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6.국립중앙박물관

불상

동방박사님 2016. 6. 1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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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통일신라9세기) 1991년입수

비로나자불은 온 누리에 가득 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로나자불은 8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크게유행 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보관을 쓰지 않은 부처의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손갖춤으로는 한쪽손으로 반대편 손가락을 감싸 쥔 지권인 (智拳印)을 하고 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얼굴이 동그랗고 표정이 현실적이며, 신체는 둔중하고 옷주름은 계단모양으로 규칙적이다. 화려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광배와 대좌는 통일신라후반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감산사 미륵보살 . 아미타불

통일신라 719년무렵/경부 경주 감상사터 / 국보81호. 국보82호

두 불상은 경주의 甘山寺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 만든 목적등이 자세히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집사부시랑 김지성이 부모의 은혜와 임금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성덕왕 18년 (719)에 만들어진아미타불과 미륵보살이다. 불상을 만들던 도중 성덕왕19년 (720) 김지성이 죽자

김지성의 명복을 비는 내용도 아미타불 광배 뒷면에 함께 새겨졌다. 미륵보살은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비튼 자세를 보이며, 아미타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곧게 선 자세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8세기전반  석조조각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약사불 (석조약사불좌상) /통일신라 9세기 /셩북경주 남산 삼릉곡 1916년입수 / 1957본관

이불상은 원래 경주남산 삼릉곡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대불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약사불은 질병을 고쳐주고 재난에서 구해주며 음식과 옷을 주는 부처로 왼손에 약단지를 들고 있다. 통통한얼굴 건강한 신체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인 8세기 불상의 여운이 보인다. 그러나 엄숙한 얼굴표현, 고개를 앞으로 숙인자세, 화려하고 장식적인 광배와 대화등 9세기 불상의 특징이므로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든것으로 추정된다.





부처 /고려10세기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 절터 /보물332호 /1991년입수

쇠로 만든 이부처는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한 절터에 있던것을 옮겨온 것이다. 지금도 하사창동 절터에는 돌로만든 대좌의 일부가 남아있다. 이부처는 높이가2.88m 무게가 6.2톤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불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형식의 옷차림과 손갖춤을 하고 있으나 허리가 급격히 가늘어진 조형감과 추상화된 세부표현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불상을 계승한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부처의 양 무릎에는

딱딱하게 굳은 옻칠의 흔적이 남아 있어 원래불상 전체에 두껍게 옺칠을  한 다음 도금했던 것을 알 수있다


비로자나불 (철조비조라나불좌상) /통일신라말 고려초

비로나자불은 온누리에 가득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로나자불  불상은8세기에 등장하여 9세기에 크게 유행 하였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여래 (부처를 부르는말로 "진리의채현자" "열반에 다다른자" 라는 뜻)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단정한얼룩 안정감있는자세, 표면에 이음메가 보이지 않는 뛰어난 주조기술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전통이 엿 보인다. 그러나 형식화된 옷주름 등 세부 표현에서는 사실성이 떨어지는 고려철불의 특징도 함께 나타내고 있어, 통일신라 말 고려 총에 제작도니 불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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