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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벼락 거지’는 넘치고 빈민은 가려지는 시대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가난은 무엇인가?
가난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당장 먹을 음식이나 잘 곳이 없는 것, 생활비 부족, 심지어는 원하는 브랜드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디어에서는 ‘하우스 푸어’, ‘카 푸어’처럼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자산은 소유하고 있지만, 구매력이 떨어진 상황에 ‘가난(푸어)’이라는 수식을 붙이기도 한다. 이 모든 ‘가난’은 모두 같은 가난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은 ‘가짜’ 가난이고, 어떤 것은 ‘진짜’ 가난인 걸까? 지금 나의 상태도 가난이라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빈곤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반빈곤 활동가였고, 현재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학계, 사회운동, 정책과 정치 분야에서 두루 공헌한 저자는 이 책에서 가난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실질적인 대안을 제공한다.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가난은 무엇인가?
가난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당장 먹을 음식이나 잘 곳이 없는 것, 생활비 부족, 심지어는 원하는 브랜드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디어에서는 ‘하우스 푸어’, ‘카 푸어’처럼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자산은 소유하고 있지만, 구매력이 떨어진 상황에 ‘가난(푸어)’이라는 수식을 붙이기도 한다. 이 모든 ‘가난’은 모두 같은 가난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은 ‘가짜’ 가난이고, 어떤 것은 ‘진짜’ 가난인 걸까? 지금 나의 상태도 가난이라 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빈곤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반빈곤 활동가였고, 현재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학계, 사회운동, 정책과 정치 분야에서 두루 공헌한 저자는 이 책에서 가난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실질적인 대안을 제공한다.
목차
제1판 서문
제2판 서문
들어가며
1장 빈곤의 정의
2장 빈곤의 측정
3장 불평등, 사회적 범주, 서로 다른 빈곤 경험
4장 빈곤 담론: 타자화에서 존중까지
5장 빈곤과 행위주체성: 견뎌내기에서 조직화까지
6장 빈곤, 인권, 시민권
나가며: 개념에서 정치로
옮긴이의 말
주
찾아보기
제2판 서문
들어가며
1장 빈곤의 정의
2장 빈곤의 측정
3장 불평등, 사회적 범주, 서로 다른 빈곤 경험
4장 빈곤 담론: 타자화에서 존중까지
5장 빈곤과 행위주체성: 견뎌내기에서 조직화까지
6장 빈곤, 인권, 시민권
나가며: 개념에서 정치로
옮긴이의 말
주
찾아보기
책 속으로
빈곤이란, ‘누구나 갖는 꿈을 똑같이 갖고 있지만 실현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 ‘아이들에게 허구한 날 안 된다고 말하는 것.’ ‘아이들의 실망한 눈빛 때문에 해마다 돌아오는 성탄절과 생일을 두려워하는 것.’ ‘남이 쓰던 침대에서 자고 헌 옷을 입으면서 고마워하라는 요구를 받는 것.’ ‘매일매일,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상태로 사는 것.’ ‘쓸모없는 존재, 그보다 더 못한 존재로 취급당하면서 그걸 받아들이는 것.’ ‘내면에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
---「들어가며」중에서
우리는 ‘빈민’의 수를 세는 데만 골몰하여 ‘집계되지 않는 사람들의 범주’로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고통을 보지 못 한다. ‘미국의 뒷줄’에 관해 쓴 책의 말미에서 크리스 아네이드는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해도 그런 작업은 ‘그저 숫자에 불과한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그들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 여기서 관건은 물질적 측면뿐 아니라 비물질적 측면으로도 나타나는 빈곤의 징후다. 빈곤을 불리하고 불안정한 경제 조건으로서만이 아니라, 수치스럽고 유해한 사회관계로 이해하도록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들어가며」중에서
상대적 빈곤에 담긴 비교요소의 핵심은, 어떤 사람이 상대적으로 빈곤한지 아닌지는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사는 타인들과 비교할 때에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1930년대 영국에서 끔찍한 고난을 겪어 본 사람들은 이제 ‘진짜’ 빈곤은 사라졌다고 말하곤 한다. 빈곤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러한 비교는 잘못된 것이다. 21세기에 적당한 생활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짧은 기간으로 보아도 일반적인 생활수준이 계속 향상하고 기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기에,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가 다수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안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계속 등장한다.” 