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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로마제국의 첫 100년!
눈부심과 잔혹함, 위선과 아름다움, 권력과 부패, 대담함과 악행이 난무하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 [다이너스티]는 로마를 변형시킨 한 가문의 초상이자 세계를 변모시킨 황조의 이야기이다. 벽돌 도시에서 대리석 도시로 다시 태어난 수도 로마에서 야만족이 출몰하는 축축한 게르마니아의 숲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범위를 배경으로 로마 초기 황제들의 공적인 역사와 생생한 민낯, 제정 초기에 정치가 작동한 방식, 당대 로마인들의 인식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눈부심과 잔혹함, 위선과 아름다움, 권력과 부패, 대담함과 악행이 난무하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 [다이너스티]는 로마를 변형시킨 한 가문의 초상이자 세계를 변모시킨 황조의 이야기이다. 벽돌 도시에서 대리석 도시로 다시 태어난 수도 로마에서 야만족이 출몰하는 축축한 게르마니아의 숲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범위를 배경으로 로마 초기 황제들의 공적인 역사와 생생한 민낯, 제정 초기에 정치가 작동한 방식, 당대 로마인들의 인식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목차
서문
PART 1 파드로네
chapter 1 늑대의 자식들
초강대국 만들기 / 거대한 게임 /영웅이 필요해
chapter 2 백 투 더 퓨처
인간사에는 때가 있는 법 / 로마의 봄 / 영광의 전리품 / 대부
chapter 3 잔인성의 고갈
원점으로 돌아가다 / 가계도 / 사랑의 기술 / 암흑의 핵심 / 여자를 조심하라
PART 2 코사 노스트라
chapter 4 최후의 로마인
늑대의 귀를 잡아라 / 인민의 왕자 / 콘실리에리(2인자) / 변덕
chapter 5 저들에게 나를 증오하게 하라
쇼 타임 / 농담이 지나쳐
chapter 6 야호, 사투르날리아!
가장 / 빵과 브리타니아 / 남자보다 치명적인
chapter 7 걸출한 예술가
맘마미아 / 온 세상이 다 무대 / 어둠에 금박을 입히다 / 다시 현실로
PART 1 파드로네
chapter 1 늑대의 자식들
초강대국 만들기 / 거대한 게임 /영웅이 필요해
chapter 2 백 투 더 퓨처
인간사에는 때가 있는 법 / 로마의 봄 / 영광의 전리품 / 대부
chapter 3 잔인성의 고갈
원점으로 돌아가다 / 가계도 / 사랑의 기술 / 암흑의 핵심 / 여자를 조심하라
PART 2 코사 노스트라
chapter 4 최후의 로마인
늑대의 귀를 잡아라 / 인민의 왕자 / 콘실리에리(2인자) / 변덕
chapter 5 저들에게 나를 증오하게 하라
쇼 타임 / 농담이 지나쳐
chapter 6 야호, 사투르날리아!
가장 / 빵과 브리타니아 / 남자보다 치명적인
chapter 7 걸출한 예술가
맘마미아 / 온 세상이 다 무대 / 어둠에 금박을 입히다 / 다시 현실로
책 속으로
그들은 신들이 자신들에게 세계 지배의 권리를 주었다고 믿었다. 로마의 비범성은 지배에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물론 다른 분야에서는 로마인의 재능을 능가하는 민족이 있을 수 있었다. 청동이나 대리석 제품을 만드는 일, 별자리표를 작성하거나 성생활 안내서를 쓰는 일만 해도 그리스인들을 따라올 민족이 없었다. 시리아인도 무용수로 이름을 날렸고, 칼데아인은 뛰어난 점성술사였으며, 게르만족은 유능한 호위병이었다. 그러나 보편적 제국을 정복하고 유지하는 데 적합한 재능을 지닌 민족은 로마인밖에 없었다. 그것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는 것은 그들이 거둔 업적으로도 알 수 있었다. 피지배민들을 관대하게 대하되, 오만방자한 민족은 가차 없이 처단한 것에서도 로마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장 38쪽)
젊은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가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마이케나스와 더불어 가장 충실한 카이사르 지지자였던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는 지극히 평범한 가문 출신이었다. “그런 아들을 가졌다고 하여 아비의 명예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와 같은, 자랑 아닌 자랑을 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며 대범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그런 성향의 소유자였던 만큼 그는 자신의 열정을 권력의 부속물이 아닌 실체에 쏟았다. 젊은 카이사르보다 늘 한 발짝 뒤에 서서 지배자가 빛나 보이게 하고 자신은 눈에 띄지 않도록 성실한 부관의 이미지를 유지한 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뿐이었다. 이렇게 충실하게 보좌를 하는 동안 그는 주군과는 무언의 비밀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2장 115쪽)
로마는 ‘제국과 신들의 중심지’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오랫동안 세계 수도의 위상에 턱없이 부족한 외양을 띠고 있었다. 수천 개의 작업장과 화덕이 내뿜는 갈색 연기가 도시의 비좁은 판자촌들을 뿌옇게 덮고 있었다. 버팀물로 지탱된 뾰족탑 주택가가 도시 구릉들의 경사면에 서 있는 모습도 위태로워 보였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더러운 거리들의 한가운데에서는 우중충한 신전들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관들과 그들을 계승한 왕들이 허세가 잔뜩 낀 방식으로 번쩍번쩍 광을 내놓은 동방의 도시들에 비하면, 로마는 어지럽고 추레한 단색 도시일 뿐이었다. (2장 155쪽)
프린켑스는 원로원의 수호자 겸 평민들의 투사, 아니 그 이상이었다. 로마는 공화국이면서도 너무나 오랫동안 공화국 최악의 적이었다. 권세 있는 자들의 탐욕과 대중의 야만성이 함께, 공화국을 파멸 직전으로 몰아갔다. 신들이 아우구스투스를 로마로 보내 내전의 고통에서 구해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도시와 제국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린켑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자명했다. 바로 공화국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혁명은 그의 생각에서 저만치 동떨어져 있었다. 원로원과 인민에게 그들의 본류를 깨닫게 하는 것이 그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의무였다. 그리고 그 임무는 고대의 비르투스와 규율의 생득권을 그들에게 되찾아주면 완결될 터였다. (2장 162~163쪽)
