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이데올로기 연구 (독서>책소개)/5.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의 유물론 연구

동방박사님 2022. 2. 25.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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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르크스, 레닌, 그리고 발리바르
과거와 현대 마르크스주의를 잇는 단 하나의 고전

『역사유물론 연구』(Cinq etudes du materialisme historique)는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가 1965년 루이 알튀세르, 자크 랑시에르, 피에르 마슈레 등과 공동 작업으로 『‘자본’을 읽자』를 출간한 뒤에 당시의 주장을 보완하기 위해 십여 년간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 1974년에 출간한 논문선집이다. 출간 직후 이 책은 알튀세르로 대표되는 후기 마르크스주의의 대전환 기획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마르크스주의를 스탈린주의적 교조화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준, 점점 경직되어가던 마르크스주의를 더욱 생생한 사조로 부활시켜낸 “사유의 도구상자”(526쪽)였으며, 2010년대 지금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마르크스·엥겔스 그리고 레닌을 이어 역사유물론을 계승하는 단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는 책이다.

목차

추천사
『역사유물론 연구』 한국어판 서문
일러두기

1장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

1. 마르크스의 정치적 단계들
2. 마르크스의 이론
결론: 역사유물론

2장 『공산주의자 선언』의 정정

1.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관한 『공산주의자 선언』의 테제들
2. 파리코뮌의 교훈
3. 정정

3장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서설

서론
1.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잉여가치론
2. 계급적대의 첫 번째 측면: 프롤레타리아와 자본
3. 계급적대의 두 번째 측면: 자본과 부르주아지
4. “… 결론은 바로, 이 모든 빌어먹을 똥을 치워버릴 운동과 해결책으로서의 계급투쟁이야.”
부록: 레닌, 공산주의자 그리고 이주

4장 역사변증법에 관하여: 『‘자본’을 읽자』에 관한 몇 가지 비판적 소견

1. ‘물신숭배론’에 대하여
2. ‘최종심급에서의’ 결정과 ‘이행’에 관하여

5장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역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

1. 이론의 역사, 노동자운동의 역사: 불가능한 객관성
2.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가로서 마르크스와 레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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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에티엔 발리바르 (Etienne Balibar)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1942년 프랑스 아발롱에서 태어났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루이 알튀세르, 조르주 캉길렘, 자크 데리다 등에게서 사사했다. 파리 1대학과 파리 10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했으며, 파리 10대학에서 은퇴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특훈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파리 10대학 명예교수이자 미국 컬럼비아대학 프랑스어학과 방문교수이다. 20대에 이미 스승 루이...

역 : 배세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의 재구성: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 파리7대학 사회과학대학의 ‘사회학 및 정치철학’ 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같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정치철학 전공으로 미셸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책 속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제시와 분석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적인, 그리고 최종적인 수준에서는 정치적인 투쟁의 쟁점이었다. 이러한 투쟁은 마르크스 자신이 활동했던 시기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이 투쟁은 근대 노동자운동사의 두 번째 시기, 즉 대중적 사회주의 정당들과 제2인터내셔널이 형성되었던 시기에도 지속되었다. 세 번째 시기, 즉 제국주의의 발전과 소비에트 혁명의 시기에도 이 투쟁은 중단되지 않았으며, 우리가 속해 있는 현재인 네 번째 시기, 즉 세계적 차원에서 혁명적 투쟁이 일반화된, 하지만 동시에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분열의 시기이기도 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투쟁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원리는 이 투쟁 자체의 실천적 의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 p.45

“공산주의자 동맹”은 마르크스 덕분에 보편적 인간 형제애(‘모든 인간은 형제다’)라는 공허한 이상을 거부하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 구호는 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와 정치와의 단절을 나타내는 최초의 거대한 정식화이자 부르주아 사회 그 자체 내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자율성을 나타내는 최초의 정식화였다.
--- p.55

인터내셔널은 ‘공산주의적’이지 않았다. 인터내셔널이 『공산주의자 선언』의 역사적인 구호(‘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를 실천으로 옮기긴 했지만, 인터내셔널이 이 역사적인 구호에 명시적으로 준거했던 것은 아니었다. 국제노동자연합의 규약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의무, 진리, 도덕 그리고 정의에 관한 구절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구절들이 전체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 방식으로 이를 배치했다. 우리의 관점을 노동자운동이 현재 위치하고 있는 단계 내에서 수용 가능하게 만드는 그러한 형태로 우리의 관점을 제시하는 데에 성공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노동자운동이 내가 예전에 사용했던 언어의 속내[즉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가려져 있는, 마르크스가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다.”
--- p.73

