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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론 (클라우제비츠)

동방박사님 2021. 11. 2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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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학자부터 밀리터리 매니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전쟁에 관한 최고의 교범으로 꼽는 전쟁이론의 고전을 독일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책이다. 프로이센 장군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1812)과 워털루싸움(1815) 등 수많은 실전경험과 당대의 이론을 바탕으로 전쟁이 단순한 살육이 아닌 인간의 의지와 정신이 개입된 행위임을 근본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인류의 활동 전반에 걸친 사색을 통해 이 책을 저술했다.

전쟁이란 상대를 굴복시켜 자신의 의지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폭력행위라는 정의내린 저자는 그때까지 군사과학에서 개념이 막연했던 전략과 전술을 엄격히 구분해, ‘전쟁준비’로서 현대의 병참을 들어, 군사학과 용병술의 체계를 세웠다. 전쟁 본질, 전쟁 이론, 전략 일반, 전투, 전투력(군사력), 방어, 공격, 전쟁계획의 8편으로 구성되어 고전적 병서(兵書)이면서 동시에 전쟁을 정치와 관련시킨 점에서 훌륭한 정치학서이기도 하다.

목차

머리글-펴내는 이
방침-지은이
머리말-지은이

제1편 전쟁의 본질에 대하여
제1장 전쟁이란 무엇인가
제2장 전쟁의 목적과 수단
제3장 군사적 천재
제4장 전쟁에서의 위험에 대하여
제5장 전쟁에서의 육체적 고통에 대하여
제6장 전쟁에 있어서의 정보
제7장 전쟁에서의 마찰
제8장 제1편의 결론

제2편 전쟁의 이론에 대하여
제1장 전쟁술의 구분
제2장 전쟁의 이론에 대하여
제3장 전쟁술인가 전쟁학인가
제4장 방법주의
제5장 비판
제6장 전쟁 사례에 대하여

제3편 전략 일반에 대하여
제1장 전략
제2장 전략의 여러 요소
제3장 정신적 요소
제4장 중요한 정신력215 제5장 군대의 무덕
제6장 용감성
제7장 불굴
제8장 수의 우세
제9장 기습
제10장 궤책
제11장 공간에서의 병력 집중
제12장 시간상 병력 집합
제13장 전략적 예비 병력
제14장 병력의 경제적 사용
제15장 기하학적 요소
제16장 군사적 행동 정지에 대해서
제17장 근대전 성격에 대하여
제18장 긴장과 휴식

제4편 전투
제1장 개관
제2장 근대 회전의 성격
제3장 전투 일반에 대하여
제4장 전투 일반에 대하여(이어서)
제5장 전투 의의에 대해서
제6장 전투의 지속 시간
제7장 전투에서의 승패 결정
제8장 전투에 대한 양군의 합의
제9장 주력 전투
제10장 주력 전투(이어서 1)
제11장 주력 전투(이어서 2)
제12장 전승을 이용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
제13장 패전 뒤의 퇴각
제14장 야간 전투

제5편 전투력
제1장 개관
제2장 전장 군 전역
제3장 적군과 아군의 병력 비율
제4장 병종의 비율
제5장 군의 전투 서열
제6장 군의 일반적 배치
제7장 전위와 전초
제8장 선진 부대의 동작
제9장 야영
제10장 행군
제11장 행군(이어서 1)
제12장 행군(이어서 2)
제13장 사영
제14장 보급
제15장 후방 기지
제16장 연락선(連絡線)
제17장 토지와 지형
제18장 제고(制高)

제6편 방어
제1장 공격과 방어
제2장 전술에서의 공격과 방어의 관계
제3장 전술에서의 공격과 방어의 관계
제4장 공격의 구심성과 방어의 이심성
제5장 전략적 방어의 성격
제6장 방어 수단의 규모
제7장 공격과 방어의 서로 작용
제8장 여러 저항 방식
제9장 방어적 회전540 제10장 요새
제11장 요새(이어서)
제12장 방어 진지
제13장 견진지(堅陣地)와 보루 진지
제14장 측면 진지
제15장 산지 방어
제16장 산지 방어(이어서 1)
제17장 산지 방어(이어서 2)
제18장 하천 방어
제19장 하천 방어(이어서)
제20장 소택지 방어와 범람
제21장 삼림 방어
제22장 초병선 방식
제23장 국토의 요충지
제24장 전략적 측면에 대한 활동
제25장 자기 국토 내부로의 후퇴
제26장 국민 총무장
제27장 전쟁터의 방어
제28장 전쟁터의 방어(이어서 1)
제29장 전쟁터의 방어(이어서 2)
제30장 전쟁터의 방어(이어서 3)

