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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소문에 휘말려본 사람은 안다.
소문이란 사실을 따지는 법의 영역이 아니라,
관계를 살피는 정치의 영역이라는 것을.
소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개념을 뒤집은 ‘소문 분석학’의 최신작. 일본 추오中央대에서 미디어와 루머를 연구해온 저자가 정신분석학부터 역사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SNS시대를 맞은 소문의 새로운 양상과 그 대처 사례를 추가했다. 이와나미 신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코中共 신서 가운데 한 권으로, 학문적인 엄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선인 학살과 같은 역사부터 금융권 찌라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경쾌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럼으로써 ‘시민의 성숙함’이 요구된다는 빤한 결론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소문의 본질에 맞는 실질적인 대처 방안을 모색했다.
소문이란 사실을 따지는 법의 영역이 아니라,
관계를 살피는 정치의 영역이라는 것을.
소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개념을 뒤집은 ‘소문 분석학’의 최신작. 일본 추오中央대에서 미디어와 루머를 연구해온 저자가 정신분석학부터 역사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SNS시대를 맞은 소문의 새로운 양상과 그 대처 사례를 추가했다. 이와나미 신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코中共 신서 가운데 한 권으로, 학문적인 엄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선인 학살과 같은 역사부터 금융권 찌라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건들을 바탕으로 경쾌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럼으로써 ‘시민의 성숙함’이 요구된다는 빤한 결론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소문의 본질에 맞는 실질적인 대처 방안을 모색했다.
목차
들어가는 글 인간의 오래된 벗, 소문의 미래를 가늠하다
제1장 세상이 수상해지면 등장하는 수상한 이야기
1. 상상에서 현실로 변화한 소문
소문에 놀아나는 사람들 | 예언의 자기성취 |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재기 소동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폭동설 | 누구나 휩쓸릴 수 있는 그럴 듯한 이야기
퍼지는 소문, 확대되는 피해 | 21세기에도 반복되는 양치기 소년의 후회
2.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소문
확장되는 소문의 범위 | 중요하지 않은 사실 | 소문 검증, 흑색선전 | 유언비어, 가십, 풍평, 도시전설
3. 공포와 불안을 먹고 성장하는 소문
수상한 사회 분위기와 소문의 확산 | 중요함과 애매함의 곱, 소문의 공식 | 금융 불안과 예금 인출 소동 | 소문의 전달 루트 | 소문의 성립, 가까운 사람과 믿을 만한 근거 | 대중이 패닉을 일으킬 것이라는 신화 |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정상화의 편견 | 소문을 보는 관점을 바꾸다 | ‘우주전쟁’으로 벌어진 혼란 | 정보에 대한 비판력
제2장 진실과 거짓을 넘나드는 이야기
1. 그럴싸한 정보로 탈바꿈하는 소문
소문을 다루는 세 가지 고전 | 전달되며 정보가 붕괴되는 과정 | 왜곡되는 목격 증언 | 복원시키면서 편집되는 기억 | “맥아더는 일본인의 후손이다!” | 입소문 정보의 두 가지 관점 | 소문의 근거, 전문성과 신뢰성 | ‘그럴싸하게’ 덧붙여지는 근거들 | 불안과 해결책을 함께 제시하는 구조
2. 억눌러야 하는 불편한 ‘진실’이 된 소문
보도와 유언비어의 구별 | 유언비어로 표출된 여론 | 언론통제로 단속되는 소문 | 확대 해석된 소문은 불온한 언동 | 불안한 민심을 반영하는 소문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야기에 숨은 차별의식
3. 내 옆에서 함께 성장하는 소문
소문을 다루는 고전의 두 가지 문제점 | ‘발신자-수신자 도식’에 대한 비판 | 커뮤니케이션의 두 가지 측면 | 미디어의 차이에 따른 소문의 변화
제3장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낸 도시의 수상한 이야기
1. 도시의 상상력이 모인 소문
‘오뚝이’가 된 여대생 괴담 | 장르화된 도시전설의 인기
2.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간 소문
일본 전역을 떠돈 ‘입 찢어진 여자’ | 도라에몽과 사자에상의 마지막 모습 | 도시전설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형성 | 빅쿠리맨 초코와 코알라 마치의 인기 | 상품화되는 도시전설 | 학교괴담 전성시대 | ‘괴담 이야기꾼’의 등장 | 미디어에서 완성된 도시전설
3. 사실관계를 뛰어넘은 ‘신화’가 된 소문
변하는 디테일, 유지되는 모티브 | 디테일은 가까운 주변의 이야기로 | 반복되는 교훈적인 소문 | 세상이 나빠진다는 분위기의 확산 | 소문이나 도시전설을 일상과 구별하는 방법 | 신화에는 신화로, 소문의 해소
제4장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은밀한 이야기
1. 사람과 사람의 감정을 잇는 소문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소문의 욕구 | 은밀한 공유를 통한 유대감의 강화 |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감정의 공유
2. 누구나 부담 없이 꺼낼 수 있는 소문
막간을 이용한 화젯거리 | 가십의 기능, 정보, 집단규범, 엔터테인먼트 | 커뮤니티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십 | 사라진 가십, 고립되는 관계 |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야기
3. 미디어와 공생하는 도시전설
가볍고 즐거운 화젯거리, 도시전설 | ‘납득할만한’ 이야기의 확산 | ‘현대의 신화’로 공유되는 도시전설 | 새로운 문물과 문화가 퍼질 때마다 나타나는 이야기 | 낯선 문화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는 이야기 | 영화로 활용되는 도시전설 | 뉴스가 다루는 도시전설 | 당대의 화제를 반영하는 뉴스 | 뉴스가 확대시키는 소문 | ‘미디어가 숨기고 있다’는 소문의 기묘함
제5장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변화하는 이야기
1. 다양한 미디어로 진화하는 소문
소문의 속도를 높인 미디어 | 한 장의 전단지에서 시작된 소문 | 소문의 성립 자체에 관여하는 미디어 | 미디어의 소재가 전하는 메시지
2.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만난 소문
인터넷의 특징, 신체성의 결여 | 인터넷의 특징, 익명성 |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분류
3. 다채로운 인간관계로 뻗어나가는 소문
전화를 통한 심리적 이웃과의 대화 | 휴대폰을 통한 ‘선택적 인간관계’ 교류 | 휴대폰 주소록에 등록된 친구들 | 연락 가능한 친구 수의 변화 | 달라진 인간관계에서 확대되는 용건
제6장 우리를 매혹하는 인터넷의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1. 메일로 퍼지고 기록되는 소문
메일 이용의 확산 | 메일의 메시지, 비동기성 | 메일의 메시지, 기록성 | 메일로 확산되는 가벼운 소문 | 불행의 편지보다 행운의 순환 메일 | 선의로 보낸 순환 메일이 일으킨 소동 | 빠른 확산, 빠른 수습 | 다양한 미디어로 전파되는 오늘날의 소문 | 어디에든 남는 소통의 기록
2. 인터넷에서 온갖 소동을 퍼뜨리는 소문
소문의 온상, 익명의 소통 공간 | 근거가 있어야 퍼질 수 있다 | 비슷한 사람들과 보고 싶은 정보만 공유하는 교류 | 모으는 정보, 집단 분극화, 캐스케이드 현상 | 각각의 입장에서 파편화된 소문의 증식 | 정보에 대한 신뢰 요구와 인터넷의 공개성 | 인터넷을 움직이는 호혜성의 법칙 | 사라지지 않는 기록 | 저장되고 검색되는 게시물 | 반드시 남는 발신자의 단서 | SNS가 빚어내는 새로운 갈등과 소동 | 구체적인 맥락이 누락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 ‘보여주고 싶은 나’를 구축하는 공간 SNS | SNS에서 퍼지는 ‘좋은 이야기’ | ‘보여주고 싶은 나’,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
