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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제국의 역사 (2024)

동방박사님 2024. 11. 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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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점토판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철의 제국, 히타이트.
3000년 만에 그 역사적 봉인이 풀리다!
마침내 국내에 소개되는 히타이트에 관한
가장 최신의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역사서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인류 최초의 철의 제국 ‘히타이트 제국’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세계 유산 가야 고분군 등재 1주년을 기념하여 국내 최초로 히타이트 유물 전시가 열리는가 하면, 유튜브와 여러 방송 매체에서 히타이트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활발히 다뤄지며 역사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는 가장 최신의 사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히타이트 제국의 전반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역사서이다. 히타이트는 기원전 17세기부터 기원전 12세기까지 현재의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을 지배하며 국제 질서를 이끌었던 고대국가로, 이집트와 아시리아와 함께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3대 제국이자 패권국이었다. 인류 최초의 평화 조약을 체결하면서 뛰어난 외교력과 글로벌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며, 고대 아나톨리아에서 탄생한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정치체제였다. 또한 인도유럽어족의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과 거대한 신전 건축물, 고유의 법전까지 갖춘 문화제국이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히타이트는 ‘최초’와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 흥미롭고도 신비로운 제국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찬란한 제국이 어떻게 20세기 전까지 역사에서 거의 완전히 잊혀졌을까?

국내에는 히타이트를 다룬 서적이 단 세 권뿐이며, 그중 히타이트 역사를 다룬 책은 20여 년 전에 출간된 단 한 권에 불과하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의 출간이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잊혀진 제국 히타이트를 가장 최신의 연구와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고 흥미롭게 되살리며, 독자들에게 그 제국의 눈부신 역사를 새롭게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역사서의 진정한 가치를 상기시키며, 현대 독자들에게 책이 가진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줄 것이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는 《바빌론의 역사》《비잔티움의 역사》에 이어, 잃어버린 문명과 역사의 문을 여는 ‘더숲히스토리’의 세 번째 책이다.

목차
한국어판 감수의 글
서문

제1장 히타이트인의 등장과 도시국가의 성립

히타이트인은 어디에서 왔을까
여러 언어가 공존한 아나톨리아
아시리아 상인이 기록한 도시국가의 사회상

제2장 히타이트 고왕국 시대, 히타이트 왕국의 건국

시리아까지 정복한 하투실리 1세
후계 문제로 고심한 히타이트 왕들
생산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

제3장 히타이트 중왕국 시대, 히타이트 왕국의 혼란

왕위를 둘러싼 혼란과 미탄니국의 위협
키주와트나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투드할리야 1세
카스카족의 공격으로 황폐해진 히타이트

제4장 히타이트 신왕국 시대, 제국으로 우뚝 선 히타이트

아나톨리아의 패권을 되찾은 수필룰리우마 1세
투탕카멘의 아내가 보낸 놀라운 제안
전염병의 유행으로 고통받은 젊은 왕
히타이트의 관점에서 본 카데시 전투

제5장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 정상에서 추락하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무르실리 3세
이집트와 세계 최초의 평화 조약을 맺다
건설왕 투드할리야 4세
내전, 속국의 독립, 큰 가뭄

제6장 후기 히타이트 시대, 서아시아 세력의 재편

히타이트 멸망의 진실은?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살아남은 부왕국들
팔리스틴은 구약 성서에 언급된 민족일까
아시리아에 병합된 후기 히타이트 국가들

제7장 도덕과 정의로 다스린 히타이트의 국가와 사회

왕자와 왕비도 신관의 역할을 담당
히타이트 제국 행정을 책임졌던 서기관
지주와 소작농의 분쟁을 조정했던 마을 장로
물건 가격에서부터 민법과 형법까지 다룬 히타이트 법전

제8장 군사 행동보다 제사를 더 중요시한 나라

적국의 신까지 받아들인 ‘천千 가지 신’의 세계
오랜 기간에 걸쳐 성대하게 치러진 제례의식
아시리아 제국에도 도입된 신전 건축 양식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히타이트 왕묘

제9장 히타이트는 과연 ‘철의 왕국’이었을까?

