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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북한 권력 65년의 대하실록!
60년 일당독재, 세계 유일무이의 3대 세습국가를 만든
힘의 원천을 해부하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2010년 현재까지의 북한 권력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고 특히 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개인을 어디까지나 외부 자원과 구조의 압력하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기계’에 가깝게 보는 신현실주의와 달리, 구성주의는 권력자 개인이 가진 ‘사상’과 ‘정체성’이 그들이 처한 권력현실이나 그들이 펼치는 권력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봄으로써 개인을 보다 능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북한에서의 권력투쟁이 기본적으로 권력자들의 ‘사상’ 및 ‘정체성’ 간의 투쟁이기도 했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기회구조’에 다양하고 독특하게 반응했던 보다 심층적인 이유가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북한 정치·역사에 30년 이상 천착해온 저자가 온 역량을 쏟아 탄생시킨 이 노작은, 천안함 사건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권력세습 문제로 격동하고 있는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60년 일당독재, 세계 유일무이의 3대 세습국가를 만든
힘의 원천을 해부하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2010년 현재까지의 북한 권력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고 특히 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개인을 어디까지나 외부 자원과 구조의 압력하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기계’에 가깝게 보는 신현실주의와 달리, 구성주의는 권력자 개인이 가진 ‘사상’과 ‘정체성’이 그들이 처한 권력현실이나 그들이 펼치는 권력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봄으로써 개인을 보다 능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북한에서의 권력투쟁이 기본적으로 권력자들의 ‘사상’ 및 ‘정체성’ 간의 투쟁이기도 했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기회구조’에 다양하고 독특하게 반응했던 보다 심층적인 이유가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북한 정치·역사에 30년 이상 천착해온 저자가 온 역량을 쏟아 탄생시킨 이 노작은, 천안함 사건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권력세습 문제로 격동하고 있는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목차
서론
제1부이론적 분석의 틀
제1장이론적 분석의 틀
1. 구성주의
2. 정치기회구조
제2부파벌 경쟁과 패권적 연합(1945~1953)
제2장파벌의 경쟁과 연합
1. 정치기회구조
2. 김일성 vs. 오기섭
3. 김일성 vs. 박헌영
4. 김일성 vs. 조만식
제3장김일성 중심의 패권적 연합
1. 6·25전쟁
2. 김일성 중심의 패권적 연합
3. 박헌영파 숙청
제3부‘8월 종파사건’과 ‘반종파 투쟁’(1953~1958)
제4장‘8월 종파사건’의 정치기회구조
1.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2. 폴란드 포즈난 사건
3. 북한정부 대표단의 동유럽, 소련, 몽골 순방
4.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 리상조의 역할
5. 소련과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의 역할
6. 조선로동당 제3차 대회
제5장‘8월 종파사건’의 배경: 사상과 정체성의 충돌
1. 전후 복구발전 노선 경쟁
2. 사상사업에서의 투쟁
3. 김일성 개인숭배, 조선혁명역사 왜곡, 김일성파 중용
4. 김일성파 vs. 연안파 vs. 소련파
제6장‘8월 종파사건’의 모의과정
1. 북한정부 대표단의 동유럽, 소련, 몽골 순방 출발 이전
2. 북한정부 대표단의 동유럽, 소련, 몽골 순방기간
3. 북한정부 대표단의 귀국 이후
제7장‘8월 종파사건’의 발생과 반전
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8월 전원회의’
2.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직접 개입
3.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9월 전원회의’
4. ‘8월 종파사건’의 평가
제8장‘반종파 투쟁’
1. 대외 정치기회구조
2. ‘반종파 투쟁’
3. 조선로동당 대표자회
4. 인민군대 내 ‘당 위원회’ 설치와 소련파 및 연안파 숙청
5. 인간개조, 사회개조 운동의 움틈
제4부단일지도체계, 유일사상체계(1958~1994)
제9장김일성 단일지도체계 확립
1. 대외 정치기회구조
2. 조선로동당 제4차 대회
3. 김일성사상과 항일빨치산혁명전통 정체성의 공유
4. 정통 마르크스 논쟁과 사상문화 간부들의 도전
5. 조선로동당 제2차 대표자회
6. 1967년: 유일사상체계, 사회문화적 ‘대격변’
7. 인민군대 내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숙청
제10장유일사상체계, 수령제 사회주의
1. 대외 정치기회구조
2. 유일사상체계의 심화와 ‘계속혁명’
3.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
4. 1972년 ‘사회주의’ 헌법
5.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강령 선포
6. 3대혁명소조운동
7.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
8. 수령과 수령제 사회주의
9. 김정일의 수령 승계
제5부선군사회주의(1995~2010)
제11장선군사회주의
1. 대외 정치기회구조
2. 대내 정치기회구조
3. 선군정치 이전의 조치들
4. 선군사회주의
5. 3대 세습 후계정치
제6부평가와 전망
제12장‘북한 권력의 역사’의 평가와 전망
1. ‘북한 권력의 역사’의 평가
2. 북한 권력의 미래
제1부이론적 분석의 틀
제1장이론적 분석의 틀
1. 구성주의
2. 정치기회구조
제2부파벌 경쟁과 패권적 연합(1945~1953)
제2장파벌의 경쟁과 연합
1. 정치기회구조
2. 김일성 vs. 오기섭
3. 김일성 vs. 박헌영
4. 김일성 vs. 조만식
제3장김일성 중심의 패권적 연합
1. 6·25전쟁
2. 김일성 중심의 패권적 연합
3. 박헌영파 숙청
제3부‘8월 종파사건’과 ‘반종파 투쟁’(1953~1958)
제4장‘8월 종파사건’의 정치기회구조