“근대 사회 내에서의 계급의 존재를 발견한 이는 제가 아닙니다. 이 계급이 근대 사회 내에서 수행하는 투쟁을 발견한 이가 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요. (…) 이 지점에 제가 새롭게 기여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계급의 존재는 오직 생산 발전의 규정된 역사적 국면들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 2) 계급투쟁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필연적으로 나아간다는 점, 3) 이러한 독재 그 자체가 모든 계급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나타낼 뿐이라는 점을 증명한 것입니다.”
--- p.100

공산주의는 이전 역사의 계급투쟁 전체가 지녔던 필연성과 다른 필연성을 지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가 하나의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현실 역사의 결과라는 점을 최초로 보여주었던 『공산주의자 선언』 전체의 교훈이다. 그리고 이 역사는, 투쟁과 변형의 역사적 구조 내에서, 항상 ‘열려’ 있다. 이 역사가 하나의 이상적 종말목적으로 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역사는 사전에 이미 고정된 하나의 프로그램[강령]의 완수가 전혀 아니다.
--- p.148~149

마르크스의 텍스트는 계급들 중 하나인 프롤레타리아가 승리를 쟁취하며 이 승리를 통해 자신의 적을 제거한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로 계급투쟁이 중단된다는 논리를 핵심으로 취하는 상식적 의미의 ‘해결책’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 즉 ‘투쟁자가 없어서’ 중단되는 투쟁이라는 식의 해결책은 사실 전혀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해결책은 대칭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적들과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그리고 그 어떠한 투쟁에도 적용 가능한 것으로서의 ‘투쟁’에 대한 형식적 개념에만 준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역사변증법은 일반적 의미의 ‘투쟁이론’(혹은 모순론)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역사변증법은 물질적으로 규정된 특수한 투쟁이론이다. 그리고 이미 『공산주의자 선언』은 이 투쟁의 항들(즉 계급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독립적인 방식으로 출현하거나 소멸하는) 이 투쟁 바깥에 존재하는 인물들 혹은 주인공들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그 자체 투쟁의 효과, 다시 말해 사회적 생산의 적대적 조건의 효과라는 점(이는 『자본』에서 잉여가치론과 함께 발전된 하나의 분명한 개념이 된다)을 이미 보여주었다. 우리가 변형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적대의 조건, 즉 착취관계다.
--- p.159

마르크스주의가 경제이론의 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념은 자본가들이 자본축적을 관리하는 데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념만큼이나 부조리한 것이다.
--- p.209

그 어떠한 역사적 시기에서도 사회계급은 자신의 이름을 이마에 써놓고서 혹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통합된 ‘계급의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그 자체로서 제시되지는 않는다. 이 사회계급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 사회계급이 주어진 물질적 조건 내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작용하는 방식이며, 이 사회계급 사이에서 확립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서로에 대한 작용의 관계다.
--- p.281

계급투쟁은 결국 모든 현실적 분석의 주요 장애물로 기능하게 되었다. 점점 더 객관적인 것이 되어가는 유효한 인식을 위한 핵심 원리를 표상하는 대신, 계급투쟁은 헤겔처럼 말하자면 ‘모든 소가 까만 밤’에, 혹은 스피노자처럼 말하자면 ‘무지의 도피처’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 p.328
 

출판사 리뷰

발리바르는 1960년대 중반부터 알튀세르와 함께 후기 마르크르주의의 사유를 개진하며 본인들 작업의 적절성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자기만의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때부터 발리바르는 과거에 자신이 이뤄놓은 작업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때마침 1968년 혁명이 전 유럽을 뒤흔들었고, 이는 발리바르의 표현대로 “무대의 완전한 변화까지도 생산”(15쪽)했음을 뜻했다. 그리하여 그는 68혁명 전에 정초해놓은 관념 철학을 재해석함과 동시에, 이 관념들을 68혁명 이후 만들어진 새로운 전선들에 쓸모 있게끔 다시 날카롭게 벼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역사유물론 연구』다.

이 책의 한국어판은 1989년 이병천 교수(2018년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퇴임)가 자신의 연구팀과 함께 일본어 번역본을 갖고 중역하여 이해민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번역본에서는 5장의 전체(5장은 이 책의 결론이라고 평가받는다)와 3장의 부록이 번역되지 않았다. 이렇게 불완전한 번역서였음에도,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의 한국 마르크스주의에는 신선한 충격을 전해주었다. 진태원은 이 책을 가리켜 “철학이 사변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설명하는 강력한 무기이자, 현실적인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라고 평했다.