3. 소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각종 미디어의 이용 실태 | 여전히 강력한 대중 미디어의 힘 | 합리적인 행동의 예기치 못 한 결과, 풍평피해 | 신뢰감을 주지 못 하는 제도적 채널의 문제 | 풍평피해를 막기 위한 대항신화의 가능성 | 소문 대처에 필요한 덕목, 애매함에 대한 내성
마치는 글 우리에게는 여전히 ‘소문’이 필요하다
제1장 세상이 수상해지면 등장하는 수상한 이야기
1. 상상에서 현실로 변화한 소문
소문에 놀아나는 사람들 | 예언의 자기성취 |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재기 소동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폭동설 | 누구나 휩쓸릴 수 있는 그럴 듯한 이야기
퍼지는 소문, 확대되는 피해 | 21세기에도 반복되는 양치기 소년의 후회
2.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소문
확장되는 소문의 범위 | 중요하지 않은 사실 | 소문 검증, 흑색선전 | 유언비어, 가십, 풍평, 도시전설
3. 공포와 불안을 먹고 성장하는 소문
수상한 사회 분위기와 소문의 확산 | 중요함과 애매함의 곱, 소문의 공식 | 금융 불안과 예금 인출 소동 | 소문의 전달 루트 | 소문의 성립, 가까운 사람과 믿을 만한 근거 | 대중이 패닉을 일으킬 것이라는 신화 |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정상화의 편견 | 소문을 보는 관점을 바꾸다 | ‘우주전쟁’으로 벌어진 혼란 | 정보에 대한 비판력
제2장 진실과 거짓을 넘나드는 이야기
1. 그럴싸한 정보로 탈바꿈하는 소문
소문을 다루는 세 가지 고전 | 전달되며 정보가 붕괴되는 과정 | 왜곡되는 목격 증언 | 복원시키면서 편집되는 기억 | “맥아더는 일본인의 후손이다!” | 입소문 정보의 두 가지 관점 | 소문의 근거, 전문성과 신뢰성 | ‘그럴싸하게’ 덧붙여지는 근거들 | 불안과 해결책을 함께 제시하는 구조
2. 억눌러야 하는 불편한 ‘진실’이 된 소문
보도와 유언비어의 구별 | 유언비어로 표출된 여론 | 언론통제로 단속되는 소문 | 확대 해석된 소문은 불온한 언동 | 불안한 민심을 반영하는 소문 |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야기에 숨은 차별의식
3. 내 옆에서 함께 성장하는 소문
소문을 다루는 고전의 두 가지 문제점 | ‘발신자-수신자 도식’에 대한 비판 | 커뮤니케이션의 두 가지 측면 | 미디어의 차이에 따른 소문의 변화
제3장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낸 도시의 수상한 이야기
1. 도시의 상상력이 모인 소문
‘오뚝이’가 된 여대생 괴담 | 장르화된 도시전설의 인기
2.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간 소문
일본 전역을 떠돈 ‘입 찢어진 여자’ | 도라에몽과 사자에상의 마지막 모습 | 도시전설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형성 | 빅쿠리맨 초코와 코알라 마치의 인기 | 상품화되는 도시전설 | 학교괴담 전성시대 | ‘괴담 이야기꾼’의 등장 | 미디어에서 완성된 도시전설
3. 사실관계를 뛰어넘은 ‘신화’가 된 소문
변하는 디테일, 유지되는 모티브 | 디테일은 가까운 주변의 이야기로 | 반복되는 교훈적인 소문 | 세상이 나빠진다는 분위기의 확산 | 소문이나 도시전설을 일상과 구별하는 방법 | 신화에는 신화로, 소문의 해소
제4장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은밀한 이야기
1. 사람과 사람의 감정을 잇는 소문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소문의 욕구 | 은밀한 공유를 통한 유대감의 강화 |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감정의 공유
2. 누구나 부담 없이 꺼낼 수 있는 소문
막간을 이용한 화젯거리 | 가십의 기능, 정보, 집단규범, 엔터테인먼트 | 커뮤니티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십 | 사라진 가십, 고립되는 관계 |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야기
3. 미디어와 공생하는 도시전설
가볍고 즐거운 화젯거리, 도시전설 | ‘납득할만한’ 이야기의 확산 | ‘현대의 신화’로 공유되는 도시전설 | 새로운 문물과 문화가 퍼질 때마다 나타나는 이야기 | 낯선 문화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는 이야기 | 영화로 활용되는 도시전설 | 뉴스가 다루는 도시전설 | 당대의 화제를 반영하는 뉴스 | 뉴스가 확대시키는 소문 | ‘미디어가 숨기고 있다’는 소문의 기묘함
제5장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변화하는 이야기
1. 다양한 미디어로 진화하는 소문
소문의 속도를 높인 미디어 | 한 장의 전단지에서 시작된 소문 | 소문의 성립 자체에 관여하는 미디어 | 미디어의 소재가 전하는 메시지
2.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만난 소문
인터넷의 특징, 신체성의 결여 | 인터넷의 특징, 익명성 |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분류
3. 다채로운 인간관계로 뻗어나가는 소문
전화를 통한 심리적 이웃과의 대화 | 휴대폰을 통한 ‘선택적 인간관계’ 교류 | 휴대폰 주소록에 등록된 친구들 | 연락 가능한 친구 수의 변화 | 달라진 인간관계에서 확대되는 용건
제6장 우리를 매혹하는 인터넷의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
1. 메일로 퍼지고 기록되는 소문
메일 이용의 확산 | 메일의 메시지, 비동기성 | 메일의 메시지, 기록성 | 메일로 확산되는 가벼운 소문 | 불행의 편지보다 행운의 순환 메일 | 선의로 보낸 순환 메일이 일으킨 소동 | 빠른 확산, 빠른 수습 | 다양한 미디어로 전파되는 오늘날의 소문 | 어디에든 남는 소통의 기록
2. 인터넷에서 온갖 소동을 퍼뜨리는 소문
소문의 온상, 익명의 소통 공간 | 근거가 있어야 퍼질 수 있다 | 비슷한 사람들과 보고 싶은 정보만 공유하는 교류 | 모으는 정보, 집단 분극화, 캐스케이드 현상 | 각각의 입장에서 파편화된 소문의 증식 | 정보에 대한 신뢰 요구와 인터넷의 공개성 | 인터넷을 움직이는 호혜성의 법칙 | 사라지지 않는 기록 | 저장되고 검색되는 게시물 | 반드시 남는 발신자의 단서 | SNS가 빚어내는 새로운 갈등과 소동 | 구체적인 맥락이 누락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 ‘보여주고 싶은 나’를 구축하는 공간 SNS | SNS에서 퍼지는 ‘좋은 이야기’ | ‘보여주고 싶은 나’,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
3. 소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각종 미디어의 이용 실태 | 여전히 강력한 대중 미디어의 힘 | 합리적인 행동의 예기치 못 한 결과, 풍평피해 | 신뢰감을 주지 못 하는 제도적 채널의 문제 | 풍평피해를 막기 위한 대항신화의 가능성 | 소문 대처에 필요한 덕목, 애매함에 대한 내성
마치는 글 우리에게는 여전히 ‘소문’이 필요하다
책 속으로
소문이란 극히 일부의 속기 쉬운 사람에게만 확산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사실 여부를 자기 나름대로 확신한 것이지, 근거 없는 말을 그대로 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사실’로 여겼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전한 이야기가,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어 ‘소문’으로 규정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소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소문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바꾸는 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소문이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파생되는 정보’이자 ‘반드시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어떤 상황 설명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그럴싸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확산되는 것’이다. 때문에 체제 측에서는 ‘잠재적 여론’인 소문에 사람들의 의식이나 감정, 의견이 쏠리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이 같은 시선은 나아가 ‘익명으로 길거리에 쓴 낙서’에도 향해 있다.
