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이데올로기 연구 (독서>책소개)/8.부루주아

부르주아 생리학 (2021)

동방박사님 2023. 11. 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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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세기 파리지앵을 사로잡은 단 한 명의 부르주아
앙리 모니에가 직접 그리고 묘사한
부르주아의 우아하고도 치졸한 일상

“자기 자신을 관찰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속물”
발터 벤야민은 그를 두고 생리학의 ‘거장’이라 지칭했다.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책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1935)에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예술 작품의 ‘아우라’가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더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모나리자를 볼 수 있고 원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소유할 수도 있다. 이전의 예술 작품이 신과 종교를 중심으로 한 숭배의 의미를 지녔다면 이제는 작품의 오리지널리티가 사라지고 그 독창성마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기술복제의 차원을 넘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과 계급이 붕괴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신흥 귀족 집단이라 불리는 ‘부르주아’다. 이들은 자신들이 견고하게 쌓아온 부와 권력이 무너지는 걸 원치 않았다. 여전히 예술작품에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를 신성화시키길 원했다. 벤야민은 이러한 상류층의 태도를 ‘예술에 관한 속물적 관념’이라 비판했는데, 이렇듯 부르주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벤야민이 인정한 부르주아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풍자화가이자 삽화가, 희극작가이자 연극배우였던 앙리 모니에다. 당시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정치적 지형은 물론 삶의 양식마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때 대중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간 군상에 대한 해석에 갈증을 느꼈는데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킨 게 풍속 연구 중 하나인 ‘생리학’ 시리즈였다. 문고판으로 출간된 작은 책자에는 다양한 인간 종을 묘사한 삽화와 날카로운 묘사로 가득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생리학 시리즈의 필자로는 발자크 같은 유명 작가는 물론, 수많은 저널리스트, 신문 소설과 대중 소설 작가까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직접 삽화를 그리고 글까지 썼던 시대의 천재 앙리 모니에는 단연 돋보이는 필자였다. 벤야민은 그를 두고 “자기 자신을 관찰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속물”, “생리학의 거장”이라 지칭하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목차

서문 프뤼돔 씨의 생리학 7

제1장 부르주아란 무엇인가? 19
제2장 부르주아의 출생, 교육, 유년기 31
제3장 정치, 문학, 기타 여러 가지에 관한 이분의 의견 39
제4장 일요일, 부르주아의 일과 47
제5장 초상肖像에의 열광과 예술가와의 친분 61
제6장 예술인 부르주아 81
제7장 자만 87
제8장 귀농 부르주아 93
제9장 배심원 부르주아 115
제10장 부르주아 여인, 그 정신과 풍속에 관하여 127
제11장 극장에 간 부르주아 139
제12장 부르주아 군인과 군인 부르주아 153
제13장 부르주아의 저녁 초대 163
제14장 부르주아의 인간관계 177
 

저자 소개 

저 : 앙리 모니에 (Henry Monnier )
풍자화가, 삽화가, 희극작가, 연극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자신의 재능을 입증한 앙리 모니에가 후대에 이름을 알린 건 1830년에 발표한 희곡 『통속 생활의 전경』이다. 그는 ‘조제프 프뤼돔’이라는 인물을 통해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의 전형을 묘사해낸다. 통통한 체구에 제법 근엄한 척 굴지만 누구보다 빨리 삶에 순응하는 프뤼돔 씨는 당시 파리지앵 관객을 사로잡았고 이후 희곡 『조제프 프뤼돔 씨의 ...

역 : 김지현

 
연세대학교 졸업(이학사) 후 고려대학교에서 문학 석사를 취득한 뒤 프랑스 렌느 2대학에서 『보들레르의 도시 어스름 시편 연구: 현대적 서정 속의 아이러니Les poemes du Crepuscule urbain chez Baudelaire. L’ronie dans le lyrisme de la modernite』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책 속으로

수많은 저널리스트, 신문 소설과 대중 소설 작가가 때로는 가명을 쓰거나 아예 이름을 숨긴 채 이 마이너한 장르에 뛰어들었다. 그중에서 특히 언급할 만한 작가로 폴 드 콕Paul de Kock, 에두아르 우를리악Edouard Ourlic, 루이 위아르Louis Huart, 그리고 바로 이 책 『부르주아 생리학』의 저자 앙리 모니에Henry Monnier가 있다. 루이 위아르가 이 장르의 ‘창시자’로 여겨진다면, 이 영역의 ‘대가’는 단연 앙리 모니에다. 발터벤야민은 그를 두고 “자기 자신을 관찰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속물”로서 생리학의 ‘거장’이라고 지칭했다.
---pp.10~11

제국 시절, 군병은 부르주아를 ‘페캥’이라 부르며 그들의 커다란 군도로 페캥의 귀를 날려버리겠다고 쉴 새 없이 위협했다.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고, 모두가 그 유행에 맞춰 줘야 했다.
---pp.21~22

