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역사이야기 (독서)/2.서울이야기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2(2023) - 서울편1: 서울 풍경의 탄생

동방박사님 2024. 2. 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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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 도시에 이 왜 산이 들어왔을까?

엉뚱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산이 도시에 들어오면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풍경과 문화는 세계적인 독특함을 발한다. 다른 문명권이나 국가에서 ‘하늘’로부터 국가 통치의 신성한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왕들의 수도와 궁궐 건설은 하늘과 가까운 산이나 언덕 위를 택하거나 너른 평지 도시에 하늘을 향해 우뚝 서게 한다. 하지만, 서울에는 북악산과 북한산이 들어와 있고, 궁궐은 산보다 작고 초라하다. 과연, 서울에 수도를 정하고 궁궐을 세운 조선의 권력자들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를 어떻게 구현했을까? [역사 인물 환생 인터뷰] 시리즈 첫 번째 책은 경복궁과 서울 도시 건설의 설계자 정도전에게 듣는다. 경복궁이 북악산 아래에 자리 잡는 과정, 경복궁과 종묘와 사직단에 적용된 독특한 풍경과 배치 원리가 광화문부터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까지 어떻게 구현되는지, 나아가 수도 서울의 도로망과 성벽에 준 영향까지 듣는다.

목차

책 머리에

1부_ 서울은 하늘의 도시이지 땅의 도시가 아니다

처음에는 왜 서울 천도를 반대했어요?
풍수가 미신이란 분이, 왜 풍수도시로 설계해요?
명당은 ‘땅의 기운이 솟는 곳’이 아니라 ‘권위의 공간’
‘땅의 도시’가 아니라 ‘하늘의 도시’

2부_ 경복궁이 아니라 ‘경복궁이 놓인 풍경’이 웅장하고 화려하다

고려 개성이 조선 서울의 모델
웅장한 게 아니라 ‘웅장하게 보이면’ 된다
화려한 게 아니라 ‘화려하게 보이면’ 된다
경회루에는 자연병풍이 있다
경회루의 건물, 연못, 섬들이 사각형인 이유

3부_ 임금의 권위를 담고 있는 산, ‘하늘산’이 만든 서울 도시 풍경들

하늘-궁궐이 아닌 하늘-산-궁궐의 풍경이 상징하는 것
왜, 세종대로사거리-시청-숭례문의 도로가 없었나요?
근정전터, 회랑, 인왕산과 안산에 깔린 시각 체험 효과
종묘와 사직단에 적용된 3단계 원칙
관청은 앞에, 시장은 뒤에 있어야 하는데?
보편을 따르면서도 독특하다

4부_ 산을 품은 도시, 서울은 ‘유교 나라’ 조선의 수도였다

1년만에 궁궐과 종묘를 완성하다
왜 성곽짓기가 수월했죠?
‘유교의 도시’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성곽 방어력이 높지 못한 이유
서울이 세계문명을 풍부하게 하다

저자 소개 

저 : 이기봉
1967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쌍학리의 아끔말에서 태어나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란 주제의 저술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수도, 지방 도시, 마을, 풍수, 고지도, 독도, 지명, 도로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

출판사 리뷰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은 경복궁과 서울 도시 건설의 설계자 정도전에게 듣는다. 경복궁이 북악산 아래에 자리 잡는 과정, 경복궁과 종묘와 사직단에 적용된 독특한 풍경과 배치 원리가 광화문부터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까지 어떻게 구현되는지, 나아가 수도 서울의 도로망과 성벽에 준 영향까지 듣는다.

‘하늘-산-궁궐’ 3단계 풍경으로 본, 경복궁과 서울 도시 조성의 비밀
산을 품은 궁궐과 도시의 설계, ‘왕의 권위를 체험케 하라’
[역사 인물 환생 인터뷰] 궁궐과 서울 건설의 비밀을 찾아서


왜, 경복궁은 세계 다른 나라의 궁궐에 비해 웅장하지 않을까? 왜 화려하지 않을까?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첫 권을 열면 바로 만나는 질문이다. 우리 도시와 지방 문화의 탄생을 연구해 온, 이 책의 저자 이기봉 박사(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는 ‘서울이 산을 품고 있다’는 데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책은 독특하게 당대 역사 인물들을 초청하여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1권에는 620여 년 전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위치를 잡고 간선 도로망을 짰으며, 관청과 시장을 배치하였고 성곽과 4대문을 축조했던, 서울 도시의 설계자 정도전을 초대하여 듣는다.

