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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의 우편학자이자 우편수집가인 나이토 요스케의 ‘우표로 보는 한국현대사’
이 책의 저자인 나아토 요스케는 ‘우편학자’이자, 우표 등 우편자료를 통해 국가나 지역의 역사를 해석하는 ‘우편학’을 제창하며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우표수집가다. 이 책은 그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신문에 연재한 칼럼, 「우표로 보는 한국현대사」를 엮은 것이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우편사업을 ‘민영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근대 이후 국민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우편물은 국가가 맡아왔다. 따라서 우편요금 선납증지로서 국가의 이름으로 발행하는 것이 우표의 본질이며, 우표를 발행하는 정부가 우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정통성과 정책, 이데올로기 등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표에는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격동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우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은 동시대의 현실과 역사의 흐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일이 된다. 이 책은 ‘국가 미디어’로서 우표의 일면에 주목하여 1945년 해방부터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까지의 우표?우편물을 통해 60여 년의 한국현대사를 그렸다. 일본인인 저자의 한국과 한국 역사에 대한 이해는 한국의 독자들과 비교하면 표층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인으로서의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인의 입장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국현대사를 기술하였다.
이 책의 저자인 나아토 요스케는 ‘우편학자’이자, 우표 등 우편자료를 통해 국가나 지역의 역사를 해석하는 ‘우편학’을 제창하며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우표수집가다. 이 책은 그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신문에 연재한 칼럼, 「우표로 보는 한국현대사」를 엮은 것이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우편사업을 ‘민영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근대 이후 국민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우편물은 국가가 맡아왔다. 따라서 우편요금 선납증지로서 국가의 이름으로 발행하는 것이 우표의 본질이며, 우표를 발행하는 정부가 우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정통성과 정책, 이데올로기 등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표에는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격동의 흔적이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우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은 동시대의 현실과 역사의 흐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는 일이 된다. 이 책은 ‘국가 미디어’로서 우표의 일면에 주목하여 1945년 해방부터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까지의 우표?우편물을 통해 60여 년의 한국현대사를 그렸다. 일본인인 저자의 한국과 한국 역사에 대한 이해는 한국의 독자들과 비교하면 표층적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인으로서의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인의 입장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국현대사를 기술하였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제1장 미군정 시대
1945년 8월 15일∥맥아더의 일반명령 제1호∥미군정의 개막∥일본 식민지 시대의 잔재∥모스크바 협정∥남한 최초의 우표와 엽서∥해방 1주년∥김일성과 태극기∥10월 인민항쟁∥남북연석회의∥남한의 단독선거와 제주도 4·3사건∥국회 개원∥런던올림픽∥헌법 공포∥초대 대통령 이승만