어떠한 신통찮은 화가라도 부르주아로 취급되기보다 차라리 가장 끔찍한 흉악범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천 배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화가가 부르주아에 대해 가장 무자비한 태도를 보이는 공간은 주로 아틀리에 안이다. 따라서 아틀리에에 들어간 부르주아는 그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를 감수하게 된다.
---p.26

해와 달과 땅과 하늘과 별들과 그 밖의 온갖 것이 창조되는 데 엿새가 걸렸고, 이후 이렛날은 휴일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일요일에 쉬어야 하리라. 그러나 적잖은 사람에게 이날은 쉬는 날과 거리가 멀다. 부르주아, 특히 파리의 부르주아에게 일요일은 휴일은커녕 그 주에서 가장 할 일이 많은 날이다. 가엾은 양반들 같으니! 물론, 그가 이렇듯 애를 쓰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이고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의 노고는 스스로 기꺼이 원한 것이다. 누구도 그 무엇도 이를 그에게 요구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p.47

무얼 하면 시간을 더 적절히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를 때, 부르주아는 자신의 모습을 제작한다. 자기 모습을 만드는 것, 그것은 그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로, 그야말로 하나의 강박, 절실한 삶의 요청이다. 특히 그들은 계절이 좋을 때 이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강렬하게 느낀다. 부르주아는 자신의 거처를 새로 단장할 때 화가들을 부른다. 집을 단장하는 비용에는 그 집안을 장식하는 자신의 모습을 새로 단장하는 비용이 포함된다. 저택의 방을 수리하면, 그 방의 새 벽지 위에 걸린 오래된 초상화들이 모순거리처럼 두드러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새 초상화를 주문한다.
---pp.61~62

부르주아는 예술가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실 부르주아의 사명에 대한 예술가들의 이해도나 포용력은 그보다 더 떨어진다. 예술가와 부르주아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술가는 부르주아에 대한 선입견을, 아주 좋지 않은 선입견을 품고 있고, 이는 예술가를 대하는 부르주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연히 그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은 늘 다소 불쾌할 수밖에 없다. 이 관계에서 더욱더 답답한 일은, 둘 중 한쪽이 돈을 지불하고 다른 한쪽이 그 돈을 받는다는 점이다. 사는 사람은 파는 사람에게 잔소리함으로써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데, 그의 조언과 의견이 상대방에게 멀쩡히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p.67

앞서 언급한 경우보다 결코 덜 한심하다고 할 수 없는 다양한 부르주아가 존재한다. 그중 자기가 좀 안다고 자부하는 예술 애호가 유형은 분명 가장 흥미로우면서 난감한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치료가 불가능한 어떤 상처, 혹은 매 순간에 걸쳐 진행되는 골칫거리랄까. 항구적이고도 견딜 수 없는 악몽과도 같다. 가장 신랄한 풍자나 야유도 그들에게 타격을 입히지 못한다. 그것은 악어 등에 떨어진 총탄처럼 그들의 두꺼운 가죽 위를 미끄러져 떨어진다. 그들은 난공불락이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p.81

도시의 소음 가운데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부르주아가, 어느 날 아침 면도를 하던 중 자신의 둥근 배와 한 움큼씩 빠지는 흰 머리카락을 보면서, 이제 바야흐로 삶의 마지막 나날을 휴식과 은거에 바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에게 파리는 더는 매력이 없다.
---p.93

부르주아의 반쪽인 부르주아즈는 집안의 여왕이며 여주인이다. 그녀는 지배하고, 이끌고, 잘라내고, 재단하고, 깎고, 썰고, 다시 썬다. 그녀가 말하는 것, 그녀가 하는 것은 모두 아름답고 좋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복속되어 있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다.
---pp.128~129

극장 옆자리에서 부르주아를 만나는 것만큼 애석한 일이 또 있을까. 특히 그 자리가 박스석인 경우는 더 그렇다.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피곤하고 난감한 저녁을 보내기 위해 꼬박 대여섯 시간 동안 신체로는 75킬로그램, 정신은 250킬로그램의 140무게가 나가는 한 남자를 내내 어깨로 버티기 위하여 그렇게도 비싼 값을 지불한 것이다.
---pp.139~140

가장 평범하고 시시한 저녁 모임을 준비하는데도 최소 2주가 걸린다. 모임 직전의 며칠은 명상과 숙고, 그리고 음식 준비에 통째로 할애된다. 평소 성질이 가장 무난하고 변덕이 없는 부르주아라도, 저녁 모임 당일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이날 그는 곰처럼 무뚝뚝하고, 고슴도치처럼 예민하다. 그는 마치 꼬인 줄과 같다.
---p.164

자신에게 주어진 갖가지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는 그 정확성이야말로 부르주아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기념일, 결혼식, 세례식,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그의 일상적 활동 중 일부이다. 이러한 행사 중 특히 장례식에 대한 부르주아의 선호는 각별한데, 온 세상의 황금과 맞바꿔서도 그는 장례식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죽은 사람이 그의 마지막 집으로 가는 길을, 그게 그날 처음 알게 된 사람이든 가장 친한 친구이든, 그는 늘 같은 정도의 기꺼운 마음으로, 그리고 같은 정도의 열성으로 따라간다. 따라갈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날 오히려 그는 낙담에 빠진다.
---pp.177~178
 

출판사 리뷰

부르주아의 우아하고도 치졸한 일상을
묘사할 수 있는 자는 오직 부르주아 뿐이다!


