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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견문록 (마르코폴로)

동방박사님 2021. 11. 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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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방견문록」은 모두 248절로 이루어졌으며,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여덟 개 장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저자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여 직접 보고 겪어서 쓴 『동방견문록』을 통해 유럽인들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단절되어 있던 동?서가 이「동방견문록」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동경하던 사람들은「동방견문록」을 읽고 동방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고, 그리하여 동서양은 더욱 가까워지고 문화교류를 통해 유럽 근대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동방견문록』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비교적 단조로운 문체와 더불어 ‘상투적인 표현’을 지적받았고, ‘허풍쟁이 마르코 이야기’라고 깎아내려지며 단지 어린이용 옛날이야기 같은 취급을 받았지만, 19세기 이후 번역자들의 노력으로 재평가되었다. 『동방견문록』은 다른 것과는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규모에서 비롯되는 내용의 풍부함이 그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세계 일주라고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그 여행의 의의와 더불어 내용의 풍부함을 통해, 그의 업적에는 이중적인 중요성이 있다.

목차

[컬러화보]

서장
1 머리글…11_2 니콜로와 마페오,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세계탐험에 오르다…12_3 니콜로와 마페오, 솔다이아를 떠나다…12_4 폴로 형제, 사막을 가로질러 부카라에 다다르다…13_5 폴로 형제, 대칸의 궁정으로 향하는 사신의 종용에 응하다…14_6 폴로 형제, 대칸 궁정에 도착하다…15_7 대칸, 폴로 형제에게 그리스도 교도의 사정을 묻다…15_8 대칸은 폴로 형제를 사절로서 로마 교황에게 파견하다…16_9 폴로 형제, 대칸에게서 권위의 황금 패자(牌子)를 받다…16_10 폴로 형제, 아크레 도착…17_11 폴로 형제, 마르코와 함께 베네치아를 떠나다…18_12 폴로 형제와 마르코, 아크레를 떠나다…18_13 폴로 형제, 로마 교황에게로 가다…20_14 폴로 형제, 마르코를 데리고 대칸 도성인 케멘푸에 도착하다…21_15 세 사람, 대칸을 알현하다…21_16 마르코, 대칸의 사절이 되어 출발하다…22_17 마르코, 사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다…22_18 세 사람, 대칸에게 귀국허가를 요청하다…24_19 세 사람, 대칸 곁을 떠나다…25

제1장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횡단
20 소아르메니아…34_21 투르코마니아 지방에 대해서…35_22 대아르메니아…35_23 조르지아 인과 국왕, 그들의 사정…36_24 모술 왕국…40_25 대도시 발다크 함락…40_26 발다크에 일어난 산의 대기적…44_27 그리스도 교도들, 칼리프 말에 경악하다…46_28 사교는 꿈 속에서 구두장이 신도가 산을 움직이리라는 계시를 듣다…47_29 그리스도 교도 신도가 용케 산을 움직이다…48_30 유서 깊은 도시 타우리스…49_31 성(聖) 바르사모 수도원…50_32 광대한 나라 페르시아…51_33 신을 찬양하려고 찾아온 세 성자…54_34 페르시아 여덟 왕국…55_35 도시 야스디…58_36 케르만 왕국에 대해서…58_37 도시 카마딘…60_38 거대한 경사지대…63_39 황량한 마른 땅을 가다…67_40 유서깊은 대도시 코비암…67_41 제2의 사막을 건너다…68_42 ‘산속 노인’과 부하 자객들…68_43 ‘산속 노인’은 자객을 어떻게 훈련시켰나…70_44 ‘산속 노인’의 토벌…72_45 도시 사푸르간…72_46 유서깊은 대도시 발라크…73_47 타이칸 지방, 그 지방 산들은 소금으로 되어 있다…73_48 발라샨의 보석과 명마…76_49 파샤이 지방…78_50 케스무르 왕국…79_51 보칸 지방…80_52 파미르 고원…80_53 벨로르 지성…81