1.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2. 폴란드 포즈난 사건
3. 북한정부 대표단의 동유럽, 소련, 몽골 순방
4.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 리상조의 역할
5. 소련과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의 역할
6. 조선로동당 제3차 대회
제5장‘8월 종파사건’의 배경: 사상과 정체성의 충돌
1. 전후 복구발전 노선 경쟁
2. 사상사업에서의 투쟁
3. 김일성 개인숭배, 조선혁명역사 왜곡, 김일성파 중용
4. 김일성파 vs. 연안파 vs. 소련파
제6장‘8월 종파사건’의 모의과정
1. 북한정부 대표단의 동유럽, 소련, 몽골 순방 출발 이전
2. 북한정부 대표단의 동유럽, 소련, 몽골 순방기간
3. 북한정부 대표단의 귀국 이후
제7장‘8월 종파사건’의 발생과 반전
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8월 전원회의’
2.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의 직접 개입
3.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9월 전원회의’
4. ‘8월 종파사건’의 평가
제8장‘반종파 투쟁’
1. 대외 정치기회구조
2. ‘반종파 투쟁’
3. 조선로동당 대표자회
4. 인민군대 내 ‘당 위원회’ 설치와 소련파 및 연안파 숙청
5. 인간개조, 사회개조 운동의 움틈
제4부단일지도체계, 유일사상체계(1958~1994)
제9장김일성 단일지도체계 확립
1. 대외 정치기회구조
2. 조선로동당 제4차 대회
3. 김일성사상과 항일빨치산혁명전통 정체성의 공유
4. 정통 마르크스 논쟁과 사상문화 간부들의 도전
5. 조선로동당 제2차 대표자회
6. 1967년: 유일사상체계, 사회문화적 ‘대격변’
7. 인민군대 내 군벌관료주의자들의 숙청
제10장유일사상체계, 수령제 사회주의
1. 대외 정치기회구조
2. 유일사상체계의 심화와 ‘계속혁명’
3.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
4. 1972년 ‘사회주의’ 헌법
5.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강령 선포
6. 3대혁명소조운동
7.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
8. 수령과 수령제 사회주의
9. 김정일의 수령 승계
제5부선군사회주의(1995~2010)
제11장선군사회주의
1. 대외 정치기회구조
2. 대내 정치기회구조
3. 선군정치 이전의 조치들
4. 선군사회주의
5. 3대 세습 후계정치
제6부평가와 전망
제12장‘북한 권력의 역사’의 평가와 전망
1. ‘북한 권력의 역사’의 평가
2. 북한 권력의 미래
책 속으로
“신탁통치가 김일성을 살리고 박헌영을 죽였다”는 세간의 유행어처럼, 신탁통치 문제는 박헌영으로 하여금 소련의 지시에 따르고 소련의 후견을 받고 있던 김일성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김일성과 박헌영의 권력 싸움에서 일대 분수령을 이루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신탁통치 문제는 박헌영뿐만 아니라 신탁통치를 반대했던 민족주의자 조만식도 함께 죽이고 말았다. 달리 말해, 신탁통치 문제는 김일성에게 당-국가건설에서 경쟁자들을 무력화시키거나 없애는 데 유리한 대외 정치기회구조로서 작용했던 것이다.---p.68
중국과 소련의 6·25전쟁에 대한 지원은 자연히 북한정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의 영향력을 증가시켰으며, 이것이 나중에 ‘8월 종파사건’ 발생으로 연결됐다. 한편, 소련파와 연안파의 힘의 증가는 역설적으로 김일성으로 하여금 이들과 연결되어 있던 소련과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주체 확립’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했다.---p.99
결국 박헌영은 리승엽, 조일명 등 남로당 부하들이 고문에 의해서 그랬든지 어쨌든지 모두들 간첩행위를 했다고 이미 자백한 상황에서 ‘자발적 간첩행위’보다는 ‘객관적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간첩이라고 자백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미군정하에서 혁명활동을 했던 남로당 출신이었던 관계로 이리저리 미국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수하들이 많았고, 박헌영은 이들을 비호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박헌영·리승엽 사건을 대남 연락부에서 조사한 임무를 수행했던 신경완의 증언에 따르면, 백형복, 박종열 등 박헌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미국 측의 지시를 받아 월북하여 박헌영과 리승엽을 찾아가 그 주변에서 맴돈 조직선이 5~6개나 됐다고 했다.---p.159
김일성에게는, 6·25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직접 참전 덕분으로 자신이 살아남았으나 중조양군합작사 구성을 통해 북한군의 작전지휘권을 중국에 넘겨주어야만 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감사한 마음만 가질 수 없는 어떤 정서가 있었고, 소련에 대해서는 소련이 6·25전쟁에서 미국과의 직접 대결을 우려하여 군사적 개입을 회피하는 등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한 정서가 또한 있었다. 어찌보면 김일성으로서는 이제 중국과 소련을 모두 이용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었다. 더구나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하려고 작심을 하고 있었다.---p.212
김일성이 박창옥 등 소련파를 제거하려는 자신의 속내를 초기에는 숨기고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보인 주목할 만한 특징은 박창옥을 다루는 데서 ‘비판’과 ‘위로’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공격하고 안심시키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결국 박창옥이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스스로 너무 피곤하여’ 좌절에 빠져 자신의 모든 직위로부터 철직을 요청하면, 그것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식의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소련의 북한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소련파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련파에 대한 직접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을 피하면서 그들을 제거해나가는 매우 전략적인 용인술이었음에 틀림없다.---p.312