앙리 모니에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희극 『통속생활의 정경Scenes populaires, dessinees a la plume』에서 조제프 프뤼돔Joseph Prudhomme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부터이다. 당시 파리지앵은 격동하는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부상한 부르주아, ‘프뤼돔’ 백작의 사소한 몸짓 하나에 열광했다. 무대에서 무슈 프뤼돔은 훌륭한 부르주아, 신중한 부르주아로 등장하지만 실상은 위선으로 똘똘 뭉친 멍청한 유산 계급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모니에는 스스로 창조한 허구 인물을 직접 연기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집단을 해체하고 이들의 허위의식을 낱낱이 고발한 것이다. 이렇듯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화살을 겨누는 냉정함과 이를 예술로 표현해내는 눈부신 재능을 목격한 그의 친구 발자크는 자신의 역작 『인간극』연작에 수록된 단편 「사업가Un homme d'affaires」에서 그를 모델로 장 자크 빅시우라는 인물로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모니에의 눈에 비친 부르주아는 “세상에 처음 올 때 나이가 50세인 듯하니, 그는 회색 머리칼에 안경을 쓰고 불룩한 배, 흰 양말에 검은 의복을 입은 채로 태어난” 낡아빠진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안주하려는 종족에 불과하다. 그는 부르주아를 애써 설명하거나 묘사하지 않고 생동감 넘치는 대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 어떤 질문에도 “마레지구, 샤를로 가 45번지”라고 대답하는 부르주아 소년은 자신이 사는 곳의 주소만으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타 생리학 시리즈 중에서도 은근하게 비꼬는 대화문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동시대 풍속을 다뤘다는 면에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만, 우스꽝스러운 대화 속에 담긴 함의를 독자가 스스로 해석하고 생각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능동적인 개입을 요구한다. 이러한 모니에의 독특한 표현 방식과 부르주아를 향한 날카로운 고발정신은 후에 그에게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두 번이나 받는 영광을 남겼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단 한 명의 부르주아도 없다.
보다 가치 있는 복제품이 되길 원할 뿐이다.


부르주아에 의한 부르주아를 위한 부르주아 시대의 문학, 그중에서도 이 책 『부르주아 생리학』은 이 책의 주요 독자이자 거품 같은 풍요의 특산품인 부르주아를 분석하고 풍자한다. 우리는 200년 전 프랑스를 통해 인간 사회의 모순과 허위의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부르주아란 도시를 가리키는 ‘부르bourg'에서 파생된 ‘성城안 사람’이란 의미로, 이때 부르주아는 왕과 성주와 달리 실질적 활동의 주체로 이 세계의 상업과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적, 지적 진보의 주체였다. 이들은 혁명에 앞장섰고 사회를 움직이는 지적 동력 그 자체였다. 때문에 무산계급인 평범한 백성들은 기득권층인 이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면서도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는 부르주아의 풍요로운 삶을 동경하는 모순된 감정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부르주아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갖가지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는 그 정확성이야 말로 부르주아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부르주아를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부르주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흔히 재벌이라 불리는 기득권층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전혀 다른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들에게는 앙리 모니에가 골몰했던 자신에 대한 성찰, 더 나아가 유산계급 부르주아에 대한 의구심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에게는 타인과의 조화로운 삶이나 상생의 덕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더 나은 가치 실현을 꿈꾸지 못한 채 타인의 삶을 모방하고 답습하기 바쁘다. 청년들은 주식이나 비트코인을 통한 일확천금을 꿈꾸고, 타인에게 자신을 전시하는 걸 서슴지 않는다. 이렇듯 지성이 결여된 채 부에 따라 나뉜 계층은 더욱 견고해져 세대, 종교, 젠더, 빈부 갈등을 낳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고발할 줄 아는 지성인을 찾기 어렵다. 때문에 이 책 『부르주아 생리학』을 읽은 독자는 200년 전 프랑스에서 탁월한 작가의 스스로를 성찰하는 지성과 이를 예술로 풀어내는 동력을 반드시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시대를 풍미한 천재이자 지식인이었던 앙리 모니에의 부르주아 고발장인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끔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어른들의 그 어떤 물음에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마레지구, 샤를로 가 45번지.”라 대답하는 소년을 두고 이 아이에게 자신의 대답이 지닌 한계에 대해 끝내 설명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을 거라 말한다. 이렇듯 공허한 대답만을 반복하는 아이가 자라서 어떤 부르주아가 되는 지는 애써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애초에 그것이 바로 파노라마 문학과 생리학 장르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이다. 이때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던 존재, 급변하는 19세기의 주인공이 ‘부르주아’였음은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본문 13쪽, 「역자 서문ㅡ프뤼돔 씨의 생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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