「칼럼」 한국우정의 뿌리
제2장 이승만 시대
대한민국의 성립∥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성립∥국제연합, 한국을 유일의 정통정부로 인정∥흐지부지 끝나버린 친일파 청산∥토지개혁∥제2회 총선거∥한국전쟁 발발∥개전 시의 한국∥서울 함락∥서울의 인민군∥유엔군의 파견∥인천상륙작전과 방호산∥한국·유엔군, 서울을 탈환하다∥유엔군, 평양으로∥유엔군, 압록강에 도착∥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중국과 북한의 혈맹관계∥원폭 투하를 둘러싼 트루먼의 발언∥12월 후퇴와 맥아더의 해임∥개성에서 휴전교섭 개시∥일본의 재무장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판문점에서의 휴전협상∥전쟁 중의 대통령 선거∥아이젠하워 정권의 발족∥스탈린의 서거∥한국전쟁의 휴전∥이승만라인∥한미상호방위조약의 조인∥전후부흥과 재벌의 탄생∥사사오입 개헌∥이승만 3선∥한미우호통상항해조약∥부흥경기의 종언∥4·19혁명
「칼럼」 연하우표
제3장 윤보선·장면 시대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허정의 과도정권∥제2공화국의 발족∥민주당의 내분과 정국의 혼란∥5·16쿠데타의 배경∥박정희의 5·16쿠데타
「칼럼」 북한우표와 한국우표의 구별
제4장 박정희 시대
박정희 군사정권의 발족∥제1차 5개년계획∥원자력 개발 시작∥대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군정에서 제3공화국으로∥배상문제와 청구권∥한일기본조약 조인∥베트남 파병∥한강의 기적∥박정희 정권과 학생운동∥존슨 대통령 방한∥1960년대의 대서독 관계∥박정희의 재선∥1·21사태와 푸에블로호 사건∥통일혁명당 사건∥헌법 개정을 위한 여론 호도∥요도호 사건∥경부고속도로 개통∥박정희, 3선을 향하여∥향토예비군과 안보논쟁∥새마을운동∥박정희 3선∥알맹이 없는 남북적십자회담∥1971년의 국가비상사태 선언∥7·4 남북공동성명∥10월 유신과 신체제의 발족∥6·23 외교선언∥북한의 조국통일 5대 방침∥포항제철소∥김대중 사건∥소양강댐의 완공∥유신체제하의 인권탄압∥서울, 지하철 1호선의 개통∥문세광 사건∥포드 대통령 방한∥민방위대 창설∥꿈의 핵무장 계획∥수출 100억 달러 돌파∥유신체제하의 대통령 재선∥1978년의 국회정세∥카터 대통령의 방한∥박정희 암살
「칼럼」 항공우표
제5장 전두환 시대
최규하 대통령 취임∥숙군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운동∥전두환 정권의 탄생∥제5공화국의 발족∥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아세안 순방∥안보경협론∥서울올림픽 유치 결정∥한미수교 100년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아프리카 외교∥한일 역사교과서 문제의 발단∥한국 자동차의 수출공세∥랑군 폭탄 테러 사건∥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와 레이건 대통령 방한∥로마교황 방한∥88올림픽 고속도로의 개통∥전두환 대통령 방일∥서울국제무역박람회∥1985년의 전두환 대통령 방미∥광복 40주년과 이산가족 재회∥한국 IMF 8조국에∥1986년의 한일관계∥강남개발∥올림픽을 앞두고 유연해진 정부∥6·29선언∥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칼럼」 우편작업의 기계화
제6장 노태우 시대
노태우 정권의 발족∥새마을 비리∥헌법재판소의 설치∥서울올림픽 개막∥북한의 올림픽 훼방책∥세계청소년학생축전과 임수경 사건∥한소 국교수립과 북한∥남북통일축구∥철마는 달리고 싶다∥남북 국제연합 동시가입∥황영조의 바르셀로나 금메달∥한중 국교수립
「칼럼」 부가금 우표
제7장 김영삼 시대
문민정권 시대의 개막∥‘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대전엑스포∥성장하는 환경보호운동∥북한의 벼랑 끝 외교∥1994년 위기와 전쟁기념관∥김일성 사망∥KEDO의 설립∥광복 50년∥5·18특별법과 형벌불소급의 원칙∥2002년 FIFA 월드컵 개최 결정∥한글 전용파와 한자 부활파의 대립∥OECD 가입과 저작권 문제∥광주비엔날레∥금융위기
「칼럼」 한국우표 참고자료 ①
제8장 김대중 시대
김대중 정권의 발족∥IMF체제하에서의 개혁∥김대중 정권의 IT전략∥낙선운동∥대포동 발사∥OPLAN 5027-98∥금강산 관광개발∥베를린 선언∥남북정상회담∥비전향장기수의 송환∥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 개최∥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인천국제공항 개항∥세계도자기엑스포∥제1차 여성정책 기본계획∥2002 FIFA 월드컵 개최∥재등장한 독도 우표∥고이즈미 총리의 방북∥더해가는 반미감정
「칼럼」 한국우표 참고자료 ②
제9장 노무현 시대
노무현의 등장∥노무현 정잱의 발족∥대통령 탄핵소추와 독도 우표∥고건 대통령 권한대행∥고구려 동북공정 파문∥대일 강경책으로의 전환∥APEC 부산정상회담∥황우석 사건∥과거청산과 ‘친일파’ 처벌∥한미FTA∥제2차 남북정상회담∥이명박 정권의 발족
「칼럼」 우편요금의 변천
주요 참고문헌
머리말
제1장 미군정 시대