제2장 중국의 서북 변경
54 카슈가르 왕국…89_55 대도시 사마르칸…89_56 야르칸 지방…91_57 대도시 코탄…91_58 펨 지방…91_59 차르찬 지방…92_60 롭 사막…93_61 탕구트 대주(大州)…94_62 카물 지방…98_63 이코구리스탄 지방…99_64 친기탈라스 지방…99_65 수쿼르 지방…101_66 캄프초 시…101_67 에치나…102_68 카라코룸…103_69 타타르 인이 프레스터 존에게 반기를 든 경위…104_70 칭기즈, 타타르 인의 제1대 칸이 되다…104_71 칭기즈 칸, 부하를 소집하여 프레스터 존을 공격하다…105_72 프레스터 존, 군을 이끌고 칭기즈 칸을 요격하다…106_73 프레스터 존과 칭기즈 칸의 대결전…108_74 칭기즈 칸을 계승하는 여러 칸들…108_75 타타르 인의 신 및 그들의 율법…110_76 바르구 평원과 그 주민의 여러 습속…115_77 광대한 에르주울 왕국…116_78 에그리가야 지방…118_79 광대한 텐둑 지방…119_80 신다추 및 그 밖의 여러 지방…120_81 차가노르 시…120_82 수도 샨두와 칸의 화려한 궁전…121

제3장 쿠빌라이 칸의 통치
83 쿠빌라이 칸에 대해서…134_84 대칸의 삼촌 나얀이 꾀한 반란…134_85 대칸이 나얀 반격에 직접 나서다…135_86 대칸과 나얀과의 전투…137_87 대칸은 어떻게 나얀을 사형에 처했는가…139_88 대칸이 십자가를 변호한 연유…140_89 대칸이 그리스도 교도가 되지 않았던 이유…141_90 합전에 무훈을 세운 신하에 대한 은상…144_91 대칸의 용모와 품행…145_92 대칸의 아들들…148_93 대칸의 궁정에 대해서…149_94 대칸의 후계자 황태자의 궁전…154_95 신도시 타이두…156_96 타이두에서 일어난 카타이 인의 모반…159_97 대칸의 금위대…164_98 대칸이 주최하는 갖가지 대향연…164_99 대칸 탄신일의 대축연…167_100 대칸이 거행하는 원단절(元旦節) 성대한 축전…168_101 대향연에 배식이 허용되는 1만 2천 명의 중신들 및 대칸이 하사하는 연회복…171_102 대칸이 국민에게 사냥에서 잡은 것을 헌상하도록 명령한 것…172_103 대칸의 수렵용으로 훈련된 호랑이_표범_살쾡이 및 독수리에 대해서…172_104 사냥개 관리를 맡고 있는 두 형제…173_105 대칸이 짐승을 포획하는 실황…175_106 대도시 캄발룩, 그 많은 인구와 반입되는 다량의 사치 물자…179_107 대칸이 국민에게 사용하도록 한 지폐…182_108 대칸의 모든 정무를 총할하는 12 중신…184_109 수도 캄발룩에서 곳곳으로 통하는 공도(公道)…187_110 흉년 및 가축의 폐사 때 행하는 대칸의 구휼…192_111 대칸의 명령에 따라 공도 가장자리에 심은 가로수…194_112 카타이 인이 마시는 술…194_113 장작처럼 타는 돌…194_114 국민 구제를 위해 대칸이 비축하고 있는 막대한 저장 곡물…195_115 빈민을 위한 대칸의 막대한 시여…195_116 캄발룩의 점성사들…197_117 카타이 인의 계율과 관습…199

제4장 윈난으로의 사절행
118 이제부터 카타이 지방 이야기. 먼저 풀리상긴에 대하여…211_119 대도시 탁주…212_120 타얀푸 왕국…213_121 카이추 고성 이야기…214_122 프레스터 존이 ‘금왕’을 포로로 한 경위…214_123 황허 강…216_124 대도시 켄잔푸…217_125 카타이와 만지의 국경인 한중 지방…218_126 아크발루크 만지 지방…219_127 광대한 신두푸(청두) 지방…219_128 티베트 지방…220_129 계속해서 티베트 지방…224_130 카인두 지방…225_131 카라잔 지방…228_132 계속해서 카라잔 지방…229_133 카르단단 지방…232_134 대칸에 의한 미엔_방갈라의 정복…236_135 대칸 군대와 미엔 왕과의 전투…237_136 계속해서 미엔 왕과의 전투…238_137 경사 지대…240_138 미엔…241_139 방갈라 지방…242_140 칸지구 지방…243_141 아뮤 지방…244_142 톨로만 지방…244_143 친티구이 지방…245