분명히 아무나 괴담의 화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화자의 존재에 더해 이야기를 잘하는 아이의 말에 맞장구치며 청자로 참가하는 아이도 반드시 있다. … 중고생에게는 수학여행지에서 보내는 밤 시간이 괴담을 공유하는 중요한 상황이 된다. 괴담을 말하는 사람이나 괴담이 나오는 상황 자체에 주목하면,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괴담과 요즘 미디어에서 연출된 괴담 사이의 연결고리를 엿볼 수 있다.
풍평피해는 있지도 않은 것에 혹해 발생하는 것도, 차별 의식을 가진 사람이 불확실한 정보에 놀아나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 손 안에 있는 정보를 갖고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 생기는 현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풍평피해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는 게 중요하다. 이는 소문의 대책과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문자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확산시킨 사람의 대부분은 악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든 참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선의에서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똑같은 생각으로, 많은 이들이, 동시다발적인’ 행동에 나섬으로써 역효과를 초래했다. 대지진 이후 불확실한 거짓 정보가 도리어 신뢰를 받아 널리 확산된 경우 또한 많았다.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되니까’라는 핑계로 불확실한 정보를 확산시킨 게 진짜 필요한 정보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건 오래 전부터 반복해서 배워온 교훈이다. 그럼에도 정보가 통제된 상황을 맞으면 우리는 또 다시 소문을 반복한다.
기존의 소문 연구는 공식 발표나 미디어 등 제도적 채널의 대척점으로서 소문을 다뤘다. 하지만 다양한 미디어가 보급된 오늘날에는 정보 환경이 크게 달라져 소문의 전파 역시 크게 변화하고 있다. 소문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매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소문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심야 라디오나 잡지에서는 미디어, 혹은 얼굴을 맞대는 관계성과는 다른 ‘특별한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이는 편집자나 방송작가, 진행자가 독자와 청취자에게 응모를 권하고, 보내진 사연을 평가해 아예 이야기의 소재로 끌어올리는 일종의 무대였다. 엽서를 보내는 젊은이들에게 그 사연의 가치를 평가받는 건 공동체에 의한 승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시전설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 ‘있다면 무서운 이야기’ 등 하나의 소재로 창작되고 소비, 공유된 것이다.
소문은 사실관계를 뛰어넘은 ‘신화’, 또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소문을 없애기 위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신화성이나 이야기성 자체를 ‘약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문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통해 전파되고 확산된다. ‘아무나 얻지 못하는 정보’를 알려준 지인에게 감사함과 친밀감을 느끼며 호혜성의 법칙 역시 작동한다. 이렇듯 소문은 사람과의 관계성을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전화나 휴대폰은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만이 아니다. 전달해야 할 용건을 늘리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방법을 바꿔가며 사회 운영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소문과 전화, 휴대폰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이 점은 중요하다. 소문은 전화나 휴대폰이라는 도구에 의해 좀 더 짧은 시간 내에 광범위하게 퍼진다. 다만 구두로 전하는 것을 대신하기 위해서만 전화나 휴대폰이 사용되진 않는다. 전화나 휴대폰이 있으므로 그 이전과는 다른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그 속에서 소문이 전달되는 것이다. 휴대폰을 통해 연락 가능한 지인의 주소가 손 안에 대거 저장됨으로써 소문의 확산법도 달라졌다. 이 같은 특성에 보다 큰 영향을 받은 게 바로 ‘문자메시지를 통한 소문’이다.
일반적으로 ‘메일로 인해 소문이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빨리 확산되는 만큼 빨리 수습되기도 한다. 내용이 문장으로 남겨지는 메일의 경우 구전으로 확산되는 소문보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쉬워 소문이 쉽게 단명할 수도 있다.
하나의 소문이 메일, 인터넷으로 확산되고, 출력되어 찌라시 형태로 배포되거나 게시판에 부착된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은 구전으로 개요를 전하고 미디어도 다룬다. 현대적인 소문은 결코 구전만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하나의 미디어만으로도 확산되지 않는다. 각각의 경우에 맞춰 미디어를 활용하는 오늘날의 소문은 ‘미디어 믹스형’이라 말할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좋은 이야기’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정기적으로 퍼지는 건 인터넷이 넷로어의 저장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넷로어가 확산되었다가 또 한동안 잊힌다. 하지만 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록성이 뛰어나고 검색도 가능한 인터넷이라는 저장고에 보관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다른 기회에 그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재차 유포되기도 한다.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갖는다는 건 입을 다물고 애매함을 참는 게 아니라, 애매함을 피하기 위해 안이하게 결론을 내려버리는 태도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애매함을 견디면서 장기적으로 애매함을 줄이기 위해 각종 정보를 지속적으로 접할 필요가 있다. 애매한 상황을 애매한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애매함을 줄여가는 것, 즉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갖는 것은 풍평피해의 대책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쓰나미로 사라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봤다’로 대표되는, 이른바 ‘유령 출몰설’이 쓰나미 피해지에서 떠돈다는 이야기를 시부이 씨에게 들은 적이 있다. ‘유령을 봤다’ 해도 이는 단순한 괴담이 아니다. ‘유령이라도 좋으니 꼭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절절한 기대에서 나온 ‘일종의 희망 목격담’이다.
소문이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파생되는 정보’이자 ‘반드시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어떤 상황 설명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그럴싸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확산되는 것’이다. 때문에 체제 측에서는 ‘잠재적 여론’인 소문에 사람들의 의식이나 감정, 의견이 쏠리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이 같은 시선은 나아가 ‘익명으로 길거리에 쓴 낙서’에도 향해 있다.
분명히 아무나 괴담의 화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화자의 존재에 더해 이야기를 잘하는 아이의 말에 맞장구치며 청자로 참가하는 아이도 반드시 있다. … 중고생에게는 수학여행지에서 보내는 밤 시간이 괴담을 공유하는 중요한 상황이 된다. 괴담을 말하는 사람이나 괴담이 나오는 상황 자체에 주목하면,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괴담과 요즘 미디어에서 연출된 괴담 사이의 연결고리를 엿볼 수 있다.
풍평피해는 있지도 않은 것에 혹해 발생하는 것도, 차별 의식을 가진 사람이 불확실한 정보에 놀아나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 손 안에 있는 정보를 갖고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 생기는 현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풍평피해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는 게 중요하다. 이는 소문의 대책과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문자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확산시킨 사람의 대부분은 악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든 참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선의에서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똑같은 생각으로, 많은 이들이, 동시다발적인’ 행동에 나섬으로써 역효과를 초래했다. 대지진 이후 불확실한 거짓 정보가 도리어 신뢰를 받아 널리 확산된 경우 또한 많았다.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되니까’라는 핑계로 불확실한 정보를 확산시킨 게 진짜 필요한 정보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건 오래 전부터 반복해서 배워온 교훈이다. 그럼에도 정보가 통제된 상황을 맞으면 우리는 또 다시 소문을 반복한다.