1945~1950년의 ‘평화적 건설기’와 1950~1953년의 6·25전쟁을 거쳐 1956년 4월 당 제3차 대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김일성은 북한 국내파(오기섭), 남한 국내파(박헌영, 리승엽), 소련파(허가이, 박창옥), 연안파(무정, 박일우)를 숙청함에서 연합과 고립의 전술을 통해 적을 각개 격파하는 전술을 사용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김일성의 파벌 숙청 방법이 1956년 ‘8월 종파사건’의 경우에는 정반대로 오히려 연안파와 소련파에 의해 사용됐고, 김일성은 궁정쿠데타 시도를 당했던 것이다. 이는 김일성으로서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8월 종파사건’에서 그러한 충격적인 형식의 권력투쟁 경험을 한 이후에 김일성은 태도를 바꿨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이래 국가사업, 행정사업에 집중해왔던 방식을 버리고 당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 모든 파벌을 제거하고 자신의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p.358
김일성은 북한에서 당과 국가의 관리들에 대한 인사 배치에서 파벌을 의식하여 안배했고, 박창옥, 리상조 등을 다룰 때도 ‘비판’과 ‘위로’, 즉 채찍과 당근을 적당히 조합하여 사용했으며, 박창옥의 경우 숙청을 당하면서도 김일성의 선의를 믿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는 김일성이 뛰어난 용인술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김일성의 융통성과 정치력의 바탕은 기본적으로 김일성이 만주에서 항일빨치산 투쟁 시, 장기적으로 이루어내야 할 목표인 ‘기본 강령’과 생존을 위해 날마다 취해야 했던 ‘행동 강령’을 구별하면서 활동했던 경험이었다. 빨치산 활동은 기본적으로 좋은 ‘정치학교’였던 것이다. 매일 변화하는 환경과 생존 조건에 적응하고, 사고와 행동에서 신축성을 키운 빨치산 경험은 해방 이후 복잡한 정치 환경 속에서 당-국가를 건설하고 6·25전쟁을 수행하는 데서 중요한 정치력으로 발휘됐다고 할 수 있다.---p.503~504
한미 양국이 ‘천안함 사건 해결’과 ‘6자회담 재개’를 연계하는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그동안 미중 양국 간에 동아시아 안보분야에서 협력의 공통분모와 연결고리의 역할을 해왔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력’이라는 정책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됐다. 안보분야에서 협력의 영역이 사라지자 미중 양국은 본격적인 힘의 경쟁에 돌입했으며, 그것은 천안함 사건의 조사와 처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천안함 사건에 관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보면, 이는 ‘천안함 사건의 처리’ 문서라기보다, 좀 심하게 말하면, 2010년 7월 미중 양국이 새롭게 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일종의 ‘미중관계 보고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양국 간의 힘의 관계와 전략적 충돌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중국과 소련의 6·25전쟁에 대한 지원은 자연히 북한정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의 영향력을 증가시켰으며, 이것이 나중에 ‘8월 종파사건’ 발생으로 연결됐다. 한편, 소련파와 연안파의 힘의 증가는 역설적으로 김일성으로 하여금 이들과 연결되어 있던 소련과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주체 확립’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했다.---p.99
결국 박헌영은 리승엽, 조일명 등 남로당 부하들이 고문에 의해서 그랬든지 어쨌든지 모두들 간첩행위를 했다고 이미 자백한 상황에서 ‘자발적 간첩행위’보다는 ‘객관적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간첩이라고 자백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미군정하에서 혁명활동을 했던 남로당 출신이었던 관계로 이리저리 미국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수하들이 많았고, 박헌영은 이들을 비호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박헌영·리승엽 사건을 대남 연락부에서 조사한 임무를 수행했던 신경완의 증언에 따르면, 백형복, 박종열 등 박헌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미국 측의 지시를 받아 월북하여 박헌영과 리승엽을 찾아가 그 주변에서 맴돈 조직선이 5~6개나 됐다고 했다.---p.159
김일성에게는, 6·25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직접 참전 덕분으로 자신이 살아남았으나 중조양군합작사 구성을 통해 북한군의 작전지휘권을 중국에 넘겨주어야만 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감사한 마음만 가질 수 없는 어떤 정서가 있었고, 소련에 대해서는 소련이 6·25전쟁에서 미국과의 직접 대결을 우려하여 군사적 개입을 회피하는 등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한 정서가 또한 있었다. 어찌보면 김일성으로서는 이제 중국과 소련을 모두 이용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었다. 더구나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하려고 작심을 하고 있었다.---p.212
김일성이 박창옥 등 소련파를 제거하려는 자신의 속내를 초기에는 숨기고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보인 주목할 만한 특징은 박창옥을 다루는 데서 ‘비판’과 ‘위로’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공격하고 안심시키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결국 박창옥이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스스로 너무 피곤하여’ 좌절에 빠져 자신의 모든 직위로부터 철직을 요청하면, 그것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식의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이는 당시 소련의 북한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소련파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련파에 대한 직접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을 피하면서 그들을 제거해나가는 매우 전략적인 용인술이었음에 틀림없다.---p.312