히타이트 제국이 ‘철의 왕국’으로 알려진 이유
금이나 보석처럼 장식용으로 쓰였던 철
히타이트가 제철 기술을 숨기지 않았다는 증거

제10장 장거리 원정과 전쟁, 활발한 외교 활동

전쟁도 주술과 신탁을 따르다
전쟁 종군 외에 완전한 자치를 보장받은 히타이트 속국
전쟁에는 어떤 무기를 썼을까?
히타이트 전차의 위력

제11장 히타이트의 도시와 인프라

약 400년간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하투샤의 위용
성벽 복원 작업으로 추측해본 하투샤 도시 건설 과정
성벽으로 둘러싸인 왕궁과 신전들
상수도와 저수지 등 급수 시설까지 갖춘 도시

제12장 히타이트인의 삶과 생

흉작에 대비한 곡물 창고와 저수지
소를 중시하고 빵을 사랑한 히타이트인
의례용 고급 음료 포도주와 서민 음료 맥주
아직 연구되지 않은 ‘옷’과 ‘집’

제13장 히타이트가 재발견되기까지

역사 기록에서 사라진 히타이트
성서에 등장하는 ‘헷’ 사람이 역사상 실존한 히타이트인일까?
쐐기문자 발굴에서부터 히타이트어 해독 성공까지
아나톨리아 고고학 연구의 발전

이 책에 등장하는 히타이트 왕과 업적

저자 소개 
저 : 쓰모토 히데토시 (津本英利) 
현재 일본 고대오리엔트박물관 연구부장이자 일본 서아시아고고학회 임원으로 재직 중이며 2023년에 제30회 서아시아 발굴조사보고회 실행위원장을 지냈다. 쓰쿠바대학교 대학원 역사 및 인류학 연구과 학위 취득 후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로 유학해 선사先史·원사原史학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전공은 서아시아 및 유럽 고고학 분야로, 쓰쿠바대학교 및 대학원 재학 중에 튀르키예·시리아 발굴 조사에 참여했다. 《요미우리신문》과 《...

역 : 노경아 
한국외대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대형 유통회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오랜 꿈이었던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번역의 몰입감, 마감의 긴장감, 탈고의 후련함을 즐길 줄 아는 꼼꼼하고도 상냥한 일본어 번역가.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의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도서 번역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공저), 옮긴 책으로는 『사지 않는 생활』 『장내 유익균을 살리면 면...

감수 : 이희철 
대학을 졸업하고 많은 세월을 해외에서 살았다. 그것도 대부분 터키이다. 외무 공무원이라는 생업도 있었지만, 인류 역사와 문화에 탐닉하며 일하는 기쁨과 삶의 활력을 얻었다. 조지워싱턴대학교의 로데릭 H. 데이비슨(1917~1996) 교수의 저술 《터키: 소사小史Turkey: A Short History》를 번역하면서 터키인들의 거대한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가깝게 실감하게 되었다. 그 후 터키인들의 선조인 흉노와 돌...

책 속으로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서 히타이트는 이집트나 아시리아. 바빌론 같은 세력에 도전할 군사력을 키워가면서도 지역 내 세력들과 문화 교류는 물론이고 조약·동맹·연합 등으로 외교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해나간 정치체였다. 미래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 시대를 사는 우리가 시대적 메시지를 담은 히타이트를 알아야 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히타이트 역사와 관련하여 히타이트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구약 성서는 어떻게 연결되며, 성서 역사와 세속 문헌 속에서 히타이트를 이해하려는 기독교인이나 일반인의 지적 호기심에도 응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국어판 감수의 글」중에서

