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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동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중동에서 광장의 정치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동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규모 민중봉기, 아랍의 봄. 아랍의 봄에서 보여 준 이란과 튀르키예 그리고 아랍 시민의 저항의 목소리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중동 민주화와 평화로 내딛는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중동 민주화 운동의 10년을 돌아보고, 서아시아의 정세와 가까운 미래를 전망한다.
중동에서 광장의 정치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동을 뜨겁게 달구었던 대규모 민중봉기, 아랍의 봄. 아랍의 봄에서 보여 준 이란과 튀르키예 그리고 아랍 시민의 저항의 목소리는 그 결과와 상관없이 중동 민주화와 평화로 내딛는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중동 민주화 운동의 10년을 돌아보고, 서아시아의 정세와 가까운 미래를 전망한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아랍의 봄
제1장 튀니지, 아랍의 봄의 트리거
1. 새 시대를 열어젖힌 한 청년의 죽음
2. 튀니지, 왜 그곳에서?
3. 준비된 혁명
4.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다
5. 혁명에서 현실 정치로
제2장 이집트, ‘빵, 자유, 정의’라는 오래된 문제로의 회귀
1. 이집트 민중, 발코니에서 광장으로
2. 1.25 혁명 이후 이슬람주의의 부상과 몰락
3. 시시 정권하에서 계속되는 ‘빵, 자유, 정의’의 문제
4. 이집트를 떠도는, 오래되고 동일한 문제라는 유령
제3장 시리아, 초유의 내전 늪에서 소생한 아사드 정권
1. 내전의 늪으로 빠져드는 시리아의 봄
2. 제로섬 갈등을 야기한 종파주의의 소용돌이
3. 갈피를 못 잡는 오바마의 대응과 내전의 장기화
4. 푸틴의 개입과 생존한 아사드 정권에 남은 불씨
제4장 예멘, 겨울보다 시린 봄
1. 예멘의 봄, 겨울보다 시린 계절
2.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땅
3. 예멘 내전, 좌절된 민주화의 꿈
4. 역사가 남긴 유산
제5장 바레인, 왕실과 대중 간 기나긴 갈등의 도돌이표
1. 도돌이표가 되어 돌아오는 해묵은 갈등
2. 2011년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오기까지
3. 진주 광장 기념비와 함께 무너진 희망
4. 도돌이표를 넘어 마침표로?
제2부 다시금 봉기하는 중동의 현장
제6장 이라크, 봄을 부르는 민중의 열망
1. 아랍의 봄, 10년 후의 이라크
2. 시위에서 혁명으로: 시민운동으로의 진화
3. 2019 티슈린 시위와 시민사회의 역동성
4. 이라크의 봄은 아직 요원한가?
제7장 레바논, 모자이크 사회와 통합을 위한 국민의 외침
1. 조용했던 레바논의 2011년
2. 근절하기 힘든 레바논의 종파주의
3. You Stink!: 소셜 미디어 전파로 활발해진 사회운동
4. All Means All: 종파주의 타파를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
5. 빠져나올 길이 요원해 보이는 레바논
제8장 튀르키예, 무슬림 민주주의의 좌절
1. 강경 세속주의 체제하 온건 이슬람 정의개발당의 부상
2. 민주화의 불가측성: 에르도안 총리가 이끈 튀르키예 무슬림 민주주의의 실험
3. 아랍의 봄의 아이러니: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와 일인 체제 강화
4. 튀르키예 무슬림 민주주의의 좌절: 선거 권위주의 체제 공고화와 중동 지정학의 변동
제9장 이란, 미완의 혁명과 시민 불복종 운동
1. 이란, 30년 만의 뜨거운 함성 그 이후
2. 녹색운동 전개와 이슬람 혁명의 변곡점으로서의 항거
3. 지속되는 ‘위태로운 삶’
4. 1400년의 시작, 새로운 보수 정권의 탄생
5. 이란의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제3부 아랍의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인가?
제10장 아랍의 봄과 지하디 살라피
1. 아랍의 봄과 이슬람
2. 이슬람주의와 살라피
3. 지하디 살라피의 봄
4. 온건 이슬람에 거는 기대
제11장 국제정치의 이상을 좌초시킨 아랍의 봄
1. ‘아랍의 봄’의 시작: 전격성(電擊性)
2. 아랍의 봄의 추이: 다중성(多重性)과 불가측성(不可測性)
3. 아랍의 봄 이후 미국의 고민
4. 국제정치적 함의: 자유주의의 퇴조 이후
5. 10년의 회고: 아랍의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인가?