1945~1950년의 ‘평화적 건설기’와 1950~1953년의 6·25전쟁을 거쳐 1956년 4월 당 제3차 대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김일성은 북한 국내파(오기섭), 남한 국내파(박헌영, 리승엽), 소련파(허가이, 박창옥), 연안파(무정, 박일우)를 숙청함에서 연합과 고립의 전술을 통해 적을 각개 격파하는 전술을 사용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김일성의 파벌 숙청 방법이 1956년 ‘8월 종파사건’의 경우에는 정반대로 오히려 연안파와 소련파에 의해 사용됐고, 김일성은 궁정쿠데타 시도를 당했던 것이다. 이는 김일성으로서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8월 종파사건’에서 그러한 충격적인 형식의 권력투쟁 경험을 한 이후에 김일성은 태도를 바꿨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이래 국가사업, 행정사업에 집중해왔던 방식을 버리고 당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 모든 파벌을 제거하고 자신의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p.358
김일성은 북한에서 당과 국가의 관리들에 대한 인사 배치에서 파벌을 의식하여 안배했고, 박창옥, 리상조 등을 다룰 때도 ‘비판’과 ‘위로’, 즉 채찍과 당근을 적당히 조합하여 사용했으며, 박창옥의 경우 숙청을 당하면서도 김일성의 선의를 믿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는 김일성이 뛰어난 용인술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김일성의 융통성과 정치력의 바탕은 기본적으로 김일성이 만주에서 항일빨치산 투쟁 시, 장기적으로 이루어내야 할 목표인 ‘기본 강령’과 생존을 위해 날마다 취해야 했던 ‘행동 강령’을 구별하면서 활동했던 경험이었다. 빨치산 활동은 기본적으로 좋은 ‘정치학교’였던 것이다. 매일 변화하는 환경과 생존 조건에 적응하고, 사고와 행동에서 신축성을 키운 빨치산 경험은 해방 이후 복잡한 정치 환경 속에서 당-국가를 건설하고 6·25전쟁을 수행하는 데서 중요한 정치력으로 발휘됐다고 할 수 있다.---p.503~504
한미 양국이 ‘천안함 사건 해결’과 ‘6자회담 재개’를 연계하는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그동안 미중 양국 간에 동아시아 안보분야에서 협력의 공통분모와 연결고리의 역할을 해왔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력’이라는 정책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됐다. 안보분야에서 협력의 영역이 사라지자 미중 양국은 본격적인 힘의 경쟁에 돌입했으며, 그것은 천안함 사건의 조사와 처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천안함 사건에 관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보면, 이는 ‘천안함 사건의 처리’ 문서라기보다, 좀 심하게 말하면, 2010년 7월 미중 양국이 새롭게 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일종의 ‘미중관계 보고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양국 간의 힘의 관계와 전략적 충돌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p.680
출판사 리뷰
북한 권력 65년의 대하실록!
60년 일당독재, 세계 유일무이의 3대 세습국가를 만든
힘의 원천을 해부하다
북한의 ‘후계자론’에 의하면, ‘후계자의 요건’인 후계자의 품격과 자질은 네 가지이다. 첫째, 수령에 대한 충실성, 둘째, 비범한 사상이론적 예지와 뛰어난 영도력과 고매한 공산주의 덕성, 셋째,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업적과 공헌 덕분에 인민들 속에서 누리는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 넷째, 수령과 후계자의 비(非) 동일세대 관계이다. ……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가 된 데는 적게는 6년, 공식적으로는 13년이 걸렸던 것이다. 김정은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가 과연 ‘비범한 사상이론적 예지와 뛰어난 영도력, 고매한 공산주의 덕성’을 갖추고,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업적과 공헌으로 인해 인민들 속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을 지니고 있는가?
- 본문 중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2010년 현재까지의 북한 권력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고 특히 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북한 정치·역사에 30년 이상 천착해온 저자가 온 역량을 쏟아 탄생시킨 이 노작은, 천안함 사건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권력세습 문제로 격동하고 있는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권력 65년의 대하실록!
60년 일당독재, 세계 유일무이의 3대 세습국가를 만든 힘의 원천을 해부하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2010년 현재까지의 북한 권력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고 특히 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개인을 어디까지나 외부 자원과 구조의 압력하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기계’에 가깝게 보는 신현실주의와 달리, 구성주의는 권력자 개인이 가진 ‘사상’과 ‘정체성’이 그들이 처한 권력현실이나 그들이 펼치는 권력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봄으로써 개인을 보다 능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북한에서의 권력투쟁이 기본적으로 권력자들의 ‘사상’ 및 ‘정체성’ 간의 투쟁이기도 했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기회구조’에 다양하고 독특하게 반응했던 보다 심층적인 이유가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북한 정치·역사에 30년 이상 천착해온 저자가 온 역량을 쏟아 탄생시킨 이 노작은, 천안함 사건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권력세습 문제로 격동하고 있는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창건자들의 암투, 그 속에서 도출되는 하나의 질문, “북한은 어떤 당-국가여야 하는가?”
