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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 1970~2016, 대한민국의 숨겨진 간첩조작사

동방박사님 2023. 1. 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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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최승호, 신경민, 한홍구가 추천한 책!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숨겨온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2013년 벌어진 ‘유우성 사건’은 한국 사회의 인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공작 정치는 여전했고 평범한 이들은 삶을 파괴당했다. 반성 없는 국가, 무참히 짓밟힌 인간의 현실에 대해 심층 취재에 나선 『프레시안』의 ‘중고 막내’ 서어리 기자가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이들에 대한 간첩 조작 사건을 기록했다.

제18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 기획 1부 ‘간첩 공장의 진실’, 2016년 후속 취재로 구성한 2부 ‘조작 간첩으로 살기’를 통해 구타와 고문, 가족을 ‘미끼’로 한 협박, 끼워 맞추기식 억지 재판, 혹독한 수감 생활, 고문 후유증, 사회적 낙인, 복구되지 않는 일상으로 이어지는 고통을 겪은 사건 피해자들의 사연을 발굴했다. 3부 ‘분단 공포 넘어서기’에서는 간첩 조작을 야기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대담 및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수십 년간 근거 없는 ‘간첩 조작’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공포 정치’로 이어져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는 현실은 이 책의 이야기들을 과거의 안타까운 사건이나 일부 탈북자의 특수한 사례로 말할 수 없게 한다. 여전히 국가 폭력으로 인한 국민의 희생이 시대의 화두인 지금, 이 책이 “피해자에 귀 기울인 사람들의 양심으로 만든 강력한 백신”으로 한국 사회에 작용하기를 희망한다.

목차

프롤로그: 나는 왜, 간첩 조작 사건에 꽂혔나

1부. 간첩 공장의 진실
1. 대한민국이 나를 고문했습니다: 3년 6개월간의 감금, 김관섭 씨
2. 국가가 탈북자들을 때린 건 몰라요: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이민복 씨
3. 국가기관이 파괴한 삶,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신 없어야 해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 씨
4. 담뱃값, 간첩 누명의 대가였어요: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홍강철 씨

2부. 조작 간첩으로 살기
1. 증명서 ‘날조’, 유우성 사건과 똑같았어요: 재일교포 간첩 사건 피해자, 이종수 씨
2. 연좌제 무서워 묻어둔 진실, 왜 진작에 묻지 않았을까요: 40년 만에 누명 벗은 고 김인봉 씨, 고 장재성 씨
3. 아버지는 사형수, 나는 무기수…… 하루아침에 온 가족이 간첩단이 되다니요: 삼척 고정 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태룡 씨, 진창식 씨
4. 간첩 누명, 또 간첩 누명…… 여든 노인의 토로: GPS 간첩 사건 피해자, 이대식 씨

3부. 분단 공포 넘어서기
1. 간첩 조작부터 해킹까지, 국정원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김관섭 대담
2. 대선 부정, 유우성 사태, 국정원 그리고 박근혜 정부: 최병모 변호사가 말하는 국정원 개혁
3. 우리 모두는 국가보안법 피해자이다: ‘간첩 전문 변호사’ 장경욱이 말하는 ‘공포’

에필로그: 진실과 진심

 

저자 소개

저자 : 서어리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의 5년 차 ‘중고 막내’ 기자이자 직원 조합원이다. 2012년 입사 첫해에 정치부에서 대선을 경험한 후, 줄곧 기획취재팀에 몸담아 왔다.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연이어 터진 대형 사건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2015년 프레시안과 다음 뉴스펀딩에 동시 연재한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시리즈로 제18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언론상을 받았다.
 
 

책 속으로

“설마 국정원이나 검찰이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간첩 만들겠나 싶죠? 그렇게 의심하는 게 당연할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이 등 돌리고 떠나도 저는 잡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국정원이랑 검찰이 하는 짓을 계속 보다 보면 어리 씨도 곧 알게 될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그리고 정말 죄 없는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요.” --- p.8

무엇보다 나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처를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피해자들을 트라우마(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길이다.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 여타 정신과 질병과 달리 트라우마는 외부적 원인이 있는 질환이다. 외부적 문제 때문에 삶이 망가지고 고통받는 이들은 그 외부적 요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치유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실 규명’을 외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에는 국가가 기억하는 진실 대신, 그들이 기억하는 진실이 담겨 있다. 책 출간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짐작했듯, 이 책의 기본적인 틀은 ‘인터뷰’다. 피해자 당사자나 유가족의 증언만큼 사건의 실체와 피해의 정도를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 p.12