기존의 소문 연구는 공식 발표나 미디어 등 제도적 채널의 대척점으로서 소문을 다뤘다. 하지만 다양한 미디어가 보급된 오늘날에는 정보 환경이 크게 달라져 소문의 전파 역시 크게 변화하고 있다. 소문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전하는 매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소문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심야 라디오나 잡지에서는 미디어, 혹은 얼굴을 맞대는 관계성과는 다른 ‘특별한 공동체’가 성립되었다. 이는 편집자나 방송작가, 진행자가 독자와 청취자에게 응모를 권하고, 보내진 사연을 평가해 아예 이야기의 소재로 끌어올리는 일종의 무대였다. 엽서를 보내는 젊은이들에게 그 사연의 가치를 평가받는 건 공동체에 의한 승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시전설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 ‘있다면 무서운 이야기’ 등 하나의 소재로 창작되고 소비, 공유된 것이다.
소문은 사실관계를 뛰어넘은 ‘신화’, 또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소문을 없애기 위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신화성이나 이야기성 자체를 ‘약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문은 기존의 인간관계를 통해 전파되고 확산된다. ‘아무나 얻지 못하는 정보’를 알려준 지인에게 감사함과 친밀감을 느끼며 호혜성의 법칙 역시 작동한다. 이렇듯 소문은 사람과의 관계성을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전화나 휴대폰은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만이 아니다. 전달해야 할 용건을 늘리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방법을 바꿔가며 사회 운영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소문과 전화, 휴대폰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이 점은 중요하다. 소문은 전화나 휴대폰이라는 도구에 의해 좀 더 짧은 시간 내에 광범위하게 퍼진다. 다만 구두로 전하는 것을 대신하기 위해서만 전화나 휴대폰이 사용되진 않는다. 전화나 휴대폰이 있으므로 그 이전과는 다른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그 속에서 소문이 전달되는 것이다. 휴대폰을 통해 연락 가능한 지인의 주소가 손 안에 대거 저장됨으로써 소문의 확산법도 달라졌다. 이 같은 특성에 보다 큰 영향을 받은 게 바로 ‘문자메시지를 통한 소문’이다.
일반적으로 ‘메일로 인해 소문이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빨리 확산되는 만큼 빨리 수습되기도 한다. 내용이 문장으로 남겨지는 메일의 경우 구전으로 확산되는 소문보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쉬워 소문이 쉽게 단명할 수도 있다.
하나의 소문이 메일, 인터넷으로 확산되고, 출력되어 찌라시 형태로 배포되거나 게시판에 부착된다. 이를 발견한 사람들은 구전으로 개요를 전하고 미디어도 다룬다. 현대적인 소문은 결코 구전만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하나의 미디어만으로도 확산되지 않는다. 각각의 경우에 맞춰 미디어를 활용하는 오늘날의 소문은 ‘미디어 믹스형’이라 말할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좋은 이야기’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 정기적으로 퍼지는 건 인터넷이 넷로어의 저장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넷로어가 확산되었다가 또 한동안 잊힌다. 하지만 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록성이 뛰어나고 검색도 가능한 인터넷이라는 저장고에 보관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다른 기회에 그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재차 유포되기도 한다.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갖는다는 건 입을 다물고 애매함을 참는 게 아니라, 애매함을 피하기 위해 안이하게 결론을 내려버리는 태도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애매함을 견디면서 장기적으로 애매함을 줄이기 위해 각종 정보를 지속적으로 접할 필요가 있다. 애매한 상황을 애매한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애매함을 줄여가는 것, 즉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갖는 것은 풍평피해의 대책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쓰나미로 사라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봤다’로 대표되는, 이른바 ‘유령 출몰설’이 쓰나미 피해지에서 떠돈다는 이야기를 시부이 씨에게 들은 적이 있다. ‘유령을 봤다’ 해도 이는 단순한 괴담이 아니다. ‘유령이라도 좋으니 꼭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절절한 기대에서 나온 ‘일종의 희망 목격담’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 마법의 한 마디
“너한테만 알려주는 이야기인 말이야.”
이 책의 제목인 ‘소문의 시대’는 무슨 뜻인가요?
“총선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려고 터뜨린 정부의 음모다!”
“카톡 메시지 봤어? 지카 바이러스가 사실은 우리나라 전역에 퍼졌대.”
“매일 낮 점심시간 둘이 만나 쿵덕쿵 그 짓거리,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거기 줄 서서 먹는 곳이라는데 한 번 가야지?”
인터넷 뉴스 댓글란부터 회사 ‘탕비실 뒷담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상한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를 단 하나의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이게 아닐까요? “수근수근 (또는 술렁술렁)”
게다가 인터넷과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소문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우려도 많지요. 이렇게 범람하는 소문들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피로감입니다. 때로는 그 소문의 당사자가 바로 나 자신이 되기도 합니다. 소문이 없는 세상으로 대피하고 싶다! 이런 생각 또한 한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언어가 탄생한 이래 소문은 인간과 항상 함께였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소문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지요. 당장 한국 역사에서 삼국시대의 몇 가지 사례만 볼까요? 신라 김유신 장군이 연에 불을 붙여 쏘아 올린 것도 소문을 의식해서이고 백제 무왕은 서동요를 퍼뜨려 소문을 조작함으로써 선화공주와 결혼까지 했지요.
영화 〈동방불패〉에서 임아행이 영호충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인간이 곧 강호인데 어떻게 강호를 떠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있으면 소통이 생기고, 소통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소문이 생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인간人間’ 의 뜻풀이대로 사람은 결코 소문에서 벗어날 수 없지요.
이 책은 이러한 인류의 ‘오랜 벗’ 소문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고자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소문의 본질을 꿰뚫고, 우리에게 소문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짚어보고자 했지요.
그렇다면 이 책에서 얘기하는 소문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요?
“지금 신문 보도는 결론을 내려놓고 짜 맞추는 퍼즐 같은 거야. 언론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언론을 믿지 마. 차라리 ??를 믿어.”
“그 연예인이 라디오에서 그런 말실수를 했다고 하는데 들은 사람은 많아도 증거는 없어. 하지만 정말 그런 방송사고가 있었는지가 뭐가 중요해? 그럴 만하니까 사람들이 의심하는 거지.”
《소문의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소문은 사회 기능을 마비시키는 예외적인 괴담이 아니라 인류 역사 이래 사회를 유지시켜온 근간이며, 결코 없앨 수도 없고 없어져서도 안 되는 가치입니다.
혹시 병원에 입원해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예를 들어 한 병실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왜 환자들은 오랫동안 전문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은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에 대해서는 의심하면서 함께 투병하는 처지일 뿐인 주변 사람이 전하는 카더라 식의 민간요법에는 솔깃해 할까요?