그러나 아우구스투스가 명령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물론 그는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수장이었으므로 다종다양한 그 가문 사람들의 혼인에 마음대로 간섭할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를 말 잘 듣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일까지 거기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티베리우스도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율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을 뿐, 좋아서 한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는 아그리파가 죽기 전에 이미 그의 딸인 빕사니아와 결혼한 상태였고 결혼 생활도 행복했기에, 아내와의 이별에 몹시 괴로워했다. 빕사니아는 티베리우스에게 작은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드루수스로 명명된 아들도 낳아주고 헌신적인 애정도 바쳤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감정의 절제에 능했던 티베리우스도 아내와의 이별에 따른 고통만은 숨기지 못했다. 얼마 뒤 빕사니아를 우연히 만났을 때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그녀 뒤를 따라다니기까지 해서, 보다 못한 아우구스투스가 두 번 다시 그런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엄명을 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기실 티베리우스가 느낀 불행에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혼을 넘어서는 깊은 요인이 잠재해 있었다. (3장 204~205쪽)
그는 지난날 좌절에 직면할 때면 흔히 그랬듯 이번에 딸이 자신에게 안겨준 불명예도 자신의 위대성을 공고히 다질 기회로 보았다. 율리아와 그녀의 정부들을 처단해, 국부에게는 그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보듬을 권리뿐 아니라 파멸시킬 권리도 있다는 인식을 모든 이에게 확실히 심어주려 한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추문을 덮어 감추기보다는 불륜의 더러운 전모를 원로원에서 속속들이 밝히는 편을 택했다. 충격과 공포로 탁해진 목소리로, 뒤에서 킥킥대는 의원들의 비웃음을 사면서까지 딸의 비행을 일일이 들추는 일은 물론 분통 터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에게 이득이었다. 원로원 의원들도 로마의 정치적 삶은 오래전부터 프린켑스가 보인 인내와 자제라는 미명 아래 유지되었고, 따라서 그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단번에 제거할 수 있다는 적나라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3장 214~215쪽)
지난 몇십 년 동안 로마 군단은 ‘아우구스투스 가문에 각별한 충성과 헌신을 보이도록’ 부추김을 받았다. 따라서 충성을 요구하는 원로원 따위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그들의 경리 부장이던 사람을 할아버지로 두고, 여전히 비극적 매력에 둘러싸인 여성을 어머니로 둔 여성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라인 강 유역 군단병들이 아그리피나를 따뜻하게 환대한 데에는 이렇게 사욕과 정, 두 가지 감정이 함께 작용했다. 그녀가 전선으로 함께 데려온 세 아들 중 막내인 조숙한 가이우스도 그렇게 되는 데 한몫했다. 꼬마 병정 차림으로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가이우스는 빠르게 부대의 우상이 되었다. 군단병들에게 ‘꼬마 장화’를 뜻하는 ‘칼리굴라’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폭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게르마니쿠스가 그들의 인기에 편승해, 갈리아의 한 부족에게 그들을 보호해달라고 보란 듯이 맡기자, 군단병들이 체면이 깎인 수치심에 전의를 잃고 그 즉시 항복한 일만 보더라도 두 모자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만하다. 한마디로 게르마니아 폭동의 진압에는 남편 못지않게 아그리피나의 공도 컸다. (4장 306~307쪽)
“세야누스파였던 사람치고 로마인들에게 짓밟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복수는 세야누스에게 버림받은 그의 전처, 아피카타에게서 나왔다. 남편이 저지른 악행을 적은 편지를 티베리우스에게 보낸 것인데, 얼마나 극악무도한 행위였으면 편지를 쓰자마자 그녀는 자결했다. 티베리우스도 편지를 개봉해 읽으며 그간 자신이 세야누스에게 얼마나 깊이 속아 살았는지를 깨닫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아피카타가 주장하기로, 그가 가장 신뢰했던 심복은 무려 10년 동안이나 리빌라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 드루수스도 그들이 독살했다고 했다. 두 남녀의 야망, 악행, 역모 행위에는 끝이 없었다. (4장 382쪽)
지난날의 프린켑스에 대한 기억은 그들 마음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공화국을 두 차례나 파멸에서 구한 전쟁영웅에 대한 이야기에는 먼지만 소복이 쌓이고 이제는 동포 시민들 사이에서 티베리우스에 대한 새로운 풍문이 떠돌고 있었다. 너무도 끔찍해서 로마인들 누구도 믿지 못했을, 비뚤어진 그의 행태에 대한 소문이었다. (4장 393쪽)
“숱하게 많은 악덕을 지닌 그였지만 칼리굴라가 진정으로 소질을 보인 측면은 학대였다.” 세네카의 이 말대로 즉위 4년째 되는 해인 기원후 41년에는 로마의 전 귀족층이 칼리굴라가 지닌 모욕의 천재성에 몸을 움츠리는 상황이 되었다. 칼리굴라의 대리인 한 명이 원로원에 가서 의원 한 사람을 노려보기만 해도 황제 증오죄는 뚝딱 만들어졌다. 그러면 다른 의원들이 그에게 즉각 달려들어 몸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누구도, 심지어 칼리굴라의 친구들마저 그 상황에서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칼리굴라는 그들 모두를 바짝 긴장시키기를 좋아했다. (5장 442쪽)
