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계국가의 이해 (독서>책소개)/2.영국역사문화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

동방박사님 2022. 10. 2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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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까지의 우생학이 국가와 국민의 결혼과 출산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오늘날의 우생학은 개인의 자발적 의지에 맡겨진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강제'가 아닌 '자발'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그것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출산 전 검사를 통한 선택적 중절은 결국 생명의 질을 선별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우생학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과거의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문제이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 치료를 통한 '맞춤 아기'도 가능한 이 시대에서 우생학이 제기하는 인간의 평등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윤리적 난문을 풀어보고 있다.

목차

책을 쓰게 된 동기
들어가는 말

제1장 진화론과 우생학
세기말의 퇴화론
자연 선택과 역선택
우생학의 탄생

제2장 긍정적 우생학
'인종의 자살' - 출산율 감소에 대한 불안
모성 수당에서 가족 수당으로
'대가족에 축복 있으라!' - 우생학의 가족 수당론

제3장 부정적 우생학
무지한 여성들에게도 피임을 - 우생학과 산아 제한
단종은 영구적 피임 수단 - 단종법 제정을 위한 운동
단종법 운동에 대한 여성 단체의 지지

제4장 예방적 우생학
제3의 우생학 - 예방적 우생학의 개념
죄 없는 매독을 없애자 - 성병의 관리와 우생학
결혼에 건강 진단서는 필수 - 결혼 전 건강 진단 프로그램

맺는 말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저자 소개 

저 : 염윤옥
 
고려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전임연구원, 고려대 역사연구소와 민족문화연구원의 연구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낙인찍힌 몸』,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역사학의 역사』(공저), 『몸으로 역사를 읽다』(공저) 등이 있고, 연구 논문으로 「식민지 폭력 피해와 배상: 케냐 마우마우의 사...
 