히타이트 제국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투드할리야 1세는 즉위 직후부터 적극적인 원정을 거듭한 결과, 특히 서방에서 성공을 거두어 전차 600대와 1만 명 이상의 포로를 확보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때 히타이트 제국은 에게해까지 세력을 넓혔다.
---「키주와트나국을 보호국으로 만든 투드할리야 1세」중에서

밀은 주로 빵으로 가공되었다. 히타이트의 문서 사료에는 원료 곡물, 가루 빻은 정도, 첨가물, 양념, 크기, 형태, 색깔에 따른 빵 종류가 146종이나 언급되어 있다. 노동자와 병사의 도시락으로 적합한 건조 빵 등 실용적인 빵이 있는가 하면 제례에 쓰일 동물 모양 빵 또는 신의 형상을 본뜬 빵 등 장식적인 빵도 있어서 히타이트인이 빵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튀르키예의 빵 맛은 유명한데, 먼 조상의 빵에 대한 애정이 지금까지 이어진 모양이다.
---「소를 중시하고 빵을 사랑한 히타이트인」중에서

하투실리의 최대 업적은 시리아를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대립했던 이집트(람세스 2세)와 평화 조약을 맺고 정략결혼으로 결속을 강화한 것이다. 왕비 푸두헤파도 람세스와 따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두 대국의 관계 개선에 기여한 듯하다. 이처럼 하투실리가 이집트와 평화를 약속하는 ‘외교 혁명’에 도전한 것은 관계가 나빠진 남쪽 나라 아시리아, 서쪽 나라 아히야와라는 신흥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집트와 세계 최초의 평화 조약을 맺다」중에서

히타이트는 속국과 조약을 맺고 일정한 독립성을 인정하는 간접 지배에 머물렀다. 이집트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총독을 파견하고 그곳 젊은이들을 이집트로 데려와 교육받게 하는 등 속국을 부분적으로나마 직접 지배하려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투탕카멘의 아내가 보낸 놀라운 제안」중에서

기원전 1180년경을 마지막으로 히타이트어로 기록된 문서는 사라진다. 이후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를 알려주는 유물은 히타이트 동맹국이었던 이집트의 람세스 3세가 메디나트하부(람세스 3세를 모신 신전)에 남긴 ‘해양 민족들과의 전쟁’에 관한 비문뿐이다.
---「내전, 속국의 독립, 큰 가뭄」중에서

후기 히타이트 국가들이 아나톨리아에 남아 있긴 했지만, 결국 차례차례 아시리아 왕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는 히타이트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도 히타이트 문화 자체도 기원전 7세기경에 다 사라졌다. 아나톨리아에 처음 문자를 들여온 상인들도 아시리아인이었지만 아나톨리아에서 생겨난 히타이트 문화를 소멸시킨 사람들도 아시리아인이었다.
---「아시리아에 병합된 후기 히타이트 국가들」중에서

법전이라기보다 판례집에 가까운 히타이트 법전은 잘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50년경)과는 차이점이 많다. 우선 같은 수단으로 복수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전체적으로 무게가 실려 있다(자유민끼리의 상해죄 배상액은 20세겔). 다만 신분이나 죄의 무게에 따라 판결이 달라졌다.
---「물건 가격에서부터 민법과 형법까지 다룬 히타이트 법전」중에서

제국기, 즉 신왕국 시대, 특히 후반인 기원전 13세기로 접어들자, 문서에서 철을 언급하는 빈도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언급 빈도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언급되는 철 제품 종류도 다양해졌다. 동물이나 인물상 등 장식품에서 더 나아가 칼·단검·창촉 등의 이기, 즉 실용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금이나 보석처럼 장식용으로 쓰였던 철」중에서

쿠샤클르 발굴을 통해 보아즈쾨이 이외의 히타이트 도시 유적의 전모가 처음으로 드러났고 히타이트인의 생활과 기술에 관한 정보가 다양하게 알려졌다. 그 성과가 보아즈쾨이를 비롯한 다른 유적에 응용된 덕분에 보아즈쾨이에 수도 및 저수지 등 급수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상수도와 저수지 등 급수 시설까지 갖춘 도시」중에서

