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대한민국 현대사 (독서>책소개)/1.해방전후.미군정

해방의 공간 점령의 시간

동방박사님 2022. 8. 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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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군정 사법부 법률심의국에서 한미경제안정위원회까지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해방 5년’의 세밀화를 그리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문제의식을 잇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선물’처럼 다가온 해방. 하지만 해방은 곧바로 외국 군대의 분할 점령으로 이어졌다. 해방의 감격과 점령의 엄중함이 공존했고, 양자가 서로 교차했다. ‘해방의 공간, 점령의 시간’이라는 제목은 그 복잡한 역동의 시기를 함축한 비유적 표현이자, 당대인들이 그것을 어떻게 체감하고 대응했는지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필자들의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새 국가 건설, 사회개혁을 둘러싼 열망이 끓어 넘치고, 이념 갈등과 생계 걱정이 맞부딪치던 70여 년 전, 이 땅의 민초들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살았을까. 이들이 이후 한국 현대사 흐름에서 주체이자 객체로 작용한 만큼 당연히 지대한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이런 한국현대사 연구는 7, 80년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른바 《해전사》는 해방 공간의 민족과 민중을 변혁적 주체로서 다시 불러냄으로써 학계는 물론 청년·지식인층의 개안開眼을 가져왔다. 한국현대사 연구도 이에 힘입어 1990년대까지 미국과 소련의 대한對韓정책과 점령 통치, 남북한 주요 정당·사회단체들과 지도자들의 활동, 남북한 경제구조의 변화 등에 대한 굵직한 연구가 축적되었고 2000년 전후부터는 사회사와 일상사 분야까지 연구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해방 5년에 대한 연구 축적과 연구 영역 확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명되지 못한 영역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해전사》의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하면서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법률심의국, 조미공동회담 등 그간 해방시기 관련 연구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미군정의 점령정책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조명해 《해전사》의 여백을 메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1부 점령정책(1945~1948)

1장_주한미군정의 점령정책과 법률심의국의 활동
1. 헤이그규약과 미국의 남한 점령계획
2. 주한미군정의 기구 개편과 점령정책 입안 과정
3. 법률심의국의 인적 구성
4. 법률심의국의 역할, 점령행정 체계화
5. 맺음말

2장_10월 항쟁과 조미朝美공동회담
1. 식량 부족과 미온적인 친일파 청산
2. 10월 항쟁에 대한 시각차
3. 조미공동회담의 구성과 논의 내용
4. 회담의 ‘예견된 실패’와 단독정부 수립의 그림자

3장_점령과 분단의 설득기구-미군정 공보기구의 변천(1945.8~1948.5)
1. 한국인을 설득하라: 개혁 유보와 남한 단독정부 수립
2. 미군정의 점령 통치와 홍보
2-1. 공보부 창설
2-2. 공보부의 조직과 역할 그리고 한계
2-3. 10월 항쟁 이후 공보 조직 개편과 지방 활동 확대
3. 미국의 대한정책과 분단 설득하기
3-1.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원 창설과 공격적 역선전
3-2. 미국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정책과 공보원 지원 강화
3-3.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과 공보원 지부의 설립
3-4. 제헌선거 홍보 위해 공보원 지부 대거 동원
4. 정부 수립 이후 공보부·공보원의 유산

4장_미군정의 면방직공업 정책과 그 영향
1. 미군정이 면방직공업을 중시한 까닭
2. 해방 직후 면방직공장의 기계 소리가 멈춘 이유
3. 경제 통제정책의 시험대 “면직물 가격을 잡아라”
4. 1946년, 가격 이원화와 대규모 공장 중점 지원 병행
5. 1947년, 조선방직협회 중심 민간 역할 확대
6. 대외의존성의 확대와 독점구조 형성

2부 점령기 한국 사회(1945~1948)

1장_‘조선정판사사건’을 보는 또 다른 시각-〈재심 청구를 위한 석명서〉를 중심으로
1. 사건 개요
2. 〈석명서〉의 주요 내용
2-1.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
2-2. 위폐 제조 사실 자체에 대한 의문점
2-3. 조공朝共은 과연 위조지폐를 어디에 썼는가
3. 〈석명서〉의 자료적 가치와 정판사사건

2장_점령시대를 보는 엇갈린 시선-1947년 웨드마이어사절단의 방한과 한국인의 대응
1. 미군정기 정치와 사회의 교차점을 찾아서
2. 동북아시아 정세의 변화와 웨드마이어사절단의 방한
3. 주한미군정 당국의 대응과 건의
4. 기로에 선 한국 정계: 미소공동위원회와 총선거 사이에서
5. 웨드마이어에게 보낸 편지로 보는 점령 사회의 민낯
6. 웨드마이어 보고서, 냉전에 대비한 동북아 정책 지침

3장_웨드마이어 장군 전상서-네 지식인이 논한 1947년 8월의 시국과 그 타개책
1. 트루만 대통령 특사 웨드마이어 장군의 방한
2. 정인보, 오기영, 강용흘, 신남철의 해방 전후
3. 네 지식인의 편지에 나타난 현실 인식
4. 공통의 현실에서 이산離散의 미래로
5. 단정안의 현실화와 지식인의 대응

