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9.경남권 관광

대성동고분박물관2

동방박사님 2011. 11. 1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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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 고분

[ 金海 大成洞 古墳 ]

지역 김해

현재 김해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낮은 구릉상에 조영된 고분군으로 문헌상 금관가야(金官伽耶)의 소재지로 알려진 김해지역(金海地域) 수장층(首長層)의 공동묘지로 인정된다. 경성대학교박물관(慶星大學校博物館)에 의해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됨으로써 이 고분군에서는 구릉의 낮은 저지대로부터 널무덤(木棺墓)이 축조되기 시작하고 점차 구릉 위로 가까워지면서 덧널무덤(木槨墓)으로 발전하여 마침내는 대규모의 주부곽식덧널무덤(主副槨式木槨墳)이 축조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묘제는 널무덤으로서, 출토된 유물은 쇠뿔잡이항아리(組合式牛角形把手府壺), 주머니토기, 항아리(短頸壺) 등의 와질토기류, 철검(鐵劍), 쇠화살촉(鐵鏃), 쇠투겁창(鐵矛) 등의 철제 무기류이다. 이들 널무덤들은 삼한시대(三韓時代) 전기에 해당되며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나오는 변진 구야국(弁辰狗邪國) 지배집단의 무덤에 비정될 만하다.

 

이 고분군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주된 묘제로 부각되는 것은 덧널무덤(木槨墓)이라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자는 이를 두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그 중 Ⅰ류는 깊이가 얕고 판재(板材)나 각재(角材)를 이용하여 나무덧널을 조립한 것이며, Ⅱ류는 깊이 2m 전후로 깊고 통나무로 조립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따로 독립된 딸린덧널(副槨)을 설치한 것이다. 이들 덧널무덤에서는 다양하고 풍부한 부장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우선 많은 양의 토기류가 출토되었고 철제 무기류, 갑옷류, 마구류, 농공구류들은 물론 낙랑지역(樂浪地域)으로부터 수입되어 전세(傳世)된 유물이나 왜(倭)로부터 유입된 유물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어 구야국(狗邪國) 혹은 금관가야국(金官伽耶國)의 국가적인 성장과정이나 그 특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덧널무덤들은 대개 3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에 걸치는 것들인데, 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29호분에서는 동복(銅)이라고 하는 북방유목민(北方遊牧民)의 청동용기(靑銅容器)가 출토되었고, 바로 그 다음 시기에 해당되는 13호 대형 주부곽식덧널무덤에서는 방격규거신경(方格規矩神鏡)이라는 중국제 거울이 출토되었다. 이것들은 낙랑지역으로부터 하나의 위세품(威勢品)으로 유입되어 장기간 전세되다가 부장된 유물로서 이전시기부터 한군현 지역과의 교역이 활발하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덧널무덤의 규모가 대형화되고 철제 무기류, 갑옷류, 마구류들이 다량으로 매납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외국으로부터 이입된 의기적(儀器的)인 유물들이 많이 출토된다. 그 중에도 원판비(圓板비), 고식말띠드리개(古式杏葉) 등의 마구류(馬具類)와 비늘갑옷(札甲), 몽고발형투구(蒙古鉢形胄) 등의 갑옷은 중국의 중원지역(中原地域)으로부터 발전되어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인 북방호족들, 즉 숙신(肅愼),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 등과 같은 종족, 또는 호족(胡族)들이 북중국(北中國)에 건설한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에서 발전시킨 문물로서, 낙랑의 소멸 이후 김해지역이 북방민족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 한편으로 4세기대 대성동 고분군의 출토유물로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왜계 유물(倭系遺物)이라고도 하는 일본에서 수입되었거나 일본지역과 관련성이 높은 유물이다. 대체로 이 왜계 유물들은 4세기대 일본 전기고분에 부장되던 석제모조품(石製模造品), 파형동기(巴形銅器), 통형동기(筒形銅器) 등인데 당시 금관가야와 왜지역과의 정치·경제적인 상호작용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은 유물들이다.

 

 

대성동 고분군이 발굴되면서 출토된 많은 북방계유물이나 북방계장속(北方系葬俗) 및 묘곽의 중복현상 등을 근거로 기마민족정복왕조설이 재론되기도 하였고 특히 5세기 전반대에 수장급의 대형묘(大型墓)가 더 이상 축조되지 않는 현상을 민족이동설(民族移動說)로 이해하려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