그동안 소문은 1) 공식 미디어 채널의 바깥에서 2) 정보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며 3) 입소문의 형태로 전파된다는 식으로 정의되었다. 따라서 소문이 전달하는 정보가 사실관계에서 얼마나 어긋나는지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소문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망라해 충실히 소개하면서도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해 오늘날 소문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강했습니다. 말이 조금 복잡할까요? 그러면 ‘소문에 대한 최신작’ 정도로 요약하지요. 이 책에서 저자가 밝히는 소문이란 1)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2) 정보가 아닌 ‘이야기’로 소비되고 3) 정보의 권위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이와의 관계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문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 아닙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소문’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가장 많이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진실’입니다. 우리는 소문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고 거짓된 소문에 휩쓸리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소문은 진실을 제대로 밝힌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중은 우리의 편견만큼 어리석지 않고 소문의 내용을 모두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소문을 듣고 또 전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소문의 생명력이란 진실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그럴 듯한 서사와 내적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이 100% 믿지도 않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일까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소문이란 우리 일상에 밀착해 있는 소통 수단이자 가장 오래된 미디어입니다. 소문은 관계를 바탕으로 확산되는 정보이며, 따라서 소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실’이 아니라 소문 사이에 놓인 사람과 사람, 즉 ‘관계’에 대한 핵심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병실에서 회자되는 민간요법에 대한 풍경도 이와 같이 설명될 수 있겠지요.
네, 우리가 소문에 마냥 휘둘리지만은 않는다는 건 알겠어요. 그렇다고 ‘소문을 즐기고 있다’는 주장은 또 그것대로 너무 앞선 주장이지 않을까요?
“여기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말이야. 모른 척하고 알고만 있어.”
소문으로 인한 사회적인 손실에 대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당장 헛소문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젊은 연예인들의 가슴 아픈 일들만 봐도 그렇지요. 그러나 이러한 비극들로 인해 소문의 정체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 받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소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야 대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소문을 소비하는 방식을 짚어보지요. ‘연예인 찌라시’나 동료에 대한 카더라 식의 이야기를 전하고 동시에 듣는 우리는 얼마나 그 소문을 신뢰할까요? 그리고 왜 소문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소문을 되풀이해서 공유할까요
소문을 나누면서 자주 하고 또 듣는 이야기는 “여기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입니다. 은밀한 정보를 독점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우정을 확인하는 소통, 그것이 소문의 정체지요. 따라서 소문을 다루는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소문이 일방적으로 퍼지는 형태라고 보지만, 이건 우리들을 너무 어리석다고 얕보는 것이지요. 소문이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러한 소통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요구됩니다. 바로 ‘공공성’에 대한 합의입니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선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문은 공통된 문제와 맞닥뜨린 개인들끼리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정보를 주고받거나, 또는 사교적인 이유에서 가벼운 화제를 나누는 형태로 소비됩니다. 관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인터넷과 같은 익명의 공간일지라도 소문을 전달받은 그 자리에서 이를 부정하기란 쉽지 않지요.
따라서 우리는 소문에 대해 사회적인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경계하지만 결코 마냥 휘둘리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적당히 걸러 듣는 무책임한 소통으로 자주 활용하지 않나요?
1938년 10월 30일 수민만 명의 미국인들이 CBS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을 실제 상황으로 착각하고 패닉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재연방송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소문 수용에 대한 비판력도 주목받았지만, 후속 연구에 따르면 그 실상은 새로운 미디어인 라디오를 견제하기 위한 신문사들의 의도된 오보였습니다. 당시 라디오 드라마를 착각한 사람들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사건만큼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헛소문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지 않습니다. 소문을 걸러 들을 줄도 알고요. 오히려 소문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문이란 어리석은 대중에 의해 확산되지 않으며, 어떤 사회가 소문에 휘둘린다는 건 휘둘릴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문에 대한 부작용은 바로 이 지점, 막연한 선의를 바탕으로 하는 ‘느슨한 합의’와 반신반의한 채 가볍게 이용하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보’가 공유되는 데에서,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 합리적으로 취사선택해 해석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책에서는 소문의 정체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2010년대 소문의 특징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사회적 합의’에 따라 성립되는 소문이란 대개 ‘교훈적’이고 ‘수상한 사회’에 대한 경고를 바탕으로 삼습니다. 1970년대 일본 정부가 나서서 진화했을 정도로 금융계를 흔들었던 도요카와 신용금고 예금 인출 소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신용금고 취업이 예정된 여고생들의 진로와 사회를 걱정하는 소소한 수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음모론이나 ‘연예인 찌라시’를 한 번 들여다볼까요? 그 수상한 이야기들이 도달하는 결론은 ‘가슴 큰 금발 미녀들의 방종한 성생활’을 경고하는 구닥다리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도덕률과 매우 흡사하지요!
둘째. 따라서 소문을 퍼뜨리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한 가지는 공익을 위한 ‘경고’를 통해 적절한 강도의 불안감을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강력한 공포 분위기 조성은 심리적 반발만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이러한 위험에 쉽게 대처할 수 있는 해결책과 교훈을 함께 제공하는 것입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유해물질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는 괴소문과 함께 마스크만 준비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해결책이 함께 제시된 사례부터 ‘빨간 마스크’가 아이들을 노리며 도시를 배회하지만 ‘포마드’를 세 번 외치면 괜찮다는 도시전설까지 모든 ‘성공한 소문’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특성입니다. 훗날 괴소문을 퍼뜨려 여론을 조종하려는 분들께서는 참고해 주세요.
셋째. 잠복성입니다. SNS시대의 소문은 지금까지의 소문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입니다. 인터넷의 특성은 익명성과 기록성입니다. 익명성은 사회의 일반적인 속성 아래에서는 불가능했던 평등한 소통이 가능해짐을 의미합니다. 누가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말했는지가, 권위보다는 얼마나 그럴듯한지가 중요해진 세상이 된 거죠. 이러한 인터넷에서의 소통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습니다. 괜히 “판사님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 했습니다!”라는 절규가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이 기록은 인터넷을 떠돌면서 사람들에게 읽히는 한 내내 현재진행형으로 소비됩니다. 제가 10년 전 철없을 때 붙었던 키보드 파이팅이 뜬금없이 지금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는 거죠..
이러한 특성들이 겹쳐지면서 SNS시대 소문은 진정되었음에도 언제고 다시 터질 수 있는 불발탄과 같은 성격으로 변화했습니다. 일본에는 ‘소문은 길어야 75일’이라는 속담이 있다는데 지금 시대에는 적용되지 못 할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역사학자 마크 포스터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인터넷상의 소통은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문맥이 사라지기 쉽고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지요.
넷째. 극단성입니다. SNS는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끌어내는 풀pull형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공각기동대〉에서 쿠사나기 소좌께선 인터넷이 방대하다고 했지만 직장 일만 너무 열심히 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고요. 인터넷은 좁습니다. 비슷한 사람들과 보고 싶은 정보만 공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비슷한 이야기만 주고받는다는 건 여론이 쏠림현상으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합니다. 미국의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이 민주주의 기반을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으로 인터넷을 꼽은 까닭 또한 여기에 있지요.
소문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인 올포트와 포스트맨은 소문에는 평균화, 강조, 동화라는 세 가지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단순해지고 남은 부분은 극적으로 과장되며 전하는 이들의 바람이 조금씩 반영되면서 아주 조금씩만 왜곡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처음의 방향에서 크게 어긋나게 됩니다. 여기에 인터넷 특유의 쏠림 현상이 결합되면 소문이나 여론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될 수밖에 없겠지요.
소문은 위험하지 않다고 했지만 말씀을 들어보니 충분히 위험해 보이네요. 그럼 만약 우리가 소문에 휘말렸디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런 걸 여기서 다 밝히면 독자 여러분께서 책을 사주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희는 결정적인 순간에 끊고 “커쥬 어 마이걸” 하는 비겁한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첫째. 소문에 휘말릴 경우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에만 치중해서는 안 됩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밝힘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괴소문을 진화했던 상황은 오바마라는 권위가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했던 예외적인 케이스입니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니까요! 그보다는 소문에 잠재된 막연한 선의와 교훈에 대한 경계가 필요합니다. 소문이란 사실을 뛰어넘는 일종의 ‘신화’입니다. 소문을 다룰 때 흔한 착각이 ‘거짓이라도 도움만 된다면’지요.