참고문헌
찾아보기
발간사
제1부 아랍의 봄
제1장 튀니지, 아랍의 봄의 트리거
1. 새 시대를 열어젖힌 한 청년의 죽음
2. 튀니지, 왜 그곳에서?
3. 준비된 혁명
4.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다
5. 혁명에서 현실 정치로
제2장 이집트, ‘빵, 자유, 정의’라는 오래된 문제로의 회귀
1. 이집트 민중, 발코니에서 광장으로
2. 1.25 혁명 이후 이슬람주의의 부상과 몰락
3. 시시 정권하에서 계속되는 ‘빵, 자유, 정의’의 문제
4. 이집트를 떠도는, 오래되고 동일한 문제라는 유령
제3장 시리아, 초유의 내전 늪에서 소생한 아사드 정권
1. 내전의 늪으로 빠져드는 시리아의 봄
2. 제로섬 갈등을 야기한 종파주의의 소용돌이
3. 갈피를 못 잡는 오바마의 대응과 내전의 장기화
4. 푸틴의 개입과 생존한 아사드 정권에 남은 불씨
제4장 예멘, 겨울보다 시린 봄
1. 예멘의 봄, 겨울보다 시린 계절
2.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땅
3. 예멘 내전, 좌절된 민주화의 꿈
4. 역사가 남긴 유산
제5장 바레인, 왕실과 대중 간 기나긴 갈등의 도돌이표
1. 도돌이표가 되어 돌아오는 해묵은 갈등
2. 2011년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오기까지
3. 진주 광장 기념비와 함께 무너진 희망
4. 도돌이표를 넘어 마침표로?
제2부 다시금 봉기하는 중동의 현장
제6장 이라크, 봄을 부르는 민중의 열망
1. 아랍의 봄, 10년 후의 이라크
2. 시위에서 혁명으로: 시민운동으로의 진화
3. 2019 티슈린 시위와 시민사회의 역동성
4. 이라크의 봄은 아직 요원한가?
제7장 레바논, 모자이크 사회와 통합을 위한 국민의 외침
1. 조용했던 레바논의 2011년
2. 근절하기 힘든 레바논의 종파주의
3. You Stink!: 소셜 미디어 전파로 활발해진 사회운동
4. All Means All: 종파주의 타파를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
5. 빠져나올 길이 요원해 보이는 레바논
제8장 튀르키예, 무슬림 민주주의의 좌절
1. 강경 세속주의 체제하 온건 이슬람 정의개발당의 부상
2. 민주화의 불가측성: 에르도안 총리가 이끈 튀르키예 무슬림 민주주의의 실험
3. 아랍의 봄의 아이러니: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와 일인 체제 강화
4. 튀르키예 무슬림 민주주의의 좌절: 선거 권위주의 체제 공고화와 중동 지정학의 변동
제9장 이란, 미완의 혁명과 시민 불복종 운동
1. 이란, 30년 만의 뜨거운 함성 그 이후
2. 녹색운동 전개와 이슬람 혁명의 변곡점으로서의 항거
3. 지속되는 ‘위태로운 삶’
4. 1400년의 시작, 새로운 보수 정권의 탄생
5. 이란의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제3부 아랍의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인가?
제10장 아랍의 봄과 지하디 살라피
1. 아랍의 봄과 이슬람
2. 이슬람주의와 살라피
3. 지하디 살라피의 봄
4. 온건 이슬람에 거는 기대
제11장 국제정치의 이상을 좌초시킨 아랍의 봄
1. ‘아랍의 봄’의 시작: 전격성(電擊性)
2. 아랍의 봄의 추이: 다중성(多重性)과 불가측성(不可測性)
3. 아랍의 봄 이후 미국의 고민
4. 국제정치적 함의: 자유주의의 퇴조 이후
5. 10년의 회고: 아랍의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인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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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책 속으로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중부 지역의 소도시 시디 부지드(Sidi Bouzid)에서 행상을 하던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Muhammad Bouazizi)가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에서 분신을 감행한다. 그날 아침 그는 여느 때처럼 이른 시간에 일어나 시장으로 향했다. 다른 상인보다 먼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트럭을 살 돈이 없어 직접 만든 수레에 배, 사과, 바나나를 실었다. 튀니지의 초대 대통령 이름을 딴, 번화한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 평소처럼 자리를 잡았다.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없던 그는 스물여섯 살이 되었는데도 정식 허가도 받지 못한 채 과일을 파는 처지였다. 그래서 수시로 경찰에게 과일과 수레를 빼앗겼다.