칼리굴라는 언제나 그렇듯 남에게 상처 주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줄도 알았다. 칼리굴라가 카이레아에게 ‘여자’ 같다고 하거나, 그로 하여금 자기 손에 키스하게 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외설적인 동작을 취하며 그의 감정을 살피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 것만 해도, 즐거움만이 그런 행동을 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칼리굴라는 자신의 궂은일을 대신해줄 악역이 필요했고, 그래서 카이레아가 여자 같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효과적인 고문자 혹은 집행자가 되어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는 매우 균형 잡힌 생각이었다. 공포가 공포를 낳았으니 말이다. (5장 443쪽)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는 위태롭긴 했지만 그런대로 처신을 잘했다. 젊은 시절 그는,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던 기회가 박탈되자 도박에 취미를 붙였다. 도박 중독을 주제로 한 글을 쓸 만큼 그것에 심취했다. 하지만 그를 멸시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이 그를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로 바라보게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웃은 사람은 그들이 아닌 클라우디우스였다. 상황은 언제나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예상 밖의 기량을 보이며 상황과 싸워 나갔다. 그는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아서도 도박을 걸어 세계를 차지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이래, 그처럼 노골적으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예는 없었다. (6장 455쪽)
이듬해에는 기 센 여주인 아그리피나의 손에 세계가 넘어간 징후가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아그리피나가 아들에게 온 희망을 걸고 있다는 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기원후 50년 열세 살 된 도미티우스가 황제의 양아들로 입양되어 공식적으로 클라우디우스 가문에 입적되었다 하여 크게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에 따라 소년도 이제는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가 아닌,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라는 한층 인상적인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 둥그런 얼굴에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티가 나는 네로의 초상도 즉시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세계를 광휘로 가득 채운 사람은 네로가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황제가 리비아도 갖지 못했던 영예를 그녀에게 줄줄이 부여해주었으니 말이다. (6장 509~510쪽)
아우구스투스 가문 중 아그리피나와 같은 정도로 불행과 성공의 양극단을 오간 사람은 없었다. 추방형을 당한 아우구스투스의 많은 자손들 중 역경을 뚫고 고진감래를 이룬 사람은 오로지 아그리피나뿐이었다. 그런 만큼 그녀에게 추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7장 517쪽)
혜성이 시야에서 사라진 지 이틀 후였던 7월 18일 밤, 휘영청 보름달이 뜬 로마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남단, 가연성 물질이 가득 찬 상점들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골짜기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머지않아 불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 지구 전체로 무섭게 퍼져 나가며 로마 구릉들의 경사면으로 타올라 갔다. … 이 불로 세계 수도 로마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연기 피어오르는 잡석으로 변했다. (7장 568~569쪽)
그러고 있는데 파온의 심부름꾼 하나가 편지 한 통을 가지고 왔다. 네로는 그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 읽었다. 편지를 읽는 그의 낯빛이 점점 창백해졌다. 원로원은 그를 공적으로 선언했다. 그에게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았다. 원로원 의원들은 자신들을 무색하게 만든 황제들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를 기념이라도 하듯, 몸을 발가벗기고 어깨에 멍에를 얹어 거리로 끌고 나간 뒤 막대로 때려 죽이는, 잔혹한 것만큼이나 고색창연한 사형 선고를 그에게 내렸다. 네로도 그런 운명을 당하느니 스스로 일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단검 한 쌍을 집어 들고 칼끝을 살피는 듯하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울부짖었다. “운명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젊은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가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마이케나스와 더불어 가장 충실한 카이사르 지지자였던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는 지극히 평범한 가문 출신이었다. “그런 아들을 가졌다고 하여 아비의 명예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와 같은, 자랑 아닌 자랑을 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며 대범하고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그런 성향의 소유자였던 만큼 그는 자신의 열정을 권력의 부속물이 아닌 실체에 쏟았다. 젊은 카이사르보다 늘 한 발짝 뒤에 서서 지배자가 빛나 보이게 하고 자신은 눈에 띄지 않도록 성실한 부관의 이미지를 유지한 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뿐이었다. 이렇게 충실하게 보좌를 하는 동안 그는 주군과는 무언의 비밀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2장 115쪽)
로마는 ‘제국과 신들의 중심지’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오랫동안 세계 수도의 위상에 턱없이 부족한 외양을 띠고 있었다. 수천 개의 작업장과 화덕이 내뿜는 갈색 연기가 도시의 비좁은 판자촌들을 뿌옇게 덮고 있었다. 버팀물로 지탱된 뾰족탑 주택가가 도시 구릉들의 경사면에 서 있는 모습도 위태로워 보였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더러운 거리들의 한가운데에서는 우중충한 신전들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관들과 그들을 계승한 왕들이 허세가 잔뜩 낀 방식으로 번쩍번쩍 광을 내놓은 동방의 도시들에 비하면, 로마는 어지럽고 추레한 단색 도시일 뿐이었다. (2장 155쪽)
