용 역사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바울을 바라보는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 불리는 견해들과 복잡하게 뒤엉켜 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던 내 저작을 그 덩어리에서 풀어주었다. 그가 쓴 서문은, 바울 연구가 계속되는 한, 아주 큰 도움을 베풀어 줄 중요한 학문 업적이다.
--- 「40주년 기념판 머리말」 중에서
샌더스는 이전에 그가 학자로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 여기는 것을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이 원전을 연구하면 여러분 자신이 배우는 것을 실제로 알게 된다”〔You really know what you learn for yourself by studying original sources〕. 물론 그가 언급한 것은 고대 텍스트를 꼼꼼히 분석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취지는 학자들의 고전 연구에도 역시 타당하다. 수많은 책과 논문이 샌더스의 여러 기여를 요약하고, 그가 제시한 논리의 흐름을 바꾸거나 더 발전시키며, 그의 주해 방향에 맞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바울과 유대교에 관한 다른 해석을 지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지금도 중대한 의미를 갖고 학자들의 연구와 계속하여 관련성을 가지는 작품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려 한다면, 원전을 읽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이 40주년 기념판이 바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시의적절하게 제공한다.
--- 「40주년 기념판 서문」 중에서
유대교 자료를 연구하면 할수록, 내가 본디 신약 학도가 아닌 것처럼 서술하려 애쓰는 것이 잘못이요 부질없다는 것이 더욱더 분명해졌다. 유대교를 다룬 책을 쓴 신약 학자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관심도 없고 실제 가지지도 않은 “종교사”의 관점과 교육 배경을 가진 것처럼 행세했는데, 나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반면, 나는 유대교를 바울에서 볼 수 있는 모티프와 아주 유사한 혹은 그의 “배경”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개개 모티프들 쯤으로 좁혀 보려는〔제약해버리는〕 반대쪽 함정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유대교 자체의 관점에서 이해한 유대교와 바울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한 바울을 비교해보려했다. 나는 이런 노력이 바울 및 바울과 유대교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유대교 자체를 이해하는 데도 기여한다는 것이 증명되리라고 기대한다. 설령 내가 탈무드 신봉자에게 랍비 종교〔유대교〕에 관하여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랍비 종교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논증과 랍비 종교와 유대교의 다른 형태들을 비교할 때 쓴 방법만큼은 유용하다는 게 드러나리라고 기대한다.
--- 「1977년 저자 머리말」 중에서
종교 패턴은 조직 신학과 동일하지 않으며, 사변에 의존하는 수많은 신학 질문들과 무관하다. 그렇지만 종교 패턴은 분명 사상과 관련이 있으며, 종교 행위의 외면뿐 아니라, 종교 행위 뒤편에 자리한 이해와 분명 관련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종교의 신자들이 그 종교의 제의가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어떤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는지를,그 종교의 제의 행위에서 끌어낼 수 있겠다. 그 제의를 지켜 거행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제의의 의미에 관한 신자들의 이해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꼭 신자들이 그 제의가 조직 신학에서 어떤 논리적 위치를 갖고 있는지 자세히 진술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설령 이런 자세한 진술이 없더라도 신자들은 어느 한 전체 패턴이 서로 연관된 여러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듯이, 그런 제의도 종교 속의 다른 요소들과 일관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미국 텍사스주 그랜드프레리〔Grand Prairie〕에서 자랐다. 그랜드프레리는 댈러스와 포트워스에 가깝지만, 경제 형편이 하류층에 속했던 우리와 같은 집들은 거의 다 우리가 살던 작은 도시에 살았으며, 근처 도시들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커다란 문화 세계의 영향 밖에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등교육세계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대학 다니실 때 사용하던 교과서 덕분에 영문학과 세계사 책을 폭넓게 읽었다. 그러긴 했어도, 나는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학자로서 살아간다면 뭐가 필요할 것인가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러 언어를 터득하려는 분투가 내 삶을 지배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외국인은 구경도 못했고, 심지어 외국어를 쓰는 이도 만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열여섯 살에 들어갔다) 배울 수 있었던 외국어는 두 해 동안 배운 에스파냐어가 전부였다(물론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그때까지 에스파냐어를 쓰는 이가 정착한 적이 없었다).