경찰의 지나친 단속, 그것이 이 청년을 분노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날도 경찰이 과일을 압수했고 벌금 20디나르(약 1만 원)를 부과했다. “하루 10디나르를 버는 사람에게 경찰은 벌금으로 20디나르를 물립니다. 말이 안 되어요.” 무함마드의 동료 상인이 한 말이다(ChabetD’Alix, 2012). 경찰이 저울을 압수하자 무함마드는 빼앗기지 않으려 했고, 한 여경이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물건을 압수당한 무함마드는 몇몇 동료와 시의 관할 부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들어가지 못했고 감정이 격해진 채 가게에 들러 휘발유를 샀다.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 행인 그리고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무함마드는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이슬람의 신앙 고백인 샤하다를 읊은 뒤 불을 붙였다.
--- p.4
광장에 모인 이들은 성별이나 계층, 종교 차이에 따라 분열되지 않고 여느 때보다 시민으로서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시민들은 무바라크 하야라는 공통 목표를 공유하면서 때로는 축제처럼 누리고, 때로는 다치거나 현장에서 사망한 시위대 동료를 임시 치료소로 옮기며 치열하게 싸웠다. 시민들은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광장에 천막을 쳐서 임시 거처를 만들고 밤낮으로 타흐리르 광장과 거리를 지켰다. 때가 되면 어디에선가 마련해 온 음식을 나누어 주고 함께 저항의 노래를 불렀다. 이집트의 시민으로서 이들이 이때보다 더 강한 연대 의식과 인류애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 경험은 이집트 국민이 자신들을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정체화하는 의미 있는 사회적 경험이기도 했다. 종교 차이에 따라 때로는 분열되기도 했던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에서도 화합과 협력의 모습이 보였는데, 광장에서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기독교인들이 서로 손을 잡고 둘러싸 바리케이드를 쳐주었던 장면은 서구 미디어에서도 경쟁적으로 보도되었다.
--- pp.36~37
2015년 여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는 골목마다 있는 공동 쓰레기 수거장에 파란색, 검은색, 흰색 등 색색의 비닐봉지에 싸인 가정용 쓰레기가 산처럼 쌓였다. 국내외 뉴스는 연일 베이루트 인근 계곡에 강물처럼 긴 흰색 쓰레기 봉지의 물결을 내보냈다. 베이루트와 레바논산 지역의 쓰레기를 매립하던 나으메(Naameh) 매립장에 더 이상 쓰레기를 매립할 수 없게 된 데다 쓰레기 처리 업체와 정부 간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옮겨 둘 장소가 없었고 쓰레기 처리 회사 또한 업무를 멈추었다. (...) 쓰레기 사태 발생 초반부터 종파와 상관없이 모인 젊은 활동가들은 ‘유 스팅크(You Stink)!’라는 구호와 함께 정부에 쓰레기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위를 조직했다. 소규모로 시작했던 시위는 점차 규모가 커져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는 수천 명이 결집해 한목소리를 냈으며, 베이루트를 포함한 남부 도시 시돈(Sidon)과 북부 도시 트리폴리(Tripoli) 등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기 국민들은 아랍의 봄 시기에 들었던 ‘국민들은 종파주의 정권 타도를 원한다(Ash-sha’b yur?d ‘isq??an-ni??m at-t?’ifi).’라는 아랍어 피켓을 함께 들고 참여했다. 10년 전 백향목 혁명과는 달리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무장하여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이 시위에 얼마나 다양한 종파가 참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특정 종파만 두드러지게 참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탈종파주의에 대한 레바논 국민의 목소리가 점차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 pp.160~162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권력에서 소외된 수니파가 아랍의 봄 이후 극성을 부린 ISIS 든든한 자원이 되었다. ISIS의 기원은 요르단의 아부 무스아브 알자르까위(Abu Mus‘ab al-Zarqawi)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랑아로 살던 알자르까위는 감옥에서 살라피 아부 무함마드 알마끄디시(Abu Muhammad al-Maqdisi)에게 우상에 불과한 인간이 만든 법을 강요하는 통치자는 무슬림이 아니라 배교자이기 때문에 제거해도 된다고 배웠다. 