딱딱하게 악수를 청하는 그를 한 번, 그리고 장 변호사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멸북滅北’을 주장하는 한 보수단체의 간부였다고 소개했다. 그런 이와 ‘종북 변호사’가 한 공간에 있다니, 이 얼마나 낯설기 짝이 없는 조합일까. 이상한 눈초리를 느꼈는지,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말을 이었다. “내 너무나 억울한 사연이 있어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김관섭(81). 그는 과거 반공교육 강사였다. 30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행복하다”라고 외치고 다녔다. ‘자유 수호’를 입에 달고 다니던 그는 사실, 고문 피해자였다. --- p.19

가장 먼저 받은 것은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이었다. 조사관들은 독방에 1미터 높이의 백열등을 매달아 놓고 그 밑에 누워 있게 했다. 눈을 감아도 강한 빛과 열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뒤에 이어진 ‘간지럼’ 고문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람 미치게 만드는 고문 기술이에요. 온몸을 간질이는데, 처음에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나중에는 정신이 나가고 비명이 터져요.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르는 엄청난 고통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종일 서 있기도 했다. ‘박 대통령 죽이러 왔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하면 맞고, ‘그렇다’고 하면 매질이 멈췄다. 어느 날에는 서너 시간 동안 곤봉 등으로 구타를 당해 허벅지에서 피가 터지고, 또 어느 날에는 포승줄에 손목 피부가 다 벗겨지기도 했다. --- p.25

“얼마 전 희생자 유가족이 언론에 보낸 글 중에 정말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과거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충 넘어가서 이번에 더 큰 피해를 보았다’는 겁니다. 세월호 사고나 제 사건이나 마찬가지라고 봐요. 20~30년 전에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이 재발했듯,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바로잡지 않으면 나중에 또 발생할 겁니다. 지금의 국정원과 검찰을 그대로 놔둔다면, 30년 뒤에 지금 저와 제 동생에게 벌어진 일들이 누군가에게도 일어날 겁니다.” --- p.84

‘제대로 혼쭐이 났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겠지…….’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유우성 간첩 조작극’으로 나라가 들썩이던 2014년 3월, 검찰은 또다시 ‘북한 보위사령부(보위부) 직파 간첩 사건’을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건의 피의자 홍강철 씨는 유우성 씨와 마찬가지로 1심, 2심, 3심에서 전부 ‘간첩죄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내민 증거는 오로지 홍 씨의 자백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자백은 과연 어떻게 나온 것일까? --- p.87

고문 받은 기억을 떠올리자면 한숨부터 나온다. 뺨 맞기, 물고문, 전기 고문, 다리 사이에 몽둥이 끼우고 밟기, 그리고 ‘통닭구이’까지. 영화 [변호인]에 나온 그대로였다. 수사관들이 얼굴에 주전자로 물을 붓고 “북한 갔다 왔지”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면 물 붓기를 네다섯 차례 반복한다. 그러다 기절하면 수사관들이 허위 진술서에 지장을 찍는다. 정신이 들면 다시 수사관이 읊는 대로 자신이 북한에 갔다 왔다는 ‘소설’을 달달 외웠다. 영장 한 번 본 적 없이 그렇게 39일간 불법 구금되었다. 저항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 p.117

“21세기에 간첩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전 그러려니 해요. 하지만 사건의 전말이, 그것도 재판 중에 드러났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죠. 예전엔 다 묻혀버렸으니까요. 30년 만에 밝혀진 것들이, 지금은 3개월 만에 드러나고 있어요.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유우성 씨는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택에 한국 사회가 조금이나마 민주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 p.123

‘아니’라는 말을 할 때마다 조사관들은 태룡 씨를 구타했다. 엎드리게 한 후 허벅지를 두들겨 팼다. 나중엔 하도 맞아 살갗이 다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화장실도 갈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고등학교 등하굣길을 오가며 보았던 해안 경비초소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했다. “근덕면 궁촌리 원평과 문암 부락 사이 해안에 원평 쪽 해안선 모퉁이에 군인 경비부대 막사 1개소가 있는데…….” 그 근방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후일 이러한 진술은 ‘국가 기밀’로 둔갑하고 만다. --- p.154

“이놈 자?”
“오늘 정리할 게 있어서 제가 일찍 좀 재웠습니다.”
주변이 고요했다. 그들의 대화가 창식 씨 귀에 박혔다.
“이놈이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시나리오를 작성하라고 하네.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는데?”
“그럼 올 여름 휴가는 틀린 것 아닙니까?”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지만, 창식 씨 역시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란 대로 말하고, 쓰란 대로 썼다. 그래야 끝도 없이 쏟아지는 폭행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올 여름 휴가는 틀린 것 아니냐’라는 말이 도저히 잊히지 않아요. 저는 그 ‘시나리오’ 때문에 억울하게 죽게 생겼는데 그자들은 고작 본인들 휴가 걱정이나 하고 있으니, 그걸 듣고 있는 제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 p.156