북한 정권 성립기부터 김일성은 사실상의 1인자였지만, 그의 권력이 처음부터 확고부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기섭, 박헌영, 조만식 등은 분명 정권과 북한 대중의 지지를 놓고 김일성과 권력투쟁을 벌였고, 더 이후에 부각되는 연안파·소련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김일성이 라이벌들을 숙청하고 유일지도체계를 수립해가는 과정에서 ‘사상’과 ‘정체성’ 간의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해방 직후 김일성은 북한의 안정과 정권 건설을 위해 민족주의적 지주와 자본가를 받아들일 것(민족통일전선)을 주장한 데 비해, 오기섭은 지주와 자본가 계층을 기본적으로 친일파로 보고 그들을 배제해야 한다고(인민전선) 주장한다. 또 김일성이 ‘당’에 최고 지위를 부여한 반면, 오기섭은 보다 ‘좌파적’으로 노동자 중심의 ‘직업동맹’(직맹)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따라서 오기섭이 축출당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더 큰 포용성을 보인 김일성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동시에 사회주의국가 건설과정에서 불온한 요소가 될 수도 있던 직맹을 보다 통제가능한 수준으로 묶어놓는 과정이기도 했다.
조만식, 박헌영의 경우에도 그들이 가졌던 사상과 정체성이 김일성의 그것과 어떻게 충돌했으며, 그것이 신탁통치 문제나 한국전쟁과 같은 극적인 정치기회구조 속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이 책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해방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이 1인자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북한 사회가 지주·자본가 계급(조만식)은 물론 정치세력으로서의 ‘좌경주의자들’(오기섭), 그리고 38선 이남의 사회주의 세력(박헌영)이 궁극적으로 배제되는 형태로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보게 된다. 아울러 김일성 자신의 개인적인 리더십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대한 단초들 또한 풍성하게 발견할 수가 있다.
신탁통치 문제와 한국전쟁, 김일성에게 날개를 달아준 ‘대외 정치기회구조’
이 책은 소련의 한반도정책, 신탁통치 문제, 한국전쟁, 소련의 탈스탈린운동, 중소분쟁, 베트남전쟁, 중-미관계 개선 등 동서 데탕트,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같은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과 이슈들이 북한 권력의 형성과 전개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김일성을 위시한 북한 권력층이 이런 ‘대외 정치기회구조’를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는지에 특히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탁통치 문제는 김일성에게 날개를 달아준 첫 번째 ‘대외 정치기회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신탁통치 문제에 대한 소련의 지원 아래 김일성은 자산계급을 대변하고 보다 민족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던 조만식을 제거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남로당의 박헌영을 누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 김일성은 ‘1949년 6월 질서’로 불리는 연합지도체제를 받아들여야 했고, 만일 소련파와 연안파, 박헌영파가 연합한다면 김일성이 홀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팽팽한 균형추를 결정적으로 기울게 만든 사건은 다름 아닌 한국전쟁이었다. 전쟁을 통해 김일성은 원래의 목표인 한반도 통일에는 실패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정치기회구조’를 이용하여 연안파 무정, 소련파 허가이, 남로당 박헌영파를 차례로 숙청하고 종전 후에는 박헌영 본인마저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숙청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김일성의 ‘사상’과 ‘정체성’이 상대의 그것과 분명하게 충돌하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 당시 수많은 당원이 죽거나 도피하고 변절하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허가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에 투철한 당원만으로 당을 유지함으로써 ‘순수한 당’을 만들기를 원했던 데 반해, 김일성은 입당과 책벌에 있어서 보다 더 관용을 베풂으로써 ‘대중적인 당’이 되도록 하려 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정치기회구조’는 허가이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고 결국 김일성이 허가이를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또한 이 책은 ‘박헌영이 미국 스파이였다’는 등의 북한 내 권력암투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오해들에 대해서 사료를 바탕으로 기존 논의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객관적이고도 다면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 책은 북한 권력의 역사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1946~1956년 기간의 조선로동당 중앙 상무위, 중앙 정치위, 중앙 조직위, 중앙위의 ‘결정’들 전체와 북한 관련 러시아현대사국가문서보관소[RGANI] 소장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철, 러시아연방 대통령문서보관소 및 러시아연방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의 김일성, 박헌영 및 6.25전쟁 관련 문서들, 마오쩌둥과 미코얀 간의 대화록과 마오쩌둥과 최용건의 대화록을 이용하고 있다.)
연안파와 소련파의 반격! 김일성 최대의 위기, ‘8월 종파사건’에 대한 독보적인 심층 분석!
