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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의병 투쟁과 독립전쟁론의 실제를 두 인물로 생생하게 조명한 평전
이상룡이 서간도에서 이룩한 업적과 김하락의 굽히지 않은 투쟁 그 현장을 가다
일대기와 전쟁일지 형식의 인물사이자 치열한 구국운동사
서로 다른 독립의 길을 걸었던 두 인물을 조명한 경북독립운동기념관총서 18·19가 동시에 나왔다. 안동에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투쟁을 선도했던 이상룡과 이천의진의 영수로 활약한 김하락의 평전이 그것이다. 의병과 독립운동사 연구에 정진해 온 두 저자의 깊이 있는 필치와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여러 분들의 노고가 더해져 기념서로서나 연구 업적 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상룡이 서간도에서 이룩한 업적과 김하락의 굽히지 않은 투쟁 그 현장을 가다
일대기와 전쟁일지 형식의 인물사이자 치열한 구국운동사
서로 다른 독립의 길을 걸었던 두 인물을 조명한 경북독립운동기념관총서 18·19가 동시에 나왔다. 안동에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투쟁을 선도했던 이상룡과 이천의진의 영수로 활약한 김하락의 평전이 그것이다. 의병과 독립운동사 연구에 정진해 온 두 저자의 깊이 있는 필치와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여러 분들의 노고가 더해져 기념서로서나 연구 업적 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목차
머리말 5
제1부 가계와 학문 _13
임청각의 적전 · 13 / 서산 김흥락의 문하 · 20
제2부 구국의 의병투쟁 _25
의병 봉기 전야 · 25 / 안동의병과 이상룡 · 32 / 향약 시행 · 39 / 가야산 의병 근거지 구상 · 42
제3부 신학문 수용과 구국계몽운동 _49
신학문의 수용 · 49 / 협동학교와 이상룡 · 54 / 대한협회 안동지회의 결성 · 59 / 대한협회 본회의 반민족 노선에 대한 비판 · 72 / 근대국가 신민론 · 75 / 가족단의 결성 · 77
제4부 서간도 망명 _79
경술국치 후 망명 · 79 / 한민족 고대사 연구 · 95 / 서간도 이주 한인사회의 애환 · 100
제5부 서간도 독립운동의 선구 _107
경학사와 부민단 · 107 / 신흥강습소와 독립군영 · 114
제6부 3·1운동과 서간도 독립운동 _127
서간도 3·1운동과 대한독립선언서 · 127 / 한족회의 탄생 · 135 / 서로군정서의 결성 · 139 / 경신참변 · 144 / 서로군정서의 근거지 이동 · 152
제7부 서간도 독립운동세력 통합 _157
북경군사통일회의 참가 · 157 / 서로군정서의 개편 · 162 / 남만주 군사통일운동 · 167
제8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 _175
상해 국민대표회의 대표 파견 · 175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 180 제9부 역사에 남긴 얼 _193 만 리 고혼 · 193 / 얼과 혼의 계승자들 · 203 / 유훈 계승과 공훈 선양 · 213 / 역사에 남긴 궤적 · 215
이상룡 연보 223
참고문헌 227
찾아보기 232
제1부 가계와 학문 _13
임청각의 적전 · 13 / 서산 김흥락의 문하 · 20
제2부 구국의 의병투쟁 _25
의병 봉기 전야 · 25 / 안동의병과 이상룡 · 32 / 향약 시행 · 39 / 가야산 의병 근거지 구상 · 42
제3부 신학문 수용과 구국계몽운동 _49
신학문의 수용 · 49 / 협동학교와 이상룡 · 54 / 대한협회 안동지회의 결성 · 59 / 대한협회 본회의 반민족 노선에 대한 비판 · 72 / 근대국가 신민론 · 75 / 가족단의 결성 · 77
제4부 서간도 망명 _79
경술국치 후 망명 · 79 / 한민족 고대사 연구 · 95 / 서간도 이주 한인사회의 애환 · 100
제5부 서간도 독립운동의 선구 _107
경학사와 부민단 · 107 / 신흥강습소와 독립군영 · 114
제6부 3·1운동과 서간도 독립운동 _127
서간도 3·1운동과 대한독립선언서 · 127 / 한족회의 탄생 · 135 / 서로군정서의 결성 · 139 / 경신참변 · 144 / 서로군정서의 근거지 이동 · 152
제7부 서간도 독립운동세력 통합 _157
북경군사통일회의 참가 · 157 / 서로군정서의 개편 · 162 / 남만주 군사통일운동 · 167