출판사 리뷰

1. 인위적 진화 굴절된 과학 ― 우생학, 생명의 질을 선별하다
우생학의 탄생지인 영국 우생학의 역사를 통해 생명에 질적 위계를 두는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의 질을 선별하는 오늘의 현실을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골턴에 의해 창시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세계를 풍미한 우생학은 인간의 유전적 자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완전한 진보에 도달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유토피아적 기획이다. 인간을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나누고 공동체의 재생산을 관리하려 한 우생학 정책은 인류의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정신 장애자, 유전병 환자 등 소위 ‘열등한’ 국민의 재생산을 방지하기 위한 단종법의 실시로, 1933년 나치 독일에서는 약 40만 명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미국,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일본에서도 국민 보건 정책의 일환으로 단종법이 시행되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독일보다 앞선 1926년에 단종법이 제정되어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에 대해서까지도 불임수술을 실시했다.
물론 한때 ‘첨단 과학’으로 불리며 국가 권력이 개인의 인권과 재생산 권리를 침해하는 근거가 되었던 우생학은 오늘날 ‘사이비 과학’으로 분류되며, 우생학의 실천은 결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잘못된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생학은 인간을 개량하려는 욕망과 굴절된 과학이 빚은 ‘과거’의 학문일 뿐일까?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중시되는 오늘날, 유전 상담이나 출생 전 진단, 임신 중절 등 생명을 앞에 두고 이뤄지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은 과거의 우생학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형법 제270조를 개정해 낙태를 엄중 처벌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개입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정책은 우생학의 기획과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조디 피콜트의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에서 보듯, 일부 국가에서 불치병 치료를 위해 태아의 유전 형질을 선별하는 ‘맞춤 아기’의 탄생을 합법화하는 현실을 보며 과학이 인간의 ‘품질’을 측정하고 개선하는 디스토피아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 뿐일까?
역사학자 염운옥 교수(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신간『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책세상문고?우리시대 123)은 우생학의 근원지인 영국에서 우생학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대중 그리고 여성을 관리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인간의 ‘생명’에 계급을 부여해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영국의 우생학은 우생학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음에도 법제화에는 실패한 상황에서, 불임 수술 같은 극단적인 조치가 아니라 복지 정책, 인구 정책, 여성 운동과 이혼법 개정 등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사회 운동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여성 운동 진영과 제휴함으로써 유전결정론에서 벗어나 ‘양육’의 요소를 확대하고 교육과 계몽에 기댄 영국 우생학의 온건한 방식은,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 구분하기 힘든 모습으로 대중의 의식 속을 파고들었다. 저자는 이런 영국 우생학의 역사가 오늘의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이분법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현대 이데올로기의 이중성, 양면성이 드러나는 적절한 예가 된다고 본다. 저자에 따르면, 이제 국가 권력이 강제로 인구의 양과 질을 관리하는 폭력적 방식은 사라졌지만, 무한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는 인간의 자질과 능력은 태생적으로 동등할 수 없다는 근대 우생학의 전제를 여전히 추인하고 있다. 따라서 우생학은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은 생명에 질적 위계를 두려 한 역사의 구체적 현장을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우리가 인간의 평등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윤리적 난제를 풀어가는 토대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2. 인간 개조의 욕망, 우생학의 탄생
19세기 말 ‘타락’과 ‘격세 유전’의 불안이 ‘퇴화론’으로 나타나면서, 퇴화를 방지하고 인류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이 생각해낸 것이 바로 우생학이다. 즉 우생학이란 ‘부적격자’의 출산을 억제하고 ‘적격자’의 출산을 장려해 인류라는 ‘종’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려 한 유토피아적 인간 개조 프로그램으로서, 매우 긴 시간을 단위로 펼쳐지는 진화의 과정을 짧은 시간에 압축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통속화함으로써 세대 간의 교배에 의해 ‘우수한 인종’을 만들고자 했다. 골턴의 우생학은 이처럼 진화론과 퇴화론의 산물인 동시에, 종의 개량을 위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부적격자’를 규정해 제거하려는 ‘재생의 과학’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치 단종법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훀는 우생학과는 달리 영국의 우생학은 몇 가지 차별성을 갖는다. 우선 영국에서는 제국의 쇠퇴와 출산율 감소 등을 배경으로 우생학이 시작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우생 정책이 법제화되지 않은 채, 우생학이 사회 운동으로서 정치 세력이나 모성주의 페미니즘 등과 얽혀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 다른 곳에서의 우생학이 인종 중심의 차별을 조장한 반면 영국의 우생학은 당시 사회의 위계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각 계층의 유전적인 소질을 향상시키려는 계급 중심의 성격을 띠었다. 나아가 영국 우생학은 그 운동 과정에서,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역할을 ‘종의 어머니’라는 레토릭을 통해 찬양함으로써 당시 여성 단체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3. 긍정적 우생학과 부정적 우생학
우생학에서는 ‘적격자, 즉 바람직한 계층’의 출산율을 높이려는 ‘긍정적 우생학’과 ‘부적격자, 즉 바람직하지 않은 계층’의 출산율을 낮추려는 ‘부정적 우생학’의 논리가 항상 교차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우생학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은 영국의 여러 제도에 관한 논의에서 드러나는데, 긍정적 우생학의 경우 직접적인 생명 차별과는 무관해 보이는 복지 정책이나 이혼법 개정 등에서도 나타났다. 20세기 초부터 중간 계급의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던 영국에서는 1945년에 ‘가족 수당 제도’가 복지 제도로서 도입되었는데, 이 제도는 자녀를 두 명 이상 둔 가정에 대해 둘째 자녀부터는 1인당 주 5실링의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출산율 상승의 효과를 기대한 것이었으며 아동 복지 서비스의 한 축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가족 수당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전개되었던 운동에 우생협회는 ‘긍정적 우생학’의 측면에서 개입하여, 가족 수당이 인구의 양적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 측면까지도 고려하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당시의 우생주의자들은 중간 계급의 출산율 감소가 인구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족 수당에 대한 논의에서도 한편으로는 중산 계급 이상의 계층의 출산을 장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층 계급의 출산을 억제하는 두 목적을 동시에 채우려 했다.
또한 부정적 우생학은 산아 제한에 대한 논의와 운동에서 한 축을 이루며 실천되었다. 우생학의 억압적 성격이 노골적으로 표출된 ‘단종법’이라는 불임 수술의 법제화를 둘러싼 논의는 산아 제한 운동과도 얽혀 있었고, 이 운동에는 당시 모성 보호와 모성의 자기 결정권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 산아 제한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와, 인구의 양과 질을 조절하는 데 산아 제한을 이용하려는 우생주의자가 서로 불편함을 느끼면서 ‘공존’하는 관계에 있었다. 저자는 이 부분에 집중하여, 부정적 우생학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정책인 단종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우생주의자와 페미니스트 그리고 여성들의 관심과 이해관계가 어떻게 만나고 엇갈렸는지를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당시 여성들의 단종법 지지는 남녀 장애인의 ‘낳을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여성 자신의 ‘낳지 않을 권리’를 주장한 것이라는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

