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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를 품은 이를 위한 변명 (2023) - 증오의 사회학, 그 첫 번째

동방박사님 2024. 5. 1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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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어쩔 수 없는 구조가
증오의 싹을 틔운다”
개념과 기원, 대상과 주체, 작동방식과 그 해법까지
총체적으로 모색해본 증오의 사회학

계몽과 관용이란 관습적 해결방식의 한계 넘어
이해와 공존의 섬세한 문제의식으로 풀어나간
사회가 만드는 보편적 질병, 증오의 실체에 대하여


“증오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내는 보편적 질병”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현대의 증오론이다. 사회학의 한 흐름인 갈등론에서 갈등이 이미 일반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갈등의 한 양상인 증오 또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더는 낯설지 않다. 이 책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증오현상들에 대해, 용납할 수는 없지만 이제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란 문제의식 속에서 보다 섬세한 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해본 문제작이다.

기독교 서구사회에 대한 증오를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급진적인 이슬람주의 세력, 세계화와 이주민에 반발하는 유럽의 극우주의, 중동의 성소수자혐오와 이주민혐오현상, 한국의 여성혐오와 이주민혐오현상, 프랑스를 두 세계로 갈라놓은 동성결혼 논쟁, 주로 백인이자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수백 개의 증오단체를 보유한 증오의 나라 미국 등의 사례들을 토대로, 증오의 구체적 현상들에 대한 심층 분석과 그 이해의 배경이 되는 이론적 논의들을 동시에 개진해나간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 유대인, 이주민, 난민, 빈자, 장애인, 동성애자 등 증오의 대상 집단들에 집중해왔던 그간의 일반적인 증오론들과 달리, 증오의 주체, 즉 증오를 품고 표출하는 이들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구조와 권력이 부지불식간에 증오를 초래해버리는 환경에선 평범한 누구나 증오의 담지자가 될 수 있기에, 이 책에서 증오의 주체들을 응시하는 태도는 차분하고 신중하다. 일견 의아하게 다가오는, 증오를 품은 이들을 위한 ‘변명’은 여기에 호응하는 것이다. 다양한 증오현상들에 직면해서는 교화나 제재를 통한 근절을 목표로 삼는 기존 방식들을 재고하고, 증오에 대한 이해와 인정, 나아가 그와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입장과 전략을 숙고해본다.

주체의 재성찰을 통해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성균관대학교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서른네 번째 책이자 두 권으로 기획된 ‘증오의 사회학’ 2부작 가운데 첫 권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또 하나의 시각
증오현상 · 증오와 연관된 용어들 · 사회학적 설명
제2장 증오의 주류화
일상이 된 증오범죄 · 증오의 세계 · 증오의 형상들 · 증오범죄
제3장 증오는 어디에서 오는가?
증오의 개념 · 증오의 기원 · 증오와 사랑의 변증법
제4장 증오하는 인간은 없다
증오의 대상 · 배제된 세계와 증오 · 구조의 쌍생아 · 증오하는 인간은 없다
제5장 증오가 자라나는 토양과 기후
증오를 낳는 사회 · 위기의 산물 · 약자가 두렵다는 강자들 · 재난과 혐오
제6장 만들어진 소수자, 만들어진 증오
근대의 산물로서의 인종 · 지배기제로서의 동성애담론 · 황화현상 · 만들어진 증오
제7장 위계와 증오
위계에 내재한 증오 · 약자를 향한 계급투쟁 · 증오는 구분에서 시작된다
제8장 계몽과 관용의 한계
지배적인 대응 · 편견 때문이라는 이데올로기 · 다양성담론 및 차이담론 비판 · 반인종주의담론 비판 · 관용담론 비판 · 성급한 피해자 만들기
제9장 증오와의 공존
제도적 대응 · 구조적 해법 · 위드 증오 · 보편주의적 시각 · 책임 있는 소수자담론

에필로그
주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저자 소개

저 : 엄한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정치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 연구교수, 춘천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정치사회학과 전 지구에 만연해져버린 ‘증오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이민 2세대 개념을 통해서 본 한국의 이주배...