제8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 _175
상해 국민대표회의 대표 파견 · 175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 180 제9부 역사에 남긴 얼 _193 만 리 고혼 · 193 / 얼과 혼의 계승자들 · 203 / 유훈 계승과 공훈 선양 · 213 / 역사에 남긴 궤적 · 215
이상룡 연보 223
참고문헌 227
찾아보기 232
출판사 리뷰
평생 독립의 방도를 고민한 이상룡의 자취
안동의 재지사족在地士族이자 고성이씨의 종손 이상룡은 명문대가로서 특혜를 버리고 오직 광복의 그날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우당 이회영 일가의 독립운동에 견주어 덜 알려진 감이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이상룡과 그 일가의 독립투쟁이 선연하게 밝혀진다. 이상룡의 독립운동은 크게 국내 활동과 서간도 망명 이후로 나뉠 수 있다. 전자가 의병투쟁과 계몽운동이라면 후자는 독립전쟁 근거지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박민영은 이상룡이 왜 다양한 길로 독립을 모색했으며, 궁극적으로 서간도 독립군 양성에 매진하게 되었는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그가 인용하는 『석주유고』의 글들은 중대한 시점에 석주가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를 투시해 보여 준다. 1911년 1월 27일 서간도로 떠나면서 지은 시 〈도강渡江〉에서 이상룡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호연히 나아가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강건한 독립 의지는 낯선 땅에서 독립운동을 개척해 나가는 원동력이었다.
이상룡이 간도에서 경학사와 서간도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전쟁 기지를 건설하면서 무엇보다도 주력한 것은 여러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과 통일이었다. 저자는 통합의 지도자로서 이상룡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이상룡이 남만주 독립운동단체 통합조직인 정의부(1924)를 성립시키면서 자신이 이끌어오던 서로군정서를 해산시킨 것이나,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운동계의 갈등을 봉합하고자 상해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직에 오른 것(1925) 등이 그 사례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의병장 김하락
의성의 재야 유생 김하락은 초지일관 투쟁의 삶을 살았다. 저자 권대웅은 김하락의 진중기록인 『정토일록征討日錄』과 그의 이종사촌 동생 조성학이 남긴 『정토일록』을 비교 분석하고 『동경조일신문』 등 당대 자료를 확인하며, 수차례 현지조사 끝에 의병의 성립과 최후를 현장감 넘치게 펼쳐 보인다. 을미사변과 단발령 발표 이후 이천으로 들어가 1896년 1월에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를 조직한 김하락은 남한산성에서 연합의진을 결성하여 서울진공계획을 세웠으나 패퇴하면서 영남지방으로 이동하여 계속 싸워 나갔다. 남한산성 연합의진의 대장과 중군장이 배신하고 의천의진의 기총이 민가의 재물을 약탈하는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전투에 전투를 거듭했다. 그 가운데 경주성에서 3차례나 이어진 관군에 맞선 김하락의 용투는 그의 초인적이고도 치열한 독립의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경주연합의진의 김하락이 관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다가 강에 몸을 던지기 직전 “어복魚腹에 장사지낼지언정 살아서 왜적 놈들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외침에는 죽되 죽지 않은 의병 정신이 응축되어 있다. 저자는 말미에서 김하락 의병장의 의거가 왜 의병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지를 다각도로 논증하여 정리한다.