이를테면 값비싼 난방 방식이나 감당하기 힘든 고급 슈퍼마켓에서부터 개인용 컴퓨터, 태블릿과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기술의 확산, 인터넷 접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최근에 등장한 이러한 항목이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취학 어린이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가족과 빈곤에 관한 북아일랜드의 한 연구는 ‘절대적’, ‘상대적’ 필요의 경계가 실제로 얼마나 ‘흐릿한’지를 보여 준다. “어린이의 사회 활동을 위한 지출이 좋은 사례다. 이런 지출은 필수적이지 않으니 우선 순위로 삼지 않는다는 입장과 그래도 오늘날에는 사회 활동이 어린이의성장과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느끼는 입장 사이에서 저소득층 양육자는 가장 큰 도덕적 갈등을 겪는다.” 인터넷과 텔레비전 [채널] 가입에 대해서도 비슷한 고민이 나타나는데, 어린이의 숙제를 중시하는 쪽에서는 이런 지출을 필수로 여기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놀이와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갈등은 타인이 ‘도덕적 판단과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빈곤층의] 소비 선택’에 의문을 표할 때 첨예해진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엘리자베스 다울러와 수지 레더는 “음식은 그 사람이 누구이고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그리고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음식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소속감의 중심’이다. (가격대가 높고 재고가 부족할 때가 많은 지역 식품 매장에서) 저렴한 식품을 구하기 위한 발품 팔이,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에 평소와 같은 식단을 유지하려는 노력, 가족이 못 먹거나 버리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식단을 시도하는 위험, 식사를 사회 활동으로 즐길 여력이 없는 상태 등은 모두 빈곤층에게 음식이 생리적 필요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필요로 나타나는 사례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필요가 사회적·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현상은 [스미스의 시대보다는] 현대 소비사회의 맥락에서 더 뚜렷이 드러난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소비는 상대적 박탈이 발생할 수 있는 장인 동시에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표가 된다. 무엇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향이 늘어나면, “빈민은 … ‘결함 있는 소비자’로 재구성된다.”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전 광고의 압력이 ‘보편적인 구매 문화culture of acquisition’를 조성하는 탓에, 빈곤층 양육자가 자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진다. 브랜드와 상표가 물품 자체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닐 때, 적은 돈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의류와 신발의 필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된다. 어떤 물건을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중고 물품이냐, 유명 브랜드냐, 자체 상품이냐 같은) 품질, 그리고 (다수가 이용하는 소매점이냐, 중고품 매장 같은 비공식 경로냐 같은) 출처가 문제가 된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라운트리가 했던 연구 중에서 ‘빈민층은 부족한 소득을 왜 음식이 아니라 오락에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을 보면, 그가 기본적인 필요는 단지 신체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노동자들은 그저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과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인간은] ‘배만 겨우 채우며’ 살 수 없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바 없이 휴식과 오락을 갈망한다. 그러나 … 그런 것은 신체적 건강에 필수적인 무언가를 줄여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핍을 감수한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내가 언어를 수집한 대상인 그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 자기도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 “가난한 사람을 전부 하나로 뭉뚱그리는 유형화 때문에 타인의 눈에 비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타자화는 자기와 사회의 문제를 손쉽게 타자의 탓으로 돌리게 하고, ‘빈민’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이 문제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상징적 배제 전략’으로 쓰인다. 또한 ‘빈민’에 대한 타자화는 다른 이들에게 던지는 경고로도 작용한다. 빈곤은 이렇게 ‘하나의 유령, 즉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유익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우리’와 ‘그들’의 관계에 있어서 타자화는 빈곤의 토대를 이루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또 우월함을 근거로 하는 ‘우리’의 특권과, 열등함을 근거로 하는 ‘그들’을 향한 억압을 정당화하고, 그리하여 구조적 원인을 은폐한다. 여기서 타자화 과정에 권력관계가 각인되는 방식이 뚜렷이 드러난다. 따라서 타자화가 두드러진 곳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4장 빈곤 담론: 타자화에서 존중까지」중에서