4. 섹슈얼리티를 관리하다 ― 예방적 우생학
이처럼 1920~3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가족 수당 운동, 산아 제한 운동 등은 담론과 운동 두 차원에서 우생학과 제휴하고 있었으나, 우생주의자들의 바람인 단종 같은 강제적 조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영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후 우생학의 방향은 ‘부적격자’의 증식을 산아 제한 지식의 보급과 교육을 통한 설득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단종법 제정에 실패한 영국의 우생학 운동은 건전한 일부일처제에 바탕을 둔 ‘보다 좋은 생식’을 계몽과 교육을 통해 추구해가는 보다 ‘온건한 윤리’, 즉 ‘예방적 우생학’의 논리에 흡수되어갔다.
따라서 이미 성병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서 성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해온 바 있는 영국의 우생학 운동은 1930년대부터는 결혼을 앞둔 남녀가 건강 진단 증명서를 교환할 것을 요구하는 ‘결혼 전 건강 진단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결혼 전 건강 진단 계획은 부적격자의 결혼과 생식을 제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교육과 건강 진단, 유전 상담, 결혼 상담 등을 통해 보다 폭넓은 계층의 결혼과 생식이 우생학의 원리에 입각해 영위되도록 통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저자는 이처럼 당시 우생협회의 성병 관리론이나 성교육론, 결혼 전 건강 진단 계획에 관한 논의와 활동을 중심으로 우생학이 섹슈얼리티의 관리를 실천해가는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우생학 담론이 20세기 초에 등장한 성과학과 함께 섹슈얼리티를 관리하려는 지식의 일환이었음을 밝혀낸다.

5. 21세기의 우생학 ― 국가의 개입에서 개인의 선택으로
영국 우생학 운동의 역사를 긍정적, 부정적, 예방적 우생학이라는 벼 층위에서 분석하는 저자는 현재적 관점에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1970년대 들어 양수 검사 기술이 발달하면서 태아의 장애에 대한 진단, 선택적 임신 중절이 가능해졌으며, 오늘날 첨단 의료 기술과 생명공학은 유전 상담을 넘어 ‘맞춤 아기designer baby’의 탄생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결혼과 출산에 개입해 인구의 양과 질을 관리하려는 전체주의적 기획은 사라졌지만, 개인의 선택이라는 형태로 우생학적 사고와 행동은 여전히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능력 우선 실력 지상이라는 무한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현실은 인간의 자질과 능력은 태생적으로 동등할 수 없다는 우생학의 전제를 여전히 추인하고 있다. 저자는 우생학을 둘러싼 오늘날의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자발적 행위가 첨단 의료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그것이 결국 ‘생명의 질’을 선별하고 사회 계급을 대물림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우생학 비판의 가장 밑바탕에는 무엇보다 ‘생명의 평등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고 개인의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버리는 우생학과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의 논리를 비판하는 저자는 그렇기에 우생학은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지극히 현재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영국 우생학의 역사를 통해 현실을 성찰하는 이 책은 과거와 현재의 우생학이 제기하는 인간의 평등과 생명에 대한 윤리적 난제를 풀어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불행히도 현대 사회는 우생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생학은 현재에도 다른 이름과 다른 형태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삶의 질이 아니라 물질적 가치 증식의 양에 비례하는, 능력 우선 실력 지상이라는 무한 경쟁의 생존 논리가 횡행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현실은 인간의 자질과 능력은 태생적으로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근대 우생학의 대전제를 여전히 추인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영국 우생학의 역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생명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현실을 성찰하기 위해 우생학의 ‘지나간 역사’를 되짚어보고 ‘오류의 역사’로부터 배우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