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과학의 이해 (독서>책소개)/5.인류미래

인류,이주,생존

동방박사님 2022. 1. 3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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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퍼블리셔 위클리』선정, 2020년 ‘베스트 논픽션 도서’.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2020년 ‘베스트 과학기술 도서’.

우리는 이동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있다. 야생의 생명 역시 점점 따뜻해지는 바다와 바싹 말라버린 땅에서 대대적으로 도망치고 있다. 정치인과 미디어는 이런 이주 패턴의 유례없음을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질병과 갈등이 확산된다고 비난한다. 오히려 저자는 “이주는 환경 변화에 대한 아주 오래된 대응이자 숨쉬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생물학적 원칙”이라고 반박한다. 《인류, 이주, 생존》은 난민을 포함해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류의 이주’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시각을 모두 깨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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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말 인류의 이동은 새로운 변화의 기회

1장 오래전부터 시작된 대이동
2장 이주에 대한 반감
3장 이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원
4장 잡종 문화의 탄생
5장 자살 좀비 이주자
6장 맬서스의 흉측한 신성모독
7장 우리는 호모 미그라티오
8장 야생의 이방인
9장 정착보다 강한 이주 본능
10장 이주를 가로막는 장벽

에필로그 안전한 통로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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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소니아 샤 (Sonia Shah)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196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된 후 의사인 부모님이 계시는 미국의 북동부와 노동자 계층의 먼 친척이 살고 있는 인도의 뭄바이와 방갈로르 사이를 정기적으로 오가며, 사회 내의 그리고 사회 사이의 불평등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키워나갔다. 오하이오 오벌린 대학에서 저널리즘, 페미니스트 철학, 신경 과학을 전공한 그녀는 반핵 잡지 편집에 참여했으며, 보스턴 지역 신문에 인종, 페미니스...

역 : 성원

 
학부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지리학을 공부했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배우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덧 업이 되었다. 환경, 여성, 노동, 도시 등을 주제로 한 여러 학술서와 대중서를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 『자본의 17가지 모순』, 『백래시』, 『캘리번과 마녀』, 『혼자 살아가기』, 『저항주식회사』, 『쫓겨난 사람들』, 『칼을 든 여자』, 『염소가 된 인간』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우리는 이동한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국가 밖에서 살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홍수, 폭풍, 지진 같은 이유로 매년 2,600만 명이 이동했다.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폭력과 박해 때문에 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2015년에는 1,500만 명 이상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나라에서 탈출해야 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가장 많은 숫자다. 국경을 건넌 사람이 한 명일 때, 이주를 도모했으나 아직 자국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25명 이상이었다. 이 모든 흐름의 특징은 더 넓은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진다. 바로 농촌 인구가 세계의 도시들로 유입되는 것이다. 2030년이 되면 대도시로 흘러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가속화되어 대다수 인구가 도시 거주자인 상황이 처음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의 규모도 앞으로 수년간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2045년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사막지대가 더 넓어져 6천만 명이 거주지를 떠나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2100년이면 해수면 상승으로 1억 8천만 명이 추가로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 p.27

국가안보와 외교 정책 전문가들은 새로 움직이기 시작한 기후이주민이 유발하는 위협에 대한 보고서와 백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국제연합대학의 전문가들은 2020년이면 5천만 명이 움직이게 되리라고 추정했다. 환경안보분석가 노먼 마이어스Norman Myers는 2050년이면 2억 명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비정부기구인 크리스천에이드는 10억 명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의 화법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미래의 예외적인 위협이고, 마이어스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대한 위기 중 하나’였다. 사실 모든 이주 전문가가 보여주듯이 이주는 그와 정반대였다. 평범한 진행형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환경변화가 그 역학관계를 정하긴 했지만 그 방식이 예측 가능할 정도로 단순하지 않았다. 이주 전문가들은 이동과 기후 간의 직관에 반하는 복잡한 관계를 파악하려고 애써왔다. 그들은 수자원이 점점 줄어들면 갈등이 아니라 초국적인 협력이 일어나 오히려 이주가 줄어들 때도 있음을 발견했다.
--- p.54

네덜란드 해부학자 안톤 판 레이우엔훅Antonie van Leeuwenhoek은 연구 끝에 아프리카인의 피부색은 검은 비늘에서 유래한다고 믿었다. 의사인 피에르 바레르Pierre Barrere는 아프리카 노예들을 해부하고 난 뒤 그것은 몸 안에 있는 검은 담즙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이 담즙이 피부조직과 피부 전체를 어둡게 만든다고 추정했다. 이 중 그 어떤 것도 확정적이지 않았다. 파리의 한 해부학자는 연구를 위해 화학합성물로 아프리카 남성의 피부에 물집이 일어나게 만든 뒤 떼어냈다. 그는 별로 놀랍지 않게도 어두운 바깥층이 흰색의 안쪽 층 위에 덮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유럽인과 아프리카 출신 외래민족의 가장 두드러진 육체적 차이의 정도와 기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별로 큰 의미는 없었다. 유럽인들 내에서도 피부색은 서로 다양했다. 그는 태양이 이들의 피부를 태운 거라고 추측했다.
--- p.110