동등한 가치와 인간 존엄의 인정이라는 원칙을 대부분 입으로만 떠들고 만다. (…) 앤 필립스가 말했듯이, “충분히 부유한 사회인데도 극도의 빈곤을 외면하거나, 자의적으로 한 가지 기술에 다른 기술의 100배에 달하는 임금을 지급한다면, 그 사회는 시민을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부유한 이들은 빈곤층을 자기와 똑같이 ‘존엄한 존재’로 느끼기에는 사회적으로, 때로는 지리적으로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존중이 ‘불평등의 경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 미국과 영국 같은 이른바 능력주의 사회에서 “존중의 도표에 실패자의 자리는 없다.” 빈곤은 곧 실패를 뜻한다.
---「4장 빈곤 담론: 타자화에서 존중까지」중에서
빈곤에 빠져들고 벗어나는 양방향의 움직임은 모두 한편으로는 (빈민이든 비빈민이든) 개인 행동의 산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사회적 과정 및 정부 정책의 산물이다. (…) 여러 선진국에서 매년 빈곤 상태를 오가는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으며, 일정 기간에 걸쳐 빈곤을 경험하는 사람이 일회성 측정으로 파악한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빈곤의 궤적, 특히 빈곤으로 빠져드는 과정은 자녀 출생이나 동반자 관계 해소와 같은 생애 주기적 사건으로 촉발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많은 사람, 특히 불안정 고용 상태인 사람과 적절하고 포용적인 사회보장 최저선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외부 충격으로 인해 빈곤으로 밀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들어가며」중에서
우리는 ‘빈민’의 수를 세는 데만 골몰하여 ‘집계되지 않는 사람들의 범주’로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고통을 보지 못 한다. ‘미국의 뒷줄’에 관해 쓴 책의 말미에서 크리스 아네이드는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해도 그런 작업은 ‘그저 숫자에 불과한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그들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 여기서 관건은 물질적 측면뿐 아니라 비물질적 측면으로도 나타나는 빈곤의 징후다. 빈곤을 불리하고 불안정한 경제 조건으로서만이 아니라, 수치스럽고 유해한 사회관계로 이해하도록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들어가며」중에서
상대적 빈곤에 담긴 비교요소의 핵심은, 어떤 사람이 상대적으로 빈곤한지 아닌지는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사는 타인들과 비교할 때에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1930년대 영국에서 끔찍한 고난을 겪어 본 사람들은 이제 ‘진짜’ 빈곤은 사라졌다고 말하곤 한다. 빈곤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러한 비교는 잘못된 것이다. 21세기에 적당한 생활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짧은 기간으로 보아도 일반적인 생활수준이 계속 향상하고 기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기에,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가 다수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안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계속 등장한다.” 이를테면 값비싼 난방 방식이나 감당하기 힘든 고급 슈퍼마켓에서부터 개인용 컴퓨터, 태블릿과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기술의 확산, 인터넷 접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최근에 등장한 이러한 항목이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취학 어린이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가족과 빈곤에 관한 북아일랜드의 한 연구는 ‘절대적’, ‘상대적’ 필요의 경계가 실제로 얼마나 ‘흐릿한’지를 보여 준다. “어린이의 사회 활동을 위한 지출이 좋은 사례다. 이런 지출은 필수적이지 않으니 우선 순위로 삼지 않는다는 입장과 그래도 오늘날에는 사회 활동이 어린이의성장과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느끼는 입장 사이에서 저소득층 양육자는 가장 큰 도덕적 갈등을 겪는다.” 