‘하버드대 도서관 새벽 4시’ 사진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이와 관련된 도서도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버드대 출신인 젊은 정당인은 한 방송에서 “하버드대학의 도서관은 밤 11시면 문을 닫는다”고 밝혔습니다. 하버드대 측에서도 실제 자신들의 모습과 다르다면서 공식적으로 부인했지요. 하지만 ‘하버드대 새벽 4시’ 사진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등지에서 크게 유행했던 데 비해 정작 하버드대의 공식 해명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설령 그것을 들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반박하지요. “나도 그 이야기를 100% 믿은 게 아니야. 하지만 공부 열심히 하자는 좋은 이야기에 꼭 그렇게 초를 쳐야겠어? 진실이 그렇게 중요해?”
둘째. 소문으로 결집된 ‘사회적 합의’ 안에 숨어 있는 최대 다수의 편견에 주의해야 합니다. 일본 관동대지진 이후 자행된 조선인 학살사건을 살펴보지요. 지진이 발생한 9월 1일 저녁부터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우유나 신문 배달부들이 편의를 위해 집마다 표시해둔 기호 등은 조선인들의 암호로 받아들여졌지요. 이전부터 일본에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존재했지만 그것이 인종 말살이라는 참혹한 사건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악의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재난 상황에서 소수 이방인에 대한 다수의 불안감이 폭발력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지요. 집마다 표시된 기호는 우리의 ‘초인종 괴담’과도 비슷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흉흉한 소문이 인터넷 등지를 떠돌기도 하는 지금, 소문 안의 ‘합의’에 주의하지 않으면 관동대지진 때와는 반대로 우리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셋째. 소문을 정보의 붕괴 과정이 아니라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발생하는 움직임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소문은 어떤 사실을 통제할수록 기승을 부립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패닉 신화라는 말이 일본에서 유행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는 시민들의 패닉을 우려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변명했지요. 그러나 사회학자 히로이 유의 ‘재해 시 인간행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사상 위기 상황을 맞은 군중들에게서는 패닉이 드물게 벌어졌습니다. 반대로 패닉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해 정보를 통제하고 위험을 은폐했을 때, 이른바 공적인 권위가 부정되면서 음모론이 횡행하고 큰 혼란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넷째. 인터넷에 자신과 관련된 헛소문이 퍼진 다음에는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소문에는 ‘예언의 자기성취’적인 성격이 있어 결과적으로는 사실로 굳어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일본의 방송인 스마일리 키쿠치는 인터넷에 퍼진 자신에 대한 괴소문을 방치했다가 10년간을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잊힐 만하면, 또 진화되었다고 정리할 만하면 인터넷에서 되살아나는 괴소문으로 큰 고통을 받은 끝에 관련인들 모두의 인터넷 증거들을 수집해 고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퍼지는 소문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소문의 사용자들에게 이러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인터넷의 특성’에 대해 경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째. 사실 여부를 무시하는 소문의 특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신화에 대항할 수 있는 거대한 권위를 동원하거나 또는 대항 신화로 맞섬으로써 소문이 가진 힘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1969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여고생들을 중심으로 ‘시내 중심가 옷가게 탈의실에 들어간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괴소문이 퍼졌습니다. 이른바 오를레앙 괴담입니다. 이 도시괴담은 1980년대 일본에 상륙해 '오뚝이 괴담'으로 변화했고 곧이어 한국으로 전해졌습니다. 오뚝이 괴담은 '해외여행 갔다가 실종된 여대생을 찾았더니 팔다리가 잘린 인간 오뚝이가 되어 서커스단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카더라'는 내용입니다.
오를레앙 괴담에서 유괴 현장으로 지목된 부티크 여섯 곳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소문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내용 또한 점점 과장되었지요.
소문의 배경에는 1960년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는 현상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공간이 바로 부티크였습니다. 여기에 젊은 여성들이 드나드는 곳의 탈의실이라는 은밀한 장소가 주는 선정성과 중세 이래로 전해지던 민담이 결합된 것, 그것이 오를레앙 괴담의 정체였습니다.
오를레앙 괴담에 내재된 정서는 동아시아식으로 변형된 오뚝이 괴담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일본에서 1980년대는 경제 호황으로 여대생들의 해외여행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시기였습니다. 이른바 신인류가 등장하고 트렌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오늘밤 너와 즐기고 싶어"라고 말하던 때이기도 했지요.
소문은 원만한 인간관계와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한다는 선의를 바탕으로 합니다. 따라서 소문의 동력인 선의가 도전받을 만한 상황을 만드는 것 또한 소문을 진압하는 한 가지 요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섯째. 어떤 사안에 대해 명쾌하게 흑과 백을 가르고 위험과 해결책이 동시에 나오는 이야기라면 소문으로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의 시시비비가 그렇게 선명하게 딱 나눠질 수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시나리오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고 흑과 백이 혼재된 잿빛에 가깝지요. 우리가 보다 성숙된 자세로 소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런 잿빛이 가진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음모론과 도시괴담 사이에서 소문을 구출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사례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행방불명된 아이들이 유령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소문을 단순한 도시전설이 아니라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에서 비롯된 일종의 희망 목격담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소문에는 정보로서의 사실성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처를 보듬어주는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특성이 잘 간직되어 있습니다.
소문은 사회의 어떤 좌절된 민심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문을 단순히 혼란을 초래하는 괴담으로만 배척하지만 말고, 우리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인간관계의 소도구로 파악하고 보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너한테만 알려주는 이야기인 말이야.”
이 책의 제목인 ‘소문의 시대’는 무슨 뜻인가요?
“총선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려고 터뜨린 정부의 음모다!”
“카톡 메시지 봤어? 지카 바이러스가 사실은 우리나라 전역에 퍼졌대.”
“매일 낮 점심시간 둘이 만나 쿵덕쿵 그 짓거리,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거기 줄 서서 먹는 곳이라는데 한 번 가야지?”
인터넷 뉴스 댓글란부터 회사 ‘탕비실 뒷담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상한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를 단 하나의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이게 아닐까요? “수근수근 (또는 술렁술렁)”
게다가 인터넷과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소문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우려도 많지요. 이렇게 범람하는 소문들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피로감입니다. 때로는 그 소문의 당사자가 바로 나 자신이 되기도 합니다. 소문이 없는 세상으로 대피하고 싶다! 이런 생각 또한 한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언어가 탄생한 이래 소문은 인간과 항상 함께였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소문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지요. 당장 한국 역사에서 삼국시대의 몇 가지 사례만 볼까요? 신라 김유신 장군이 연에 불을 붙여 쏘아 올린 것도 소문을 의식해서이고 백제 무왕은 서동요를 퍼뜨려 소문을 조작함으로써 선화공주와 결혼까지 했지요.
영화 〈동방불패〉에서 임아행이 영호충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인간이 곧 강호인데 어떻게 강호를 떠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있으면 소통이 생기고, 소통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소문이 생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인간人間’ 의 뜻풀이대로 사람은 결코 소문에서 벗어날 수 없지요.
이 책은 이러한 인류의 ‘오랜 벗’ 소문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고자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소문의 본질을 꿰뚫고, 우리에게 소문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짚어보고자 했지요.
그렇다면 이 책에서 얘기하는 소문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요?