생물학적으로 구별되는 사람과의 성관계에 대한 과학계의 우려는 남북전쟁 이후 몇 년간 처음으로 폭증했다. 과학자들은 노예제도가 유럽계 미국인과 그들이 노예로 삼은 아프리카 출신 강제 이주자들의 관계를 저지할 수 있었지만(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노예제도가 폐지되면 아프리카 혈통과 유럽 혈통이 더 자유롭게 뒤섞일 거라며 우려를 표했다. 하버드대학교 생물학자 에드워드 머리 이스트Edward Murray East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아종 간의 이종교배는 “수백 세대에 걸친 자연선택에 따라 각 인종 안에서 부드럽게 작동하는 하나의 통일체로 확립된 정상적인 육체적?정신적 특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밝혔다. 인종 간의 성관계와 결혼을 금지하는 타 인종 간 출산 금지법이 1860년대에 통과되어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법은 러시아, 폴란드 등지에서 증기선을 타고 매일 도착하는 더 원시적인 아종들로부터 이 나라의 더 선진적인 아종들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리플리만 경고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하버드대학교 동물학자이자 콜드스프링하버 우생학 기록 사무소의 설립자 찰스 대븐포트, 그의 상무이사 해리 라플린Harry Laughlin, 그리고 손꼽히는 공중보건 전문가 같은 유수의 우생학자들이 여기에 동참했다.
--- pp.134-135

뉴델리에서 남쪽으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주로 가난한 무슬림 가정으로 이루어진 우타와라는 작은 마을은 1976년에 갑자기 전기 공급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경찰과 지역 정치인으로 구성된 소규모 파견단이 와서 설명하기 전까지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들은 전기를 일부러 중단했으며 지역 남성들이 정관절제술을 받겠다고 동의해야만 공급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우타와 사람들은 정관절제술을 받는 게 너무 꺼림칙해서 두 달 동안 전기 없이 버텼다. 결국 관계 당국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어느 11월 새벽 3시, 요란한 확성기 소리가 잠자던 마을 사람들을 깨웠다. 경찰은 마을이 가솔린을 장착한 무장 경비에게 포위되었다고 선언했다. 경찰은 말했다. “도망치려 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들을 쏘고 마을에 불을 지를 것이다. 애든 어른이든 남자는 조용히 나와라.” 겁을 집어먹은 남성과 소년들이 집에서 한 명 두 명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트럭과 버스에 오르자 그들을 실은 차량이 새벽하늘 아래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들은 소년들을 교도소에 밀어 넣었고, 성인 남성들은 야외 진료소로 보냈다. 그곳에서 의료진은 메스로 그들의 사타구니를 시술했다.
--- p.214

휴 딩글Hugh Dingle 같은 이주 전문가들은 이주가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방법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이주는 환경변화를 완충하는 방법이 더 많은 종보다는 환경변화에 노출된 자원에 의존하는 종 사이에서 더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얕은 웅덩이나 계절성 연못 같은 일시적 서식지에서 살아가는 절지동물은 숲과 바닷물이 드나드는 해수 소택지 같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종보다 이주 가능성이 더 크다. 강우량이 불안정한 장소에 살거나, 과일과 꽃 같은 분포가 고르지 않은 자원을 먹고 사는 종들은 고산 툰드라 지역이나 깊은 호수 같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장소에서 사는 종보다 이주 가능성이 더 크다. 후자처럼 안정된 장소에서는 곤충 종의 수에 비해 먹이가 넘쳐나서 날개 달린 곤충을 볼 수 없을 정도다. 숲의 가장자리나 덮개 부분에 서식하는 종은 내부에 서식하는 종보다 이주할 가능성이 크다. 계절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제한되는 곳에 사는 새들은 계절과 관계없이 숲 내부에서 곤충을 먹고 사는 새보다 이주 가능성이 큰 편이다. 추위와 비에 더 많이 노출되는 나무에서 휴식을 취하는 박쥐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동굴에서 휴식을 취하는 박쥐보다 이주를 더 많이 한다.
--- pp.305-306
 

출판사 리뷰

“전 세계 인구는 앞으로
일련의 기후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퍼블리셔 위클리》 선정, 2020년 ‘베스트 논픽션 도서’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2020년 ‘베스트 과학기술 도서’