인터넷과 텔레비전 [채널] 가입에 대해서도 비슷한 고민이 나타나는데, 어린이의 숙제를 중시하는 쪽에서는 이런 지출을 필수로 여기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놀이와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갈등은 타인이 ‘도덕적 판단과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빈곤층의] 소비 선택’에 의문을 표할 때 첨예해진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엘리자베스 다울러와 수지 레더는 “음식은 그 사람이 누구이고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그리고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음식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소속감의 중심’이다. (가격대가 높고 재고가 부족할 때가 많은 지역 식품 매장에서) 저렴한 식품을 구하기 위한 발품 팔이,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에 평소와 같은 식단을 유지하려는 노력, 가족이 못 먹거나 버리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식단을 시도하는 위험, 식사를 사회 활동으로 즐길 여력이 없는 상태 등은 모두 빈곤층에게 음식이 생리적 필요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필요로 나타나는 사례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필요가 사회적·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지는 현상은 [스미스의 시대보다는] 현대 소비사회의 맥락에서 더 뚜렷이 드러난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소비는 상대적 박탈이 발생할 수 있는 장인 동시에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표가 된다. 무엇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향이 늘어나면, “빈민은 … ‘결함 있는 소비자’로 재구성된다.”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전 광고의 압력이 ‘보편적인 구매 문화culture of acquisition’를 조성하는 탓에, 빈곤층 양육자가 자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진다. 브랜드와 상표가 물품 자체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닐 때, 적은 돈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의류와 신발의 필요를 충족할 수 없게 된다. 어떤 물건을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중고 물품이냐, 유명 브랜드냐, 자체 상품이냐 같은) 품질, 그리고 (다수가 이용하는 소매점이냐, 중고품 매장 같은 비공식 경로냐 같은) 출처가 문제가 된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라운트리가 했던 연구 중에서 ‘빈민층은 부족한 소득을 왜 음식이 아니라 오락에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을 보면, 그가 기본적인 필요는 단지 신체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노동자들은 그저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과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인간은] ‘배만 겨우 채우며’ 살 수 없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바 없이 휴식과 오락을 갈망한다. 그러나 … 그런 것은 신체적 건강에 필수적인 무언가를 줄여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핍을 감수한다.”
---「1장 빈곤의 정의」중에서
“내가 언어를 수집한 대상인 그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 자기도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 “가난한 사람을 전부 하나로 뭉뚱그리는 유형화 때문에 타인의 눈에 비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타자화는 자기와 사회의 문제를 손쉽게 타자의 탓으로 돌리게 하고, ‘빈민’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이 문제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상징적 배제 전략’으로 쓰인다. 또한 ‘빈민’에 대한 타자화는 다른 이들에게 던지는 경고로도 작용한다. 빈곤은 이렇게 ‘하나의 유령, 즉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유익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우리’와 ‘그들’의 관계에 있어서 타자화는 빈곤의 토대를 이루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또 우월함을 근거로 하는 ‘우리’의 특권과, 열등함을 근거로 하는 ‘그들’을 향한 억압을 정당화하고, 그리하여 구조적 원인을 은폐한다. 여기서 타자화 과정에 권력관계가 각인되는 방식이 뚜렷이 드러난다. 따라서 타자화가 두드러진 곳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4장 빈곤 담론: 타자화에서 존중까지」중에서
동등한 가치와 인간 존엄의 인정이라는 원칙을 대부분 입으로만 떠들고 만다. (…) 앤 필립스가 말했듯이, “충분히 부유한 사회인데도 극도의 빈곤을 외면하거나, 자의적으로 한 가지 기술에 다른 기술의 100배에 달하는 임금을 지급한다면, 그 사회는 시민을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부유한 이들은 빈곤층을 자기와 똑같이 ‘존엄한 존재’로 느끼기에는 사회적으로, 때로는 지리적으로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존중이 ‘불평등의 경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 미국과 영국 같은 이른바 능력주의 사회에서 “존중의 도표에 실패자의 자리는 없다.” 빈곤은 곧 실패를 뜻한다.