---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중에서
나는 아래에서 학자들이 “언약적 율법주의”와 관련하여 제기한 몇 가지 비판을 다뤄보겠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언약적 율법주의를 내가 대체하고자 한 신학 구조인 율법주의와 대조해보겠다. 나는 페르디난트 베버〔1836-1879〕의 저작(1897)까지만7 거슬러 올라가 율법주의 비판을 살펴봤지만, 내가 학자 생활을 시작할 때에 신약학계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율법주의 비판을 널리 해왔으며,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간추린이의 말」 중에서
이 40주년 기념판의 하이라이트는 내 논지를 꿰뚫어보면서 명쾌하게 설명해준 마크 챈시〔Mark Chancey〕의 서문〔foreword〕이다. 챈시 교수는 내 저작이 나온 정황과 학계의 내 저작 수용 역사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바울을 바라보는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 불리는 견해들과 복잡하게 뒤엉켜 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던 내 저작을 그 덩어리에서 풀어주었다. 그가 쓴 서문은, 바울 연구가 계속되는 한, 아주 큰 도움을 베풀어 줄 중요한 학문 업적이다.
--- 「40주년 기념판 머리말」 중에서
샌더스는 이전에 그가 학자로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 여기는 것을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이 원전을 연구하면 여러분 자신이 배우는 것을 실제로 알게 된다”〔You really know what you learn for yourself by studying original sources〕. 물론 그가 언급한 것은 고대 텍스트를 꼼꼼히 분석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취지는 학자들의 고전 연구에도 역시 타당하다. 수많은 책과 논문이 샌더스의 여러 기여를 요약하고, 그가 제시한 논리의 흐름을 바꾸거나 더 발전시키며, 그의 주해 방향에 맞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바울과 유대교에 관한 다른 해석을 지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지금도 중대한 의미를 갖고 학자들의 연구와 계속하여 관련성을 가지는 작품으로 남아있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려 한다면, 원전을 읽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이 40주년 기념판이 바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시의적절하게 제공한다.
--- 「40주년 기념판 서문」 중에서
유대교 자료를 연구하면 할수록, 내가 본디 신약 학도가 아닌 것처럼 서술하려 애쓰는 것이 잘못이요 부질없다는 것이 더욱더 분명해졌다. 유대교를 다룬 책을 쓴 신약 학자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관심도 없고 실제 가지지도 않은 “종교사”의 관점과 교육 배경을 가진 것처럼 행세했는데, 나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반면, 나는 유대교를 바울에서 볼 수 있는 모티프와 아주 유사한 혹은 그의 “배경”과 직접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개개 모티프들 쯤으로 좁혀 보려는〔제약해버리는〕 반대쪽 함정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유대교 자체의 관점에서 이해한 유대교와 바울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한 바울을 비교해보려했다. 나는 이런 노력이 바울 및 바울과 유대교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유대교 자체를 이해하는 데도 기여한다는 것이 증명되리라고 기대한다. 설령 내가 탈무드 신봉자에게 랍비 종교〔유대교〕에 관하여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랍비 종교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논증과 랍비 종교와 유대교의 다른 형태들을 비교할 때 쓴 방법만큼은 유용하다는 게 드러나리라고 기대한다.
--- 「1977년 저자 머리말」 중에서
종교 패턴은 조직 신학과 동일하지 않으며, 사변에 의존하는 수많은 신학 질문들과 무관하다. 그렇지만 종교 패턴은 분명 사상과 관련이 있으며, 종교 행위의 외면뿐 아니라, 종교 행위 뒤편에 자리한 이해와 분명 관련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종교의 신자들이 그 종교의 제의가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어떤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는지를,그 종교의 제의 행위에서 끌어낼 수 있겠다. 그 제의를 지켜 거행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제의의 의미에 관한 신자들의 이해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꼭 신자들이 그 제의가 조직 신학에서 어떤 논리적 위치를 갖고 있는지 자세히 진술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설령 이런 자세한 진술이 없더라도 신자들은 어느 한 전체 패턴이 서로 연관된 여러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듯이, 그런 제의도 종교 속의 다른 요소들과 일관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미국 텍사스주 그랜드프레리〔Grand Prairie〕에서 자랐다. 그랜드프레리는 댈러스와 포트워스에 가깝지만, 경제 형편이 하류층에 속했던 우리와 같은 집들은 거의 다 우리가 살던 작은 도시에 살았으며, 근처 도시들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커다란 문화 세계의 영향 밖에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등교육세계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대학 다니실 때 사용하던 교과서 덕분에 영문학과 세계사 책을 폭넓게 읽었다. 그러긴 했어도, 나는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학자로서 살아간다면 뭐가 필요할 것인가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러 언어를 터득하려는 분투가 내 삶을 지배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외국인은 구경도 못했고, 심지어 외국어를 쓰는 이도 만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열여섯 살에 들어갔다) 배울 수 있었던 외국어는 두 해 동안 배운 에스파냐어가 전부였다(물론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그때까지 에스파냐어를 쓰는 이가 정착한 적이 없었다).