1956년의 ‘8월 종파사건’은 북한 역사상 유일무이한 ‘궁정 쿠데타 시도’로서 북한 권력의 역사에서 권력투쟁의 압권을 이뤘던 사건이었으며, 이는 이후 북한이 ‘주체사상’을 내세우고 독자노선을 걷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이 책은 냉전 종식 이후 비밀해제된 당시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 및 중국 문서들을 토대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8월 종파사건’의 전모를 재구성하면서 무려 5개 장(章)을 할애하여 이제까지 보기 어려웠던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흐루쇼프의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에 용기를 얻은 소련파와 연안파가 어떻게 ‘궁정 쿠데타’를 모의했으며 긴박하게 로비활동을 벌였는지, 이를 미리 간파한 김일성은 어떻게 만반의 대비를 했는지, 문제의 8월 전원회의에서는 실제로 어떠한 말들이 오갔으며 어떻게 소련파와 연안파가 도리어 궁지에 몰렸는지, 또한 소련과 중국이 어떻게 해서 이 사태에 직접 개입하여 소련파와 연안파를 복권시키는지, 그리고 종국에는 이렇게 치욕을 당한 김일성이 와신상담 끝에 어떻게 ‘반종파 투쟁’에 성공하여 단일지도체계를 세워 결국 유일지도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는지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보다 객관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비밀해제 문서들과 저자가 입수한 대화록들을 거의 원문 그대로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8월 종파사건’ 당시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소련 부수상 미코얀과 마오쩌둥 간의 대화, 마오쩌둥과 북한 부총리 최용건 간의 대화는 한국 학계에 최초로 소개되는 것으로서 박진감이 있고 당시 중국과 소련이 김일성과 북한 권력 내부에 대해 어떤 입장과 우려를 갖고 있었는지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이 ‘8월 종파사건’의 성격에 대한 여러 선행연구들을 검토하고 나름의 평가를 내리면서, 이 사건이 권력 중심에서 밀려난 연안파와 소련파의 단순한 반기나 불만의 표출이 아니며, 전후 복구과정에서 중공업을 우선시할 것인가, 아니면 경공업/소비재공업을 우선시할 것인가, 또 ?업협동화를 추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와 같은 중대한 국가 비전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졌던 사상 충돌의 산물이자 ‘궁정 쿠데타 시도’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역사적 기원을 검토하다
북한 국가 수립 이후 ‘행정 사업’에서 집중했던 김일성은 ‘8월 종파사건’을 통해 권력에서 축출당할 뻔했던 경험을 한 후에는 ‘당 사업’을 우선시하면서 ‘반종파 투쟁’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제 김일성의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사회주의 발전노선, 즉 ‘주체’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조국광복회 출신 등의 숙청이 완료되는 1967년을 기점으로 김일성은 유일사상체계를 사실상 확립한다. 이 책은 당시 중-소 갈등이나 미-중 간 데탕트와 같은 ‘대외 정치기회구조’의 변화가 ‘김일성 개인숭배 및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또 그것이 어떤 과정과 경로들을 통해 북한 사회 전체의 ‘사상’과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되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한편, 1990년대에 소련과 공산주의권이 몰락하고 김일성이 사망하는 등 일대 위기가 닥치자, 후대 수령이 된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변형·발전시킨 ‘선군사회주의’를 내세워 이를 돌파하려고 하게 된다. 이 책은 고난의 행군과 함께 시작되어 이제 막 후계체제를 출범시킨 김정일 시대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승계받는 과정, 김정일 선군사상의 특징, 그리고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살피고 있다.
3대 세습은 안착할 수 있을까? 북한 권력의 미래상을 그리다!
3대 세습은 북한 권부가 당면한 최대 현안이자, 밖에서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 책은 65년에 걸친 북한 권력사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3대 세습의 현재를 진단하고 그 미래를 가늠해보고 있다. 김정일이 후계세습을 할 때와 지금과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김정은이 3대 수령으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관건은 무엇인지, 또 지난 9월 44년 만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 의의와 주목할 만한 결정사항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 저자는 북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로서 그간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거나 오해했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세심하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결론부에서는 북한 권력의 전체적인 미래상을 제시해보고 있다. 저자는 북한 권력의 사상과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왔으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 변화의 방향이 ‘물질적 자원’을 확대하는 방향, 즉 개방과 개혁을 확대하고 대남관계도 개선하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들을 하나하나 제시한다. 아울러 최근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서 곧 급변사태가 발생할 것처럼 성급하게 예측하고 있는 데 대해서, 저자는 북한이 지닌 ‘사상적 자원’이 ‘사회주의’나 ‘주체/선군사상’만이 아니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북한 권력의 격동기인 이때에 우리가 북한 권력을 60년 이상 지탱해온 힘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60년 일당독재, 세계 유일무이의 3대 세습국가를 만든
힘의 원천을 해부하다
북한의 ‘후계자론’에 의하면, ‘후계자의 요건’인 후계자의 품격과 자질은 네 가지이다. 첫째, 수령에 대한 충실성, 둘째, 비범한 사상이론적 예지와 뛰어난 영도력과 고매한 공산주의 덕성, 셋째,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업적과 공헌 덕분에 인민들 속에서 누리는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 넷째, 수령과 후계자의 비(非) 동일세대 관계이다. ……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가 된 데는 적게는 6년, 공식적으로는 13년이 걸렸던 것이다. 김정은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가 과연 ‘비범한 사상이론적 예지와 뛰어난 영도력, 고매한 공산주의 덕성’을 갖추고,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업적과 공헌으로 인해 인민들 속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을 지니고 있는가?
- 본문 중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2010년 현재까지의 북한 권력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고 특히 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북한 정치·역사에 30년 이상 천착해온 저자가 온 역량을 쏟아 탄생시킨 이 노작은, 천안함 사건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권력세습 문제로 격동하고 있는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권력 65년의 대하실록!
