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대한민국 현대사 (독서>책소개)/1.해방전후.미군정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동방박사님 2022. 7. 1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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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한민국 건국 당시, 친미 반공국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다는 이승만 정부의 성격에 관한 해석은 친자본주의의 시작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대한민국의 초기모습이 그러한 형태로 규정되었다기보다는 다분히 유동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반공산주의와 함께 반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얼핏 보아도 냉전구조의 진영논리와 완전히 상반되는 이런 사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 후지이 다케시는 기존의 암묵적 상식과 다른 역사적 실제의 수수께끼를 ‘냉전 질서 관철의 시간차’를 통해 실증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기존 연구들이 이승만 개인에 대한 분석으로 이승만 정권의 권력블록에 대한 분석을 대체하면서 대체로 초기 대한민국의 사상적, 정치적 지형에 대한 분석을 간과해왔다면, 후지이 다케시는 철저한 실증을 통해 ‘이승만 - 이범석 체제’(초기 이승만 정권)와 ‘이승만 - 이기붕 체제’(후기 이승만 정권)의 차이를 밝혀내고 있다.

반공적이면서도 미국적이지는 않았던 초기 대한민국의 사상적 지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력이 이 책의 주제가 되는 족청계이다. 이범석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한국 정부 초대 내각에서 요직을 차지했으며 이승만 정권 초기의 ‘지도이념’이었던 일민주의를 실질적으로 만들어냈다. 또 이승만의 권력 기반이 된 자유당의 창당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강행한 부산정치파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족청계의 사상은 반공적이면서도 냉전적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적이었으며, 정치적 행동 역시 법치주의적인 대의제 민주주의보다는 포퓰리즘적인 대중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족청계의 실태를 규명하는 작업은 초기 이승만 정권의 성격을 밝히는 데 필수적이며, 이 작업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서론

제1부 족청계의 기원들―1930년대 동아시아와 민족주의
제1장 ‘반제민족주의’와 파시즘―이범석과 장제스
1. 중국에서의 독립운동과 나치즘 / 2. 장제스와의 만남과 광복군
제2장 철학과 민족주의―안호상과 전체주의
제3장 ‘전향’과 ‘가족’―양우정의 사회주의운동과 그 굴절
1. 시인 양우정과 공산주의자 양창준 / 2. 전향과 ‘가족’의 재발견

제2부 족청계의 모태: 해방 정국과 조선민족청년단
제1장 이범석의 귀국과 조선민족청년단 창단
제2장 족청의 조직과 인적 구성
1. 족청 중앙 조직 / 2. 족청 지방 조직
제3장 족청의 훈련과 이념
1. 족청 중앙훈련소의 훈련 과정 / 2. 족청의 이념과 이범석의 민족주의 / 3. 반외세 이념과 파시즘

제3부 족청계의 태동: 분단국가, 전향, 일민주의
제1장 족청의 단정 참여와 갈등
제2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족청 출신들
1. 족청의 국회 진출 / 2. 족청의 정부 진출
제3장 족청의 해산
제4장 일민주의와 족청계의 태동
1. 일민주의와 반공 체제 구축 / 2. 일민주의보급회와 족청계의 태동

제4부 족청계의 활동: 자유당 창당과 당국 체제의 형성
제1장 한국전쟁 발발과 족청계의 재기
제2장 자유당 창당과 족청계의 참여
1. 신당 구상의 부상 / 2. 원내외 갈등
제3장 원외자유당의 조직과 이념

제5부 족청계의 몰락: 부산정치파동과 냉전 체제의 국내적 완성
제1장 개헌을 둘러싼 갈등의 격화와 족청계의 부상
제2장 부산정치파동과 족청계의 활동
1. 부산정치파동의 발생 / 2. 미 대사관의 대응 / 3. 미 본국의 고심과 이범석의 부각
제3장 이범석의 부통령 낙선과 족청계의 역공세
1. 이범석의 부통령 선거 출마를 둘러싼 갈등 / 2. 족청계를 둘러싼 갈등의 표면화
제4장 휴전 체제 성립과 족청계의 몰락

결론

부록
1. 조선민족청년단 이사 / 2. 조선민족청년단 전국위원 / 3. 대한민족청년단 제5차 임시확대전국위원회 선언
4. 신당발기취지서(초안) / 5. 자유당선언 / 6. 자유당 당헌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후지이 다케시
일본 교토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오사카대 일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며 성균관대, 가천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죽엄으로써 나라를 지키자―1950년대, 반공, 동원, 감시의 시대(공저, 선인, 2007)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번역과 주체(이산, 2005), 다미가요 제창(삼인, 2011)이 있다. 논문으로는 낯...
 

