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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15살 나이에 빨치산이 되어 18살에 체포되고 54살에 석방되었다. 석방된 이후 나의 삶 역시 자유롭지는 않았다. 늦은 나이에 세상에 나오다 보니 사회에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통일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의 도움으로 2022년 10월에 소년 빨치산이 되어서 투쟁하던 과정을 회고한 책 『김영승 회고록』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책은 회고록 그 이후의 얘기로 백운산에서 토벌대에 체포된 이후 35년 이상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도 신념을 지키며 투쟁하던 나와 나의 동지들의 기록이다.
목차
서문 4
|제1장| 교도소에서의 목숨 건 투쟁 13
남원 포로수용소 14
대구교도소에서의 생활 실태 22
김천소년교도소에서의 생활 실태 27
안동교도소 생활의 실태 32
대전교도소의 실태 36
광주교도소에서의 잔혹한 전향 공작 42
청주보안감호소 비전향말살책은 어떻게 자행했는가 48
적들의 환경을 어떻게 활용했는가 57
사상적 단결을 위한 투쟁 63
대열 보존을 위한 투쟁 71
아버지 76
비전향말살책에 희생된 동지들 83
교도소 투쟁에서 살아 있는 가족 친지들과의 연계 92
건강을 위한 투쟁 98
|제2장| 비전향자의 출옥 후 투쟁 103
비전향 장기수 출옥 환영대회 104
그물망처럼 묶어놓고 있는 보안관찰법 109
출옥 후 직장은 몇 번이나 옮겨 다녔는가 113
2020년 미군 철수 원년 선포식 119
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 121
세기의 악법인 국가보안법 폐지 1인 시위 123
불능 처리된 비전향 장기수들 진상조사 재청구서 126
범민련이 걸어온 30년은 조국통일의 횃불이었다 134
미제는 대북 적대정책 폐기하고 평화협정 체결하라 137
비전향 장기수 제2차 송환촉구 기자회견 140
비전향 장기수 묘소 훼손에 대하여 143
신념의 고향인 평양 한 번도 못 갔다 146
|제3장| 빨치산 전적지 탐사 149
지리산 함박골 박영발 비트의 참상 150
빨치산 전적지 답사 남도부 부대 발자취 따라 160
빨치산 투쟁의 전적지인 용추계곡과 돌고개 164
우중 속 지리산 뱀사골 기행 168
피어린 대둔산 173
눈 덮인 지리산 바래봉 176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에게 180
4.3은 통일이다 194
6개 도당위원장 회의트 199
마지막이 될 백운산 기행 203
전쟁 전후 경남 산청군 학살지 207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실태 211
|제4장| 빨치산 영웅을 추억하며 215
불굴의 혁명 투사인 이현상 선생 70주기 216
불굴의 혁명열사 충남도당위원장 박우헌 동지 223
조선의 오페라 가수 최순희 동무 226
불굴의 혁명 열사인 박찬봉 동지 233
불굴의 혁명열사 박갑출 동지 238
불굴의 혁명열사 리방휴 동지 242
불굴의 혁명 투사 김병억 동지 247
백절불굴의 혁명투사 류석우 동지 251
백절불굴의 애국열사 이용훈 동지와 황필구 동지 256
불굴의 혁명열사 권영용 동지 260
불굴의 혁명열사 임종윤 동지와 최복삼 동지 263
불굴의 애국열사 강동찬 동지 266
신념의 강자 의리의 화신 공인두 동지 269
불굴의 애국 투사 박충근 동지 272
불굴의 혁명 투사 고진희 동지 275
불굴의 빨치산 혁명 열사들의 합동 추모제 278
작가의 말 288
저자 소개
저 : 김영승
1935년 8월 7일 전남 영광군 묘량면 삼하리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50년 15살에 입산하여 빨치산이 되었다. 1954년 2월 백운산에서 총격을 받고 체포되어 사형선거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다시 20년 징역형으로 감형받았다. 1974년 4월 28일 석방 예정일이었으나 석방과 동시에 구속. 1976년 5월 7일 석방 예정일이었으나 4일 전인 5월 3일 보안감호처분으로 청주보안감호소에 구금. ...