“지금 신문 보도는 결론을 내려놓고 짜 맞추는 퍼즐 같은 거야. 언론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언론을 믿지 마. 차라리 ??를 믿어.”
“그 연예인이 라디오에서 그런 말실수를 했다고 하는데 들은 사람은 많아도 증거는 없어. 하지만 정말 그런 방송사고가 있었는지가 뭐가 중요해? 그럴 만하니까 사람들이 의심하는 거지.”
《소문의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소문은 사회 기능을 마비시키는 예외적인 괴담이 아니라 인류 역사 이래 사회를 유지시켜온 근간이며, 결코 없앨 수도 없고 없어져서도 안 되는 가치입니다.
혹시 병원에 입원해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예를 들어 한 병실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왜 환자들은 오랫동안 전문 분야에서 경험과 지식을 쌓은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에 대해서는 의심하면서 함께 투병하는 처지일 뿐인 주변 사람이 전하는 카더라 식의 민간요법에는 솔깃해 할까요?
그동안 소문은 1) 공식 미디어 채널의 바깥에서 2) 정보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며 3) 입소문의 형태로 전파된다는 식으로 정의되었다. 따라서 소문이 전달하는 정보가 사실관계에서 얼마나 어긋나는지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소문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망라해 충실히 소개하면서도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해 오늘날 소문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강했습니다. 말이 조금 복잡할까요? 그러면 ‘소문에 대한 최신작’ 정도로 요약하지요. 이 책에서 저자가 밝히는 소문이란 1)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2) 정보가 아닌 ‘이야기’로 소비되고 3) 정보의 권위보다는 정보를 전달하는 이와의 관계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문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 아닙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소문’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가장 많이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진실’입니다. 우리는 소문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고 거짓된 소문에 휩쓸리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소문은 진실을 제대로 밝힌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중은 우리의 편견만큼 어리석지 않고 소문의 내용을 모두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소문을 듣고 또 전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소문의 생명력이란 진실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그럴 듯한 서사와 내적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이 100% 믿지도 않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일까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소문이란 우리 일상에 밀착해 있는 소통 수단이자 가장 오래된 미디어입니다. 소문은 관계를 바탕으로 확산되는 정보이며, 따라서 소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실’이 아니라 소문 사이에 놓인 사람과 사람, 즉 ‘관계’에 대한 핵심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병실에서 회자되는 민간요법에 대한 풍경도 이와 같이 설명될 수 있겠지요.
네, 우리가 소문에 마냥 휘둘리지만은 않는다는 건 알겠어요. 그렇다고 ‘소문을 즐기고 있다’는 주장은 또 그것대로 너무 앞선 주장이지 않을까요?
“여기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말이야. 모른 척하고 알고만 있어.”
소문으로 인한 사회적인 손실에 대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당장 헛소문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젊은 연예인들의 가슴 아픈 일들만 봐도 그렇지요. 그러나 이러한 비극들로 인해 소문의 정체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으로 인해 고통 받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소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야 대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소문을 소비하는 방식을 짚어보지요. ‘연예인 찌라시’나 동료에 대한 카더라 식의 이야기를 전하고 동시에 듣는 우리는 얼마나 그 소문을 신뢰할까요? 그리고 왜 소문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소문을 되풀이해서 공유할까요
소문을 나누면서 자주 하고 또 듣는 이야기는 “여기서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입니다. 은밀한 정보를 독점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우정을 확인하는 소통, 그것이 소문의 정체지요. 따라서 소문을 다루는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소문이 일방적으로 퍼지는 형태라고 보지만, 이건 우리들을 너무 어리석다고 얕보는 것이지요. 소문이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러한 소통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요구됩니다. 바로 ‘공공성’에 대한 합의입니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선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문은 공통된 문제와 맞닥뜨린 개인들끼리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정보를 주고받거나, 또는 사교적인 이유에서 가벼운 화제를 나누는 형태로 소비됩니다. 관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인터넷과 같은 익명의 공간일지라도 소문을 전달받은 그 자리에서 이를 부정하기란 쉽지 않지요.
따라서 우리는 소문에 대해 사회적인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경계하지만 결코 마냥 휘둘리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적당히 걸러 듣는 무책임한 소통으로 자주 활용하지 않나요?
1938년 10월 30일 수민만 명의 미국인들이 CBS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을 실제 상황으로 착각하고 패닉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재연방송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소문 수용에 대한 비판력도 주목받았지만, 후속 연구에 따르면 그 실상은 새로운 미디어인 라디오를 견제하기 위한 신문사들의 의도된 오보였습니다. 당시 라디오 드라마를 착각한 사람들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사건만큼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헛소문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지 않습니다. 소문을 걸러 들을 줄도 알고요. 오히려 소문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문이란 어리석은 대중에 의해 확산되지 않으며, 어떤 사회가 소문에 휘둘린다는 건 휘둘릴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문에 대한 부작용은 바로 이 지점, 막연한 선의를 바탕으로 하는 ‘느슨한 합의’와 반신반의한 채 가볍게 이용하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보’가 공유되는 데에서,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 합리적으로 취사선택해 해석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책에서는 소문의 정체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2010년대 소문의 특징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사회적 합의’에 따라 성립되는 소문이란 대개 ‘교훈적’이고 ‘수상한 사회’에 대한 경고를 바탕으로 삼습니다. 1970년대 일본 정부가 나서서 진화했을 정도로 금융계를 흔들었던 도요카와 신용금고 예금 인출 소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신용금고 취업이 예정된 여고생들의 진로와 사회를 걱정하는 소소한 수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음모론이나 ‘연예인 찌라시’를 한 번 들여다볼까요? 그 수상한 이야기들이 도달하는 결론은 ‘가슴 큰 금발 미녀들의 방종한 성생활’을 경고하는 구닥다리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도덕률과 매우 흡사하지요!
둘째. 따라서 소문을 퍼뜨리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한 가지는 공익을 위한 ‘경고’를 통해 적절한 강도의 불안감을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강력한 공포 분위기 조성은 심리적 반발만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이러한 위험에 쉽게 대처할 수 있는 해결책과 교훈을 함께 제공하는 것입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유해물질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는 괴소문과 함께 마스크만 준비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해결책이 함께 제시된 사례부터 ‘빨간 마스크’가 아이들을 노리며 도시를 배회하지만 ‘포마드’를 세 번 외치면 괜찮다는 도시전설까지 모든 ‘성공한 소문’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특성입니다. 훗날 괴소문을 퍼뜨려 여론을 조종하려는 분들께서는 참고해 주세요.
셋째. 잠복성입니다. SNS시대의 소문은 지금까지의 소문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입니다. 인터넷의 특성은 익명성과 기록성입니다. 익명성은 사회의 일반적인 속성 아래에서는 불가능했던 평등한 소통이 가능해짐을 의미합니다. 누가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말했는지가, 권위보다는 얼마나 그럴듯한지가 중요해진 세상이 된 거죠. 이러한 인터넷에서의 소통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습니다. 괜히 “판사님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 했습니다!”라는 절규가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이 기록은 인터넷을 떠돌면서 사람들에게 읽히는 한 내내 현재진행형으로 소비됩니다. 제가 10년 전 철없을 때 붙었던 키보드 파이팅이 뜬금없이 지금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는 거죠..
이러한 특성들이 겹쳐지면서 SNS시대 소문은 진정되었음에도 언제고 다시 터질 수 있는 불발탄과 같은 성격으로 변화했습니다. 일본에는 ‘소문은 길어야 75일’이라는 속담이 있다는데 지금 시대에는 적용되지 못 할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역사학자 마크 포스터는 모든 것이 기록되는 인터넷상의 소통은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문맥이 사라지기 쉽고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지요.