프린켑스는 원로원의 수호자 겸 평민들의 투사, 아니 그 이상이었다. 로마는 공화국이면서도 너무나 오랫동안 공화국 최악의 적이었다. 권세 있는 자들의 탐욕과 대중의 야만성이 함께, 공화국을 파멸 직전으로 몰아갔다. 신들이 아우구스투스를 로마로 보내 내전의 고통에서 구해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도시와 제국은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린켑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자명했다. 바로 공화국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혁명은 그의 생각에서 저만치 동떨어져 있었다. 원로원과 인민에게 그들의 본류를 깨닫게 하는 것이 그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의무였다. 그리고 그 임무는 고대의 비르투스와 규율의 생득권을 그들에게 되찾아주면 완결될 터였다. (2장 162~163쪽)
그러나 아우구스투스가 명령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물론 그는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수장이었으므로 다종다양한 그 가문 사람들의 혼인에 마음대로 간섭할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를 말 잘 듣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일까지 거기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티베리우스도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율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을 뿐, 좋아서 한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는 아그리파가 죽기 전에 이미 그의 딸인 빕사니아와 결혼한 상태였고 결혼 생활도 행복했기에, 아내와의 이별에 몹시 괴로워했다. 빕사니아는 티베리우스에게 작은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드루수스로 명명된 아들도 낳아주고 헌신적인 애정도 바쳤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감정의 절제에 능했던 티베리우스도 아내와의 이별에 따른 고통만은 숨기지 못했다. 얼마 뒤 빕사니아를 우연히 만났을 때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그녀 뒤를 따라다니기까지 해서, 보다 못한 아우구스투스가 두 번 다시 그런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엄명을 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기실 티베리우스가 느낀 불행에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혼을 넘어서는 깊은 요인이 잠재해 있었다. (3장 204~205쪽)
그는 지난날 좌절에 직면할 때면 흔히 그랬듯 이번에 딸이 자신에게 안겨준 불명예도 자신의 위대성을 공고히 다질 기회로 보았다. 율리아와 그녀의 정부들을 처단해, 국부에게는 그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보듬을 권리뿐 아니라 파멸시킬 권리도 있다는 인식을 모든 이에게 확실히 심어주려 한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투스는 추문을 덮어 감추기보다는 불륜의 더러운 전모를 원로원에서 속속들이 밝히는 편을 택했다. 충격과 공포로 탁해진 목소리로, 뒤에서 킥킥대는 의원들의 비웃음을 사면서까지 딸의 비행을 일일이 들추는 일은 물론 분통 터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에게 이득이었다. 원로원 의원들도 로마의 정치적 삶은 오래전부터 프린켑스가 보인 인내와 자제라는 미명 아래 유지되었고, 따라서 그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단번에 제거할 수 있다는 적나라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3장 214~215쪽)
지난 몇십 년 동안 로마 군단은 ‘아우구스투스 가문에 각별한 충성과 헌신을 보이도록’ 부추김을 받았다. 따라서 충성을 요구하는 원로원 따위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그들의 경리 부장이던 사람을 할아버지로 두고, 여전히 비극적 매력에 둘러싸인 여성을 어머니로 둔 여성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라인 강 유역 군단병들이 아그리피나를 따뜻하게 환대한 데에는 이렇게 사욕과 정, 두 가지 감정이 함께 작용했다. 그녀가 전선으로 함께 데려온 세 아들 중 막내인 조숙한 가이우스도 그렇게 되는 데 한몫했다. 꼬마 병정 차림으로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가이우스는 빠르게 부대의 우상이 되었다. 군단병들에게 ‘꼬마 장화’를 뜻하는 ‘칼리굴라’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폭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게르마니쿠스가 그들의 인기에 편승해, 갈리아의 한 부족에게 그들을 보호해달라고 보란 듯이 맡기자, 군단병들이 체면이 깎인 수치심에 전의를 잃고 그 즉시 항복한 일만 보더라도 두 모자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만하다. 한마디로 게르마니아 폭동의 진압에는 남편 못지않게 아그리피나의 공도 컸다. (4장 306~307쪽)
“세야누스파였던 사람치고 로마인들에게 짓밟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복수는 세야누스에게 버림받은 그의 전처, 아피카타에게서 나왔다. 남편이 저지른 악행을 적은 편지를 티베리우스에게 보낸 것인데, 얼마나 극악무도한 행위였으면 편지를 쓰자마자 그녀는 자결했다. 티베리우스도 편지를 개봉해 읽으며 그간 자신이 세야누스에게 얼마나 깊이 속아 살았는지를 깨닫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아피카타가 주장하기로, 그가 가장 신뢰했던 심복은 무려 10년 동안이나 리빌라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 드루수스도 그들이 독살했다고 했다. 두 남녀의 야망, 악행, 역모 행위에는 끝이 없었다. (4장 382쪽)
지난날의 프린켑스에 대한 기억은 그들 마음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공화국을 두 차례나 파멸에서 구한 전쟁영웅에 대한 이야기에는 먼지만 소복이 쌓이고 이제는 동포 시민들 사이에서 티베리우스에 대한 새로운 풍문이 떠돌고 있었다. 너무도 끔찍해서 로마인들 누구도 믿지 못했을, 비뚤어진 그의 행태에 대한 소문이었다. (4장 393쪽)
“숱하게 많은 악덕을 지닌 그였지만 칼리굴라가 진정으로 소질을 보인 측면은 학대였다.” 세네카의 이 말대로 즉위 4년째 되는 해인 기원후 41년에는 로마의 전 귀족층이 칼리굴라가 지닌 모욕의 천재성에 몸을 움츠리는 상황이 되었다. 칼리굴라의 대리인 한 명이 원로원에 가서 의원 한 사람을 노려보기만 해도 황제 증오죄는 뚝딱 만들어졌다. 그러면 다른 의원들이 그에게 즉각 달려들어 몸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누구도, 심지어 칼리굴라의 친구들마저 그 상황에서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칼리굴라는 그들 모두를 바짝 긴장시키기를 좋아했다. (5장 442쪽)