제5장 대운하 연안 공도를 따라 푸젠으로 가는 여정
144 카찬푸 시…251_145 창글루 시…251_146 창글리 시…252_147 툰딘푸 시…252_148 카타이 인의 풍습…254_149 계속해서 카타이 인의 풍습…256_150 신구이 마투…258_151 대도시 린구이…259_152 핀구이 시…259_153 친구이 시…260_154 대칸의 만지 지방 정복…261_155 코이간주 시…264_156 파우긴 시…264_157 카인 시…265_158 틴구이 시…265_159 얀구이 시…265_160 남긴…266_161 사얀푸 시…267_162 신구이 시…269_163 카인구이 시…271_164 찬기안푸 시…272_165 틴구이구이 시…272_166 수주 시…273_167 킨사이 시…275_168 칸이 킨사이에서 징수하는 거액 세수입…291_169 대도시 타핀주…293_170 콘차 왕국…295_171 푸주 시…296_172 차이툰 시…301

제6장 남해 경유 귀국 항로
173 인도―먼저 인도 항로 선박에 관하여…315_174 지팡구 섬…318_175 외딴 섬에 남겨진 대칸 군대가 적지의 도시를 점령하다…320_176 우상 숭배의 여러 모습…322_177 참바국…324_178 대자바 섬…327_179 손두르 섬과 콘두르 섬…328_180 펜탄 섬 및 그 밖의 섬들…329_181 소자바 섬…329_182 펠렉 왕국…330_183 바스만 왕국…330_184 사마트라 왕국…332_185 다그로얀 왕국…334_186 람브리 왕국…335_187 판푸르 왕국…335_188 네쿠에란 섬…336_189 안가만 섬…337_190 세일란 섬…338_191 대마아바르 지방…339_192 무트필리 왕국…353_193 사도 성 토머스 유체를 안치한 성전…355_194 브라만교의 발상지 라크 지방…359_195 계속해서 세일란 섬…364_196 카엘 시…369_197 코울람 왕국…371_198 코마리…372_199 엘리 왕국…373_200 말라바르 왕국…374_201 고주라트 왕국…375_202 타나 왕국…376_203 캄바에트 왕국…377_204 세메나트 왕국…378_205 케스마코란 왕국…378_206 남도와 여도…378_207 소코트라 섬…379_208 모그다시오…383_209 잔지바르 섬…385_210 아비시니아 지방…389_211 아덴 지방…393_212 에시에르 시…395_213 두파르 시…397_214 칼라트 시…397_215 호르무즈 시…399

제7장 터키국의 사정
216 대터키국…406_217 카이두 왕의 왕녀와 그녀의 용감한 행위…411_218 아바가 칸이 아르군 왕자를 보내 싸우게 한 이야기…414_219 왕위를 얻고자 아르군, 귀경길에 오르다…415_220 아코마트의 아르군 요격…416_221 아코마트 공격을 의논하는 아르군…417_222 아르군에 대한 장령들의 회답…418_223 아르군, 사자를 아코마트에게 보내다…419_224 아르군 사자에 대한 아코마트의 회답…420_225 아르군군과 아코마트군의 회전…421_226 아르군의 추대를 꾀하는 귀족들…423_227 아르군, 자유의 몸이 되다…423_228 아르군, 그의 삼촌 아코마트를 처형하다…424_229 귀족들, 아르군에 충성을 서약하다…426_230 아르군 죽고 가이카투 왕위에 오르다…426_231 가이카투 죽고, 바이두 왕위에 오르다…427_232 북방에 거주하는 칸치 왕에 대한 이야기…428_233 ‘영원한 어둠의 나라’…431_234 넓은 러시아국과 그 주민…432_235 대해로의 관문…436_236 서북 타타르국의 역대 제왕…436_237 훌라구와 베르케 사이에 벌어진 전쟁…437_238 베르케, 훌라구를 향해 진격하다…437_239 부하 장병에 대한 훌라구의 연설…439_240 훌라구군과 베르케군의 격전…439_241 계속해서 훌라구군과 베르케군의 격전…440_242 베르케의 용감한 분전…442_243 서북 타타르 왕국, 투다멩구 즉위…443_244 토크타, 노가이 소환하여 톨로부가의 죽음에 대한 해명 요구하다…444_245 토크타, 다시 사신을 노가이에게 보내다…444_246 토크타의 노가이 친정…445_247 토크타의 연설…446_248 노가이 왕의 분전…448

동방의 빛을 찾아서
동방 무역을 꽃피운 중세 베네치아…454_13세기 실크로드와 남해 항로…455_마르코 폴로의 세계 일주…457_《동방견문록》…459_마르코 폴로 길을 떠나다…464_《동방견문록》의 성립과 전래…466
 