출판사 리뷰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은 시대의 산물이다. 만약 ‘뉴라이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는 식의 주장을 펴지 않았더라면, 내 관심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뉴라이트’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은 1948년 제정 당시의 대한민국헌법만 읽어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제정 당시의 대한민국헌법을 실제로 읽어보지는 않으리라는 예상이 그들의 뻔한 거짓말을 가능하게 했다면, 이는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지닌 역사성을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고 권유하는 그들에게는 영원한 ‘현재’만이 중요하겠지만 다른 사회, 다른 세계를 꿈꾸기 위해서는 ‘역사’가 필요하다.
―책머리에 중에서

대한민국최초의국시는반자본주의였다!
이승만정권초기,해방8년의정치공간을해부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물음은 한국 현대사를 생각할 때 피해 갈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일 것이다. 본격적인 한국 현대사 연구가 시작된 19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까지, 대한민국을 냉전의 결과 탄생한 친미반공국가로 보고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이 주류적인 견해였다. 그에 반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뉴라이트의 등장과 함께 오히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즉 친미반공국가였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 입장은 얼핏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양자 모두 대한민국의 탄생을 ‘친미반공’ ‘친자본주의’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료를 통해 나타나는 대한민국의 초기 모습은, 냉전에 의해 절대적으로 규정되었다기보다는 다분히 유동적인 것이었다. 미국인 법률가의 눈에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로의 강한 경향”을 띤 것으로 인식된 경제 조항을 포함한 제헌헌법이 가능했던 것은, 헌법의 사상적 바탕이 자유민주주의라기보다는 민족주의였기 때문이다. 이는 이승만 정권 초기의 성격과도 관련된다. 국내에 확고한 기반이 없던 이승만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해방3년기에 단독정부 수립을 함께 추진했던 한국민주당과 결별했기 때문에 좌우세력 모두에 초연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초기 이승만 정권에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즉 민족주의가 반영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경향은 ‘국시’로서 일민주의가 등장하면서 절정에 달했는데, 일민주의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반공산주의와 함께 반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념이었다.

자본주의에 병들고 공산주의에 독된 세계와 인류가 세계와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고 새 세계를 건설할려고 하는 의욕이 날로 높아져가는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을 고한 이후에 있어서 동방의 하늘에는 여태 구름 속에 파묻혀 있던 한낱의 거대한 샛별이 구름을 헤치고 요요히 빛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이승만 대통령!
(중략) 자유의 미명하에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모든 사회 제도와 경제 조직을 우리는 전복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것은, 일민주의가 지표하는 ‘하나인 민족으로써 무엇에고 또 어느 때이고 둘이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은 착취하는 지주와 착취당하는 소작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으며 착취하는 자본가와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제도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자본주의 제도는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이승만 대통령의 일민주의와는 상용할 수 없는 제도인 것이다.
―이대통령 건국정치이념 중에서