칼리굴라는 언제나 그렇듯 남에게 상처 주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줄도 알았다. 칼리굴라가 카이레아에게 ‘여자’ 같다고 하거나, 그로 하여금 자기 손에 키스하게 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외설적인 동작을 취하며 그의 감정을 살피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 것만 해도, 즐거움만이 그런 행동을 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칼리굴라는 자신의 궂은일을 대신해줄 악역이 필요했고, 그래서 카이레아가 여자 같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효과적인 고문자 혹은 집행자가 되어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는 매우 균형 잡힌 생각이었다. 공포가 공포를 낳았으니 말이다. (5장 443쪽)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는 위태롭긴 했지만 그런대로 처신을 잘했다. 젊은 시절 그는,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던 기회가 박탈되자 도박에 취미를 붙였다. 도박 중독을 주제로 한 글을 쓸 만큼 그것에 심취했다. 하지만 그를 멸시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이 그를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로 바라보게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웃은 사람은 그들이 아닌 클라우디우스였다. 상황은 언제나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예상 밖의 기량을 보이며 상황과 싸워 나갔다. 그는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아서도 도박을 걸어 세계를 차지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이래, 그처럼 노골적으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예는 없었다. (6장 455쪽)
이듬해에는 기 센 여주인 아그리피나의 손에 세계가 넘어간 징후가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아그리피나가 아들에게 온 희망을 걸고 있다는 데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기원후 50년 열세 살 된 도미티우스가 황제의 양아들로 입양되어 공식적으로 클라우디우스 가문에 입적되었다 하여 크게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에 따라 소년도 이제는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가 아닌,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라는 한층 인상적인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 둥그런 얼굴에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티가 나는 네로의 초상도 즉시 유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세계를 광휘로 가득 채운 사람은 네로가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황제가 리비아도 갖지 못했던 영예를 그녀에게 줄줄이 부여해주었으니 말이다. (6장 509~510쪽)
아우구스투스 가문 중 아그리피나와 같은 정도로 불행과 성공의 양극단을 오간 사람은 없었다. 추방형을 당한 아우구스투스의 많은 자손들 중 역경을 뚫고 고진감래를 이룬 사람은 오로지 아그리피나뿐이었다. 그런 만큼 그녀에게 추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7장 517쪽)
혜성이 시야에서 사라진 지 이틀 후였던 7월 18일 밤, 휘영청 보름달이 뜬 로마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남단, 가연성 물질이 가득 찬 상점들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골짜기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머지않아 불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 지구 전체로 무섭게 퍼져 나가며 로마 구릉들의 경사면으로 타올라 갔다. … 이 불로 세계 수도 로마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연기 피어오르는 잡석으로 변했다. (7장 568~569쪽)
그러고 있는데 파온의 심부름꾼 하나가 편지 한 통을 가지고 왔다. 네로는 그의 손에서 편지를 낚아채 읽었다. 편지를 읽는 그의 낯빛이 점점 창백해졌다. 원로원은 그를 공적으로 선언했다. 그에게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았다. 원로원 의원들은 자신들을 무색하게 만든 황제들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를 기념이라도 하듯, 몸을 발가벗기고 어깨에 멍에를 얹어 거리로 끌고 나간 뒤 막대로 때려 죽이는, 잔혹한 것만큼이나 고색창연한 사형 선고를 그에게 내렸다. 네로도 그런 운명을 당하느니 스스로 일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단검 한 쌍을 집어 들고 칼끝을 살피는 듯하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울부짖었다. “운명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눈부심과 잔혹함, 위선과 아름다움, 권력과 부패, 대담함과 악행이 난무하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
『다이너스티』는 로마를 변형시킨 한 가문의 초상이자 세계를 변모시킨 황조의 이야기이다
브루투스 일파가 명줄 끊긴 공화정의 부활을 꿈꾸며 종신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뒤, 로마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휩싸였다. 오랜 전란에 지칠 대로 지친 로마인들은 공화정과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누리던 자유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느꼈지만, 내전을 종결시키고 평화를 가져다준 아우구스투스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이로써 로마는 세습 군주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문은 아우구스투스가 열었지만 그 시작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카이사르의 주요 상속자로서 그의 재산, 병사 그리고 이름까지 계승한 옥타비아누스는 양자 결연과 복잡한 혼인 관계를 통해 황조의 뼈대를 만들었고, 이후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다섯 황제가 100여 년 동안 로마를 다스리게 된다.