저자 소개

저자 : 마르코 폴로
열다섯 살 때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동방 여행길에 올라,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과 인도를 거치는 25년의 여정을 마치고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온다. 그 뒤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베네치아군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되는데, 감옥에서 소설가 루스티첼로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마르코 폴로의 경험담을 루스티첼로가 글로 옮겨, 마침내 위대한 고전「동방견문록」이 탄생한다.
역자 : 채희순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교수,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 사범대 교수를 지냈다. 고등고시위원 역임했다. 지은책으로는 『동양사개론』, 『동양문화사』, 『대세계의 역사』, 『(고등학교)세계사』 옮긴책으로는 『맹자(역해)』, 『손자(역해)』, 『오자(역해)』, 『한비자(역해)』 『손자병법(역해)』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난 내가 본 것의 절반도 쓰지 않았다!”
경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아시아의 혼
유럽인들에게 신비로운 동양정신을 불어넣은
『동방견문록』 한국최초 완역 결정판!
13세기 서양인의 눈으로 본 세계문화편람!


운명적 만남이 낳은 위대한 불후의 고전
마르코 폴로는 열다섯 살 때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동방 여행길에 올라,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과 인도를 거치는 25년의 여정을 마치고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온다. 그 뒤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베네치아군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되는데, 감옥에서 소설가 루스티첼로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마르코 폴로의 경험담을 루스티첼로가 글로 옮겨, 마침내 위대한 고전『동방견문록』이 탄생한다.
『동방견문록』은 모두 248절로 이루어졌으며,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여덟 개 장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서장은 마르코 폴로가 어떻게 여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제1장은 대?소아르메니아와 투르크메니아를 거쳐 이라크와 페르시아에 이르는 서아시아를 다룬다. 제2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미르를 넘어 타림분지를 거치는 중앙아시아에 대해 서술한다. 제3장은 쿠빌라이 칸 수도인 상도(上都)와 대도(大都)의 모습, 그리고 대칸의 통치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제4장은 중국 북부(카타이)와 사천·운남, 미얀마를 설명하며 제5장은 중국 동남부, 당시 '만지'라고 불리던 남송 영역을 다룬다. 제6장은 베네치아 귀국 길에 보고 들은 인도 각지의 모습을 묘사하고 마지막 제7장은 중앙아시아 대초원과 러시아, 북극지방을 설명한다. 이처럼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그즈음 알려진 모든 세계를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동방견문록』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13세기 서양인의 시각으로 쓴 세계문화편람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인류역사 최초 대위업
13세기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유럽과, 종교적으로 대립하는 이슬람 문화권만을 ‘세계’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동방’은 단지 여러 구전이나 소문으로 어렴풋이 들려올 뿐, 구체적인 세계의 일부로서 인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무렵 아시아에서는 세계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복왕조가 세워져, 유목과 농경이 조화된 화려하고 웅장한 문화가 탄생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마르코 폴로는 중국을 여행하여 그것을 직접 보고 겪었다.『동방견문록』을 통해 드디어 유럽인들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단절되어 있던 동?서가 이『동방견문록』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동방 왕국의 화려한 궁정생활, 신화에나 나올 듯한 신비스런 짐승들, 위대한 왕 프레스터 존, 어마어마한 금은보화와 각종 특산품, 거대한 도시와 신기한 풍습, 수십만 기마대가 펼치는 처절한 전투 등,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유럽 밖의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하던 당시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허풍쟁이로 치부했다. 어느 것에든 ‘수백만의…’하며 수를 부풀리는 그에게 ‘백만 선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1324년 마르코 폴로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친구들은 그의 손을 잡으며, 지금이라도『동방견문록』에 담은 이야기들이 거짓임을 밝히고 참회하라고 설득했다. 물론 마르코의 대답은 이러했다. “거짓이라니, 난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다 쓰지 않았어.”
이때 사람들은『동방견문록』이 인류역사 큰 획을 그은 세계고전으로 남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수많은 논란에도『동방견문록』은 필사본으로 온 유럽에 퍼졌고, 성경 다음으로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더 넓은 세상을 동경하던 사람들은『동방견문록』을 읽고 동방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고, 그리하여 동서양은 더욱 가까워지고 문화교류를 통해 유럽 근대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서양인 시각으로 본 동양인
13세기는 몽골에 의한 중국 전역 통일이 완성된, 대원 정복 왕조의 통치체제가 확립된 시기이다. 물론 이 시기에 대한 중국의 자료가 특별히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이 특수한 시기를 중국 이외의 시선으로 남긴 기록이 있다는 것에 그 중요성이 있다.
본디 이역 사람에 의한 중국 사정의 보고에는, 중국인이라면 진부하기 짝이 없어서 간과할 법한 사항에 대해서도 이국인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관찰해서 서술한 것이 꽤 있다. 특히 마르코 폴로는 색목인(서역인)을 몽골인과 비슷하게 우대했던 원조의 독자적인 정책에 힘입어 말석이긴 해도 직접 정치계층에 낄 수 있었기에, 마땅히 그 보고는 보통 외국인 여행자가 그렇듯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관찰만이 아닌 그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 쿠빌라이 칸의 여름 수도가 되는 상도, 겨울 수도가 되는 대도의 궁전 각각의 구조, 대칸 궁정에서 개최된 향연을 비롯한 연간행사, 유림에서 대칸의 행궁과 사냥놀이의 묘사는 궁정에 드나들 수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으며, 이는 중국 문헌의 누락이나 결함을 보충할 자료이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는 본디 상인이다. 따라서 그의『동방견문록』은 타국의 색다른 성격과 풍속을 주로 기록했던 평범한 여행자들의 여행기와는 전혀 다르다.『동방견문록』은 그보다도 각지의 산물, 물가, 시장상황, 통화 등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면서 그 모습을 다루고 있다. 산물 중에서도 특히 황금, 은, 보석, 진주, 향료, 향수, 비단 같은 상품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마르코 폴로가 사치품 무역에 종사하던 상인이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실익을 가져다줄만한 것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그와 관련된 사정을 부정확하거나 애매하게 기록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는 당연히 이러한 사항을 면밀하게 기록했다. 그런데 실은 이런 기록이 있었기에 이 풍부하고 정확한 ‘견문록’이 내려올 수 있었다.