역사유물론을 체계적으로 풀어낸, 하나의 서사로서의 이론적 탐색

발리바르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특유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알튀세르가 던진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마르크스의 정치적 의도를 복원하기 위한 이 작업은 그 목적 이외에도 마르크스주의의 근본 명제들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해석하는 일로 바뀐다. 이는 발리바르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마르크스를 그 미라화로부터 그러니까 그 죽음으로부터 지켜내는 유일한 방식”(17쪽)이었다.

발리바르는 역사유물론을 해석하는 가장 첫 번째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하나의 역사로서 이해하는 일을 꼽았다. 1장 「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는 본래 사회과학 사전의 한 가지 항목 해설로서 집필된 텍스트로, 마르크스가 집필한 저작들과 그 사상들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연대기순으로 써내려간 글이다. 마르크스의 청년기부터 말년까지, 또 그 뒤 이어진 유럽 사회주의의 발전 과정과 소비에트 혁명, 더 나아가 발리바르가 이 글을 쓴 1960년대 후반의 현장을 두루 살폈다. 여기서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노동자운동의 조직화 형태들 (…)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노선과 직접적으로 관련”(48쪽)되는 문제를 천착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을 생성시키는 조건인 ‘잉여노동’의 탄생을 살펴야 하며, 결국 이는 마르크스의 주요 저작 『자본』을 전체적으로 해설해주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인류사의 여러 분기점들에 대한 해설과 함께 자본을 형성해낸 물질적 조건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밝히는 이 작업은, 필연적으로 자본이 자기 자신의 부정과 파괴로 귀결되는 과정을 도출해낸다.

2장 「『공산주의자 선언』의 정정」은 1871년 파리코뮌의 경험을 언급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마르크스는 파리코뮌 이후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필수적인 것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뿐 아니라 국가의 파괴와 해체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마르크스의 이 유명한 주장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논쟁적 주제로 그 맥을 이어간다. 1970년 초 프랑스 공산당은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여전히 당 강령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 그에 대한 철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고, 발리바르의 작업은 당연히 당시 공산당 내부의 이 같은 반발에 대한 역공세의 의미를 띤다. 다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발리바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금과옥조로 삼지 않고 그것을 국가 내부의 정치투쟁, 계급투쟁으로 대체하는 관념의 발전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텍스트는 마르크스 자신이 자신의 이전 관념을 정정하는 데에 언제나 융통성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 같은 ‘정정적 텍스트’는 마르크스의 뒤를 이어 레닌이 변증법을 고도로 개진해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레닌은 자신의 국가론을 펼치며 국가를 “대립물들의 통일체 혹은 서로 대립하는 원리들과 힘들 사이의 항구적 전투의 장소”(19쪽)라고 정의했다. 발리바르는, 비록 소비에트 연방이 이 같은 관념을 전혀 구체화해내지 못했을지언정, 그럼에도 우리는 이 추상적 혁명원리 속에서 혁명의 과정 전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마르크스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가지 통념들 사이에서 분명치 못한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는 점 또한 발리바르가 주목하는 바다. 마르크스는 어떤 때에는 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수단으로, 또 어떤 때에는 공산주의의 본질적 체제로 해석했다. 이 같은 모순에 대해 발리바르는 ‘대립물들의 통일’이라는 관념을 더욱 철저히 파고들며 해법을 찾고자 한다. 그는 알튀세르의 ‘인식론적 절단’, 즉 이데올로기적 명제들과 과학적 명제들 간의 구분이 본래적이며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재구축된다는 명제를 여기에 도입한다. 즉, 중요한 것은 어떤 맥락과 정세 속에서 그 명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며 그에 따라 관념 연구의 향방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불가능하지만 필연적이라는 명제