---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중에서
나는 아래에서 학자들이 “언약적 율법주의”와 관련하여 제기한 몇 가지 비판을 다뤄보겠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언약적 율법주의를 내가 대체하고자 한 신학 구조인 율법주의와 대조해보겠다. 나는 페르디난트 베버〔1836-1879〕의 저작(1897)까지만7 거슬러 올라가 율법주의 비판을 살펴봤지만, 내가 학자 생활을 시작할 때에 신약학계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율법주의 비판을 널리 해왔으며,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 중에서
출판사 리뷰
바울과 율법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유대교에 대해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해준 E. P.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확실히 신약학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학계에서 바울을 이해하는 배경으로 묘사한 유대교가 특정한 관점에서 인위적으로 재구성된 편견이며,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지닌 것처럼 묘사된 유대교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인물로 바울을 이해하는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각성시켜 준 문제작이기도 하다. 이토록 중요하고 학문적인 책인 데다가 워낙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논지, 일차 자료 인용 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것이 ‘간추린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간추린판’은 긴 호흡의 논증을 읽다가 놓치기 쉬운 주제 단락을 돋보이게 할 것, 샌더스가 인용하는 일차 자료를 최소한의 양이라도 포함시켜 독자가 유대 문헌을 직접 읽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할 것, 샌더스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과 그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남겨놓을 것, 그리고 가급적 샌더스의 바울 해석 부분을 많이 남길 것 등 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바울 신학 전공자인 김선용 박사가 간추렸다.
“신약학 연구자들에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끼친 심원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필독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이에게는 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합니다. 샌더스가 이 책에서 자신의 논지를 여러 번 반복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려는 바를 대략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가 상당한 분량의 일차 자료를 인용 하며 논증을 전개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논의를 대할 때 독자는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번역본 출간은 무척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었는데, 아쉽게도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중요한 지점을 놓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전문가도 어렵다고 한 책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나온 이 책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_간추린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의 원서는 따로 없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Paul and Palestinian Judaism』에서 저자의 논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발췌한 것에 몇 꼭지를 추가하여 만든, 오직 한국어판만 있는 책이다. ‘간추린판’에만 추가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핵심 논지와 이 책의 의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김선용 박사의 “간추린이의 말”과, 더 깊이 연구하려는 독자를 위해 설명을 곁들인 참고문헌 목록(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rther study)이 추가되었다. 샌더스가 몇몇 책을 저술할 때의 상황을 설명한 글이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그가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요약한 자서전 성격의 글인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내가 걸어온 학자의 길”은 ‘부록 1’로 추가되었다. 원래 2003년에 발표된 강연 원고인데, 본 한국어 번역문은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 Common Judaism, Paul, and the Inner and Outer in the Study of Religi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6, 1-27)의 제1장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 An Academic Autobiography”를 번역한 것이다.
“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미국 텍사스주 그랜드프레리〔Grand Prairie〕에서 자랐다. 그랜드프레리는 댈러스와 포트워스에 가깝지만, 경제 형편이 하류층에 속했던 우리와 같은 집들은 거의 다 우리가 살던 작은 도시에 살았으며, 근처 도시들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커다란 문화 세계의 영향 밖에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등교육 세계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대학 다니실 때 사용하던 교과서 덕분에 영문학과 세계사 책을 폭넓게 읽었다. 그러긴 했어도, 나는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학자로서 살아간다면 뭐가 필요할 것인가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러 언어를 터득하려는 분투가 내 삶을 지배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외국인은 구경도 못했고, 심지어 외국어를 쓰는 이도 만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열여섯 살에 들어갔다) 배울 수 있었던 외국어는 두 해 동안 배운 에스파냐어가 전부였다(물론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그때까지 에스파냐어를 쓰는 이가 정착한 적이 없었다).” (_부록 1 중에서)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표현을 다른 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오해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몇몇 중요한 학계의 비판에 대해 묵직하고도 적확한 응답을 담은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는 ‘부록 2’로 실렸다. 이것은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와 미국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두 지역 모임에서 발표되었다가 Jewish Studies Quarterly 16 (2009): 25-55에 “Covenantal Nomism Revisited”로 출간되었다. 이후 다시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의 제3장(51-83)에 실린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나는 아래에서 학자들이 “언약적 율법주의”와 관련하여 제기한 몇 가지 비판을 다뤄보겠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언약적 율법주의를 내가 대체하고자 한 신학 구조인 율법주의와 대조해보겠다. 나는 페르디난트 베버〔1836-1879〕의 저작(1897)까지만7 거슬러 올라가 율법주의 비판을 살펴봤지만, 내가 학자 생활을 시작할 때에 신약학계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율법주의 비판을 널리 해왔으며,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_부록 2 중에서)