“소니아 샤는 이민이 사회적 재앙을 불러온다는 생각에 대해
중대한 인도적 반론을 제시한다.”
《워싱턴포스트》

“소니아 샤는 우리 시대의 생태적, 정치적 격변을 대하는 새롭고
과감한 방법을 제시한다.”
찰스 만,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491』의 저자


2015년 들어 지중해와 유럽 남동부 지역 등을 중심으로 난민과 이주민이 대거 몰려들어 오자 유럽 사회는 ‘유럽 난민 사태’라 칭하면서 중대한 위협 요인으로 바라보았다.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과 이주민의 폭발적인 증가는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 발생한 군사 분쟁과 내전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난민 유입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이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팽팽히 대립 중이다.
오늘날 야생 동식물 역시 점점 따뜻해지는 바다와 메마른 땅을 피해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인류 또한 바다와 대륙을 넘어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인과 미디어는 이런 이주 때문에 질병과 갈등이 확산된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인류, 이주, 생존》의 저자인 소니아 샤는 “이주는 환경변화에 대한 아주 오래된 대응이자 숨쉬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생물학적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러 근거를 통해 인류의 이주가 소위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우려하는 ‘사회 파괴’ 만큼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인류, 이주, 생존》은 난민을 포함해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인류의 이주’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시각을 모두 깨뜨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류 이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서 다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공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생존 문제 앞에서 이주는 선택이 아닌 필수

인도계 미국 이민자 출신의 부모를 둔 소니아 샤는 뉴욕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으로 살았음에도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갈색 피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특이한 존재로 만들게 했다. 그리고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그는 두 아이가 거주 지역 주민들의 인종에 대한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보면서 이주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 부모님의 미국 이민과 자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지만 자신을 특이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과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그로 하여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이동·이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여러 문제들을 감수하면서 왜 우리는 다른 국가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소니아 샤는 ‘장피에르 가족’의 목숨을 건 험난한 이주 여정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에서 회계사 교육을 받은 장피에르는 아내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는 이민 행렬에 몸을 실었다. 콜롬비아 항구마을에서 다른 이주자 100명과 함께 출발한 장피에르 가족은 배로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국경지역인, 도로도 없는 다리엔 정글에 도착한다. 미로 같은 야생의 정글에서 낭떠러지를 피해 걸으며 때로 강도와 마약 밀수업자의 공격을 받았고 밤에는 뱀과 다른 동물을 피해 불편함 잠을 자야 했다. 식수가 부족해 소변을 받아 마시면서 버텨야 했다. 가까스로 정글을 벗어난 그들은 파나마에서 며칠간 텐트에서 지내면서 앞으로 이어질 멕시코를 지나 미국 국경을 건널 때까지 수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대비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 비정부기구 관리자로 일한 굴람 하크야도 탈레반 반란군을 피해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산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다시 이란으로 이동하면서 아내는 쇼크로, 한 아들은 심한 탈수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렇게 터키에 도착한 그들은 밀수업자를 통해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도착했고 다시 최종 목적지인 독일로 가기 위한 여정을 계획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장피에르 가족과 하크야 가족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살고자 떠나는 그들의 여정은 도처에 죽음을 복선처럼 깔고 있다. 장피에르 가족과 함께 이민 행렬에 오른 100명 중에서 다리엔 정글을 통과한 사람은 불과 15명 남짓. 목숨을 건 여정 끝에 목표한 곳에 도착해도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이주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가 여전히 그들을 극으로 내몰고 있다.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낳은 비과학적인 인식

이주해 온 타 인종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과거에서부터 비롯되어 왔다. 소위 ‘전문가’라 칭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근거를 내세워 타 인종의 배제를 객관화하려 했다. 생물 분류법으로 유명한 18세기 스웨덴 박물학자 칼 린네는 자신의 여행 후원자들을 의식해 ‘사미족’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험 많은 전문가 행세를 했으며, 이후 ‘사미족’을 비인간종인 괴물인(Homo Monstrosus)으로 분류했다.

