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순국지사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이 1905년 11월 30일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자결 순국한 장소.
민영환이 자결한 곳은 조계사 경내에 있는 자택이었다는 설과 의관 이완식의 집이었다는 설로 나뉜다. 현재는 이완식의 집이라는 것이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증을 거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시종무관 어담(魚潭)과 김우현 목사, 민병진의 회고에 따르면, 민영환의 집에 민영환의 어머니와 가족이 있었기에 자결 장소를 청지기였던 이완식의 집으로 택했으며, 그의 유해가 이완식의 집에서 발견된 뒤 본저(本邸)로 옮겨졌기 때문에 자결한 당시 모습을 하인 한 사람과 청지기 식구만 목격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종로 하나투어빌딩 앞 이완식의 집 터에 김충현이 글씨를 쓰고 백문기가 조각한 추모 조형물이 놓여졌다. 추모 조형물은 민영환이 자결 당시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양식 의복과 예식용 장검, 자결할 때 사용한 단검, 유서 등을 배치한 형태이다. 또한 민영환이 자결한 뒤 피가 흘렀던 마룻바닥에 혈죽(血竹)이 돋아났다는 설화에 따라 창호문과 대나무가 조각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승동교회 - 국가보훈처 지전 현충시설
승동교회는 1919년 2월20일 이교회의 청년면려회장으로 있던 연희전문학교 학생 김원벽 (1894~1928, 건국훈장독립장) 을 비롯란 각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제1회 학생지도자회의를 열었던 곳이다. 2월28일에 열린 제 4회 회의에서는 학생조직 동원을 최종 점검하고 독립선언서 배초등과 관련된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다음날 탐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을 시발점으로 하는 거족적 독립만세운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또한 1922년에는 이 교회에서 조선여자기독교 청년회가 설립되어 여성들이 사회활동에 일익을 담당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승동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자주독립과 사회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승동교회 (勝洞敎會) - 1912년
이 건물은 1893년 새뮤열 무어 목사가 설립한 승동교회의 교회당으로 1910년에 짓기 시작하여 1912년 완성되었다. 붉은 벽돌을 이용한 양옥 건물인 이 교회당은 동적인 구조를 갖춘 초기 개신교회당의 대표적인 건물로 그 규모가 웅장하다. 건물 1층 방들의 벽이 2층의 넓은 에배실 공간과 바닥을 받쳐주는 멱돌조 건축의 전형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전국의 학생대표들이 이 교회에 모여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누어 주고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승동교회는 한국교회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종교적 행사가 이곳에서 많이열렸다. 수리와 증축이 거듭되면서 건물의 외벽에 구조적 결함이 생겨 외관을 훼손하니 않는 범위 내에서 철골로 보강하여 안전하게 복원하였다. 건물의 벽체와 창호 주변, 주변과 바닥 틀 등은 20세기 초 서양식 건축기술의 정착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탑골공원
서울 탑골공원(파고다공원) / (서울 塔골公園) /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사적 /종목 사적 제354호
(1991년 10월 25일 지정) / 면적 15,051m2 / 시대 대한제국 /관리 종로구
탑골공원(塔-公園)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에 있는 공원이다. 뼈모양의 탑이 있어 탑골(塔骨) 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적 제354호로 지정되어 있는 탑골공원은 국내 최초의 도심 내 공원으로 1919년 일제에 항거하는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는데 이곳은 고려시대 흥복사가 있던 자리였는데 탑이 생기면서 탑동(塔洞)으로 불리다가 탑동공원(塔洞公園)·파고다공원이 되었다.
위치
원래는 파고다 공원으로 불렸으며 면적은 15,051 m²이다. 수도권 전철 1, 3, 5호선이 만나는 종로3가역과 수도권 전철 1호선 종각역이 가깝고 근처에는 낙원악기상가가 위치해있다. 서울에 마련된 최초의 공원이며, 한국에서 한국인을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탑골 공원에 있는 3·1 운동 서판
처음에는 파고다 공원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탑이 있는 그 주변을 탑동 또는 탑골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사람들은 곧잘 탑공원, 탑동공원, 탑골공원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 공원은 3·1운동의 발상지로 여겨지며, 이곳에서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1967년에는 상가 건물인 ‘파고다 아케이드’를 공원 둘레에 짓는 것을 포함하는 현대화 계획이 발표되어[4], 같은해 12월 완료되었다. 1983년 7월 파고다 아케이드의 철거 이후, 그해 말까지 재정비사업이 진행되었다.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54호로 지정되었고, 1992년 5월 28일 탑골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공원 내에는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제2호),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독립운동 봉화에 불을 당겼던 탑골 공원 팔각정(서울 시도유형문화재 제73호)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이 있다.
유래
탑골 공원은 고종 때 원각사 터에 조성한 최초의 공원이다. 탑골이라고 불린 것은 최근의 일이고 이전에는 탑이 있는 공원이라고 해서 영어식 발음으로 파고다라고 했다. 일제에 대한 최대 규모의 민족 저항운동이었던 3·1 운동이 이 곳에서 시작되었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은 현존하는 대한민국 국보지정 석탑 가운데 가장 후대에 속하는 것으로 그 형태와 평면이 특수하며,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수법이 세련되고 화려해 조선시대 석탑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노인들의 휴식처로도 알려져 있고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찾아보기 힘들정도가 되었다.
역사
고려시대 이곳에 흥복사(興福寺)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1464년(세조10)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던 세조가 원각사(圓覺寺)로 개명하고 중건하였는데, 이 공사를 위하여 동원된 군사는 2,100인이었고, 13인의 부장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보 제2호)
근처의 가옥 200여 호를 철거하여 3년 후에 완공된 이 사찰의 규모는 굉장한 것이었고 도성 안 제일의 대가람이었다. 이 절은 당우나 문루의 규모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특히 전국에서 동 5만 근을 모아 주조한 대종과 1468년에 완성하여 그 안에 석가여래의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을 안치하였다는 10층석탑이 있었다.
비교적 숭불정책이 시행되던 것이 성종 때 들어와서는 철저한 억불정책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연산군대에 들어가서는 더욱 가혹하여졌다. 원각사를 철거하자는 논의는 1504년(연산군 10)에 시작되었지만 당장에는 철거하지 않았고, 그 대신 기생과 악사를 관리하는 장악원(掌樂院)을 이 자리에 옮겨 전국에서 뽑아 올린 기생 1,200여 인과 악사 1,000인, 감독 40인이 기거하는 연산군의 기생방이 되었으며, 그 이름도 연방원(聯芳院)으로 바뀌었다.
연산군이 실각한 뒤 이 건물은 잠시 한성부 청사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514년(중종9) 호조에서 원각사의 재목을 헐어 여러 공용건물의 영선에 쓸 것을 계청하자 왕이 이를 허락한 뒤 얼마 안 가서 이 사찰건물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비와 10층석탑만 남아 있다.
고종의 명을 받은 영국인 브라운이 조선 고종 34년인 1897년 서양식 공원으로 만들어서 1920년 대중에게 개방하였다.
브라운은 1893년 조선에 입국하여 총세무사, 도지부 고문으로 일하면서 조선 정부의 재정과 관련한 일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폐허로 변한 원각사지를 공원으로 바꾸자고 건의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는 김홍집 내각 때부터 서울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고종이 아관파천을 한 뒤에 경운궁 중심의 도시 정비를 바랐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울 시민이 가장 모이기 쉬운 곳으로서 주변에 장시가 서고 있었다는 점도 공원 개설에 큰 역할을 하였다. 고종은 공원에서 민의가 수렴되는 등 언론의 장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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