이론적 쟁투를 어렵게 하는 것은 마르크스 저작 자체의 불완전함 때문만이 아니라, 당대 현실 정치에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을 염두에 두지 못하는 좌파 포퓰리즘의 한계 탓이기도 하다. 발리바르는 이 책 전반에서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대항-포퓰리즘”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폐기하면서도 잉여가치 개념과의 관계 속에서,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단순한 잣대가 아니라 그보다 더욱 복잡한 방식으로 정치를 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것’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모순적 난제를 마지막까지 풀기 위해, 발리바르는 잉여가치에 대한 개념 연구에 돌입한다. 3장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서설」에서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를 사회학주의 혹은 경제주의라고 낙인 찍는 여러 개념적 도식화를 가감없이 비판한다. 우선 사회학주의라는 구획 짓기에 따라, 흔히 말하는 계급의식, 계급에 대한 소속 등이 개별적이며 독립적이라는 주장을 담은, ‘즉자적 계급’ ‘대자적 계급’ 류의 대표적 도식화에 의문을 던진다. 또 경제주의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경제학의 개념들이 차례차례 전개된다는 개념화의 통념을 벗어나고자 한다. 쉽게 말해 잉여가치에 대한 이론을 가치에 대한 하나의 이론 위에서 정초해서는 안 되며 그와 반대로 잉여가치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출발하여 가치란 무엇인지를 ‘역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착취 없이는 가치도 없다”라는 발리바르의 주장은 현대 주류 경제학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현대 경제학의 ‘상식’ 중 하나는 ‘가치가 스스로 증가하기 이전에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변증법적 논증과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투자’ 즉 어느 한 자본의 증가를 목표로 한 투자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동력 그 자체라고 밝힌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아래에서 우리는 노동의 지출이 언제나 잉여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에 지배되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에 따라 가치가 형성되고 교환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5장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역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에서 발리바르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을 해설하며, 서로 대립하는 원리들 간의 갈등이 서로 대립하는 방향에 의해 구성된 각각의 개념을 매순간 통과한다고 말한다. 즉 “인식이란 결국 하나의 투쟁”(22쪽)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의 굵직한 개념인 ‘노동’ ‘노동가치’ 등은 착취에 대한 저항의 주요 이론적 토대이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에 어떤 ‘초자연적 역량’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 이론을 영원불멸의 진리로 평가하지 않고 이 이론이 노동자운동과 맺는 실천적 관계를 통해 이를 평가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 운동과의 맥락을 강조했던 이는 바로 레닌이다. 이 책의 옮긴이 배세진은 5장이 이 책의 백미라고 말하며, 이는 발리바르가 오늘날에는 전혀 읽히지 않고 있거나 교조주의적인 방식으로만 읽히고 있는 레닌을 대상으로 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정치가 왜 끊임없이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진리‘효과’만을 생산하고 마는지”(526쪽)를 이 5장이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을 그치지 않음으로써 발리바르는 여든에 가까운 노년임에도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갈림길에서 여전히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중요한 나침반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다.

현존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가장 첫 번째 육성을 갈무리한,
마르크스의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고전


발리바르 그 자신조차도 이번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다른 한 명의 타자와 같은 나 자신”(13쪽)의 작업이라 칭했던, 원서 출간으로부터 무려 40여 년이 지난 이 책이 지금 2020년대가 코앞인 지금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을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유럽을 위시하여 전 세계 진보정치 세력은 ‘좌파-신자유주의’라는 깃발을 들고 ‘제3의 길’ 류의 통합의 길을 역설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맞닥뜨린 것은 다국적 금융자본에 의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고도로 복잡하며 착취적인 시스템이다. ‘정치의 새로운 실천’ 그리고 이를 위한 ‘종언의 정치’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깃발이 가리키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정치의 종언’이라는 비극적 묵시록을 또한 맞닥뜨리고 있다.

우리가 놓여 있는 이러한 새로운 체제 아래에서, 결국 ‘좌파’라는 허울뿐인 깃발 아래에서 정치세력화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면적인 이해에 머무를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발리바르가 알튀세르의 길을 따라감으로써 1990년대에 이미 도달했던 포스트-마르크스주의라는 난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과제 앞에 서 있다. 그 과제를 풀어가는 데서 『역사유물론 연구』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현존하는 최후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불리는 발리바르의 젊은 시절 가장 첫 번째 육성을 갈무리한, 마르크스의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고전이기 때문이다.
 

추천평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마르크스주의의 필연성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핵심인 정치경제학 비판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에 관한 가장 좋은 길잡이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눈 밝은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필연성이 어떻게 불가능성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한 해명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성만이 아니라 불가능성을 조건으로 하는 필연성이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조금 더 깊은 독서가 필요할 것이다.”
-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됨으로써 마르크스를 세련된 사상의 흐름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다면, 이제는 ‘마르크스와 더불어’ 더 극한까지 가보는 동시에 ‘마르크스를 위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사상적·실천적 임무가 무엇인지 천착해보는 작업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모든 사상적 모색에는 나선형적으로 회귀해 자기의 궤적을 성찰적·비판적으로 되돌아볼 정거장이 필요하다.”
-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