---「4장 빈곤 담론: 타자화에서 존중까지」중에서
빈곤에 빠져들고 벗어나는 양방향의 움직임은 모두 한편으로는 (빈민이든 비빈민이든) 개인 행동의 산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사회적 과정 및 정부 정책의 산물이다. (…) 여러 선진국에서 매년 빈곤 상태를 오가는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으며, 일정 기간에 걸쳐 빈곤을 경험하는 사람이 일회성 측정으로 파악한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빈곤의 궤적, 특히 빈곤으로 빠져드는 과정은 자녀 출생이나 동반자 관계 해소와 같은 생애 주기적 사건으로 촉발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여성에게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많은 사람, 특히 불안정 고용 상태인 사람과 적절하고 포용적인 사회보장 최저선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외부 충격으로 인해 빈곤으로 밀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5장 빈곤과 행위주체성: 견뎌내기에서 조직화까지」중에서
출판사 리뷰
모두가 서로 다른 가난을 말하는 사회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가난은 무엇인가?
가난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당장 먹을 음식이 없거나 잘 곳이 없는 문제일 수도, 생활비가 부족한 것일 수도, 심지어는 원하는 브랜드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디어에서는 ‘하우스 푸어’, ‘카 푸어’처럼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자산은 소유하고 있지만, 구매력이 떨어진 상황에 ‘가난(푸어)’이라는 수식을 붙이기도 한다. ‘가난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마찬가지로 지역이나 국가, 시대에 따라 큰 폭으로 달라진다. 가난한 나라라면 흔히 아프리카 대륙에 국가들을 떠올리고, 지금 한국에서 겪는 가난에 대해 논하면 ‘보릿고개’ 같은 비교들이 따라 나온다. 이 모든 ‘가난’은 모두 같은 가난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은 ‘가짜’ 가난이고, 어떤 것은 ‘진짜’ 가난인 걸까? 지금 나의 상태도 가난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가난한 나라에나 부유한 나라에나 여전히 빈곤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문장으로 책을 연다. 가난은 아프리카 대륙 국가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현상이라거나, 전쟁 시기 같은 특정 시대에만 갇힌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조사를 통해 선진국에도 빈곤 상태를 오가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국가의 재정 상황과 무관하게 개인들이 얼마나 쉽게 빈곤 상태를 오갈 수 있는지가 드러났다. 시대에 따라 빈곤 여부를 결정하는 필수재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뀐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이 어린이의 기본적인 교육권을 위한 필수재가 되었듯 말이다.
가난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역,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정의가 필요하고, 그 정의에 따른 빈곤 측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실효성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숫자로만 표현되는 빈곤 측정이 아니라 빈곤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으로 빈곤을 면밀하게 정의하고 빈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책의 1장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빈곤 정의부터 최신의 빈곤 논의를 살펴보고, 2장에서는 점차 정교해지고 있는 빈곤 측정에 대해 소개한다. 3장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해, 4장에서는 ‘빈민’의 재현과 그 역사, 윤리에 대해 다룬다. 5장에서는 빈곤층의 ‘행위주체성’을 토대로 이들의 생활과 정치 영역 전반을 다루며, 6장에서는 인권의 관점에서 빈곤의 해법을 논의한다. 오랜 시간 빈곤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반빈곤 활동가로 일했고, 지금은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학계, 사회운동, 정책과 정치 분야에서 두루 공헌한 저자는 이 책에서 가난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빈곤 당사자의 목소리까지 빠짐없이 다루며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금전 개념이 없어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가난해진다?