4장_미군정 여론조사로 읽는 한국 사회
1. 점령 통치의 바로미터, 여론조사
2. ‘여론 샘플링 여행’에서 가두조사로
3. 전국 여론조사: 정책 실패와 미군정 신뢰 하락
4. 서울 여론조사: 정치 공작과 여론
5. ‘불통’의 여론조사: 왜곡된 민주주의

5장_미군정기 후반전, 현지조사와 지방 여론
1. 미군정은 왜 지방에 조사팀을 보냈나
2. 조사팀이 파악하려 했던 것
3. 작은 마을은 물정을 몰라 현혹되기 쉽다?
4. 현혹보다 힘이 센 것
5. 맺음말

6장_점령기 우익 청년단 테러의 양상과 성격
1. 점령기, 테러의 시대
2. 식민 유산의 또 다른 잔재, 우익 청년단 테러
3. 반탁 테러의 발생과 확산
4. 1차 미소공위 휴회 이후 테러의 전국적 확산
5. 1947년 우익 청년단 조직 확대와 테러의 일상화
6. 단독정부 수립과 테러의 국가폭력화
7. 반공이란 허울을 쓴 국가폭력과의 결별을 위하여

3부 점령 이후(1948~1950)

1장_1·2차 유엔한국위원단의 평화통일 중재 활동(1948∼1950)
1. 유엔한국위원단의 임무와 조직 운영
1-1. 3·4차 유엔총회의 한국문제 논의에서 평화통일 기조의 부침
1-2. 유엔한국위원단의 운영과 대표단·사무국·미국의 역학관계
2. 유엔한국위원단의 평화통일 중재 활동
2-1. 1차 위원단의 활동과 민족주의 진영의 대응
2-2. 대북 접촉 시도를 둘러싼 갈등
3. 유엔한국위원단의 군사 분쟁 감시 활동
3-1. 군사감시반 설치 논의
3-2. 한국전쟁 발발 전후 군사감시반의 활동
4. 남은 과제, 위원단 내부 논의

2장_주한미대사관을 통해본 초기 한미 외교관계(1948∼1950)
1. 수직적 점령관계에서 수평적 외교관계로
2. 미국대사관, 한국에 들어서다
3. 안정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하다
4. 선거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갈등
5. 정부 수립 이후에도 여전했던 미국의 ‘개입’

3장_정부 수립 이후 미국의 한국 경제 구조 조정
-1950년 한미경제안정위원회의 설립과 안정화 정책의 성격
1. 미국이 한국판 마셜 플랜을 실시한 이유
2. 삐걱거리는 원조정책과 경제위기 격화
3. 미국, 한국 경제정책에 직접 개입하다: 한미경제안정위원회의 설립
4. 한미경제안정위원회의 안정화 정책
4-1. 긴축재정과 재정구조 개편
4-2. 미곡 자유시장과 대일 미곡 수출 추진
4-3. 원조물자 운영 개편
4-4. 단일환율 추진
5. 단기적 안정화 성공, 장기적 구조 조정 실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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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편저 : 정용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 〈웨드마이어 장군 전상서: 네 지식인이 논한 1947년 8월의 시국과 그 타개책〉, 〈냉전의 평화, 분단의 평화〉, 《미군정 자료 연구》,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탈냉전과 미국의 신세계질서》(역서), 《강압의 과학》(역서)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임정으로 대표되는 망명세력 그리고 인공으로 대변되는 자생적 정치세력의 주권보유론을 모두 부인했던 것은 전후 한국문제의 처리에 미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미 정부의 이러한 대한정책상의 고려에 따른 한국 주권의 불인정이 ‘주권정부 없는 점령’이라는 특수한 점령 형태를 창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남한의 경우 미국이 점령에 참여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일본과는 달리 점령 당국이 현존 질서를 단순히‘복구-유지’하는 정도로 민사 업무 개입을 최소화할 수 없는 문제를 낳았다. ---p.21

일본인의 사유재산도 보호하겠다는 주한미군정의 방침이 전면 몰수로 전환한 것은 〈기초지령〉에 따른 상부의 명령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기초지령〉에는 접수만 지시할 뿐 사유재산권 몰수와 관련된 점령국 권한의 법적 근거가 없었다. ---p.35

10월 항쟁에서 시위대의 직접적인 공격이 대부분 경찰과 군정 관리에게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경찰이 인민위원회 등 민중조직을 탄압, 분쇄하는 선봉이었으며 곡물수집에서도 많은 횡포를 부렸고, 군정 관리들도 식량난과 양곡 수집으로 시민·농민들에게 큰 반발을 샀기 때문이었다. ---p.64

〈석명서〉는 위조지폐의 엄청난 규모와 조직범죄를 확정하기 위해서 경찰과 검찰이 김창선의 진술을 표본으로 여타 증인의 진술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취조가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피고들의 각기 상이한 진술은 점차 김창선의 표본진술standard statement과 맞도록 고쳐졌다고 설명한다. …… 1,200만 원에 달하는 위폐의 사용처를 밝히지 못한 경찰과 검찰 측으로서는 범죄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바로 피의자들의 자백이었다. ---p.173

