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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을 집대성한다는 기획 아래 출간되고 잇는 한길 그레이트 북스 89번째 권, 이지의 『속분서』. 명대 말기의 사상가 이지(李贄, 1527~1602, 호는 卓吾)의 사후, 1619년 말년의 가장 가까웠던 벗이자 제자였던 왕본아의 편집을 거쳐 세상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고, 그의 후반기 삶을 통틀어 소개하는 시문모음집이다. 생전인 1590년에 출간된『분서』(2004, 한길사)와 그 구성과 체계를 비슷이 하며, 맨 앞의 편짓글(書答)과 잡술(雜術)이라 명명한 에세이, 역사평론(讀史), 그리고 시가(詩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서』가 장년의 한창나이 때 씌어져 재기발랄하면서도 유장한 문장들로 채워진 까닭에 문학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저작이라면, 이 책 『속분서』는 불교와 생사에 대한 관심이 한층 깊어진 상황에서 씌어져 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의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분서』에 비해 편폭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사유의 깊이는 한층 심화된 저작으로 역자주만 1230개에 이르는 한길사의 완역으로 소개되고 있다.
목차
이탁오 『속 분서』 서문 - 초횡
이탁오의 편지글을 읽고 - 장내
이탁오 『속 분서』 서문 - 왕본아
권1. 편지모음
권2. 서문모음 / 설문모음 / 논문모음
권3. 역사 읽기 모음
권4. 잡문 모음
권5. 시 모음
오칠언 고체시 / 오언고시 / 칠언고시
이탁오의 편지글을 읽고 - 장내
이탁오 『속 분서』 서문 - 왕본아
권1. 편지모음
권2. 서문모음 / 설문모음 / 논문모음
권3. 역사 읽기 모음
권4. 잡문 모음
권5. 시 모음
오칠언 고체시 / 오언고시 / 칠언고시
젊은 중문학자의 10여 년의 결실
이지는 독특한 사람됨과 저작의 명성으로 깊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중국 역사상 이렇게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과 저작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 이지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 채 풍문으로만 그를 신화화해온 느낌이 없지 않다. 그 좋은 보기로, 중국 사회주의자들이 이지를 비운의 혁명가로 학습했던 이상한 열정을 꼽을 수 있겠다. 이지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이지의 육성을 듣는 일이 급선무였다. 이지는 하나의 도그마로 규정할 수 없는 실로 복합적이고 입체적이고 폭넓은 사상을 지닌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길사에서 펴낸 한글판 '분서' '속분서'의 의미는 매우 값지다.
부분적으로 발췌 번역한 한글번역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지의 생각을 더 생생하고 온전히 살필 수 있는 완전번역본은 아직 없었다. 중국에서조차 세심한 역주를 붙인 '분서'의 완역본이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 이유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분서'란 책이 출간된 당시인 명대 말기부터 청(淸)대를 거쳐 민국(民國)으로 근대화될 때까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근대화시기, 즉 청에서 민국으로 정체가 바뀌면서 중국인의 문자생활은 번잡한 고문을 버리고 백화문으로 간소해졌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로 해서 고문 해독력을 가진 학자가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중국사상의 주류가 아니었던 이지의 사상이 제대로 해석될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옮긴이 김혜경은 과거의 온갖 전적(典籍)을 끝없이 재해석하면서 꼼꼼한 주해를 달기로 정평이 난 중국의 학인들이 이지에게만큼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음에 놀라며, 자신의 어려웠던 10년 동안의 번역과정을 ‘고심참담’이란 말로 요약하고 있다. 미조구치 유조 등의 이지 번역본이 참고가 됐지만 그것도 역시 “완역 완주”의 성과가 담긴 책은 아니었기에 옮긴이가 번역과정에 맛보았을 고통이 ‘고심참담’으로 표현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명,청 시대에 금서로 가장 유명했던 이런 '분서' '속분서'가 오늘 우리 앞에 세심한 번역으로 온전하게 첫선을 보인다는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이제 이지의 사람됨과 생각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1차 자료가 생김으로 해서 비등하는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에 한층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원숙해진 이지의 철학론