‘가난 혐오’의 긴 역사와 그 허상
코로나19로 저금리가 계속되고, 노동소득이 줄어들거나 불안정해지자 많은 사람이 주식, 부동산 투자에 눈을 돌렸고 미디어는 이를 부추기듯 ‘벼락 거지’라는 표현을 반복해 사용했다. 지금 당장 ‘재테크’에 뛰어들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거지’로 전락하게 된다는 이 ‘벼락 거지’라는 표현은 가난을 무지, 무능, 실패에 따르는 징벌로 인식하게 한다. 저자는 특히 미국과 같은 능력주의 기반 사회에서 빈곤에 대한 혐오가 ‘아메리칸드림’ 같은 문화와 결합해 ‘빈곤은 곧 실패’라는 인식으로 굳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뒤플로와 바네르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자들보다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편견과 달리 이들은 쉼 없이 일하는 ‘복잡한 자산 운용 관리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돈뿐 아니라 시간, 건강, 사회적 관계까지 모든 자원을 치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유명 투자전문가는 “가난은 병”, 돈을 모르는 “금융 문맹은 전염성이 아주 높은 질병”이라는 표현으로 방송에서 주식 투자를 독려했다. 팬데믹으로 기존 복지 제도의 구멍이 드러나고, 거기서 고통받는 이들이 더 늘어난 상황에서 편견과 혐오에 기댄 이런 표현은 가난에 대한 공포와 ‘복지 의존’, ‘복지 탈취’ 같은 허상의 혐오를 더 증폭시킬 뿐이다. 가난을 ‘전염병’에 비유하는 혐오 표현은 특히 뿌리가 깊다. 19세기 런던에서는 빈곤한 이들을 ‘역병’, ‘악덕과 질병의 물결’ 같은 표현으로 묘사하곤 했다. 이뿐 아니라 가난에는 우범성criminality, 타락, 게으름, 악덕, 오염이라는 낙인이 따라붙었고, 이런 낙인이 현대 복지제도에서도 ‘자격 있는 빈민’, ‘자격 없는 빈민’을 가르는 기준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가난과 ‘빈민’에 대한 혐오적인 편견과 시선은 반복적으로 빈곤을 개인의 기질, 성향의 문제로 돌리며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지운다. 저자는 빈곤이라는 결과를 만드는 원인에는 개인의 행위도 있지만, 사회, 문화와 같은 구조가 큰 영향을 미치며 개인의 행위 역시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절벽 밑에 구급차’가 아니라
‘절벽에 울타리를 세우는’ 원칙이 빈곤의 해법이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빈곤 이해는 ‘정확한’ 수치 집계나 측정을 위한 뾰족한 정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좁고 초점이 뚜렷한 정의는 빈곤의 규모와 심도를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렇게 포착한 빈곤의 현실이 얄팍한 묘사에 그치게 될 것이라 지적한다. 물질적인 곤란이라는 빈곤의 중심에 더해, 책에서는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빈곤 이해 관점들을 다채롭게 보여 준다. 큰 틀에서 빈곤을 관계, 상징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보완해야 하며, 빈곤 문제를 인권과 시민권, 행복과 인간 번영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런 다각적인 이해를 통해 빈곤 문제 해결이 절벽 밑에 구급차를 준비해 두는 것에서 나아가 절벽에 울타리를 세우는 방법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의 복지 급여 기준은 ‘소득’에 있다. 복지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소득 기준을 넘겨서는 안 되기에 복지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저임금 노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소득 같은 기준은 정확한 측정을 가능하게 하지만 기준이 갖는 한계로 인해 복지 급여가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가구 단위로 소득을 측정하는 경우 실제 생활과 빈곤 여부를 판단하기 더 어려워지는데, 노동소득이 없는 여성, 아동, 노인 구성원들의 빈곤 취약성을 간과하기 쉽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나이와 성별뿐 아니라 장애, 지리적 요소나 인종처럼 빈곤 문제에서 간과되기 쉬운 관점들을 포괄적으로 조명한다.