“신약학 연구자들에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끼친 심원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필독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이에게는 넘기 어려운 산이기도 합니다. 샌더스가 이 책에서 자신의 논지를 여러 번 반복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려는 바를 대략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그가 상당한 분량의 일차 자료를 인용 하며 논증을 전개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논의를 대할 때 독자는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번역본 출간은 무척 감사하고 반가운 일이었는데, 아쉽게도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중요한 지점을 놓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전문가도 어렵다고 한 책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나온 이 책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_간추린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의 원서는 따로 없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Paul and Palestinian Judaism』에서 저자의 논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발췌한 것에 몇 꼭지를 추가하여 만든, 오직 한국어판만 있는 책이다. ‘간추린판’에만 추가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핵심 논지와 이 책의 의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김선용 박사의 “간추린이의 말”과, 더 깊이 연구하려는 독자를 위해 설명을 곁들인 참고문헌 목록(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rther study)이 추가되었다. 샌더스가 몇몇 책을 저술할 때의 상황을 설명한 글이기도 하거니와 또 한편으로는 그가 학자로서 걸어온 길을 요약한 자서전 성격의 글인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함: 내가 걸어온 학자의 길”은 ‘부록 1’로 추가되었다. 원래 2003년에 발표된 강연 원고인데, 본 한국어 번역문은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 Common Judaism, Paul, and the Inner and Outer in the Study of Religi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6, 1-27)의 제1장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 An Academic Autobiography”를 번역한 것이다.
“나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미국 텍사스주 그랜드프레리〔Grand Prairie〕에서 자랐다. 그랜드프레리는 댈러스와 포트워스에 가깝지만, 경제 형편이 하류층에 속했던 우리와 같은 집들은 거의 다 우리가 살던 작은 도시에 살았으며, 근처 도시들로 여행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커다란 문화 세계의 영향 밖에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등교육 세계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대학 다니실 때 사용하던 교과서 덕분에 영문학과 세계사 책을 폭넓게 읽었다. 그러긴 했어도, 나는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학자로서 살아간다면 뭐가 필요할 것인가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러 언어를 터득하려는 분투가 내 삶을 지배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외국인은 구경도 못했고, 심지어 외국어를 쓰는 이도 만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열여섯 살에 들어갔다) 배울 수 있었던 외국어는 두 해 동안 배운 에스파냐어가 전부였다(물론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그때까지 에스파냐어를 쓰는 이가 정착한 적이 없었다).” (_부록 1 중에서)
무엇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표현을 다른 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오해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몇몇 중요한 학계의 비판에 대해 묵직하고도 적확한 응답을 담은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는 ‘부록 2’로 실렸다. 이것은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와 미국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두 지역 모임에서 발표되었다가 Jewish Studies Quarterly 16 (2009): 25-55에 “Covenantal Nomism Revisited”로 출간되었다. 이후 다시 Comparing Judaism and Christianity의 제3장(51-83)에 실린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나는 아래에서 학자들이 “언약적 율법주의”와 관련하여 제기한 몇 가지 비판을 다뤄보겠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언약적 율법주의를 내가 대체하고자 한 신학 구조인 율법주의와 대조해보겠다. 나는 페르디난트 베버〔1836-1879〕의 저작(1897)까지만7 거슬러 올라가 율법주의 비판을 살펴봤지만, 내가 학자 생활을 시작할 때에 신약학계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율법주의 비판을 널리 해왔으며,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_부록 2 중에서)
추천평
“바울 신학 연구사의 이정표”
- 닐스 달 (Nils A. Dahl)
- 닐스 달 (Nils A. Dahl)
“깊은 학식과 명료함, 그리고 상당한 독창성을 갖춘 책”
- G. B. 케어드 (G. B. Caird)
- G. B. 케어드 (G. B. Caird)
“나는 그의 학문 연구에서 나타나는 철두철미함, 그의 생각에서 드러나는 명료함, 그리고 그의 이해가 보여 주는 예리함에 감탄한다. … 나는 이 책이 우리 시대 신약 학계가 내놓은 위대한 걸작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 새뮤얼 샌드멜 (Samuel Sandmel)
- 새뮤얼 샌드멜 (Samuel Sandmel)
"성경 신학계에서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라는 책처럼 출간 직후는 물론이요 이후에도 계속하여 영향을 미친 책은 드물다.???『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그리고 이 책에서 시작된 다양한 탐구는 지금도 계속하여 영향을 미친다".
- 마크 챈시 (서던 메소디스트대학교 종교학 교수)
- 마크 챈시 (서던 메소디스트대학교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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