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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야스다 요시카타라는 일본 큐슈 남단의 사쯔마번(현재 카고시마현 지역)의 중급 무사가 조선에서 표류하게 되면서 남긴 일기이다. 1819년 6월부터 다음해 정월까지 기록한 것으로 주로 머물렀던 충청도 비인현 마량진의 안파포, 경상도 부산의 다대포, 초량, 우암포 등의 포구의 모습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인물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기물, 자신이 항해한 경로 등도 그림으로 담겨있다. 야스다는 한문을 잘 구사할 수 있었기에 조선의 관인들과 어떻게 능숙하게 필담을 나누고 정서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목차
발간사 3
책머리에 6
범례 23
『조선표류일기』
『조선표류일기』 등사 서문 29
『조선표류일기』 뒤에 쓰다 31
『조선표류일기』 권1 35
『조선표류일기』 권2 99
『조선표류일기』 권3 171
『조선표류일기』 권4 239
『조선표류일기』 권5 309
『조선표류일기』 권6 361
『조선표류일기』 권7 439
『조선표류일기』 후서 494
『朝鮮漂流日記』(탈초본)
謄寫朝鮮漂流日記序 497
書漂流日記後 499
『朝鮮漂流日記』 壹 501
『朝鮮漂流日記』 貳 543
『朝鮮漂流日記』 參 581
『朝鮮漂流日記』 ? 627
『朝鮮漂流日記』 伍 669
『朝鮮漂流日記』 陸 705
『朝鮮漂流日記』 質 749
역자 후기 789
책머리에 6
범례 23
『조선표류일기』
『조선표류일기』 등사 서문 29
『조선표류일기』 뒤에 쓰다 31
『조선표류일기』 권1 35
『조선표류일기』 권2 99
『조선표류일기』 권3 171
『조선표류일기』 권4 239
『조선표류일기』 권5 309
『조선표류일기』 권6 361
『조선표류일기』 권7 439
『조선표류일기』 후서 494
『朝鮮漂流日記』(탈초본)
謄寫朝鮮漂流日記序 497
書漂流日記後 499
『朝鮮漂流日記』 壹 501
『朝鮮漂流日記』 貳 543
『朝鮮漂流日記』 參 581
『朝鮮漂流日記』 ? 627
『朝鮮漂流日記』 伍 669
『朝鮮漂流日記』 陸 705
『朝鮮漂流日記』 質 749
역자 후기 789
출판사 리뷰
『조선표류일기』는 야스다 요시카타라는 일본 큐슈 남단의 사쯔마번(현재의 카고시마현 지역)의 중급 무사가 조선에서 표류하게 되면서 남긴 일기이다.
『조선표류일기』에는 다양한 그림이 실려 있다. 인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물, 자신이 항해한 경로, 배가 머문 포구까지도 그림으로 남겼다. 19세기 초 당시 조선의 모습을 활사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야스다의 관찰력은 예리하였다. 단지 지세나 풍경만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난 인물들의 얼굴 모습과 복장, 관인 복장의 차이점, 일상적인 풍습까지 빠짐없이 살피고, 자세하게 그림으로 남겼다. 문인화의 전통이 강한 조선의 양반이었다면, 한 폭의 산수화로 그렸을 대상을 도화원에 속한 화원이라도 되는 양, 정밀하게 묘사한 점이 『조선표류일기』의 특징이다.
『조선표류일기』에는 야스다 일행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포구의 그림이 들어 있다. 대표적으로 충청도 비인현 마량진의 안파포, 경상도 부산의 다대포, 초량, 우암포 등이다. 초량 주변은 다대포에서 우암포로 가는 과정에서 해상에서 목격한 광경을 그린 것이라 자세하지 않지만, 안파포, 다대포, 우암포는 상당 기간 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자세한 그림을 남겼다. 안파포의 경우는 내부의 상황이나 해안 마을의 모습뿐만 아니라, 방위ㆍ거리 등도 표시하였다. 다대포의 경우도 다대진의 모습을 비롯하여, 포구 주변의 상황까지 자세히 그렸다. 또한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초량왜관에 상주하고 있는 대마도의 관인들이, 야스다 일행의 표류상황 조사 및 송환을 위해서, 타고 온 배의 모습까지 그려놓았다.
『조선표류일기』는 표류 당사자가 한문을 구사할 수 있는 유식자였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다른 표류자와 달리, 조선의 관인들과 많은 필담을 나누었다. 조선 측의 표류 사정 청취와 관련된 내용을 비롯하여, 표류인에 대한 음식물과 땔감의 지급 및 부산으로 송환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서해상의 송환경로의 상당 부분을 그림으로 남겼고, 그 경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위도에서 연안 쪽을 항해하지 않고 외양 쪽으로 돌아서 남하한 경우와 팔금도에서 바로 남하하지 않고 외양으로 나간 다음 남하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이유가 조류의 흐름을 이용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항로를 일본인에게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것인지는 앞으로 밝혀야 할 부분이다.
『조선표류일기』에는 다양한 그림이 실려 있다. 인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물, 자신이 항해한 경로, 배가 머문 포구까지도 그림으로 남겼다. 19세기 초 당시 조선의 모습을 활사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야스다의 관찰력은 예리하였다. 단지 지세나 풍경만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난 인물들의 얼굴 모습과 복장, 관인 복장의 차이점, 일상적인 풍습까지 빠짐없이 살피고, 자세하게 그림으로 남겼다. 문인화의 전통이 강한 조선의 양반이었다면, 한 폭의 산수화로 그렸을 대상을 도화원에 속한 화원이라도 되는 양, 정밀하게 묘사한 점이 『조선표류일기』의 특징이다.
『조선표류일기』에는 야스다 일행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포구의 그림이 들어 있다. 대표적으로 충청도 비인현 마량진의 안파포, 경상도 부산의 다대포, 초량, 우암포 등이다. 초량 주변은 다대포에서 우암포로 가는 과정에서 해상에서 목격한 광경을 그린 것이라 자세하지 않지만, 안파포, 다대포, 우암포는 상당 기간 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자세한 그림을 남겼다. 안파포의 경우는 내부의 상황이나 해안 마을의 모습뿐만 아니라, 방위ㆍ거리 등도 표시하였다. 다대포의 경우도 다대진의 모습을 비롯하여, 포구 주변의 상황까지 자세히 그렸다. 또한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초량왜관에 상주하고 있는 대마도의 관인들이, 야스다 일행의 표류상황 조사 및 송환을 위해서, 타고 온 배의 모습까지 그려놓았다.
『조선표류일기』는 표류 당사자가 한문을 구사할 수 있는 유식자였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다른 표류자와 달리, 조선의 관인들과 많은 필담을 나누었다. 조선 측의 표류 사정 청취와 관련된 내용을 비롯하여, 표류인에 대한 음식물과 땔감의 지급 및 부산으로 송환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서해상의 송환경로의 상당 부분을 그림으로 남겼고, 그 경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위도에서 연안 쪽을 항해하지 않고 외양 쪽으로 돌아서 남하한 경우와 팔금도에서 바로 남하하지 않고 외양으로 나간 다음 남하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이유가 조류의 흐름을 이용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항로를 일본인에게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것인지는 앞으로 밝혀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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