여러 빈곤의 정의와 측정법, ‘빈곤선’을 설정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분석한 저자는 ‘빈민’과 ‘비빈민’을 가르는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연대를 연민으로 대체하’기 쉽고, 수급 자격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존엄과 자긍심을 해치며 빈곤 자체에 낙인을 찍게 되는 ‘선별주의’보다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관심과 존중을 보장하는 ‘보편주의’적 관점이 사회보장제도의 잠재력을 높이는, 발전적인 빈곤 대응 방안이라고 보는 이유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난은 무엇인가?
가난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당장 먹을 음식이 없거나 잘 곳이 없는 문제일 수도, 생활비가 부족한 것일 수도, 심지어는 원하는 브랜드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디어에서는 ‘하우스 푸어’, ‘카 푸어’처럼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자산은 소유하고 있지만, 구매력이 떨어진 상황에 ‘가난(푸어)’이라는 수식을 붙이기도 한다. ‘가난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마찬가지로 지역이나 국가, 시대에 따라 큰 폭으로 달라진다. 가난한 나라라면 흔히 아프리카 대륙에 국가들을 떠올리고, 지금 한국에서 겪는 가난에 대해 논하면 ‘보릿고개’ 같은 비교들이 따라 나온다. 이 모든 ‘가난’은 모두 같은 가난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은 ‘가짜’ 가난이고, 어떤 것은 ‘진짜’ 가난인 걸까? 지금 나의 상태도 가난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가난한 나라에나 부유한 나라에나 여전히 빈곤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문장으로 책을 연다. 가난은 아프리카 대륙 국가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현상이라거나, 전쟁 시기 같은 특정 시대에만 갇힌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조사를 통해 선진국에도 빈곤 상태를 오가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국가의 재정 상황과 무관하게 개인들이 얼마나 쉽게 빈곤 상태를 오갈 수 있는지가 드러났다. 시대에 따라 빈곤 여부를 결정하는 필수재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뀐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이 어린이의 기본적인 교육권을 위한 필수재가 되었듯 말이다.
가난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역, 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정의가 필요하고, 그 정의에 따른 빈곤 측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실효성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숫자로만 표현되는 빈곤 측정이 아니라 빈곤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으로 빈곤을 면밀하게 정의하고 빈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책의 1장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빈곤 정의부터 최신의 빈곤 논의를 살펴보고, 2장에서는 점차 정교해지고 있는 빈곤 측정에 대해 소개한다. 3장에서는 빈곤과 불평등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해, 4장에서는 ‘빈민’의 재현과 그 역사, 윤리에 대해 다룬다. 5장에서는 빈곤층의 ‘행위주체성’을 토대로 이들의 생활과 정치 영역 전반을 다루며, 6장에서는 인권의 관점에서 빈곤의 해법을 논의한다. 오랜 시간 빈곤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반빈곤 활동가로 일했고, 지금은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학계, 사회운동, 정책과 정치 분야에서 두루 공헌한 저자는 이 책에서 가난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빈곤 당사자의 목소리까지 빠짐없이 다루며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금전 개념이 없어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가난해진다?