로마제국 초대 황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눈부시고 적나라한 일대기
그동안 고대 로마나 로마제국의 역사, 개별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책은 많이 출간되어왔다. 한순간도 황제 자리에 오른 적이 없지만 그 이름은 영원히 ‘황제’를 뜻하게 된 카이사르, 이름부터 권위와 존엄함을 담아낸 아우구스투스, 우열을 가리기 힘든 폭군의 대명사 칼리굴라와 네로 등.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황제들은 역사서뿐 아니라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 대중문화 곳곳에서 부활하여 이미 익숙해졌지만 그 권력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어떤 식으로 작동하여 로마의 역사와 시민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제국의 전형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벤치마킹되고 있는 로마제국의 원형을 만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정상과 비정상을 넘나드는 기괴한 통치 행위, 로마 제정 초기의 혼돈과 난맥상이 가감 없이 서술되어 있다. 한계를 가진 인간들에게 최고의 권력이 주어졌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끝없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의 중심과 그 주변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러한 지도층에게 매혹되고 열광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시민들이 그들과 뒤섞여 로마를 어떻게 변화시켜갔는가.
로마 내전의 격랑을 뚫고 최후의 승자가 된 옥타비아누스가 창시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영욕에 찬 흥망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벽돌 도시에서 대리석 도시로 다시 태어난 수도 로마에서 야만족이 출몰하는 축축한 게르마니아의 숲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범위를 배경으로 로마 초기 황제들의 공적인 역사와 생생한 민낯, 제정 초기에 정치가 작동한 방식, 당대 로마인들의 인식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고대 사료를 치밀하게 엮어내어 완성한
정제된 기록 뒤에 숨겨진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
로마제국 관련 사료들은 그 앞 시대에 비해서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지만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는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를 축으로 다수의 역사가를 비롯해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위대한 두 시인인 호라티우스와 오비디우스 같은 권위 있는 전거를 바탕으로, 내러티브가 제공하는 전후 맥락을 통해 단서를 찾아내어 권력 아래에서 왜곡되었을지 모르는 역사를 치밀하게 탐구하여 하나의 서사로 만들어나간다.
“이 시기의 역사 기록은 황제들이 살아 있는 동안은 두려움 때문에 변조되었고,
그들이 죽은 뒤에는 증오심으로 점철되었다.
때는 아첨으로 타락한, 부패한 시대였다.”
동시에 날카로운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신화, 허구, 진실, 소문, 실제, 영광, 유혈, 심오한 지혜, 눈먼 허영 등 로마인을 로마인이게 해준 모든 특징을 능숙하게 꿰뚫고 황제들의 덕과 악덕, 장점과 결점을 낱낱이 파헤쳐, 그 다섯 황제를 넘어 로마의 시대정신을 함께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다수의 고대 및 중세 역사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영국 최고의 대중역사저술가 겸 역사학자인 톰 홀랜드가 선보이는 한 편의 소설 같은 로마 역사서, 『다이너스티』를 만나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황제들
“내가 인생극에서 내 배역을 잘 연기한 듯하지 않소?
그렇다면 박수를 보내주오. 그리고 칭찬을 받으며 무대를 내려오게 하오.”
냉혹한 만큼 교활하고, 단호한 만큼 참을성이 강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로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가 되었다. 수십 년간 로마를 다스리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심지어 천수까지 누린 아우구스투스의 성공 비법은 로마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통치를 해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독재정을 교묘하게 원수정으로 포장해 시민들로 하여금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정한 후계자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물려주었다.
“조상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고, 원로원의 이익을 주의 깊게 지키며,
위험 앞에서는 용기 있게 행동하고, 공공의 선을 위해서라면 불쾌감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소.”
티베리우스는 사라져버린 공화국에 평생 동안 집착한 불행한 군주였다. 뛰어난 군사 경력과 통치력으로 로마제국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위대한 장군으로 시작한 그의 경력은 성도착자라는 악명으로 뒤덮였고 그는 끝내 고집스러운 은둔생활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는 시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없었는데 티베리우스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로마 시민들은 온 거리에서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고 한다.
“로마인들이 하나의 목으로 되어 있다면 한꺼번에 잘라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꼬마 병정 차림으로 군부대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칼리굴라(‘꼬마 장화’라는 뜻)는 한때 병사들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된 그는 아무런 거리낌이나 망설임 없이 나라를 다스렸고 이내 잔혹함과 수치스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를 두고 세네카는 “조물주께서는 한정 없는 악이 한정 없는 권력과 결합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칼리굴라를 창조하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카 칼리굴라가 피살된 뒤 커튼 뒤에서 벌벌 떨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근위대원들은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하는 클라우디우스에게 최고권을 부여했다.’
병약한 절름발이였던, 특히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황제로 고려되지 않았던 클라우디우스는 칼리굴라를 살해한 근위대에 의해 강제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의외로 통치를 잘 해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근위대와의 유착 관계와 해방노예 삼인방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점 그리고 조카 아그리피나와의 결혼은 로마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아내 살해자, 전차 기수, 배우, 방화범. 이것이 네로에게 씌워진 기나긴 범죄 목록이었다.’