1893년에는 프랑스의 에르네스트 샹트르가 알라자회위크·보아즈쾨이·퀼테페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이때 보아즈쾨이에서 미지의 언어로 쓰인 점토판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미 해독된 아카드어, 바빌로니아어와 같은 쐐기문자로 쓰여 있어서 읽을 수는 있었지만, 즉 음독은 가능했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해독 불가 문서였다. 히타이트어 쐐기문자가 최초로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쐐기문자 발굴에서부터 히타이트어 해독 성공까지」중에서

출판사 리뷰
왜 지금 히타이트에 주목하는가?
구약 성서 속 ‘뜻밖의 제국’, 세계사의 전면에 나서다

히타이트는 고대 오리엔트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겨우 100여 년 전이다. 히타이트는 몰락한 지 불과 몇 세기가 지나자 거의 모든 기록에서 사라져, 그리스인과 로마인조차 하투샤에 살았던 이 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이렇듯 히타이트는 고대 역사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잊혀진 제국’으로 남았다. 그 결과, 아나톨리아를 포함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역사는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서양에서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였다. 그전까지 히타이트에 대한 정보는 구약 성서에서 '헷 족속'으로 간략히 언급된 것이 전부였다. 성서에서는 이들이 강대국이 아니라 소수 민족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몇몇 구절에서 이집트의 파라오와 히타이트 왕이 나란히 언급되며, 히타이트가 당시 주요 강대국 중 하나였음을 암시한다. 오늘날 우리는 고대 오리엔트 문명이 없이는 인류 문화사를 논할 수 없게 되었으며, 서양 문명의 기둥이 된 종교, 법, 철학 등도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서 기원했음을 알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튀르키예(당시 소아시아 또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고고학 발굴은 히타이트의 수도이자 거대한 성채 도시였던 하투샤(현재 보아즈쾨이)의 유적을 세상에 드러냈다.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언어학자들의 헌신적인 연구 덕분에 구약 성서에 묻혀 있던 히타이트는 3만여 개의 점토판 문서와 수많은 유적지 발굴을 통해 ‘잊혀진 세계사’에서 이제는 중요한 역사적 퍼즐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바빌론을 점령하고 이집트와 우열을 다툰 고대 제국 히타이트.
정치, 경제, 종교, 생활,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찬란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

이 책은 도시 국가로 시작한 히타이트의 건국에서부터 주변 강대국들과의 치열한 전쟁, 속국들의 형성과 제국의 확장, 그리고 빛나는 문화와 법 제도를 통해 백성을 통치한 제국의 흥망성쇠까지, 그 장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천여 개의 신을 섬기고 소를 중시하고 빵과 맥주와 포도주를 사랑한 히타이트인의 생활과 독특한 문화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최근의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정리된 역사 서술과 해석은 3,0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고대 문명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실질적인 초대왕으로 시리아까지 정복한 하투실리 1세, 즉위 직후부터 적극적인 원정으로 에게해까지 세력을 넓힌 히타이트 제국 중흥의 아버지 투드할리야 1세, 아나톨리아의 패권을 되찾으며 고대 오리엔트의 대국으로 만든 수필룰리우마 1세와 같은 뛰어난 군주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왕위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 다툼, 전염병의 창궐, 물건 가격에서부터 민법과 형법까지 다룬 히타이트 법전, 지주와 소작농 간의 분쟁, 연이은 흉작과 생산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 이르기까지 히타이트 제국의 흥망성쇠를 이끌어온 여러 이야기들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외에도 저자는 튀르키예 유적지 발굴 조사에 참여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점토판 해독과 유적 발굴 조사 과정에 얽힌 생생한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3,000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히타이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을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며, 독자들은 박물관에서 히타이트 유물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6359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