제7편 공격(초안)
제1장 방어와 대립 관계에서 본 공격
제2장 전략적 공격의 성질
제3장 전략적 공격의 대상에 대하여
제4장 공격자측의 공격력 감퇴
제5장 전략적 공격의 극한점
제6장 적 전투력의 격멸
제7장 공세 회전
제8장 도하
제9장 방어 진지의 공격
제10장 보루 야영의 공격
제11장 산지 공격
제12장 초병선식 방어선의 공격
제13장 기동
제14장 소택지, 범람지, 삼림지의 공격
제15장 서로 결전을 요구하는 싸움터 공격
제16장 서로 결전을 원하지 않는 싸움터 공격
제17장 요새의 공격
제18장 수송대에 대한 공격
제19장 사영에 든 적군에 대한 공격
제20장 견제
제21장 침략

제8편 전쟁 계획
제1장 머리말
제2장 절대적 전쟁과 실제의 전쟁
제3장 전쟁 내적 연관과 노력의 크고작음
제4장 전쟁 목표에 관한 한층 자세한 규정
제5장 전쟁 목표에 관한 한층 자세한 규정(이어서)
제6장 전쟁에서 정치적 목적 그 영향과 정치의 도구
제7장 제한된 전쟁 목표―공격적 전쟁
제8장 제한된 전쟁 목표(이어서)―방어
제9장 적의 완전한 타도를 목표로 할 때 전쟁 계획

클라우제비츠 생애와 작품과 그 영향
클라우제비츠 연보

저자 소개

 
1780년 6월 1일 프로이센의 작은 도시 부르크에서 중산층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12살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입대한 그는 프랑스혁명 후에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벌인 싸움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경험했으며 1831년 11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군에서 보낸 직업군인이었다.
그는 1803년 베를린 정규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당시 프로이센군 개혁의 기수였던 사관학교 교장 샤른호르스트(Gerhard von Scharnhorst) 중령의 총애를 받았으며 졸업 후 장교 생활 중에도 줄곧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클라우제비츠에게 샤른호르스트는 그의 말대로 “정신적인 아버지이자 친구”였다.
임관하자마자 클라우제비츠는 샤른호르스트의 천거로 프로이센의 젊은 황태자 아우구스트(August) 장군의 전속부관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그는 궁중 출입을 자주 하면서 여왕의 시녀였던 마리 폰 브륄(Marie von Bruhl)을 만나 결혼했다.
1806년 나폴레옹군과 맞서 싸운 아우에르슈테트(Auerstadt) 전투에서 그는 황태자 아우구스트와 함께 포로로 붙잡혀 1년 동안 파리에 억류되었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뒤 그는 샤른호르스트 장군의 핵심 참모로 기용되었으며 프로이센군의 개혁과 개편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일련의 개혁 논쟁에서 인력 정책과 군기 및 훈련 제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당시 군내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그 바람에 과격주의자라는 평판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런데 클라우제비츠는 무엇보다도 프로이센 정부의 프랑스에 대한 굴욕적인 종속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 지원을 요구해 왔을 때 프로이센 정부가 너무 쉽게 그것을 수용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고서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조국의 군대를 떠났다.
1812년의 전쟁에서 그는 러시아군에 입대해 참전했다. 이때 그는 대령 계급이었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관전자 이상의 주요한 직책을 맡지 못했다. 그러나 종전 무렵에 프로이센군 군단장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Yorck von Wartenburg) 장군을 찾아가 나폴레옹 군대에서 이탈, 전향하도록 설득함으로써 프랑스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프로이센이 드디어 1813년에 반기를 들고 대(對) 프랑스 전쟁에 가담함으로써 이보다 앞선 클라우제비츠의 행동들은 모두 정당화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는 클라우제비츠의 프로이센군 복귀 요청을 상당 기간 동안 거절했다. 그의 과거 돌출적 행동에 대한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다.
프로이센군에 복귀한 클라우제비츠는 1815년 나폴레옹의 백일천하(百日天下) 시절에 제3군단 참모장으로 근무했다. 이 군단은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그루시(Grouchy) 군단을 묶어 놓는 중요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에 클라우제비츠는 프로이센 군부 내에서 늘 보수파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아 최고위급 요직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1818년에 그는 당시 비교적 한가한 행정직인 베를린 사관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덕분에 오랫동안 중단한 연구를 재개함으로써 한직은 오히려 그를 위대한 전쟁 이론가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스승 샤른호르스트의 전기를 집필하고 그 밖에 많은 독창적인 정치 및 군사 관련 논문들을 저술했다. 그리고 역작 ≪전쟁론≫을 집필하는데 1819년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에 걸쳐 온 정열을 다 바쳤다. 하지만 초고 집필을 마친 뒤, 세심하게 수정 작업을 하던 중에 1831년 콜레라에 감염돼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이듬해에 그의 부인이 유고를 모아 출판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전쟁론≫은 하나의 미완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자 : 허문순 許文純
춘천사범대학을을 졸업하고, 경남대학에서 불교학을 수학했다. 1954년 공군장교로 임관, 공군 제1훈비 작전처 복무하고, FS S.O.P. 제정에 참여하여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월간 〈희망〉 편집인을 역임하고, 196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세번째 사람」으로 당선되었다. 지은책에 역사소설『대신라기』 미스터리『백설령』『너를 노린다』 하드보일드『번개탐정시리즈(총30권)』등이, 옮긴책에 세이어스『나인 테일러스...
 