클라우디우스의 아내 아그리피나가 아들 네로를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해 남편을 독살했다는 소문은 로마인에게 의혹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황제가 된 네로는 칼리굴라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변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절대 권력을 남용했고, 행정은 뒷전으로 하고 음악과 연기에 관심을 쏟았으며 임신한 아내를 발로 차 죽게 만들고, 소년과 결혼하고, 잿더미가 된 수도 한복판에 환락궁을 지었다. 원로원이 네로를 공적(公敵)으로 선언하자 네로는 자신의 손으로 목 깊숙이 칼을 찔러 생을 마감했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
『다이너스티』는 로마를 변형시킨 한 가문의 초상이자 세계를 변모시킨 황조의 이야기이다
브루투스 일파가 명줄 끊긴 공화정의 부활을 꿈꾸며 종신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뒤, 로마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휩싸였다. 오랜 전란에 지칠 대로 지친 로마인들은 공화정과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누리던 자유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느꼈지만, 내전을 종결시키고 평화를 가져다준 아우구스투스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이로써 로마는 세습 군주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문은 아우구스투스가 열었지만 그 시작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카이사르의 주요 상속자로서 그의 재산, 병사 그리고 이름까지 계승한 옥타비아누스는 양자 결연과 복잡한 혼인 관계를 통해 황조의 뼈대를 만들었고, 이후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다섯 황제가 100여 년 동안 로마를 다스리게 된다.
로마제국 초대 황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눈부시고 적나라한 일대기
그동안 고대 로마나 로마제국의 역사, 개별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책은 많이 출간되어왔다. 한순간도 황제 자리에 오른 적이 없지만 그 이름은 영원히 ‘황제’를 뜻하게 된 카이사르, 이름부터 권위와 존엄함을 담아낸 아우구스투스, 우열을 가리기 힘든 폭군의 대명사 칼리굴라와 네로 등.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황제들은 역사서뿐 아니라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 대중문화 곳곳에서 부활하여 이미 익숙해졌지만 그 권력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어떤 식으로 작동하여 로마의 역사와 시민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제국의 전형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벤치마킹되고 있는 로마제국의 원형을 만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정상과 비정상을 넘나드는 기괴한 통치 행위, 로마 제정 초기의 혼돈과 난맥상이 가감 없이 서술되어 있다. 한계를 가진 인간들에게 최고의 권력이 주어졌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끝없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의 중심과 그 주변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러한 지도층에게 매혹되고 열광하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시민들이 그들과 뒤섞여 로마를 어떻게 변화시켜갔는가.
로마 내전의 격랑을 뚫고 최후의 승자가 된 옥타비아누스가 창시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영욕에 찬 흥망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벽돌 도시에서 대리석 도시로 다시 태어난 수도 로마에서 야만족이 출몰하는 축축한 게르마니아의 숲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범위를 배경으로 로마 초기 황제들의 공적인 역사와 생생한 민낯, 제정 초기에 정치가 작동한 방식, 당대 로마인들의 인식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고대 사료를 치밀하게 엮어내어 완성한
정제된 기록 뒤에 숨겨진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
로마제국 관련 사료들은 그 앞 시대에 비해서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지만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는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를 축으로 다수의 역사가를 비롯해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위대한 두 시인인 호라티우스와 오비디우스 같은 권위 있는 전거를 바탕으로, 내러티브가 제공하는 전후 맥락을 통해 단서를 찾아내어 권력 아래에서 왜곡되었을지 모르는 역사를 치밀하게 탐구하여 하나의 서사로 만들어나간다.
“이 시기의 역사 기록은 황제들이 살아 있는 동안은 두려움 때문에 변조되었고,
그들이 죽은 뒤에는 증오심으로 점철되었다.
때는 아첨으로 타락한, 부패한 시대였다.”
동시에 날카로운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신화, 허구, 진실, 소문, 실제, 영광, 유혈, 심오한 지혜, 눈먼 허영 등 로마인을 로마인이게 해준 모든 특징을 능숙하게 꿰뚫고 황제들의 덕과 악덕, 장점과 결점을 낱낱이 파헤쳐, 그 다섯 황제를 넘어 로마의 시대정신을 함께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다수의 고대 및 중세 역사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영국 최고의 대중역사저술가 겸 역사학자인 톰 홀랜드가 선보이는 한 편의 소설 같은 로마 역사서, 『다이너스티』를 만나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황제들
“내가 인생극에서 내 배역을 잘 연기한 듯하지 않소?
그렇다면 박수를 보내주오. 그리고 칭찬을 받으며 무대를 내려오게 하오.”
냉혹한 만큼 교활하고, 단호한 만큼 참을성이 강했던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로서 로마제국의 초대황제가 되었다. 수십 년간 로마를 다스리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심지어 천수까지 누린 아우구스투스의 성공 비법은 로마의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며 통치를 해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독재정을 교묘하게 원수정으로 포장해 시민들로 하여금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정한 후계자에게 성공적으로 권력을 물려주었다.
“조상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고, 원로원의 이익을 주의 깊게 지키며,
위험 앞에서는 용기 있게 행동하고, 공공의 선을 위해서라면 불쾌감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소.”
티베리우스는 사라져버린 공화국에 평생 동안 집착한 불행한 군주였다. 뛰어난 군사 경력과 통치력으로 로마제국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위대한 장군으로 시작한 그의 경력은 성도착자라는 악명으로 뒤덮였고 그는 끝내 고집스러운 은둔생활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는 시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없었는데 티베리우스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로마 시민들은 온 거리에서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고 한다.
