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폭력연구 (박사전공>책소개)/4.인종주의

낙인찍힌 몸 (2019) -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동방박사님 2024. 10. 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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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선의 권력과 분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차별과 배제의 대서사
2019년 7월 초, 디즈니사에서 실사화 예정인 [인어공주]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인어공주 역에 흑인 배우인 할리 베일리를 섭외한 것에 대해 ‘빨간 머리에 하얀 피부’인 에리얼의 모습을 훼손하는 선택이라는 반대 여론이 생기면서 인종차별 문제로 대두됐던 것이다. 이에 대해 디즈니는 애초의 계획대로 확정하며 일단락됐으나, 21세기에 그러한 타국의 뉴스를 접하는 일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러나 어디 국외뿐일까. 일상적인 인종차별 및 혐오 발언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곳이 바로 이곳 아니던가. 일례로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대로 선정된, 한국인 최초 흑인 모델인 한현민 씨가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라고 고백한 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인종주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왜 충분한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은 사그라지지 않을까. 인종주의의 역사는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며 흘러왔던 것일까. 우리는 인종차별의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쉽지 않은 문제일수록 역사 속에 실마리가 있는 법. 『낙인찍힌 몸』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답을 풀어보자.

목차

들어가는 글

1. 인종에 갇힌 몸들
인종 개념의 기원과 형성
린네의 분류학
빙켈만의 미학
안면각과 두개측정에서 인종 사진까지

2. 검은 몸의 노예, 저항의 언어
누가 ‘흑인’인가?
노예무역, 노예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
노예제의 유산과 기억의 정치

3. 인종, 계급, 젠더가 교차하는 여성의 몸
사르키 바트만, 3중의 억압 아래서
메리 프린스, 여성 노예는 말할 수 있는가?
서저너 트루스, 흑인 여성의 여성성과 모성

4. 혐오스러운 몸에서 강인한 육체로
누가 ‘유대인’인가?
유대인의 몸 담론
파괴하기와 재생하기

5. 베일 안과 밖, 그리고 문화정치
테러의 세계화와 이슬람포비아
무슬림 ‘베일’ 논쟁과 이슬람포비아의 젠더화
무슬림의 ‘악마화’와 ‘인종화’

6. 한국에서 다양한 몸과 함께 살아가기
한국인, 외국인, 이주민
‘혼혈’에서 ‘다문화’로
이주노동자와 인종차별
다문화주의와 인종주의
나가는 글

저자 소개 

저 : 염운옥
마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1985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빠짐없이 수업을 듣는 모범생이었다. 1980년대의 대학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열기로 뜨거웠다. 캠퍼스에는 언제나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고, 학내 문제나 정치적 이슈로 수업을 거부하는 일도 잦았다. 강의실 밖에서 세상을 배우고 시대를 고민하던 때였다. 1987년 일련의 민주화운동을 경험하며 사회의식에 조금씩 눈뜨기 시...