저자는 서울 천도가 이루어진 조선 초, ‘풍수’는 문화적 유전자로 이미 당시 사람들에게 내재화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풍수도시 서울을 설계했던 정도전은 아이러니하게 풍수를 믿지 않은 유학자였다. 책은 정도전이 유교적 왕과 국가의 절대 권위를 풍수라는 독특한 문화 속에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하나씩 풀고 있다.

저자는 전통시대 왕의 권위는 하늘에서 왔고, 왕이 사는 궁궐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를 상징하는 위치에 ‘하늘-궁궐’의 2단계 구조로 구현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 역시 하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같지만, 하늘과 궁궐 사이에 ‘산’이 끼어든다. 곧 ‘하늘-산-궁궐’의 3단계 구조라는 것이다. 산과 궁궐의 관계에서 경복궁의 독특함, 서울 도시의 독특함이 비롯된다고 말한다.

산의 정상이나 언덕 위, 또는 평지 위에 세워진 궁궐은 하늘과 바로 맞닿아 있다. 하늘이 곧 궁궐이라는 이미지가 잡힌다. 하지만 산 아래 궁궐이라면? 궁궐을 아무리 크고 웅장하게 지은들, 산의 높이와 규모를 따라갈 수 없다. 해서 정도전이 찾아낸 아이디어는 ‘웅장한 것’이 아니라 ‘웅장하게 보이는 것’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하나 백성들이 웅장함을, 곧 권위를 ‘체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인터뷰 속 정도전은 오늘의 ‘세종대로사거리’가 권위의 체험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꼽는다. 남대문 등을 통해 도성에 들어온 신하나 백성이, 임금이 사는 곳을 멀리서는 볼 수 없다가, 바로 지금의 ‘세종대로사거리’에 서게 되면 북악산과 보현봉 아래로 광화문 곧 경복궁이 보이는 ‘하늘-산-궁궐’의 장엄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1권 77쪽 사진) 여기서 광화문 쪽으로 갈수록 궁궐은 더욱 커지고, 산은 작아지는 ‘권위 체험의 풍경’이 연출된다.(1권 125쪽 사진) 현재도 세종대로사거리에서 광화문 쪽으로 걷는 이라면 누구라도 체험할 수 있는 ‘서울 풍경의 비밀’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1권에서는 이런 ‘권위 체험의 풍경 연출’이 경복궁이외에 종묘와 사직단에도 펼쳐지고, 나아가 서울의 도로망이 체험 연출 원리에 따라 조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책은 종묘가 보현봉(1권 151쪽 사진), 사직단이 인왕산(1권 155쪽 사진)을 배경으로 3단계 풍경이 구체화 되었고, 이를 현장 사진과 항공사진, 옛 서울지도를 통해 살펴본다. 2권에서는 태종이 설계한 창덕궁이 북한산 보현봉에 닿아 있고, 창경궁이 무악산(안산)에 닿아 있으며, 광해군이 설계한 경희궁 역시 인왕산에 닿아 있음을 밝힌다(2권 74쪽 사진).

저자는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권과 2권에서 진짜 ‘자연 풍경’을 즐겼던 조선의 ‘정원’을 살핀다. 정원은 보통 권력자의 내밀한 휴식 장소여서 높은 담으로 가려 폐쇄적이며 아기자기한 인공미로 꾸미는데, 조선의 ‘정원’은 경복궁의 경회루와 향원정에서 보듯이 자연을 그대로 감상하게 한다. 경회루의 창틀 풍경은 북악산, 인왕산를 바로 끌어와 담고 있다.(1권 98쪽 사진) 이는 궁궐이 산 아래에 위치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2권에서 저자는 진짜 산골짜기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창덕궁 후원의 연못과 정자를 꼼꼼하게 살핀다.(2권 101-111쪽 사진) 나아가 북악산, 인왕산과 낙산, 남산 등 서울의 높은 산 아래 무수한 골짜기마다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던’ 누정이 풍부하게 자리했고, 명승지가 위치했음을 겸재 정선의 화첩(2권 202~213쪽 그림)과 『동국여지비고』의 기록(2권 217쪽, 224쪽 이미지)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다.

그럼, 우리 역사에서 언제부터 ‘하늘-산-궁궐’의 풍경이 정착되었을까? 이 문제는 앞으로 출간할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3권과 4권에서 고찰한다. 신라에서 불교가 도입되고도심 한복판에 있던 왕들의 무덤이 산으로 올라가면서 풍수가 탄생한다. 후삼국과 고려를 지나면서 도성과 궁궐이 산을 배경으로 조성되는 과정, 곧 풍수가 우리의 문화유전자로 정착되는 과정을 설계자이자 권력자인 역사 인물들을 환생시켜 인터뷰한다.