“로마인들이 하나의 목으로 되어 있다면 한꺼번에 잘라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꼬마 병정 차림으로 군부대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칼리굴라(‘꼬마 장화’라는 뜻)는 한때 병사들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된 그는 아무런 거리낌이나 망설임 없이 나라를 다스렸고 이내 잔혹함과 수치스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를 두고 세네카는 “조물주께서는 한정 없는 악이 한정 없는 권력과 결합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칼리굴라를 창조하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카 칼리굴라가 피살된 뒤 커튼 뒤에서 벌벌 떨며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근위대원들은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하는 클라우디우스에게 최고권을 부여했다.’
병약한 절름발이였던, 특히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기 때문에 로마제국의 황제로 고려되지 않았던 클라우디우스는 칼리굴라를 살해한 근위대에 의해 강제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의외로 통치를 잘 해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근위대와의 유착 관계와 해방노예 삼인방에게 지나치게 의존한 점 그리고 조카 아그리피나와의 결혼은 로마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아내 살해자, 전차 기수, 배우, 방화범. 이것이 네로에게 씌워진 기나긴 범죄 목록이었다.’
클라우디우스의 아내 아그리피나가 아들 네로를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해 남편을 독살했다는 소문은 로마인에게 의혹과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황제가 된 네로는 칼리굴라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변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절대 권력을 남용했고, 행정은 뒷전으로 하고 음악과 연기에 관심을 쏟았으며 임신한 아내를 발로 차 죽게 만들고, 소년과 결혼하고, 잿더미가 된 수도 한복판에 환락궁을 지었다. 원로원이 네로를 공적(公敵)으로 선언하자 네로는 자신의 손으로 목 깊숙이 칼을 찔러 생을 마감했다.
추천평
사실과 허구가 혼재하고, 묵직한 학술 연구가 풍성한 유머로 중화된 작품. … 한 번 잡으면 손에서 결코 놓을 수 없도록 독자를 매료시키는 훌륭한 읽을거리다.
『데일리 메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시작한 황조를 다룬 기막힌 역사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황제가 표출하는 과도함, 섬뜩한 잔혹성, 살벌한 음모, 끔찍한 악행은 구역질 나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하여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선데이 익스프레스』
능란하고 노련하다. … 저자가 이 빼어난 역사서에서 보여준 여러 덕목들 중 특히 높이 살 점은 로마 황제들을 ‘서구 최초 폭정의 본보기’로 가감 없이 묘사한 것이다. … 『다이너스티』는 고대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일들을 종합한 역작이자, 깜짝 놀랄 만한 사건들이 수록된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이다.
닉 코언, 『옵서버』
능란하고 재기 넘치는 작가 톰 홀랜드는 이 책 『다이너스티』에서 잔학함, 근친상간, 성도착, 모친 살해, 암살, 비행을 일삼는 황제들의 난삽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까발려놓는다.
윌리엄 댈림플, 『뉴 스테이츠먼』
영국 최고의 역사 저술가가 쓴 스릴 넘치는 책. … 참으로 감탄스러운 작품이다.
『히스토리 투데이』
눈부시고, 경이롭고, 압도적인 작품
『옵서버』
슬픔과 전율의 이야기를 조금의 주저함도 막힘도 없이 술술 풀어 나간다. 명쾌한 분석력을 동원해 잔혹하고 편집증적인 행태들을 단계적으로 하나씩 헤쳐 보이는 저자의 글에서는 어떤 헝클어짐도 찾아볼 수 없다. … 저자는 노련한 작가답게, 로마 최초 황조의 부끄러운 민낯을 내일이라도 당장 일어날 일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애덤 니컬슨, 『선데이 타임스』
『데일리 메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시작한 황조를 다룬 기막힌 역사서.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황제가 표출하는 과도함, 섬뜩한 잔혹성, 살벌한 음모, 끔찍한 악행은 구역질 나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하여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선데이 익스프레스』
능란하고 노련하다. … 저자가 이 빼어난 역사서에서 보여준 여러 덕목들 중 특히 높이 살 점은 로마 황제들을 ‘서구 최초 폭정의 본보기’로 가감 없이 묘사한 것이다. … 『다이너스티』는 고대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일들을 종합한 역작이자, 깜짝 놀랄 만한 사건들이 수록된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이다.
닉 코언, 『옵서버』
능란하고 재기 넘치는 작가 톰 홀랜드는 이 책 『다이너스티』에서 잔학함, 근친상간, 성도착, 모친 살해, 암살, 비행을 일삼는 황제들의 난삽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까발려놓는다.
윌리엄 댈림플, 『뉴 스테이츠먼』
영국 최고의 역사 저술가가 쓴 스릴 넘치는 책. … 참으로 감탄스러운 작품이다.
『히스토리 투데이』
눈부시고, 경이롭고, 압도적인 작품
『옵서버』
슬픔과 전율의 이야기를 조금의 주저함도 막힘도 없이 술술 풀어 나간다. 명쾌한 분석력을 동원해 잔혹하고 편집증적인 행태들을 단계적으로 하나씩 헤쳐 보이는 저자의 글에서는 어떤 헝클어짐도 찾아볼 수 없다. … 저자는 노련한 작가답게, 로마 최초 황조의 부끄러운 민낯을 내일이라도 당장 일어날 일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애덤 니컬슨, 『선데이 타임스』
'43.서양사 이해 (독서>책소개) > 1.로마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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