책 속으로

증오현상은 권력의 측면에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즉 수직적으로 움직인다. 낯선 민족이나 문화에 반감을 가지는 수평적인 증오도 어느 정도는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수직적인 증오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증오현상은 대체로 수직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즉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집단을 겨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증오, 즉 보다 큰 권력이나 높은 지위를 가진 집단을 향한 증오현상도 존재한다. 남성, 부자, 엘리트, 정치권 등에 대한 증오가 존재함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사적으로 표현해보면, ‘가진 자’의 증오가 있다면 ‘억눌린 자’의 증오가 있고, ‘길을 잃은 자’의 증오도 있는 것이다.
---「본문 61~62쪽, ‘증오의 주류화’」중에서

증오는 사랑이며 증오하며 사랑도 깊어간다. 누군가에 대한 증오의 이면에는 다른 누군가나 무언가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 있다. 증오는 그것이 지닌 제어하기 힘든 숙명적 성격으로 인해, 사랑과 닮아 있는 열정적 집착이다. 증오는 사랑처럼 오직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열정적인 기제로 작동되는데 사랑과 달리 그 대상에 해를 끼치려는 목적을 가진다. 사랑과 유사하게 증오는 다양한 감정을 포함한다. 그래서 정의내리기 어렵고 분류하기도 어렵다. 인간이 가진 격한 감정이나 열정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 증오는 사랑과 연관 지어 논의되어왔다. 사랑과의 연관 속에서 사랑과 배치되는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본문 128쪽, ‘증오는 어디에서 오는가’」중에서

악이 평범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교육효과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역으로 모든 인간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자기검열의 문화를 강화시키며, 개인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개인으로는 평범하지만 집단으로는 비범한 이들(uncommon people)”이라고 얘기했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집단으로는 증오의 주체이지만 개인으로는 평범하고 문제없는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 측면보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다.
---「본문 168쪽, ‘증오하는 인간은 없다’」중에서

증오는 일탈의 한 형태이자 상대적 박탈감의 산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해당 사회가 용인하는 방식을 통해서는 자신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거나 만족할 만한 조건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증오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지배민족이 될 수 없었던 독일인들의 박탈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독일이 경험한 굴욕과 감당할 수 없는 전쟁 배상금은 불공평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로써 그 억울함을 푸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었다.
---「본문 205쪽, ‘증오가 자라나는 토양과 기후’」중에서

혐오나 차별의 감정과 그 표현은 우열을 가리는 것이 중요한 체제가 만들어내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서로 다른 민족이나 성의 현실적 지위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또는 도전받는 기존의 위계를 지키기 위해 투사가 된 양 타자를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일에 나서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증오나 혐오는 사회의 병리적 현상이라기보다 사회의 정상적 양상이다. 암세포처럼 내부에서 떼어내야 할 것도, 바이러스처럼 접촉하지 말아야 할 외부적 요인도 아니다.
---「본문 282쪽, ‘위계와 증오’」중에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다문화, 다양성, 관용에 관한 얘기는 지배적 담론의 반열에 있다. 항상 놀라는 것은 오래되어 익숙해졌는데도 다문화담론은 항상 새로운 것으로 환대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차이에 관한 얘기도 절대적인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며,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믿음은 신성하다. 다르다는 건 당연한가 하는 의문이나 인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따져보지는 않는다.
---「본문 315~316쪽, ‘계몽과 관용의 한계’」중에서

증오현상에 대해 박멸이 아니라 관리의 접근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는 현실을 고려한 차선책이기도 하다.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증오와 함께 살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낯선 집단에 대한 거부감은 인류의 탄생 이래 인간사회에 보편적 현상이었다. 따라서 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증오는 불완전한 우리 속에 있고 떼어내기는 어렵다. 증오와 함께, 그러나 우리가 위험하지 않게 사는 방법을 찾는 것도 증오의 한 치유법이 될 수 있다.
---「본문 361쪽, ‘증오와의 공존’」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의 문제의식과 입장