1945년 8월 15일∥맥아더의 일반명령 제1호∥미군정의 개막∥일본 식민지 시대의 잔재∥모스크바 협정∥남한 최초의 우표와 엽서∥해방 1주년∥김일성과 태극기∥10월 인민항쟁∥남북연석회의∥남한의 단독선거와 제주도 4·3사건∥국회 개원∥런던올림픽∥헌법 공포∥초대 대통령 이승만
「칼럼」 한국우정의 뿌리
제2장 이승만 시대
대한민국의 성립∥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성립∥국제연합, 한국을 유일의 정통정부로 인정∥흐지부지 끝나버린 친일파 청산∥토지개혁∥제2회 총선거∥한국전쟁 발발∥개전 시의 한국∥서울 함락∥서울의 인민군∥유엔군의 파견∥인천상륙작전과 방호산∥한국·유엔군, 서울을 탈환하다∥유엔군, 평양으로∥유엔군, 압록강에 도착∥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중국과 북한의 혈맹관계∥원폭 투하를 둘러싼 트루먼의 발언∥12월 후퇴와 맥아더의 해임∥개성에서 휴전교섭 개시∥일본의 재무장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판문점에서의 휴전협상∥전쟁 중의 대통령 선거∥아이젠하워 정권의 발족∥스탈린의 서거∥한국전쟁의 휴전∥이승만라인∥한미상호방위조약의 조인∥전후부흥과 재벌의 탄생∥사사오입 개헌∥이승만 3선∥한미우호통상항해조약∥부흥경기의 종언∥4·19혁명
「칼럼」 연하우표
제3장 윤보선·장면 시대
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허정의 과도정권∥제2공화국의 발족∥민주당의 내분과 정국의 혼란∥5·16쿠데타의 배경∥박정희의 5·16쿠데타
「칼럼」 북한우표와 한국우표의 구별
제4장 박정희 시대
박정희 군사정권의 발족∥제1차 5개년계획∥원자력 개발 시작∥대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군정에서 제3공화국으로∥배상문제와 청구권∥한일기본조약 조인∥베트남 파병∥한강의 기적∥박정희 정권과 학생운동∥존슨 대통령 방한∥1960년대의 대서독 관계∥박정희의 재선∥1·21사태와 푸에블로호 사건∥통일혁명당 사건∥헌법 개정을 위한 여론 호도∥요도호 사건∥경부고속도로 개통∥박정희, 3선을 향하여∥향토예비군과 안보논쟁∥새마을운동∥박정희 3선∥알맹이 없는 남북적십자회담∥1971년의 국가비상사태 선언∥7·4 남북공동성명∥10월 유신과 신체제의 발족∥6·23 외교선언∥북한의 조국통일 5대 방침∥포항제철소∥김대중 사건∥소양강댐의 완공∥유신체제하의 인권탄압∥서울, 지하철 1호선의 개통∥문세광 사건∥포드 대통령 방한∥민방위대 창설∥꿈의 핵무장 계획∥수출 100억 달러 돌파∥유신체제하의 대통령 재선∥1978년의 국회정세∥카터 대통령의 방한∥박정희 암살
「칼럼」 항공우표
제5장 전두환 시대
최규하 대통령 취임∥숙군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운동∥전두환 정권의 탄생∥제5공화국의 발족∥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아세안 순방∥안보경협론∥서울올림픽 유치 결정∥한미수교 100년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아프리카 외교∥한일 역사교과서 문제의 발단∥한국 자동차의 수출공세∥랑군 폭탄 테러 사건∥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와 레이건 대통령 방한∥로마교황 방한∥88올림픽 고속도로의 개통∥전두환 대통령 방일∥서울국제무역박람회∥1985년의 전두환 대통령 방미∥광복 40주년과 이산가족 재회∥한국 IMF 8조국에∥1986년의 한일관계∥강남개발∥올림픽을 앞두고 유연해진 정부∥6·29선언∥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칼럼」 우편작업의 기계화
제6장 노태우 시대
노태우 정권의 발족∥새마을 비리∥헌법재판소의 설치∥서울올림픽 개막∥북한의 올림픽 훼방책∥세계청소년학생축전과 임수경 사건∥한소 국교수립과 북한∥남북통일축구∥철마는 달리고 싶다∥남북 국제연합 동시가입∥황영조의 바르셀로나 금메달∥한중 국교수립
「칼럼」 부가금 우표
제7장 김영삼 시대
문민정권 시대의 개막∥‘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대전엑스포∥성장하는 환경보호운동∥북한의 벼랑 끝 외교∥1994년 위기와 전쟁기념관∥김일성 사망∥KEDO의 설립∥광복 50년∥5·18특별법과 형벌불소급의 원칙∥2002년 FIFA 월드컵 개최 결정∥한글 전용파와 한자 부활파의 대립∥OECD 가입과 저작권 문제∥광주비엔날레∥금융위기
「칼럼」 한국우표 참고자료 ①
제8장 김대중 시대
김대중 정권의 발족∥IMF체제하에서의 개혁∥김대중 정권의 IT전략∥낙선운동∥대포동 발사∥OPLAN 5027-98∥금강산 관광개발∥베를린 선언∥남북정상회담∥비전향장기수의 송환∥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 개최∥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인천국제공항 개항∥세계도자기엑스포∥제1차 여성정책 기본계획∥2002 FIFA 월드컵 개최∥재등장한 독도 우표∥고이즈미 총리의 방북∥더해가는 반미감정
「칼럼」 한국우표 참고자료 ②
제9장 노무현 시대
노무현의 등장∥노무현 정잱의 발족∥대통령 탄핵소추와 독도 우표∥고건 대통령 권한대행∥고구려 동북공정 파문∥대일 강경책으로의 전환∥APEC 부산정상회담∥황우석 사건∥과거청산과 ‘친일파’ 처벌∥한미FTA∥제2차 남북정상회담∥이명박 정권의 발족