공산주의자들도 일제 치하에서 애국적 민족주의자들과 힘을 합했고 대부분의 한국 인민들은 그들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때 완전히 무력했고 우리의 애국적 활동을 좀처럼 현실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 러시아만이 우리와 인접했고, 우리와 함께 일본에 대한 증오를 공유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조선인들이 러시아적 방식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공산주의가 어떻게 우리 토양에 뿌리내렸는지를 설명합니다. 소련에 경도된 것이 아니라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p.237

남녀평등, 공교육, 노동법의 모든 면에서, 한국인들은 상당히 진보적이고 평등한 조치를 지지했다. 여성도 대학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정치에 관여해도 좋다는 입장이 절반을 넘겼다. …… 노동법과 관련해서는 최저임금과 초과근무수당, 유급휴가 등이 주어져야 하며, 유급휴가는 3주에서 한 달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미군정은 이와 같은 한국인 여론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p.274

좌익의 총력 공격은 전평 조직의 전멸이라는 결과만을 남긴 채 진압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익 청년단과 경찰의 관계는 질적으로 변화했다. …… 이제 우익 청년단은 경찰의 무기로 무장한 ‘준국가기구’, ‘경찰 보조기구’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공식적인 협조관계는 10월 항쟁 진압 과정에서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p.330
 

출판사 리뷰

구체적인 자료, 입체적 분석
법률심의국, 조미공동회담, 공보기구, 면방직공업 같은 사법·정치·홍보·경제 영역에 대해 〈군사실문서철〉 등 미국 측이 생산한 구체적인 자료까지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미군정의 점령정책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이 이 책의 으뜸 미덕이다. 여기에 헤이그규약을 바탕으로 미군의 남한 점령이 국제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하여 점령정책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미군정의 공보조직은 왜 설치되어 어떤 기능을 했는지, 면방직공업 정책은 당시 한국인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쳤는지 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좌익 퇴조, 우익 득세의 분수령이 되었던 조선정판사사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2부 1장이나 당대 지식인의 현실인식과 고심을 보여주는 2부 3장의 ‘웨드마이어 장군 전상서’에 실린 〈재심 청구를 위한 석명서〉나 정인보 등의 편지는 자료의 힘을 보여준다.

실증에 기반한 한국현대사의 ‘적폐’ 청산 시도
2006년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전후하여 등장한 건국절이나 이승만 국부 논란이 시끄러웠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당대 역사적 사실과 맥락에 기반하지 못한 채 특정 집단의 현재적 이해관계를 과거에 투영함으로써 한국현대사의 적폐를 양산했다.
이 책은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건국절이나 이승만 국부 주장이 얼마나 반反역사주의적인지를 밝혀냈다. 예를 들어 유엔한국위원단의 활동을 조명한 3부 1장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원인 유엔총회 결의안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전국 정부로서 위상을 부여받지 못하고 38선 이남에 한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 신승욱은 유엔 총회 한국문제 결의안이 미국이 제시한 초안부터 최종초안 그리고 미국과 영연방 국가들의 공동 결의안 초안이라는 일련의 작성과정을 규명해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기존의 이승만 국부론과 건국절을 주창한 이들이 내세우는 ‘대한민국 정부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주장을 되돌아볼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해방과 점령이라는 시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
이 책은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일상으로부터 구조를 해명하고, 미시로부터 거시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지향했다. 이는 당시 미군정이 시행했던 여론조사와 트루만 미국 대통령의 특사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보낸 한국인들의 편지 등을 다룬 2부에 실린 4편의 글에서 특히 도드라진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당시 여론조사의 허실과, 그 결과를 분석해 당대 한국인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또 1947년 방한한 웨드마이어 사절단에게 보내졌던 지식인과 무명의 한국인들의 편지는 해방공간에서의 한국사회 동향과 점령정책의 변화 추이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해방공간’ 연구의 외연 확대
그간 해방공간에 관한 연구는 시기적으로 해방 이후부터 정부수립까지에 초점이 맞춰져온 감이 있다. 점령정책, 점령기 한국사회, 점령 이후로 구성된 이 책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정부 수립 이후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에도 주목했다. 3부에선 한국 정부 수립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주한미대사관의 설치 과정과 활동, 한미경제안정위원회를 통해본 미국의 대한對韓 경제원조의 실상과 성격, 분단 해소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던 유엔한국위원단의 구성과 한계를 만날 수 있다. 3부의 글들을 통해 점령의 결과가 그 이후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한국 사회에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엿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의 약 10년에 걸친 집합적 연구의 결실
이 책은 2000년대를 전후하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출신 젊은 연구자들이 10여 년에 걸쳐 함께 미국이 생산한 다양한 자료를 발굴하고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필자들을 포함해 수십 명의 연구자들이 자료 발굴, 번역, 분석, 토론, 논문 작성에 참여한 집합적 연구의 결실이란 점에서 이 책은 한국현대사 연구의 수준과 역량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