증오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대상이 되는 집단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서, 그만큼 오래되고 구조화되었으며 견고하게 유지되어온 사회현상이다. 이 책은 이러한 증오현상에 대한 입체적 서사를 시도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모색해본 학술 에세이다. 인종, 성, 계급, 민족 등 현실 영역에서 중첩되어 작용하는 중요한 사회 요인들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여러 증오의 차원들이 교차하는 현실까지 실감나게 재조명했다. 사회구조와 인간행위의 관계에 집중해 사회집단 간 위계와 갈등을 해명하고, 관성화되어버린 사회의 주류 인식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증오현상들을 차근차근 분석해나간다. 예컨대 이른바 진보적이라고 간주되는 시각까지 포함해, 소수자, 다문화, 혐오 등에 관한 기존 인식의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렇게 주류화한 사고들을 비판하고 지금껏 이야기되지 않는 측면이나 현상 아래 숨겨진 구조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면서도, 이 책은 단호한 입장을 제시하거나 결의를 다지는 쪽과는 거리를 두었다. 대신 여러 가능한 접근방법과 견해들 가운데 최적의 한 가지를 제시함으로써 증오와 혐오에 대응하는 실천과 담론이 성스러운 도그마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역할을 맡고자 했다.

증오하는 이들을 위한 변명

증오현상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현재도 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증오 연구는 사회의 현 상태를 설명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자 방식이 되기도 한다. 성소수자가 성과 가족문제를, 이주민이 민족문제의 현실을 보여주는 최적의 사례인 것처럼, 이들에 대한 증오현상 역시 해당 영역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는 입체경 역할을 한다. 저자는 바로 이 책에 “인종주의적인 나, 경멸과 선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환언하자면, 이 책은 대자적 계급이 되지 못하고 엉뚱한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민중, SNS에 적개심과 질투심을 분출하는 찌질이나 댓글러와 상당한 공통점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상황과 고민을 담은 현대의 고백록에 준한다.

따라서 이 책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경구와 유사한 입장을 담는다. 증오는 사회에서 비롯된 질병이고, 그 치유 과정은 사회 변화를 필요로 하는 험난한 노정 한가운데에 있다. 사이비 처방이나 개인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진단으로는 해결되지 못한다. 학술적으로 정리하자면, 증오를 표출하는 당사자들의 개인적 책임보다 구조나 공동체 전체의 책임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기조는 이렇다.

저자는 말한다. “증오는 빈곤, 실업, 불황, 종속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로는 어쩌지 못하는 구조의 무게에서 기인한다. 또 자연재해처럼 불가항력적인 사건에 직면한 개인의 무기력한 상황으로부터 생겨나기도 한다. 소위 당연한 것들이 문제일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럴 때 특정 유형의 증오하는 인간을 말하는 것은 섣부르고 해악적이며 반윤리적일 수 있다. 인간형이나 유전 등의 선천적 요인은 물론, 계급이나 민족 등의 후천적 요인으로 결정되는 증오하는 인간도 없다. 설사 증오의 주체를 유형화할 수 있더라도 문제가 되는 태도는 증오하는 이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누군가의 혐의를 묻기보다 그 역시 자신의 이웃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임을 변호하고자 한다”라고.

증오의 개념과 기원
그 모호한 주체와 대상


주제와 문제의식이 담긴 짧지 않은 서설을 지나면, 책의 몸통은 이제 다양한 증오현상의 양상들을 개관한다. 증오현상이 지역을 막론하고 비중 있는 사회현상이 된 최근의 현실을 보여주고 나면, 일종의 증오의 ABC라고 할 수 있는 설명들이 이어진다. 증오현상의 의미와 유형, 배경, 주체, 대상 등이 두루 다뤄진다.

먼저 증오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 일차적으로 증오는 다른 사회현상이나 인간 감정들에 비해 이해하기 어렵고, 복합적이며, 게다가 별로 다루고 싶지 않은 찜찜한 것들이다. 증오범죄, 혐오발언, 외국인혐오 등과 같이 외적으로 표출되는 증오의 양상들이 상대적으로 그 실체가 명확한 데 비해, 그 배경에 있는 증오의 감정은 언제나 베일에 싸여 있다. 또 그 감정은 좌절된 사랑이나 충족되지 못한 열망처럼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어떤 숭고한 가치의 이면일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증오현상은 사회적 차원의 현상이고, 그것의 기원도 사회 속에 있다는 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을 연상시키는 저자의 증오론은 유동적이며 어쩌면 모호하기까지 한데, 그래서 신중한 것이다. “증오를 품게 되는 것은 개인이기보다 집단이고, 집단이기보다 사회 전체다. 개인이나 집단은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이 크다. 증오가 겨냥한 진짜 대상 역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며, 증오는 특정 사회 전체가 특정 집단에 품는 감정이다.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증오의 주체는 없다. 있다 하더라도 명확히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다. 증오의 대상 역시 특정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유동적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증오의 주체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구분하는 것은 성급하고 위험하다. 증오하는 이의 전형을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증오의 토대와 만들어진 증오