김하락이 최장기간 가장 먼 거리를 오가며 의병을 이끈 을미의병의 선봉장으로서 투쟁가였다면, 이상룡은 독립운동의 방략을 고심하여 새길을 모색한 전략가이자 선각자에 가깝다. 그 길은 서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국난에 다양한 방식으로 맞서 싸웠던 우리 민족 독립운동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통합의 가치와 기개에 찬 의지는 다른 형태의 도전과 새 시대를 맞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거울로 다가온다.
안동의 재지사족在地士族이자 고성이씨의 종손 이상룡은 명문대가로서 특혜를 버리고 오직 광복의 그날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우당 이회영 일가의 독립운동에 견주어 덜 알려진 감이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이상룡과 그 일가의 독립투쟁이 선연하게 밝혀진다. 이상룡의 독립운동은 크게 국내 활동과 서간도 망명 이후로 나뉠 수 있다. 전자가 의병투쟁과 계몽운동이라면 후자는 독립전쟁 근거지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박민영은 이상룡이 왜 다양한 길로 독립을 모색했으며, 궁극적으로 서간도 독립군 양성에 매진하게 되었는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그가 인용하는 『석주유고』의 글들은 중대한 시점에 석주가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를 투시해 보여 준다. 1911년 1월 27일 서간도로 떠나면서 지은 시 〈도강渡江〉에서 이상룡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호연히 나아가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강건한 독립 의지는 낯선 땅에서 독립운동을 개척해 나가는 원동력이었다.
이상룡이 간도에서 경학사와 서간도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전쟁 기지를 건설하면서 무엇보다도 주력한 것은 여러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과 통일이었다. 저자는 통합의 지도자로서 이상룡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이상룡이 남만주 독립운동단체 통합조직인 정의부(1924)를 성립시키면서 자신이 이끌어오던 서로군정서를 해산시킨 것이나,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운동계의 갈등을 봉합하고자 상해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직에 오른 것(1925) 등이 그 사례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의병장 김하락
의성의 재야 유생 김하락은 초지일관 투쟁의 삶을 살았다. 저자 권대웅은 김하락의 진중기록인 『정토일록征討日錄』과 그의 이종사촌 동생 조성학이 남긴 『정토일록』을 비교 분석하고 『동경조일신문』 등 당대 자료를 확인하며, 수차례 현지조사 끝에 의병의 성립과 최후를 현장감 넘치게 펼쳐 보인다. 을미사변과 단발령 발표 이후 이천으로 들어가 1896년 1월에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를 조직한 김하락은 남한산성에서 연합의진을 결성하여 서울진공계획을 세웠으나 패퇴하면서 영남지방으로 이동하여 계속 싸워 나갔다. 남한산성 연합의진의 대장과 중군장이 배신하고 의천의진의 기총이 민가의 재물을 약탈하는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전투에 전투를 거듭했다. 그 가운데 경주성에서 3차례나 이어진 관군에 맞선 김하락의 용투는 그의 초인적이고도 치열한 독립의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경주연합의진의 김하락이 관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다가 강에 몸을 던지기 직전 “어복魚腹에 장사지낼지언정 살아서 왜적 놈들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외침에는 죽되 죽지 않은 의병 정신이 응축되어 있다. 저자는 말미에서 김하락 의병장의 의거가 왜 의병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지를 다각도로 논증하여 정리한다.
김하락이 최장기간 가장 먼 거리를 오가며 의병을 이끈 을미의병의 선봉장으로서 투쟁가였다면, 이상룡은 독립운동의 방략을 고심하여 새길을 모색한 전략가이자 선각자에 가깝다. 그 길은 서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국난에 다양한 방식으로 맞서 싸웠던 우리 민족 독립운동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통합의 가치와 기개에 찬 의지는 다른 형태의 도전과 새 시대를 맞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거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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