책 속으로
리영원 동지는 뜻밖에도 일제 강점기 때 동경 유학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가 해방되자 노선이 갈라져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오다가 병원에서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었다. 그는 소령으로서 이동병원 원장이었다. 그는 “친구의 우정을 생각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자네만큼은 꼭 살려내고 말겠네”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해 살아 나왔다. 필자는 바로 리영원 동지 침상과 나란히 있었기 때문에 주고받는 말을 다 들을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
--- p.17
소년수 2명이 사형수였는데 하나는 나이가 차니 집행되고 나만 살아 무기로 감형받았다. 1954년 5월 10일 점심때 이름을 불러 자기 감방 앞에 앉아 있으라 하고 한 10여 명이 서로 눈만 깜박이며 인사하고 중앙에 들어가니 간수 부장이 대뜸 “여러분들은 이제 살았으니 안심하라”고 하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본문 중에서
--- p.26
깡패 정무종은 12월 중순쯤 다시 불러내 사방 지하실에 끌고 갔다. 목공장에서 맞춰 온 고문 틀에 눕혀 놓고 맨 위쪽에 움푹 팬 곳에 목을 넣고 꼼짝달싹할 수 없게 곤봉으로 가로질러 빗장 지르면 머리는 뒤로 젖혀지게 된다. 양 손목은 널판자 뒤로 수정을 채우고 밧줄로 널판자와 몸을 감아 전신을 요동할 수 없게 했다. 한 놈이 배 위에 올라타고는 물에 적신 타올 수건을 얼굴 전체에 덮고 10리터 주전자 물을 코 부위에 살살 부었다. 그러면 숨이 끊어질 것 같아 몸부림치면 타올 수건을 살짝 들어 올려 한번 숨을 쉬게 한 후 다시 덮고 물을 붓는 짓을 반복했다. 10리터 주전자 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물고문을 자행하면서 전향을 강요했다. 깡패놈들은 “오늘은 내가 졌다.” 하고 감방에 들여보내고 다른 동료들을 차례로 끌어내 물고문을 자행했다
본문 중에서
--- p.45
1975년에 사회안전법이 제정되어 비전향자로 출옥한 동지들을 일시에 체포하여 전향하지 않는 한 모조리 감호처분을 시켰다. 일반 교도소에서도 비전향말살책을 감행했으니 끝까지 굴하지 않는 동지들은 만기가 되어도 출옥시키지 않고 감호시켰다. 그래서 필자도 출옥하지 못하고 2년 가형을 받고 만기 되어도 출옥하지 못하고 감호처분 신세가 되었다.
본문 중에서
--- p.50
이현상 선생의 유품에는 두 자루의 권총과 그의 작은 수첩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바람 세찬 지리산에 서니 앞은 일망 무한한데
검을 품고 남쪽 천 리를 달렸구나
내 한시인들 조국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가슴엔 필승의 지략 심장엔 끓는 피 있노라
본문 중에서
--- p.221
박우헌 동지는 1909년 함경북도 길주군 출신이다. 워낙 총명해서 걸어 다니는 옥편이라 불리었다. 1929년 20살 나이에 길주청년동맹에 가입하여 동해면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필두로, 합법 위상의 길주군농민조합 설립을 추진하는 역할도 맡았고, 비밀결사에도 참여했다. 비합법 위상의 길주군 전위그룹에 들어가 사회주의 비밀결사의 확장에 노력했다.
본문 중에서
--- p.223
적들은 권총을 들고 최순희 동무를 협박하여 피아노를 치게 했다. 그리고 그 사진으로 귀순을 권유하는 삐라로 만들어서 뿌렸다. 최순희 동무는 이 일로 평생 괴로움에 시달렸다. 피 한방울까지도 바치겠다고 한 맹서를 배신했다고 스스로 자책했다. 그 때 손 들고 나올 때 죽었어야 했다고….
본문 중에서
--- p.228
고진희 동지는 제주 출신으로 한라산에서 빨치산 투쟁을 하다가 1948년 4월 남북제정당 사회단체 평양연석회의에 제주 대표로 김달삼 동지와 함께 참석했다. 남편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부 부부장 강병찬 동지다.
본문 중에서
--- p.275
출판사 리뷰
전쟁은 끝났지만, 빨치산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내내 우리 아버지를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1930년 생으로 이 책의 저자보다 5살이 많으시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다. 아버지가 반공주의자여서 국군이 된 것도 아니다. 전쟁이 나고 어쩌다 국군이 되어 인민군과 싸우게 되었다. 그 전쟁 속에서 아버지는 중국군이 쏜 총에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아버지도 이 책의 저자처럼 소작농이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20살의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징집이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왜 인민군과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싸웠을 것이다. 당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가 영문도 모른 채 전쟁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각자 열심히 싸웠다. 국군도 인민군도 열심히 싸웠다. 그 중에 일부는 전쟁 중에 전사했고, 일부는 살아남았다.