넷째. 극단성입니다. SNS는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끌어내는 풀pull형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공각기동대〉에서 쿠사나기 소좌께선 인터넷이 방대하다고 했지만 직장 일만 너무 열심히 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고요. 인터넷은 좁습니다. 비슷한 사람들과 보고 싶은 정보만 공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비슷한 이야기만 주고받는다는 건 여론이 쏠림현상으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합니다. 미국의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이 민주주의 기반을 위험하게 만들 가능성으로 인터넷을 꼽은 까닭 또한 여기에 있지요.
소문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인 올포트와 포스트맨은 소문에는 평균화, 강조, 동화라는 세 가지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단순해지고 남은 부분은 극적으로 과장되며 전하는 이들의 바람이 조금씩 반영되면서 아주 조금씩만 왜곡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처음의 방향에서 크게 어긋나게 됩니다. 여기에 인터넷 특유의 쏠림 현상이 결합되면 소문이나 여론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될 수밖에 없겠지요.
소문은 위험하지 않다고 했지만 말씀을 들어보니 충분히 위험해 보이네요. 그럼 만약 우리가 소문에 휘말렸디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런 걸 여기서 다 밝히면 독자 여러분께서 책을 사주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희는 결정적인 순간에 끊고 “커쥬 어 마이걸” 하는 비겁한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첫째. 소문에 휘말릴 경우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에만 치중해서는 안 됩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밝힘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괴소문을 진화했던 상황은 오바마라는 권위가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했던 예외적인 케이스입니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니까요! 그보다는 소문에 잠재된 막연한 선의와 교훈에 대한 경계가 필요합니다. 소문이란 사실을 뛰어넘는 일종의 ‘신화’입니다. 소문을 다룰 때 흔한 착각이 ‘거짓이라도 도움만 된다면’지요.
‘하버드대 도서관 새벽 4시’ 사진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이와 관련된 도서도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버드대 출신인 젊은 정당인은 한 방송에서 “하버드대학의 도서관은 밤 11시면 문을 닫는다”고 밝혔습니다. 하버드대 측에서도 실제 자신들의 모습과 다르다면서 공식적으로 부인했지요. 하지만 ‘하버드대 새벽 4시’ 사진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등지에서 크게 유행했던 데 비해 정작 하버드대의 공식 해명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설령 그것을 들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반박하지요. “나도 그 이야기를 100% 믿은 게 아니야. 하지만 공부 열심히 하자는 좋은 이야기에 꼭 그렇게 초를 쳐야겠어? 진실이 그렇게 중요해?”
둘째. 소문으로 결집된 ‘사회적 합의’ 안에 숨어 있는 최대 다수의 편견에 주의해야 합니다. 일본 관동대지진 이후 자행된 조선인 학살사건을 살펴보지요. 지진이 발생한 9월 1일 저녁부터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우유나 신문 배달부들이 편의를 위해 집마다 표시해둔 기호 등은 조선인들의 암호로 받아들여졌지요. 이전부터 일본에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존재했지만 그것이 인종 말살이라는 참혹한 사건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악의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재난 상황에서 소수 이방인에 대한 다수의 불안감이 폭발력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지요. 집마다 표시된 기호는 우리의 ‘초인종 괴담’과도 비슷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흉흉한 소문이 인터넷 등지를 떠돌기도 하는 지금, 소문 안의 ‘합의’에 주의하지 않으면 관동대지진 때와는 반대로 우리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셋째. 소문을 정보의 붕괴 과정이 아니라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발생하는 움직임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소문은 어떤 사실을 통제할수록 기승을 부립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패닉 신화라는 말이 일본에서 유행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는 시민들의 패닉을 우려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변명했지요. 그러나 사회학자 히로이 유의 ‘재해 시 인간행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사상 위기 상황을 맞은 군중들에게서는 패닉이 드물게 벌어졌습니다. 반대로 패닉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해 정보를 통제하고 위험을 은폐했을 때, 이른바 공적인 권위가 부정되면서 음모론이 횡행하고 큰 혼란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넷째. 인터넷에 자신과 관련된 헛소문이 퍼진 다음에는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소문에는 ‘예언의 자기성취’적인 성격이 있어 결과적으로는 사실로 굳어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일본의 방송인 스마일리 키쿠치는 인터넷에 퍼진 자신에 대한 괴소문을 방치했다가 10년간을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잊힐 만하면, 또 진화되었다고 정리할 만하면 인터넷에서 되살아나는 괴소문으로 큰 고통을 받은 끝에 관련인들 모두의 인터넷 증거들을 수집해 고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퍼지는 소문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소문의 사용자들에게 이러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인터넷의 특성’에 대해 경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섯째. 사실 여부를 무시하는 소문의 특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신화에 대항할 수 있는 거대한 권위를 동원하거나 또는 대항 신화로 맞섬으로써 소문이 가진 힘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1969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여고생들을 중심으로 ‘시내 중심가 옷가게 탈의실에 들어간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괴소문이 퍼졌습니다. 이른바 오를레앙 괴담입니다. 이 도시괴담은 1980년대 일본에 상륙해 '오뚝이 괴담'으로 변화했고 곧이어 한국으로 전해졌습니다. 오뚝이 괴담은 '해외여행 갔다가 실종된 여대생을 찾았더니 팔다리가 잘린 인간 오뚝이가 되어 서커스단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카더라'는 내용입니다.
오를레앙 괴담에서 유괴 현장으로 지목된 부티크 여섯 곳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소문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내용 또한 점점 과장되었지요.
소문의 배경에는 1960년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는 현상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공간이 바로 부티크였습니다. 여기에 젊은 여성들이 드나드는 곳의 탈의실이라는 은밀한 장소가 주는 선정성과 중세 이래로 전해지던 민담이 결합된 것, 그것이 오를레앙 괴담의 정체였습니다.
오를레앙 괴담에 내재된 정서는 동아시아식으로 변형된 오뚝이 괴담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일본에서 1980년대는 경제 호황으로 여대생들의 해외여행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시기였습니다. 이른바 신인류가 등장하고 트렌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오늘밤 너와 즐기고 싶어"라고 말하던 때이기도 했지요.
소문은 원만한 인간관계와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한다는 선의를 바탕으로 합니다. 따라서 소문의 동력인 선의가 도전받을 만한 상황을 만드는 것 또한 소문을 진압하는 한 가지 요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섯째. 어떤 사안에 대해 명쾌하게 흑과 백을 가르고 위험과 해결책이 동시에 나오는 이야기라면 소문으로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의 시시비비가 그렇게 선명하게 딱 나눠질 수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시나리오처럼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고 흑과 백이 혼재된 잿빛에 가깝지요. 우리가 보다 성숙된 자세로 소문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런 잿빛이 가진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음모론과 도시괴담 사이에서 소문을 구출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사례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행방불명된 아이들이 유령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 소문을 단순한 도시전설이 아니라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에서 비롯된 일종의 희망 목격담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소문에는 정보로서의 사실성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처를 보듬어주는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특성이 잘 간직되어 있습니다.
소문은 사회의 어떤 좌절된 민심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문을 단순히 혼란을 초래하는 괴담으로만 배척하지만 말고, 우리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인간관계의 소도구로 파악하고 보다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31.사회학 연구 (독서>책소개) > 1.사회학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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