탁오는 인생의 최고 목표를 생사를 초월한 자유자재의 초연한 경계에 다다르는 것, 곧 구속 없는 상태의 심리적 자유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평생 도를 찾아 헤맸고 또 이를 도와줄 벗의 존재에 목마르다고 저술 곳곳에서 부르짖는다. 이 책 '속분서'에는 나이 들어 노쇠를 자각하기 시작한 그가 얼마나 가열차게 성명(性命)의 도를 탐구했는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따라서 생사에 관한 언급도 눈에 많이 띈다. '분서'에서도 ‘원래 삶과 죽음이 없다’(原無生死)라는 불경의 한 대목을 설명하면서 믿고 안 믿고 내려놓고 내려놓지 못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생사에 속하는 문제이며, 생사에 속한다는 것은 또한 자신에게 달린 문제라고 결론지은 바 있었다. 기성의 시비선악을 모두 ‘무’(無)로 돌리며 인간의 실존에 입각한 성명의 본질을 추구했던 그는 마침내 도가의 ‘도’나 석가의 ‘무’가 유가의 ‘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삼교귀유’(三敎歸儒)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외연이야 다를 수 있어도 초월을 지향하는 진리의 실체만큼은 각 사상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이지 고유의 철학론이다. '분서'에 실린 '동심설'(童心說) 같은 글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가의 인성론을 두루 융합해 엮어낸 통합적 사유의 보다 구체적인 실례가 될 것이다. 이렇듯 선악에 대한 기존의 시비를 부정했던 그는 명말이라는 복잡한 시대를 살며 그 시대에 합당한 새로운 가치체계를 창출해내려 하였다. 탁오를 읽을 때는 이러한 해체와 통합의 사유과정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지는 독특한 사람됨과 저작의 명성으로 깊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중국 역사상 이렇게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과 저작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 이지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 채 풍문으로만 그를 신화화해온 느낌이 없지 않다. 그 좋은 보기로, 중국 사회주의자들이 이지를 비운의 혁명가로 학습했던 이상한 열정을 꼽을 수 있겠다. 이지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이지의 육성을 듣는 일이 급선무였다. 이지는 하나의 도그마로 규정할 수 없는 실로 복합적이고 입체적이고 폭넓은 사상을 지닌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길사에서 펴낸 한글판 '분서' '속분서'의 의미는 매우 값지다.
부분적으로 발췌 번역한 한글번역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지의 생각을 더 생생하고 온전히 살필 수 있는 완전번역본은 아직 없었다. 중국에서조차 세심한 역주를 붙인 '분서'의 완역본이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 이유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분서'란 책이 출간된 당시인 명대 말기부터 청(淸)대를 거쳐 민국(民國)으로 근대화될 때까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근대화시기, 즉 청에서 민국으로 정체가 바뀌면서 중국인의 문자생활은 번잡한 고문을 버리고 백화문으로 간소해졌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로 해서 고문 해독력을 가진 학자가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중국사상의 주류가 아니었던 이지의 사상이 제대로 해석될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옮긴이 김혜경은 과거의 온갖 전적(典籍)을 끝없이 재해석하면서 꼼꼼한 주해를 달기로 정평이 난 중국의 학인들이 이지에게만큼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음에 놀라며, 자신의 어려웠던 10년 동안의 번역과정을 ‘고심참담’이란 말로 요약하고 있다. 미조구치 유조 등의 이지 번역본이 참고가 됐지만 그것도 역시 “완역 완주”의 성과가 담긴 책은 아니었기에 옮긴이가 번역과정에 맛보았을 고통이 ‘고심참담’으로 표현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명,청 시대에 금서로 가장 유명했던 이런 '분서' '속분서'가 오늘 우리 앞에 세심한 번역으로 온전하게 첫선을 보인다는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이제 이지의 사람됨과 생각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1차 자료가 생김으로 해서 비등하는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에 한층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원숙해진 이지의 철학론
탁오는 인생의 최고 목표를 생사를 초월한 자유자재의 초연한 경계에 다다르는 것, 곧 구속 없는 상태의 심리적 자유라고 보았다. 그 때문에 평생 도를 찾아 헤맸고 또 이를 도와줄 벗의 존재에 목마르다고 저술 곳곳에서 부르짖는다. 이 책 '속분서'에는 나이 들어 노쇠를 자각하기 시작한 그가 얼마나 가열차게 성명(性命)의 도를 탐구했는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따라서 생사에 관한 언급도 눈에 많이 띈다. '분서'에서도 ‘원래 삶과 죽음이 없다’(原無生死)라는 불경의 한 대목을 설명하면서 믿고 안 믿고 내려놓고 내려놓지 못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생사에 속하는 문제이며, 생사에 속한다는 것은 또한 자신에게 달린 문제라고 결론지은 바 있었다. 기성의 시비선악을 모두 ‘무’(無)로 돌리며 인간의 실존에 입각한 성명의 본질을 추구했던 그는 마침내 도가의 ‘도’나 석가의 ‘무’가 유가의 ‘인’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삼교귀유’(三敎歸儒)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외연이야 다를 수 있어도 초월을 지향하는 진리의 실체만큼은 각 사상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이지 고유의 철학론이다. '분서'에 실린 '동심설'(童心說) 같은 글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가의 인성론을 두루 융합해 엮어낸 통합적 사유의 보다 구체적인 실례가 될 것이다. 이렇듯 선악에 대한 기존의 시비를 부정했던 그는 명말이라는 복잡한 시대를 살며 그 시대에 합당한 새로운 가치체계를 창출해내려 하였다. 탁오를 읽을 때는 이러한 해체와 통합의 사유과정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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