60년 일당독재, 세계 유일무이의 3대 세습국가를 만든 힘의 원천을 해부하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2010년 현재까지의 북한 권력의 역사를 꼼꼼히 살피고 특히 구성주의적 접근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개인을 어디까지나 외부 자원과 구조의 압력하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기계’에 가깝게 보는 신현실주의와 달리, 구성주의는 권력자 개인이 가진 ‘사상’과 ‘정체성’이 그들이 처한 권력현실이나 그들이 펼치는 권력행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봄으로써 개인을 보다 능동적인 존재로 파악한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프리즘을 통해, 우리는 북한에서의 권력투쟁이 기본적으로 권력자들의 ‘사상’ 및 ‘정체성’ 간의 투쟁이기도 했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기회구조’에 다양하고 독특하게 반응했던 보다 심층적인 이유가 존재했음을 깨닫게 된다. 북한 정치·역사에 30년 이상 천착해온 저자가 온 역량을 쏟아 탄생시킨 이 노작은, 천안함 사건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권력세습 문제로 격동하고 있는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창건자들의 암투, 그 속에서 도출되는 하나의 질문, “북한은 어떤 당-국가여야 하는가?”
북한 정권 성립기부터 김일성은 사실상의 1인자였지만, 그의 권력이 처음부터 확고부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기섭, 박헌영, 조만식 등은 분명 정권과 북한 대중의 지지를 놓고 김일성과 권력투쟁을 벌였고, 더 이후에 부각되는 연안파·소련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김일성이 라이벌들을 숙청하고 유일지도체계를 수립해가는 과정에서 ‘사상’과 ‘정체성’ 간의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해방 직후 김일성은 북한의 안정과 정권 건설을 위해 민족주의적 지주와 자본가를 받아들일 것(민족통일전선)을 주장한 데 비해, 오기섭은 지주와 자본가 계층을 기본적으로 친일파로 보고 그들을 배제해야 한다고(인민전선) 주장한다. 또 김일성이 ‘당’에 최고 지위를 부여한 반면, 오기섭은 보다 ‘좌파적’으로 노동자 중심의 ‘직업동맹’(직맹)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따라서 오기섭이 축출당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더 큰 포용성을 보인 김일성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동시에 사회주의국가 건설과정에서 불온한 요소가 될 수도 있던 직맹을 보다 통제가능한 수준으로 묶어놓는 과정이기도 했다.
조만식, 박헌영의 경우에도 그들이 가졌던 사상과 정체성이 김일성의 그것과 어떻게 충돌했으며, 그것이 신탁통치 문제나 한국전쟁과 같은 극적인 정치기회구조 속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이 책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해방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이 1인자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북한 사회가 지주·자본가 계급(조만식)은 물론 정치세력으로서의 ‘좌경주의자들’(오기섭), 그리고 38선 이남의 사회주의 세력(박헌영)이 궁극적으로 배제되는 형태로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보게 된다. 아울러 김일성 자신의 개인적인 리더십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지에 대한 단초들 또한 풍성하게 발견할 수가 있다.
신탁통치 문제와 한국전쟁, 김일성에게 날개를 달아준 ‘대외 정치기회구조’
이 책은 소련의 한반도정책, 신탁통치 문제, 한국전쟁, 소련의 탈스탈린운동, 중소분쟁, 베트남전쟁, 중-미관계 개선 등 동서 데탕트,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같은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과 이슈들이 북한 권력의 형성과 전개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김일성을 위시한 북한 권력층이 이런 ‘대외 정치기회구조’를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는지에 특히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탁통치 문제는 김일성에게 날개를 달아준 첫 번째 ‘대외 정치기회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신탁통치 문제에 대한 소련의 지원 아래 김일성은 자산계급을 대변하고 보다 민족주의적인 입장에 서 있던 조만식을 제거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남로당의 박헌영을 누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 김일성은 ‘1949년 6월 질서’로 불리는 연합지도체제를 받아들여야 했고, 만일 소련파와 연안파, 박헌영파가 연합한다면 김일성이 홀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팽팽한 균형추를 결정적으로 기울게 만든 사건은 다름 아닌 한국전쟁이었다. 전쟁을 통해 김일성은 원래의 목표인 한반도 통일에는 실패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정치기회구조’를 이용하여 연안파 무정, 소련파 허가이, 남로당 박헌영파를 차례로 숙청하고 종전 후에는 박헌영 본인마저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숙청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김일성의 ‘사상’과 ‘정체성’이 상대의 그것과 분명하게 충돌하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 당시 수많은 당원이 죽거나 도피하고 변절하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허가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에 투철한 당원만으로 당을 유지함으로써 ‘순수한 당’을 만들기를 원했던 데 반해, 김일성은 입당과 책벌에 있어서 보다 더 관용을 베풂으로써 ‘대중적인 당’이 되도록 하려 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정치기회구조’는 허가이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고 결국 김일성이 허가이를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또한 이 책은 ‘박헌영이 미국 스파이였다’는 등의 북한 내 권력암투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오해들에 대해서 사료를 바탕으로 기존 논의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객관적이고도 다면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 책은 북한 권력의 역사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1946~1956년 기간의 조선로동당 중앙 상무위, 중앙 정치위, 중앙 조직위, 중앙위의 ‘결정’들 전체와 북한 관련 러시아현대사국가문서보관소[RGANI] 소장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철, 러시아연방 대통령문서보관소 및 러시아연방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의 김일성, 박헌영 및 6.25전쟁 관련 문서들, 마오쩌둥과 미코얀 간의 대화록과 마오쩌둥과 최용건의 대화록을 이용하고 있다.)