‘가난 혐오’의 긴 역사와 그 허상
코로나19로 저금리가 계속되고, 노동소득이 줄어들거나 불안정해지자 많은 사람이 주식, 부동산 투자에 눈을 돌렸고 미디어는 이를 부추기듯 ‘벼락 거지’라는 표현을 반복해 사용했다. 지금 당장 ‘재테크’에 뛰어들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거지’로 전락하게 된다는 이 ‘벼락 거지’라는 표현은 가난을 무지, 무능, 실패에 따르는 징벌로 인식하게 한다. 저자는 특히 미국과 같은 능력주의 기반 사회에서 빈곤에 대한 혐오가 ‘아메리칸드림’ 같은 문화와 결합해 ‘빈곤은 곧 실패’라는 인식으로 굳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뒤플로와 바네르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자들보다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편견과 달리 이들은 쉼 없이 일하는 ‘복잡한 자산 운용 관리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돈뿐 아니라 시간, 건강, 사회적 관계까지 모든 자원을 치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유명 투자전문가는 “가난은 병”, 돈을 모르는 “금융 문맹은 전염성이 아주 높은 질병”이라는 표현으로 방송에서 주식 투자를 독려했다. 팬데믹으로 기존 복지 제도의 구멍이 드러나고, 거기서 고통받는 이들이 더 늘어난 상황에서 편견과 혐오에 기댄 이런 표현은 가난에 대한 공포와 ‘복지 의존’, ‘복지 탈취’ 같은 허상의 혐오를 더 증폭시킬 뿐이다. 가난을 ‘전염병’에 비유하는 혐오 표현은 특히 뿌리가 깊다. 19세기 런던에서는 빈곤한 이들을 ‘역병’, ‘악덕과 질병의 물결’ 같은 표현으로 묘사하곤 했다. 이뿐 아니라 가난에는 우범성criminality, 타락, 게으름, 악덕, 오염이라는 낙인이 따라붙었고, 이런 낙인이 현대 복지제도에서도 ‘자격 있는 빈민’, ‘자격 없는 빈민’을 가르는 기준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가난과 ‘빈민’에 대한 혐오적인 편견과 시선은 반복적으로 빈곤을 개인의 기질, 성향의 문제로 돌리며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지운다. 저자는 빈곤이라는 결과를 만드는 원인에는 개인의 행위도 있지만, 사회, 문화와 같은 구조가 큰 영향을 미치며 개인의 행위 역시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절벽 밑에 구급차’가 아니라
‘절벽에 울타리를 세우는’ 원칙이 빈곤의 해법이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빈곤 이해는 ‘정확한’ 수치 집계나 측정을 위한 뾰족한 정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좁고 초점이 뚜렷한 정의는 빈곤의 규모와 심도를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렇게 포착한 빈곤의 현실이 얄팍한 묘사에 그치게 될 것이라 지적한다. 물질적인 곤란이라는 빈곤의 중심에 더해, 책에서는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빈곤 이해 관점들을 다채롭게 보여 준다. 큰 틀에서 빈곤을 관계, 상징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보완해야 하며, 빈곤 문제를 인권과 시민권, 행복과 인간 번영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이런 다각적인 이해를 통해 빈곤 문제 해결이 절벽 밑에 구급차를 준비해 두는 것에서 나아가 절벽에 울타리를 세우는 방법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의 복지 급여 기준은 ‘소득’에 있다. 복지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소득 기준을 넘겨서는 안 되기에 복지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저임금 노동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소득 같은 기준은 정확한 측정을 가능하게 하지만 기준이 갖는 한계로 인해 복지 급여가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가구 단위로 소득을 측정하는 경우 실제 생활과 빈곤 여부를 판단하기 더 어려워지는데, 노동소득이 없는 여성, 아동, 노인 구성원들의 빈곤 취약성을 간과하기 쉽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나이와 성별뿐 아니라 장애, 지리적 요소나 인종처럼 빈곤 문제에서 간과되기 쉬운 관점들을 포괄적으로 조명한다.
여러 빈곤의 정의와 측정법, ‘빈곤선’을 설정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분석한 저자는 ‘빈민’과 ‘비빈민’을 가르는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연대를 연민으로 대체하’기 쉽고, 수급 자격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존엄과 자긍심을 해치며 빈곤 자체에 낙인을 찍게 되는 ‘선별주의’보다는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관심과 존중을 보장하는 ‘보편주의’적 관점이 사회보장제도의 잠재력을 높이는, 발전적인 빈곤 대응 방안이라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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