책소개

산은 궁궐과 도시 풍경을 어떻게 바꿨을까?

조선의 서울은 어느 곳에서나 큰 산이 보였다. 그 산 아래에는 왕이 사는 경복궁이 세워졌다. 그 산을 바라보는 백성들 마음의 눈에는 늘 하늘-산-궁궐이라는 왕의 풍경이 있었다. 왕이 사는 궁궐은 경복궁 이외에도 여러 곳이었다.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 과연, 이 궁궐들에도 경복궁처럼 하늘-산-궁궐이라는 ‘왕의 권위가 살아 있는 풍경’이 연출되었을까? 매일 왕의 권위를 체험하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 조선의 권력자들은 거리와 정원의 풍경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역사 인물 환생 인터뷰] 시리즈 두 번째 책은 창덕궁을 설계한 태종, 경희궁을 지은 광해군, 궁궐 밖 정원들을 기록한 경승람에게 듣는다. 경복궁 건설에 적용된 원리는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에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창덕궁 후원이 산속의 자연풍경인 이유, 창덕궁과 경희궁에 독특한 진입로가 만들어진 이유, 그 많던 서울의 정원들이 사라진 이유를 듣는다.

목차

책 머리에

1부_ 태종 인터뷰 : 하늘·보현봉·창덕궁(돈화문)의 웅장한 풍경을 체험하게 하라

서울로의 재천도를 결정하다
창덕궁이 완성되다
창덕궁터는 어떤 원리로 잡았을까
서울에서 가장 멋진 그림

2부_ 태종 인터뷰 : 창덕궁과 창경궁의 구조는 독특하고 후원은 아름답다

돈화문에서 인정전까지 길은 왜 두 번 꺾일까
창경궁은 왜 남향이 아니라 동향일까
궁궐 안의 산속 자연풍경, 창덕궁 후원
자연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방법들
경복궁과 창덕궁은 왜 성벽이 아니라 담장으로 둘러쌓나

3부_ 광해군 인터뷰 : 경희궁의 미스터리, 왜 숭정전은 서북쪽 귀퉁이에 있을까

교하천도가 실패한 근본 이유
장풍국과 득수국 지형의 방어력에 대한 오해
왕의 기운이 서렸다는 소문과 경희궁 건설
왜 정전이 궁궐의 귀퉁이에 있을까
하늘-인왕산-경희궁(숭정문)의 풍경을 찾아 진입로를 꺾다

4부_ 『동국여지비고』 저자 경승람 인터뷰 : 궁궐 밖 정원들은 진정한 자연정원이었다

서울의 궁궐 밖에는 전통정원이 왜 이리 없을까
정원의 본질로 돌아가면 보인다
사라진 계곡의 풍경을 찾아서
자연정원이 엄청 많았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새로운 눈을 갖는다는 것

출판사 리뷰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2』는 창덕궁을 설계한 태종, 경희궁을 지은 광해군, 궁궐 밖 정원들을 기록한 가상 인물 경승람에게 듣는다. 경복궁 건설에 적용된 원리는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에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창덕궁 후원이 산속의 자연 풍경인 이유, 창덕궁과 경희궁에 독특한 진입로가 만들어진 이유, 그 많던 서울의 정원들이 사라진 이유를 듣는다.

‘하늘-산-궁궐’ 3단계 풍경으로 본, 경복궁과 서울 도시 조성의 비밀
산을 품은 궁궐과 도시의 설계, ‘왕의 권위를 체험케 하라’
[역사 인물 환생 인터뷰] 궁궐과 서울 건설의 비밀을 찾아서


왜, 경복궁은 세계 다른 나라의 궁궐에 비해 웅장하지 않을까? 왜 화려하지 않을까?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첫 권을 열면 바로 만나는 질문이다. 우리 도시와 지방 문화의 탄생을 연구해 온, 이 책의 저자 이기봉 박사(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는 ‘서울이 산을 품고 있다’는 데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책은 독특하게 당대 역사 인물들을 초청하여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1권에는 620여 년 전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위치를 잡고 간선 도로망을 짰으며, 관청과 시장을 배치하였고 성곽과 4대문을 축조했던, 서울 도시의 설계자 정도전을 초대하여 듣는다.

저자는 서울 천도가 이루어진 조선 초, ‘풍수’는 문화적 유전자로 이미 당시 사람들에게 내재화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풍수도시 서울을 설계했던 정도전은 아이러니하게 풍수를 믿지 않은 유학자였다. 책은 정도전이 유교적 왕과 국가의 절대 권위를 풍수라는 독특한 문화 속에 어떻게 구현했는지를 하나씩 풀고 있다.