사실과 구전을 바탕으로 한 놀랍고 신비로운 기록
『동방견문록』은 피사 출신 소설가 루스티첼로가 제노바 감옥에서 마르코 폴로의 구술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을 조본(祖本)으로 한다. 소설가의 손을 거쳤으므로, 소설과 비슷한 구절이 곳곳에서 보인다. 예를 들면 26~29절 그리스도교도 구두장이의 기적, 32~33절 사바의 성인 세 명이 받은 계시, 36절 토질과 인정의 관계에 대한 케르만 왕의 실험, 42~44절 ‘산속 노인’, 55절 사마르칸 교회에서 일어난 기적 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코 폴로나 루스티첼로가『동방견문록』에 지어낸 이야기를 넣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산속 노인’이나 69~73절 프레스터 존 멸망의 전말, 제96절 아크메트 암살 이야기 등은 모두 소설같이 서술되어 있기는 해도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예를 들면 121~122절의 ‘금왕’과 프레스터 존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도 마르코 폴로는 그 지방의 구전을 바탕 삼아 서술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각지에서 전승된 이야기가 저자를 통해서 이러한 형태로 재연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동방견문록』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비교적 단조로운 문체와 더불어 ‘상투적인 표현’을 지적받았고, ‘허풍쟁이 마르코 이야기’라고 깎아내려지며 단지 어린이용 옛날이야기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후 시대가 중세를 벗어남에 따라 이 책의 신빙성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오랜 세월 이런 취급을 받아온 『동방견문록』은 19세기 이후 번역자들의 노력으로 재평가되었다. G. 포티에의 1865년 프랑스어 판이 그 시초임과 동시에 가장 뛰어난 역작이라면, 1871년 이후 수년에 걸친 H. 유울의 영어판 및 1918년 이후 P. 페리오의 주석은 그 역작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다.『동방견문록』이 참으로 위대한 동양학자의 주석에 의해 수세기 만에 그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세계를 하나로 이어낸 숭고한 업적
아주 오랜 옛날부터 동과 서를 잇는 교통노선을 오간 사람의 수는 실로 막대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이름 없는 자들이다. 이름 없는 자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름 없는 자라고 해도 그 지식은 본인을 통해 반드시 주변으로 퍼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범위는 대단히 한정적이고, 그 전승도 전해들은 각 개인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히 다양한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국 망각 속으로 묻혀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록과 필사는, 정보를 올바르게 전승하여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다 같은 기록과 필사라도, 체험자 본인이 남긴 견문록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가치가 높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참으로 숭고한 그 기록들이 당시, 그리고 후세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가.『동방견문록』은 그중에서도 다른 것과는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규모에서 비롯되는 내용의 풍부함이 그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세계 일주라고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그 여행의 의의와 더불어 그 내용의 풍부함을 통해, 그의 업적에는 이중적인 중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