연안파와 소련파의 반격! 김일성 최대의 위기, ‘8월 종파사건’에 대한 독보적인 심층 분석!
1956년의 ‘8월 종파사건’은 북한 역사상 유일무이한 ‘궁정 쿠데타 시도’로서 북한 권력의 역사에서 권력투쟁의 압권을 이뤘던 사건이었으며, 이는 이후 북한이 ‘주체사상’을 내세우고 독자노선을 걷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이 책은 냉전 종식 이후 비밀해제된 당시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 및 중국 문서들을 토대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8월 종파사건’의 전모를 재구성하면서 무려 5개 장(章)을 할애하여 이제까지 보기 어려웠던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흐루쇼프의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에 용기를 얻은 소련파와 연안파가 어떻게 ‘궁정 쿠데타’를 모의했으며 긴박하게 로비활동을 벌였는지, 이를 미리 간파한 김일성은 어떻게 만반의 대비를 했는지, 문제의 8월 전원회의에서는 실제로 어떠한 말들이 오갔으며 어떻게 소련파와 연안파가 도리어 궁지에 몰렸는지, 또한 소련과 중국이 어떻게 해서 이 사태에 직접 개입하여 소련파와 연안파를 복권시키는지, 그리고 종국에는 이렇게 치욕을 당한 김일성이 와신상담 끝에 어떻게 ‘반종파 투쟁’에 성공하여 단일지도체계를 세워 결국 유일지도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는지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보다 객관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비밀해제 문서들과 저자가 입수한 대화록들을 거의 원문 그대로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8월 종파사건’ 당시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소련 부수상 미코얀과 마오쩌둥 간의 대화, 마오쩌둥과 북한 부총리 최용건 간의 대화는 한국 학계에 최초로 소개되는 것으로서 박진감이 있고 당시 중국과 소련이 김일성과 북한 권력 내부에 대해 어떤 입장과 우려를 갖고 있었는지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이 ‘8월 종파사건’의 성격에 대한 여러 선행연구들을 검토하고 나름의 평가를 내리면서, 이 사건이 권력 중심에서 밀려난 연안파와 소련파의 단순한 반기나 불만의 표출이 아니며, 전후 복구과정에서 중공업을 우선시할 것인가, 아니면 경공업/소비재공업을 우선시할 것인가, 또 ?업협동화를 추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와 같은 중대한 국가 비전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졌던 사상 충돌의 산물이자 ‘궁정 쿠데타 시도’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역사적 기원을 검토하다
북한 국가 수립 이후 ‘행정 사업’에서 집중했던 김일성은 ‘8월 종파사건’을 통해 권력에서 축출당할 뻔했던 경험을 한 후에는 ‘당 사업’을 우선시하면서 ‘반종파 투쟁’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제 김일성의 북한이 소련과 중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사회주의 발전노선, 즉 ‘주체’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조국광복회 출신 등의 숙청이 완료되는 1967년을 기점으로 김일성은 유일사상체계를 사실상 확립한다. 이 책은 당시 중-소 갈등이나 미-중 간 데탕트와 같은 ‘대외 정치기회구조’의 변화가 ‘김일성 개인숭배 및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또 그것이 어떤 과정과 경로들을 통해 북한 사회 전체의 ‘사상’과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되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한편, 1990년대에 소련과 공산주의권이 몰락하고 김일성이 사망하는 등 일대 위기가 닥치자, 후대 수령이 된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변형·발전시킨 ‘선군사회주의’를 내세워 이를 돌파하려고 하게 된다. 이 책은 고난의 행군과 함께 시작되어 이제 막 후계체제를 출범시킨 김정일 시대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승계받는 과정, 김정일 선군사상의 특징, 그리고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살피고 있다.
3대 세습은 안착할 수 있을까? 북한 권력의 미래상을 그리다!
3대 세습은 북한 권부가 당면한 최대 현안이자, 밖에서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 책은 65년에 걸친 북한 권력사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3대 세습의 현재를 진단하고 그 미래를 가늠해보고 있다. 김정일이 후계세습을 할 때와 지금과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김정은이 3대 수령으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관건은 무엇인지, 또 지난 9월 44년 만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 의의와 주목할 만한 결정사항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 저자는 북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로서 그간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거나 오해했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세심하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결론부에서는 북한 권력의 전체적인 미래상을 제시해보고 있다. 저자는 북한 권력의 사상과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해왔으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 변화의 방향이 ‘물질적 자원’을 확대하는 방향, 즉 개방과 개혁을 확대하고 대남관계도 개선하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큰 이유들을 하나하나 제시한다. 아울러 최근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서 곧 급변사태가 발생할 것처럼 성급하게 예측하고 있는 데 대해서, 저자는 북한이 지닌 ‘사상적 자원’이 ‘사회주의’나 ‘주체/선군사상’만이 아니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북한 권력의 격동기인 이때에 우리가 북한 권력을 60년 이상 지탱해온 힘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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