유럽인을 지칭하는 호모 사피엔스유러파에우스Homo Sapiens Europaeus는 ‘희고, 진지하고, 강인하며’ 찰랑거리는 금발 모발에 파란 눈을 지녔다. 그들은 ‘적극적이고, 아주 영리하며, 창의적’이라고 린네는 자신의 분류법에 적었다. ‘꼭 맞는 옷을 입음. 법의 지배를 받음.’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이와는 다른 호모 사피엔스아시아티쿠스Homo Sapiens Asiaticus라는 아종이었다. ‘노랗고, 음침하고, 탐욕스럽다’고 그는 적었다. ‘검은 모발. 검은 눈. 사납고, 오만하고, 욕구를 따른다. 헐렁한 옷을 입음. 의견의 지배를 받음.’
아메리카 민족들은 호모 사피엔스아메리카누스Homo Sapiens Americanus라는 아종이었다. ‘빨갛고, 성미가 고약하고, 예속 상태’라고 린네는 설명했다. ‘모발이 검고, 곧으며, 굵다. 콧구멍이 넓다. 얼굴이 거칠고 수염이 거의 없다. 집요하고, 자족적이며, 자유롭다. 직접 자기 몸에 빨간 선을 칠한다. 관습의 지배를 받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체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아종은 호모 사피엔스아페르Homo Sapiens afer였다. 린네는 개인적으로 이 아종은 완전한 인간이 아닐 수 있고, 인간과 혈거인의 교배종에서 내려온 후손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의 분류법에는 ‘검고, 무표정하고, 게으르다’고 나와 있다. ‘모발이 꼬불꼬불하다. 피부가 부드럽다. 코가 평평하다. 입술이 두껍다. 여성에게 생식기 덮개가 있고, 가슴이 크다. 교활하고, 굼뜨고, 멍청하다. 몸에 기름을 바른다. 변덕의 지배를 받음.’
- 본문 중에서

린네는 인간 분류체계를 위와 같이 정립한다. 유럽중심적인 시각에서 ‘아메리카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을 주변인으로 설정한 이러한 분류는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나 해석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유럽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이 분류체계는 유럽 내에서 특히 아시아 지역 거주 인종과 아프리카 지역 거주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린네의 분류체계에서 아프리카 일부 지역 여성의 신체를 일컫는 ‘호텐토트 앞치마’, ‘시누스푸도리스sinus pudoris’ 또는 ‘생식기 덮개’라는 용어를 볼 수 있다. 이 ‘시누스푸도리스’는 린네의 분류법에서 서로 다른 대륙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생물학적으로 이질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고, 더 나아가 수 세기에 걸친 유럽 내 외국인 혐오와 인종폭력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주와 이주자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우생학’을 근거로 이민자들에 제한을 두었다. 1924년 이민법 혹은 존슨리드법(Johnson-Reed Act)에 따라 과학자들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우생학 위원회가 작성한 이 법의 엄격한 신규 할당제 조항에 따르면 매년 이주자 할당량의 80퍼센트 이상이 서유럽과 북유럽 출신자들에게 배당되었다. 비백인 이주자 대다수와 동유럽 및 남유럽 출신자들은 입국이 금지되었다. 이민자 입국의 기준이 된 이 이민법은 이주가 생물학적 피해를 초래한다고 확신한 매디슨 그랜트의 우생학 위원회가 작성한 것이었다. 인종과학을 연구한 메디슨 그랜트는 “이종 간 출산은 멸종을 향한 첫 단계”라고 주장할 만큼 다른 인종, 특히 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인종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샤피로는 “인간은 역동적인 유기체로서 모습을 드러내고, 따라서 어떤 환경에서는 단 한 세대 안에서 아주 큰 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기나긴 이주의 역사에서 그 형태가 정해지는 인간의 몸은 어떤 한 장소나 유형, 아종이나 인종에 경직된 방식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생식질이나 다른 무엇의 명령을 로봇처럼 따르지도 않는다.
1930년대 중반에 이르자 샤피로는 한 세대의 과학자들과 연방의 이민 정책, 수년에 걸친 그의 연구에 동력을 제공한 과학적 가설들을 모두 폐기했다. 다른 장소에서 온 사람들의 뒤섞임에는 아무런 위험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 반대였다. 샤피로의 전기작가는 이주는 변화와 혁신을 문화적 실천 속에 녹여냄으로써 “문명사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 본문 중에서

물론 모든 학자가 그랜트와 같은 견해를 보인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보듯 인류학자인 해리 샤피로는 인종에 대한 우생학적 판단과는 다른 시각을 보인다.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종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당시 미국 사회가 우려한 것처럼 인종 간 결합이 오히려 문화적 다양성과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문화적 특성을 살펴보면 유럽계를 비롯해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아메리카계 인종들이 하나의 문화권으로 취합되면서 각각의 인종적 다양성이 한데 어우러진 잡종문화다. 이는 샤피로가 주장한 것처럼 잡종성과 혼종성이 만들어낸 고유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특한 색깔의 문화다.

21세기를 관통해 나아가는 이 순간에도 비서구권 지역의 이민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팽배하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이 지역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당장이라도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고 혼란이 발생할 것처럼 이야기한다. 《인류, 이주, 생존》의 저자인 소니아 샤는 우리의 외국인 혐오가 ‘일종의 면역방어’로 진화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야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외국인 혐오’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그 대상의 본성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로 유입된 수많은 비서구권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계속되는 국가 분쟁과 내전, 그리고 심각한 기후변화 속에서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예고되는 거대한 이주 물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연구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