감옥에서 알자르까위를 살라피로 만든 알마끄디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정을 배교자, 즉 비무슬림 왕정으로 보았다. 그러나 알마끄디시는 정작 지하디 살라피로 나서지 않고 정적 살라피로 남은 반면, 알자르까위는 지하디 살라피가 되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알자르까위는 2003년 알카에다 지도부에 편지를 보내 이라크 미군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이라크 시아파와 내전을 벌여야 한다고 하면서 2004년 3월 시아파 모스크에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 180명의 목숨을 앗았다. 알카에다는 시아파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알자르까위는 시아파가 이단이므로 처형해도 좋다는 생각을 견지했다. 이는 14세기 이븐 타이미야와 18세기 이븐 압둘 와합의 반(反)시아관과 일치한다. 2006년 미군 공격에 알자르까위는 목숨을 잃었지만 알자르까위가 만든 지하드 조직은 계속 존속했고, 2011년 시리아 내전을 틈타 2013년 4월 시리아 라까(al-Raqqah)를 수도로 삼아 이라크와 레반트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n Iraq and Levant)를 세웠다. 그 뒤 2014년 6월 29일에는 ISIS로 이름을 바꾸고 칼리파제 국가를 선언했다.
--- pp.233~234
이제 다시 제2의 아랍의 봄을 운위한다. 수단과 알제리에서 이미 정치 변동이 일어났고, 레바논의 정세가 불안하다. 2010년 12월 17일 시디 부지드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주목받지 못한 작은 일이 순식간에 세계를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초연결 사회다. 불가측 시대에 나비효과의 파괴력과 확장성은 주요 변수 중 하나로 여겨진다. 따라서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한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서아시아 연구에 있어 이런 불연속성의 고리 속에서 인과율을 찾기란 쉽지 않다. 본질적 어려움이 기본값인 셈이다. 익숙한 학문 체계나 어휘로 설명하기 힘든 여집합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론화라는 추상 체계 속에 녹여 내어 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패권적 담론(hegemonic discourse)으로서의 종교 이해가 필수적이며, 부족의 1차 집단적 정서와 관련된 유연한 교감도 필요하다.
경찰의 지나친 단속, 그것이 이 청년을 분노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날도 경찰이 과일을 압수했고 벌금 20디나르(약 1만 원)를 부과했다. “하루 10디나르를 버는 사람에게 경찰은 벌금으로 20디나르를 물립니다. 말이 안 되어요.” 무함마드의 동료 상인이 한 말이다(ChabetD’Alix, 2012). 경찰이 저울을 압수하자 무함마드는 빼앗기지 않으려 했고, 한 여경이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물건을 압수당한 무함마드는 몇몇 동료와 시의 관할 부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들어가지 못했고 감정이 격해진 채 가게에 들러 휘발유를 샀다.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 행인 그리고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무함마드는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이슬람의 신앙 고백인 샤하다를 읊은 뒤 불을 붙였다.
--- p.4
광장에 모인 이들은 성별이나 계층, 종교 차이에 따라 분열되지 않고 여느 때보다 시민으로서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시민들은 무바라크 하야라는 공통 목표를 공유하면서 때로는 축제처럼 누리고, 때로는 다치거나 현장에서 사망한 시위대 동료를 임시 치료소로 옮기며 치열하게 싸웠다. 시민들은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광장에 천막을 쳐서 임시 거처를 만들고 밤낮으로 타흐리르 광장과 거리를 지켰다. 때가 되면 어디에선가 마련해 온 음식을 나누어 주고 함께 저항의 노래를 불렀다. 이집트의 시민으로서 이들이 이때보다 더 강한 연대 의식과 인류애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 경험은 이집트 국민이 자신들을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 정체화하는 의미 있는 사회적 경험이기도 했다. 종교 차이에 따라 때로는 분열되기도 했던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에서도 화합과 협력의 모습이 보였는데, 광장에서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기독교인들이 서로 손을 잡고 둘러싸 바리케이드를 쳐주었던 장면은 서구 미디어에서도 경쟁적으로 보도되었다.