「칼럼」 우편요금의 변천
주요 참고문헌
책 속으로
양국은 매년 8월 15일에 이를 경축하는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른다. 그러나 해방 5주년이었던 1950년에는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에 8월 15일에 기념행사를 거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해방 5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지 않았다. 반면에 북한은 해방 기념일보다 2개월 가까이 이른 6월 20일에 해방 5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북한 당국이 해방 5주년 기념우표를 본래의 해방 기념일보다도 2개월이나 빨리 발행한 것은 실제 해방 기념일인 8월 15일에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사실을 그들 자신이 사전에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예상’은 우표의 발행으로부터 겨우 5일 후인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현실로 적중했다. 그러므로 북한이 발행한 해방 5주년 기념우표는 북한이 용의주도하게 무력남침을 개시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주는 상황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한국전쟁을 한국이 도발했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자신들이 찍어낸 우표를 통해 결과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pp. 62-62
북한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요도호 납치범들이 북한 당국의 뜻에 따라 해외에서 암약하며, 일본인 납치사건에 관여해왔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현재 미국은 북한을 ‘테러리스트 지원국가’로 지목하고 있는데, 요도호 납치범들에 대한 망명수락과 그 후 그들이 벌였던 활동은 이러한 북한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요도호 사건의 흔적은 우편물에도 남아 있다. 사건 당시 요도호에는 적잖은 우편물이 실려 있었는데, 사건이 해결되기까지 4일간 배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비행기에 탑재되어 있었다. 사건이 종결된 후 이들 우편물에는 “이 우편물은 납치당한 일항기에 탑재되었기에 지체되었습니다”라는 첨부설명서가 붙여져서 수취인에게 배달되었다. 이들 우편물은 우표만이 아니라 우편물이 우송된 흔적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증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p.167
한국의 GDP를 살펴보면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연평균 9.3%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종합주가지수 또한 1986년 2월에 206.02포인트를 기록하며 200포인트대를 돌파한 후 상승세를 몰아갔다.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10월에는 713.39포인트, 올림픽이 끝난 1989년 9월에는 951.58포인트까지 올랐다. 이 수치는 1981년 9월의 올림픽 개최 결정 당시보다 무려 6.72배나 상승한 것이다. 한국은 이렇게 올림픽 유치에 성공함으로써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고 올림픽 개최를 향해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능가할지언정 결코 그에 뒤처진다고는 할 수 없는 고도성장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p. 235
결국 한국의 거센 반발에 놀란 중국은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2004년 8월 한중 양국 정부는 “역사해석의 문제가 정치쟁점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에 합의하지만, 한국 내 여론은 좀체 가라앉을 줄 몰랐다. 2006년 9월 ASEM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학술연구기관의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양국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고구려의 역사적인 귀속을 놓고 한중이 대립이 첨예화하던 2005년 7월 1일부터 한국우정은 ‘고구려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특수우표 발행에 나서는데, 고구려가 한국의 왕조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오녀산성과 백암성 양 지역은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중국에 속한다.