조사관들의 구타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못 견디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한 협박이었다. 태룡 씨는 “지금도 비명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고문당할 때 한밤중이 되면 옆에서 전기 고문 소리가 들려요. 서울에선 문을 열어야 다른 방 소리가 들렸는데, 춘천에선 문을 안 열어도 다 들리더라고요.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다 누구겠어요. 다 우리 가족들 아니겠어요. 똑바로 안 하면 네 아버지, 네 누이 다 죽는다고 해요. 그러니 가슴이 안 찢어집니까.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위에서 시켰다고 해도, 인간이 그럴 수 있습니까.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할 겁니다.” --- p.158

“재판은 정말 엉망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중에 두어 명 빼고는 다 초등학교만 나오거나 초등학교도 못 다닌 일자무식들입니다. 조카(김태룡 씨)네 삼촌(김달회 씨)한테 ‘노동당에 어떻게 가입했느냐’고 물으니까 ‘반장하고 리장이 하라고 해서 가입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공화당을 생각하고 말한 건데, 한글도 못 읽는 분이 노동당이나 공화당이 뭔지 구분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노동당을 반장이나 리장이 시켰다는 게 말이 됩니까. 판사들이 그 이야길 듣더니 웃더라고요. 그렇게 웃어놓고, 어떻게 징역을 줍니까. 아마 그 사람들은 우리가 간첩이 아닌 걸 다 알았을 겁니다.” --- p.161

“변호사들이 저항해야 한다. 변호사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라 민망하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저항할 줄 모른다. 자꾸 제한을 받으니 변호사들도 위축되는 것이다. 국정원 출입할 때 나는 ‘변호인은 보안 검색 안 받는 것’이라고 하고 피의자를 데리고 나와버린다. 어떤 변호인은 안내받은 대로 보안 검색을 다 하고 들어간다. 이미 보안 검색을 마친 피의자들은 사실상 변호인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국정원 직원이 시키는 대로 먼저 차에 타거나, 조사실에 가서 앉아 있다. 그러다가 국정원 직원들이 ‘조사 받겠습니까’라고 하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네’ 하고 변호인도 없이 조사받는다. 우습지 않나.” --- p.222

갈 길이 멀다. 나는 기자로서 고작 4년을 살아왔을 뿐이다. 짧게나마 4년간 갈고 닦은 무기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기자 생활 처음부터 늘 염두에 둔 게 있다. ‘진실’과 ‘진심’이다. 진심을 다해 진실에 다가서려 노력할 때 생명력 있는 기사가 나온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p.233
 

출판사 리뷰

간첩이라는 ‘시나리오’, “대한민국이 나를 고문했다”

많은 이들이 “설마 국정원이나 검찰이 아직도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간첩 만들겠나” 생각하던 2013년에 벌어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일명 유우성 사건)은 한국 사회의 여전한 인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분단을 매개로 한 정보기관의 공작 정치는 여전했고 평범한 사람들은 삶을 파괴당하고 있었다. 반성 없는 국가, 무참히 짓밟힌 인권의 현실을 보며 당시 4년 차 기자는 이를 “그저 한때의 이슈”로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해 심층 취재에 나섰다. 현실은 참혹했다. 1970년대부터 꾸준히 ‘간첩 조작’은 이루어져 왔고, (비록 더디게나마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지만) 국가는 자신의 폭력적인 과거를 반성하는 데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정부 기관 주도의 ‘간첩 기획극’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 권력집단이 저질러온 폭력의 역사와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의 간첩 조작 역사서’이다. 여전히 숨겨진 부분이 많은 간첩 조작의 역사와 그에 연루된 이들의 사연을 담았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 그들의 몸에 각인된 ‘진실’을 말하다

취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들에게 깊은 ‘아픔’으로 각인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구타와 고문, 가족을 ‘미끼’로 한 협박, 끼워 맞추기 식 억지 재판, 공소장의 오타까지 베껴 쓴 판결문, 장기간의 혹독한 수감 생활, 파괴된 건강, 장애, 고문 후유증, 지워지지 않는 사회적 낙인, 무죄 선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느껴지는 감시의 눈길, 깨져버린 채 복구되지 않는 일상……. 하지만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기도 한) “지구상에서 내 고통을 넘어선 사람이 역사에 있겠는가” 싶을 정도로 힘들어했던 피해자들은 결국 인터뷰에 응해 그들의 몸에 각인 된 ‘진실’을 말했다. 진짜 진실을 밝히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것만이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이 트라우마를 넘어 조금이나마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정보·수사기구들이 과오를 자각하고 사과할 때,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국가 기관의 ‘의도된 기획’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때, 수십 년간 계속된 암울한 현실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해왔는지 절로 신음 소리가 나온다”
- 최승호 뉴스타파 PD, [자백] 감독 추천사 중