 

출판사 리뷰

현대 군사학 경영학 불후의 전략서
이 책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클라우제비츠『전쟁론(Vom Kriege, 1832~34)』 독일어 원전을 허문순 선생이 30여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한국 최초 완역본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전쟁 때 황태자 아우구스트의 부관으로서 출정했는데, 1806년 예나전투에서 패배해 황태자와 함께 프랑스군 포로가 되었다. 프랑스에 억류됐던 1년간 그는 프리드리히대왕 영광과 전통으로 빛나는 프로이센군이 어째서 뿌리도 없는 오합지졸 나폴레옹군대에게 어이없이 패했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것이 바로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을 집필한 동기이다. 1818년 베를린 사관학교장이 된 클라우제비츠는 12년간 전쟁론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다. 그는 프리드리히대왕과 나폴레옹 전쟁사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이란 상대를 굴복시켜 자신의 의지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폭력행위라는 결론을 얻고 이를 정의로 삼았다. 전쟁에서 그 철저함을 결정짓는 것은 정치적 의도나 판단이라 여기고, ‘전쟁이란 다른 수단으로 하는 정치의 연장’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또한 프리드리히대왕과 나폴레옹의 장수로서 탁월한 정치·군사적 전략의 재능을 바탕으로, 장수의 자질과 능력이 전쟁의 결과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하게 주장한다. 그는 그때까지 군사과학에서 개념이 막연했던 전략과 전술을 엄격히 구분해, ‘전쟁준비’로서 현대의 병참을 들어, 군사학과 용병술의 체계를 세웠다. 오늘날에는 이 전략, 전술, 병참을 통틀어서 용병술로 보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가 일정한 규칙과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전쟁사의 사례에 적용해 검증하는 연역·귀납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에 관해서 “이론은 교의가 아니라 관찰이어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가 1831년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인 마리가 1832~34년까지 3년간 걸쳐 남편의 원고들을 편집, 출간한 책으로, 오늘날까지도 군사학·경영학 불후의 전략서로 손꼽히고 있다.

전쟁철학의 고전적 명저
『전쟁론』은 전쟁철학의 고전적 명저로 후세인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클라우제비츠 사후에 출판된 『유작집(1832∼37)』 10권 가운데 첫 3권이 바로 이 『전쟁론』이다. 전쟁 본질, 전쟁 이론, 전략 일반, 전투, 전투력(군사력), 방어, 공격, 전쟁계획의 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전쟁의 본질·이론·전략 기본 등 전쟁철학적 부분은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프로이센 장군 클라우제비츠가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1812)과 워털루싸움(1815) 등 수많은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쓴 전쟁기술에 대한 고전적 병서(兵書)이며, 또한 전쟁을 정치와 관련시킨 점에서 훌륭한 정치학서이기도 하다.
『전쟁론』은 그 뒤 독일의 몰트케·슐리펜·힌덴부르크 등 여러 장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공산주의자 엥겔스나 레닌까지도 『전쟁론』을 군사과학의 고전이라고 높이 평가, 그것을 기초로 하여 독자적인 전쟁이론을 만들어냈다. 그가 말한 전쟁의 본질은 계급투쟁에서 적을 격멸하는 것이라 바꾸어 말하고,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민대중의 민주주의 사상 육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혁명과 정치를 결부시킨 이론을 구축하였다.
또 1951년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발간된 『클라우제비츠·조미니·슐리펜』이라는 책에서는 이 『전쟁론』의 철학을 비스마르크의 철혈철학이며 동시에 히틀러의 이른바 ‘나의 투쟁’ 철학과 같은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출간된 후부터 현재까지 세계의 수많은 국가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왔고, 오늘날에도 거의 모든 국가의 군사교육기관에서 강의의 교본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