북한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요도호 납치범들이 북한 당국의 뜻에 따라 해외에서 암약하며, 일본인 납치사건에 관여해왔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현재 미국은 북한을 ‘테러리스트 지원국가’로 지목하고 있는데, 요도호 납치범들에 대한 망명수락과 그 후 그들이 벌였던 활동은 이러한 북한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요도호 사건의 흔적은 우편물에도 남아 있다. 사건 당시 요도호에는 적잖은 우편물이 실려 있었는데, 사건이 해결되기까지 4일간 배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비행기에 탑재되어 있었다. 사건이 종결된 후 이들 우편물에는 “이 우편물은 납치당한 일항기에 탑재되었기에 지체되었습니다”라는 첨부설명서가 붙여져서 수취인에게 배달되었다. 이들 우편물은 우표만이 아니라 우편물이 우송된 흔적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증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p.167
한국의 GDP를 살펴보면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연평균 9.3%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종합주가지수 또한 1986년 2월에 206.02포인트를 기록하며 200포인트대를 돌파한 후 상승세를 몰아갔다.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10월에는 713.39포인트, 올림픽이 끝난 1989년 9월에는 951.58포인트까지 올랐다. 이 수치는 1981년 9월의 올림픽 개최 결정 당시보다 무려 6.72배나 상승한 것이다. 한국은 이렇게 올림픽 유치에 성공함으로써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고 올림픽 개최를 향해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능가할지언정 결코 그에 뒤처진다고는 할 수 없는 고도성장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p. 235
결국 한국의 거센 반발에 놀란 중국은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2004년 8월 한중 양국 정부는 “역사해석의 문제가 정치쟁점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에 합의하지만, 한국 내 여론은 좀체 가라앉을 줄 몰랐다. 2006년 9월 ASEM 정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학술연구기관의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양국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고구려의 역사적인 귀속을 놓고 한중이 대립이 첨예화하던 2005년 7월 1일부터 한국우정은 ‘고구려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특수우표 발행에 나서는데, 고구려가 한국의 왕조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오녀산성과 백암성 양 지역은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중국에 속한다.
---pp.381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15일부터 2008년 이명박 정권 수립까지 60여 년의 한국현대사를 시대 순으로 담고 있다. 특히 국가 미디어로서의 우표에 담긴 의미를 해석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상을 구성해낸 점에 특색이 있다. 가령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지 불과 12일 만에 북한에서 서울 점령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전쟁 발발 이전부터 준비된 북측의 전쟁 계획을 유추해낸다. 또한 국가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우표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설명한다. 무엇보다 일본인의 눈에 한국현대사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 우리와는 또 다른 역사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37.대한민국 현대사 (독서>책소개) > 2.정부수립이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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