--- pp.36~37
2015년 여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는 골목마다 있는 공동 쓰레기 수거장에 파란색, 검은색, 흰색 등 색색의 비닐봉지에 싸인 가정용 쓰레기가 산처럼 쌓였다. 국내외 뉴스는 연일 베이루트 인근 계곡에 강물처럼 긴 흰색 쓰레기 봉지의 물결을 내보냈다. 베이루트와 레바논산 지역의 쓰레기를 매립하던 나으메(Naameh) 매립장에 더 이상 쓰레기를 매립할 수 없게 된 데다 쓰레기 처리 업체와 정부 간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옮겨 둘 장소가 없었고 쓰레기 처리 회사 또한 업무를 멈추었다. (...) 쓰레기 사태 발생 초반부터 종파와 상관없이 모인 젊은 활동가들은 ‘유 스팅크(You Stink)!’라는 구호와 함께 정부에 쓰레기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위를 조직했다. 소규모로 시작했던 시위는 점차 규모가 커져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는 수천 명이 결집해 한목소리를 냈으며, 베이루트를 포함한 남부 도시 시돈(Sidon)과 북부 도시 트리폴리(Tripoli) 등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기 국민들은 아랍의 봄 시기에 들었던 ‘국민들은 종파주의 정권 타도를 원한다(Ash-sha’b yur?d ‘isq??an-ni??m at-t?’ifi).’라는 아랍어 피켓을 함께 들고 참여했다. 10년 전 백향목 혁명과는 달리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무장하여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이 시위에 얼마나 다양한 종파가 참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특정 종파만 두드러지게 참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탈종파주의에 대한 레바논 국민의 목소리가 점차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 pp.160~162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권력에서 소외된 수니파가 아랍의 봄 이후 극성을 부린 ISIS 든든한 자원이 되었다. ISIS의 기원은 요르단의 아부 무스아브 알자르까위(Abu Mus‘ab al-Zarqawi)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랑아로 살던 알자르까위는 감옥에서 살라피 아부 무함마드 알마끄디시(Abu Muhammad al-Maqdisi)에게 우상에 불과한 인간이 만든 법을 강요하는 통치자는 무슬림이 아니라 배교자이기 때문에 제거해도 된다고 배웠다. 감옥에서 알자르까위를 살라피로 만든 알마끄디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정을 배교자, 즉 비무슬림 왕정으로 보았다. 그러나 알마끄디시는 정작 지하디 살라피로 나서지 않고 정적 살라피로 남은 반면, 알자르까위는 지하디 살라피가 되어 직접 행동에 나섰다.
알자르까위는 2003년 알카에다 지도부에 편지를 보내 이라크 미군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이라크 시아파와 내전을 벌여야 한다고 하면서 2004년 3월 시아파 모스크에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 180명의 목숨을 앗았다. 알카에다는 시아파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알자르까위는 시아파가 이단이므로 처형해도 좋다는 생각을 견지했다. 이는 14세기 이븐 타이미야와 18세기 이븐 압둘 와합의 반(反)시아관과 일치한다. 2006년 미군 공격에 알자르까위는 목숨을 잃었지만 알자르까위가 만든 지하드 조직은 계속 존속했고, 2011년 시리아 내전을 틈타 2013년 4월 시리아 라까(al-Raqqah)를 수도로 삼아 이라크와 레반트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n Iraq and Levant)를 세웠다. 그 뒤 2014년 6월 29일에는 ISIS로 이름을 바꾸고 칼리파제 국가를 선언했다.
--- pp.233~234
이제 다시 제2의 아랍의 봄을 운위한다. 수단과 알제리에서 이미 정치 변동이 일어났고, 레바논의 정세가 불안하다. 2010년 12월 17일 시디 부지드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주목받지 못한 작은 일이 순식간에 세계를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초연결 사회다. 불가측 시대에 나비효과의 파괴력과 확장성은 주요 변수 중 하나로 여겨진다. 따라서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한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서아시아 연구에 있어 이런 불연속성의 고리 속에서 인과율을 찾기란 쉽지 않다. 본질적 어려움이 기본값인 셈이다. 익숙한 학문 체계나 어휘로 설명하기 힘든 여집합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론화라는 추상 체계 속에 녹여 내어 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패권적 담론(hegemonic discourse)으로서의 종교 이해가 필수적이며, 부족의 1차 집단적 정서와 관련된 유연한 교감도 필요하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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