출판사 리뷰

“당신의 코에서는 열정이 보이지 않아!”, “머리 크기로 짐작하건대, 똑똑하시겠군요.”
타자의 몸을 먹고 자라난 인종주의의 역사

가느다란 눈에 광대뼈, 큰 엉덩이에 두툼한 입술, 흰 피부에 커다란 눈, 곱슬머리에 기다란 코……. 이러한 표현들을 접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특정 인종을 상상한다. 그리고 판단한다. 왜 어떤 몸은 아름다움의 척도가 되지만, 어떤 몸은 비하 대상이 되는가? 나아가 미와 추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과 박해를 받는가? 저자 염운옥이 인종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몸을 둘러싼 규정과 편견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사논문 주제였던 우생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몸에 등급을 매겨 제한을 두는 발상에 분노했고, 이를 좀 더 깊게 보기 위해서는 그중 열등하다고 분류된 유색인종의 몸과 이데올로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여겼다. 10여 년 전 가졌던 의문이 소논문들과 몇 편의 글로 조금씩 풀려가는 동안 한국사회에서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는 변주를 거듭하며 거세졌고, 책 작업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묻자. 인종주의란 무엇인가. 인종주의는 타자의 ‘행위’가 아닌 피부색, 머리카락, 골격, 두개골, 혈액 등과 같은 생물학적인 속성에 근거해 인간을 규정짓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해 보이지 않는 것을 결정하며, 이 과정에서 몸에 대한 담론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 인종화의 속성이다. 이 역사의 시작은 16세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낙인찍힌 몸』은 혈통을 의미하던 인종이 어떤 연유로 인간 분류의 하위범주로 사용됐는지, 그리고 피부색으로 인간을 분류한 린네의 명명법과 흰 그리스 조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던 빙켈만의 미학이 어떻게 씨줄과 날줄이 되어 백인우월주의 신화와 인종화를 만들어냈는지 찬찬히 풀어낸다(1장). 여기서 문제는 몸 담론이 인종과 결합되고 합리화하는 방식에 있다. “작은 안면각, 가벼운 뇌, 돌출된 아래턱, 앞이마 중앙의 미발달”(77쪽)이 흑인의 특징을 넘어 범죄나 백치 같은 열등한 인간의 특성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유대교를 믿던 유대인들의 종교 집단이 ‘검은 머리에 매부리코’를 지닌 ‘탐욕스러운 인간들’로 인종화되는 경우 등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흥미로운 점은 인종화에 대한 시각 경험을 배반하기도 일이 종종 발견된다는 것이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제아무리 피부가 하얗더라도 ‘흑인’이지만 그들 중에는 ‘패싱’을 통해 백인 사회에 자연스레 진입하는 경우도 있었다(94~103쪽). 또한 ‘예쁜 아리아인 선발대회’에 유대인 해시 레빈슨 태프트가 1등으로 선발됐던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216~218쪽). 유대인은 여러 지역에서 여러 민족과 함께 살아왔기에 외모만으로 식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인 몸을 근거로 인종을 구분한다는 것의 비논리성을 보여주는 증거인 동시에 태어남과 동시에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했던 몸들에 해방과 자유를 찾아주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외모, 말투, 옷차림부터 종교, 문화적 지표까지
신인종주의를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만약 당신의 옆집에 무슬림 가족이 이사 온다면? 장시간 타야 할 비행기의 옆자리에 국적을 알아채기 쉽지 않은 유색인 남성이 앉았다면?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종업원들이 전부 조선족 여성이라면? 겉으로 내색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슬금슬금 피어나는 불편함 감정까지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낙인찍힌 몸』이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교양 있는’ 시민이기에 학창 시절에 배운 대로 인종차별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인종을 서열화하는 습속은 가벼운 계기만으로 그 민낯을 드러낼 수 있다.
여기서 들라캉파뉴가 말했던 인종주의는 “천 개의 머리가 달린 히드라”(6쪽)라는 말을 떠올리는 게 유용하다. 인종주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단일하게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낙인찍힌 몸』의 전반부가 생물학적인 특성에 따른 인종차별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주력했다면, 후반부에서는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히 건재하는 가운데 문화적인 지표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신인종주의’ 현상에 주목한다. 5장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이슬람국가의 테러와 베일이라는 제2의 피부를 지닌 무슬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인종차별을, 6장에서는 ‘다문화’ 한국에서 살아가는 혼혈인, 이주민, 난민을 다룬다. 외모, 말투, 옷차림에 문화적인 요인이 덧대져 위협 집단으로 고착화되는 데 우리 역시 동조자였음을 확인하는 일은 씁쓸하지만 유의미한 독서가 될 것이다.
자신이 언제나 인종차별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은 계급차별과 성차별에 대해 좀 더 예민한 감각을 갖겠다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저자가 3장에서 깊게 서술한, 흑인 여성에게 교차하는 인종, 계급, 젠더 차별은 여전히 잔존하기 때문이다. 2중, 3중의 억압 속에서 개개인의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고 문젯거리로만 남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령 2018년 초, 제주에 도착한 예멘난민을 두고 페미니즘의 한쪽에서 예멘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며 입국 반대를 외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국민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내건 보수 매체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저자의 바람대로 성급히 결론 내리기보다 꾸준히 공부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신인종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수동적인 노예’에서 ‘사슬 끊는 흑인’으로, ‘보여지는 대상’에서 ‘보는 주체’로
인종주의에 갇힌 인종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종주의’를 떠올리면 노예, 혐오, 차별, 배제, 말살, 흑백의 이분법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레 달라붙는다. 『낙인찍힌 몸』 역시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 괴물쇼에 올라야 했던 흑인 여성들, 홀로코스트 속으로 사라진 유대인, 이스라엘 국가에서 배제당한 에티오피아 유대인, 한국사회에서 부당한 처우에 놓인 이주민 등과 같이 인종주의의 슬픈 역사를 재현하는 데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게 폭력에 맞서 저항하며 주체적인 목소리를 냈던 장면들을 소개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노예 해방을 애원하는 수동적인 노예가 아닌 스스로 ‘사슬을 끊는 노예’(142쪽)를, 불쌍하고 연민을 자아내는 노예 여성 트루스가 아닌 꼿꼿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나(이미지)를 판다”(198쪽)고 말하는 트루스의 모습을, ‘거래’가 아닌 열렬한 연애를 거쳐 결혼했음을 당당하게 공개한 결혼이주여성의 편지 사연(317쪽)을 실었다. 독자들은 각 장마다 저자가 숨겨 놓은 희망의 몸짓을 만나게 될 것이다. 책에 실을 70여 장의 시각자료를 선정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화시키는 이미지를 일부러 배제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중요한 점은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인종주의에 갇힌 인종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2018년 10월 14일 세상을 떠난 네팔인 ‘미누’를 추모한다. 그는 1992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해 18년을 일하며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알리는 데도 앞장섰으나, 표적단속으로 잡혀 결국 강제출국을 당했다. 저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미누와 그가 활동했던 다국적밴드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을 떠올리며, 그가 “온정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단속과 추방,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도 거부했”(380쪽)다고 쓴다. 이는『낙인찍힌 몸』이 그의 말을 빌려 전하고 싶은 메시지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