국제적냉전이국내에관철되기까지,역사적틈새를들여다본다
‘반공적이면서미국적이지는않았던’초기대한민국과족청계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반공산주의와 함께 반자본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얼핏 보아도 냉전구조의 진영논리와 완전히 상반되는 이런 사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책의 저자 후지이 다케시는 기존의 암묵적 상식과 다른 역사적 실제의 수수께끼를 ‘냉전 질서 관철의 시간차’를 통해 실증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기존 연구들이 이승만 개인에 대한 분석으로 이승만 정권의 권력블록에 대한 분석을 대체하면서 대체로 초기 대한민국의 사상적, 정치적 지형에 대한 분석을 간과해왔다면, 후지이 다케시는 철저한 실증을 통해 ‘이승만이범석 체제’(초기 이승만 정권)와 ‘이승만이기붕 체제’(후기 이승만 정권)의 차이를 밝혀내고 있다.
이와 같이 기존 연구에서 간과된 역사적 틈새에서 형성된, 반공적이면서도 미국적이지는 않았던 초기 대한민국의 사상적 지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력이 이 책의 주제가 되는 족청계이다. 이범석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한국 정부 초대 내각에서 요직을 차지했으며 이승만 정권 초기의 ‘지도이념’이었던 일민주의를 실질적으로 만들어냈다. 또 이승만의 권력 기반이 된 자유당의 창당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강행한 부산정치파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족청계의 사상은 반공적이면서도 냉전적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적이었으며, 정치적 행동 역시 법치주의적인 대의제 민주주의보다는 포퓰리즘적인 대중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었다. 족청계는 1953년 말경에 권력 중추부에서 제거당하는데, 그에 이어 자유당이 의회정당으로 거듭나고 헌법에서 ‘국가사회주의적’ 조항이 약화된 사실로 상징되듯이, 그들의 몰락은 역사적 전환기였던 ‘해방8년’의 종언, 즉 냉전이 남한 체제 내부에까지 관철되면서 대중이 직접 정치적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소멸한 것과 궤를 같이했다. 그런 점에서도 족청계의 실태를 규명하는 작업은 초기 이승만 정권의 성격을 밝히는 데 필수적이며, 이 작업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파시즘,중화민국을거쳐대한민국에상륙하다
―자유당과족청계의이념과조직모델은장제스로부터
초기 이승만 정권과 대한민국의 국시를 이루었던 ‘일민주의’와 이를 주도한 족청계에는 ‘파시즘’에 대한 긍정적 평가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유사성도 존재하고 있었다. 서중석은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에서 “일민주의 주창자들의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반미에는 파시즘적 측면”이 있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실상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주변부 국가들에서 저항민족주의가 파시즘과 결합한 것은 대한민국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었다. 그 단초는 우선 1930년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주사변 발발로 인해 고조된 위기의식이 파시즘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30년대부터 장제스는 파시즘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 특징은 ‘반제민족주의’로서 레닌주의와 파시즘의 통치방식을 혼합시킨 것이었다. 항일전쟁이 끝나자 바로 이어서 발발한 국공내전을 통해 장제스가 구축한 파시즘 체제는 곧바로 몰락했다. 하지만 주변부에서 파시즘이 활용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국의 사례는 매우 중요하다.
또한 장제스의 파시즘 체제는 족청계의 영수라 할 수 있는 이범석을 통해 일민주의와 자유당 이념 및 조직구성, 훈련체계에까지 핵심적 영향을 끼쳤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범석은 1930년대 말에 장제스가 개설한 중앙훈련단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민족주의, 군사화, 지도자 숭배’로 요약할 수 있는 장제스식 파시즘 사상을 체화했다. 이는 ‘국가지상 민족지상’이라는 구호로 집약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이범석의 사상적 바탕을 구성했다. 이 책 148쪽의 사진에서 보이듯이, 수원 족청 중앙훈련소 정면에 세워진 구호탑에는 ‘민족지상 국가지상’이라는 족청의 대표적 구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철저한실증으로해방8년사의베일을벗긴다
학계최초,실증을통해재구성한초기이승만정권과자유당의정치지형
저자 후지이 다케시는 회고록 등에 의존해온 기존 연구의 한계를 벗어나 모든 사건의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고 지방에서 일어난 일들까지 세밀하게 조명하기 위해 당대의 신문자료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계열적으로 역사적 흐름을 재구성해냈다. 또 미군정, 미 대사관 등에서 작성한 보고서나 미 국무부의 외교관련 문서들, 주요 인물들의 저작과 기고 성명서들까지 단순히 텍스트로 접근하지 않고 그것이 서술된 구체적 역사의 맥락 속에서 변화양상을 추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던 해방8년의 정치지형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족청의 중앙단부뿐 아니라 지방조직까지, 원내·원외자유당 구성원의 출신과 계파, 정치적 경향까지 추적하여 밝힘으로써 당대 정치세력의 갈등구조와 헤게모니 양상을 실증해낸 것은 커다란 성과라고 할 만하다. 파편화된 수많은 사료들을 엄밀한 상호대조와 확인을 통해 재구성해낸 저자의 노력은 이후 해당 시기 역사연구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