저자는 전통시대 왕의 권위는 하늘에서 왔고, 왕이 사는 궁궐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를 상징하는 위치에 ‘하늘-궁궐’의 2단계 구조로 구현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 역시 하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같지만, 하늘과 궁궐 사이에 ‘산’이 끼어든다. 곧 ‘하늘-산-궁궐’의 3단계 구조라는 것이다. 산과 궁궐의 관계에서 경복궁의 독특함, 서울 도시의 독특함이 비롯된다고 말한다.

산의 정상이나 언덕 위, 또는 평지 위에 세워진 궁궐은 하늘과 바로 맞닿아 있다. 하늘이 곧 궁궐이라는 이미지가 잡힌다. 하지만 산 아래 궁궐이라면? 궁궐을 아무리 크고 웅장하게 지은들, 산의 높이와 규모를 따라갈 수 없다. 해서 정도전이 찾아낸 아이디어는 ‘웅장한 것’이 아니라 ‘웅장하게 보이는 것’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하나 백성들이 웅장함을, 곧 권위를 ‘체험’하게 하는 방식이다.

인터뷰 속 정도전은 오늘의 ‘세종대로사거리’가 권위의 체험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꼽는다. 남대문 등을 통해 도성에 들어온 신하나 백성이, 임금이 사는 곳을 멀리서는 볼 수 없다가, 바로 지금의 ‘세종대로사거리’에 서게 되면 북악산과 보현봉 아래로 광화문 곧 경복궁이 보이는 ‘하늘-산-궁궐’의 장엄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1권 77쪽 사진) 여기서 광화문 쪽으로 갈수록 궁궐은 더욱 커지고, 산은 작아지는 ‘권위 체험의 풍경’이 연출된다.(1권 125쪽 사진) 현재도 세종대로사거리에서 광화문 쪽으로 걷는 이라면 누구라도 체험할 수 있는 ‘서울 풍경의 비밀’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1권에서는 이런 ‘권위 체험의 풍경 연출’이 경복궁이외에 종묘와 사직단에도 펼쳐지고, 나아가 서울의 도로망이 체험 연출 원리에 따라 조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책은 종묘가 보현봉(1권 151쪽 사진), 사직단이 인왕산(1권 155쪽 사진)을 배경으로 3단계 풍경이 구체화 되었고, 이를 현장 사진과 항공사진, 옛 서울지도를 통해 살펴본다. 2권에서는 태종이 설계한 창덕궁이 북한산 보현봉에 닿아 있고, 창경궁이 무악산(안산)에 닿아 있으며, 광해군이 설계한 경희궁 역시 인왕산에 닿아 있음을 밝힌다(2권 74쪽 사진).

저자는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권과 2권에서 진짜 ‘자연 풍경’을 즐겼던 조선의 ‘정원’을 살핀다. 정원은 보통 권력자의 내밀한 휴식 장소여서 높은 담으로 가려 폐쇄적이며 아기자기한 인공미로 꾸미는데, 조선의 ‘정원’은 경복궁의 경회루와 향원정에서 보듯이 자연을 그대로 감상하게 한다. 경회루의 창틀 풍경은 북악산, 인왕산를 바로 끌어와 담고 있다.(1권 98쪽 사진) 이는 궁궐이 산 아래에 위치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2권에서 저자는 진짜 산골짜기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창덕궁 후원의 연못과 정자를 꼼꼼하게 살핀다.(2권 101-111쪽 사진) 나아가 북악산, 인왕산과 낙산, 남산 등 서울의 높은 산 아래 무수한 골짜기마다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던’ 누정이 풍부하게 자리했고, 명승지가 위치했음을 겸재 정선의 화첩(2권 202~213쪽 그림)과 『동국여지비고』의 기록(2권 217쪽, 224쪽 이미지)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다.

그럼, 우리 역사에서 언제부터 ‘하늘-산-궁궐’의 풍경이 정착되었을까? 이 문제는 앞으로 출간할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3권과 4권에서 고찰한다. 신라에서 불교가 도입되고도심 한복판에 있던 왕들의 무덤이 산으로 올라가면서 풍수가 탄생한다. 후삼국과 고려를 지나면서 도성과 궁궐이 산을 배경으로 조성되는 과정, 곧 풍수가 우리의 문화유전자로 정착되는 과정을 설계자이자 권력자인 역사 인물들을 환생시켜 인터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