일반적으로 증오는 왜곡된 인식과 그 표현으로 간주되고, 교정이라는 대응이 자동적으로 뒤따른다. 표출된 증오현상 앞에서 우리는 선입견을 먼저 작동시키고, 그 대처 또한 관습적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증오현상이 깊이 뿌리내린 토양과 증오를 활성화시키는 사회적 조건들에 보다 더 집중한다. 예컨대 경제위기나 해체의 상황에 놓인 사회가 증오를 싹틔우고, 재난이나 전쟁, 우발적 사건들이 증오를 활성화시키고 있음을 직시하는 것이다. 더구나 증오는 불합리하게도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공격일 때가 많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의 와중에도 더 큰 피해를 입은 가난한 이들과 소수자들이 쉽게 혐오 대상이 돼버리는 불합리한 양상이 반복되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목격하는 대부분의 사회현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인간, 사회, 자연이 함께 만든 창조의 결과다. ‘만들어진’이라는 수식어는 사회현상의 이러한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제 사람들은 증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특히 소수자에 대한 시각이나 타자에 대한 증오를 담고 있는 이념은 대부분 근대의 시작과 함께, 그리고 이를 주도한 서구사회에서 만들어졌다. 그 과정도 평범한 시민의 일상에서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국가나 언론 등 위에서부터 구축되고 전개되었다. 증오의 문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위계와 증오의 상호작용

증오는 다른 정체성이나 문화를 가진 집단에 대한 거부감임과 동시에, 사회의 위계에서 다른 위치를 가진 집단을 향한 적대감이기도 하다. 위계는 곧 권력의 차이다. 권력의 성격은 다양하겠지만, 위계는 해당 사회의 핵심적 자원을 소유한 정도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그리고 이 권력이 증오의 뿌리가 된다.

게다가 증오는 위계가 처한 위기의 산물이자 위계를 지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또한 부당하다고 간주되는 위계에 대한 대응방식이기도 하다. 행위는 구조에 의해 영향 받지만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구조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수정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처럼, 위계라는 구조와 증오라는 의식 및 행위 간의 관계 역시 쌍방향적이다. 나아가 위계가 증오를 초래하지만, 증오라는 의식과 행위가 나타나는 양상은 다른 많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 증오가 위계라는 구조를 새로이 만들어 내거나 기존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증오를 논할 때 현재 한국사회의 주요 특성 중 하나인 이 위계적 문화를 필연적으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는다.

계몽과 관용의 한계

저자는 민족, 성, 계급, 종교, 이념 등의 측면에서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타자에 대한 폐쇄적인 대중의식을 공존의 장애물로 거론하는 계몽담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역설적으로 위로부터 제시된 담론과 정책이 타자에 대한 증오와 사회적 거리를 생산해온 측면을 재조명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담론인 관용 또한 마찬가지다. 저자는 관용담론에 대해, 차이를 가진 집단을 향한 적대행위를 줄이고 모든 차이를 존중하지만, 이와 동시에 기존의 지배와 위계질서를 안전하게 보존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적 평가까지 함께 적시한다. 이러한 계몽과 관용담론의 선상에서, 본성상 구분과 적대를 분할 지배의 전략으로 삼는 국가는 증오를 도입하고 극단화하는 강력한 행위자로 기능한다. 따라서 저자는 증오에 대한 대응도 개인이 아니라 국가로 향해져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증오는 착취, 억압, 통제, 배제, 제노사이드, 전쟁 등 근대 문명국가의 기제들이 일군 세계에 필연적으로 출몰하는 현상으로서 폭력적 근대성을 운명처럼 자기 본질에 내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 증오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하고 제안하기 위해, 근대적 배경에서 고안된 교화나 제재, 계몽과 관용이란 대증적 처방에 앞서 매 증오현상마다 사려 깊은 접근과 근본적 대처가 먼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