내용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간첩 공장의 진실’은 대성공사,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 등 탈북자 조사 기관의 인권 침해 사례를 묶은 것으로, 제18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언론상 수상 기획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시리즈가 바탕이 되었다. 1970년대 귀순자 김관섭 씨, 1990년대 귀순자 이민복 씨, 2010년대 귀순자 유우성, 홍강철 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나온 이들이 처음 겪은 일은 대성공사와 합신센터에서의 장기 수용이었고, 거기에서 이들은 간첩으로 몰렸거나 간첩 피의자가 될 뻔했다. 대한민국 국가권력이 탈북자들을 길들이기 위해 탈북자 조사 기관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여기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실상을 이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2부 ‘조작 간첩으로 살기’에서는 2016년 후속 취재를 바탕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과거사 진상 규명과 여러 재심 청구 및 재판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간첩 누명을 벗은 이들의 사연을 전한다. 1980년대 재일동포 간첩 사건 피해자 이종수 씨, 1970년대 (이름조차 붙지 않은) 제주도 간첩 사건 피해자 고 김인봉 씨 유가족과 삼척 고정 간첩단 사건 피해자 가족, 마지막으로 2012년 GPS 간첩 사건 피해자인 이대식 씨의 이야기를 통해 국가권력이 붙인 ‘간첩 꼬리표’가 평범했던 이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알아본다.
3부 ‘분단 공포 넘어서기’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야기한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대담 및 인터뷰를 통해 고민했다.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와 김관섭 씨의 대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주의 수호 비상특위’ 위원장을 역임한 최병모 변호사, ‘간첩 전문 변호사’ 장경욱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의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들을 돌아보고, 분단 공포와 국가보안법, 국정원과 간첩 조작의 함수 관계를 살펴본다.

“국가는 상식과 이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추천사 중

‘분단 역사’ 71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포는 일상화되었고 이성은 마비되었다. 이를 토양으로 근거 없는 ‘간첩 조작’이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일상적인 ‘공포 마케팅 정치’로 이어져 국가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여전히 유린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을 독재정권 시기 과거의 안타까운 사건이나 일부 탈북자와만 연관된 최근의 특수한 사례로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경찰 폭력으로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을 둘러싼 최근의 상황은 2016년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고” 아직도 벌어지는 부정의한 세상, 우리 모두가 국가 폭력의 피해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많은 이들은 ‘헬조선’이라 말한다.

“피해자들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인 이들의 양심이 강력한 백신이 되기를 바란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추천사 중

“애먼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하는” ‘헬조선’은 바뀔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거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고통 받아온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양심”과 연대가 지금까지의 민주주의 실현을 이끌어왔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위 ‘삼척 가족 고정 간첩단’ 사건은 지난 9월 23일 37년 만에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0년대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홍강철, 이대식 씨는 30년이 아닌 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분명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아수라’ 속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런 “행운”이 있는 나라가 아니라 ‘간첩 조작’과 같은 일이 없는 ‘평범한’ 국가를 우리가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여전히 국가의 폭력과 거짓말로 인한 생명의 희생이 시대의 화두인 2016년 10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오롯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

 

추천평

이 책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는 독재정권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간첩으로 조작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국정원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정보·수사기구들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해왔는지 신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특히 책 앞머리에 나오는 김관섭 옹이 겪은 대성공사에서의 고문은 지옥에서라도 그런 일이 있을까 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 [자백]을 보신 분들이 간첩 조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찾아보시면 될 것 같다. [자백]과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로 대한민국 정보·수사 기구들이 수십 년 동안 행사해온 ‘조작 면허’를 빼앗고 정상화시켰으면 한다.
- 최승호 (뉴스타파 PD, [자백] 감독)

분단과 가짜 민주주의 때문에 공안이라는 이름으로 먹고 사는 세력들이 득세했다. 국가의 폭력이 사람을 가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애먼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과연 국가는 그간의 범죄를 반성할 능력이 있는가? 스스로를 고칠 능력은 있는가? 그리고 상식과 이성을 회복할 수 있는가?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서어리 기자의 문제의식에 경의를 표한다.
-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전 MBC 앵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도록 놔 둔 세상을 한 번 확 뒤집었어야 했다. 그 개혁에 실패한 나라가 ‘헬조선’이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어도, 이대로 그냥 둘 수 없는 과거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 조작간첩 문제를 헬조선에서 신음하는 젊은 기자가 책으로 쓰다니! 놀라움과 반가움을 넘어 큰 절이라도 하고 싶도록 고마울 뿐이다.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비명을 질렀건만 우리 사회는 외면했다. 그 비명이 신음소리로 잦아든 지금, 귀 밝은 서어리 기자가 응답하기 시작했다. 친일에서 공안으로 이어지는 좀비들이 날뛰는 세상에 그 신음소리에 귀 기울인 사람들의 양심이 강력한 좀비백신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한홍구 (역사학자,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