김대중 정부 이후 아버지는 6.25 참전유공자가 되어 적은 금액이지만 30여만 원의 참전 수당을 받고 있다. 북한에서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북한식 표현에 의하면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에 참전해서 희생되거나 생존해 있는 인민군들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남쪽에서 빨갱이로 몰려 토벌에 대상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거나 살아서 포로가 되어 30여 년 이상 감옥 생활을 해야 했던 빨치산들의 고귀한 희생은 어디에서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한국전쟁의 정전과 함께 빨치산은 북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내 줬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1년 뒤까지도 지리산, 백운산 등지에서의 빨치산 투쟁은 계속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승이 체포된 것도 휴전 이후인 1954년 2월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빨치산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휴전 이후 빨치산 투쟁은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휴전협정에서 빨치산들의 처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북쪽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휴전협정은 1년 이상 끌었는데 남쪽에 고립되어 외롭게 싸우고 있는 빨치산들의 안전한 퇴로를 반드시 끌어냈어야 했다. 휴전 이후 토벌대에게 무참하게 토벌당한 빨치산들의 최후를 생각할 때마다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이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조선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청춘도 목숨도 바쳐 싸웠다. 그런데 포로가 된 이후에는 대한민국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들의 조국은 조선인데 대한민국을 배신했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한국전쟁이 내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 정치사상이 다르다고 30년 이상 옥살이를 시킨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뒤늦게나마 비전향 상태로 출옥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비록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대한민국의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이들이 공산주의 정신을 끝까지 지키며 투쟁했던 과정에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벌써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4년 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돌아왔다. 2025년에는 북한과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오기를 기원한다. 북미 평화협정과 수교는 통일조국으로 가는 첫단추이다. 그 길이 바로 빨치산 전사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정치 종교의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6.25 참전용사 나의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처럼 조국해방전쟁에 한목숨 바치며 싸운 빨치산 전사들을 존경한다. 이 책을 통해 이들 모두의 삶과 투쟁이 존중받기를 기원한다.
작가의 말
나는 15살 나이에 빨치산이 되어 18살에 체포되고 54살에 석방되었다. 석방된 이후 나의 삶 역시 자유롭지는 않았다. 늦은 나이에 세상에 나오다 보니 사회에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통일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도움이 컸다. 그들의 도움으로 2022년 10월에 소년 빨치산이 되어서 투쟁하던 과정을 회고한 책 『김영승 회고록』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책은 회고록 그 이후의 얘기로 백운산에서 토벌대에 체포된 이후 35년 이상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도 신념을 지키며 투쟁하던 나와 나의 동지들의 기록이다. 나에게 교도소는 휴식 공간이 아니라 혁명 전선에 다시 진출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교도소를 몇 년 살았는가 그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전향말살책에 의하여 자살하고,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병나 죽고 하는 인간 이하의 처우 속에서 어떻게 싸워왔는가이다.
내가 경험한 교도소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대구교도소, 김천교도소, 안동교도소, 대전교도소, 목포교도소, 다시 대전교도소, 광주교도소, 마지막 청주보안감호소였다. 이들 교도소 중에서 제일 잔인한 곳이 대전교도소였다. 대전교도소는 교도소 안에 교도소가 있다. 이 교도소는 먹방이다. 징벌방이라고도 한다. 이 먹방은 비전향자들의 저항을 무마시키는 수단으로도 이용했다. 내가 산 교도소는 전국 비전향교도소인 대구, 광주, 대전, 전주 4개 교도소 중 전주교도소를 제외하고 모두 살았다. 이들 교도소에 비전향자 동지들이 각 특별사에 수용되어 적들의 비전향말살책에 의한 각종 고문과 테러를 당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과 테러 속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사상을 지키려다 할 수 없이 자살하는 동지들이 있는가 하면 본의 아니게 전향한 동지들도 있었으며 본인처럼 끝까지 안 죽고 살아 남아 비전향으로 출옥한 동지들도 있었다.
35년 6개월 살고 비전향 출옥했지만 적들의 물샐틈없는 감시는 계속되었다. 그 속에서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늘 고민했다. 그 첫 번째가 먼저 간 빨치산들의 흔적을 찾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회에서 새롭게 만난 뜻을 같이 동지들과 함께 빨치산 전적지를 답사했다. 그 성과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에는 35년이라는 기나긴 나의 옥중 투쟁도 있지만, 나와 함께 옥에서 투쟁했던 동지들의 처절한 투쟁과 아픔이 있다. 그리고 전적지를 답사하면서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빨치산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다. 보위병으로서 내가 모셨던 분들은 모두 전사했다. 전적지를 답사할 때마다 내가 부족해서 이분들이 먼저 가셨나 반성하게 된다. 나의 책에 실린 이분들의 흔적이 작은 위로라도 되기를 바란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956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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